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8월쯤에 입산하여 다음해 1979년 음력 사월초파일 수계식에 나를 제자로 삼아 사미계를 줄 스님이 나서질 않아서 할 수없이 눈물을 머금고 양력 5월 25일쯤인가 하산하였는데~! 지금쯤 생각해보니 다행히 절을 잘나왔다는 생각이난다 45년전인데~! 내가 세속에 나와 생활해보니 수행이란 절간에서 하는것이 아니란것을 깨달았다 거친 세파속에서 지지고 볶고 튀기며 세속에서 온갖 풍파를 겪으며 닥쳐오는 그 모든것을 헤치며 과연 /나라고 하는 인간은 무엇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것인가? / 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묻고 물으며 자신을 마치 펄펄끓는 용광로에 던져넣어 벌겋게 녹아지고 달궈지면 때리고 때리며 나의 본성이 무엇인가? 를 나의 진쪽이 남을때까지 또 모진 풍파에 또 던지고 또 던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내 가슴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끊임없이 두두려야한다 그렇게 두드리다 보면 결국엔 먼지티끌만한 조각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남는다 좁쌀 크기의 수십조분에 일(=1/수십조) 만큼 남는다 그러면 그 크기가 또 세월이 흐르면 또 자라난다 그러다가 진성이 남는 만큼의 그 크기가 빅뱅하며 우주로 나아간다 나라는 것은 멀리 있지도 않으며 높이 있지도 않으며 깊이 있지도 않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내곁에 바로 곁에 있었다 멀리 높이 깊이 헤메지 말라 절대로 헤메지말고 나의 머리위에 손만 올리면 손아귀에 잡히는 곳에 나가 있었다 이것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만한 크기로 내가 있을때부터 항상 나의 손에 있었다 그러니 대중들이여! 뭐그리 답도 않나오는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뭣을 찾으려고 그리도 멀리 높이 깊이 가려하는가? 참으로 미련하고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그 회색옷과 붉은천을 버리고 절간을 나와 세속에 온갖 풍파를 겪으며 진흙탕에서 구르고 뒤엉켜 자신을 내던져 겪으라~! 참으로 불쌍타 불쌍타~! 다시한번 말하노니! 자신의 머리를 쓰담어 보라 그곳에 나가 있고 마음이 있으니 ! 이제 나와서 머리위를 보라! 1978년 16살에 입산하여 사미계를 줄 스님이 없어서 1979년 하산한 나 추신 그당시 나와 행자도반이 대략 8명쯤 있었던것 같은데 그때 초파일에 사미계받은 행자가 7명쯤 되는데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사미계 법진 법안 두사람 밖에 기억이 안난다 나는 갱도를 하다가 공양주를 했고 법진과 법안 두사람은 그당시 주지실에서 시봉을 들었다 ! 그당시 해성스님이 도감을 보았다 어쩌다 범어사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봄
거룩하신 불ㆍ법ㆍ승 삼보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부처님가르침을 전하시는
선지식 스승님들께 찬탄예경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거룩하신 불법승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
거룩한 불ㆍ법ㆍ승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부처님의 큰 가르침에 항상 감사합니다~~^^
모든분들께 두손모아 감사인사 드립니다 모든스님분들 모두 승
모두 승불하십시요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대연화🙏🏼🙏🏼🙏🏼
🙏🏻🙏🏻🙏🏻
지유스님 항상 건강 하옵소서 ()()()
응원합니다 ^-^
절에 살며 나의 어떤 움직임과 하는것이 번거롭다싶으면 바꿔라
금정총림으로 되기 전에 범어사는 주지 선거에서도 많이 혼탁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유스님이 방장스님으로 되면서 제대로 된 것 같네요. 지유스님 같은 분들만 계시면 한국 불교가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을건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현상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이치가 자명하지 않으면 다 필요 없다. 부처를 실체로 알면 그 자체가 무지다.
