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경주 무열왕릉이 가짜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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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2 вер 2024
  • #무열왕릉 #김춘추 #대륙신라
    대륙신라의 관점에서 본 무열왕릉.
    과연 당대에 세워진 것이 맞는가?
    자료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 무열왕릉, 귀부와 이수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악동 고분군
    3. 한국학 중앙연구원
    - 진흥왕릉
    4. 국립중앙박물관
    - 무열왕릉비 탁본
    5.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무열왕릉비 탁본 2
    6. 네이버지도

КОМЕНТАРІ • 524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43

    영상 후반부에 나오는 봉우리 관련하여, 봉우리란 단어가 왕릉 자체를 산봉우리 같다 하여 그리 붙인것이라 하는 의견이 있네요. 그러나 진흥왕의 경우 삼국사기원문을 보면 葬于哀公寺北峯 라고 나옵니다. 첫 시작이 葬于, 즉 ~에 장사를 지냈다. 로 시작하기때문에 뒤에 자연스럽게 애공사북봉 이라는 단어는, 장사를 지낸 장소 즉 애공사북봉에 장사지냈다 라고 해석하는것이 타당합니다. 봉 이라는 단어만 유달리 떼어내서 무덤 자체를 말하는것이다 라고 보는것은 문맥자체를 고려치않은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 @ego6929
      @ego6929 5 років тому +6

      어휴... 일제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왕릉과 지도층의 무덤을 파헤친것이 천기가 넘어요. 그래서 왕릉이 별로 없는것뿐입니다. 무녕왕릉도 다 털어가다가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있는겁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5 років тому +3

      제가 블로그 관련 글을 쓰고 있는데, 관련영상들 참고해도 될까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4

      @@dennythedavinchi3832 참고하셔도 됩니다 괜찮다면 블로그 주소를 남겨주시어 저도 한번 님의 글들을 보고싶네요

    • @Marines990
      @Marines990 5 років тому +17

      @@ego6929 천기가 넘는 왕릉이 삼국 왕릉이 아니에요
      신라는 대륙 남경쪽에 있엇음
      유적들도 출토가 됫구요 이병도 조선사만 보질 말고요 다른 사료도 찾아보세요 신라는 소국이 아닙니다

    • @Marines990
      @Marines990 5 років тому +9

      고구려는 위구르쪽에 있었음
      백제는 현제 북경쪽이고
      신라는 남경쪽임
      지금에 만주가 고대 만주하고 다릅니다
      신라는 대륙에 있엇음 소국도 아님 강국이였음 한반도로 넘어온건 신라 전체가 넘어온게 아님 신라 왕족들이 내려온거임 신라는 유목민족도 아니고
      남방계임 농사.목화.비단이 발달된 나라임 신라 왕실는 황인종이 아님
      페르시아 왕족임

  • @시에스타-x3o
    @시에스타-x3o 4 роки тому +28

    이분 정말 대단한 분석력 가지셨네요.. 존경스럽습니다..

  • @acekang9193
    @acekang9193 2 роки тому +22

    밑 거북이와 위쪽 용 돌이 완전 다르고 한꺼번에 만든것이 아니고 시차가 많이 남
    더 상세한 연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보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SeonJeongKim-c7v
    @SeonJeongKim-c7v 5 років тому +27

    논리전개가 탁월하고 설득력있고 재미있습니다. 나레이션도 굿입니다
    계속 만들어주세요

  • @EVAN-LILY
    @EVAN-LILY 2 роки тому +20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진정한 역사 찾기에 존경을 표합니다.

  • @노윤주-l1b
    @노윤주-l1b 3 роки тому +27

    저도 수십년 전부터 대륙신라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공부해왔습니다. 주로 문헌을 통한 공부를 해왔습니다. 전에 봤던 영상인데 다시 보니 더 재밌네요.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어느정도 정리되면 책으로 출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Dignocracy
      @Dignocracy 2 роки тому +5

      책보고 님의 채널을 추천합니다.

  • @user-xw2wu7kx7r
    @user-xw2wu7kx7r 3 роки тому +34

    와 나 이 채널 보기전에 발굴왕이란 채널 재밌게 보고왔는데.......확실히 시대가 인터넷유튜브 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이게더 신뢰가 가네요.......유튜브나 인터넷이 없던 70년대에 정부와 기술이 없는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붙여지고 이미 틀을 만들어버린걸 현재 후손들이 경주 역사와 왕릉으로 믿고있는건 아닌지........왜 고고학자들이 발굴에 50년을 들여야한다 이렇게 길게 잡는지 이해가 되네요......뭐가 캥기거나........

    • @타무르
      @타무르 Місяць тому

      ua-cam.com/video/jXNckEGM5Lg/v-deo.htmlsi=6japrYohzEJ8BkVq
      발굴왕이라는 거,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 @khan_0612
    @khan_0612 2 роки тому +14

    어딘가! 또는 누군가! 잃어버린 우리의 고대사 자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아쉬운 상상을 가끔 해봅니다
    관련 문헌, 자료도 부족하여 연구에 매우 한정적일텐데, 정말 대한한 분석력이며 과학적이라 합리적으로 다가오네요~👍
    이제서야 이 채널을 알게 되다니.. 응원합니다

  • @정레종-v8x
    @정레종-v8x 5 років тому +35

    저희 아버지를 통해서 저도 대략적으로만 알고있었던 것들이 많은 영상으로 만들어져서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 @cimkim
    @cimkim 10 місяців тому +6

    대단하십니다.
    100% 동의되는 주장 이십니다.
    님은 진리를 찾으시는 선지자 입니다.

  • @choiscare7508
    @choiscare7508 4 роки тому +17

    훌륭한 연구입니다
    의미있는 논리
    감사합니다

  • @MX_Korea
    @MX_Korea 5 років тому +37

    응원합니다. 터무니 없는 근거로 영상 만드는 것도 아닌데 가능성 조차 부정해버리는 사람들의 답글에 절대 굴복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좋은 영상 만들어주세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4

      감사합니다^^

  • @申衡燮
    @申衡燮 2 роки тому +10

    전제으로 공감합니다, 박창범교수의 천문분석에 의해서도 그리 보여집니다

  • @congtychothuexexinchao1190
    @congtychothuexexinchao1190 Рік тому +5

    동감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고대사 연구했다는 역사학자가 반도사관으로 했지...러시아 - 몽골 - 카자흐스탄 - 튀르키에 - 중국 - 일본 - 베트남 까지 아우르는 연구를 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지금 강단사학자나 재야 사학자 대부분은 조정래처럼 소설가일 뿐입니다

  • @용아장성에살모사
    @용아장성에살모사 Рік тому +7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구요. 이 작은 한반도에 삼국이 천년 가까이 피터지게 싸우면서 생존 했을까요? 수도를 옮기는데 겨우 맺키로로 옮기는것도 이상하고....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님.

