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정전 이야기 258강 - [좌선법] - 좌선의 공덕(6~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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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7 лют 2025
- 반갑습니다. 정전 이야기꾼 방길튼 교무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좌선의 공덕’ 6~10조를 소태산의 육성인 이공주 수필 회보 44호 ‘좌선의 필요’에 의거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조~5조가 주로 행위의 변화라면 6조~10조는 주로 마음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6. 착심着心이 없어지는 것이요,
“그 내역= 보통 사람이란 모든 욕망이 심하고 원근친소와 희노애락에 끌림으로 착심이 생겨나서 원만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극히 싫어하고 극히 좋아하는 자리를 떠나서 마음 거래去來 없는 자리를 관하는 좌선을 많이 하여 심리心理가 원만하여지고 보면 원근친소와 희노애락을 초월하여 특별히 좋고 싫은 것이 차차 없어지나니라.”
착심은 망념으로 착심인 망념이 쉬는 경지가 바로 착심이 없는 진성이 드러나는 경지입니다.
착심은 정신수양의 요지에 따르면 주착심으로, 분별성이 분별의 相이 난 마음이라면, 주착심은 애착, 탐착, 원착 등으로 편착하고 염착하는 마음입니다.
단전에 기운 주하고 있는 마음당체에 그쳐 있으면, 이 자리가 곧 극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자리를 떠난 마음의 거래 없는 자리로 분별성과 주착심도 없는, 극히 특별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 끌리는 착심이 차차 없게 됩니다.
7. 사심邪心이 정심正心으로 변하는 것이요,
“그 내역= 보통 사람이란 항상 모든 욕망에 끌려서 사심이 주장되고 정심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심을 제거하고 정심을 양성시키는 좌선을 많이 하면 온전한 정신이 양성되는 동시에 자연 모든 사심은 정심으로 변하게 되나니라.”
삿된 욕망에 끌리는 사심(邪心)은 망념이라면 욕망에 끌리지 않는 정심은 망념은 쉬고 진여의 본성이 드러나는 경지입니다. 이는 단전주를 놓치면 혼침이나 망상에 빠지는 사심이요 단전주를 챙기면 적적성성한 정심(正心)으로, 혼침에 빠지면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 무위자연한 본래면목에 그쳐 있으라는 것입니다. 정심, 정념은 적적성성한 진여의 본성에 그쳐있는 온전한 정신입니다.
8.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
‘좌선의 필요’ 설법에 없는 조목으로, 이는 단전을 주하고 있는 그 마음 당체를 돌이켜 직관하면 단전 이외의 다른 일체의 생각이 붙을 수 없는 적적한 경지이면서 또한 주처인 단전이 두렷하게 드러나는 성성한 경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래 적적성성한 자성의 광명이 나타나는 것이며, 공적영지의 광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9. 극락을 수용受用 하는 것이요,
“그 내역= 인간 세상이란 고락苦樂이 상반相半이라 하나, 그 실은 낙보다 고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 좌선을 많이 하면 결국에는 언어言語가 도단道斷하고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한 진경眞境을 관하여 거기에 입정入定하게 되나니, 그 지경에 이른다면 곧 그곳이 고락을 초월한 참 극락이며 내세보다도 현세에 직접 극락을 수용하게 되나니라.”
입정이란 언어도단처요 심행처가 멸한 자리를 관하여 거기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단전에 기운 주하고 있는 마음당체는 괴로운 마음도 달라붙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낙도 붙을 수 없는 고락초월의 자리로 선악업보가 끊어진 정토(淨土) 극락처입니다. 극락은 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입니다.(대종경 성리품 3장)
10.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이니라.
“그 내역= 생사라 하는 것은 자연의 공도公道요, 천지의 조화인지라. 흔동천지掀動天地하던 영웅 호걸도 생사의 앞에는 꼼짝 못하고, 당세에 권세를 잡은 고관대작도 생사의 앞에는 절대 복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 거래에 자유를 얻는 좌선을 많이 하여 자유를 얻고 보면 자연히 생사를 초월하는 동시에 생사에 자유를 얻게 되나니라.”
단전을 초점으로 호흡을 들이쉬고 내쉴 때 그 들이쉬는 생(生)과 내쉬는 멸(滅)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마음 본체는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여여한 깨어있는 경지입니다. 그러므로 단전에 기운 주하고 있는 마음당체인 단전주의 마음자리에 그쳐 있으면 생사가 탈락된 깨어있음에 그쳐 있는 자리입니다. 생사의 고락에 널뛰기 하지 않는 무위 안락한 자리에서 생사에 물들지 않고 생사를 자유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좌선을 오래하면 착심과 사심이 없어지어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며, 극락을 수용하며, 생사에 자유를 얻게 되는 공덕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망념을 쉬고 진성이 드러나는 식망현진의 일원상이 드러나는 경지입니다.
