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분노를 소름 돋게 잘 표현 한 것 같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한편의 현실의 애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바 갑질, 여행, 햇빛 조차 들어오지 않는 서울의 원룸, 주술적인 자기위안?, 실천하지 못하는 꿈, 집안 사정, 이용하려는 사람들(엄마), 주연을 제외한 인간관계가 없는것, 소한마리와 빚, 서울 아파트 안사고 목축업하다 망함, 성형, 대마와 아버지의 판결, 벤의집은 경찰차가 순찰을 하고 종수의 비닐하우스는 개가 짖는 이 장면들을 보고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보다 공감할 법한 장면이 많이들 나와서요. 저도 포함해서요. 감독은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다 말했습니다. 과거의 분노는 분명하고 알기 쉬웠지만 지금 시대의 분노는 굉장히 미스테리 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가 무엇하나 완결되어진 것 없이 여지를 남겨두고 만든 것 같습니다. 이영화를 보면서 이 시대를 보았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간적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의 분노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옛날 처럼 단순하게 벤을 죽여야 할까요? 해미의 방에서 소설을쓰면서 자위를 할까요? 저 분노를 표현 할 수있는 방법이 있긴 할까요??
벤은 그레이트 헝거가 아닌 거 같아요. 그레이트헝거는 안배고픈 사람이 아니라 배고픔을 초월한 사람이잖아요 벤은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부자라 채울 배고픔이 없어서 허망하게 흥미나 재미를 추구하는 것처럼보였어요. 종수한테 너무 진지하다고 그냥 가슴뛰는베이스를 찾으라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진지함은 그레이트헝거들의 모습이죠
그 벤이 혜미는 가진게 없다는말 기억하시나요 돈도 없고 친구도 없다.. 혜미는 리틀헝거인데 그레이트 헝거가 되려하고 , 종수와 벤이 그레이트 헝거 같네요 . 평범하게 살던 종수는 혜미를 만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혜미를 만나게 된 후 부터 혜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갈망하고 벤 과 혜미 종수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아나가려고하죠. 그리고 종수는 벤을 죽이고 그레이트헝거로 거듭나는거 같습니다
리뷰를 보면서... 라이너님께서 그레이트 헝거의 뜻을 잘못 이해 하신 거 같습니다. 리틀헝거는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이고 그레이트헝거는 삶의 목적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벤을 그레이트 헝거라고 말씀하셔서 리뷰를 보는 내내 조금 불편했습니다. 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직접 못해서 댓글이 어떨줄 모르지만 ... 이영화에서는 진정한 그레이트 헝거가 등장하지 않을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그레이트 헝거가 등장했다면 ... 이 작품은 걸작이 될 수 있었겠지요.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허망함과 약하게나마 있던 분노가 리뷰를 보면서 더욱 또렷하게 느껴지는거 같네요. 의 첫 느낌은 허무와 절망입니다. 혜미의 몸짓도, 종수의 분노도, 벤의 비웃음도 모두 라이너님의 단어대로 '얕게'만 느껴졌거든요. 종수와 혜미, 벤이 보여주는 행동과 그들이 보여주는 시선들이 너무나도 노골적이었고 그 결과는 영화 내내 암시하듯 비극으로 이어졌어요. 라이너님의 말대로 혜미는 "리틀 헝거"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혜미가 옷을 벗고 홀린 듯 춤을 추는 장면처럼요. 하지만 혜미도 자신의 그러한 몸짓이 발버둥임을 알고 춤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요. 벤의 친구들 앞에서 혜미가 열심히 추던 춤은 참으로 슬프고도 부끄러웠어요. 스크린을 통해 보고있는 나 자신도 몸부림의 끝이 희망이 아님을 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거 같아요. 하지만 영화에서 절망과 허무는 종수와 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져요. 비닐 하우스를 태워야지만 베이스(자극)를 느끼는 벤, 혜미처럼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자위'만을 하는 "리틀 헝거" 종수. 현실의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게 보여졌어요.
벤이 혜미를 죽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벤이 모아 놓은 전리품이 사람을 죽인 전리품인 여부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중요한 점은 종수가 실체 없는 것에 점점 빠져드는 것이죠. 종수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수수께끼 같습니다. 종수의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수수께끼의 부를 가진 게츠비가 너무 많고 종수에게 벤은 그런 수수께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에서, 젊은 우리 세대들이 느끼는 수수께끼 같은 이 세상에 대해 느낄 수 있을 분노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라는 바를 생각해 보았을 때 종수가 느끼는 분노는 수수께끼 같은 세상, 실체를 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키워나가는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얽히고 섞인 인과관계와 대상의 실채보다 눈에만 보이는 점을 따라가고 거기서 느끼는 수수께끼의 여백은 상상으로 채워나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분노를 만듭니다. 종수가 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대남방송, 요리의 의미, 소설을 쓰는 자, 서울이 반사해주는 빛만 받을 수 있는 자아, 런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 우물, 마임, 춤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리틀과 그레이트는 쉽게 생존의 여부에서 탈출했느냐 아니냐로 단순분류 하는게 맞습니다. 그레이트라고 고고한 사회봉사, 정의 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 해당되는건 아니죠. 낮은 계급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강력하게 찍어 눌러야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 된다는 믿음을 가진 기득권들도 그레이트 헝거 맞습니다. 올바로 정확히 생각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세월호 인신공양 같이 아주 볶잡한 사건도 실체를 밝힐수 있기 때문입니다.
youjung hur 여기서 세월호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논리비약이 심하십니다 감정적으로 접근한게 아니라 영화보셨나요? 그레이트 헝거는 말씀 하신대로 단순 생존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갈구하며 배고파 하는, 자아실현에 목마른 자입니다 그런면에서 가난하더라도 살해당한 여자는 자아실현을 꿈꾸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길 원했고 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살해욕구를 정기적으로 채우는 리틀 헝거에 지나지 않았다고도 볼수 있죠
@@nomadyun 오류입니다. 자아실현이라고 해서 반드시 착하고 선한 일이여야 한다는건 오류 입니다. 살인이 자아실현이 될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초일류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300명의 청소년들을 인신공양 제사를 지네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범죄라고 판단하는것도 큰 오류 입니다. 실제로 300 인신공양으로 나라가 초일류 극초일류 강대국으로 될지도 모르는 일 입니다. 그래서 인신공양하는 종교, 박그네 최태민의 영세교에 많은 판사 검사 안기부 해경 기무사 해군 수뇌부 등등이 적극적으로 국가권력에 협력 할수도 있는 거구요.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youjung hur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시네요;;; 제가 언제 인신공양 제사를 언급했는지;; 그리고 인신공양으로 일류국가를 언급하시는거 보니 그 유명한 친일애국태극열사신가봐요?? 비논리의 끝판왕이라는... 여튼 벤은 살인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도 않았기때문에 그레이트 헝거가 아니라는거고여, 해석할때 부자라서 그레이트 헝거 / 가난하면 리틀 헝거 라고 말하는것이 오류라는게 요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느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감독의 천재성이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너님이 영화를 보는 시각은 언제봐도 놀랍네요. 저도 이 영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봤고 역대급 한국영화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식의 해석 영상을 더 자세하게 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ㅎㅎ 영화리뷰 잘 봤습니다.
방금 영화보고 리뷰보는데 이건 뭐지 싶은 부분들을 다뤄주시니 참 좋네요 영화 보는 내내 하루키 소설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계속되어서 연출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담이나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주는 요소는 별로 없고 하나의 문학작품같은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중간에 비닐하우스가 불타오르고 팬티만 입은 아이가 웃는 장면에 대한 리뷰는 어딜가도 나오지 않네여 ㅠㅠ 저는 처음엔 벤이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첫번째로 태워보고 희열을 느끼며 웃는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극장을 나와 생각해보니 동수가 어머니 옷을 태우며 자신도 모르게 희열을 느꼈던것을 비닐하우스를 비유해서 꿈을 꾼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해봤고... ㅠㅠ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영 버닝이라는 영화는
저는 반대에요. 사람이 배가 부르고 유희도 지나치면 실증나거든요. 그럼 철학적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런말 있잖아요. 석가도 결국 왕자였다. 벤은 부자집이라 지식수준도 높고 배도 부르고 환희도 많이 즐겨서 오히려 인생이 배고픈거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여자들, 특히 가난한 애들을 만나면서 그런 정신적 갈증을 해결하려는거 같아요. 물론 그 방법은 잘못됬기에 해결되지 않았고요. 비닐 하우스는 그렇게 여자를 만나도 자신의 갈증이 해결되지 않아 태운다고 표현한 거 같은데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태워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여자가 아닌 종수에 손을 택했지만요.
혼자 조용히 숨죽이고 집중하며 보았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여백이 있는 영화라는데 공감합니다. 의견은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를 짧은 언어로 정리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습니다마는...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을 봅니다. 고도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각각의 인간본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삶을 제각기 살아갑니다. 각각의 표출되는 모습은 자본주의 플랫폼 위의 인간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죠. 이 체제 속에서는 종수가 현실적이며 리틀헝거이고 벤은 가진자의 여유?를 보이는 그레이트헝거라는 이분법 설명은 뭔가 부족합니다. 같은 종류의 인간 본성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계가 워낙 강렬한 반사거울인지라 스펙트럼만 달라진 것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거죠. 단순히 자본주의의 양극화 폐단 관점이라면 종수는 선한 시대적 희생양이고 벤은 게츠비식 방탕과 허위를 대변하는 것이 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이 자본주의 체제와 닮았다는 관점이라면 비록 이 불완전한 체제라 하더라도 또 하나의 본성일 수도 있는 공존의 가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공존이 이니었다면 지구상에 이렇게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계속 생존을 영위할 순 없었을테니깐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속성도 가진 공존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바라봤을 땐, 허상 속에서 허우적대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마는 존재가 과연 누구인가! 라는 역설적인 해석을 해보게 됩니다. 어차피 영화 전편을 아우르는 배경은 자본주의 틀 안에서의 계층별 인간 군상이고, 모두들 이 틀 속에서 허우적댑니다. 리틀이든 그레잇이든... 하지만 (혁명의 관점이 아닌 바에는) 공존의 관점에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인간은 계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각 개인의 표출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혜미가 어디론가 홀연 사라지는 건 적어도 자신의 허우적임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는 반면, 종수의 그것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다른 군상(벤)에게도 존재를 없에버리는 것으로 진행이 되니깐요.(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죠.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을 띠다가 행동은 타인에게칙접적인 피해를 주는 방식을 선택하니깐요. 자존심이란 것으로 포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는 확실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만 이 영화의 여백에 제 주관을 한번 그려보는 것으로 가치와 의미를 느낍니다.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첨엔 좀 지루했는데, 끝나고나선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네요.. 이창동 감독님 오아시스 이후 또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보고 나름 써봅니다.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을 말씀드립니다.. 1 영화 제목인 "태운다"의 의미 :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종수가 어머니의 옷을 태우는 것은 파괴라는 의미보다는 “지운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존재 하는 것을 파괴하여 없애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던 것처럼 지우는 행위이죠. 버닝이란 의미를 영화초반 곱창집에서 해미의 대사처럼 "죽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라는 대사로 관객에게 살짝 힌트를 주는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벤이 자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로 사이코패스같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관객에게 말해주고, 여기부터 관객으로 하여금 벤이 해미를 죽였는가? 아닌가의 혼란을 갖게 만듭니다. 종수아버지가 종수에게시켜 어머니의 옷을 태우는 것은 어머니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고, 영화 끝부분 벤과 벤의 차와 함께 피 묻은 옷까지 태우는 것 역시 살해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죠.. 영화속에서 여자를 만나는 일 말고 특별히 하는 일 없는 벤에게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은 만나는 여자를 그져 지워버리는 것이죠.. 벤이 여자들을 죽이는가?의 의문은 여기서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벤이 말하는 버려진 비닐하우스는 자기가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자기보다 못한 사회적 위치의 여자들이며, 성관계 등의 육체적인 정복까지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2달 정도 놀다가, 차버린다는 말 뜻으로 보입니다. (벤이 페이스라는 말을 하는데, 결국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내것처럼 갖고 놀다가 차버리고 잊어버리는 그 생활패턴이 대충 2달인거죠. 새로운 여자를 꼬득이며 노는 것이 결국 벤이 가슴에서 느끼는 베이스인것이고, 재미인 것이죠.) 태워주길 기다리는 주인없고, 지져분한 비닐하우스는 널리고 널린 외로운 여자의 메타포인 셈이며, 종수에게 가까운 비닐하우스는 결국 가까운 사이인 해미인것이죠. 너무 가까워서 모르는 것이라 벤은 여러번 얘기하죠.(해미는 너 종수를 좋아하는데, 넌 왜 모르냐? 라는 얘기를 벤이 하는 것이죠) 벤은 소설가 지망생인 종수가 그 메타포를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종수는 못알아듣고 실제로 집주변의 비닐하우스를 잘 살펴보겠다는 대목에서 그러세요~라면서 비웃습니다. 2. 다른 분의 해석에서.. 해미와 종수를 사회,경제현실의 문제와 그 아픔을 공유하는 젊은세대를 상징하고, 벤을 부와 사회적우위에 있는 기성세대를 상징한다는 해석한 부분을 봤는데, 전 벤도 역시 젋은세대라고 봅니다. 벤은 해미와 종수와는 다른 금수저죠. 해미가 초반 판토마임으로 먹은 귤은 성공의 열매이죠.. 빚을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흙수저인 해미에게 성공의열매란 있을 수 없으나, 성공의 열매가 없다는 것을 잊으면 시시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와의 갈등이라기 보단, 젊은세대간의 상대적 박탈과 불공평이라는 문제를 밑바탕에 깔고 이 3명의 인물들의 얘기가 시작되고 있다 봅니다. (실제로 벤역을 영어말투의 한국어를 사용하는 배우를 섭외했다는 대목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와 온갖 혜택을 누리며 사는 금수저를 정확히 나타낸다고 봤습니다.) 영화 내내 신사적인 것 같은 벤과 그 친구들은 해미를 무시의 시선위에서 팔짱끼고, 흥미꺼리로 보고 웃는 장면이 나오죠. 벤의 두 번째 흙수저 여자친구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는 그저 가벼운 흥미꺼리일 뿐이며, 벤에게는 하품나오는 얘기들이죠.. 이 대목에서 종수는 그저 그 불편한 현실을 앞에서 보면서도 아무말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청춘의 모습입니다.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역은 종수의 아버지, 종수의 어머니, 그리고 잠깐 나온 변호사(문성근)이 3명이라 봅니다. 종수의 부모님도 결국 본받을 만한 인물로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좀 성공했다는 변호사도 종수 앞에서 보이는 자세나 던지는 얘기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보고 생각하는 잣대는 결국 무슨학교나와 취직은 했냐이며, 그렇지 못하면 제구실 못하는 하찮은 취급이나하는 기성세대의 냉담함을 말해주는 장면이라 봤습니다. 무슨 소설을 쓸 건데? 의 대사에서는 역시 한심하다는 느낌을 섞어서 말하죠.. 영화를 두번째 보면서 순간 문성근씨의 연기에 놀랐습니다. 감독의 디테일한 요구까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장면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하신 것 같았습니다. 대본을 보면서 거기까지 이해했을까요? 생각을 두서없이 썼습니다. 혹시 끝까지 읽으신 분 고생하셨습니다.
