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지가 이끌었었던 남병은 아래 @나가자앞으로 님이 설명한 바처럼 북병과 달리 약탈을 하지 않고 전투에 적극적이어서 조선이 대놓고 남병을 파병해달라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조총 같은 개인화기 외에 불랑기포, 홍이포, 호준포 등 다양한 화포 또한 대규모로 운영해서 전투력도 북병을 능가했습니다.
인조때 본인이 정변으로 왕이된 사례라 여러 난으로 느낀 바를 아주 훌륭하게 대처했죠 바로 각 지방에 있는 군사들의 훈련을 줄이거나 금지하기 이렇게 되서 훈련을 못한 병사만 있어 막상 청군하고 있을 떄 적이 오기전에 지례 겁먹고 활과 총통을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쏴서 재장전때 털렸죠 그나마 임경업장군 등 사전에 미리 훈련을 한 장수들은 각 지방과 거처에서 승전을 했으나 그중에서도임경업 장군은 조선에서 조선 관료로 인해 고문당해 죽었죠 인조 덕분에 무신들이 움츠리고 의병들이 움츠리고 아주 개난리가 났어요
한창석 징비록이 에도시대때 베스트셀러였죠~ 중국에서도 많이 읽혔습니다. 이 징비록 덕분에 이순신 장군이 중국 일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한국 중심의 임진왜란사가 확립되는데에 일조한겁니다.(다시말하자면 한국에 더 유리한 견해로 쓰여진 징비록이 베스트셀러 서적으로 등극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이 자리잡았죠. 그 이전에는 사실 장수급이나 우두머리급 아니고는 이순신이나 한국의 명장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이 주로 명나라와 일본의 싸움인 줄 알았는데 류성룡이 조선군의 활약을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그게 받아들여진거죠
조선왕조실록 내용 上曰: "駱叅將, 何如人耶?" 根壽曰: "無城郭內外, 有勇力士矣。" 恒福曰: "少時爲倭所擄, 非一再矣。" 應寅曰: "駱叅將、沈惟敬, 皆有名於倭中矣。 "낙 참장이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마음에 어떤 경계나 안팎이 없고 용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고, 항복은 아뢰기를, "젊었을 때 왜인에게 포로로 잡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고, 응인(應寅)은 아뢰기를, "낙 참장과 심유경은 모두 왜인에게 소문이 나있는 사람들입니다." 上敎政院曰: "駱參將來在城中, 可抄精銳, 學其劎術。 "낙 참장이 성중에 와 있으니 정예병을 가려 검술(劍術)을 배우게 하라." 來此之人, 無可觀者, 但有吳惟忠, 稍可稱者。 予非以力於我國事, 而稱譽之也。 駱尙志、佟養正, 亦其次也。 우리 나라에 온 자들 중에 볼 만한 자가 없는데 오유충(吳惟忠)만이 조금 칭찬할 만한 자이다. 나는 그가 우리 나라 일에 힘쓴다고 해서 그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낙상지(駱尙志)와 동양정(佟養正)도 그 다음가는 인물이다. 又言 此國有官奴、私奴之法, 永世不通仕路, 此輩豈無憾恨鬱結之心乎? 況此危亂之時, 此法猶存, 其投入賊中者, 宜不肯回來。 其爲法弊甚矣 낙상지가 또 말하길 "이 나라에는 관노(官奴)와 사노(私奴)의 법이 있어 영원히 벼슬길을 통하지 못하게 하니, 이들에게 어찌 불평하는 마음이 없겠소. 더구나 이런 위태한 시기에 이와 같은 법이 존재하니, 적에게 투입한 자들이 마땅히 돌아오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그 법의 폐단이 심하오."