    • @AlphaCastor
      @AlphaCastor 3 місяці тому

      @@용아장성에살모사 삼국만 싸운 게 아니라 삼한의 소국들, 가야, 왜, 중국까지 껴서 싸웠잖아요? 수도 옮긴건 사비 천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웅진은 자리가 협소하고 기존 호족들이 많던 땅이라 사비로 옮긴 것이지요.

    • @용아장성에살모사
      @용아장성에살모사 2 місяці тому

      @@AlphaCastor 님 상식적으로 그 시대에 중국이 배를 얼마나 크게 만들어서 한반도를 돌아 신라와 동맹을? 난 지금도 중국은 그러한 기술이 없다고 봅니다.

    • @AlphaCastor
      @AlphaCastor 2 місяці тому

      @@용아장성에살모사 당나라와 신라는 동남아, 중동과 무역하던 나라인데,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 @용아장성에살모사
      @용아장성에살모사 2 місяці тому

      @@AlphaCastor 님 마젤란, 콜럼버스나 500년 전인데 아직도 우상화 하지요. 전 그 시대에는 육로로 교역을 했다고 믿어요. 참고로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란 강의에 신뢰가 갑니다. 책보고, 강상원박사, 김정민박사, 손성태교수. 박석재천문학자, 요하, 요서문명 등등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청화수도.... 너무많아서요....

    • @AlphaCastor
      @AlphaCastor 2 місяці тому

      @@용아장성에살모사
      대서양 망망대해를 건너서 신대륙 가기(왕복 약 12000km)
      지구 한바퀴 일주하기(약 5만km)
      서해 바다 건너서 어딘지 뻔히 아는 신라 땅 가기(많이 쳐 줘야 왕복 약 2천km)
      이게 비교가 됩니까?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요.

  • @루루애오-t3e
    @루루애오-t3e 3 роки тому +9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 하나 여쭤봅니다. 태종무열왕릉비에 이수 두전 명문이 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전서체로 적혀있다고 주장되고 그에 따라 국보로 지정되고 이름이 태종무열왕릉비로 되었는데, 여기서 무열에서 “무” 글자가 전서체로 그렇게 쓰일리가 없다는게 항상 의문이었거든요. 太宗武烈大王之碑의 武는 전서체로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글자인데 정말 태종무열왕릉비가 맞긴한가요? 무자가 애매한데 탁본에는 열자도 안나타내고.. 귀부 진위 여부를 떠나서 다른 왕비의 이수가 아닐까요?

  • @cliffhwang1463
    @cliffhwang1463 Рік тому +4

    우와~!! 오늘로 나는 박수민 선생님 왕팬이 되어버렸습니다

  • @있다-s2d
    @있다-s2d 5 років тому +21

    이래서 가야사 연구가 되어야 하는거 , 일본과의 고대사 관계도 그렇고

    • @이순신장군-n6v
      @이순신장군-n6v 4 роки тому +3

      가야사 연구 해야돼고 일본 서고 털어야 함. 가야는 유물이나 조상들, 그리고 복식, 의식주등 연결 가능한 증거들이 많음.

  • @향운-o3k
    @향운-o3k 11 місяців тому +4

    뭔가 납득이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하필8세기 이후 신라는 대륙을 놔두고 협소한 반도로 수도를 옮기는가? 하는 겁니다

    • @arcyoon
      @arcyoon Місяць тому

      발해 대진국 멸망 시에도 거란이 거의 무혈입성했다는 것도 미스테리이듯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요인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 @shiroharo9755
      @shiroharo9755 21 день тому

      자연재해가 중국 동쪽해안에 심하게 있었다는 기록을 다른 채널영상에서 보았음

  • @_danielpaek1281
    @_danielpaek1281 5 років тому +41

    재미있고 전개가 흥미롭습니다
    계속 영상만들어주세요

  • @dlstodgodqhrgos581
    @dlstodgodqhrgos581 Рік тому +4

    유튜브 책보고를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신라의 문제를 시원하게 알려줍니다. 참고해주세요.

  • @윤상원-r5g
    @윤상원-r5g 3 роки тому +6

    의심의 여지없이 동의합니다!!!!

  • @Tanghuru888
    @Tanghuru888 5 років тому +9

    비석의 두개의 돌이 색깔이 전혀 안어울리네요... 마치 짜집기 한것 처럼 보입니다. 훼손된 글자는 글자주변의 부분은 훼손이 거의 없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서, 의도적 훼손으로 보이구요... 개인적으론 일제가 중국 침공때 발견한 물건들을 역사왜곡을 목적으로 글자와 비석을 일부 훼손하여 저기다가 세워놓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원래 저기 있던 것이라면 처음 조사하는 사람이 글자도 잘 안보이는 저 비석 내용을 어떻게 무열왕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2

      의견 감사드립니다. 말씀주신대로 의도적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즉설주왈
    @즉설주왈 3 роки тому +6

    김춘추 .즉 태종 무열왕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답니다.오리지널 우리 나라 한국성(복성)을 다 버리고 중국인이 쓰는 김.이.박.최.정.강.조.윤.장.임....등등 창씨개명 했습니다.🤦‍♂️🤦‍♂️🤦‍♂️

    • @황인철-v9j
      @황인철-v9j 2 місяці тому

      동감입니다 사택씨는 아예 안보이네요.. 한국 순혈 성씨도 다 없어진거 같아요..

    • @arcyoon
      @arcyoon Місяць тому

      선비족에 대해 일질감이 덜했을까요? ...그런데 나당전쟁의 디테일한 승전 결과가 더 궁금합니다....

  • @THANKCUE
    @THANKCUE 5 років тому +12

    돌의 색깔로 봤을 때 서로 다른 시기에 덧댄 것으로 보입니다.