리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제생각을 덧붙여 보고자 합니다 : 용산참사 사진이 걸린곳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노골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그레이트 헝거라고' 자처'하면서도 진실은 사회일원으로써 그저 속빈강정에 불과한 그들의 일상적 작태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컷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아서, 그래서 수상의 기회를 놓치고,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게 아쉬워요. .
요즘 올리신 영상을 보면 처음 시작하셨을때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고 성숙된 표현에 "아. 머물지 않고 성장하고 있구나 이 사람." 이런 기분이 드네요. 처음 모습은 까내리는 것으로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모습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부분보다는 영화의 주/객관적 해석을 알기쉽게 전달해주는 좋은 평론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라이너님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를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에게 영화가 유일한 취미이지만, 직장인이자 가장이기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제약되어 있어서 주말에 2시간짜리 영화를 한번 보는건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라이너님의 자세한 분석은 마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리고 제 취향에 맞는 영화는 어떻게든 보러가게 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라이너 님의 리뷰가 거의 쇼크 같이 다가왔네요. 리틀 헝거로서 우리의 허상을 정확히 집어내는 이창동 감독님의 숨겨진 의도를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그대로 다 들어내셔서 마치 제 마음을 들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근 리뷰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계속 부탁드립니다.
며칠전 넷플릭스 에서 뭐 보지 하다가 보게된 영화 입니다. 반주를 한잔 하며 느긋이 보고 있는데,어느새 두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더군요. 넷플릭스 에서 영화 장르에 '스릴러' 라고 나와 있는걸 보고 코웃음 지었습니다. 다 보고 '아 이영화 지인들 에게 추천해 줘야겠다' 생각이 들더군요,그러면서 혹시 라이너님이 이 영화를 리뷰 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역시네요 저와 어떤 다른 느낌 이었을까 정말 궁금 했거든요,역시 전문가 답게 보는 시각이 예리 하십니다. 리뷰 잘 보았고 앞으로 좋은 활동 기대 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를 본느낌이 아니라 소설을 읽은느낌이 나더라구요 모든걸 일일이 설명해주는것이 아니라 상징이 녹아있고 의미를 곱씹게하는느낌 잔잔한 배경음악과 소박한 영상미, 영상들간 공백이 많은것, 쌩뚱맞은것같지만 상관있는 내용들 오랜만에 좋은영화를 본거같습니다 그리고 여주인공 매력이 흘러넘치네요 ㅋㅋ
지금에서야 버닝을 봤습니다 보고 리뷰를 보니 무릎을 탁 칩니다.. 저한테는 이영화가 무척 소름돋는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제가 리틀 헝거라서 그럴까요.. 참고로 저는 혜미가 제일 와닿은거 보니 저는 중간인가 봅니다. 라이너 리뷰에서 제가 소름돋는건 이영화가 너무 친절한게 이쉽습니다. 라이너씨는 노골적이다 라고 표현하셨네요 ..
"젊은 세대의 분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워딩이 정확한지는 모르겟지만 어디선가 본 이창동감독의 버닝에 대한 말입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제일로 황당했습니다. 물론 보여주는 것, 들려주는 것은 많습니다. 실업이나, 이 시대 젊은이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건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냥 보여주는 데까지... 오히려 제가 분노를 느낀 부분은 종수-헤미-벤 사이에 존재하는 분노 였습니다. 헤미를 태워버린 벤에 대한 종수의 분노 였습니다. 제가 한명의 관객으로서 제일로 분노가 쌓였던 부분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결국 젊은 세대의 분노를 애인을 태워버린 부자에 대한 분노로 치환해버렸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찝찝합니다. 게다가 그런 분노와 그것에 대한 해소 조차도 허상일수 있다는게... '이건 다 종수의 상상속에서 이루어진 일일 수도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에서 이건 대체 뭐하자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바보가 들려주는 무의미한 이야기" 이부분에 대단한 공감을 느낍니다. 헌데 이 영화가 걸작이라? 음... 제가 영화보는 눈이 없어서 일까요? 저한텐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고, 그 젊은 세대의 분노라는 것 조차도 되게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가지 코드로 읽일수 있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겠지만, 저한테는...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그것을 근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의 영화가 훨씬 더 와닿는군요. 다시한번 이 창동 감독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냥 질문할 뿐이다" 전 이창동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뭘 물어보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혜미가 우물에 대해 언급하고 종수는 계속 우물은 없었다고 듣고.. 굉장히 가볍게 넘어갈 대화에 종수가 지나치다싶이 집착하듯 우물의 존재를 찾기에 롱테이크의 지독한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는데 혜미의 신호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네요. 뭔가 사이다 같이 시원하게 답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영화보고나서 같이 본 사람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도 지속적으로 의문이 드는 대사와 장면들이 많았었는데 다른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하면서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어요. 즐거운 리뷰감상이었습니다^^
뱁새가 황새 쫓는 공허한 얘기를 이건 공허합니다 공허하다구요라고 풀어낸 영화. 근데 영화에서 진정 벤이 그레이트 헝거였을까요? 오히려 그나마 종수가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사이에서 갈등하며 번뇌하며 한심하게 방황하는 입장이고 벤은 전형적인 리틀 헝거의 대변인 같은 인물 같은데요. 뭐 어차피 리틀 헝거이건 그레이트 헝거이건 그냥 이거 덥썩 무세요라고 감독이 던진 그닥 의미 없는 겉저리같이 보이긴했습니다만. 그레이트 헝거가 리틀 헝거들에게 던져준 공허한 개껌같은. 어차피 고약한 냉소를 즐기시는 영감님이니.
멋진 라이너님의 버닝 리뷰 잘봤습니다..해석이 정말 필요한 부분만 잘해주신듯해서 도움되었어요. 사실 이 영화를 개봉하고 바로 본 후 자세한 유튜브 리뷰등을 못봤는데 재밌네요. 왜 진작에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영화 리뷰를 찾아보지 않았는지 후회스럽네요. 뒤늦게라도 다른 리뷰들도 찾아봐야겠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많이 드는 영화네요! 이창동 감독님의 원작 이해력에 감탄합니다. 물론 원작은 읽어보지않았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몇개 읽어보았습니다. 하루키만의 색깔이 잘 묻어나는 것 같은 영화네요. 영화를 보고 이해가 잘되지않아서 리뷰를 보고 드는 생각은 벤은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가진 영화속에서 표현하는 그레이트 헝거이죠.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있는 사람 , 어릴 때부터 많은것을 가지고 자란 사람같은 사람 , 즉 부족함이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벤에게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집니다. (영화속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눈물을 흘려 보지 않았다는 장면에서 종수가 말하죠 "그럼 슬픔도 느껴본 적 없겠네요?" 그러자 벤도 눈물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슬픔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하죠. 여기서 감독이 의도한 '증거' 라는 단어가 참 소름이 돋습니다. 영화에서 대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없는 것 처럼요. 감독이 말해주는 메세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즉,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같습니다. 아니, 감정보다는 경험을 통해 무뎌졌기때문에 아직 무뎌지지 않은 새로움을 찾는 사람같습니다. 이전까지 많은 것을 해보았었기때문에 아직 찾지 못한 것을 심장이 뛰는 행위를 찾는 사람같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움을 찾는 것 같고 자신이 갖고있는것을 갈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단순한 흥미만요. 사랑은 갖고 있지 않아요. 이사람에게 감정은 많이 메말라있거든요. 그래서 벤은 해미에게 흥미를 느끼죠. 단순한 장난감이죠. 해미는 물론 그레이트 헝거인 벤에게 호감을 갖게되죠. 단순한 생각으로 포르쉐 타고 다니는 잘생긴 남자에게 호감안가는 여자가 있을까요? 어쨋든 해미도 벤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벤이 지한테 흥미가 있다고 말을 했었고, 괜찮은 사람인것같으니 계속 만나겠죠. 하지만 해미는 종서에게는 의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미는 종서를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벤이 말했죠. 셋이서 처음 술자리가 끝나고 각자 차로 가는 장면에서 해미가 종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언가의 아쉬움과 섭섭함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종서가 데려다 줬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표정? 시선도 종서에게 꽂혀있었던 것 같이 느꼈고요. 하지만 종서는 이미 벤의 포르쉐에 압도당했죠. 흔히 수컷끼리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도태된 야생동물 같이 느껴져서 한껏 풀이 죽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데려다 주고 싶어도 벤에게 해미를 맡기죠. 해미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서에게 실망해 벤을 더 자주 만났던 것 같아요. 좀 간략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해미는 살아있거나 자살했을 것 같아요. 빚쟁이들에게 쫓겨 도망갔거나 이제 자신의 삶에대해 환멸을 느껴 자살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우울증을 앓고있는 사람같아 보였어요.) 벤의 '비닐하우스' 가 여자를 뜻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벤의 '버닝'이 살인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고 벤이 2달에 한번 씩 하는 '버닝'이 진짜 말도 안되게 말하면 여자 화장시켜주고 헤어지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영화에서 나오는 '증거'가 없으니깐요. 이 증거가 종서에게는 말도 안되게 우연처럼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강력하게 말해주는데 종서는 벤의 등장이후 자신의 무능력함 무기력함을 계속 느꼈는데 해미를 지키지 못함으로써 열등감이 폭발해 사실이든 아니든 걍 벤을 죽여버리고 맙니다. 종서의 성격이나 생각은 라이너님이 말해주신 거랑 거의 의견이 동일합니다. 재밌으면서도 재미없는 보면서 뭐지? 하면서 계속 흥미를 유발하는 영화였습니다.
