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하고 공출한 적이 없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전 세계에서 자본을 끌어모으고 있는 게 또 대한민국이죠.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구시대적 발상은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적산은 미군정에 의해 동결이 되었지만 장면 정부 때 해제 되고 한일 수교 때 계산 되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수탈했다고 떠들며 남의 것을 마음대로 뺏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건 실제로 수탈한 게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 선동이에요. 지금도 대기업을 수탈로 보고 있고 은행을 부셔버리곘다는 선동. 그 선동에 심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역사관이 아직 바뀌지 않고 있는 겁니다.
본토 일본인 또한 히키아게샤들을 통해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부와 자원등을 똑같이 누린건 마찬가지인데 정작 히키아게샤들이 돌아오니까 흑역사 취급하며 차별하는게 참 코미디가 따로없죠 단지 차별대상이 식민지인에서 히키아게샤로 바뀐것일뿐..... 아참 히키아게샤 차별이 심했던 이유 또 한가지는 이들중 원래 가난하거나 하층민 출신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사기를 치고 돌아가셨네요 어찌 연세드신 분이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그런 거짓말을 하나요 일제시기는 조선인들에게는 축복받은 시기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조선인들이 자발적인 지원자가 차고 넘치는 바람에 경쟁이 과열되어 면서기에게 뇌물까지 주면서 줄을 서서 대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뽑히기만 하면 큰돈을 벌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곳곳에는 조선인 이주자들로 차고 넘쳐서 온갖 범죄 등 큰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했지만 당시 일본과 조선은 같은 나라여서 조선인들의 일본 이주를 막을 방법이 없었고 1942년 일본본토 전체에 조선인 이주자들의 숫자는 약210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조선전체 인구2천만명의 10%를 넘는 수준입니다 당시 저팬드림을 실현한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가 바로 일본 국회의원이 된 박춘금이었고 그는 무학으로 일본에서 단순노동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일본기생이 자신의 고객이던 아카치 경시총감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그의 도움으로 조선인 상조회를 만드는 바람에 거물급 인사가 된 것입니다 해방후 일자무식으로 자유당 국회의원이 된 이용범 또한 경남 김해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일본 큐슈의 탄광에서 20년간 일한 돈을 모아서 해방후 강원도에서 탄광을 경영하다가 재벌급 기업인이 되고 그덕분에 일자무식임에도 자유당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사오입 개헌 당시 자유당이 0.3표 차이로 개헌안을 부결된 것을 다시 재번복 소동끝에 통과된 것은 애당초 이분이 글자를 몰라서 투표용지에 기표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할아버지께서 부디 저승에서나마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대댓들 왤케 맥락맹임;; 아이는 당연히 조선에서 태어났거나 해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떠나는게 슬프겠지만 그 고향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식민지화에 의한 수탈과 인권 유린 등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걸 부모들이 교육해야되는데, 부모들도 그걸 모르거나 알지만 그게 나쁜 걸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그 부조리함에 묻어가면서 수혜를 받은거니까 돌아가야된다는 거잖음. 지들 스스로 잘못해놓고도 징징거릴 줄만 알지 잘못을 인정하고 자정할 능력은 없이 여전히 제국주의 향수만 존나 붙잡고 있으니까
@@BBShuwoo이 글을 남자탓으로 느낀다면 피해망상 만땅은 당신인 듯요. 전쟁에 남자만 죽어야할 이유는 없지만 여자라고 해서 죽어야하는거임? 환향녀는 조선시대에 손꼽히는 유명한 악행인데 그걸 단순히 젠더 갈등 색안경을 껴서 보는게 정말로 맞다고 생각하는 거임? 그리고 일본이 뭐 어째? 자국민을 납치해서 팔아치워서 무기를 사왔다는게 뭐? 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거지?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거라고?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글을 단순히 남자, 여자 프레임 씌우는거 정말 한심하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거 아는가 모르겠네.