조선 기존의 문제점은 이미 드러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양반 위주의 양천제 반상제. 그리고 조세도 방납 폐단이 극심했었고 상업은 점점 진흥하는데 기존 체제가 못따라가는 모순이 터져나오고 있던 시점이죠 임진왜란이 터지고 전란 극복과 더불어 기존의 산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만한 여러 정책의 개혁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는 계속 이런 과정이 반복된 역사를 겪어왔다는거죠 지금도 하나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국가 전체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자잘한 문제나 일을 덮고 가리기 급급합니다 책임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들이 상당해서 후폭풍에 대한 대비나 방비가 상당히 소홀해요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고 개혁할만한 의지보다 그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권익과 안정성에 기대는 모습들이 큰 것입니다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만 보려하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역사는 되풀이 될 뿐이죠 징비록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입니다 기존 시스템의 문제는 사람들의 정신이나 사고방식의 문제인 것입니다 관료제에 너무 길들여져있고 계급에 너무 오랫동안 물들어있어서 세상을 위 아래로만 보여하지 수평적으로 드넓게 못보는 것, 자신의 권익 수호에 집중하느라 공리보다 사리사욕에 쉽게 빠지는 세태와 더불어 현재에 안주하느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점 등이 현재 한국의 정신적 적폐라 할만합니다
명군 쉴드치긴 싫지만 솔직히 낙상지가 성인수준인거고 다른 명군이 일반적인 경우지 어느 누가 위에서 시키니 어쩔수없이 온 전쟁에서 죽고싶겠음? 더구나 자기나라도 아닌데 명군은 그냥 쉬다가 온것도 아니고 보바이의 난 진압하고 난 후 바로 조선으로 건너옴 일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남에나라 전쟁에 참여 하게 된것 군대만해도 훈련끝난 날 저녁에 근무 나가라 그러면 존1나 가기 싫은데 저건 오죽하겠음....
@@불편한시청자 트롤짓 많았다 해도 명나라가 도와준것은 그 이상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기근이 발생했는데 거기에 필요한 쌀을 어덯게 구한지 아시나요? 만력제가 조선이 기근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지원하라고 명령을 했죠 그리고 자신의 사금고까지 열어서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제대로 안싸운 장수들에게 엄명을 내려서 싸우는 시늉만 하면 돌아와서 숙청시킨다고 했죠 명나라 입장에서 남의 나라 와서 싸우는 것인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죠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 명나라 군사들은 남의 나라 와서 개죽음인데 싸우고 싶을까요? 임진왜란당시 명나라가 우리나라에 파견한 병력이 임진왜란 당시 5만 정유재란 당시 11만이라고 하더군요 전쟁 중에 식량을 지원해주는게 군량 지원 수준이 아니라 조선 백성 기근 해결하는 수준이었고 병력도 저만큼 지원해줬으면 트롤짓이 아니죠 6.25 당시 미국이 우리 지원해준 수준이랑 동급입니다 6.25 전쟁당시 미군도 트롤짓 했어요 하지만 당시 전쟁에서 미군이 트롤짓이 더 많았다고 안하죠 현리전투만 하더라도 미군과 한국군 경계선 사이로 중공군이 밀려들어왔고 그래서 우리나라 3대 패전으로 기록하게 되었죠 당시 중공군이 공격전에 국군 후방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병력을 파견할려고 했지만 거기가 미군 담당이라 허락을 안해줬고 그곳이 중공군에 점령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방에선 대규모 병력이 공격해들어오고 후퇴를 해야하는데 후방퇴로는 미군에 의해서 방어병력 배치도 못한상황에서 중공군에 미리 선점 당해서 국군 사단들이 무질서하게 후퇴해서 많은 사상자와 포로가 발생했었죠 당시 명군이 트롤짓 안하는게 정상은 아니죠 우리도 베트남 전쟁당시 트롤짓 안한것도 아니잔아요 라이따이한만 봐도 트롤짓 부정하기 힘들죠
낙상지. 대인,은인. 존경할만한 중국인.
ㅇㅈ
또한사람 명장수두사충이귀허히면서훗날 대구에서 살게되었다는후문있었다고하네요
낙상지가 이끌었었던 남병은 아래 @나가자앞으로 님이 설명한 바처럼 북병과 달리 약탈을 하지 않고 전투에 적극적이어서 조선이 대놓고 남병을 파병해달라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조총 같은 개인화기 외에 불랑기포, 홍이포, 호준포 등 다양한 화포 또한 대규모로 운영해서 전투력도 북병을 능가했습니다.