  • @정국봉-h7s
    @정국봉-h7s 2 роки тому +3

    무열왕릉비의 몸통 귀부는 누가 가져갔을까
    가져가려면 몽땅 가지고 가지 이수는 왜 두고 갔을까
    그리고 비석의 이름은 몸통에 새기지 누가 이수에 새기나
    다른 사례도 있는지 조사해봐야

  • @seojeonglee892
    @seojeonglee892 4 роки тому +6

    무언가 아무렇게나 날조한 것 같네요.
    이렇게 쉽게 들통날 것을. 국제법에 제소하면 중국한테 한 대 맞을까요? ㅠ
    일본에 고조선 문화가 많이 남아있고 고대사 책들도 많다는데 문화교류 활발하도록 힘있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 @김병천-q7u
    @김병천-q7u 8 місяців тому +2

    현제의 무열왕릉은 대륙에 있습니다 영경사역사도 대륙에 있습니다 지명은 금성 즉 한반도의 전주입니다 전주라는지명도 대륙에 있습니다

  • @김종엽-m8t
    @김종엽-m8t 3 місяці тому +3

    양자강유역에 있었으니 당현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놈들이 무슨 이유로 이같이 신라를 경상도 귀퉁이로 몰아넣으려 하는걸까요?

  • @김성식-b4q
    @김성식-b4q 2 роки тому +4

    멋지십니다!

  • @종일김-h3w
    @종일김-h3w 8 місяців тому +2

    100프로 대륙3국은 맞습니다
    그러나 왕릉보존을 위해서 움직였던 유물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요

  • @Tanghuru888
    @Tanghuru888 5 років тому +11

    멋진영상 잘봤습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3

      댓글 감사합니다^^

  • @죄와벌-i8o
    @죄와벌-i8o 8 місяців тому +4

    목소리가 젊은분 같은데 대단 하십니다 당신 같은 분들이 많아져서 왜곡됀 식민사학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격하게 응원합니다

  • @나는성공한다-x5g
    @나는성공한다-x5g 5 років тому +18

    영상 잘 보았습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요즘 한국인들인데도 역사적 토대를 근거로, 의심하고 탐구하며 조금씩 밝혀나가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쵸... 경주 너무 초라합니다. 금관을 만들 정도로 위대한 선조들의 왕릉이라 보기에는요~. 아시아대륙이나 아메리카대륙의 많은 역사가 뒤틀어지고 날조되었습니다. 지금은 반발하시는 분들도 있고 무시하는 분들도 많지만...
    우리가 한자나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교육이 좀 더 대중화된다면 이러한 역사 왜곡을 찾아내기가 훨씬 쉬울것입니다.
    강상원 박사님께 많이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작은 의문 하나로 시작해서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되찾으려는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 @AlphaCastor
      @AlphaCastor 3 місяці тому

      금관이 그 무덤들에서 나온 건데 무슨 그런 앞뒤가 안맞는 말씀을...

  • @양용-k3b
    @양용-k3b Рік тому +4

    잘보고 갑니다 사족으로 김유신릉의 지름이30m 이며 선덕여왕은 23.6m 이니 어떻게 신하의 무덤크기가 그 주군의 무덤보다 클까요??

    • @AlphaCastor
      @AlphaCastor 3 місяці тому

      선덕여왕 사망 당시 비담의 난과 백제의 공격 등으로 정세가 혼란했던 점, 김유신이 사후에 흥무왕으로 추존된 점 등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현재 알려진 김유신 묘가 진짜인지조차 확실치 않습니다.

  • @홍어여라뭐하루이틀도

    어 너무 멋져요 사실은 발굴을 해 보는게 가장 좋은데 아 우리 나라는 이렇게 근현대의 역사 나 이 오래된 역사들이 왜 이렇게 왜곡된게 많을까요

  • @주호고-r4n
    @주호고-r4n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삼국과 고려는 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에 있었으며 신라는 칠백년 이후 반도로 건너왓을 것으로 추정한다
    추정이유는 당시 기록들에 산동반돈 화사등의 수만은 기록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 @ace2594
    @ace2594 4 роки тому +6

    흥미롭네요... 선덕여왕릉을 작년에 실제로 다녀왔는데 낭산은 정말 낮아요 ㅋㅋㅋㅋ 몇분 올라가면 바로 나옵니다

  • @happy-rich_5
    @happy-rich_5 2 роки тому +4

    훌륭한 추론 입니다. 무열뫙이나 진흥왕께서 그정도 규모 무덤에 묻히신걸지는 의문이 많이갑니다
    심지어 현 경주에서 그시기 유믈 로는 고구리 유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구리 영토가 맞는것같고요.
    추가로 대륙쪽 유물이나 역사기록들을 조금 틀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국 기록과 지도 등으로 교차검증하는 것으로 좀더 확실해질 것이니 조금더 기다려 보죠

  • @dumbbell2472
    @dumbbell2472 3 роки тому +4

    왜구놈들 악랄하게 날조해놨네;;;

  • @ILovekorea365
    @ILovekorea365 Рік тому +1

    재생목록 쭉~~ 영상 보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 @gyuhyeonchoi6424
    @gyuhyeonchoi6424 5 років тому +8

