평등을 꿈꾸던 천재 혁명가가 잔혹하게 미쳐가는 과정 [역사읽어드립니다 EP.42] | 심용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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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9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377

  • @sapiens_studio
    @sapiens_studio  3 роки тому +84

    ✔핵심 재미만 콕콕 집어주는 역사읽다 댓집게✔
    0:59​ 궁예는 신라의 왕자였다?
    4:19​ 궁예는 어떻게 세력을 넓혔을까?
    7:41​ 궁예는 왜 미쳐갔을까
    11:00​ 궁예는 어떻게 몰락했나
    [역사 읽어드립니다]로 역사 정주행하고 싶다면? 👉 bit.ly/2TH6BBQ

    • @참그루-q2c
      @참그루-q2c 3 роки тому

    • @朴城珉
      @朴城珉 3 роки тому +1

      내부 권력 패배자라서 폭군으로 기록될수
      밖에 없는 인물인듯

    • @다주골드
      @다주골드 3 роки тому

      00시 8 00시 00시 8 00시 8 00시 00시 00시 8 00시 88 00시 898 00시 888 00시 8888 00시 88 8 00시 998⁸88 8 00시 888 8 00시 8 8889 8888888 00시 88⁸888 8 8⁹9

  • @이동동동-h4v
    @이동동동-h4v 3 роки тому +504

    근데 왕건입장에서 궁예를 저렇게 나쁜놈 만들어야 자기가 뒤통수치고 고려를 세운 정당한 이유가 생기는건데. 일부러라도 더 나쁘게 궁예를 표현했을거 같음.

    • @가이브러시
      @가이브러시 3 роки тому +71

      맞아요~역사는 승자들이 남기는 기록이니까...
      '궁예는 착했는데 내가 그냥 쳐냈슴~'이렇게 쓸리는 없죠ㅎ

    • @lucasromi83
      @lucasromi83 3 роки тому +52

      그보단 궁예가 실제로 원한을 사다보니 그걸 정치적으로 더 이용했겠죠.
      아예 폭군이 아니었으면 왕건이 권력을 잡지도 못했을듯. 워낙 특출난 인물이라.
      특출난 능력을 가진 궁예가 실제로 철퇴를 꺼내들어 족치니 이리죽나 저리죽나 왕건을 밀어준거고 왕건이 정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좀더 궁예의 악행을 과장했겠죠.

    • @민트초코-e3f
      @민트초코-e3f 3 роки тому +10

      대부분의 역사서들이 패자의 편에서 기록되진 않으니까 아무래도....

    • @구름전주
      @구름전주 3 роки тому +12

      호족 세력vs왕권 강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백성들을 수탈하는건 호족이고 왕권이 강화되서 호족들이 약해질때 백성들은 살기 좋아짐
      중국의 삼국지 시대도 호족들의 수탈에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황건적이 된거죠
      또 동탁 토벌할려고 호족들이 모인 반동탁 연합군의 약탈로 그들의 주둔지 백성의 반절이 죽었다고 합니다

    • @leehaeseung324
      @leehaeseung324 3 роки тому +20

      예상컨데 관심법이란건 존재했을지가 의문이긴합니다 궁예가 주장하는 사상이 현대 공산주의와 굉장히 비슷한 형태를 띄었고 당시 호족이라는 세력들을 다수 죽이고 재산을 빼았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족중에서 우두머리인 왕건이 반란을 일으킨거고 반란에 성공해서 씌여진게 지금의 고려사가 아닌가 생각은 됩니다. 1900년대에 공산주의를 천년앞서 다른 세상에서 실현하려 했으니 사대를 잘못 탄거지 대단한 정치가였던게 아니였을지...

  • @taeyounghan80
    @taeyounghan80 3 роки тому +273

    궁예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하고 죽인 이유가 자기가 추운 지역인 철원에 수도를 정한 것에 대한 불평(고뿔)을 듣기 싫어 그랬다는 썰이...

    • @sunbonnetblu
      @sunbonnetblu 3 роки тому +3

      누구인가?

    • @하늘보리색깔
      @하늘보리색깔 3 роки тому +3

      고뿔은 감기 아닌가요 ?

    • @하늘보리색깔
      @하늘보리색깔 3 роки тому +2

      @@ksg_chy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불평 고뿔을 같은 의미로 얘기하신 줄 알고 한 소립니다. 제가 괜한 소릴했네요.

    • @하늘보리색깔
      @하늘보리색깔 3 роки тому +1

      @@ksg_chy 감사합니당

    • @귀여운건마니좋아
      @귀여운건마니좋아 3 роки тому +14

      @@ksg_chy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소름 ㄷㄷ
      "전하 저 감기걸렸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뒤지면 감기에안걸리겠군아" 퍽!!