저 이 리뷰먼저 보고 영화봐서 너무 이해가 잘됐어요ㅎㅎㅎ넘 재밌어요 영화!! 근데 벤 화장실에 있던 화장품들은 영화에서 벤이 두번째 여자친구를 죽이기 전(짐작이지만)에 인형놀이하듯이 여자를 꾸며주는데에 사용하잖아요 이외에 어떤 부분때문에 벤 화장실에 있는 화장품들이 벤 스스로를 그루밍하는데에 사용된다고 해석되는거에요??? 궁금해요
저는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을것같은... 그냥 전 저런 류에 영화를 좋아라 하거든요~ 대중적이지 아니하고 폐쇄적인 장르를 좋아라해서...^^ 맞아요 버닝은 몇번 봐줘야 할 각이라요 어떤 영화를 보면 여러번 볼때마다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고 보이지 아니한게 보이며 나이때에 따라 20대에 봤을때와 30대에 봤을때 느낌이 또 다르게 느껴지는... 버닝은 저는 리뷰를 듣고나니 오히려 더 흥미롭게 볼수있을듯요 일부러 결말 부분에서 영상 끊었네요ㅋ~^^ 영화는 봐야하니^^ 여튼 레이디버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보고파진 영화랄까~오늘도 최고의 리뷰 감사드려요 라이너님♡ 앗!! 9점요??? 세상에나~ 당장 가야겠다~~
드디어 봤어요!!라이너님 리뷰 보고싶어서 영화보자마자 리뷰 봤네요 ㅡ 후기가 좀 안좋아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몰입도도 괜찮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ㅡ라이너님 말대로 한번보고는 이해하기 힘든거같아요~!! 그래도 라이너님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의미의 그레이트 헝거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본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종수의 모습뿐이라 생각해요. 에는 메타포보다도 영화적 맥거핀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해미의 생사여부, 고양이는 보일인가 등에 대해 집중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데 말이죠.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느끼게 된 종수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을 이창동 감독의 예술창작활동에 관한 자화상으로 봅니다.
미장센에 있어서는 이창동 영화 증 최고작. 암시와 상징들을 이용한 모호함과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매우 좋았습니다. 허나...... 결국 서사 그 자체는 너무 뻔했고 이창동 감독이 바라보는 청춘이란게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창동 감독도 이런 부분에선 그냥 아재...... 특히 캐릭터 구성하는 게 흔한 루저감성 열패감 스토리들과 다를게 없어서 쫌 그래요. 이런걸 에미넴은 랩으로 2000년도에 했는데 2018년에 와서 이런걸 하겠다고 하면 너무 구닥다리죠. 완전 클리셰 그 자체....... 청춘의 열패감을 유산자 계급 남성과 무산자 계급 남성의 대립으로 배치시키고 그 사이에 여성은 섹슈얼한 상징 기호로 쓰이다가 갈등을 위한 도구로서 (열패감 증폭을 위한 도구로서) 죽음......결국 그가 바라보는 청춘이 누구의 시각과 누구의 욕망에만 해당되는 것인지 너무나 뻔했고 이제 이런 이야기는 피로감이 오네요. 그나마 수준높은 미장센과 미스터리한 힘이 없었으면 끝까지 다 보지도 않았을것입니다. 현대사에 혹사당해 망가진 개인 (박하사탕) 과 종교적 구원과 자기분노 사이에서 망가진 개인 (밀양) 을 그려내던 이창동 감독이 청춘을 그려낼때 정작 그 안엔 청춘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상을 도식적으로 그린 부분이나, 서사가 어느 정도 식상한 점은 있을지 몰라도 그 단순하게 보이는 서사 안에 예술가로서의 지향점과 괴리, 아버지로 통해 보이는 부조리, 힘에 대한 동경과 증오,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서와 내러티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종국에 치닫은 종수의 감정엔 단순히 벤에 대한 열등감과 증오만이 아닌 복합적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단 것만 봐도 클리셰 같은 종수의 내면은 매우 입체적이고 강렬하게 그려졌다고 느끼거든요.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전 20대고 저런 애들 굉장히 많아요. 전 벤도 유아인도 아닌 중간적인 입장에서 저 둘과 같은 친구들을 꽤 봤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그런 두 계급의 남자를 정말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가 약점이죠. 두 남자의 감정선을 이끌어내기엔 여자만큼 좋은 소재가 없습니다. 여자 앞에서 보다 남자들이 자존심 세울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식상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식상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흐름 자체가 굉장히 흡입력 있었어요. 이렇게 몰입해본건 정말 오랫만인 것 같습니다. 끝나고는 엄청난 여운이 남았어요. 벤은.. 그레이트 헝거라고 단정짓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레이트 헝거를 무언가를 초월한 존재, 신성한 존재로만 본다면 그는 그레이트 헝거가 아닙니다. 배부르고 심심한 돼지입니다. 그러나 배고픔이 아닌 영혼의 허기를 찾기 위해 버둥거리는 존재를 그레이트 헝거로 정의한다면 그는 그레이트헝거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나요? 육체의 배고픔을 벗어나려는 자를 리틀헝거라 하고 영혼의 배고픔에서 버둥거리는 자를 그레이트 헝거라고 한다면요. 게다가 벤은 영혼도 그렇게 배고파보이진 않아요. 그냥 그는 좀 모든게 별 의미가 없고 간절하지 않고 좀 재미있는 걸 찾고 싶어하는듯. 아참 그리고 전 노인을 위한 나라가 뭐가 그렇게 잘 만들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건, 이건 정말 수학의 답처럼 명확합니다. 이것이 수작의 범위에 속해있다는것이요.
저는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시계와 고양이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물증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시계는 선물이었을 수 있고 고양이도 우연히 보일이라는 이름에 반응했을 수 있는 애매함이 있지만 많은 대사들에서 벤의 살인을 보여줬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우선 벤과 첫 식사장면에서 벤은 울어본 기억이 없고 슬픔또한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벤이 죽을때조차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고통스러워만 하던 모습을 보면 허세가 아니라 진짜였을것 같습니다 다시말하자면 사이코패스죠 벤이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만들어 자신이 먹는, 마치 신에게 보내는 제물과 같다고 하죠 그리고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울때 판단을 하는것이 아니라 받아들인다 홍수가 피해를 줄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라며 피해자들에 대해 무관심 합니다 다시말해 살인을 할 때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냥 너는 나에대한 제물이니 받아들여라 이렇게 봤습니다 벤이 두번째 여자를 화장시켜 주는것은 음식을 만드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종수가 해미에게 창녀같다고 말했을때 해미는 종수에게 버려졌습니다 다시말해 버려진 해미가 버려진 비닐하우스가 됐다고 봤죠 그리고 벤이 해미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했는데 이것은 내가 죽여서(태워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라는 말장난 아닌 말장난 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외에도 상황이 아니라 대사와 표현으로만 은연중에 벤이 해미를 죽였다 라고 말했다는게 많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많아서 오히려 역으로 아닐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저도 처음봤을때 벤이 죽였을거라 생각되었는데 두번째보니 종수가 이상해보이더라구요. 종수가 혜미와 연락이 끊긴 후 벤과 비닐하우스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렇고 경찰에 신고하는 기본적인 행동도 하지않고 추측끝에 확신하고 마지막 행동을 하는걸보니 오히려 종수한테 문제가 있는것처럼 보이더군요. 벤이 혜미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종수는 벤을 죽였을것같습니다.
저도 처음에 벤이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진짜 벤이 죽였다면 왜 마지막에 굳이 종수한테 해미랑 같이왔다면서요? 해미는 어디있어요?라고 연기할까요? 진짜 자기가 죽였다면 종수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았을텐데 그렇게 해맑게 무방비로 종수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거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벤이 칼맞으면서 종수를 꽉 껴안는 모습은 벤이 종수를 좋아했던거같아요... 걍 제 추측이지만 ㅋㅋ
방금 버닝 보고와서 라이너님 리뷰를 봤습니다. 어느정도는 동의하는데 한가지는 동의가 안되네요. 벤과 벤의 친구들이 그레이트 헝거라는 부분이요. 해미의 말에 따르면 리틀 헝거는 굶주리는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를 찾아헤매는,큰 의미로 굶주리는 사람 입니다. 즉 그레이트 헝거는 구도자나 수행자같은 사람이고 해미가 춤을 출때 하는 대사를 들어보면 리틀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리틀헝거가 춤을 추면서 그레이트 헝거로 변화하죠. 저는 불교에서 범부가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벤과 벤의 친구들이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들 일까요? 전혀 아니죠. 그레이트 헝거에 해당하는 인물은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데 이 영화를 리틀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의 대립으로 보는건 잘못된 해석이 아닐까하네요 이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계속 메타포만 던지고 확실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관객들 마다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점은 곡성과 비슷하지만 곡성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어느정도 해석이 나왔지만 버닝은... 정확한 해석이라는 게 없이 관객들이 각자 자기만의 해석과 결말을 갖게 될것같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영화일수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슨말을 하고싶어서 만든건지 알수없는 애매한 영화가 될것같다는게 아쉽네요. 저는 재미있게 봤지만, 이 영화를 주변에 보라고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게 예술영화로서 버닝의 한계가 아닐까합니다. 좋은 영화지만,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수 없는 영화... 사실 친구와 같이 봤는데 친구가 이게 뭐냐면서 욕하길래 영화얘기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ㅠㅠ
그리고 제가 라이너님의 리뷰에 본의아니게 태클을 거는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로 보입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해미가 죽었나 살았나, 벤이 살인마인가 아닌가에 신경을 쓰면서 영화를 보는데 영화는 거기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고 해미가 죽었을것같은 떡밥만 실컷 던지다가 끝나버리니까 스릴러인줄 알고 본 관객들은 빡치는거고, 라이너님처럼 계급대 계급의 대립(의 메타포)로 해석한 사람들에게는 갓영화가 되는건데요. 사실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고 싶었다면 영화를 설국열차처럼 알기 쉽게 만들었으면 됐을텐데요. 그러면 관객들에게 잘못 전달될 일도 없고 욕먹을 일도 없죠. 그래서 제 생각에 이 영화는 그냥 연출이 좀 특이한 스릴러 영화 아닐까 싶은겁니다. 기득권의 상징이라기엔 벤이 너무 허무하게 당하는것도 좀 그렇고... 라이너님의 해석이 틀렸다는건 아니고요. 라이너님 리뷰가 맞을수도 있지만 좀 너무 나간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게... 감독님이 그런얘기를 하고싶으셨다면 굳이 이런 장르로 영화를 만드셨을까 싶어서요. 암튼 버닝 보고와서 영화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은데 대화상대가 없어서 ㅠㅠ 라이너님 리뷰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하고요 리뷰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
라이너님이 버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업로드될때까지 계속 기다렸습니다! 언변이 부족해서 어떻게 표현해야될지 몰랐는데 저랑 비슷한 생각이신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네요.. 시간이 되신다면 영화 안에 내포되고있는 복선이나 메타포에 대해서도 해주셨음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리뷰가 짧아서 아쉽습니다 ㅠㅠ
첫화에 보자마자 little hunger나 great hunger보단 '아프리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흔히들 아프리카가 인간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아담과 이브가 있던곳이 아닐까 싶었는데, 초반에 종수와 해미이 두 주인공이 몸을 쉽게 섞는 장면을 보면서 '순수한 본능'을 반사된 빛을 보여줌으로서 순수한 관계를 뜻하는것 같더군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뒤 남자 벤이란 사람과 함께온 해미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부)와 그녀의 (great hunger)허상이 만나는 것을 통해 사탄에 뀀에 넘어간 이브의 모습이 대비되어 나타나는데, 벤이 손금을 봐주면서 돌을 가져와 '너의 걱정인 돌을 빼냈다'라 했을때 해미는 '이걸 위해서 가져온거에요?' 그리고 벤은 '재미 있다면 이런것 즘이야'라는 말을 하죠.. 하지만 그전에 손금을 봐주면서 '종수'를 의미하는 심볼로 돌을 가져왔다는 것을 빛추어 볼때 '벤'은 결코 '재미만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말인 즉슨, 벤은 무엇가 모종에 의미로서 여자를 꼬신다는 것을 알수 있죠. 종수와 벤이 와인을 하면서 '벤은 2달에 한번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라는 말을 합니다. 해미는 돈을 모아서 아프리카 여행을 갈만큼 계획을 세웠던 아이인데, 어머니 말씀이 '카드빛 안값으면 집에 올생각 하지마라'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벤이 두번째 여성과 만날때 일때문에 늦게 온 여성에게 '너가 늦었으니 우리가 차마실 시간은 없겠는걸?'이라고 말합니다. 해미는 직업 특성상 하루종일 일하는 직업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벤과 있으면서 어떻게 버텼을까요? 해미는 왜 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벤이 그곳을 치웟을까요 고양이는? 와인을 마신후 종수는 해미에게 '너 창녀같아' 라는 말을 합니다. 종수 또한 금단의 과실을 먹은 것이겠죠.. 아마도 질투? "아담과 이브가 과실을 먹을뒤 신이 왔을때 아담이 급히 몸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수치심으로 인해서 신 앞에 발가벗은 몸이 부끄러웠던 거죠." 그뒤에 해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벤이 그녀를 죽였는가? 한다면, 벤이 본인에 직업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담 무엇일까요? 두달에 한번 여자를 죽이는 싸이코? 아니죠. 누군가를 타락시켜 팔아버리는 사탄 이 아닐까요? 무엇을 태웠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 나도 great hunger 가 되기위해서 높은 질의 삶에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것은 '돈'이죠.. 그리고 그들은 돈에 노예로서 몸을 잃을 것인거 같아요.. 아마도 팔려갔겠죠..? 그 예로서, 벤이 두번째 여성에게 화장을 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이기 전에 바른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거기다 종수가 '해미가 할말 있데요' 라고 했을때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 하고 벤이 찾아오게 됩니다. 