'군도의 역사사회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 등의 거주민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전쟁에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전쟁 후 일본 사회에서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되었는지 분석한 책인데요. 히키아게샤가 아니라, '내지'의 연장선이었던 주민들에게도 당대 일본의 현실이 어떠했는지 잘 설명한 책입니다.
일본의 만행을 생각하면 인과응보요,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걸 떼어놓고 인간으로만 바라봤을 때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참해지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좋지는 않고 복잡합니다 우리 조상님들께서 36년 동안 받은 모멸과 핍박, 고통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하고... 두 번 다시 일제강점기와 같은 역사가 지구 어디에서든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에서 출생한 사람은 실향민으로 생각되기도 하니 가여운 측면도 있지만 그 부모세대나 자신들이 벌였을 고리대금업이나 기타 악행은 무거우면 무거웠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인 고리대금업자들의 악행은 당대에는 양심적인 자국민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고 후대에는 다른 이들도 아닌 일본인 학자가 그들을 비판하는 책에 실렸을 정도입니다.
목포엔 일본으로 가지 않고 남은 일본 여성 한 분이 세운 공생원이란 고아원이 아직도 있어요. 제 고향인데, 해방과 625 와중에도 목포 사람들은 다 이분과 고아원을 잃지 않고 지키려 노력했어요. 시민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나은 것도 아닐텐데 이런 천사같은 분들의 진심은 그런 소용돌이같은 시대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여자들이 조선남자랑 결혼하고 본국을 떠나 조선에 와서 정착하는 이유가 착취하기 위함이라 생각함? 조선인들도 일본인과 동일한 교육기회 동일한 지위상승 기회가 있었고 벌이 또한 동일했음. 일본인 농민 조선인 농민 한께 일하고 동일한 임금도 받았음. 강제징용? 참 웃긴 게 당시 일본순사 일본군 지원모집에 몰린 조선인 인원수만 봐도 답 나오지? 2차세계대전때는 조선인 강제징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참고로 당시에 12세 일본인 꼬맹이도 징용에 끌려갈 정도로 인원이 없었고 강제징용된 조선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 해봐야함. 한국 역사에는 이러한 사실을 절대 감추지. 그저 일본을 절대악으로만 만들고 조선인들은 힘 없는 약자+선으로만 만들어야 하니까. 현재 대한민국에 일어나는 범죄만 봐도 절대 선은 아니지?
@@이선희J에게-s7zㄹㅇ 반일에 취한 새끼들이나 저런거보고 믿음 ㅇㅇ 애초에 한반도가 일본이었던 시기라 그렇게 심한 차별도 안하고 오히려 인구 50%이상이 노비였던 조선보다 훨 나았음. 노비 출신이라도 똑똑하면 공부열심히 해서 유학도 가서 일본에서도 성공할수있었던 시기임.
아마도 모든 일본인들이 돌아가지는 않았을겁니다. 70년대 이전엔 산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들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던곳에서 쫓기다시피 나와서 본토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예 다른 곳으로 도망쳐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을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살았던 곳에서 일궈놓았던 재산도 거의 가지고 나오지도 못했으니 일본으로 돌아가도 살아것도 막막할테고 사실상 한반도가 그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인지라 일본은 고향이 아니었죠.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서 저희 고향에 살던 일본인들과 종종 만나셨는데, 그분들 중에 일부는 일본에 돌아가기도 했지만 일부는 한국에 남아서 다른 도시에 사시거나 저희 고향에 그대로 한국인으로 사시는 분도 계시다고 하더군요. 저희 고향은 워낙 작은 지방도시라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차별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과 현지 한국인과는 차별없이 그냥 어울리기도 하며 지내기도 해서 할아버님 살아생전에는 고향 친구 만나듯이 해마다 만나셨다고 하시더군요. 님 말대로 모든 일본인이 일본으로 간 게 아니라 저희 같은 지방도시에는 그냥 눌러 사는 분도 꽤 있었을거고 고향이 여긴데 어디 가냐며 그냥 한국 국적으로 어떻게 따서 살아가시거나 외국인으로 지낸분도 꽤 계신것 같더군요.