성우 권영운 님의 장엄한 내레이션^^☆☆☆
1978년 8월쯤에 입산하여 다음해 1979년 음력 사월초파일 수계식에 나를 제자로 삼아 사미계를 줄 스님이 나서질 않아서 할 수없이 눈물을 머금고 양력 5월 25일쯤인가 하산하였는데~!
지금쯤 생각해보니 다행히 절을 잘나왔다는 생각이난다
45년전인데~!
내가 세속에 나와 생활해보니 수행이란 절간에서 하는것이 아니란것을 깨달았다
거친 세파속에서 지지고 볶고 튀기며 세속에서 온갖 풍파를 겪으며 닥쳐오는 그 모든것을 헤치며 과연 /나라고 하는 인간은 무엇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것인가? / 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묻고 물으며
자신을 마치
펄펄끓는 용광로에 던져넣어 벌겋게 녹아지고
달궈지면
때리고 때리며
나의 본성이 무엇인가? 를 나의 진쪽이 남을때까지
또
모진 풍파에 또 던지고 또 던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내 가슴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끊임없이 두두려야한다
그렇게 두드리다 보면
결국엔
먼지티끌만한 조각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남는다
좁쌀 크기의 수십조분에 일(=1/수십조) 만큼 남는다
그러면
그 크기가 또 세월이 흐르면 또 자라난다
그러다가
진성이 남는 만큼의 그 크기가 빅뱅하며
우주로 나아간다
나라는 것은
멀리 있지도 않으며
높이 있지도 않으며
깊이 있지도 않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내곁에 바로 곁에 있었다
멀리 높이 깊이 헤메지 말라
절대로 헤메지말고
나의 머리위에 손만 올리면 손아귀에 잡히는 곳에 나가 있었다
이것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만한 크기로 내가 있을때부터
항상
나의 손에 있었다
그러니
대중들이여!
뭐그리 답도 않나오는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뭣을 찾으려고
그리도
멀리 높이 깊이 가려하는가?
참으로 미련하고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그 회색옷과 붉은천을 버리고
절간을 나와 세속에 온갖 풍파를 겪으며 진흙탕에서 구르고 뒤엉켜 자신을 내던져
겪으라~!
참으로 불쌍타 불쌍타~!
다시한번
말하노니!
자신의 머리를 쓰담어 보라
그곳에
나가 있고 마음이 있으니 !
이제
나와서
머리위를 보라!
1978년 16살에 입산하여 사미계를 줄 스님이 없어서 1979년 하산한 나
추신
그당시 나와 행자도반이 대략 8명쯤 있었던것 같은데
그때 초파일에 사미계받은 행자가 7명쯤 되는데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사미계 법진 법안 두사람 밖에 기억이 안난다
나는 갱도를 하다가 공양주를 했고
법진과 법안 두사람은
그당시 주지실에서 시봉을 들었다 !
그당시
해성스님이 도감을 보았다
어쩌다
범어사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봄
16:19
저렇게 좌선한다고 깨닫는건 아니요 단지 번뇌가 미세하게 일어날뿐 이치을 알고 삶에 적극적으로 대처할뿐 뭘 깨닫겠다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뛰어넘으시요
밥먹고 방구석에 앉아있는거죠 ㅋㅋㅋ
신경북인쇄기획 (주)
안녕하세요 미래불교의 선불장, 선찰대본산 범어사 🍒지유 대종사 🍒경산 스님과 🍒능서 스님과) 🍒장진 스님과 🍒원명 스님과 🍒불자님들과 🍒제작진분들 🙏.
《 범어사 스님들의 수행 이야기 》
- 비우면 자신이 보고자 하던 참된 나를 볼 것이다.
고맙습니다 🙏. 💓
석가모니는 삭발 안했는데요 ?
큰절생활이 나와 맞지않으면 암자에가서 혼자살아라
중 밥상이 이래 좋아도 되나?
움직이는 송장 김종삘이가 피부살이피기가 지유같다 피부가 보약먹어 살이빨갛다
가부좌 틀고 앉아 있을 시간에 동네 논,밭에가서 일손이나 거드시지
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