  • @김형태-l6e
    @김형태-l6e 3 роки тому +23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실제 사실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궁예라고 하면, '마구니', '철퇴'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상의 계기로 제 생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5925tank
    @5925tank 3 роки тому +25

    궁예가 폭군이고 패악질만 일삼았다면 궁예 죽은후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궁예파가 계속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 @안녕하시렵니까헤
    @안녕하시렵니까헤 3 роки тому +138

    이야기를 듣는데 머리속으로 드라마 태조왕건 장면들이 새록새록..✨

    • @scft5323
      @scft5323 3 роки тому +7

      그대사가 있지요 누구인가? 누가 기침소릴내었는가

    • @김우찬-s1e
      @김우찬-s1e 3 роки тому +4

      아 하 아하 아 하 하 하 하

    • @강정이-m9q
      @강정이-m9q 3 роки тому +7

      금부장은 무얼 하는가, 당장 저자를 쳐라!

    • @kim_space_star
      @kim_space_star 3 роки тому +4

      마군이를 때려 죽이라고 하였느니라!

    • @크아아아앙-i2u
      @크아아아앙-i2u 3 роки тому +1

      왕건 에서 수달 튀겨 먹던데

  • @브리-j3z
    @브리-j3z 3 роки тому +16

    영상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궁예가 912년 덕진포 전투에 친정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는 정상적인(?) 왕으로서 잘 해나갔던 듯 함. 덕진포 전투의 결과로 왕건이 점령했던 나주의 불안정한 상태를 영암 등 주변 지역(능창, 일명 수달의 점거지역)까지 강역을 확대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점유할 기반을 마련했고, 서남해의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했던만큼 이때가 궁예의 최전성기로 보는게 합당해 보임. 궁예가 변했다(미륵을 이용한 왕권강화와 사치스러운 모습 등)고 한다면 이 시점 이후가 아닐까 싶음. 신라는 말할 것도 없고 견훤까지 완벽하게 기선을 제압한만큼 자신이 사실상 삼한을 통일했다고 자만하게 되지 않았나 싶음.
    궁예의 변화와 왕권강화 과정에서 궁예가 왕비 강씨와 두 태자까지 처참하게 죽인 건 궁예와 호족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거고, 수습 불가능한 일이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듯 함. 강씨는 신천 출신의 패서호족인데 궁예의 미륵을 이용한 왕권강화가 호족들, 특히 패서 호족들의 이권을 상당부분 빼앗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음. 그래서 그들을 대표하는 왕비와 궁예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궁예가 초강수를 두지 않았을까 함. 기록에는 안나오지만 본보기로 강씨 집안 자체를 몰살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함. 졸지에 패서호족을 상징하는 왕비와 미래권력인 태자들이 도륙되면서 패서호족들이 궁예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이런 상황 자체가 재발할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아예 패서호족 중에서 대표 격인 왕건을 추대한 것으로 보임. 왕건이 재위 기간 내내 호족들의 비위를 맞춘 게 단순히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의 협력을 구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궁예의 어설픈 왕권강화 실패에서 얻은 교훈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 @헤븐-x2w
      @헤븐-x2w 2 роки тому +1

      이런 글 너무 좋습니다

  • @커피쟁이-k3x
    @커피쟁이-k3x 3 роки тому +19

    항상 너무 잘보고있습니다
    덕분에 제딸이 나중에 컷을때 아빠노릇좀 하겠네여 ㅎㅎ 귀에쏙쏙들어와요

  • @won3960
    @won3960 3 роки тому +46

    제가 듣기로는 밑바닥 출신이라 기반이 약한
    자신에 비해 지역 호족 출신들인 부하들이
    점점 힘이 세지는걸 부담스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래서 수도도 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겼다고...
    밑바닥 출신 군주가 부하들을 잔혹하게 숙청한건
    중국사에서는 한고조 유방과 명태조 주원장이
    있는데 그들이 궁예와 다른점이라면
    적어도 통일을 한 다음에 숙청을 했다는 거죠.

    • @Snowflake_tv
      @Snowflake_tv 3 роки тому

      와... 좀만 참고 다 이용해먹은 뒤에 토사구팽, 나중에 숙청햇어도 좋앗을것을 ㅠㅠ 때가 오기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성공의 관건인 것 같네요...

    • @성이름-m6v
      @성이름-m6v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Snowflake_tv그렇죠. 재벌집 아들인 왕건에 비해 정치력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세금은 엄청나게 인하해서 부처님의 군대는 최강이였조 ㅋㅋㅋ

  • @dormin301
    @dormin301 3 роки тому +161

    왜 김영철 선생님이 연기하신것 밖에 생각이 안나냐...