도망갔나? 생각해 온것이 아닐까 싶은데.. 유아인이 품은 과실 '질투와 분노'의 칼이 벤에 몸속에 박혀 최후를 맞이하죠.. 그리고 유아인은 자신의 모든 옷을 벗어 자신의 차로 돌아갑니다. 마치 태초에 인간으로, 과실을 먹기전 아담의 모습처럼? 뭐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저는 아담과 이브가 제일 많이 떠오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닐하우스를 두달에 한번꼴로 태우는 페이스가 딱 좋다고 했는데 마치 그건 두달에 한번씩 살인을 저지른다는 얘기 같기도 했습니다. 벤이 연쇄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생각. 화장실 서랍안의 악세서리 역시 자신이 죽인 여자들의 악세서리일거라는. 이런저런 추측들과 추정들을 관객에게 맡겼으니 해석은 정말 다양할거라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너무 자주 나오는 롱테이크 씬에선 답답함이 느껴지더군요. 영화 자체는 정말 재미있게 잘 봤구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어제 영화끝나고 스타라이브토크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도모르게 박수를 치고싶었습니다. 이창동 감독님은 사실 해설과 해석을 하면 안되는 그 자체로의 영화라고 합니다. 마치 영화라는건 스크린에 비춰진 빛의 파동일뿐 실존하는 것이 아니니 그저 실제가 없다는 것을 잊으라는듯이 말이죠... 여러가지 열린결말 해석의 여지를 주고 관객들에게 생각을 하게함으로써 내안의 갈증과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리뷰가 너무 공감이 갑니다. 저도 영화 내내 불편하고 가슴이 아프고 마치 종수가 나인듯 몰입하여 내안의 열등감도 보이는 듯 했습니다. 심지어 잔인한 살인장면에서는 약간의 통쾌함까지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리틀헝거에 지나지 않은 종수의 발언들 “옷을 아무데서나 벗고 그래, 그런건 창녀들이나...” 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 아팠고, 군중속의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끼는 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고 할수는 없네요.. 누구나 느낄수 있는 감정들이면서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루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란 것을 좋아하고 잘 모르지만, 영화 보는 내내 유아인이 뛰는 장면이나, 감정의 파동이 일어날때 나오는 주술적인음악?(개인적느낌) 은 해미가 바라는 아프리카의 그레이트 헝거 혹은 리틀헝거를 떠올릴수 있게하는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종수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면서 해미는 없지만 해미가 있는것처럼 말이죠.... 개인적인의견으로 사실 사회 계급적으로 본다면 극중인물을 리틀 혹은 그레이트 헝거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봅니다만 그건 그렇게 쉽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산타워에서 우연히 반사되어 온 빛처럼(우연히 해미처럼 다가온) 종수의 한가닥 빛일 수도 있었던 해미가, 종수에게, 종수가 보지못한 세계(아프리카)를 지속적으로 노출(헝거들의 이야기)하게되고, 벤이라는 없던 존재를 존재하게 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지하고 살진 않았지만 불편한 시스템과 체제가 수면위로 드러나 보이게 되고 공감을 하며 일련의 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노나 공허, 좌절, 쾌락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 좀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고 그것엔 옳고그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오히려 옳고그름을 나눠버리는 순간 우리는 자본주의체제에 순응한나머지, 천민자본주의마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배고프고 가난하지만 꿈이 많은 자, 삶의 의미를 찾는 자, 꿈을 이루고 삶의 의미를 찾지만 공허한 자. 누가 옳고 글렀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간극을 표현하고자 하셧다고합니다. 내 옆에 내 또래가 모는 외제차가 굴러가는데 그 주인과 나에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만 느끼는 감정들같은 것... “한국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아” 등의 대사를 보아 소설이라는 꿈으로 그레이트헝거일수도 있는 종수가 여러 대사와 행동들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한계와 꿈과 소망이란 것은 대체, 마치 어떤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역으로 던지는 것 같아 너무 잔인하고 가슴이 시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 영화 너무 재미있었고 리뷰 너무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츠비가 너무많다는 말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소설가 황정은씨는 야만적인 앨리스라는 소설의 서두에서 자신이 이 소설을 쓰게된 동기를 말해요. 동경에 갔는데, 하이힐을 신은 여자노숙인이 시내를 걷고있었답니다. 근데 그 모습이 걸을때마다 너무 휘청거려서 그 모습속에서 세상엔 두발로 서기위해서도 에너지를 들여야만하는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합니다. 치장하고 화장하는데 더 많은노력이 필요한곳이 유교문화-체면문화가 곁들여진 한국사회아닐까해요.
난해하거나 문학적이거나 그 무엇일지언정 관객과 공감을 얻는게 먼저라 생각드네요 밀양처럼 공감이 되거나 테넷처럼 어려워도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거나 버닝은 그냥 "공감하라!!"를 강요받는 느낌입니다 어렵더라도 혹은 그 해석을 알아가더라도 그다지 즐거운 요소가 없습니다 감독과 소수의 리뷰어들만 즐거웠을뿐 ,,,
이 시대의 분노를 소름 돋게 잘 표현 한 것 같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한편의 현실의 애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바 갑질, 여행, 햇빛 조차 들어오지 않는 서울의 원룸, 주술적인 자기위안?, 실천하지 못하는 꿈, 집안 사정, 이용하려는 사람들(엄마), 주연을 제외한 인간관계가 없는것, 소한마리와 빚, 서울 아파트 안사고 목축업하다 망함, 성형, 대마와 아버지의 판결, 벤의집은 경찰차가 순찰을 하고 종수의 비닐하우스는 개가 짖는
이 장면들을 보고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보다 공감할 법한 장면이 많이들 나와서요. 저도 포함해서요.
감독은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다 말했습니다.
과거의 분노는 분명하고 알기 쉬웠지만 지금 시대의 분노는 굉장히 미스테리 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가 무엇하나 완결되어진 것 없이 여지를 남겨두고 만든 것 같습니다.
이영화를 보면서 이 시대를 보았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간적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의 분노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옛날 처럼 단순하게 벤을 죽여야 할까요?
해미의 방에서 소설을쓰면서 자위를 할까요?
저 분노를 표현 할 수있는 방법이 있긴 할까요??
아... 너무 공감되는 감상평입니다~
감상평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너무 잘 읽었어요.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요...🥲
벤은 그레이트 헝거가 아닌 거 같아요. 그레이트헝거는 안배고픈 사람이 아니라 배고픔을 초월한 사람이잖아요 벤은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부자라 채울 배고픔이 없어서 허망하게 흥미나 재미를 추구하는 것처럼보였어요. 종수한테 너무 진지하다고 그냥 가슴뛰는베이스를 찾으라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진지함은 그레이트헝거들의 모습이죠
동의해요
그레이트 헝거 일수도 있죠
그래서 자기를 재물삼아서 종수한테 바친거지
나도 똑같은 생각했음 그러이트헝거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벤이 혜미는 가진게 없다는말 기억하시나요
돈도 없고 친구도 없다.. 혜미는 리틀헝거인데 그레이트 헝거가 되려하고 , 종수와 벤이 그레이트 헝거 같네요 . 평범하게 살던 종수는 혜미를 만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혜미를 만나게 된 후 부터 혜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갈망하고 벤 과 혜미 종수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아나가려고하죠. 그리고 종수는 벤을 죽이고 그레이트헝거로 거듭나는거 같습니다
리뷰를 보면서... 라이너님께서 그레이트 헝거의 뜻을 잘못 이해 하신 거 같습니다. 리틀헝거는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이고 그레이트헝거는 삶의 목적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벤을 그레이트 헝거라고 말씀하셔서 리뷰를 보는 내내 조금 불편했습니다. 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직접 못해서 댓글이 어떨줄 모르지만 ... 이영화에서는 진정한 그레이트 헝거가 등장하지 않을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그레이트 헝거가 등장했다면 ... 이 작품은 걸작이 될 수 있었겠지요.
벤은 그레이트 헝거가 아님. 그냥 루즈한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혜미와 같은 인간을 조물주와 같은 관점에서 보는것임. 이창동 감독의 말에 따르면 보이는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미스테리한 세상에 대한 현재의 청년들의 분노를 표현한것이라고 함.
분명 하나의 생각으로 봐달라고 했는데 너무하시네요~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허망함과 약하게나마 있던 분노가 리뷰를 보면서 더욱 또렷하게 느껴지는거 같네요.
의 첫 느낌은 허무와 절망입니다. 혜미의 몸짓도, 종수의 분노도, 벤의 비웃음도 모두 라이너님의 단어대로 '얕게'만 느껴졌거든요. 종수와 혜미, 벤이 보여주는 행동과 그들이 보여주는 시선들이 너무나도 노골적이었고 그 결과는 영화 내내 암시하듯 비극으로 이어졌어요. 라이너님의 말대로 혜미는 "리틀 헝거"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혜미가 옷을 벗고 홀린 듯 춤을 추는 장면처럼요. 하지만 혜미도 자신의 그러한 몸짓이 발버둥임을 알고 춤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요. 벤의 친구들 앞에서 혜미가 열심히 추던 춤은 참으로 슬프고도 부끄러웠어요. 스크린을 통해 보고있는 나 자신도 몸부림의 끝이 희망이 아님을 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거 같아요. 하지만 영화에서 절망과 허무는 종수와 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져요. 비닐 하우스를 태워야지만 베이스(자극)를 느끼는 벤, 혜미처럼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자위'만을 하는 "리틀 헝거" 종수. 현실의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게 보여졌어요.
영화를 이렇게 심도있게 다룬 리뷰는 처음 만나네요ㅎㅎ 그저 재밌나 재미없나로 구분하던 저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아인과 스티븐 연 그리고 전종서 님의 조합이 신선하네요 작품을 통해 자주보고싶은 배우들입니다.
좋은 영화 인건 알겠지만, 은유가 많아서 너무 어렵네요 .
벤이 혜미를 죽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벤이 모아 놓은 전리품이 사람을 죽인 전리품인 여부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중요한 점은 종수가 실체 없는 것에 점점 빠져드는 것이죠.
종수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수수께끼 같습니다.
종수의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수수께끼의 부를 가진 게츠비가 너무 많고 종수에게 벤은 그런 수수께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에서, 젊은 우리 세대들이 느끼는 수수께끼 같은 이 세상에 대해 느낄 수 있을 분노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라는 바를 생각해 보았을 때 종수가 느끼는 분노는 수수께끼 같은 세상, 실체를 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키워나가는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얽히고 섞인 인과관계와 대상의 실채보다 눈에만 보이는 점을 따라가고 거기서 느끼는 수수께끼의 여백은 상상으로 채워나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분노를 만듭니다. 종수가 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대남방송, 요리의 의미, 소설을 쓰는 자, 서울이 반사해주는 빛만 받을 수 있는 자아, 런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 우물, 마임, 춤
감사합니다 저의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깔끔한 결말을 원하는 관객들에겐 '불호'.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메세지가 있는 은유 기법 장면을 많이 활용한 영화를 좋아한다면 '호'!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그레이트 헝거의 의미는 상류층이나 단순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은 아닌거 같습니다.
리틀 헝거는 삶에 쪼들리는 사람들,
그레이트 헝거는 삶에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벤은 그저 '헝거'조차 아닌 '배불러'입니다.
콜드 맞아요 벤은 절대 그레이트 헝거가 아니에요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리틀과 그레이트는 쉽게 생존의 여부에서 탈출했느냐 아니냐로 단순분류 하는게 맞습니다. 그레이트라고 고고한 사회봉사, 정의 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 해당되는건 아니죠. 낮은 계급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강력하게 찍어 눌러야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 된다는 믿음을 가진 기득권들도 그레이트 헝거 맞습니다. 올바로 정확히 생각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세월호 인신공양 같이 아주 볶잡한 사건도 실체를 밝힐수 있기 때문입니다.
youjung hur 여기서 세월호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논리비약이 심하십니다 감정적으로 접근한게 아니라 영화보셨나요? 그레이트 헝거는 말씀 하신대로 단순 생존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갈구하며 배고파 하는, 자아실현에 목마른 자입니다
그런면에서 가난하더라도 살해당한 여자는 자아실현을 꿈꾸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길 원했고 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살해욕구를 정기적으로 채우는 리틀 헝거에 지나지 않았다고도 볼수 있죠
@@nomadyun 오류입니다. 자아실현이라고 해서 반드시 착하고 선한 일이여야 한다는건 오류 입니다. 살인이 자아실현이 될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초일류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300명의 청소년들을 인신공양 제사를 지네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범죄라고 판단하는것도 큰 오류 입니다. 실제로 300 인신공양으로 나라가 초일류 극초일류 강대국으로 될지도 모르는 일 입니다. 그래서 인신공양하는 종교, 박그네 최태민의 영세교에 많은 판사 검사 안기부 해경 기무사 해군 수뇌부 등등이 적극적으로 국가권력에 협력 할수도 있는 거구요.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youjung hur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시네요;;; 제가 언제 인신공양 제사를 언급했는지;; 그리고 인신공양으로 일류국가를 언급하시는거 보니 그 유명한 친일애국태극열사신가봐요?? 비논리의 끝판왕이라는...