검술도 낙상지가 전수해줌
남병은 무엇보다 왜구토벌의 경험이 풍부했기에 훈련도감이 창설되는데 많은 도움이되었죠 ex) 삼수병체제
낙상지는 어떳인물
북병은 기마술과 전투능력이 남병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러나 군기가 개판이죠. 거기다 지멋대로 움직여 다루기 힘들정도입니다. 그러나 남병은 체계가 잘되있고 군기가 엄합니다. 남병의 단합의 이유는 무소불위의 명장 쳑계광의 훈련때문입니다
명나라에서 조선에눌러않은자들도 있지요 진린의손자도 청나라가쳐들어오니 바로 조선으로귀화했죠 몇몇장수 학사들도 조선에귀화했어요
진린이 광동진씨의 시조입니다
@@jsm9252 그렇죠 진란 후손등 명나라에서 조선으로귀화한사람들많다더라고요 항왜들도있었고
눌러앉은게아니라 나중에 여진족탄압으로 쫓겨난거지
@@노잼인간-b4i 망하기이전에 넘어온사람들이많아요 진린과그아들후손들 내려온것도 이순신장군한태반해서 라는얘기가있지요
@@마르코폴로-s4x 적어도진린은 중국이만주족으로넘어가 그때넘어왔음
낙참장 최고!!!
징비록을 보고 깨우친 사람은 조선이 아니라 안타깝께도 일본이 었다는 사실 ㅠㅠ 그후 조선 말기 메이지 유신은 징비록을보고 다시는 임진왜란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했다.
우리도 깨자 너무게을러
배고픔을 몰라요
아 정말인가요? 그런 사실은 처음 알았는데.. 정작 실패를 교훈 삼은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었군요.. 게다가 참고서로 써먹다니.. 정말 한스럽네요 ㅠ
징비록은 엄연히 조선에서 비밀서적이었는대
메이지유신당시 일본 서점에서 엄연히 복사본이 팔리고있던 현실
역관들이 내다팔았죠 ㅉㅉ
사실 일본군이 제일불쌍하죠 항상 지들끼리 싸우는데 내전으로 전쟁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줄 알았더니 타국전쟁까지 징집당하니
저렇게 해서 다 키우면 뭐하냐;;; 이괄의 난으로 정예는 전부 몰살 당하고 후금이 마구 잡이로 조선을 또 잡았는데;;;
후금때는 그나마 버텼는데 청때 고속도로 가 되었죠
안되는 나라는 다 이유가 있어.
무슨 정예군은 이괄때만 있었냐ㅋㅋㅋ
이괄의 난이 뼈 아픈건 맞지만 그게 결정타는 아니었음 실제로 난 도중에 많은 이가 이괄을 버리고 투항함 군대를 늘리려면 많은 제도를 바꿔야하는 문제라 쉽지 않음
인조때 본인이 정변으로 왕이된 사례라 여러 난으로 느낀 바를 아주 훌륭하게 대처했죠 바로 각 지방에 있는 군사들의 훈련을 줄이거나 금지하기 이렇게 되서 훈련을 못한 병사만 있어 막상 청군하고 있을 떄 적이 오기전에 지례 겁먹고 활과 총통을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쏴서 재장전때 털렸죠 그나마 임경업장군 등 사전에 미리 훈련을 한 장수들은 각 지방과 거처에서 승전을 했으나 그중에서도임경업 장군은 조선에서 조선 관료로 인해 고문당해 죽었죠 인조 덕분에 무신들이 움츠리고 의병들이 움츠리고 아주 개난리가 났어요
저렇게 양심적인 명군장군이 있었으면 좋았는데
ㅇㅈ
원숭환 장군을 이리로 보내지 그랬냐 그러면 정묘호란 때의 참패 정도는 감안할수 있었는데
@@youngshin7850 원숭환.. 정말 비운의 명장이지요 계속 살아 있었다면 적어도 호란은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녹두만호 정운장군 송희립장군 정문부장군들... 그분들이 더욱 오래사셨으면..
옳아요...