    • @user-si9qs4sj1l
      @user-si9qs4sj1l 3 роки тому +11

      누구인가..?

    • @user-uf8uh5ig6h
      @user-uf8uh5ig6h 3 роки тому +11

      워낙 잘 하셨으니까 ㅋㅋㅋㅋ

    • @진설향
      @진설향 3 роки тому +8

      진짜. 너무 명연기을 하셨죠. 존중.

    • @박성민-p8n
      @박성민-p8n 3 роки тому +4

      4딸라!

    • @익명-n9n
      @익명-n9n 3 роки тому +1

      그분의 활약으로 두한물이 나온거임 ㅋ

  • @pupwannabe5664
    @pupwannabe5664 3 роки тому +10

    저는 궁예가 왕건과 고려 4대왕 왕소(광종)을 합친 인물이라고 생각하네요. 2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다보니 포악함의 대명사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종이 했던 쌍기 등용과 아들을 죽이려 했던 일은 궁예가 아지태 등용/아내와 아들들의 살해가 여러모로 일맥상통하죠..

  • @자녀교육최경선-m3p
    @자녀교육최경선-m3p 3 роки тому +8

    궁예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즐겁게 들었습니다. 심용환 작가님이 들려주시면 시간이 순삭입니다.

  • @이승철-y9l4u
    @이승철-y9l4u 3 роки тому +26

    어린시절의 환경이 성장기에 도움이
    되는지 여력히 보여주는 역사속 인물이내요 궁예의 심정을 이해못하는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항시 초심을 잃지 않고 살기란 힘든것
    같아요

  • @Jungermadsen
    @Jungermadsen 3 роки тому +43

    강비와 왕건을 포함한 평안도 호족 세력하고 권력 다툼을 과도하게 하다가 축출 됬다 보는게 맞을듯... 관심법이나 그런것도 결국엔 궁예의 대응 수단이었을 것이고

  • @germaniscake
    @germaniscake 3 роки тому +58

    신라에서 이빨은 중요하지. 신라 극초창기에는 왕도 이빨 수로 정했다고 하던 나라인데.

    • @jinchoi9629
      @jinchoi9629 3 роки тому +2

      이사금 ㅋㅋㅋ

    • @seoju873
      @seoju873 3 роки тому +1

      실제로 임금도 잇자국이라는 뜻인 이사금에서 유래했죠

  • @김티므느
    @김티므느 3 роки тому +67

    솔직히 지역호족들도 나름 체면이 있지. 어디서 굴러먹다온지도 모르는 근본없는 땡중한테 숙이느니 그래도 같은 호족이고 호족 중에서도 끝발날리는 왕건밑으로 갔겠지. 견훤도 신라하급무장 출신이고. 왕건이 고려를 세울수 있었고 통일할수 있었던 가장 큰이유는 결국 대대로 집안리 송악서 무역하는 대부호집안이었던 이유가 가장크다.

    • @아머킹재규어
      @아머킹재규어 3 роки тому +1

      어쩌면 궁예가 너무 영리해서 버림받은게 아닐까..

    • @금은동-g7u
      @금은동-g7u 2 роки тому +2

      근본이 없지는 않음. 신라 왕족이었음

  • @Hyukstor
    @Hyukstor 3 роки тому +83

    시작은 민중과 함께 했으나 마지막은 민중과 거리가 멀어진다..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건가

    • @성이름-e2x5m
      @성이름-e2x5m 3 роки тому +6

      혹시 훠훠훠 말하는거라면 훠훠훠는 처음부터 그런적이 없습니다...

    • @KimGapHwan
      @KimGapHwan 3 роки тому +6

      @@enenenen1374 아직도 대깨문이 있는것보면

    • @불토크
      @불토크 3 роки тому +2

      휘휘휘 문제

    • @euhounful
      @euhounful 3 роки тому +1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왕건, 호족에 의해 궁예 얘기가 왜곡되었다는 시각이 많죠

    • @알루미늄-d6h
      @알루미늄-d6h 3 роки тому

      @@KimGapHwan 아니 ㅋㅋㅋㅋㅋㅋ

  • @최강기아-x9r
    @최강기아-x9r 3 роки тому +98

    역사는 승자의 기록 실제로 저랬을지는 모르는거죠

    • @kk-di2qh
      @kk-di2qh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궁예 초기의 지혜롭고 영웅스러운 모습들도 고려시대 승자의 기록이니 틀릴 수도 있겠군요ㅋ