단전주와 진여의 본성에 대해 심도 있게 들여다 보겠습니다.
『불교정전』 「단전주의 필요」에서 “백은선사 왈 「나의 기해단전(氣海丹田)은 조주무자(趙州無字)며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유심(唯心)의 정토(淨土)며 자신(自身)의 미타(彌陀)며 본분(本分)의 가향(家鄕)이라」”고 단전주(丹田住)를 찬탄하며,
이를 부연하기를 “조주 無자라는 말은 조주의 無자 화두법과 단전주법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요, 본래 면목이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심행처가 멸한 즉 이 자리가 곧 우리의 본래 면목 자리라는 말이요, 유심의 정토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사심 잡념이 없은 즉 이 자리가 곧 극락정토라는 말이요, 자신 미타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번뇌망상이 다한 즉 이 몸이 곧 아미타불이라는 말이요, 본분의 가향이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사량 분별이 끊어진 즉 이 자리가 곧 우리의 생래 고향이라는 말이라”고 풀고 있습니다.
즉 단전에 마음과 기운을 주(住)하는 단전주의 경지가 바로 조주무자를 들고 있는 화두선의 경지이며, 심행처가 멸한 본래면목의 자성을 반조하는 것이며, 또한 단전주를 하면 사심잡념이 끊어진 적적성성한 자성불이 드러나고(자성혜광), 번뇌망상이 다하여 고락을 초월한 극락자리에 안주하게 되며(극락수용), 마음이 생하고 멸하는 사량분별에 물들지 않는 자신미타의 고향집(생사자유)에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전주의 경지가 곧 진여의 본성이 드러나는 경지인 것입니다.
단전주는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如猫捕鼠)처럼,
단전이라는 쥐를 마음의 고양이가 일념으로 기운 주하고 있는 상태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전주가 깊어지면 고양이가 쥐를 노려보고 있을 뿐 일체의 상념이 방해롭지 않게 되어 끝내는 그 쥐를 고누고 있는 고양이 자신을 직시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쥐가 분명할 때 고양이가 더욱 선명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전주라는 쥐를 고누고 있을 때 도리어 적적성성한 고양이 자체가 두렷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적하면서도 성성하고 공적하면서도 신령하게 아는 단전주 자리는 모든 번뇌·망상을 떨구고 있는 오직 모르는 무자(無字) 화두를 들고 있는 상태와 같고,
심성원래의 자신미타에 귀의하는 염불삼매 자리이며, 고락을 초월한 정토자리로, 자성의 고향집에 돌아온 상태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단전을 주하고 있는 그 마음 자체를 돌이켜 직관하게 되면 그 순간 적적성성한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집중하는 주체도 집중의 대상도 사라져, 주체가 그대로 대상으로 드러나 ‘찾는 자’가 바로 ‘찾는 그것’으로 눈앞에 역력해집니다.
또한 단전을 중심으로 호흡을 들이쉬고 내쉴 때 그 들이쉬는 생(生)과 내쉬는 사(死)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마음 당체는 생사거래에 변함이 없는 본래마음이라는 자각이 흐르게 됩니다.
결국 생사에 물들지 않는 자리에 그쳐있는 것이며, 고락에 널뛰기 하지 않는 무위 안락한 극락 자리에 안주하게 됩니다.
소태산은 ‘좌선의 필요’의 결론으로
“상술한 바와 같이 좌선은 우리 인생에게 그와 같이 필요한 공부나 그도 과도히 한즉 상기上氣가 되고, 그 하는 방식을 모르고 한즉 도리어 병을 얻게 되어 혹은 정신에도 고장이 나서 폐인 되는 예도 적지 않나니, 제군은 과불급過不及이 없이 도度에 맞게 또는 그 방식을 알고 좌선을 하여 좋은 효과를 얻게 하기 바라노라.”라고 당부합니다.
이러한 10가지 공덕이 있는 좌선도 과불급이 없이 정도에 맞게 하라는 것이며, 좌선의 방식을 잘 알고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좌선의 공덕’ 6~10조를 소태산의 육성인 ‘좌선의 필요’와 ‘단전주의 필요’에 의거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원불교의 가장 핵심 경전인 정전을 강의합니다.
원불교를 신앙하고 수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강의가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불교 공식 홈페이지 www.won.or.kr/
[불교정전]에서 단전주 선법과 화두선 및 염불선 등은 다 '성품을 드러내는 공부다'는 직설은 압권입니다.
즉 심행처가 멸한 자리, 사심잡념이 없는 자리, 번뇌망상이 다한 자리, 사량분별이 끊어진 자리에 들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으로,
결국 망념을 쉬고 진성을 드러내는 심단(心丹)이 단전주 선법의 중추라는 것입니다.
8.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 [이공주 수필 회보 44호 ‘좌선의 필요’] → 8.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