여튼 벤은 살인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도 않았기때문에 그레이트 헝거가 아니라는거고여, 해석할때 부자라서 그레이트 헝거 / 가난하면 리틀 헝거 라고 말하는것이 오류라는게 요점입니다
진짜 이런 영화가 너무 재밌어.. 자유롭게 해석이 가능한 여백 많은 영화
완전 공감이요~~
저도 저도~~😆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를 잘 못 분석 하신 것 같은데요. 리틀 헝거는 '그냥 배가 고픈 사람' 그레이트 헝거는 '꿈을 꾸는, 정신적으로 배가 고픈 사람 이잖아요' 영화에서 그레이트 헝거는 혜미가 유일 한 것 아닐까요?
라이너님 리뷰를 보면서 제가 놓쳤던 부분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던 것 같네요. 특히나 종수에게는 자연광을, 벤에게는 인조광을 비쳤다는 것은 정말로 눈치채지 못했고요. 나중에 2번째로 볼 때, 이런 부분들을 다시 봐봐야 할 것 같네요!
라이너님 리뷰와 해석 잘 봤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느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감독의 천재성이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너님이 영화를 보는 시각은 언제봐도 놀랍네요. 저도 이 영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봤고 역대급 한국영화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식의 해석 영상을 더 자세하게 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ㅎㅎ 영화리뷰 잘 봤습니다.
방금 영화보고 와서 바로 라이너님 리뷰 틀었는데 너무너무 감탄했고 영화 이해가 조금씩 되는 것 같아 좋았어요. 너무 감사드려요. 라이브에서 책을 많이 읽으신다고 하셨는데 이런 해석을 하는데에는 독서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전 공감이 가서 좋았어요.
20대만 느낄 수 있는 사회의 낯설움과 불안과 공포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미스테리로 가득찬 세상에 나홀로 던져진 느낌을 종종 받곤 했었거든요.
논리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서사마저도 청춘에 대한 일종의 미장센처럼 느껴졌습니다.
회장님이 여길!
원래 댓글 안남기는데 ‘허무함’이라든지 ‘진실과 허상의 경계’라든지의 워딩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 역시 그것이 하루키 소설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와 라이너님 평소에도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건 알고있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결론을 따라 분석해봐도 부자연스러움이 하나 없는 명작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얼마만의 수준높은 작품이냐~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다 맞는듯 보이게 구성할 수 있는 이창동 역시 최고의 감독님
시네마지옥의 오랜 팬인데 소리도 없이 리뷰를 보고서야 구독하게 됐어요. 버닝 리뷰도 잘 봤습니다. 매불에서는 발음이 샌다고 느꼈는데 라이너님 채널에선 목소리 발음 참 좋네요^^
많은 영화 평론가중 우연히 계속 보게된 분이 라이너 였는데,
아 글쎄 또 우연히 보게된 프로가. 매불쇼!
그러다 목소리가 닮은 거 같아서 찾아 봤더니 라이너님이 바로 그 라이너!
이런 우연이!!
계속 응원하며 보고 있습니다~~♡
극장서 혼영으로 너무 재미있게 봤던 버닝이 흥행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걸보고 내가 영화보는 눈이 이상한가 했는데 라이너 님의 리뷰를 보니 제가 막연히 느꼈던 무언가가 실체화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리뷰 퀄리티 진짜 넘나 좋습니다ㅜㅜㅜㅜ 감사해요
영화 분석이 놀랍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았던 것들의 윤곽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랄까요..어디가서 이 영화에 대한 결을 다듬고 말할 수 있겠네요.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나으 열 개의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훌륭한 영화라는
방금 영화보고 리뷰보는데 이건 뭐지 싶은 부분들을 다뤄주시니 참 좋네요
영화 보는 내내 하루키 소설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계속되어서 연출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담이나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주는 요소는 별로 없고 하나의 문학작품같은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우와... 영화 처음 부터 끝까지 아무 느낌 없이 봤는데.. 감상하는 방법이란게 있는 것이군요. 리뷰 감사합니다.
혜미 아니고 해미인데...
중간에 비닐하우스가 불타오르고 팬티만 입은 아이가 웃는 장면에 대한 리뷰는 어딜가도 나오지 않네여 ㅠㅠ 저는 처음엔 벤이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첫번째로 태워보고 희열을 느끼며 웃는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극장을 나와 생각해보니 동수가 어머니 옷을 태우며 자신도 모르게 희열을 느꼈던것을 비닐하우스를 비유해서 꿈을 꾼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해봤고... ㅠㅠ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영 버닝이라는 영화는
벤이 그레이트 헝거라거요? 아닌거 같은데요. 벤은 심심하게 살긴 하지만 정신적으로 가난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거 같진않은데요. 잘 산다고 무조건 그레이트 헝거는 아닌듯합니다.
저는 반대에요. 사람이 배가 부르고 유희도 지나치면 실증나거든요. 그럼 철학적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런말 있잖아요. 석가도 결국 왕자였다. 벤은 부자집이라 지식수준도 높고 배도 부르고 환희도 많이 즐겨서 오히려 인생이 배고픈거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여자들, 특히 가난한 애들을 만나면서 그런 정신적 갈증을 해결하려는거 같아요. 물론 그 방법은 잘못됬기에 해결되지 않았고요. 비닐 하우스는 그렇게 여자를 만나도 자신의 갈증이 해결되지 않아 태운다고 표현한 거 같은데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태워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여자가 아닌 종수에 손을 택했지만요.
오호!!! 정확하심. 해석실력이 높습니다.영화에 대한 이해 높으심 인정!!! 저는 19일 토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아니ㅋㅋㅋㅋㅋㅋ라이너님 찐웃음때문에 김밥말다가 옆구리터졋자나여ㅋㅋㅋ아
혼자 조용히 숨죽이고 집중하며 보았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여백이 있는 영화라는데 공감합니다.
의견은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를 짧은 언어로 정리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습니다마는...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을 봅니다.
고도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각각의 인간본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삶을 제각기 살아갑니다.
각각의 표출되는 모습은
자본주의 플랫폼 위의 인간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죠.
이 체제 속에서는 종수가 현실적이며 리틀헝거이고 벤은 가진자의 여유?를 보이는 그레이트헝거라는 이분법 설명은 뭔가 부족합니다.
같은 종류의 인간 본성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계가 워낙 강렬한 반사거울인지라 스펙트럼만 달라진 것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거죠.
단순히
자본주의의 양극화 폐단 관점이라면
종수는 선한 시대적 희생양이고
벤은 게츠비식 방탕과 허위를 대변하는 것이 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이 자본주의 체제와 닮았다는 관점이라면
비록 이 불완전한 체제라 하더라도
또 하나의 본성일 수도 있는
공존의 가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공존이 이니었다면 지구상에 이렇게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계속 생존을 영위할 순 없었을테니깐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속성도 가진 공존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바라봤을 땐,
허상 속에서 허우적대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마는 존재가 과연 누구인가! 라는 역설적인 해석을 해보게 됩니다.
어차피
영화 전편을 아우르는 배경은
자본주의 틀 안에서의 계층별 인간 군상이고,
모두들 이 틀 속에서 허우적댑니다.
리틀이든 그레잇이든...
하지만
(혁명의 관점이 아닌 바에는)
공존의 관점에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인간은 계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각 개인의 표출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혜미가 어디론가 홀연 사라지는 건
적어도 자신의 허우적임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는 반면,
종수의 그것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다른 군상(벤)에게도 존재를 없에버리는 것으로 진행이 되니깐요.(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죠.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을 띠다가 행동은 타인에게칙접적인 피해를 주는 방식을 선택하니깐요. 자존심이란 것으로 포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는 확실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만
이 영화의 여백에 제 주관을 한번 그려보는 것으로 가치와 의미를 느낍니다.
잘 봤습니다.
여러해석 리뷰중 가장 좋네요.
벤을 그레이트 헝거라고 본 것 부터 오류. 벤의 모임을 그레이트 헝거들의 모임이라고 보다니ᆢ 리틀 헝거에서 물질이 충족되면 그레이트 헝거로 이행한다고 믿는 환상을 이용하는 포식자일 뿐.
다만 해미의 눈에 비친 벤은 그레이트 헝거일거 같아요.
그레이트 헝거가 무엇인지 각자의 느낌에 따라서 벤이 그레이트 헝거인지 아닌지가 결정나는 거지 에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종수와 혜미의 시선에서는 벤이 그레이트 헝거라고 느끼는건 맞아서 오류는 아닌 것 같네요
아름답고 슬픈 영화라는 평에 공감합니다꼼꼼하고 애정있는 평에 감사합니다
말도안돼..라이너님이 9점을 주는작품이 있다니...빨리 봐야겠다
상업적으로는 성공 못했지만 진짜 이 영화 재밌게 봤음.상업적인 흥행이 결코 영화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가 되서는 안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돈돈...
로닝 영화 리뷰 여러개를 봤는데
이 리뷰가 제일 해석 잘맞는거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첨엔 좀 지루했는데, 끝나고나선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네요.. 이창동 감독님 오아시스 이후 또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보고 나름 써봅니다.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을 말씀드립니다..
1 영화 제목인 "태운다"의 의미 :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종수가 어머니의 옷을 태우는 것은 파괴라는 의미보다는 “지운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존재 하는 것을 파괴하여 없애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던 것처럼 지우는 행위이죠. 버닝이란 의미를 영화초반 곱창집에서 해미의 대사처럼 "죽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라는 대사로 관객에게 살짝 힌트를 주는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벤이 자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로 사이코패스같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관객에게 말해주고, 여기부터 관객으로 하여금 벤이 해미를 죽였는가? 아닌가의 혼란을 갖게 만듭니다.
종수아버지가 종수에게시켜 어머니의 옷을 태우는 것은 어머니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고, 영화 끝부분 벤과 벤의 차와 함께 피 묻은 옷까지 태우는 것 역시 살해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죠.. 영화속에서 여자를 만나는 일 말고 특별히 하는 일 없는 벤에게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은 만나는 여자를 그져 지워버리는 것이죠.. 벤이 여자들을 죽이는가?의 의문은 여기서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벤이 말하는 버려진 비닐하우스는 자기가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자기보다 못한 사회적 위치의 여자들이며, 성관계 등의 육체적인 정복까지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2달 정도 놀다가, 차버린다는 말 뜻으로 보입니다. (벤이 페이스라는 말을 하는데, 결국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내것처럼 갖고 놀다가 차버리고 잊어버리는 그 생활패턴이 대충 2달인거죠. 새로운 여자를 꼬득이며 노는 것이 결국 벤이 가슴에서 느끼는 베이스인것이고, 재미인 것이죠.) 태워주길 기다리는 주인없고, 지져분한 비닐하우스는 널리고 널린 외로운 여자의 메타포인 셈이며, 종수에게 가까운 비닐하우스는 결국 가까운 사이인 해미인것이죠. 너무 가까워서 모르는 것이라 벤은 여러번 얘기하죠.(해미는 너 종수를 좋아하는데, 넌 왜 모르냐? 라는 얘기를 벤이 하는 것이죠) 벤은 소설가 지망생인 종수가 그 메타포를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종수는 못알아듣고 실제로 집주변의 비닐하우스를 잘 살펴보겠다는 대목에서 그러세요~라면서 비웃습니다.
