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수도 경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10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283

  • @trh8540
    @trh8540 Рік тому +171

    경주는 당시 세계적인 도시였음.기록을 보면 이미 서역 국가까지도 다 신라를 인식했었고,유럽의 로마와도 교역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됨.당시의 세계와는 다 교류가 있었던 국제 국가고 도시임.

    • @super-JEI
      @super-JEI Рік тому

      그래서 경주가 갱상도에 존재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주가 대륙양자강 변에 있어야 세계적인 도시가 가능한 것입니다.

    • @김종윤-p1k
      @김종윤-p1k Рік тому +7

      그러니까 ㅈ금 반도에 있는 경주는 동경 즉 9주5소경 중 하나인 동경이고 통일신라 시대 본 수도 경주는 장강의 중하류에 있음 ㅇㅋ??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2

      아랍지도(?)에 중국땅에 신라 지명이 표시되어있습니다.
      찾아보세요
      중국땅에 신라가 있었다면, 다 말이됩니다.
      천문관측자료도 맞고요.
      틀린건 우리 생각

    • @_Honganji
      @_Honganji Рік тому +4

      ​@@김종윤-p1k제발 환단고기 그만...

    • @_Honganji
      @_Honganji Рік тому +3

      ​@@myj22000선조들께서 피로 지켜온 소중한 반도사를 왜곡하지 말아라. 그거야말로 모욕이다.

  • @mandlgo
    @mandlgo Рік тому +51

    아파트말고 저런집이 지금도 있으면 좋겠네

    • @entp9671
      @entp9671 7 місяців тому

      경주에 있긴해요 물론 저만하진 않지만

  • @요트-b8o
    @요트-b8o Рік тому +79

    황룡사 9층목탑 ㅈㄴ멋있네 나중에 꼭복원해야지

    • @김종윤-p1k
      @김종윤-p1k Рік тому +1

      @poongyo777 이게 맞죠 실제는 중국 대륙에 있습니다. 반도 내에 터가 있다고 나오는 곳이 없는데 후대에 끼어맞추기..... ㅠㅜ

  • @은비-t1r
    @은비-t1r Рік тому +13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아랍권 국가에서 기록한 신라의 기록중에 기억이 남는 부분이 신라는 금이 많아 금으로 된 집도 많았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강아지의 목에도 금이 걸려 있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였음 정말 찬란했던 나라였던듯

  • @stevenrhee8398
    @stevenrhee8398 Рік тому +66

    통일신라, 고려 모두 상업이 발달했고 그결과 나라의 재정이 풍족했다.
    대외 무역도 활발했다. 고려숙종때 무려 17만의 기병이 다수 포함된
    상비군을 편성하여 여진을 정벌할수 있었던것도 그만한 경제력이 뒷받침 될수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생산력 떨어지는 농업에만 치중하고 상업을 천시했다.
    이는 지배층들이 의도적으로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통치하기쉽게 하기위함이었다. 상업이 발달하면 사람들 사고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변하기때문에 지배자들이 통치하기가 어렵기때문이다.
    통치이념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성리학과 농업만 중시한 조선은
    서서히 거지화되었고 급기야 변변한 군대조차 없는 찌질이 나라가 되고 말았다. 결국은 일본에 합병.

    • @ego6929
      @ego6929 Рік тому +11

      조선시대의 국가 생산력은 고려시대의 수십배나 높습니다. 다만 조선은 조세를 고려시대의 반의 반도 안될만큼 적게 징수했고 사병이 활성화되어 단숨에 수십만 정병을 양성할수 있었던 고려와 신라와는 달리 중앙집권국가로서 사병제도가 없었기에 관병을 키워야했는데 관병을 키울 자금도 문제였지만 세수를 워낙 적게 걷고 노비에게는 세수는 커녕 군역도 살지 않도록 해서 양민보다는 노비로 살면서 군역면제받고 외거노비로서 모여살면서 주인의 밭을 경작하며 그 세출을 받아살고 혼인하고 잔치하면서 사는 백성이 매우 많았습니다. 노예와 노비의 다른점이죠. 조선시대노비는 사유재산이 인정되어서 그 주인이 노비재산을 가질수 없었고 생사여탈권도 고려와 달리 없었습니다. 아무튼 조선이 고려와 달랐던 점은 군사력이 매우 약했다는겁니다. 그외에 국가생산력, 백성들의 삶, 선진적인 정치, 농업생산력, 국가전체의 부등은 고려보다 조선이 훨씬 앞섰습니다. 조선이 망한건 그 부가 조정에 있지 않고 양반들과 평민들이 가지고 있어 군사력에 투자하지 못했고 많은 백성들이 군역과 세수를 피해 노비가 되면서 군사를 모을 군력이 모자라면서 자연스러운 군사력약화가 주원인인거지요. 이제 임진왜란를 불렀고 구한말에도 전국의 제대로된 군대가 고작 삼만명뿐이니 일본군과 청국군,러시아군이 마음대로 조선반도에 들어와 활보하게 된거죠.

    • @아름드리아름드리-f9b
      @아름드리아름드리-f9b Рік тому

      @@ego6929 먼 개소리를 이리도 주옥같이 써놨냐???? 그렇게 평민이 잘살던 조선인데 대궐앞도 초가지붕천지였냐?? 노예와 노비가 다르다고??? 남자노예 노 여자노예 비를 합쳐서 노비라고 부른거다..외거노비란 한집에 다 못사니까 여러집에 노예우리 만들어 새끼치면 또 노비가 늘어 40%이상이 노비였던 나라는 전세계에 조선이 유일했고..그것도 외국약탈해서 만든 노비도 아니고 자국민을 노비로 삼더니..지금은 북조선이 노예국 조선을 본받아서 전국민을 노비로 만들었지..

    • @김가네백수
      @김가네백수 Рік тому

      조선이 신라나 고려시대보다 생산력이 엄청나게 좋았을거라고 못 배운 무식한 소리들 하시는데 이양법 아시죠? 그게 조선후기 그것도 구한말이나 되어야 제대로 사용함 농지개간도 일제시대나 되어야 폭팔적으로 늘어났음

    • @주아주아-l3u
      @주아주아-l3u Рік тому

      조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왕조
      반역의 왕조
      지금의 북괴다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쇄국

    • @Vyrw
      @Vyrw Рік тому +1

      ㅈ선 ㅉㅉ

  • @고닉-k2u
    @고닉-k2u Рік тому +106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황금의 도시라고 불렸을 정도로 금이 굉장히 많았다고 전해지고 실크로드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서 아랍상인들과의 교류도 굉장히 활발했다고 함.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2

      실크로드를 모르시는건가요?
      실크로드는 시안에서 끝납니다 먼소리신지

    • @홍-w6r
      @홍-w6r Рік тому +2

      실크로드가 왜 나오노 ㅋㅋㅋㅋ

    • @개백구-w9w
      @개백구-w9w Рік тому +4

      ​@@세상어렵네그건 주 경로구요 부 경로로 해상육로로 교역이 있었습니다만 ㅡㅡ...