  • @전동민-x2x
    @전동민-x2x 3 роки тому +13

    광종도 궁예를 참고했던것 같아요! 호족 숙청이 대표적인 예에요

  • @궁금합니다-k6s
    @궁금합니다-k6s 3 роки тому +6

    실제로 왕건이 왕이 되기전까지 전투는 거의다 궁예의 전술임
    나주전투 왕건이 아니라 궁예가 직접끌고가서 전쟁했다는게 요즘 팩트임

    • @홍성범-r8g
      @홍성범-r8g 9 місяців тому

      역사에 팩트라..ㅋㅋㅋ

  • @eunaaaaaaaaaa
    @eunaaaaaaaaaa 3 роки тому +3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 @김원장-b4v
    @김원장-b4v 3 роки тому +6

    뭐 지금의 정치인들도 거짓과 모략밖에 없는데 저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않을듯.
    어찌보면 사람이 너무 강직해서 주위에 적이 많았던 것일수도 있을듯

  • @마음-m7s
    @마음-m7s 3 роки тому +15

    조선처럼 우선 1대에는 건국세력들을 포용하고 국가기반을 다지고나서 3대왕 이방원이 숙청을 했듯이 급하지 않게 왕권을 강화했다면 궁예가 몰락하는일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영상도 유익하고 재밌게 시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민상유-n5h
    @민상유-n5h 3 роки тому +3

    모든 역덕후가 잊지말아말 한마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 @레미아빠-j3p
    @레미아빠-j3p 3 роки тому +32

    요새는 이런정통사극이 안나옴...

  • @0.K.J.W.0
    @0.K.J.W.0 3 роки тому +10

    예전 K본부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궁예란 인물을 월래는 40회까지만 출연시키려고했었는대 태조왕건 그 드마라의 인기도 너무 좋앗지만 거기에 궁예의 케릭터에 인기또한 커서 결국 궁예 출연분량을 100회까지 늘렸죠 나도 요즘 또 다시보기로 보는대 여전히 재미있음 더군다나 요즘은 또 이런 사극 드라마가 거의 없으니... 아쉽기도하구

    • @스쳐지나는순간이라도
      @스쳐지나는순간이라도 3 роки тому +3

      누구인가? 누가 짐의 출연을 줄이는가!?
      마구니구나 마구니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한게야
      철퇴로 꿀밤 조낸 때려줄게야

    • @이케르-y4o
      @이케르-y4o 3 роки тому +2

      원래 80회까진데 120회로 연장한거임

  • @전지적얼굴시점
    @전지적얼굴시점 3 роки тому +1

    태조왕건 보고 느낀점 당시 8세였는데
    사람은 잘해주면 잘해준 것에 내성이 생김
    0 이였던 사람한테 1을 주면 감사하다고 난리치다가 1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세 0 이였을 때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1을 추가해 2를 주게 되고 계속 3. 4.5. 6.주게 되고 6일때 에 5만 주어도 처음에 0일때 -1처럼 느껴진다는 거!!! 0일 때 1주는 왕을 원하지 6일때 5인 왕은 더이상 주지 않고 뺐는 왕이 되는 거!!인간의 욕망!!

  • @김칠봉-o6z
    @김칠봉-o6z 3 роки тому +9

    이번에 작가님 책 3권 사서 정독중인데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helookscool
    @helookscool 3 роки тому +7

    .....그냥 궁예가 호족들과의 싸움에서 밀려서 진듯. 불쌍한 사람이네. 노력한 사람이고.

  • @Cosmoplaytown
    @Cosmoplaytown 3 роки тому +1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SYW2
    @SYW2 3 роки тому +1

    궁예의 잔인무도함의 대상이 귀족들에 대한 잔인무도함이었죠.
    또 처단의 명분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인 명분이 아닌 종교를 명분삼았던 것도 반발이 많았을 원인에 하나 였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그들에게 죽었고요.
    왕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싫더라도 현실과 타협을 했으면 궁예는 고려의 태조가 되었을까나요?

  • @남해마늘
    @남해마늘 3 роки тому +3

    심용환 작가님 최고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afta-u8g
    @afta-u8g 3 роки тому +1

    조조도 끝내 하지 못한 일이죠. 호족 숙청은... 그렇다고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냐면 NO. 호족, 불교교단, 백성 모두를 등지고 미륵이 되려다 추락한 왕이죠.
    궁예가 넘어야 할 산은 많은데 자기 뜻대로 이루기 힘드니까 무리수를 둔거죠. 왕건은 궁예를 반면교사로 삼았고요. 기존 불교교단들과 적대적인 궁예와는 다르게 이들을 아우르고 고려왕실을 미륵의 자손으로 만들었죠.
    궁예는 자신이 태생적으로 짊어진 약점을 못이겼습니다. 신원 미상의 승려라는 약점을요.