2. 다른 분의 해석에서.. 해미와 종수를 사회,경제현실의 문제와 그 아픔을 공유하는 젊은세대를 상징하고, 벤을 부와 사회적우위에 있는 기성세대를 상징한다는 해석한 부분을 봤는데, 전 벤도 역시 젋은세대라고 봅니다. 벤은 해미와 종수와는 다른 금수저죠. 해미가 초반 판토마임으로 먹은 귤은 성공의 열매이죠.. 빚을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흙수저인 해미에게 성공의열매란 있을 수 없으나, 성공의 열매가 없다는 것을 잊으면 시시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와의 갈등이라기 보단, 젊은세대간의 상대적 박탈과 불공평이라는 문제를 밑바탕에 깔고 이 3명의 인물들의 얘기가 시작되고 있다 봅니다. (실제로 벤역을 영어말투의 한국어를 사용하는 배우를 섭외했다는 대목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와 온갖 혜택을 누리며 사는 금수저를 정확히 나타낸다고 봤습니다.) 영화 내내 신사적인 것 같은 벤과 그 친구들은 해미를 무시의 시선위에서 팔짱끼고, 흥미꺼리로 보고 웃는 장면이 나오죠. 벤의 두 번째 흙수저 여자친구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는 그저 가벼운 흥미꺼리일 뿐이며, 벤에게는 하품나오는 얘기들이죠.. 이 대목에서 종수는 그저 그 불편한 현실을 앞에서 보면서도 아무말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청춘의 모습입니다.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역은 종수의 아버지, 종수의 어머니, 그리고 잠깐 나온 변호사(문성근)이 3명이라 봅니다. 종수의 부모님도 결국 본받을 만한 인물로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좀 성공했다는 변호사도 종수 앞에서 보이는 자세나 던지는 얘기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보고 생각하는 잣대는 결국 무슨학교나와 취직은 했냐이며, 그렇지 못하면 제구실 못하는 하찮은 취급이나하는 기성세대의 냉담함을 말해주는 장면이라 봤습니다. 무슨 소설을 쓸 건데? 의 대사에서는 역시 한심하다는 느낌을 섞어서 말하죠.. 영화를 두번째 보면서 순간 문성근씨의 연기에 놀랐습니다. 감독의 디테일한 요구까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장면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하신 것 같았습니다. 대본을 보면서 거기까지 이해했을까요?
생각을 두서없이 썼습니다. 혹시 끝까지 읽으신 분 고생하셨습니다.
이창동감독의 운이라고 생각해요. 하필 그때 경쟁작이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였다니...기생충이 황금종려를 탈거라면 그보다 1년전에 이 '버닝'도 못탈건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습니다.
리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제생각을 덧붙여 보고자 합니다 : 용산참사 사진이 걸린곳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노골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그레이트 헝거라고' 자처'하면서도 진실은 사회일원으로써 그저 속빈강정에 불과한 그들의 일상적 작태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컷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아서, 그래서 수상의 기회를 놓치고,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게 아쉬워요. .
영화볼 때 너무 어려워서 끝나고 나서도 난해하다고 생각했는데 ..라이너님 해석을 보고나니 이렇게 좋은 영화를 너무 대충 무감각으로 봤나 반성하게되네요! 다시보고오겠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요즘 올리신 영상을 보면 처음 시작하셨을때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고 성숙된 표현에 "아. 머물지 않고 성장하고 있구나 이 사람." 이런 기분이 드네요. 처음 모습은 까내리는 것으로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모습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부분보다는 영화의 주/객관적 해석을 알기쉽게 전달해주는 좋은 평론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창동감독 영화
20대일땐 봐도 이게 명작이야?
30대가 되고 시간이 지난뒤 작품을
보고있자면 소름돋는다. 그리고 난
시>밀양>오아시스>박하사탕>초록물고기
전부 봐버렸다. 나에겐 최고의 감독
박하사탕이 이분 거였군요... 모르고 있었네. 한번 시간 내서 봐야할듯요
저도 너무 너무 좋게 봤어요 감탄하면 근데 해미 아닌가요? 혜미가 아니라 ㅎㅎㅎ
와...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셨다니! 신선했습니다 ㅎㅎ
언제나 퀄리티 좋은 리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리뷰 너무 좋네요
항상 감사한 리뷰 너무 좋네용!
그리고 라이너님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를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에게 영화가 유일한 취미이지만, 직장인이자 가장이기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제약되어 있어서 주말에 2시간짜리 영화를 한번 보는건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라이너님의 자세한 분석은 마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리고 제 취향에 맞는 영화는 어떻게든 보러가게 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이 영화가 엄청난 명작이라고 얘기해주는 유튜브 영상이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이창동 감독님 존경해요
라이너 님의 리뷰가 거의 쇼크 같이 다가왔네요.
리틀 헝거로서 우리의 허상을 정확히 집어내는 이창동 감독님의 숨겨진 의도를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그대로 다 들어내셔서 마치 제 마음을 들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근 리뷰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계속 부탁드립니다.
며칠전 넷플릭스 에서 뭐 보지 하다가 보게된 영화 입니다.
반주를 한잔 하며 느긋이 보고 있는데,어느새 두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더군요.
넷플릭스 에서 영화 장르에 '스릴러' 라고 나와 있는걸 보고 코웃음 지었습니다.
다 보고 '아 이영화 지인들 에게 추천해 줘야겠다' 생각이 들더군요,그러면서 혹시 라이너님이 이 영화를 리뷰 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역시네요
저와 어떤 다른 느낌 이었을까 정말 궁금 했거든요,역시 전문가 답게 보는 시각이 예리 하십니다.
리뷰 잘 보았고 앞으로 좋은 활동 기대 합니다
우와 잘 봤어요
저에게도 실마리가 풀리네요
궁금했던 것이 이 리뷰로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리뷰 훌륭했습니다^^
오히려 평론이 빙빙 도는 느낌이....
ㄹㅇㅋㅋ
평론이라기보단 순수 리뷰에 더 가깝게 보이네요 그래서 더 좋음
와... 오랜만에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끝까지 재밌게 봤습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그런지 공감도 되고 정말 좋은 영화 하나 봤네요.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밴도 종수도 그레이트헝거도 리틀헝거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거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고나서 당췌뭔내용인지 이해를 못해서 라이너님 리뷰보고 갑니다. 역시 해석하나는 기가막히네요👍
우선 볼께요 라이너님~♡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를 본느낌이 아니라 소설을 읽은느낌이 나더라구요 모든걸 일일이 설명해주는것이 아니라 상징이 녹아있고 의미를 곱씹게하는느낌 잔잔한 배경음악과 소박한 영상미, 영상들간 공백이 많은것, 쌩뚱맞은것같지만 상관있는 내용들 오랜만에 좋은영화를 본거같습니다
그리고 여주인공 매력이 흘러넘치네요 ㅋㅋ
지금에서야 버닝을 봤습니다 보고 리뷰를 보니
무릎을 탁 칩니다.. 저한테는 이영화가 무척 소름돋는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제가 리틀 헝거라서 그럴까요.. 참고로 저는 혜미가 제일 와닿은거 보니 저는 중간인가 봅니다. 라이너 리뷰에서 제가 소름돋는건 이영화가 너무 친절한게 이쉽습니다. 라이너씨는 노골적이다 라고 표현하셨네요 ..
"젊은 세대의 분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워딩이 정확한지는 모르겟지만 어디선가 본 이창동감독의 버닝에 대한 말입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제일로 황당했습니다. 물론 보여주는 것, 들려주는 것은 많습니다. 실업이나, 이 시대 젊은이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건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냥 보여주는 데까지...
오히려 제가 분노를 느낀 부분은 종수-헤미-벤 사이에 존재하는 분노 였습니다. 헤미를 태워버린 벤에 대한 종수의 분노 였습니다.
제가 한명의 관객으로서 제일로 분노가 쌓였던 부분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결국 젊은 세대의 분노를 애인을 태워버린 부자에 대한 분노로 치환해버렸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찝찝합니다. 게다가 그런 분노와 그것에 대한 해소 조차도 허상일수 있다는게... '이건 다 종수의 상상속에서 이루어진 일일 수도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에서 이건 대체 뭐하자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바보가 들려주는 무의미한 이야기" 이부분에 대단한 공감을 느낍니다. 헌데 이 영화가 걸작이라? 음... 제가 영화보는 눈이 없어서 일까요? 저한텐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고, 그 젊은 세대의 분노라는 것 조차도 되게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가지 코드로 읽일수 있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겠지만, 저한테는...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그것을 근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의 영화가 훨씬 더 와닿는군요. 다시한번 이 창동 감독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냥 질문할 뿐이다" 전 이창동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뭘 물어보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혜미가 우물에 대해 언급하고 종수는 계속 우물은 없었다고 듣고.. 굉장히 가볍게 넘어갈 대화에 종수가 지나치다싶이 집착하듯 우물의 존재를 찾기에 롱테이크의 지독한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는데 혜미의 신호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네요. 뭔가 사이다 같이 시원하게 답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영화보고나서 같이 본 사람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도 지속적으로 의문이 드는 대사와 장면들이 많았었는데 다른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하면서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어요.
즐거운 리뷰감상이었습니다^^
뱁새가 황새 쫓는 공허한 얘기를 이건 공허합니다 공허하다구요라고 풀어낸 영화. 근데 영화에서 진정 벤이 그레이트 헝거였을까요? 오히려 그나마 종수가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사이에서 갈등하며 번뇌하며 한심하게 방황하는 입장이고 벤은 전형적인 리틀 헝거의 대변인 같은 인물 같은데요. 뭐 어차피 리틀 헝거이건 그레이트 헝거이건 그냥 이거 덥썩 무세요라고 감독이 던진 그닥 의미 없는 겉저리같이 보이긴했습니다만. 그레이트 헝거가 리틀 헝거들에게 던져준 공허한 개껌같은. 어차피 고약한 냉소를 즐기시는 영감님이니.
지금까지 본 라이너님 영화 리뷰 중 가장 맘에 듭니다. 아주 잘보았습니다.
멋진 라이너님의 버닝 리뷰 잘봤습니다..해석이 정말 필요한 부분만 잘해주신듯해서 도움되었어요. 사실 이 영화를 개봉하고 바로 본 후 자세한 유튜브 리뷰등을 못봤는데 재밌네요. 왜 진작에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영화 리뷰를 찾아보지 않았는지 후회스럽네요. 뒤늦게라도 다른 리뷰들도 찾아봐야겠어요.
한국영화 중에 정말 오랜만에 대작이 나온거 같아서 기쁘네요
박준하 아 오타네요ㅠㅠ 한국영화요
박준하 저도 다시보고 식겁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매일 전화를 건사람은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구치소에서는 하루에 한번 전화할 기회가 있습니다. 종수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가진 리클헝거의 자존심으로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그 또한 말하지 못하고 수화기만 들고 있을 뿐인거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많이 드는 영화네요! 이창동 감독님의 원작 이해력에 감탄합니다. 물론 원작은 읽어보지않았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몇개 읽어보았습니다. 하루키만의 색깔이 잘 묻어나는 것 같은 영화네요. 영화를 보고 이해가 잘되지않아서 리뷰를 보고 드는 생각은 벤은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가진 영화속에서 표현하는 그레이트 헝거이죠.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있는 사람 , 어릴 때부터 많은것을 가지고 자란 사람같은 사람 , 즉 부족함이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벤에게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집니다. (영화속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눈물을 흘려 보지 않았다는 장면에서 종수가 말하죠 "그럼 슬픔도 느껴본 적 없겠네요?" 그러자 벤도 눈물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슬픔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하죠. 여기서 감독이 의도한 '증거' 라는 단어가 참 소름이 돋습니다. 영화에서 대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없는 것 처럼요. 감독이 말해주는 메세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즉,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같습니다. 아니, 감정보다는 경험을 통해 무뎌졌기때문에 아직 무뎌지지 않은 새로움을 찾는 사람같습니다. 이전까지 많은 것을 해보았었기때문에 아직 찾지 못한 것을 심장이 뛰는 행위를 찾는 사람같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움을 찾는 것 같고 자신이 갖고있는것을 갈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단순한 흥미만요. 사랑은 갖고 있지 않아요. 이사람에게 감정은 많이 메말라있거든요. 그래서 벤은 해미에게 흥미를 느끼죠. 단순한 장난감이죠. 해미는 물론 그레이트 헝거인 벤에게 호감을 갖게되죠. 단순한 생각으로 포르쉐 타고 다니는 잘생긴 남자에게 호감안가는 여자가 있을까요? 어쨋든 해미도 벤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벤이 지한테 흥미가 있다고 말을 했었고, 괜찮은 사람인것같으니 계속 만나겠죠. 하지만 해미는 종서에게는 의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미는 종서를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벤이 말했죠. 셋이서 처음 술자리가 끝나고 각자 차로 가는 장면에서 해미가 종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언가의 아쉬움과 섭섭함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종서가 데려다 줬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표정? 시선도 종서에게 꽂혀있었던 것 같이 느꼈고요. 하지만 종서는 이미 벤의 포르쉐에 압도당했죠. 흔히 수컷끼리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도태된 야생동물 같이 느껴져서 한껏 풀이 죽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데려다 주고 싶어도 벤에게 해미를 맡기죠. 해미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서에게 실망해 벤을 더 자주 만났던 것 같아요. 좀 간략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해미는 살아있거나 자살했을 것 같아요. 빚쟁이들에게 쫓겨 도망갔거나 이제 자신의 삶에대해 환멸을 느껴 자살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우울증을 앓고있는 사람같아 보였어요.) 벤의 '비닐하우스' 가 여자를 뜻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벤의 '버닝'이 살인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고 벤이 2달에 한번 씩 하는 '버닝'이 진짜 말도 안되게 말하면 여자 화장시켜주고 헤어지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영화에서 나오는 '증거'가 없으니깐요. 이 증거가 종서에게는 말도 안되게 우연처럼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강력하게 말해주는데 종서는 벤의 등장이후 자신의 무능력함 무기력함을 계속 느꼈는데 해미를 지키지 못함으로써 열등감이 폭발해 사실이든 아니든 걍 벤을 죽여버리고 맙니다. 종서의 성격이나 생각은 라이너님이 말해주신 거랑 거의 의견이 동일합니다. 재밌으면서도 재미없는 보면서 뭐지? 하면서 계속 흥미를 유발하는 영화였습니다.