    • @lielhan5290
      @lielhan5290 Рік тому +2

      지금 일본을 뜻하는 japan의 어원인 '지팡구'가 황금의 나라 신라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세상어렵네네, 그래서, 윗글은 즁귝의 경주(서경)에 대한 내용일겁니다.
      현재 한반도의 경주(동경)이 아닌...

  • @TV-er5jl
    @TV-er5jl Рік тому +27

    신라가 3국통일하고 그렇게 번영했으니 이정도는 당연한거같은데

  • @평온한하루-j6y
    @평온한하루-j6y Рік тому +23

    실제로 경주에 복원해놓으면 좋겠다

  • @joony300
    @joony300 Рік тому +10

    오늘 경주 와사 불국사 석탑이랑 설굴암을 보며 든 생각이 그 당시 얼마아 돈이 썩어났길래 이런걸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충분히 영상에 나오는 주장이 근거있다고 생각함

  • @문동은-w3t
    @문동은-w3t Рік тому +77

    6두품 출신인데 어렸을때 봤던 경주모습이랑 거의 똑같네요

    • @레드향너무좋아
      @레드향너무좋아 Рік тому +7

      ㅋㅋ

    • @hyeeuunni
      @hyeeuunni Рік тому +8

      ㅋㅋㅋㅋㅋㅋㅋㅋ6두품 ㅋㅋㅋㅋ

    • @hy454
      @hy454 Рік тому +4

      동은아 복수 그만하고 니 삶을 살아

    • @YJYSYHY
      @YJYSYHY Рік тому +3

      신라에서 엄청 유명하신 6두품
      원효= 설사 ... 아드님 설총님의 후손? 이신가요??

    • @YJYSYHY
      @YJYSYHY Рік тому +4

      아님~ 당나라 유학가서 관리도 되신 고운 최치원선생님 후손이신가요??

  • @kilkongpark1963
    @kilkongpark1963 Рік тому +29

    책보고 내용이 논리적으로 맞는다
    팔층탑의 삼국사기에 내용을 보면 알수 있다

    • @승풍파랑
      @승풍파랑 Рік тому +8

      황룡사 9층 목탑
      제1층은 일본(日本), 제2층은 중화(中華),
      제3층은 오월(吳越), 제4층은 탁라(托羅),
      제5층은 응유(鷹遊), 제6층은 말갈(靺鞨),
      제7층은 단국(丹國), 제8층은 여적(女狄),
      제9층은 예맥(穢貊)이다.”

  • @cosmic_view
    @cosmic_view Рік тому +62

    저런 신라보다 못한 초가집에 같은 민족을 노비로 만들어 살던 조선은 심지어 중국의 반식민지로 살아가던 나라였다ㅡ 비교된다

    • @주아주아-l3u
      @주아주아-l3u Рік тому

      금어정책에 국가의 정책이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농사만 짓게 했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받아 정치인들 뱃속만 채우고 중공에 사대주의 장사도 무역도 퇴화시킴 숭유억불정책 지금의 북한과 같다

    • @Vyrw
      @Vyrw Рік тому +4

      500년동안 식민지

    • @user-jc62a7v28
      @user-jc62a7v28 Рік тому

      국민 40% 노비
      교류 막아버림
      이과, 군인, 예술 천대
      500년간 충실했던 중국 반 따까리
      성차별로 국민 절반을 갇혀 살게 함
      신라는 창고로도 안 쓰던 초가집에 대부분이 거주
      양반도 집에서 책만처읽음
      국민 중 4%만이 노비
      실크로드 끝자락에서 활발히 교류
      이과, 군인, 예술, 문학 모두 발전시킴
      삼국 통일
      성차별 거의 없음
      자유롭고 선진화된 삶
      기와집으로도 모자라서 금칠한 집에서 거주
      딱 봐도 누가 이겼는지 감이오죠?

  • @희캐럿
    @희캐럿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진짜 신라수도가 저리 비슷하다고함
    역사적그날에도 나옴,꼭 일본 헤이안시대?같은 느낌이 느껴질정도임
    옛날역사적그날에 보여주는데 수로,
    사람다니는길,마차다니는길 따로 있는데
    경주땅에서 그 흔적이 있더라고요
    신기했던 기억

  • @kyung6115
    @kyung6115 Рік тому +6

    그으름난다고 숯으로 밥해먹엇다니 얼마나 잘살았는지안다 불국사 여러사찰 30년들여 지였다는걸 금도 많이발굴되고 세공기술도 뛰어나다

  • @구루구루-w7j
    @구루구루-w7j Рік тому +5

    천년 수도라서 가능성 매우 높음..

  • @user-fo1ip1pd7n
    @user-fo1ip1pd7n Рік тому +50

    조선왕조 500년간 이나라에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걸까?
    삼국시대보다도 못한 거지나라를 만들엇네

    • @note9591
      @note9591 Рік тому +9

      관리들의 횡포는 기본, 가짜양반들이 판치고 다니며, 후기에는 세도정치

    • @최성린-l9n
      @최성린-l9n Рік тому +6

      조선시대 60~70%가 양반
      나머지 천민 농민 백정
      길거리는 각종 오물과 불청결한 거리

    • @pjw-75justice
      @pjw-75justice Рік тому

      고려도 별볼일 없었지

    • @niro8002
      @niro8002 Рік тому +1

      조선은 거지나라가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초가집에서 불결한 환경에
      일가족이 한평남짓한?방에서
      벼룩 이 쥐가 끓는데서
      대부분 생활 했다고 해요..
      기와집은 왕과 대감 정도..
      삼국시대 고려시대는
      의자에 앉고 침대에서 잤는데
      조선시대는 좌식으로 방안에 앉아서 생활 그래서 오다리와 허리통증 환자가 많았음