  • @jayjo7624
    @jayjo7624 3 роки тому +1

    너무 재미있어요 심용환작가님 감사합니다^^

  • @raymonddodo
    @raymonddodo 3 роки тому +20

    역사스페셜에서는 나주 공격도 직접 갔다는데...

    • @브리-j3z
      @브리-j3z 3 роки тому +3

      나주 전투(903)가 아니라 덕진포 전투(912)에서 궁예가 친정했다는 기록이 선각대사비에 남아있어요.
      이 전투의 승리로 나주 일대의 불안했던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서남해의 주도권을 장악했죠.

  • @Sppmmn
    @Sppmmn 3 роки тому +9

    역사적 자료 이런거 보기 이전에 국가를 세울 정도면 엄청난 사람이었다는거지. 아무리 신라가 썩었다고는 해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국가를 세운건 대단한거.

  • @jhp7588
    @jhp7588 3 роки тому +10

    애초에 궁예는 탁월하고 훌륭한 인물임 후대에 왕건이 궁예를 폄하하면서 낮추고 정신병자로 만들어서 그렇지, 궁예는 미륵이라고 하는게 절대적으로 백성들을 살피고 피해가 없도록 조심했습니다, 사상 자체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난 귀천보다도 인간본연의 가치를 중요시했음, 그래서 저당시 심각한 불교의 부패와 폐단때문에 파계했음

    • @JH-ek5bn
      @JH-ek5bn 3 роки тому +3

      무리수 두다가 자기가 양길 통수치고 후고구려 세운거 마냥 왕건한테 통수맞은 인물이지 훌륭하진 않음

  • @지나가는사람-k6l
    @지나가는사람-k6l 3 роки тому +13

    곧 기침 소리를 낼 영상입니다

  • @Smile_loop
    @Smile_loop 3 роки тому +29

    와 거의 인천상륙작전이네 ㅋㅋㅋㅋㅋㅋ

  • @불토크
    @불토크 3 роки тому +5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기록된다

  • @doobu691
    @doobu691 3 роки тому +101

    정책도 아니고 역모죄 프레임도 아니고 마구니 드립으로 호족들을 때려 죽이고 다녔다니 창의성이 궁인슈타인이네

    • @qr9951
      @qr9951 3 роки тому +3

      ㅌㅌㅋㅋㅋㅋㅋ개울기닼ㅋㅋㅋㅋ

    • @leeon736
      @leeon736 3 роки тому +2

      궁슈타인 ㅋㅋ

    • @hkw0118
      @hkw0118 3 роки тому

      그러다보니 숙청의 정통성, 정당성, 합리성이 받쳐주지 못하게 되었죠...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일환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관심법은 패착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 @flatabs3394
    @flatabs3394 3 роки тому +4

    심용환작가님 꿀잼😆😆😆

  • @김영아-r8x
    @김영아-r8x 3 роки тому +1

    👍👍항상 잘 보고 있어요.

  • @성경식-n2d
    @성경식-n2d 3 роки тому +4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다..

    • @황미르-e9g
      @황미르-e9g 3 роки тому +1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 @gusrnr0759
    @gusrnr0759 3 роки тому

    재밌어요

  • @cheese-sm7hk
    @cheese-sm7hk 3 роки тому +6

    왜 몇몇 왕들은 초반에는 총명하다가
    권력을 손에 쥐면 맛탱이가 가는가... ㅠㅠ
    원래는 멀쩡했다가 저렇게 된 건지(?), 본성을 숨기다가 드러나게 된 건지 궁금..

    • @nojam_2699
      @nojam_2699 3 роки тому

      음...우리민족은 왕이라고 해서 다 말을 듣지 않았어요. 주체의식이 강했죠.
      부처는 모두가 부처잖아요.
      의견대립에 중재하기 어렵고 왕의 아이디어가 묵살되면 나라도 왕자리 내려오고 싶을듯.
      니네가 해라 그럼..
      그러고 내려올듯..ㅋ

    • @exellent4986
      @exellent4986 3 роки тому +1

      여자는 모든 걸 잃은 다음에 본심이 나오고, 남자는 모든 걸 쥔 다음에 본심이 나옵니다. 몇몇 권력자들이 남자이고, 최종 권력을 손에 쥐고 난 다음의 언행이 진정한 본성.