    영상에 법흥왕릉이나 진흥왕릉 진지왕릉으로 추정되는 현 왕릉의 위치도 같이 설명하는 것이 맞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주장하신 것처럼 애공사와 영경사로 추정되는 곳이 둘이 아닌 하나라면 진지왕릉과 진흥왕릉의 현 추정 위치는 기록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경사 터로 추정되는 곳 바로 북쪽으로 나란히 진흥왕과 진지왕릉이 현재 있음..물론 추정입니다.)
    그런데 애공사와 영경사의 위치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따로 존재했던 것이라면 현 법흥왕릉으로 추정되는 곳은 효현리 삼층석탑(애공사터로 추정되는 곳) 바로 위(북쪽)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대륙신라설에 대해서는 대륙에 있던 어떤 세력이 현 경주지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동한 세력이 지배계급이 되어 옛 기록(이동하기 이전의 기록-일식의 기록들)들을 가지고 있던게 후대에 전해 진것이 아닌가 생각되고요. 단지 그 세력이 이동하는 시점이 조금은 다르게 판단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전 영상에서 황남대총이나 금관총과 같은 무덤에서 금관을 비롯한 많은 매장물들이 발견되어서 놀라움을 주고 있죠.
    그런데 금관이니 천마도하는 이런 화려한 매장물 들은 모두 이른바 평지에 조성된 무덤입니다. 위 영상에서도 설명하듯 북쪽 또는 북쪽 봉우리(즉 산 중턱)에 쓴 무덤에서는 금관과 같은 매장문화재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았습니다. (발굴을 안해서 그런지도....ㅠㅠ)
    그런데 왕의 무덤들이 어느순간 평지에서 모두 산으로 올라갑니다. 순장도 없어지죠.(지증왕부터) 이 때부터 중국식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죠. 여기서 중국식이라는 것과 불교라는 종교의 전파도 그렇고요...불교의 공식적인 도입은 법흥왕부터(법흥왕의 법자가 불교의 법도할 때 그 법이죠. 카톨릭이 미사라고 할 때 불교는 법회라고 하죠. )
    암튼 매장문화가 바뀌고 불교가 들어온것이 대륙에서 다른 어떤 세력들이 이동하면서 같이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고, 그래서 이전 영상에서 말하는 초기 신라의 무덤에서만 나오는 금관이나 이런 매장방식은 후기 신라와 다르기 때문에 원래 우리가 알지 못한 다른 왕조가 있었는데 대륙에서 세력이 현 경주지역으로 이동하여 기존 세력을 정벌 또는 융합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뇌피셜입니다. ^^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5

      예리하신 지적입니다. 사실 서악리고분군을 언급하기전 현재 비정되있는 법흥 진흥 진지왕릉의 위치를 짚고 넘어가는것이 순리였습니다. 영상을 10분 안팎으로 만들려다보니 설명이 너무길어지기에 따로 영상에 언급하지 않게됐네요. 저는 일단 영경사와 애공사가 같은 절, 적어도 매우 가깝게 위치했던 절들로 보기때문에, 현 법흥왕릉은 그 위치가 다른 릉들과 너무 떨어져있어, 애초에 이 법흥왕릉은 확실히 비정이 잘못됐다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진흥,진지왕릉을 보면 그 위치는 제입장에선 무열왕릉과 같은지역에 있다고 보긴 힘드나, 사실 보는관점에 따라 같은지역에 있다 라고도 볼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진흥왕릉과 진지왕릉은 무열왕릉에 비해 그 크기가 현저히 작은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왕릉일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말이죠. 진흥왕은 심지어 신라입장에서 탑 3 안에 들정도로 위대한 영토개척을 이룬 왕입니다. 물론, 태종무열왕 같은 경우 백제를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했기에 예외적으로 무덤을 크게 조성했다 보실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렇다면, 그 무열왕릉 보다 더 크게 조성된 서악리 고분군은 도데체 신라 누구의 왕인가 하는 또 다른 문제를 낳게됩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신라의 고분은 초창기에는 그 규모가 크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형태를 띄고있는데, 진흥왕의 소박한 무덤보다 훨씬 크게 무열왕릉이 조성된 것은 고분의 변천과정을 역행하는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현 비정돼있는 법흥, 진흥, 진지왕릉은 거짓일 확률이 매우 높다보고있습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5

      또한 대륙의 어떤세력이 경주로 이동했다는 말씀에 대해서도 댓글을 달겠습니다. 말씀하신것처럼, 대륙의 어떤 세력이 경주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일식기록을 함께 가져와, 신라의 역사서에 삽입되었을 가능성도 아예없진 않을겁니다. 다만, 제 이전 영상에서 다룬 것처럼, 양자강 유역에서 관측된 그 일식기록은 무려 250년간 꾸준히 관측된 것입니다. 고대에 천문현상,특히 해를 관측하는 것은 누구나 할수있는것이 아니라 오직 독립돼있고, 문명이 발달된 국가의 왕 만이 할수있는 권리였죠. 그렇다면 그러한 국가가 적어도 250년(BC54~AD201)동안 양자강 유역에 존재했는데 어째서 중국역사서에 단 한줄의 언급이 없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한 말씀하신부분 중에 매장방식이 바뀐부분에 대해서, 경주 고분은 6세기 초반에 들어서자 갑자기 돌무지덧널무덤이 사라지고 돌방무덤이 축조되며 그 위치 또한 평지에서 산지로 옮겨가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돌방무덤을 쓰는 어떤 새로운 세력, 이를테면 고구려 같은 나라에 의해 정복되었다는 증거이며,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 새로운 세력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 흔적이라 보고있습니다. 왕릉의 무덤형식을 갑자기 바꾼다는것은 단순 문화교류의 흔적으론 볼수 없기때문입니다. 헌데 신라는 6세기에 다른 나라에 정복되거나 그 영향력 밑으로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상국이라고 할수 있는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 시기도 7세기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정리해본다면, 6세기 초반, 돌방무덤을 쓰는 세력에 의해 지배된, 혹은 그 영향력 밑으로 들어간 경주의 왕국은 신라가 아니었다는 것이 저의 추론입니다.

    • @gyuhyeonchoi6424
      @gyuhyeonchoi6424 5 років тому +4

      @@gulsakgi 네 전 실제로 현재 진흥왕릉과 진지왕릉 이라고 한 곳을 모두 직접 다녀왔습니다. 처음 왕릉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수민님이 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어라? 이게 뭐야? 이거 진흥왕릉 맞아? 그리고 심지어 진흥왕릉 쪽으로 들어가는 초입부에는 헌안왕릉이 있는데 바로 옆 1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사실상 같은 선상에 다른 무덤이 있는데 헌안왕릉보다 더 크며 제를 올릴 수 있도록 한 큰 제단과 양 옆으로 석물(문인석, 무인석)이 무덤 양 옆으로 세워저 있습니다.(왕비의 묘가 아님) 그래서 저 역시 저 왕릉들이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왕들의 무덤인지는 의문입니다.