    • @어리버리-c4p
      @어리버리-c4p Рік тому +3

      상업 천시, 외교 외면

  • @영혼조각가
    @영혼조각가 Рік тому +31

    사람들이 과거라고 하면 조선만 생각하시는데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는 국제 상업국가로 조선시ㅐ보다 월등히 잘 살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견제했기 때문에 풍족하게 못 살았습니다.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경제력이 없는 시대이고 자금유동성이 제로에 가까운 시대입니다

    • @ego6929
      @ego6929 Рік тому +3

      그건 매우 잘못알려진 내용입니다. 조선시대가 신라와 고려보다 더 잘살았습니다. 물론 역사의 부침이 있고 대기근이 있을때도 있었지만 그건 신라,고려시대도 마찮가지입니다. 세국가모두 500년에서 천년이나 된 국가인데 가장 안좋았을때의 조선만 생각해서 비교하면 오류가 생깁니다. 농업생산량만 따져도 세종~성종시기에 이미 고려시대의 40배나 많은 생산량을 기록했으며 무역규모도 오히려 고려보다 조선의 무역이 더 규모가 컸습니다. 그런데도 고려무역이 더 알려진건 고려때는 중국의 힘이 크지 않아서 여러나라들이 서로 경쟁하고 다투던 시기라 멀리 중동지방에서도 무역을 하려 올만큼 여러나라와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조선시대는 중국이 통일국가를 이루면서 상대적으로 조선이 만나는 국가가 줄어들었다는것이 다른 뿐입니다. 또한 조선뿐 아니라 신라와 고려역시 노비가 존재했으며 오히려 이 세국가중에 조선이 가장 노비에게 관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만 유독 노비국가로 낙인찍혔지요. 그외에 인쇄술도 조선시대가 더 발달했고 천문학과 수리학도 조선시대가 더 뛰어났습니다. 조선이 신라,고려만 못한건 선조실록에도 나와 있듯이 군사력의 약화에 있습니다 만약 조선이 군사력까지 고려,신라만큼 강했다면 우리나라 역대국가중 고구려를 넘어서는 최강대국이 되었겠지요. 조선은 신라와 고려보다 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던 국가입니다. 일부 악한 군주가 있었고 양반들끼리의 다툼이 있었지만 그건 정치적 문제이고 백성의 삶은 서구나 동양이나 다 힘들지만 그중에 조선은 당시 기준으로 선진국이라고 할만큼 정치적으로 앞섰고 백성의 삶도 상대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 @Sandbox3600
      @Sandbox3600 Рік тому +9

      세종성종영조정조때만 좋았지 나머지는 솔직히 부정부패의 끝판왕이라 진작 사라져도이상할거없는 나라아니였음?

    • @woodstar7231
      @woodstar7231 Рік тому +1

      ​@@ego6929 보는관점에서 해석이
      틀려지지만, 그시대때의 세계사적흐름을 따라가지못하고
      그국가안에서도 개혁이나 혁신의시도가 억압받고 외세에의해
      권력찬탈을 당했는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역사는 그나라와 민족의
      전체를 보고 논하는것이지,
      한부분과 잘했던분야만보고 논하는것은 아니라고봅니다,
      아무리찬란했던문화도 그나라전체의 힘이 그시대를
      선도하지못했다면 도태되는것이고,
      명맥을 유지하지못하죠,
      역사를 배우는것은 실패하고 잘못된길은 가지말자라고 배우는게 정도아닌가요?

    • @ego6929
      @ego6929 Рік тому +4

      @@Sandbox3600 태조부터 선조때(1952년이전)까지 200년이상 성세를 누렸고 숙종부터 정조까지도 동시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국민들의 삶은 비교적 괜찮았습니다. 동시대의 서양국가들 조차도 사실상의 노예들인 경우가 많고 일본의 경우는 다이묘밑의 영주민들은 생사여탈권까지도 영주의 권한아래 있었으며 거주지이동의 자유도 없는곳이 많았고 조선에 비해 훨씬 많은 세금을 내야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걷힌 세금으로 군사력을 키웠다는건 고려와 비슷하고 일본의 강한 군사력의 뒷받침이 되준건 사실입니다.

    • @ego6929
      @ego6929 Рік тому

      @@woodstar7231 조선이 고작 50년짜리 국가도 아니고 전세계에 500년이상 지속된 왕조가 몇개나 되나요? 그걸 각 국왕별로 반세기별로 나누어 보면서 이때는 잘했고 이때는 못했고를 연구하는게 아니고 뭉뚱그려 조선전체가 잘못된걸로 보는건 진짜 우매한겁니다. 님이 위에 적었듯이 잘했던 분야만 보고 논하는것은 아니라면 왜 못했던 분야만 보고 논하는건 당연히 그래야할까요. 이런것 조차도 다 잘못된 역사관이 심어진 결과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역사를 배우는것은 실패하고 잘못된길을 가지말자는건 맞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잘한것도 배워야하며 그시대를 논하려면 그시대의 관점에서 봐야지 현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오류를 만들어냅니다.

  • @mohikenatogengacetroneight9278
    @mohikenatogengacetroneight9278 Рік тому +11

    빨랑 복원 했으면 조켔다.

  • @신정우-l8o
    @신정우-l8o Рік тому +5

    경주는 세계 적인 도시임 신라 천 년
    한국불교의 자존심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 @lielhan5290
    @lielhan5290 Рік тому +1

    확실히 틀린 부분들이 있네요. 전성기의 경주에는 황금기와나 유리기와를 사용한 건물이나 거대 건물들도 있었는데 제대로 표현이 안 되어 소박하게 보입니다.

  • @권기왕-c3z
    @권기왕-c3z Рік тому +1

    좋은 컨텐츠 많이 올리시기를 응원합니다.
    원더풀신라~~

  • @ba-ty7mk
    @ba-ty7mk Рік тому +20

    17만호의 기와집이면
    한집 6명쳐도 102만명~
    3대가 같이살고
    집안 하인가족들도 계산시~ 엄청난 숫자~

  • @김형민-v7j
    @김형민-v7j 11 місяців тому +1

    1) 고려영토 옛지도발견.우리가 모르던 영토 youtu.be/ _N2L4NbdZzA?si=CTAnZYkK6pd88BAK 2)거란,요나라위치 youtu.be/Sn- CyiVb2wg?si=_sMnwvHtf4YrnwDw 3) 고려낙타의 비밀 youtu.be/ CYfkbYlvl_w?si=0z7npqPZP4kw42yc 4)고려강화의 위치 ua-cam.com/video/cPDm1Kw59AbM/v-deo.htmlsi=-9KBM caEAlxATs3 5) 고려서경지도 youtu.be/ KzaJW_UjydM?si=Alu3aGQvWSkTf455

  • @maye1672
    @maye1672 4 місяці тому

    경주 전체를 헤집어 놓지는 못하더라도 왕궁근처 부지 싹 다 파헤치고 복원했으면..