낙상지는 착짱이다
징비록 조선에선 기밀문서화 되고
일본에선 에도막부시대 베스트셀러됨
일본대중들에게 엄청많이 읽히고 연구됨.
예나지금이나 이나라는 안보의식 제로
@@jaykay__jaykay ㅆㅇㅈ
Jh K 임진왜란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백재멸망시 군사 이만명 파견했던 백강전투 이후로 거의 천년만의 정식 해외 원정이라서 자국 군대가 어떻게 싸웠는지 관심이 많았다고함 ㅋㅋ 일본작가에 의해 소설로도 재창작되고 당시 가히 일본최고의 베스트셀러중 하나였죠
한창석 징비록이 에도시대때 베스트셀러였죠~ 중국에서도 많이 읽혔습니다.
이 징비록 덕분에 이순신 장군이 중국 일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한국 중심의 임진왜란사가 확립되는데에 일조한겁니다.(다시말하자면 한국에 더 유리한 견해로 쓰여진 징비록이 베스트셀러 서적으로 등극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이 자리잡았죠. 그 이전에는 사실 장수급이나 우두머리급 아니고는 이순신이나 한국의 명장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이 주로 명나라와 일본의 싸움인 줄 알았는데 류성룡이 조선군의 활약을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그게 받아들여진거죠
실제로는 이여송이 허락했음은 물론이고 내심 반가워 했음 조선군이 강해져야 명나라군 입장에서는 전쟁이 수월해지고 희생을 줄일 수 있기 때문
유성룡- 그런데 말이옵니다~
군사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착한 도덕심이 정의가 아니라 군사력이 정의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
힘내세요
저게 사실이면 요즘으로 봣을떄
확대해석하면 군사기밀유출로 볼수도있는건대 , 재수없으면 목아지날라갈일이지 ㄷㄷ
사실이라면 정말로 대장부다
우리입장에서야 대장부지 명입장에서는 반역자임
자신의 나라를 뒤로하고 다른나라에 군사기밀을 유출하는건 결코 좋게 볼순없음
@@user-lo6vl6lk1s뭐 후에 이여송이 오히려 칭찬하고 낙상지에게 뭐라하던 부하들에게 입다물라하고 낙상지는 조선에 남기고 명으로 돌아가죠
선조실록에서는 정철총통을 평하기를 항왜인 김충선이 만든 조총보다는 못하더라는 평을 했었다네요
그래도 조선에서 처음으로 총포부대를 개설한건 전라좌수영이 아니었을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저게 결과론적으로 조선 신분제의 붕괴를 가져옴.
우선 당장이야 임진왜란을 끝낼수 있는 방책이겠지만
결국 조선에게 현실적으로 세금과 군역을 책임져온 신분층이 얕아짐.
낙상지분 원래 봉수대 거기있던 사람 아니에야!
선조도 훌룡한 왕이었음. 나름대로 신하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함께 함.
이걸 보면서
나도 주한미군 좋아하지는 않지만
분명 지금 주한미군 장교나 장성들 중에도 양심있는 사람들이 낙상지 처람 한국을 위해 도왔을 것이다
혹시 낙상지 배우가 헤일로 드라마에 나오는 그 배우인가?
조선왕조실록 내용
上曰: "駱叅將, 何如人耶?" 根壽曰: "無城郭內外, 有勇力士矣。" 恒福曰: "少時爲倭所擄, 非一再矣。" 應寅曰: "駱叅將、沈惟敬, 皆有名於倭中矣。
"낙 참장이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마음에 어떤 경계나 안팎이 없고 용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고, 항복은 아뢰기를,
"젊었을 때 왜인에게 포로로 잡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고, 응인(應寅)은 아뢰기를,
"낙 참장과 심유경은 모두 왜인에게 소문이 나있는 사람들입니다."
上敎政院曰: "駱參將來在城中, 可抄精銳, 學其劎術。
"낙 참장이 성중에 와 있으니 정예병을 가려 검술(劍術)을 배우게 하라."