    • @gyuhyeonchoi6424
      @gyuhyeonchoi6424 5 років тому +3

      @@gulsakgi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라는 나라와 현재 우리가 경주에서 보고있는 유물의 나라는 별개의 다른 나라다. 그 말씀이시죠?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6

      @@gyuhyeonchoi6424 정확히는 아닙니다. 저는 8세기 어느시점에 신라가 경주로 천도를 했다 보는바, 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신라의 유물, 그리고 그들이 대륙에서 가져왔을 일부 유물들이 경주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 @youngjoochoi5650
    @youngjoochoi5650 Рік тому +4

    귀부와이수의 재질도 달라서 일제때 짜맞춘게 아닐까 싶습니다.

  • @pae4451
    @pae4451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낭산은 중국상하이 남쪽에 있습니다.. 고로 선덕여왕릉은 상해 남쪽에 있다는거죠.. 그리고 문무대왕릉은 장수성 렌윈강시 둥하이현(동해현)에 큰바위산이라고 있습니다.. 그곳에 계시죠

    • @gss7249
      @gss7249 10 місяців тому

      증거가 있는가요 ?? 있다면 함께 공유해 주시면

    • @pae4451
      @pae4451 8 місяців тому

      @@gss7249 학교에서 가르치는 그냥 막연히.문무대왕릉은 바다에 있어? 가 아니고 삼국사기에보면 681년 동해 귀퉁이 큰바위산에 장사를 지냈다 라고 적혀있어요.. 이걸로 어떻게 바다에 장사지냈다 라고 해석을하죠? 신라는 한반도에 있다 라고 막연히 답을 정해 놓고 한반도에서 찾으니.. ...문무대왕릉도 일제시대 일본 역사학자들이 정해놓건.. 그냥 답습만하는거죠.. 인터넷 없던 시절에나 통하는 역사 논리죠.. 사서 내용이랑 실제 위치에 사서랑 비교해보면 너무 달라요. 사서에 나와 있는 낭산의 동서남북에 뭐가 있다,.하고. 한반도 낭산의 동서남북 비교해보면 일치를 안합니다.. 속담아시죠? 강남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친구따라 강남간다... 여기서 강남이 어디죠?? 서울 강남인가요? 우리나라에서 강남은 1970년대부터 사용했고.. 여기서 강남은 신라 영토 였던, 강남.. 상하이 남족에 흐르는 양자강입니다.. 이속담은 조선시대 때 속담도 아니고.,. 신라시대때 우리선조들 속담입니다.

  • @여행자-t3w
    @여행자-t3w Рік тому +3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 @kjwons
    @kjwons 5 років тому +4

    가장 확실한방법은 발굴이군요. 그상태로 나중에 혹시모를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는것 보다는, 하루빨리 발굴해서박물관에 전시을하면서 더많은 역사적사실을 후세들에게 알려주는게 더나을겁니다. 우리나라는 꼭 일이 터지고난뒤에 처리을하죠. 미리 하면될것을 말입니다. 도굴된뒤에 해봐야 복원하는건 더힘들어질텐데 말이죠. 지금이라도 발굴해서 부식된 문화재에 대해서 복원작업을 해야할겁니다. 나중에는 복원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까지 갈수도 있으니깐요. 전에 경주에 지진이 와서 문화재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들도 큰피해을 당했죠. 앞으로 지진빈도는 늘어날겁니다. 문화재도 크랙이 생길께 뻔하고, 점점 균열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겁니다. 빨리 발굴해서 문화재라도 제대로 관리하는게 훨씬나을겁니다. 멍청한 사학계는 천재지변도 조상의 보살핌으로 피해갈꺼라 생각하나봅니다. 그리고 경제시민들은 자기지역 활성화을 위해서 발굴해서 그걸 사람들이 볼수있게 만드는게 훨씬나을겁니다. 왜냐면 관광객들이 늘어날테니깐요. 다른나라들도 그렇게 하고있죠. 중국도 관광객유치을 위해서 적극적이라고 하더군요.

    • @이영진-r6t
      @이영진-r6t 5 років тому +1

      일제가 저기 다 파헤쳐서 사실 저긴 자료가 거의없어요.

  • @bangbang-if3ey
    @bangbang-if3ey 2 місяці тому +2

    진덕여왕이 중국 장안 소릉에 묻혔는데 무열왕릉은 국내에 있을까? 뻔히 장안에 있다는 것이 밝혀진 진덕왕릉도 경상도에 비정하는 판에 정확히 모르는 무열왕릉은 오죽할까? 아래 위 상태를 보면 관리되고 있었을 것인데 비신을 누가 치웠을까?

  • @꼭두장군-r8b
    @꼭두장군-r8b 5 років тому +9

    근대사도 만들어진게 많은데 고대사는 오죽하겠습니까? 제대로된 역사를 연구해야할텐데요..

  • @gyuhyeonchoi6424
    @gyuhyeonchoi6424 5 років тому +5

    영상에서 설명하신 서악리 고분군은 평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도산 자락에 위치에 있으며 경사진 곳에 있습니다. 즉 계속 오르막 길. 그래서 제가 밑에 댓글로 직접 답사하신 건지 물어본 것입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말씀하신 요지가 오르막길도 산봉우리라 표현할수있다 라는 것같은데, 맞는지요?

    • @gyuhyeonchoi6424
      @gyuhyeonchoi6424 5 років тому +2

      @@gulsakgi 네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무열왕릉 앞 까지 도로가 잘 되어 있으니 쉽게 가지만, 도보로 간다고 보았을 때는 현재 무열왕릉 가는 방향에 양옆 모두 경작지인 평야 입니다. 그래서 평지지역에서 서악리 고분군을 바라보게 되면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이며, 그리고 현재 반월성이 지역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높은 봉분을 이룬 서악리 고분군이 육안으로 보이는데 멀리에서 산 정상방향으로 무덤들이 일렬로 줄 서 듯 되어 있습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gyuhyeonchoi6424 눈으로 보는것이 가장 좋은방법 같습니다. 혹여 산의 중턱으로도 볼수있게 나온 사진자료가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야구-z2v
      @박야구-z2v 4 роки тому

      @@gulsakgi 경주현지인입니다.. 서악리 고분군 (4기) 엄청난 큰 규모의 왕릉입니다. 등고선을 보더라도 용맥(산줄기)이구요, 용맥의 좌우는 낮습니다. 선도산에 동남방향으로 위이굴곡하는 능선에 자리한 대단한 큰 규모입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역사스페셜 ㅡ신라시대 경주 인구 90만 ㅡ현재 경주 인구 30만
    ㅡ과연 1000동안 인구가 감소가능할까 일제역사조작 복원 위원회