  • @gwaksdGSDulsan
    @gwaksdGSDulsan Рік тому +19

    당시 서라벌 인구는 100만명 이었다고 함.
    세계 5대도시 중에 해당 된다고..

    • @mrhou88
      @mrhou88 Рік тому +4

      이건 낭설

    • @dufwjd
      @dufwjd Рік тому +4

      @@mrhou88 백제와 고구려는 76만호 군사만 100만이었다 사료가 있으므로 통일 신라는 서라벌 인구100만 낭설이 아닌 정설이 맞음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한국땅에
      옛날에 100만 도시가 있었나요?
      이 좁은 땅에...

    • @선호-j3b
      @선호-j3b Рік тому

      ​@@myj2200017만 호라니까 100만 가까이 될수도..

    • @벽을뚫는포신
      @벽을뚫는포신 8 місяців тому

      @@myj22000 한반도 땅은 사실 세계적으로 봐도 그닥 좁지 않아요.

  • @뜨멍-f5c
    @뜨멍-f5c Рік тому +5

    9층 목탑은 기와 무게가 엄청날텐데 어떻게 견딘거지.. 신기하네

    • @라이라이-v1v
      @라이라이-v1v Рік тому +1

      저렇게 탑의 모습이 아니라 누각처럼 벽이 없는 모습일꺼라는 주장도 있어요
      아니면 불일사 석탑에서 출토된 9층 청동탑도 한번 보세요

    • @Eagles-ly1mz
      @Eagles-ly1mz Рік тому +6

      단 한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 목탑 인류 최고의 건축물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제생각은 장선님의견에 보태서
      1층이 사람이 올라갈수있는 1층이 아닌겁니다
      우리가 아파트 1층생각하고
      30미터 이러니
      물리적으로 나무로 버틸수있나란? 의심이 되는거지요?
      1층이 1미터면 9층이면 9미터
      3층높이 될법하지요,
      장육 존상도 1장이 사람키니
      6장 9미터
      그럼 건물은 10-11미터정도 그럼 4층 문제없지요.
      지금도 콘크리트 철근없이
      30미터 목조 기와 건물 만들기 어려울겁니다
      기와무게 어마어마합니다
      저게 1층 기둥에 집중된다

    • @Eagles-ly1mz
      @Eagles-ly1mz Рік тому

      @@세상어렵네 그래서 인류가 만든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소리도 듣는겁니다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Eagles-ly1mz 못하는걸 한다는건 뻥이라고 하는겁니다

  • @migyeoung58
    @migyeoung58 Рік тому +6

    지금도 땅넓은 3대 도시중 하나로 뽑음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경주가요?

    • @migyeoung58
      @migyeoung58 Рік тому

      @@myj22000 넹 찾아보세유ㅎㅎ

  • @Cute_Joyuri
    @Cute_Joyuri Рік тому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리단길의 건물을 철거하거나 경주 어딘가에 도로 깔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건물터나 왕릉급 고분들이 발견되는거...

  • @hanbaedal
    @hanbaedal 3 місяці тому +1

    신라의 장보고는 산동성지역도 점령하고 지배했으니 그 위세가 가늠이 됩니다.

  • @박진홍-t3o
    @박진홍-t3o Рік тому +13

    비올때 경주 왕성에서 불국사까지 처마 밑으로 이동하면 비를 거의 맞지않고 이동할수 있었다네요.
    지금 경주시 넓이가 서울시보다 2배이상 넓은데 당시엔 고층빌딩도 없었기에 200 만명정도의 인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 @EKLee-is8pu
      @EKLee-is8pu Рік тому

      저도어려서 외할매 한테그말씀 들어는데요

    • @TV-er5jl
      @TV-er5jl Рік тому +2

      200만이면 덜덜 고층빌딜없이 그정도면 토박이 아니면 길잃기 쉽상이네요 건물도 다 똑같이 생겨서 ㅋ

    • @자택경비원-x7d
      @자택경비원-x7d Рік тому

      저도 그 이야기 어릴 때 들었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ㅋ

    • @CapJJangggg
      @CapJJangggg Рік тому +2

      거짓입니다. 그 정도 인구를 지탱할 식량의 잉여가 축적이 안됩니다 농경이 발전을 하지 못했어요, 어느 장도 농법이 축적되고 발전한 조선시대 전기 중기에도 조선 전체 인구가 500만이 안됬는걸요.... 한양 도성인구는 조선후기에도 30만이 안됬습니다.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3

      ​@@CapJJangggg
      뭔가 이상하죠?
      책보고

  • @패미박멸
    @패미박멸 2 місяці тому

    경주 인구는 110만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 경상도 경주가 아니라 안휘성 합비시가 당시 경주이자 신라의 수도 금성입니다.

  • @mugen3861
    @mugen3861 Рік тому +22

    저랬던 한반도를...
    조선이 망쳐놨다
    잘한건 한글 창제밖에 없고
    없었더라도 없었으니 한글은 무의미 하다

    • @Eagles-ly1mz
      @Eagles-ly1mz Рік тому +6

      한글은 1920년대 만들어진거고 조선시대에 만든건 훈민정음

    • @Vyrw
      @Vyrw Рік тому +3

      @@Eagles-ly1mz러니까 시스템은 조선이, 한글은 일제강점기에 신분제 소멸하면서 점차 부활했다는거네? 조선은 진짜... 그 좋은글자두고 뭐했냐 존나빡치네 진짜 ㅡㅋㅋㅋ 신라 2000년동안 가게 냅두지

    • @Eagles-ly1mz
      @Eagles-ly1mz Рік тому

      @@Vyrw 한글은 유키치 선생이 사비를 털어서 재정비하고 보급하고 가르친거(이때 중국말 발음기호 4 개를 없애버림 그래서 지금 중공파들이 그 4개 부활하자고 생떼를 쓰고있음)
      거기에 조선총독부 산하 한글학회(조선어학회)에서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을 조선어맞춤법이라고 1933년에 반포해서 현재까지 쓰는거
      거짓선동 하는 애들이 진짜 한글학회는 민간단체라고 하는데 민간단체도 있긴 했지만 조선총독부에서 자기 단체가 만든 한글을 안쓰고 민간단체가 만든 한글 쓴다고? 총맞았나? ㅋㅋㅋ

    • @주아주아-l3u
      @주아주아-l3u Рік тому

      맞다

  • @일상기록-k7y
    @일상기록-k7y Рік тому

    나원초 계중 경주여고나온 경주토박인데요. 저거보니까 지금보다 저때가 할꺼 많았을것 같아요. 경주에 할꺼 너무 없음.. 지금은 부산으로 감.