당시 일본인들이 받았던 교육이나 시대상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기에 그들의 태도에 대해 뭐라 논할 입은 없지만, 조금 소름이 돋는 것은 '역사왜곡의 폐해'가 이렇게 기록으로 남았는데 또 역사왜곡을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모레성이 무너졌을 때 입을 피해를 진짜로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눈앞에 놓인 이익에 홀려서 국가의 흐름은 내다 버리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인지.
영상이랑 다른 이야기지만 퍄퍄킴님의 기존 내용을 보다가 문득 떠올라서 댓글 남깁니다. 보실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 큰 참고가 되는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보관이되며 물려내려왔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중간에 각종 전쟁이나 난을 겪으면서 위조나 손실이 되었을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현대까지 큰 참고가 될 수 있는건지 신기하네요.
1:10 실제로 시마타니는 일본패망후 가장 늦게 귀국한 일본인 중 하나라고 합니다. 퍄퍄킴님 말마따나 시마타니 야스야는 엄청난 대부호였고 정읍에 병원까지 세운 다른 부호인 구마모토와 비견될 정도였다고 해요. 지금으로는 수천억의 재산이 다 날아가버렸고 두개의 가방만 든채 귀국했다고 합니다
호사 누린건 아님. 당시 일본 본토인들은 식민지인들이랑 비슷하게 살았음. 식민지 일본인들 자체가 일본에서 주류층이 아니였고 잘살아 보려고 식민지로 나간건데 일본이 전쟁기계가 되면서 본토인들은 ㅈㄴ게 착취 당했는데 식민진일본인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았으니 당연히 본토인들이 아니꼽게 볼수 밖에 없었다고함
재일 조선인들을 강제로 추방도 가능했을 텐데, 일본 정부는 안 했죠..(식민지 지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에 있었던 미군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일본에 산 재일 조선인들 경우도 약간의 차별이 있는 수준이 높은 일본 생활과 차별은 없지만 낙후된 한국 생활 중 일본을 택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인종 차별의 피해를 그렇게 비난하면서 미국에 사는 이유가 무얼까요?? 많은 동남아사람들이 인종차별한다며 한국을 비난하면서 한국에 사는 이유가 무얼까요?? 조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일본이 패전국이라 다행이지 프랑스 같은 경우 아이티가 독립할 때 독립조건으로 프랑스가 아이티에 식민지 시절 놓아둔 다리나 공장 등 각종 시설에 대한 배상금 요구하는 통에 그거 갚는데만 10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수탈해서 백배 사죄해도 모자를 놈들이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는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이야기를 하는 거지만 프랑스가 승전국이다 보니 그럴 악랄한 짓거리가 가능했지요...
좋은 내용입니다!!! 대나무의 노래인가 뭐시긴가 ... 찾아보니 "요코 이야기"(원제: 대나무 숲 저 멀리서(So Far from the Bamboo Grove))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가지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랍시고 쓴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라는 ㄴ이 이 영상을 좀 봤으면 좋겠군요. 이런 좋은 내용은 번역해서 외국에 퍼트려야 합니다!
예전에 들은 얘기지만, 일본에서 나리타 국제공항을 처음 건설할 당시 그 건설부지로 낙점한 땅이 히키아게샤 집단 거주지었다고 하네요 조선을 포함한 외지에서 귀환하고 온갖 험한 꼴을 당하다가 겨우 정착한 곳이었는데, 이제 좀 정착해서 제대로 맘잡고 살아보려고 하자 또 국가에서 쫓아내는 꼴을 겪게 되니까 그때부터 나리타 국제공항을 반대하는 시위가 굉장히 격하게 일어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인천국제공항 쯤 되는 일본의 관문공항인데도 그 모양새가 영 신통치 않았던 이유가 히키아게샤의 투쟁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 영상을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해보자면, 전후 틈바구니에서 미군정이 재조선 일본인들을 죄다 열도로 보낸 건 정말 잘한 일 같습니다. 지금 수십만에서 수백만 단위 일본계가 한반도에 있었으면 분명 일본이 그 핑계를 대고 다시 한반도에 땅 내놔라 할 것 같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재일교포들을 좀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평화를 위해서는 나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일본인이 안나가고 버텼을 경우와 제일 유사할 사례가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발트3국에 남은 러시아계로 볼 수 있겠네요. 그 사람들은 그 나라 말도 안배우고 러시아어만 구사하는 사람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친러, 친푸틴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가뜩이나 러시아와 사이가 안좋은 발트 3국에서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다네요.