來此之人, 無可觀者, 但有吳惟忠, 稍可稱者。 予非以力於我國事, 而稱譽之也。 駱尙志、佟養正, 亦其次也。
우리 나라에 온 자들 중에 볼 만한 자가 없는데 오유충(吳惟忠)만이 조금 칭찬할 만한 자이다. 나는 그가 우리 나라 일에 힘쓴다고 해서 그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낙상지(駱尙志)와 동양정(佟養正)도 그 다음가는 인물이다.
又言 此國有官奴、私奴之法, 永世不通仕路, 此輩豈無憾恨鬱結之心乎? 況此危亂之時, 此法猶存, 其投入賊中者, 宜不肯回來。 其爲法弊甚矣
낙상지가 또 말하길
"이 나라에는 관노(官奴)와 사노(私奴)의 법이 있어 영원히 벼슬길을 통하지 못하게 하니, 이들에게 어찌 불평하는 마음이 없겠소. 더구나 이런 위태한 시기에 이와 같은 법이 존재하니, 적에게 투입한 자들이 마땅히 돌아오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그 법의 폐단이 심하오."
나참 조선시대에 명나라장수한테
사회제도인 노비제도가 까일정도야? ㅋㅋㅋㅋㅋㅋ
명나라도 신분구조가 그정도 막장구조는 아니였나보내 ㄷㄷ
실록의 출처좀 알수있을까요?
@@Gersang006 네이버에 조선왕조실록 치시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중인 사이트가 나옵니다. 국역 번역, 원본, 컴퓨터로 복원한 한문판이 있습니다.
@@Khvcxzxcvftww35678 ㄱㅅㄱㅅ 제가알고있는 홈페이지였군요
팩트 꼽았네 ㅋㅋ
낙상지야말로 진정한 산낙지
생각해보면 낙상지 윗사람에게 걸리면 큰일날텐데 대단
윗사람이라봐야 도독이랑 경략, 황제뿐임
@@재앙-l7v다 하나같이 높은거 아님?
근데 실제론 이여송을 비롯한 명군 입장에서 이득인거 아님? 조선군이 강해지면 명군 사망자도 줄어들고 감당해야 할 일도 줄어들텐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음?
갑자기 "그런데 말입니다" 라고 할 것 같은... ㅋㅋㅋ
박선우 전하 제가한말은 다 ‘’구란데 말입니다..’’
낙상지 양심이 있는 장수네 명군들이 조선 백성들을 횡포 불려는데 진심으로 사과를하네
중국은 싫지만 낙참장 참 좋은사람인듯...
진짜 최고의 장군이셨습니다
실제로는 참장 낙상지가 류성룡에게 찾아가 훈련도감의 개설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만약 임진왜란 기념관을 건립한다면은 권율 이순신 사명대사등 조선명장과 의병은 물런이고 병부상서 석성 경리양호 총병 해생 마귀 유정 참장 낙상지의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 다른 명나라군이 행패와 약탈로 조선인을 괴롭히는 중에도 주저하지않고 왜군을 공격해준 그들은 마땅히 존경받아야함.
사비까지털어서 쌀 100만석지원해준 고려천자 만력제가 제일공이크죠
만력제 -> 맥아더급
지금과 똑같네요.국민이 없는데 어떻게 국가가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명나라장수들은 다개판인줄알았는데 그래도 유능하고 개념있는 장수도있었군요 ㅋㅋ
우리도 임란 터지자 나만 살자 빤스런하는 사대부도 있지만 사대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의병을 일으킨 자들도 있는 거랑 같은 격이죠.
명군 자체가 이득도없이 타국와서 목숨바치라는데 싸워준게 고마운거죠. 조선이 약속대로 보급만 잘 대줬으면 더 빨리 종전했을텐데 도로가 없으니 뭐 나를수가있나...
낙첨장 유정이라는 장군이 명나라때 가장 군인정신이 가장 투철한 장군이에요
사실 자기도 내부민란 여진족친입으로 골아픈데 조선까지도와주는건빡치지
@@7АВТ 하아. 공부하셈. 임진왜란 첫, 가장 잘 알아야하는 부분! 임진왜란의 정의.(그 정의감 할 때 그 정의가 아님.)