  • @gyuhyeonchoi6424
    @gyuhyeonchoi6424 5 років тому +5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 현재 경주에 "김유신장군묘(흥무왕릉)"가 정말 김유신 장군의 무덤인지도 의문입니다. 김유신은 잘 아시다시피 김해 김씨 즉 가야계 사람으로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국방부 장관 격인 그가 죽고 난 뒤에 "흥무왕"이라는 시호를 받은 건데...아무리 생전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한들 일국의 왕보다 크거나 화려할 수 없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김유신장군묘를 보면 경주지역에 있는 그 어떤 왕릉보다 화려합니다. 김유신장군묘와 같이 봉분 가장자리를 호석과 십이지상을 가진 무덤은 경주에서 울산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괘릉"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김유신장군묘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괘릉에는 아라비아 상인 모습을 한 석물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 @경규조-h2z
      @경규조-h2z 8 місяців тому

      박정희때 ㅡㅡ추정하고 안든겆임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День тому +1

    따봉!

  • @ampleup23
    @ampleup23 2 роки тому +3

    역사관념이 옳발라 보이셔서 감사하게 잘 보고 갑니당ㅋ

  • @arcyoon
    @arcyoon Місяць тому +1

    능은 아주 간단하군요....이른 시기의 황룡사 9층목탑, 첨성대만 정리되면 더 명확해질 것 같네요...

  • @furykim5363
    @furykim5363 5 років тому +6

    대동여지도에서 산이라고 표시한 곳은 그 일대 전부가 산이라는 뜻이지요. 어찌 산을 일개 선으로 표시할 수 있던가요. 저 성들을 아우르는 지역 전부가 산지였다 보는 것이 맞다 봅니다.

  • @오필구-p6h
    @오필구-p6h 5 років тому +17

    맞아요, 일제국시대에 만들어 진 것 일 가능성이 높아요.

  • @kimjeonghuun8665
    @kimjeonghuun8665 5 років тому +16

    현재 학자들이 박수민씨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언제 한번 백제 무령왕릉에 대해 다뤄주셨으면...

  • @대왕암-b8e
    @대왕암-b8e 2 місяці тому +1

    선덕여왕릉은 사천왕사지위 낭산에 장례를 치뤘다고 기록에 나와있습니다.
    지금도 발굴중인 사천왕사지위에 있는 유일한 무덤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 @황인철-v9j
    @황인철-v9j 8 днів тому +2

    귀부는 완전 가짜라고 생각됨...흰색돌이며 최근에 만든것 같음..

  • @김영석-k2r
    @김영석-k2r 5 років тому +14

    대륙신라로 보이는 지역에서 현 중국지도와 발굴자료들을 보면서 추측해보는 영상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지역 지도를 놓고 출토 유물들을 보면서 옮겨오기전 왕들의 무덤과 절터, 도시등을 추측하면 좋을거 같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구글지도 라든가 그 지역 출토유물의 박물관자료 등으로 추측해보면요~^^

  • @연필수입
    @연필수입 5 років тому +9

    김정민박사가 정리한 계기일식 기록 중원땅에서 본것으로 돼있는 것도 엄청 수상하죠

  • @Custade
    @Custade 4 роки тому +5

    근데 진흥 법흥이 전부 6세기 무덤이면 8세기 이후에 신라가 반도로 넘어왔다고 치면 무덤은 중원 대륙에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 @이순신장군-n6v
      @이순신장군-n6v 4 роки тому +1

      가야꺼겠죠. 아니면 가야 이전의 마한꺼거나. 남부지방 문화하고 아니 한반도 전체문화하고 일본문화하고 가야 조상 나라인지 가야가 건너간건지 그쪽하고 비교해보면 답 나옴.

  • @dolgoddodolgo
    @dolgoddodolgo 5 років тому +9

    신라의 경주는 대륙 안휘성 '합비시'이다.

  • @xjapan8693
    @xjapan8693 5 років тому +4

    서악동고분 실제로가보면 산지 지형입니다 낮지만 구릉따라 올라가면서있어요 재미있는 주장이시지만 대륙신라와연관짓기에는 무리인거같습니다. 이미 신라왕릉비정은 여러연구를통해 지금의 비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있죠 이건 애초에 왕릉비정할때 촌로의 말에따라 되면서 오류가 많아진것이죠 신라가 중국에있어서 그런게 아닙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2

      비정이 잘못됐음을 다수가 알고있고, 그것을 앎에도 제대로 된 왕릉의 위치를 현재까지도 찾지못하는 상황이 대륙신라가 무조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경주의 비정된 왕릉들이 대륙신라를 반박할수있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을뿐입니다. 또한 서악동고분이 산지 지형이 아니었다 한것이 아니라 산봉우리 라는 표현을 쓰기엔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드린 영상입니다.

    • @xjapan8693
      @xjapan8693 4 роки тому +1

      sumin park 첨성대는 어떻게 설명하실런지요?

  • @ligiqkbvh
    @ligiqkbvh 2 роки тому +2

    Thanks!

  • @Getrichman
    @Getrichman 2 роки тому +1

    서악리 고분을 다녀오셨는 지요? 서악리 고분은 평지가 아니라 산의 구릉지에 있습니다. 고분 위에 올라가 보면 산의 봉우리에 서있다는 느낌으로 경주시가 발아래로 보입니다. 대릉원은 평지에 있고요.

  • @김혜령-w3t
    @김혜령-w3t 5 років тому +11

    가짜입니다

    • @user-pl8st1ih7c
      @user-pl8st1ih7c 5 років тому +2

      무슨 근거로? 설명 및 설득을 해봐.

  • @한톨-s6v
    @한톨-s6v 4 роки тому +3

    일제강점기 35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님.
    백성은 아무것도 모르고 관료 식자들은 일본에 돈 받고 입닫고 있을때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정부의 지원아래 조용히
    역사 왜곡을 진행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한 번쯤은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이 영상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 함.
    시골에 고인돌이나 고분에 도굴의
    흔적이 보이는 것을 보면 상당히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우리의
    역사 왜곡을 자행 했던 것 같다.

    • @이순신장군-n6v
      @이순신장군-n6v 4 роки тому +1

      다 털어갔죠. 저도 어릴때 생각하면 그들이 도굴꾼이었나싶어요.