    • @nickkim3006
      @nickkim3006 3 роки тому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얘기를 당연히 안 좋게 지어내거나 과장하겠죠. 그래야 반란을 일으킨 본인들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서 왜곡과 부풀림은 기본입니다.

    • @kk-di2qh
      @kk-di2qh 2 роки тому

      @@nickkim3006 그렇다면 궁예가 성장하던 초기 영웅담도 승자인 고려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니 왜곡되고 부풀린 걸수도 있겠네요ㅋㅋ

  • @하리멤버실버
    @하리멤버실버 3 роки тому +1

    광고가 넘많아요 재밌는데

  • @바키-d7f
    @바키-d7f 3 роки тому

    와 완전 유익해

  • @박소정-r1d
    @박소정-r1d 3 роки тому +5

    궁예는 드라마에서는 기침하는 신하를 마구니로 몰려 철퇴로 때려죽인거 나온다,궁예역이면 김영철 배우가 떠오른다

  • @AJ-vm3xh
    @AJ-vm3xh 3 роки тому +10

    고려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양규 장군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노빠꾸 상남자...

    • @삶은배움
      @삶은배움 3 роки тому +1

      오 노빠꾸 상남자
      멋진데 기록이 많지가않다고...ㅜㅜㅜ

  • @tube-yx6qz
    @tube-yx6qz 3 роки тому +12

    태조왕건 드라마에서 왕건 대사는 기억안나는데 궁예만 생각남

  • @띠로링-p1c
    @띠로링-p1c 3 роки тому +8

    궁예는 요즘으로 말하면 사이비 교주나 목사라고 보면 될듯. 본인을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 @HappyUnderBoss
    @HappyUnderBoss 3 роки тому +3

    초심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에 감사드립니다~

  • @wenmi7786
    @wenmi7786 3 роки тому +1

    나주쪽도 궁예가 개입했었다는 비석있다고 본거같은데
    자료가 너무 없네요

  • @promas7985
    @promas7985 3 роки тому +10

    초기엔 굉장히 잘했다고 알고잇는데 그놈의 미륵..

    • @msk01012
      @msk01012 3 роки тому +6

      역사조 승자의 기록이라 궁예가 저만큼 나쁜놈 아닐 가능성도 크지

  • @오현승-o8h
    @오현승-o8h 3 роки тому +4

    궁예 뜻은 이룰것이나 왕건한태 다물려주고 떠난 전무후무한 후고구려황제 궁예

  • @오리알-n7f
    @오리알-n7f 3 роки тому +1

    궁예는 폭군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왕권파 VS 호족파 세력경쟁에서 패해서 권력을 잃은것 정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호족파의 수장인 왕건 세력이 정치적 반대파인 궁예에 대한 좋게 생각했을리 만무하구요.
    어쨋든 왕건이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반역이 아니란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궁예에 대한 역사기록에 더더욱 악의적인 덧칠을 해야했겟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걸 감안한다면, 궁예는 생각보단 괜찮은 왕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지

    • @kk-di2qh
      @kk-di2qh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궁예 성장기의 영웅스러운 모습들도 결국 고려시대에 쓰여진 승자의 기록이니 왜곡된 것일 수도 있겠군요? 실제로는 별거 아닌 놈이었을 수도..

  • @siasu2920
    @siasu2920 3 роки тому +13

    사딸라!!!!

  • @마법망토
    @마법망토 3 роки тому +1

    꿀잼

  • @LCJ0609
    @LCJ0609 3 роки тому +25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 @콩스버그
    @콩스버그 3 роки тому +1

    왕건이가 천하에 죽일놈일지 누가아냐
    이 모든게 승자의 기록뿐인걸

  • @lv.1690
    @lv.1690 3 роки тому +4

    아우님 오셨는가

  • @zzackfot
    @zzackfot 3 роки тому +4

    왕건에의한 조작이 있지않을까요?결국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깐요

    • @행복할꺼야-j6p
      @행복할꺼야-j6p 3 роки тому

      그러니까 조작이니 팩트니 이런거 따질게 아니지요.단지 몇년전일도 조작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중요한건 각자 색안경을 벗을생각이 없다는게 중한건데요.인공지능이라서 색안경이 어느시점에서 실행되는지도 모르니까 답답하네요.

  • @유동규-i5w
    @유동규-i5w 3 роки тому

    그 동안 궁예를 저평가 했는데... 궁예는 어찌보면 오다 노부나가 같은 인물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 밑에서 정권 탈취한 왕건은 아케치 미쓰히데 같기도 하고요..

  • @논스톱논스톱
    @논스톱논스톱 3 роки тому +2

    종교적 권위로 절대왕권을 추구하다가 그 숙청정도가 심해져서 몰락한 영웅.