선조가 막장 이긴해도 암군치고는 나름 신하들 잘 등용하고 잘 경청함
사람 보는 눈은 확실히 좋았던 왕
@@user-uy3mz4qn4z말년에 새 중전을 들이고 적통왕자를 안낳았다면...
드라마에서 적대적으로 나온
송응창과 이여송 둘다 조선에 우호적이였고 조승훈은 그대로
서해 류성용 지금은 배가 되어 우리나라를 지킨다.
서애...
김상중씨는 성우해도 되겠다 목소리 너무 멋있어
진정한 대국에 대인
선조의 신의 한수.ㅡ 유성룡. 이순신
그럼 임금은 어디서부터 임금이 나오는가
인재는 어디에서나 나오는 법... 하지만 지금이라고 현실이 달라졌을까? 혈연+학연+지연.. 아직두 한국은 변하지 않았는데....ㅜㅜ
제가 기억하는 양심있는중국인 2분 낙상지)(리원냥)끝 없음.
선조 후 ㅋㅋㅋㅋ 한숨밖에 안나온다
조선 기존의 문제점은 이미 드러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양반 위주의 양천제 반상제. 그리고 조세도 방납 폐단이 극심했었고 상업은 점점 진흥하는데 기존 체제가 못따라가는 모순이 터져나오고 있던 시점이죠 임진왜란이 터지고 전란 극복과 더불어 기존의 산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만한 여러 정책의 개혁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는 계속 이런 과정이 반복된 역사를 겪어왔다는거죠 지금도 하나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국가 전체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자잘한 문제나 일을 덮고 가리기 급급합니다 책임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들이 상당해서 후폭풍에 대한 대비나 방비가 상당히 소홀해요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고 개혁할만한 의지보다 그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권익과 안정성에 기대는 모습들이 큰 것입니다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만 보려하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역사는 되풀이 될 뿐이죠
징비록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입니다 기존 시스템의 문제는 사람들의 정신이나 사고방식의 문제인 것입니다
관료제에 너무 길들여져있고 계급에 너무 오랫동안 물들어있어서 세상을 위 아래로만 보여하지 수평적으로 드넓게 못보는 것, 자신의 권익 수호에 집중하느라 공리보다 사리사욕에 쉽게 빠지는 세태와 더불어 현재에 안주하느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점 등이 현재 한국의 정신적 적폐라 할만합니다
전쟁중인데
지들 노비라고 못내놔 !
본보기로 한놈 잡아 참하고 효소하면
나머진 찍소리 없이 따라오게 돼있음
4:45 죄스러운이라고 한일같은데 저만그런가요?
낙참장 낙착짱
저말의 역시 확 와닷는다
나라가 없스면 양반과 천민이 있슬수 있겠는가
맞지 저말이 맞긴하지
요즘에 종교의자유니뭐니 하면서 군대막 면제시켜주면서
몸불편하거나 정신질환있는사람들은 꾸역꾸역 넣으려함 나라가 거꾸로 돌아가네
@@opppgi406 여호와증인 말씀이시죠
그래도 여증애들은 일관성은 있어요
신천지나 천주교 요런애들이 좀 야비하죠
술먹은 중이나 이쁜신도 깔딱거리는 기독목회종교자들... 저는 조심중
@@금강이조은 이래서 우리나라가 쓰레기임 임시 계엄령 선포내려서 말안듣놈들 전부 공개적으로 참수시키고 신천지 이런땅은 좀 쓸어버려야함 탱크로 다밀어버려야 코로나가 안오지 너무풀어줌 지금한국 미국이 지금없었으면 벌써 다시일본한테 뻿길나라임
나라가 없는데 양반이 어디있고 노비가 어디있나 목을 쳐서라도 단오하게 나가야함
명군 쉴드치긴 싫지만 솔직히 낙상지가 성인수준인거고 다른 명군이 일반적인 경우지
어느 누가 위에서 시키니 어쩔수없이 온 전쟁에서 죽고싶겠음? 더구나 자기나라도 아닌데
명군은 그냥 쉬다가 온것도 아니고 보바이의 난 진압하고 난 후 바로 조선으로 건너옴 일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남에나라 전쟁에 참여 하게 된것
군대만해도 훈련끝난 날 저녁에 근무 나가라 그러면 존1나 가기 싫은데 저건 오죽하겠음....
