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장소에 관한 법률 혹은 인식은 이스라엘의 광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아브라함, 이삭, 야곱만 해도 자기들이 즉석에서 간이식 제단을 만들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제사도 드리고 했지요. 장소에 집착하게 된 것은 성전 건설 이후로, 원래 성전 건설도 하나님께서는 허락치 않으셨죠. 예를 들어 사사기에서 사무엘기로 넘어갈 때에 인간 왕을 원한다는 이스라엘의 의지에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다음에는 허락하시죠. 이게 하나님의 뜻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그래 한번 해봐라 어떻게 되나' 이런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성전 건축도 원래는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다윗의 플러팅에 '그래 한번 해봐라' 정도로 허락해준거지,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바라시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정으로 깎은 제단을 금하신 이유가 이런 지역적, 건물적인 신성화를 막으려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후에 북이스라엘은 이런 관념 속에서 남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심리에 못이겨 우상을 세우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해봐야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아니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냥 북이스라엘에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 선지자한테 물어봤어야했다. 아마도 선지자한테 물어보는게 가장 정답이었을텐데요. 만약 선지자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선지자는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말했을까요? 역사에 만약이란 없기에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예배가 어떤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듯합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매우 짧은 역사 속에 있었던 것을 보편적인 규칙으로 알고있는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이스라엘 역사만 하더라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시즌제도 아니고 이 때에는 이렇게, 저 때에는 저렇게 바뀌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닐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소의 신성성을 위시하는 광기는 지금 시대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당, 교회 건물의 신성화, 그리고 유대, 이슬람, 기독교가 모두 참여하는 여전히 성지로 군림하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
깨달음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뜻이었군요. 은혜가 됩니다
와 4대째 모태신앙인데 무슨의미인지도 관심도 없었던 그냥 권면인줄 알았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이런뜻이라니.... 너무 깔끔한 설명 감사다립니다. 할렐루야!
넘 재밋고 감동적
한 구절을 굉장히 밀도 있게
설명해 주시니까 이해하기 좋고 집중이 되는 영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분단 역사도 자주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들 많더라고요.
시간 지나면 또 잊어버리기도 하고요.
근데 진짜 이런 이야기들 모아서 책으로 내셔도 되겠는데요..??
설명 대박이네요 진짜.. 저는 요즘 엠마오님 보면서 목회자가 이렇기에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정말!
아이구 감사합니다. ^^;;
제자양육 때 목사님께서 해당 말씀을 "좋은 예배는 예배자가 만든다."라고 예배자의 자세로 말씀해주셨는데, 기쁨의 표현이라니...😢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질문해도 한 번도 제대로 납득할만한 답을 못 들었었는데
오늘 제대로 이해 했습니다^^ 너무 감사 드려요~~💖
예배 장소에 관한 법률 혹은 인식은 이스라엘의 광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아브라함, 이삭, 야곱만 해도 자기들이 즉석에서 간이식 제단을 만들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제사도 드리고 했지요. 장소에 집착하게 된 것은 성전 건설 이후로, 원래 성전 건설도 하나님께서는 허락치 않으셨죠. 예를 들어 사사기에서 사무엘기로 넘어갈 때에 인간 왕을 원한다는 이스라엘의 의지에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다음에는 허락하시죠. 이게 하나님의 뜻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그래 한번 해봐라 어떻게 되나' 이런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성전 건축도 원래는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다윗의 플러팅에 '그래 한번 해봐라' 정도로 허락해준거지,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바라시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정으로 깎은 제단을 금하신 이유가 이런 지역적, 건물적인 신성화를 막으려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후에 북이스라엘은 이런 관념 속에서 남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심리에 못이겨 우상을 세우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해봐야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아니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냥 북이스라엘에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 선지자한테 물어봤어야했다.
아마도 선지자한테 물어보는게 가장 정답이었을텐데요. 만약 선지자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선지자는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말했을까요? 역사에 만약이란 없기에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예배가 어떤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듯합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매우 짧은 역사 속에 있었던 것을 보편적인 규칙으로 알고있는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이스라엘 역사만 하더라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시즌제도 아니고 이 때에는 이렇게, 저 때에는 저렇게 바뀌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닐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소의 신성성을 위시하는 광기는 지금 시대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당, 교회 건물의 신성화, 그리고 유대, 이슬람, 기독교가 모두 참여하는 여전히 성지로 군림하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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