중간에 혜미가 춤을 출때, 제가 본 관점은 혜미의 수치스러운 춤사위가 아닌 다른 상류층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편견입니다. 그들은 뒷험담을 즐기며 편견에 대한 얘기뿐이고, 유흥이나 즐기는 자들인거죠. 영화에 대한 해석이 저와는 생각보다 커서 저도 신기하네요.
이런 해석 할 여지 많은 영화 좋아하는데 버닝은 저에게 너무 어려웠습니다..너무 레벨이 높아
넋넣고 빠져서 봤네요 저는 자주 이런 깊은 묵직함을 갈구합니다. 라이너님의 영상으로 힐링도 하고 제가 이상한사람이 아니라 아는사람이 라는 것에 조금 우쭐하기도 합니다
수준 높은 리뷰 잘 봤습니다. 늘 좋은 리뷰 잘 보고 있어요
정말 영화를 솔직히 보고도 이해가 어려워 기다렸던 리뷰~~^^ 감사감사 ㅎㅎㅎ
이 영화에서 의미는 해미의 판토마임에서 다 보여준것...없는 것을 있다라고 생각말고..없는것을 잊어버리라는 것.. 즉 인생에서의 모든것, 모든의미를 찾으려 하지말고 잊어버리라는 것..그리고 자유로워 지라는 의미
이런 수준높은 리뷰를 열린 온라인에서 보는것도 참 의외의 경험이기도 하네요. 리뷰를 보고 영화를 보고 리뷰를 다시보면서 라이너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다시금가지게 됩니다. 앞으로도 리뷰들 잘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이창동이 다시 써내려간 하루키 소설
이창동 작품을 좋아하든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든 이 영화를 보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영화
저 이 리뷰먼저 보고 영화봐서 너무 이해가 잘됐어요ㅎㅎㅎ넘 재밌어요 영화!! 근데 벤 화장실에 있던 화장품들은 영화에서 벤이 두번째 여자친구를 죽이기 전(짐작이지만)에 인형놀이하듯이 여자를 꾸며주는데에 사용하잖아요 이외에 어떤 부분때문에 벤 화장실에 있는 화장품들이 벤 스스로를 그루밍하는데에 사용된다고 해석되는거에요??? 궁금해요
오늘 8시30분 조조 봤습니다
보면서 얼른 라이너님 리뷰 들으러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두번보지 않아서 이겠지요? ㅋ
저는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을것같은... 그냥 전 저런 류에 영화를 좋아라 하거든요~ 대중적이지 아니하고 폐쇄적인 장르를 좋아라해서...^^ 맞아요 버닝은 몇번 봐줘야 할 각이라요 어떤 영화를 보면 여러번 볼때마다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고 보이지 아니한게 보이며 나이때에 따라 20대에 봤을때와 30대에 봤을때 느낌이 또 다르게 느껴지는... 버닝은 저는 리뷰를 듣고나니 오히려 더 흥미롭게 볼수있을듯요 일부러 결말 부분에서 영상 끊었네요ㅋ~^^ 영화는 봐야하니^^ 여튼 레이디버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보고파진 영화랄까~오늘도 최고의 리뷰 감사드려요 라이너님♡ 앗!! 9점요??? 세상에나~ 당장 가야겠다~~
Ra hee .
정말 긍정적이시네요. 라이너님 리뷰를 보셔서 그런건지 ㅜ 저는 돈도 아까웠고 2시간이 통째로 버닝된거 같았네요..
이영화는 10대에겐 너무 어렵고
20대에겐 너무 더럽고 마주하기 싫으며
30대에겐 또 아름다운 영화죠
정원박 일리있는해석이시네요. 아름답게 봤습니다
정원박 ㅇㅈ 30대되면 벤같은 행동 많이 하죠
소스발사믹 그렇죠
gp 너무 메타포 항연이라 확실하지않으며 결국 내경험 내생각 내느낌 관객시각으로 봐야하는영화라 정답없는건 ㅋㅋㅋㅋ
나 24살... 아름다웠다....ㅠ
드디어 봤어요!!라이너님 리뷰 보고싶어서 영화보자마자 리뷰 봤네요 ㅡ 후기가 좀 안좋아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몰입도도 괜찮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ㅡ라이너님 말대로 한번보고는 이해하기 힘든거같아요~!!
그래도 라이너님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오... 이분이 이렇게 말하는거면 진짜 영화가 괜찬았다는건대... 보러가봐야겠따...
이영화에 대한 사전지식 하나도 없이 보러 갔는데 러닝타임이 2시간을 훌쩍 넘더라구요.초반엔 지루하게 봤는데 나중엔 엄청 빨려들어가면서 봤습니다.영화 해석이 너무 분분해서 리뷰 찾아다니며 보고 있습니다.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리틀 헝거, 그레이트 헝거를 구분 짓는 게 돈의 유무가 아닌디..
이 영화에서 진정한 의미의 그레이트 헝거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본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종수의 모습뿐이라 생각해요. 에는 메타포보다도 영화적 맥거핀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해미의 생사여부, 고양이는 보일인가 등에 대해 집중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데 말이죠.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느끼게 된 종수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을 이창동 감독의 예술창작활동에 관한 자화상으로 봅니다.
영화를 보고 든 생각: 전형적인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타입의 영화. 관객들은 왜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지 알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에 다 의미를 담고 있지만 전개는 지독할 정도로 느리네요.
저도 너무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떡밥들을 너무 많이 풀어놓으니 영화를 보면서도 몰입이 안되더군요... 작품성을 위한 작품인건지.. 뭐 이런것도 수요가 있으니 제작했겠죠. 하나의 장르로 봐야할듯
저는 그래서 영화제 수상작은 피하게 됩니다ㅠ
영화를 보고나서 1점 짜리 영화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라이너님의 리뷰를 보고나서 생각해보니 제가 영화보는 눈이 정말 모자라다고 생각이 드네요. ㅎㅎ 항상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라이너님 리뷰가 참공감되고 좋네요
리뷰가 어렵다는분들도 있지만
전 오히려 나와다른 차원히다른평하신 라이너님 리뷰가 좋아요ㅋ
참고로 같은남자로써 목소리가 차암~~부럽네요 많은활동 기대합니다
미장센에 있어서는 이창동 영화 증 최고작. 암시와 상징들을 이용한 모호함과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매우 좋았습니다. 허나......
결국 서사 그 자체는 너무 뻔했고 이창동 감독이 바라보는 청춘이란게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창동 감독도 이런 부분에선 그냥 아재...... 특히 캐릭터 구성하는 게 흔한 루저감성 열패감 스토리들과 다를게 없어서 쫌 그래요. 이런걸 에미넴은 랩으로 2000년도에 했는데 2018년에 와서 이런걸 하겠다고 하면 너무 구닥다리죠. 완전 클리셰 그 자체.......
청춘의 열패감을 유산자 계급 남성과 무산자 계급 남성의 대립으로 배치시키고 그 사이에 여성은 섹슈얼한 상징 기호로 쓰이다가 갈등을 위한 도구로서 (열패감 증폭을 위한 도구로서) 죽음......결국 그가 바라보는 청춘이 누구의 시각과 누구의 욕망에만 해당되는 것인지 너무나 뻔했고 이제 이런 이야기는 피로감이 오네요. 그나마 수준높은 미장센과 미스터리한 힘이 없었으면 끝까지 다 보지도 않았을것입니다.
현대사에 혹사당해 망가진 개인 (박하사탕) 과 종교적 구원과 자기분노 사이에서 망가진 개인 (밀양) 을 그려내던 이창동 감독이 청춘을 그려낼때 정작 그 안엔 청춘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dodge man 청춘이 들어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steadyfilm8560 저두요.청춘이 들어차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해요.
청춘상을 도식적으로 그린 부분이나, 서사가 어느 정도 식상한 점은 있을지 몰라도 그 단순하게 보이는 서사 안에 예술가로서의 지향점과 괴리, 아버지로 통해 보이는 부조리, 힘에 대한 동경과 증오,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서와 내러티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종국에 치닫은 종수의 감정엔 단순히 벤에 대한 열등감과 증오만이 아닌 복합적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단 것만 봐도 클리셰 같은 종수의 내면은 매우 입체적이고 강렬하게 그려졌다고 느끼거든요.
뭔말인진 알겠는데 공감이 안되네요. 한국에 있는 청년들에 대해 이만큼이나 적나라하고 정확하게 심리를 묘사한 영화가 있을까싶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전 20대고 저런 애들 굉장히 많아요. 전 벤도 유아인도 아닌 중간적인 입장에서 저 둘과 같은 친구들을 꽤 봤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그런 두 계급의 남자를 정말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가 약점이죠. 두 남자의 감정선을 이끌어내기엔 여자만큼 좋은 소재가 없습니다. 여자 앞에서 보다 남자들이 자존심 세울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매불쇼 듣고 찾아 왔습니다~~ 최광희님과 캐미가 꿀잼이예요~~ 좋네요~~
식상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식상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흐름 자체가 굉장히 흡입력 있었어요. 이렇게 몰입해본건 정말 오랫만인 것 같습니다. 끝나고는 엄청난 여운이 남았어요. 벤은.. 그레이트 헝거라고 단정짓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레이트 헝거를 무언가를 초월한 존재, 신성한 존재로만 본다면 그는 그레이트 헝거가 아닙니다. 배부르고 심심한 돼지입니다. 그러나 배고픔이 아닌 영혼의 허기를 찾기 위해 버둥거리는 존재를 그레이트 헝거로 정의한다면 그는 그레이트헝거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나요? 육체의 배고픔을 벗어나려는 자를 리틀헝거라 하고 영혼의 배고픔에서 버둥거리는 자를 그레이트 헝거라고 한다면요. 게다가 벤은 영혼도 그렇게 배고파보이진 않아요. 그냥 그는 좀 모든게 별 의미가 없고 간절하지 않고 좀 재미있는 걸 찾고 싶어하는듯. 아참 그리고 전 노인을 위한 나라가 뭐가 그렇게 잘 만들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건, 이건 정말 수학의 답처럼 명확합니다. 이것이 수작의 범위에 속해있다는것이요.
기다렸어요 버닝 리뷰를...
저는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시계와 고양이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물증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시계는 선물이었을 수 있고 고양이도 우연히 보일이라는 이름에 반응했을 수 있는 애매함이 있지만 많은 대사들에서 벤의 살인을 보여줬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우선 벤과 첫 식사장면에서 벤은 울어본 기억이 없고 슬픔또한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벤이 죽을때조차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고통스러워만 하던 모습을 보면 허세가 아니라 진짜였을것 같습니다 다시말하자면 사이코패스죠
벤이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만들어 자신이 먹는, 마치 신에게 보내는 제물과 같다고 하죠
그리고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울때 판단을 하는것이 아니라 받아들인다 홍수가 피해를 줄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라며 피해자들에 대해 무관심 합니다
다시말해 살인을 할 때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냥 너는 나에대한 제물이니 받아들여라 이렇게 봤습니다
벤이 두번째 여자를 화장시켜 주는것은 음식을 만드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종수가 해미에게 창녀같다고 말했을때 해미는 종수에게 버려졌습니다 다시말해 버려진 해미가 버려진 비닐하우스가 됐다고 봤죠
그리고 벤이 해미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했는데 이것은 내가 죽여서(태워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라는 말장난 아닌 말장난 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외에도 상황이 아니라 대사와 표현으로만 은연중에 벤이 해미를 죽였다 라고 말했다는게 많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많아서 오히려 역으로 아닐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저도 처음봤을때 벤이 죽였을거라 생각되었는데 두번째보니 종수가 이상해보이더라구요. 종수가 혜미와 연락이 끊긴 후 벤과 비닐하우스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렇고 경찰에 신고하는 기본적인 행동도 하지않고 추측끝에 확신하고 마지막 행동을 하는걸보니 오히려 종수한테 문제가 있는것처럼 보이더군요. 벤이 혜미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종수는 벤을 죽였을것같습니다.
