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힘들때마다 공감하시네 찬양 들으면서 힘이 납니다 너무 머리 속에 생각이 많아가지고 복잡한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제발 복잡한 생각 안나게 해주세요 좋은 생각만 하고 싶어요 공감하시네 찬양을들으니까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네요 앞으로도 좋은 찬양 들으면서 좋은 생각만 하겠습니다 아멘
이 찬양은 굉장히 신학적인 찬양입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아픔, 슬픔, 죄의 유혹 등을 전부 겪으시고 이기신 주님이 우리를 공감해 주시니 우리는 그분을 봐야봐야 한다. 다른 대상을 의지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라는 것이 이 찬양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비로소 진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치면 인간의 몸을 하고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찬양하는 내용이죠. ex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건강한 사람른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갑자기 이게 추천영상으로 떠서 들었네요. 댓글들 보니깐 논란이 많은가 보네요. 전 ccm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30년을 꾸준히 많이 듣고 있습니다. 박종호 소리엘 좋은씨앗 예레미 에이멘 천민찬... 커크프랭클린 토비맥 마이클w스미스 론케놀리 타미워커... 제이어스 초롬 먼슬리쌈 등은 정말 좋아했었고 아직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ccm들과 해외 예배음악 및 해외 ccm들을 들었습니다. 단순히 많이 듣기만 한게 아니라 좋지 않은 곡은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도 과감히 안 들었습니다. 근데 그냥 이 곡은 은혜가 안되는데요. 내가 요즘 감성이 아니라 그런가? 가사 내용은 주님이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신다는데.. 난 왜 그 가사에 공감이 안될까??? 신학적으로 논란이고 뭐고 난 잘 모르겠고 왜 지금 이 곡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몇번을 제대로 들어보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전체적으로 가사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마지막에 "공감하시네"라는 구절이 참 아쉽네요. 용서하신다거나 기다리신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일 것 같네요.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시지는 않으시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분노하시고 안타깝게 여기시죠 긍휼로 우리를 용서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거룩하기를 원하시니까요 죄에 대한 자기연민에 빠질 수도 있을거라 생각은 합니다만 찬양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분별함이 있으셔서 은혜로만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신학대 졸업자로서 느끼는 건, 이 찬양이 시사하고 있는 바가 죄짓는 상황에서의 공감이 아니라, 요한복음 11장 33절 쪽에 좀 더 가깝다고 보는데요. 온 유대인이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울 때 예수께서도 같이 우시고 비통해하셨거든요. 그런 모든 상황 속에 내포된 의미의 공감을 말하는 것 같아요. 공감하시네 찬양가사도 결국 보면 시작부터 '우리는 바라보아야 하네 우리게 오셨던 그 주님을' 이렇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해요. 신앙이 전제되어 있어야 함을 놓치지 않는 것 같구요, 그 후에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은 나사로와 그 가족, 주변 나사로를 알았던 유대인들의 아픔에 비통해하셨던 것처럼 내 아픔,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까이서' /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내 모든 상황을 아시고 함께 안타까워 하시고 공감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걸 알려주는듯 합니다. 오히려 성경적인 찬양이라고 보고 싶네요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비단 용서와 기다림에만 국한된게 아니잖아요?ㅎㅎ
공감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에 더욱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게 합니다. 가정폭력, 학교 폭력 등 수 많은 상처 속에서 좌절해 보신적 단 한 번도 없으십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노력으론 도무지 바꿀 수 없는 상황들, 계란이 바위치기 하듯 절망스러운 하루 없으셨습니까... 저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막 울면서 기도 했지요. 너무 힘들다고, 이 슬픔이 스스로 감당이 안된다고, 좌절에 잡아 먹힐까봐 두렵다고, 주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곳에서 좀 건져돌라고. 누구에게 말 못하고 정말 발악을 하듯 주님께 매달린 날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변화 시켜주실 것이 아니시라면 절 데려가 돌라는 기도가 나올 정도로 힘든 날이였습니다. 천국에 가면 행복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누가 들을까 소리도 마음대로 못내며 울고 있는 제게 이 말씀이 번뜩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몰라도 나는 네 아픔을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모든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였습니다. 주님! 아시는군요! 제가 말하지 못한 아픔들 주님은 아시는군요! 주님 저 혼자가 아니군요! 지금 이 시간도 저와 동행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비천한 제 삶의 아픔에 친히 공감해 주시고, 함께 동행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저는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렸습니다. 