  • @하전-z3r
    @하전-z3r Рік тому +1

    서악릉들은 양쪽에 골짜기가 있는 작은 언덕위 봉우리가 맞는 것 같은데요. 애경사가 아마 그 아래 남쪽 낮은 지역에 잇었나 봅니다.

  • @kor1213
    @kor1213 2 роки тому +3

    가짜 왕릉 무덤이 이리도 많았군요.

  • @이재문-p9l
    @이재문-p9l 2 роки тому +3

    감사합니다

  • @robinpark3521
    @robinpark3521 3 місяці тому +1

    대단하십니다. 지난 대조선 역사 탐구 미래 대조선 역사의 시작입니다.

  • @나를위하여-k4r
    @나를위하여-k4r 4 роки тому +3

    대동여지도에 나와있는 ‘낭산’은 현재 어느산인가요? 작지 않은 산으로 보여지는데요
    궁금합니당

    • @박야구-z2v
      @박야구-z2v 4 роки тому +1

      동천동 백률사가 있는 소금강산 입니다.해발높이는 100-200정도 입니다

  • @bbcx9449
    @bbcx9449 Рік тому +2

    천림사도 있어야 하고 황룡사 북쪽에 왕궁터가 나와야되는데 없는걸 보면 가짜죠
    왕후장상묘도 천지빼가리로 많아야 되구요
    한반도에 삼국이 있었다면 왕궁터가 어딘노 하면 될거라 봅니다

  • @엠엠돌이
    @엠엠돌이 5 років тому +7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날조은폐하고 날조된 신라의 역사만 남겨놓았다는것은 주지의 사실. 이러한때 진실된 역사를 찾고 자 노력하는 선생에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경규조-h2z
    @경규조-h2z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아레기반 거북이 ㅡㅡ후대이고ㅡㅡ신라당댸의모양도아녀요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3

    비석 몸돌로 글자가 새겨진 부분를 비신이라 하는데 멸실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고 흥덕왕릉비 귀부 등과 비교해 봐도 양식이 비슷한 면이 보이고 당나라 비석과 이수 부분을 비교해 봐도 7세기 양식으로 확인이 됩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정보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귀부 부분은 어찌 보시나요? 1.귀부도 각 세기 마다 주로쓰인 양식이 있는지? 2. 제가보기에 귀부 부분이 이수와는 다르게 그리 오래돼보이지 않는데 어찌 보시는지요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gulsakgi 귀부도 통일신라ㅡ고려ㅡ조선 마다 각각 다릅니다. 거북머리, 용머리 그런데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북형머리가 대부분 입니다. 양식상으로는 맞는데 너무 깨끗한 것도 약간 의문이긴 합니다.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gulsakgi 비편 일부가 부근에서 발견되어 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이수 부분은 땅속에 묻혀있을 때 흙물이 든 것으로 보입니다. 귀부 부분은 입 부분 등에 얼룩이 있고 화상도에 따라 밝기가 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y-rlee7261 그렇군요. 답글 감사드립니다

    • @y-rlee7261
      @y-rlee7261 5 років тому

      @@gulsakgi 사천왕사 ㅡ 성덕왕릉 ㅡ 흥덕왕릉 귀부를 보면 귀갑문과 거북 발부분 등이 거의 비슷합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네요.

  • @logankim905
    @logankim905 5 років тому +13

    그놈의 영토 그놈의 대륙... 비약이 지나칩니다. 영토의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온 우리 나라의 문화가 중요한겁니다...

  • @tkdz4404
    @tkdz4404 3 роки тому +2

    열자는 아마 윗쪽 전서체와 같아보입니다. 마모가 심할뿐이며 본인 주장대로 '무'자와 같은 결에서 보는것 처럼 필요에 의해 약간의 변형이 있다고 보는것이 글자의 구조등을 볼때 더 타당해보입니다. 개인적 의견입니다.

  • @AllTheK-News
    @AllTheK-News 2 роки тому +2

    그럼 애공사라든지 무열왕릉자리로 짐작가는 곳이라든지 대륙경주에서 찾아보고 추론이라도 했어야하는거 아닌가 보네요.

  • @yohango1445
    @yohango1445 4 роки тому +1

    짜릿한 영상....정말 잼있네.....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3 місяці тому +2

    발굴하면 증명되는데 왜 안할까...

  • @bnf7255
    @bnf7255 5 років тому +2

    업로드 기다리고 있습니다

  • @khan_0612
    @khan_0612 5 років тому +3

    재밋네요~

  • @haniibal2580
    @haniibal2580 5 років тому +5

    잘 보고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백제 무령왕 무덤에 대해서도 영상 올려 주세요~^^

  • @탱자32
    @탱자32 5 років тому +16

    만주땅에 고구려성터가 아직도 200여개가 남아있는데 천년왕국 신라의성터가
    경상도에 몆개나 남아있는가????

    • @AlphaCastor
      @AlphaCastor 2 місяці тому

      @@탱자32 월성, 명활성, 관문성, 거열산성, 팔거산성, 백화산성, 삼년산성, 덕주산성, 적성, 등등...

  • @jihankim6119
    @jihankim6119 4 роки тому +2

    왜 없냐면 일제때 다 파가고 없지.. 현재 릉은 삼한시대때 릉이지요..

  • @VS-zp8up
    @VS-zp8up 4 роки тому +2

    조선시대 왕 무덤처럼 비석 세우고 묘지 주인공 다 기록해놨으면 후손들이 이렇게 고생을 안하는데
    왜 무덤주인의 비석을 안 세워 가지고 이렇게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는지. 그 시대 사람들 참 야박하네

    • @AlphaCastor
      @AlphaCastor 2 місяці тому

      @@VS-zp8up 오래되어 없어진 것이지요. 무열왕릉비 비신은 조선시대에 이미 크게 훼손되어 벼루나 만들어 쓰는 실정이었고 지금은 남은 쪼가리 몇 개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을 뿐입니다.