  • @kk-di2qh
    @kk-di2qh 3 роки тому +1

    미친 폭군으로 묘사되는 궁예를 보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 운운하는 사람들이 웃긴게, 정작 궁예 초창기의 인망있고 신화적이며 영웅적인 모습 또한 동일한 고려시대 기록물에서 나온 얘기라는 걸 잊고 있다는 것임ㅋ 그렇다면 궁예 초창기의 영웅적인 모습들도 "궁예가 처음에는 저렇게 위대한 인물이라 따랐는데 알고 보니 또라이라서 내쫓아버렸다"고 미화했었던 것일 수 있지 않은가? 왜 폭군으로서의 궁예는 못믿으면서 인덕있는 영웅으로서의 궁예는 믿는 것인지..ㅋ 게다가 모택동이나 폴포트 같이 증거가 명백한 인류사의 대학살자들도 집권하기 이전에는 능력 있고 인망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았지. 특히 수많은 학살극을 저지른 제3세계 독재자들 중에서도 젊은 시절에는 독립투사거나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투신했던 인물들이 흔함.

  • @Snowflake_tv
    @Snowflake_tv 3 роки тому

    궁예가 불법공부를 더 해서 평정심만 잘 지켯어도 ㅠㅠ 한반도 통일햇겟다 ㅠㅠ 약간 정치력이 부족햇던듯 해요.

  • @랑슬로Lancelotdulac
    @랑슬로Lancelotdulac 3 роки тому +4

    역사는 승자의기록

  • @seungheelee9646
    @seungheelee9646 3 роки тому +1

    견훤도 호족 아자개의 아들. 궁예도 신라의왕자 대조영도 아버지 걸걸중상이 고구려 유민의 지도자였음. 셋 모두 바닥부터 올라왔다고 보긴 좀.

  • @keumsdong
    @keumsdong 3 роки тому +1

    태조왕건 200회 다 봤는뎅
    꿀잼

  • @user-gn2il2tm5t
    @user-gn2il2tm5t 3 роки тому +2

    심용환 작가님 볼때마다 발전된 윤종신씨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듬................

  • @Mjs-im3qz
    @Mjs-im3qz 3 роки тому +2

    주원장 같으면 관심법 그딴거 안쓰고
    문자옥이니 아니면 말한마디 잘못했다고
    반역죄로 걸어서 죄다 죽였을듯
    아 물론 통일할때까지 후빨해주다가
    사냥개삶듯이 숙청!
    실제로도 주원장은 그렇게 했고

  • @호두구속
    @호두구속 Рік тому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라를 세운 인물 세명중에 대조영을 꼽으셨는데 대조영이 왜 아무것도 없는 인물인가요? 애초에 아버지 대걸중상도 군벌 세력이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 @jiabela9274
    @jiabela9274 3 роки тому

    설민석이후 역사얘기하는 스토리 텔링가를 믿을수가 없다

  • @헤_헷
    @헤_헷 3 роки тому +13

    누구인가 ? 누가 니코니코 소리를 내었어!

  • @빡빡이-b7v
    @빡빡이-b7v 3 роки тому

    오오

  • @heesuryu9983
    @heesuryu9983 3 роки тому +1

    대조영의 발해는 국명이 발해가
    아니라 고려입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당으로부터 유민을
    끌고 탈출해 세운나라, 고려.
    그런데, 중국사서에서 이 나라를 발해라고 부릅니다.
    전기 고구려(삼국시대),
    후기 고구려(남북국시대),
    고려(후삼국 통일),
    조선,
    현대로 이어집니다.
    5천년의 역사에서 거의 4,500년을
    고려라고 불리웠으므로 우리나라는
    Korea가 된 것입니다.

  • @duly2394
    @duly2394 3 роки тому

    궁예! 처음엔 그도 의인 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맛 본 그는 악인으로 변하였다.
    현대의 정치인들 역시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에서 정치에 입문한다, 그러나 권력을 맛본 후
    짐승이 되어간다. 물려 죽지 않으려면 물어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왕국이 이 땅을 통치 할 때 방백들은 백성들에게 폭풍우를 가려주는 은신처가 되어 공의로 다스릴 것이다.

  • @이승진-z2h
    @이승진-z2h 3 роки тому +2

    승자의기록이라궁예가 나쁘게나왔지만 사
    만일궁예가 승리했더라 왕건이아주나쁜놈으로기록됬겠지

  • @라이키-g1t
    @라이키-g1t 3 роки тому +4

    야메로 배운역사 강의보다 전문적인 역사강사 한테 들어야 한다

  • @녕안-v9y
    @녕안-v9y 3 роки тому

    대조영 귀족 출신 아닌가요?