이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감당하려 했던 무거운 짐들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며 평안을 얻고 다시 일어나 감사하고 기뻐하며 영광돌리는 것 말입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신학적인 찬양입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아픔, 슬픔, 죄의 유혹 등을 전부 겪으시고 이기신 주님이 우리를 공감해 주시니 우리는 그분을 봐야봐야 한다. 다른 대상을 의지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라는 것이 이 찬양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비로소 진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ex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건강한 사람른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이게 어딜 봐서 자기 연민 찬앙이며 공감하면 죄를 지어도 된다는 식의 찬양입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은 가사 어디에도 없어요 분명히 주어로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신다고 적혀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내용을 노래로 만들 일이 없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세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런 부분을 얘기 한다면 저는 신학적으로는 부족하기에 머라 못하겠지만 그런 상식 밖의 논리를 들고 나오는건 문제가 있네요
누군가는 이 찬양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누군가는 이 찬양을 듣고 가사를 비판한다
그냥 마음이 아프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할수없어서 하나님께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려는지
나는 이 찬양에 고백이 좋다
아 어떡해 ㅜㅜ 공감하시네 진짜 좋아하는 찬양인데, 소병찬 간사님 목소리가 진짜 은혜됩니당ㅜㅜㅜ
제가 힘들때마다 공감하시네
찬양 들으면서 힘이 납니다
너무 머리 속에 생각이 많아가지고
복잡한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제발 복잡한 생각 안나게 해주세요
좋은 생각만 하고 싶어요
공감하시네 찬양을들으니까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네요
앞으로도 좋은 찬양 들으면서
좋은 생각만 하겠습니다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힘입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옳으면 뭐하고 틀리면 어떻습니까
아픈 나의이웃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간절히 만져주고. 싶은 위로의 찬양 입니다
자주 듣던 찬양인데, 오늘따라 울림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귀한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심에 은혜 받았습니다!
무르익어가네요. 주님을 향한 사랑도, 노래도...💕
감사합니다 찬양 들으며 은혜 많이 받습니다 ^^
가사가 너무 와닿고 힘이 됩니다
이 찬양은 굉장히 신학적인 찬양입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아픔, 슬픔, 죄의 유혹 등을 전부 겪으시고 이기신 주님이 우리를 공감해 주시니 우리는 그분을 봐야봐야 한다. 다른 대상을 의지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라는 것이 이 찬양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비로소 진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치면 인간의 몸을 하고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찬양하는 내용이죠.
ex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건강한 사람른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혹시 새로운TV 영상보고 오셨나요?
좌 물든 가사 같은데?
이 찬양을 잘 모르는데 비유가 상당히 위험하시네요.
예수님이 인간을 공감하기 위해서 육신을 가지셨나요? 육신을 가지셔야만 인간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는건가요?
아멘입니다ㅠ
감사합니다
아멘!!!
👍👍🔥
갑자기 이게 추천영상으로 떠서 들었네요.
댓글들 보니깐 논란이 많은가 보네요.
전 ccm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30년을 꾸준히 많이 듣고 있습니다. 박종호 소리엘 좋은씨앗 예레미 에이멘 천민찬... 커크프랭클린 토비맥 마이클w스미스 론케놀리 타미워커... 제이어스 초롬 먼슬리쌈 등은 정말 좋아했었고 아직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ccm들과 해외 예배음악 및 해외 ccm들을 들었습니다.
단순히 많이 듣기만 한게 아니라 좋지 않은 곡은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도 과감히 안 들었습니다.
근데 그냥 이 곡은 은혜가 안되는데요.
내가 요즘 감성이 아니라 그런가? 가사 내용은 주님이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신다는데.. 난 왜 그 가사에 공감이 안될까???
신학적으로 논란이고 뭐고 난 잘 모르겠고 왜 지금 이 곡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몇번을 제대로 들어보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전체적으로 가사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마지막에 "공감하시네"라는 구절이 참 아쉽네요.
용서하신다거나 기다리신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일 것 같네요.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시지는 않으시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분노하시고 안타깝게 여기시죠 긍휼로 우리를 용서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거룩하기를 원하시니까요
죄에 대한 자기연민에 빠질 수도 있을거라 생각은 합니다만 찬양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분별함이 있으셔서 은혜로만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Jongma_tang 네 맞아요.