통달이 리뷴데 스포하지말라니? 뭔 개소리지
저도 처음에 벤이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진짜 벤이 죽였다면 왜 마지막에 굳이 종수한테 해미랑 같이왔다면서요? 해미는 어디있어요?라고 연기할까요? 진짜 자기가 죽였다면 종수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았을텐데 그렇게 해맑게 무방비로 종수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거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벤이 칼맞으면서 종수를 꽉 껴안는 모습은 벤이 종수를 좋아했던거같아요... 걍 제 추측이지만 ㅋㅋ
없는 애를 있다고하니까 재밌어서 보러온거 아닐까요? 벤은 재밌으면 다하는 사람이잖아요. 그 대사는 비꼰거고
그럴 수 도 있겠네요 !
라이너의 컬쳐쇼크 리뷰 영상중에서 제일 잘만든 영상 같습니다.
방금 버닝 보고와서 라이너님 리뷰를 봤습니다. 어느정도는 동의하는데 한가지는 동의가 안되네요. 벤과 벤의 친구들이 그레이트 헝거라는 부분이요. 해미의 말에 따르면 리틀 헝거는 굶주리는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를 찾아헤매는,큰 의미로 굶주리는 사람 입니다. 즉 그레이트 헝거는 구도자나 수행자같은 사람이고 해미가 춤을 출때 하는 대사를 들어보면 리틀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리틀헝거가 춤을 추면서 그레이트 헝거로 변화하죠. 저는 불교에서 범부가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벤과 벤의 친구들이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들 일까요? 전혀 아니죠. 그레이트 헝거에 해당하는 인물은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데 이 영화를 리틀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의 대립으로 보는건 잘못된 해석이 아닐까하네요 이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계속 메타포만 던지고 확실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관객들 마다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점은 곡성과 비슷하지만 곡성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어느정도 해석이 나왔지만 버닝은... 정확한 해석이라는 게 없이 관객들이 각자 자기만의 해석과 결말을 갖게 될것같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영화일수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슨말을 하고싶어서 만든건지 알수없는 애매한 영화가 될것같다는게 아쉽네요. 저는 재미있게 봤지만, 이 영화를 주변에 보라고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게 예술영화로서 버닝의 한계가 아닐까합니다. 좋은 영화지만,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수 없는 영화... 사실 친구와 같이 봤는데 친구가 이게 뭐냐면서 욕하길래 영화얘기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ㅠㅠ
그리고 제가 라이너님의 리뷰에 본의아니게 태클을 거는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로 보입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해미가 죽었나 살았나, 벤이 살인마인가 아닌가에 신경을 쓰면서 영화를 보는데 영화는 거기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고 해미가 죽었을것같은 떡밥만 실컷 던지다가 끝나버리니까 스릴러인줄 알고 본 관객들은 빡치는거고, 라이너님처럼 계급대 계급의 대립(의 메타포)로 해석한 사람들에게는 갓영화가 되는건데요. 사실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고 싶었다면 영화를 설국열차처럼 알기 쉽게 만들었으면 됐을텐데요. 그러면 관객들에게 잘못 전달될 일도 없고 욕먹을 일도 없죠. 그래서 제 생각에 이 영화는 그냥 연출이 좀 특이한 스릴러 영화 아닐까 싶은겁니다. 기득권의 상징이라기엔 벤이 너무 허무하게 당하는것도 좀 그렇고... 라이너님의 해석이 틀렸다는건 아니고요. 라이너님 리뷰가 맞을수도 있지만 좀 너무 나간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게... 감독님이 그런얘기를 하고싶으셨다면 굳이 이런 장르로 영화를 만드셨을까 싶어서요. 암튼 버닝 보고와서 영화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은데 대화상대가 없어서 ㅠㅠ 라이너님 리뷰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하고요 리뷰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
라이너님이 버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업로드될때까지 계속 기다렸습니다! 언변이 부족해서 어떻게 표현해야될지 몰랐는데 저랑 비슷한 생각이신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네요.. 시간이 되신다면 영화 안에 내포되고있는 복선이나 메타포에 대해서도 해주셨음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리뷰가 짧아서 아쉽습니다 ㅠㅠ
첫화에 보자마자 little hunger나 great hunger보단 '아프리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흔히들 아프리카가 인간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아담과 이브가 있던곳이 아닐까 싶었는데,
초반에 종수와 해미이 두 주인공이 몸을 쉽게 섞는 장면을 보면서 '순수한 본능'을 반사된 빛을 보여줌으로서 순수한 관계를 뜻하는것 같더군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뒤 남자 벤이란 사람과 함께온 해미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부)와 그녀의 (great hunger)허상이 만나는 것을 통해
사탄에 뀀에 넘어간 이브의 모습이 대비되어 나타나는데,
벤이 손금을 봐주면서 돌을 가져와 '너의 걱정인 돌을 빼냈다'라 했을때 해미는 '이걸 위해서 가져온거에요?' 그리고 벤은 '재미 있다면 이런것 즘이야'라는 말을 하죠.. 하지만 그전에 손금을 봐주면서 '종수'를 의미하는 심볼로 돌을 가져왔다는 것을 빛추어 볼때 '벤'은 결코 '재미만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말인 즉슨, 벤은 무엇가 모종에 의미로서 여자를 꼬신다는 것을 알수 있죠.
종수와 벤이 와인을 하면서 '벤은 2달에 한번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라는 말을 합니다.
해미는 돈을 모아서 아프리카 여행을 갈만큼 계획을 세웠던 아이인데, 어머니 말씀이 '카드빛 안값으면 집에 올생각 하지마라'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벤이 두번째 여성과 만날때 일때문에 늦게 온 여성에게 '너가 늦었으니 우리가 차마실 시간은 없겠는걸?'이라고 말합니다.
해미는 직업 특성상 하루종일 일하는 직업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벤과 있으면서 어떻게 버텼을까요?
해미는 왜 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벤이 그곳을 치웟을까요 고양이는?
와인을 마신후 종수는 해미에게 '너 창녀같아' 라는 말을 합니다.
종수 또한 금단의 과실을 먹은 것이겠죠.. 아마도 질투?
"아담과 이브가 과실을 먹을뒤 신이 왔을때 아담이 급히 몸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수치심으로 인해서 신 앞에 발가벗은 몸이 부끄러웠던 거죠."
그뒤에 해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벤이 그녀를 죽였는가? 한다면, 벤이 본인에 직업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담
무엇일까요? 두달에 한번 여자를 죽이는 싸이코? 아니죠. 누군가를 타락시켜 팔아버리는 사탄 이 아닐까요?
무엇을 태웠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 나도 great hunger 가 되기위해서 높은 질의 삶에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것은 '돈'이죠..
그리고 그들은 돈에 노예로서 몸을 잃을 것인거 같아요.. 아마도 팔려갔겠죠..? 그 예로서, 벤이 두번째 여성에게 화장을 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이기 전에 바른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거기다 종수가 '해미가 할말 있데요' 라고 했을때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 하고 벤이 찾아오게 됩니다.
도망갔나? 생각해 온것이 아닐까 싶은데..
유아인이 품은 과실 '질투와 분노'의 칼이 벤에 몸속에 박혀 최후를 맞이하죠.. 그리고 유아인은 자신의 모든 옷을 벗어 자신의 차로 돌아갑니다.
마치 태초에 인간으로, 과실을 먹기전 아담의 모습처럼?
뭐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저는 아담과 이브가 제일 많이 떠오르네요..
😃🙊👏👏👏👏👏
저는 개인적으로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닐하우스를 두달에 한번꼴로 태우는 페이스가 딱 좋다고 했는데 마치 그건 두달에 한번씩 살인을 저지른다는 얘기 같기도 했습니다. 벤이 연쇄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생각. 화장실 서랍안의 악세서리 역시 자신이 죽인 여자들의 악세서리일거라는. 이런저런 추측들과 추정들을 관객에게 맡겼으니 해석은 정말 다양할거라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너무 자주 나오는 롱테이크 씬에선 답답함이 느껴지더군요. 영화 자체는 정말 재미있게 잘 봤구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저는 해미방에 들어오는 유일한 반사광이 어떤 의미가 지닌다는 생각이들었고 영화 후반부 종수가 벤의 말을 듣고 해질녘이나 새벽? 해가거의없는 시간에 비닐하우스를 찾아 헤매는 연출에도 무슨 의도가있을거라 생각이 들던데 라이너 님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이 작품은 하루키와 진격의 거인과 살인의 추억을 적절하게 섞어만든 프랑켄슈타인처럼 느껴집니다.
어제 영화끝나고 스타라이브토크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도모르게 박수를 치고싶었습니다. 이창동 감독님은 사실 해설과 해석을 하면 안되는 그 자체로의 영화라고 합니다. 마치 영화라는건 스크린에 비춰진 빛의 파동일뿐 실존하는 것이 아니니 그저 실제가 없다는 것을 잊으라는듯이 말이죠... 여러가지 열린결말 해석의 여지를 주고 관객들에게 생각을 하게함으로써 내안의 갈증과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리뷰가 너무 공감이 갑니다. 저도 영화 내내 불편하고 가슴이 아프고 마치 종수가 나인듯 몰입하여 내안의 열등감도 보이는 듯 했습니다. 심지어 잔인한 살인장면에서는 약간의 통쾌함까지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리틀헝거에 지나지 않은 종수의 발언들 “옷을 아무데서나 벗고 그래, 그런건 창녀들이나...” 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 아팠고, 군중속의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끼는 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고 할수는 없네요.. 누구나 느낄수 있는 감정들이면서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루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란 것을 좋아하고 잘 모르지만, 영화 보는 내내 유아인이 뛰는 장면이나, 감정의 파동이 일어날때 나오는 주술적인음악?(개인적느낌) 은 해미가 바라는 아프리카의 그레이트 헝거 혹은 리틀헝거를 떠올릴수 있게하는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종수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면서 해미는 없지만 해미가 있는것처럼 말이죠....
개인적인의견으로
사실 사회 계급적으로 본다면 극중인물을 리틀 혹은 그레이트 헝거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봅니다만 그건 그렇게 쉽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산타워에서 우연히 반사되어 온 빛처럼(우연히 해미처럼 다가온) 종수의 한가닥 빛일 수도 있었던 해미가, 종수에게, 종수가 보지못한 세계(아프리카)를 지속적으로 노출(헝거들의 이야기)하게되고, 벤이라는 없던 존재를 존재하게 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지하고 살진 않았지만 불편한 시스템과 체제가 수면위로 드러나 보이게 되고 공감을 하며 일련의 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노나 공허, 좌절, 쾌락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 좀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고 그것엔 옳고그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오히려 옳고그름을 나눠버리는 순간 우리는 자본주의체제에 순응한나머지, 천민자본주의마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배고프고 가난하지만 꿈이 많은 자, 삶의 의미를 찾는 자, 꿈을 이루고 삶의 의미를 찾지만 공허한 자. 누가 옳고 글렀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간극을 표현하고자 하셧다고합니다. 내 옆에 내 또래가 모는 외제차가 굴러가는데 그 주인과 나에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만 느끼는 감정들같은 것...
“한국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아” 등의 대사를 보아 소설이라는 꿈으로 그레이트헝거일수도 있는 종수가 여러 대사와 행동들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한계와 꿈과 소망이란 것은 대체, 마치 어떤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역으로 던지는 것 같아 너무 잔인하고 가슴이 시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 영화 너무 재미있었고 리뷰 너무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츠비가 너무많다는 말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소설가 황정은씨는 야만적인 앨리스라는 소설의 서두에서 자신이 이 소설을 쓰게된 동기를 말해요. 동경에 갔는데, 하이힐을 신은 여자노숙인이 시내를 걷고있었답니다. 근데 그 모습이 걸을때마다 너무 휘청거려서 그 모습속에서 세상엔 두발로 서기위해서도 에너지를 들여야만하는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합니다. 치장하고 화장하는데 더 많은노력이 필요한곳이 유교문화-체면문화가 곁들여진 한국사회아닐까해요.
버닝 영화평론 여러개봤는데 정말 리뷰 좋네요... 구독하고 갑니다
난해하거나 문학적이거나 그 무엇일지언정
관객과 공감을 얻는게 먼저라 생각드네요
밀양처럼 공감이 되거나 테넷처럼 어려워도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거나
버닝은 그냥 "공감하라!!"를 강요받는 느낌입니다
어렵더라도 혹은 그 해석을 알아가더라도 그다지 즐거운 요소가 없습니다
감독과 소수의 리뷰어들만 즐거웠을뿐 ,,,
리뷰 영상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었는데 라이너님덕분에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