    • @복딩이-p2j
      @복딩이-p2j Рік тому

      계중옆에 자리잡고 산지 25 년
      길 건너면 황성공원,,
      내고향 대구보다
      더 오래살고 정든곳
      좋아요~

  • @minpark3078
    @minpark3078 Рік тому +13

    옛날 경주는 한양급었네

    • @TV-er5jl
      @TV-er5jl Рік тому +6

      그이상이지않을까 싶습니다 전체가다 기와장 올릴만큼이면.... 조선시대보다 신라시대가 기와장이 더 비쌋을거 같은데

    • @Vyrw
      @Vyrw Рік тому +1

      한양?ㅋㅋㅋ 한양따위가 어딜ㅋㅋㅋ 지금의 서울정도 되겠지

  • @늘푸른-e8y
    @늘푸른-e8y Рік тому +1

    지금도 땅만파면 유물이 나오는경주!

  • @김콩-w3h
    @김콩-w3h Рік тому +8

    조선시대엔 초가집 투성이인데.
    더 과거인 신라시대가 더 발전된게 신기행.

    • @넌내꺼다
      @넌내꺼다 Рік тому

      조선시대에 왜 초가집투성이었냐면 세종대왕이 노비가 양반이되는 정책을 폐지시켜버려서 노비가 거의 90프로가 되는 사건이 발생해요 그렇게해서 세종대왕이 중국한테 노비여자들 다팔고 노비남자들은 망노동으로 팔아버리기때문에 중국에 잘생긴 미남이 존재하게되는겁니다,,,

    • @황재영-j1s
      @황재영-j1s Рік тому +1

      아르헨티나가 옛날 세계 삼대부국이고 로마는 십오세기 유럽과 비교해보면 지금의백년이 그때의 백년차이가 아니니 조선시대 금관과비단옷이

  • @lielhan5290
    @lielhan5290 Рік тому +1

    지금 일본을 뜻하는 japan의 어원인 '지팡구'가 황금의 나라 신라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시라' 또는 '신라'로 불리운 신라는 발해로 인해 지금 남한처럼 육로로 갈 수 없고 배로 가야했기에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섬'으로 페르시아, 아랍과 유럽 등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신라는 섬2개라고 지도에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중국, 한국
      서경, 동경
      그렇다네요...

  • @MSN38S
    @MSN38S Рік тому +10

    당시 삼국중 인구가 가장 적었던 신라의 수도 경주가 저정도 규모였는데 비슷한 시기의 백제의 사비나 고구려의 평양은 얼마나 거대했겠냐고
    게다가 조선초기 까지만해도 ‘초가집’은 전체 가옥중 극소수였음 대부분 평민가옥들도 대부분 기와집이였고
    초가집이 급격하게 많아진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

    • @병춘김-w5s
      @병춘김-w5s Рік тому

      일본 때문에 조선이 망하고. 40%의 노비가 해방되고.평균수명이 늘고 다 일본때문이야

    • @99호-d7e
      @99호-d7e Рік тому

      조선은 지금의 북괴라고 보면 됨. 중국의 주자 성리학이 나라를 병들게 만듬.

  • @Michaelcoffee
    @Michaelcoffee Рік тому

    로마는 손권하고 편지 했으니 신라도 가능성 높음

  • @브라질리아-b7n
    @브라질리아-b7n Рік тому

    해방 후.
    1970년대 초까지도
    초가집이....
    뭐가 발전인지..

  • @Jvista15
    @Jvista15 Рік тому +24

    현재 허페이에 있습니다. 금성이라고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경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거가가 서경 인가보군요.
      감사합니다.

  • @super-JEI
    @super-JEI Рік тому +2

    한반도 갱상도에 저런 큰 도시가 존재할수는 업어요.신라는 대륙에 있었고 대륙의 넓은 땅과 인구 물자가 있기에 신라는 존재할수 있었습니다. 경주는 안휘성 합비시에 있었다는게 재야학계의 정설입니다. 합비시 옆에 토함산이 있는데 화산 분화구가 있었서 토함산임을 증명합니다.

  • @pinebud
    @pinebud Рік тому +16

    신라의 여러 수도 중 하나였을 경주였겠죠..저런 대단한도시를 건설하려면 나라의 강역이 한반도의 몇배를 아우를 것이라 짐작됩니다.

    • @벽을뚫는포신
      @벽을뚫는포신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역사 왜곡은 하지 말자. 신라의 최대 영토는 한반도를 벗어난적이 없음. 망상 좀 그만 쳐해라.

    • @pinebud
      @pinebud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벽을뚫는포신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고 상말하지 말자!!

  • @k-anrndghkw9824
    @k-anrndghkw9824 Рік тому

    저걸 복원했어야 하는데

  • @우잼준
    @우잼준 Рік тому +1

    흥망성쇠

  • @마리사-b1m
    @마리사-b1m Рік тому +8

    와 대단하다...한때 전유럽을 휩쓸었던 위대한 신라

    • @시라소니-p8j
      @시라소니-p8j Рік тому

      쥐약처묵엇냐...

    • @趙寿衍-z3e
      @趙寿衍-z3e Рік тому +3

      이건 또 먼소리여.
      신라가 전 유럽을 휩쓸었다고?

    • @박f
      @박f Рік тому

      @@趙寿衍-z3e워워 냅둬라 말한다고 니 의견을 받아들 일 사람같냐

    • @벽을뚫는포신
      @벽을뚫는포신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아 제발 환단고기 좀 그만 쳐읽어라 신라가 왜 유럽을 휩쓸어?

  • @레오의꿈
    @레오의꿈 Рік тому +5

    전기 통일신라의 수도 경주는 중공대륙 안휘성에 있다

  • @HA-ie4cf
    @HA-ie4cf Рік тому

    저건 뻥 같다. 국뽕! 초가집에 살던 때가 70년전이다.

  • @여지하
    @여지하 Рік тому +2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내륙 남부였겠지....
    지금의 경주는 동경이었을 테니까...