  • @무명작가의인생강의
    @무명작가의인생강의 3 роки тому +1

    관심법으로 대동단결

  • @김여름-i5q
    @김여름-i5q 3 роки тому +3

    허허 아우 오셨는가?

  • @haetae__
    @haetae__ 3 роки тому +2

    다크나이트 포지션같다
    호족을 죽였다고한거보니까

  • @유튜-o7j
    @유튜-o7j 3 роки тому +1

    법을 만들고 계정해야지폭력은 정당화될수없다

  • @자세히보기-c4r
    @자세히보기-c4r 3 роки тому +3

    스스로를 신격화 한 왕이나 권력자들은 결국 죽더라 교만이 넘쳐서그런가..

  • @strongdady0706kyh
    @strongdady0706kyh Рік тому

    궁예 활 궁자 후손혹은 후예 즉활을 잘쏘는 후예 실제 그림에도 궁예가 쏜 화살이 정중앙에 꽂히고 한발 더 쏴 똑같이 다시 정중앙에 정확히 꽂혔다 이는 궁예가 진정한 최고의 궁수이자 장군이며 태봉주란 뜻이며 동시에 위엄이다

  • @jayprobio9593
    @jayprobio9593 3 роки тому +9

    시간 순삭...

  • @sovereigntylux
    @sovereigntylux 3 роки тому

    왕건 최고 ㅇㅅㅇ

  • @wingxxxg-01w8
    @wingxxxg-01w8 3 роки тому +25

    궁예 최수종이 죽인 형
    견훤 최수종이 죽이고싶어했던 형
    대조영 최수종 본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ㅎㅎㅎㅎㅎㅎㅋㅋㅋㅋㅋㅎㅎㅎㅎ

  • @012Soobin
    @012Soobin 3 роки тому +3

    사딸라~~

  • @xingkey
    @xingkey 3 роки тому +10

    견훤은 아버지가 호족이고, 대조영은 고구려 장군이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라를 세웠다고 하기에는...

    • @taeyounghan80
      @taeyounghan80 3 роки тому

      저도 이 말을 하고 싶었음.

    • @딱밤-p1k
      @딱밤-p1k 3 роки тому

      중국 얘기지만 한고조 유방이 진짜 맨땅에서 ..

    • @cip8771
      @cip8771 3 роки тому +1

      주원장

    • @raymonddodo
      @raymonddodo 3 роки тому +2

      견훤은 어렸을때부터 아버지랑 완전 원수 져서 혼자서 신라에서 군인으로 컸고, 대조영이 고구려 장군출신이라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음..

    • @xingkey
      @xingkey 3 роки тому

      @@raymonddodo 한국 측 기록인 《삼국유사》에 인용된 《신라고기》와[3]《제왕운기》에서는 대조영을 고구려 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4] 신라고기에서 고구려 구장 조영은 성이 대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 @nojam_2699
    @nojam_2699 3 роки тому

    이빨이 나와 있는 태아가 있어요. 예정일보다 늦게 태어나면 그렇게 되려나?

  • @vv-yz4wc
    @vv-yz4wc 3 роки тому +3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궁예도 상당부분 왜곡 되었을듯

    • @kk-di2qh
      @kk-di2qh 2 роки тому

      이를테면 궁예 초기의 성공담도 승자인 고려때의 기록이니 왜곡되어 부풀려진 것일 수도 있겠군요

  • @cls133al2
    @cls133al2 3 роки тому

    저때 신라는 저렇게 병력모으고 뭉치는 세력(후백제,양길,궁예)을 막을 힘이없었나요??

    • @이케르-y4o
      @이케르-y4o 3 роки тому +1

      신라말기엔 전국 각지에서 민란 같은게 많이 일어나서 지방을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었음

  • @RATOY9999
    @RATOY9999 3 роки тому

    한줄요약 : 관심법(물리)

  • @김영진-u8h
    @김영진-u8h 3 роки тому +1

    궁예 기침 소리 냈다고 실제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 @독도는우리땅-k5q
    @독도는우리땅-k5q 3 роки тому

    궁예하면 이제는 배우 김영철님 생각이남.................

  • @아리아-j4u
    @아리아-j4u 3 роки тому +3

    전쟁하느라 원한가진자들도 많을거고 나라를 안정화 해야기에 죽일놈들도 많을거고 깨끗하게 평정하고 그 죄를 않고가야 안정되게 나라를 운영할수 있겠지 왕건이 꿀빨았다 보면될까

  • @youngrockchoi8027
    @youngrockchoi8027 3 роки тому +1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