남의 나라, 남의 전쟁?
똑똑똑?
임진왜란 정확히 정의하셔야합니다. 정명가도. 무엇보다 풍신수길은 명을 최종목표로 조선을 치고 명을 삼키려는 전쟁이지 임진왜란이 조선침략에만 해당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용가리-x3l 근데 어짜피 만주로 갈려만 만주족이 대기하고있는데못이김
@@용가리-x3l
전쟁 명분론이지요
귀와 코는 왜베어감
우리가 남극 정복하러
갈 참이니 일본은 길을
내놓으시요 하면 명분이 설까요
전쟁은 항상 이런식이죠
순진한 말 그만하시요
조선시대 이괄의 편곤기병있었어도 후금에 우리가 불리했을듯. 고려시대 현종같은 임금이 정묘호란병자호란때 임금이었다면 인재풀양성해 유능장수신하길러냈을듯. 적보더불리하기에 전략전술잘짜서 수성전하면서 거란전됐을듯. 야전에서도 몇번이겨서 남한산성 포위풀었거나 아예강화도로 갔을듯. 나중에 청이 중국통일해서 사대해도 협상조건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겠지. 병자호란때 인조와 신하들의 잘못이 100라본다.
훈련도감?
그럼 그 많은 군사 육성 훈련 자금은 어디서 확보 할래?
1:28 녹두꽃 도깨비가 생각났다
명나라 입장에선 황당할듯.. 나라말아먹어가며 도와줬더니 최후의 양심운운...
낙참장 스윗중남이네
기억하자 낙.상.지.
면천?
그알 보는것 같다
그때 당시의 문제는 화약이었지...
훈련의 중요성을 경시하는건 지금과 똑같네
명의 정말 얼마않되는 대인님들...
1:27 그게 무엇이오?
1:30 널 죽이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이 무능한 군주놈아!! 빠앙!!💥
리신같은 수도승도 싸움기술 알려줄듯
피라미드 사업의 시작 ㅎ
나는 저 총과 칼을 내려놓은 일본장수가 아주 흥미롭다 보통인물이 아니다
ㅡ 우리편에서 싸우다
ㅋㅋ킹치양 낙상지로 환생
이거 몇화에요?!
이당시 명나라도 붕당있었는거같던데 남쪽출신이던가 그쪽은 조선백성들 약탈안했다던데
남병은 군율이 엄격하고 약탈을 금햇습니다 하지만 북병은 북방한족및 여진 몽골계의 거친 면이 있엇고 약탈도 심햇어요
낙상지=명나라판 밴 플리트
김치양 ㄷㄷㄷㄷㄷㄷㄷㄷㄷ
노력해서 정예병 만들고 정예병 반란 일으키게 하는 잼.
김상중은 류성룡이 아니라 김상중을 연기하고 있네
곽영주 양반
삼족오는 중국것~~ㅎㅎ
부금강 양반
???????
죽짱이 아닌데 착짱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ㅎㅋㅋㅎㅋㅎㅋㅋㅋㅋㅋㅋㅎㅋㅎㅋㅎㅎㅋㅎㅋㅎㅋㅎㅋㅎㅋ
지금은 죽었으니까 죽짱아님?
이름이 입에달라붙음
낙상지낙상지
낙지낙지낙지
낙지볶음..
1가지
전쟁전에 했어야지 하여간 이나라는 ㅉㅉ
조선임진왜란일본에게당해서면일본대해준비해서야지
평양성을 인정해줘도 고니시유키나가 놓아주고 개다가 한양으로진격하지않고 평양찾아줫다고 철군하는명군을 어따씀??개다가벽제관전투에서도 명군이일본군이랑무리하게싸워서 진전투를 조선탓으로 돌리는데 명군이 아무리 조선을도와줫다한들 트롤짓이 더많음
트롤짓은 사실 조선백성입장에서 정부나 명이나 도찐개찐인경우도 많앗다고..