  • @re5633
    @re5633 Рік тому +6

    사실이면 조선 한양보다 잘 사는데요

    • @_geotrix3978
      @_geotrix3978  Рік тому +2

      자세한 내용은 아래 동영상 링크를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ua-cam.com/video/8TsVOFlzjK0/v-deo.html

    • @황재영-j1s
      @황재영-j1s Рік тому +1

      로마가 십오세기영국보다 잘살았을걸로

  • @terrarosa7
    @terrarosa7 Рік тому +5

    복원 하자 관광객들 많이 오게.

  • @Mystic_86
    @Mystic_86 Рік тому +4

    통일신라가 계속이어지고 근대화가 이뤄졌다면 표준말이 경북사투리였것노

  • @이윤지-e1n
    @이윤지-e1n Рік тому

    근데 오히려 몇천년후 조선시대때는 초갓집으로 몰락했는지

  • @Eagles-ly1mz
    @Eagles-ly1mz Рік тому +3

    개목줄도 금줄이었으니 ㅋ

  • @썬그리독
    @썬그리독 11 місяців тому

    내 생각엔 신라는 중국에 있을거라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 @리에-d1x
    @리에-d1x Рік тому +1

    지금은 공사 벌려놓고 매꾸지도 않고 혼자 비평준화지역에 10년쯤 뒤에 살고있는 지역됬습니다 작년에 태풍불때 날라간 집앞 데크나 빨리 매꾸면 좋겠네요

  • @myoyou
    @myoyou Рік тому +1

    물론 반도는 아니었겠지만

  • @파산왕국
    @파산왕국 Рік тому +1

    복원좀 해주라

  • @공룡알후라이
    @공룡알후라이 Рік тому +12

    4500년 전에 피라미드도 지었는데 저걸 못 짓겠누ㅋㅋ

  • @Vyrw
    @Vyrw Рік тому

    신라의 연장선이 한국이고
    조선의 연장선은 북조선임ㅋㅋㅋ

  • @shp2310
    @shp2310 Рік тому +9

    저시대 100만도시 전세계에 4개 있었음 바그다드 이스탄불 장안 경주

  • @복누나사랑해2
    @복누나사랑해2 Рік тому

    조선이 신라 이후에 국가가 맞냐고?

  • @실크로드다시보기
    @실크로드다시보기 10 місяців тому

    교통도 안좋은 곳이? 천년 도시로 부적합함.
    여기 신라라는 한자 ㅣ개도 안나옴.

    • @노을-l6j
      @노을-l6j 7 місяців тому

      지금 교통안좋은거랑 2천년전 경주랑 뭔 상관임? 지능이 부족하다고 홍보하는건가

  • @박미스터블랙
    @박미스터블랙 Рік тому +2

    대가족 시절이고 상업인 공업인 노비까지 추가하면 한가구당 평균 10명만 잡아도 ㅋ 170만명이군 거기에 군대 합하면?
    역시 대륙 신라가 한반도로 수도 옮긴게 맞네 ㅋ

  • @Lee-hi3pf
    @Lee-hi3pf Рік тому +2

    한반도가 아니고 지금 중국대륙에 경주가 있습니다.

  • @Hell-Bovine
    @Hell-Bovine Рік тому +4

    경주 가보면 진짜 허허 벌판임.....ㅋㅋㅋ
    저거 가능함....

    • @926.lotto.no1
      @926.lotto.no1 Рік тому +2

      제가 경주 토박이 인데요 ㅋㅋㅋ 30년전만해도 한집에 최소 4명 많게는 6~7명씩 살았어요 ㅋㅋㅋ 지금은 인구감소여파지만 ㅋㅋ

    • @Cute_Joyuri
      @Cute_Joyuri Рік тому

      ​@@926.lotto.no1 놀이터에서도 기왓장 나오나요?

  • @myj22000
    @myj22000 Рік тому +2

    한국 경주(동경)가 아니라
    중국 경주(서경)일듯...

    • @노을-l6j
      @노을-l6j 7 місяців тому

      경주는 조선식 한자 지명이고ㅋㅋ 당대는 서라벌임 꼭 대륙설 말하는것들이 한자타령하는데 당시는 순우리말 지명들임

  • @super-JEI
    @super-JEI Рік тому +1

    당시 경주에 관한 국내외 문서의 서술을 정확히 제시하시고 갱상도에 경주가 존재 가능한지 설명하세요. 근거없이 상상으로 설명하시면 사실이 아니라 거짓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 @bgkhan4475
    @bgkhan4475 Рік тому +1

    조선초기 인구 최대로 잡아도 300만이 안됩니다.그런데 그보다 600년전 경주만 100만이 살 정도면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신라 수도를 찾아야겠습니다. 거기다 척박한 고산지대에 둘러 싸인 경주는 100만을 먹여 살릴 곡창지대도 없습니다.

  • @926.lotto.no1
    @926.lotto.no1 Рік тому +1

    경주인구 추산으론 100~120만명 정도였음

  • @월자장-s7n
    @월자장-s7n Рік тому +16

    당시 신라의 또다른 별칭은 '지팡구'였습니다. 일본을 의미하는 Japan의 어원인 지팡구. 황금의 나라라는 의미였답니다. 저 모습에서 조정해야 할 부분은 '유리기와','황금기와'도 많았다는 점입니다.

    • @djl3503
      @djl3503 Рік тому +3

      근거는? 신라 서라벌 경주가 지팡구인게? 첨듣는디?

    • @알럽잭팟
      @알럽잭팟 Рік тому +5

      지팡구같은소리하고있네ㅋㅋㅋ 할망구아니고?

    • @usujdscr
      @usujdscr Рік тому +1

      지팡구는 은의 나라인데요.은이 많이나서 금도많이 날것같 다고 예상해서

    • @월자장-s7n
      @월자장-s7n Рік тому +2

      @@djl3503 페르시아의 고서, 예전 KBS 다큐 등에 나왔죠. 발해로 인해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신라를 섬으로 알았답니다. 그래서 발해를 통해 무역하던 사람들은 '시라'로 불렀고, 바다를 통해 무역하던 사람들은 '지팡구'로 불렀답니다.