저도 welove 다른 곡들은 들어요. 다만 '공감하시네' 란 곡에 공감을 못하는 것 뿐..
음..신학대 졸업자로서 느끼는 건, 이 찬양이 시사하고 있는 바가 죄짓는 상황에서의 공감이 아니라, 요한복음 11장 33절 쪽에 좀 더 가깝다고 보는데요. 온 유대인이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울 때 예수께서도 같이 우시고 비통해하셨거든요. 그런 모든 상황 속에 내포된 의미의 공감을 말하는 것 같아요. 공감하시네 찬양가사도 결국 보면 시작부터 '우리는 바라보아야 하네 우리게 오셨던 그 주님을' 이렇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해요. 신앙이 전제되어 있어야 함을 놓치지 않는 것 같구요, 그 후에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은 나사로와 그 가족, 주변 나사로를 알았던 유대인들의 아픔에 비통해하셨던 것처럼 내 아픔,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까이서' /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내 모든 상황을 아시고 함께 안타까워 하시고 공감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걸 알려주는듯 합니다. 오히려 성경적인 찬양이라고 보고 싶네요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비단 용서와 기다림에만 국한된게 아니잖아요?ㅎㅎ
@@대봉-n5o 그냥 찬양을 일반 가요나 팝 보다 더 많이 듣고 그렇게 지낸 저의 입장은
이 곡은 찬양 같은 느낌보다는 그냥 위로송에 가까운 것 같다는겁니다
그냥 저의 느낌이예요
가사에서 말하는 바를 모르겠다는게 아니라...
@@가가치 가사에 공감이 안된다 하셔서 풀어놓은건데...쩝
공감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에 더욱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게 합니다.
가정폭력, 학교 폭력 등 수 많은 상처 속에서 좌절해 보신적 단 한 번도 없으십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노력으론 도무지 바꿀 수 없는 상황들, 계란이 바위치기 하듯 절망스러운 하루 없으셨습니까...
저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막 울면서 기도 했지요. 너무 힘들다고, 이 슬픔이 스스로 감당이 안된다고, 좌절에 잡아 먹힐까봐 두렵다고, 주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곳에서 좀 건져돌라고. 누구에게 말 못하고 정말 발악을 하듯 주님께 매달린 날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변화 시켜주실 것이 아니시라면 절 데려가 돌라는 기도가 나올 정도로 힘든 날이였습니다. 천국에 가면 행복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누가 들을까 소리도 마음대로 못내며 울고 있는 제게 이 말씀이 번뜩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몰라도 나는 네 아픔을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모든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였습니다. 주님! 아시는군요! 제가 말하지 못한 아픔들 주님은 아시는군요! 주님 저 혼자가 아니군요! 지금 이 시간도 저와 동행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비천한 제 삶의 아픔에 친히 공감해 주시고, 함께 동행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저는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렸습니다. 이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감당하려 했던 무거운 짐들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며 평안을 얻고 다시 일어나 감사하고 기뻐하며 영광돌리는 것 말입니다.
궁금한게 다른 찬양팀 노래를 콘티로 짤 때 그 분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건가요?
이 곡은 단순히 기독교 음악이지 예배 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자기 입맛에 하나님을 맞춘 가사가 아쉽네요. 공감하시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건가요? 자기 합리화와 자기 연민의 빠진 곡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신학적인 찬양입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아픔, 슬픔, 죄의 유혹 등을 전부 겪으시고 이기신 주님이 우리를 공감해 주시니 우리는 그분을 봐야봐야 한다. 다른 대상을 의지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라는 것이 이 찬양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비로소 진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ex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건강한 사람른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
이게 어딜 봐서 자기 연민 찬앙이며 공감하면 죄를 지어도 된다는 식의 찬양입니까??
신학적으로 치면 인간의 몸을 하고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찬양하는 내용이죠.
저는 되려 한저스틴님 처럼 이것저것 판단하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왜 저래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은 가사 어디에도 없어요 분명히 주어로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신다고 적혀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내용을 노래로 만들 일이 없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세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런 부분을 얘기 한다면 저는 신학적으로는 부족하기에 머라 못하겠지만 그런 상식 밖의 논리를 들고 나오는건 문제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