+김용환 뻘짓을 많이 했다고 걔들이 아예 쓸모없다고 하는 소리는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는 코딱지 만큼도 안했다는 소리...
@@tofueats5346 트롤짓이 더 많았다는 글인데 아예 쓸모없다고 말씀하신 것 같진 않은데
@@불편한시청자 트롤짓 많았다 해도 명나라가 도와준것은 그 이상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기근이 발생했는데 거기에 필요한 쌀을 어덯게 구한지 아시나요?
만력제가 조선이 기근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지원하라고 명령을 했죠 그리고 자신의 사금고까지 열어서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제대로 안싸운 장수들에게 엄명을 내려서 싸우는 시늉만 하면 돌아와서 숙청시킨다고 했죠
명나라 입장에서 남의 나라 와서 싸우는 것인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죠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 명나라 군사들은 남의 나라 와서 개죽음인데 싸우고 싶을까요? 임진왜란당시 명나라가 우리나라에 파견한 병력이 임진왜란 당시 5만 정유재란 당시 11만이라고 하더군요
전쟁 중에 식량을 지원해주는게 군량 지원 수준이 아니라 조선 백성 기근 해결하는 수준이었고 병력도 저만큼 지원해줬으면 트롤짓이 아니죠
6.25 당시 미국이 우리 지원해준 수준이랑 동급입니다 6.25 전쟁당시 미군도 트롤짓 했어요 하지만 당시 전쟁에서 미군이 트롤짓이 더 많았다고 안하죠
현리전투만 하더라도 미군과 한국군 경계선 사이로 중공군이 밀려들어왔고 그래서 우리나라 3대 패전으로 기록하게 되었죠
당시 중공군이 공격전에 국군 후방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병력을 파견할려고 했지만 거기가 미군 담당이라 허락을 안해줬고 그곳이 중공군에 점령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방에선 대규모 병력이 공격해들어오고 후퇴를 해야하는데 후방퇴로는 미군에 의해서 방어병력 배치도 못한상황에서 중공군에 미리 선점 당해서 국군 사단들이 무질서하게 후퇴해서 많은 사상자와 포로가 발생했었죠
당시 명군이 트롤짓 안하는게 정상은 아니죠 우리도 베트남 전쟁당시 트롤짓 안한것도 아니잔아요 라이따이한만 봐도 트롤짓 부정하기 힘들죠
@@Ulsanman3 와....진짜 엄청나게 잘알고 있네요 마음 같아선 좋아요 5조억개 눌러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을 어쩜 이렇게 구구절절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서 뚝배기를 내리치시는지...그저 감탄만 나올뿐입니다
군역에 의한 면천은 임진왜란 전 이율곡이 병조판서일 때 양병을 주창하면서 선조한테 건의했고 선조도 동의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좌절됐던 정책인데, 여기서 류성룡이 건의하니 선조가 처음 듣는 정책처럼 갸우뚱 연기하는 건 역사적 진실이 아닙니다
곽박사가 어쩐일인가
송응창을 왜곡시켰음
선조진짜 멍청한 케릭터로 만드네ㅡ
이북이 핵을 가지려는거 잘못일까
지긋하다 전쟁
삼선짜장이네
여자친구 구합니다 무조건 착하여자 좋은데 요 돈요구 안하는여자 좋은데 요
나이상관없음
여자친구 여기서 찾지말고 밖에 나가서 찾아요
이런애들조심 위험한사람임
애초에 명의지원군없이 싸우는게 더 이득이엿는데
ㄴㄴ 일단 명군자체는 필요햇고 도움이 된건 맞음. 워낙 전적이 화려해서지..
특히 정유전쟁때부터는 조선:명군비율은 3:11.
+김용환 아무리 명군이 트롤짓했어도 일단 평양성점령만큼은 인정해줘야되고 정유재란때 만력제가 100만석을 명군과 조선백성에게 나눠서 보급해주는바람에 전염병이 안돌았습니다. 임진왜란과는 대조되는 부분이죠.
@경우야정신차리자 황제가 까라면 까야죠 그리고 중국 스케일이 얼마나 큰데
그리고 의병이란게 잘난게 아니야. 이 빡대가리놈아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