    • @cms9279
      @cms9279 Рік тому +2

      ​@@월자장-s7n 지팡구가 신라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무슨 헛소리인가요?
      지팡구라는 말은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서 나온 일본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고대 아랍상인들이 신라를 방문하고 황금이 많고 잘사는 나라라고 한 것은 사실이나 지팡구가 신라라고 하는건 헛소리에요

  • @무지개완두콩
    @무지개완두콩 Рік тому +2

    나 경주 산다 떡상 가즈아 경주살면 좋아요

  • @제임스웹-p3q
    @제임스웹-p3q Рік тому +3

    경주는 중국에 있다

  • @코스버핏
    @코스버핏 Рік тому

    식수는 어떻게 조달?

    • @_geotrix3978
      @_geotrix3978  Рік тому

      당시 해수면은 지금보다 높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천의 수량과 유역도 지금의 경주보다 많고 넓었겠죠.

    • @네로쓰-l7s
      @네로쓰-l7s Рік тому +2

      형산강 근처에 흐릅니다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네로쓰-l7s 저기요 형산강이 근처에 흐른다라니요 형산강은 현재 포항의 젖줄입니다
      고대 로마같은 수로시설이 없으면
      단 2키로 떨어져 있어도 도시형성이 어렵습니다

  • @핑크돼지-r8d
    @핑크돼지-r8d Рік тому

    왜같은영상이하나더있나유?잘보고갑니데이...하나는 내리도될것같아유...

    • @_geotrix3978
      @_geotrix3978  Рік тому

      하나는 쇼츠고 다른건 원본 영상이에요 :)

  • @무한불성-k7t
    @무한불성-k7t Рік тому +1

    7세기무렵 세계 4대 도시중 하나가 경주.
    장안,바그다드,콘시탄티노플,경주.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오백년이 암흑의 시대였음.

  • @아싸최우철
    @아싸최우철 Рік тому +3

    어째 천년이 넘는시간이 흐르느동안 시대가 후퇴를하냐…
    조선은 개거지처럼 살던데..

  • @AA-hd5ng
    @AA-hd5ng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삼국시대 건축에 비하면 경복궁은 진짜 초라하지..

  • @8perseus
    @8perseus Рік тому +1

    수도가 저정도라면 세계 역사에서 손꼽히는 도시인데, 그런 도시를 수도로 갖는 국가의 영토가 산지가 70%인 한반도의 절반일리가 없지.

  • @장00-v3o
    @장00-v3o Рік тому +2

    👍 👍 👍 👍 와

  • @chungsunghee2213
    @chungsunghee2213 Рік тому +2

    물이 충분했나요?

    • @_geotrix3978
      @_geotrix3978  Рік тому +4

      확실한 것은 당시 육지의 수량에 영향을 주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더 육지 안쪽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 그에 따르면 경주도 지금보다 수량이 더 풍부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 @정다운-g6t
      @정다운-g6t Рік тому

      형산강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강이 포항의 식수원이죠.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_geotrix3978 그렇게 해수면 상승했다고 하면 경주 감포에 대부분의 농지들 다 바닷물에 잠깁니다
      또 해수면상승에대한 명확한 기록도 없습니다
      현재 감은사지가 바닷가에 지은 절이 되는가요?
      그래봐야 해수면 2미터 내외일듯한데

    • @_geotrix3978
      @_geotrix3978  Рік тому

      @@세상어렵네 저는 농지들까지 잠길 정도로 해수면이 상승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기후와 해수면에 대한 근거는 세계적인 현상이므로 찾아보시면 잘 아실 겁니다.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_geotrix3978 해수면이 육지안쪽으로 있다는거 자체가 육지가 바다에 잠겼다는거 아닙니까? 당연히 논같이 낮은 농지는 잠깁니다
      아닌가요?
      해수면 상승에 따른 강수량 상승도 추정아닙니까?

  • @joungwookim3571
    @joungwookim3571 Рік тому +3

    한반도에 있던 도시가 아닌가 보지

  • @jamesdean1202
    @jamesdean1202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조선말 와서 망했지 뭐

  • @갸갹-v4e
    @갸갹-v4e Рік тому +4

    한반도에서 저게 가능하려면 기후가 오랬동안 좋고 진짜 막부리는 찐 노예들이 많아야함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Рік тому +5

      ㅋㅋㅋ 경주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에 있겠지~ 후대엔 한반도로 넘아왔지만~ 중국의 역사기록을 보면 당니라와 신라는 황하로 교류했음~

    • @nlp666ludi
      @nlp666ludi Рік тому

      ​@@scottpark4803 ㅇㅈ

    • @황재영-j1s
      @황재영-j1s Рік тому

      경주주변의 대농원등 논이 어마어마함 그때 경주인구가 백만으로추정되니 세계삼대도시에 뽑히기도했다는 학설도 지금도 서울주변이 이천만이 살고 뉴질랜드인구는 땅덩이와 인구수는 비례하지 않겠죠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Рік тому

      @@황재영-j1s 일단 초 중기 신라 일식기록은 중국임. 거기에 경주 토함산 팔공산 등등 현 한반도 지명 그대로 나와있음. 특이한 건 거기에 중국 유일 김일제 후손 김씨들 집단 거주지임. 또한 중국이 모든 역사를 구라치는 게 중국은 역사는 삼국지 등등 모두 서쪽 영역에 국한됨. 현 시안 중심임. 중국 동부는 오랫동안 백제 신라의 영토였음. 아직도 신라와 백제 지명들 많음.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황재영-j1s 교통이 불편하고 호족 세력이 강력한 고대에 한도시가 100만이라 하면 내륙운하가 있어야가능함 신라주변 땅덩어리로 불가능함

  • @berckylovr
    @berckylovr Рік тому +1

    대륙신라쪽 기록 같은데

  • @노승훈-s8r
    @노승훈-s8r Рік тому

    2층 건물이 거의 없는 도시에 25층 탑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어렵다 ㅜㅜ
    일본에는 복층 건물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없는것을 ㅜㅜ

    • @BergyJJ
      @BergyJJ Рік тому

      조선 말기 때문에 그 이전 고대사들이 같이 평가절하되면 안된다고 봅니다 ㅠ

  • @puyeeryyy
    @puyeeryyy Рік тому +4

    책보고 유튜브 보세요!
    경주는 중국에 있습니다!...일제가 만들어준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 @구름나그네-o6p
    @구름나그네-o6p Рік тому +1

    멋있구만!

  • @Vyrw
    @Vyrw Рік тому +1

    신라.... 원래 조선보다 훨씬 예쁘고 잘살고 유명했던 나라인데....