  • @용사-t1p
    @용사-t1p 5 років тому +3

    중국에서 현지조사를 해봐야 겠네요

  • @dudu-le3hx
    @dudu-le3hx Рік тому +2

    그럼 진흥왕순수비 문무왕비석 대야성 첨성대 등 다 거짓이라는건가요 일부 신라나 백제가 중국 일부지역 현재의 조차개념으로 점령한 정도가 아닐까요
    일부 의문 있는걸 전부라고 하는걸 억지인듯요

  • @F91245
    @F91245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구글지도에 애공사가 중국 항저우지역에 4세기부터 있는걸로 나오네요. 영경사는 나오지 않지만요...

  • @김영원-w3q
    @김영원-w3q 5 років тому +20

    많은 사람이 이 영상을 보기를....바래 봅니다.
    그동안 역사 연구 하시는 분들....개판쳤다고 보여집니다.

    • @gulsakgi
      @gulsakgi  5 років тому +1

      답글 감사드립니다. 좀더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가치있는 결과물들을 낼수 있을거라 봅니다.

    • @연계소문-p7u
      @연계소문-p7u 5 років тому

      그 역사를 연구한 님들이 친일파들이라......ㅠ.ㅠ

  • @평동군왕
    @평동군왕 5 років тому +18

    백제 무령왕릉 대한 고찰도 부탁 드립니다. 그게 제일 궁금하네요...너무 확실한 증거라...

    • @타산지석-k8r
      @타산지석-k8r 5 років тому +14

      그건 가짜일 확률이 90% 이상으로 보여집니다. 양서에 의하면 무녕왕을 征東장군이라는 칭호를 줍니다. 하남성 서남쪽 끝에 武寧이라는 지명이 있죠.뛰어난 업적을 이룬 왕들에게는 그 사람의 시호를 고을 이름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이 됩니다. 산서성 남부에 永樂縣이라는 지명도 있죠. 호태왕무덤도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들구요.일제가 한강이남 백제.신라설을 만들기 위해 총독부 직원들을 도굴꾼으로 가장하여 전국적으로 고대능을 파헤칩니다. 경산 김해 고령 경주 부여 공주 평양 등이 도굴꾼들이 활약했던 지역이라 하더군요.가루베 지온이라는 왜넘이 공주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부여.공주지방 고대능을 1,000여개 도굴합니다. 그리하여 파편조각하나 남김없이 청소하죠.그의 자서전에 보면 도굴품들을 대구로 보내면 거기서 처분했다 하더군요.만일 공주.부여가 백제강역이었으면 피장자신분이나 유물이 백제거 하나라도 안나왔겠습니까?. 나왔으면 대대적으로 홍보했겠죠. 패망후 가루베는 일본대 역사학과 교수가 되죠.공주의 무녕왕릉은 가루베가 심어놨을 확률이 크죠.일본애들이 평남의 점제현신사비, 평양의 봉니등이 가짜유물인 거 북한에서 밝혀냈지 않습니까?같은 이유로 남한지역에 있는 백제.신라유물은 거의 일본애들이 심어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kkk8812
      @kkk8812 3 роки тому

      @@타산지석-k8r ???? 돌판에 무령왕릉 이름이 그대로 적혀있는데 그것도 그럼 일본이 만든건가??

    • @있다-s2d
      @있다-s2d 3 роки тому +4

      70년대초
      일본군장교출신이 정권잡자마자
      경주 공주를 타킷으로 군사작전식 발굴을 합니다
      경주는 신라 공주는 백제가 되야한다는 전재를 깔고말이죠
      이곳에서 백제 신라릉이 나와야만 사는자들 누구겠습니까?
      일제식민사학자들과 그후예들 뿐이죠
      실제로 발굴시 일본팀이 방문했죠
      이 발굴들은 목적을가지고 조직적으로 행한 일련의 사건입니다
      발굴하루만에 개판치고
      기다렸다는듯 나오는 명문 묘지석, 왕급 지석치고 너무 간결하죠
      송산리에서 나온 묘지석또한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미 입구부터 침입후 급히 복구한 흔적도 보이구요,
      발굴 몇시간도 안되서
      쓸어담을 보관함도 이미 완비되어있음 엽기죠
      도굴이면 싹쓸이하고 그냥두고 튀었겠죠 ,입구 복구도 안하죠
      경주쪽릉은 그이후 발굴할수록 명문이 나오긴하는데
      신라왕과는 거리가 자꾸 멀어는중이구요

    • @경규조-h2z
      @경규조-h2z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션총독부 추종자들의 살아남기ㅡㅡ쐐기박는 작업이ㅡㅡ일제 ㆍ만주군속 권력과 융합 일체 행동 임

    • @황인철-v9j
      @황인철-v9j Місяць тому

      @@kkk8812 무령왕이 아니고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적혀있어요..무령이라는 한자가 지석에 없어요 다시 확인부탁드립니다..사마란 글자는 수백년후의 일본서기에 나옵니다 무령이란 존칭을 두고 어릴때 불렀던 사마란 글자를 적어놓은거 자체가 조작일 가능성이 아주큽니다..

  • @1413khz
    @1413khz Місяць тому +1

    목소리 음산하네~ 재밋게 잘 봤습니다 ^^

  • @crane6543
    @crane6543 4 роки тому

    사선성성도의 왕건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healingjusin
    @healingjusin 5 років тому +3

    매우 논리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우리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시다

  • @JKIM-te8pi
    @JKIM-te8pi 5 років тому +5

    머야 이거 발굴안하는거 일본놈들이다퍼간거아님

  • @그냥사냥만
    @그냥사냥만 5 років тому +9

    조선시대 왕릉 빼고는 전부 일제강점기때 도굴과 왜곡으로 만들어진 릉, 능 묘 아닐까요 조금한 동산 같은대로 올라가보면 조금한 무덤4기가 있는데 거기 비석주인이 진흥왕 인가 하여튼 왕4명의 무덤이 있었음 그 무덤 4기 옆에는 탑이 하나 있었음

  • @김해비땅
    @김해비땅 4 роки тому +1

    재밌습니다

  • @kyj9441
    @kyj9441 5 років тому +1

    북봉이라는게 그표현이 후대의 사람이 기록한거라면 북봉 말그대로 북쪽의 둥근무덤을 말하는게 아닐까요 말이라는게 시대에따라 그표현도 여러가지이니 지금의 봉우리는 둥근산의 정상을 의미하지만 그시대에 무덤이 봉으로 보일수도 있겠죠
    그리구 그때의 절터가 다르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