  • @gotoeB99
    @gotoeB99 Рік тому

    조선시대 경성보다 좋아 보이네..... 근데 경주도 대구만큼 더운 지역임 .... 생각보다 눈도 꽤옴 ㅋㅋ

  • @gn.l3762
    @gn.l3762 Рік тому +14

    책보고에서 경주가 중국 안후이성에 있다고 하던데. 어디 경주가 진짜야요.?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Рік тому +7

      아마 내 생각에는 나당전쟁까지는 중국에 있었음. 후대 통일신라가 망조가 들기 시작하면서 한반도로 넘어온 듯~ 일식기록보면 좀 더 시점을 정확히 파악가능할 듯~ 일단 현 경주는 화산이 아니고 불국사도 호수가 있을만한 곳이 아님~ 경주는 수많은 고분들도 진짜 그 시대 왕들의 무덤인 지 다시 봐야함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Рік тому +8

      그리고 제가 중국 살면서 확실히 아는 건 고당 전쟁 시 현 만주에서 싸움 일어난 것은 아님 왜냐하면 당태종이 연개소문에 쫓겨 산동성까지 도망왔다고 현지인들도 다 앎~ 만주에서 싸웠다면 있을 수 없는 일~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Рік тому

      @user-my4um2pj5i 쳐 나오는 거 처음 보나? 왜 그 생각은 안 해보셨나? 존나 후진 동네라 외세의 개입이 적은 지역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화려한 백제의 수도는 왜 성터조차도 안 보이냐? 그 전라도 충청지역에?? 백제의 지방정권인 일본은 아직도 유산이 화려한데 그보다 천년이 앞서는 백제의 흔적은 어디갔나? 그 대단한 고구려의 수도의 흔적은 어디갔나? 발해는? 부여는?? 한가지 말하면 중국 산동성의 수도 제남의 제 자는 춘추5패의 제자가 아니라 백제의 제 자임. 토함산은 화산인데 지금 토함산이 화산임? 개구라임. 일제시대때 역사조작이 이루어졌고,그전에 조선은 여진족 이성계가 명나라와 딜해서 고구려의 승계를 포기했음. 그래서 고대사 다 폐기했고, 중국 영토에 대한 영유권도 포기했음.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Рік тому

      @user-my4um2pj5i ㅋㅋㅋ 아주 개소리를 하세요. 역사ㅈ도 모르면서 신념거지고 말 함부로 하기는. 그냥 국사책이나 읽고 그게 전부인양 사세요. 고대사부터 쳐다보면 뻔히 답 나오는데 그걸 원천적으로 막으니, 이 꼬라지 나지. 이보세요. 산동반도가 원래 우리땅이여~ 고려와 요나라의 국경부터 파악해 보시기를~ 신라가 보존되요? ㅋㅋㅋㅋ 존나 웃기네~ 신라가 어디서 부터 태생했는데? 경주부터 태생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경주 수도성의 흔적은 잘 보존되었으면 어디 있는데?? 궁성의 흔적조차 없는데???

  • @종자인
    @종자인 Рік тому +1

    신라의 수도가 아니라 사료에 동도라했음

  • @CapJJangggg
    @CapJJangggg Рік тому +1

    100만 인구 같은 낭설은 ㅎㅎ 웃음으로 ~~ 조선후기 가장 큰 도시인 한양도 30만이 안됬고, 농산물의 잉여가 조금 아주 조금 생기고 농법의 발전이 축적되고 발전한 조선도 후기까지 인구 500만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ㅠㅠㅠㅠ

    • @권기왕-c3z
      @권기왕-c3z Рік тому +1

      그건 당신의 역사관과 식견의 협소함이지요.
      아라비아의 역사서에도 통일신라 수도 셔블(서라벌:지금의 경주)에 관한 현란했던 경관의 기록이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종착역.
      로마 ㅡ장안ㅡ금성(경주)세계3대 도시 !

    • @CapJJangggg
      @CapJJangggg Рік тому

      @@권기왕-c3z 역사가 왜곡이 되어있는걸요 ㅠㅠ 고고학적, 경제학적 관점으로 역사를 확인하면 과장된 것들이 수두룩 빽빽입니다.... 우리나라가 쌀밥을 양껏 먹게된 것고 최근의 일이에요 ㅠㅠ 통일벼....

    • @CapJJangggg
      @CapJJangggg Рік тому

      @@권기왕-c3z 전공자입니다...

    • @dufwjd
      @dufwjd Рік тому

      신라가 당과 연합해서 삼국 통일 전쟁할때 당의 조건이 식량 원조를 조건으로 전쟁을 하기로 했었으며 식량 원조가 없으면 절대 전쟁 안한다고 했는데 니말대로라면 신라가 무슨 재주로 조선보다 땅크기가 작고 인구도 없었던 식량을 원조하며 통일을 했을까? 나당전쟁에선 당나라가 신라에 때려박은 병사만 최소 20만에서 30만 그상이라는 추론도 가능하거니와 삼국 통일전쟁땐 겨우 10만정도 수준이었다 조선의 절반수준의 땅과 천년전 인구면 조선후기보다 훨씬 작을텐데 신라는 전쟁을 어떻게 해서 20만30만 병력을 막았지? 아직까지 식민사관에 처박혀 전공자라고 떠들며 조선 역사만 달달 외우고 일본이 심어놓은 역사만 믿어 한반도에만 갇혀 사는 버러지가 있구나 공부 다시해야겠다 전공자타이틀 떼거라 벌레 ㅅ ㅐ끼야

  • @세상어렵네
    @세상어렵네 Рік тому +2

    사실 똥싸는 소리조
    먼 바다건너 금으로 만든 나라인
    지팡그가 있었다와같은

  • @빵콩이-z8b
    @빵콩이-z8b Рік тому

    댓들아. 조선 초기만해도 양반 수가 적었음. 그 이전이면 귀족이 더 적었을거고. 신라 왕경인은 또 달랐을거임

  • @Ronaldo-x1p5w
    @Ronaldo-x1p5w Рік тому +1

    그 경주가 현 경주일까?

  • @오현승-o8h
    @오현승-o8h Рік тому +1

    그래봐야 몽골인한태는 그저 불타기 좋은 캠프 파이어다.

  • @DUDUNGA25
    @DUDUNGA25 Рік тому

    조선보다 낫네

  • @김민영-c9e
    @김민영-c9e Рік тому

    실화가?

  • @pandol8214
    @pandol8214 Рік тому

    과연 1400년 ..b.c 이 이집트는 상상안햐도 피라미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