유독 일본, 특히 2차대전 시기의 일본 내용 영상에는 유독 일뽕들이 많이 보임. 일본의 문화를 좋아해서 일뽕하는게 아니라 일본의 범죄 행위를 찬양하고 옹호하려고 당시 식민지배 당하는 조선에 원죄가 있다고 별의별 헛소릴 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네 ㅋㅋㅋ 당시 미군정아래 친일 청산을 못한게 아직도 스노우볼링 된건가
재조선일본인 관련 모 연구에 의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들이 내지이자 모국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그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죠.... 식민지 조선에서 귀족과 같은 지위에서 부렸을 패악질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전후 자신에게 닥쳐온 단면들에 대해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구요....
어릴적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얘기를 잠깐 소개하면 할아버지 동네에 한 일본인 가족이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조선인들과 사이 좋게 살고 있었는데 해방이 되자 며칠전까지 사이좋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그 일본인 가족을 집에서 내쫓고 가게를 뺐었다고 함.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그 일본인 가족을 귀국전까지 잠시 집에 데려와서 살게 해 주었다고 했음. 귀국때에도 일본인들을 호송하던 조선인 경비병들이 일본인들을 집단 구타하는 일이 많았다고 함.
세계테마기행 이스라엘 텔아비브 편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같은 가게에서 사이좋게 동업하며 지내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아랍인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 침략자고 서로 죽고 죽이는 게 현재진행형이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뺀다면 순수하게 민간인들 끼리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읽은 글- 이 내용에서 말한 내용처럼, 그래서 한국에 남은 일본인들은 대부분 자산은 있던 일본인들이라 자기들끼리 이렇게 생존하기로 했다고 함 "아예 한국인으로 살자!" 그렇게 일본인들이 경남의 시골에 모여서 살기로 함. 그리고, 그 재산을 이용해서 한국의 재벌로 성장.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대부분이 그 지역 출신. -이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오래된 기억이라 출처를 못찾겠음- 이게 음모론만이 아니다 싶었던 게, 그 동네 출신은 아니지만, 이명박 집안을 보면, 그게 가능하겠다 싶기도 했음 이명박 친형이 노년에 일본식 이름을 쓰는 게, 그게 본인 정체성이 일본이라는 뜻이거든.
옛날 얘긴데,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으로 참전하셨던 한 선생님께서 동남아에서 전투에서 져서 미군 포로로 잡혔는데, 미군들이 자신은 조선인이라서 포로 수용소에서 특별 대우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화단에 물주는 일만 했다고 ㅎㅎ 그리고, 조선에 돌아오려고 하는데, 동네 일본 처녀가 우리 나라 망했으니, 조선으로 돌아갈 때 자기도 데려다 달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 시킬 수 없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제는 이해해 가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20년 정도만 지나면, 광복한지 벌써 백년이나 됩니다.. 어떤 사학자가 그랬죠.. 20세기는 광기의 시대였다고...
잼민이땐 원폭 투하 사실 자체가 식민지배의 당연한 업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일본인과 조선인 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결국 지배층을 제외하고 개인의 범위로 본다면 식민시대의 피해자였을 뿐이지 않을까 싶네요 당장 원폭 투하의 피해자의 10퍼센트가 재일 조선인이였던 부분만 생각해도 참 그렇습니다 특히 일본 본토의 국민들이 히키아게샤를 욕하는 것은 맨발의 겐에서 당장 전쟁중까지만 해도 태평양 전쟁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태도를 싹 바꾼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식객의 미국 할머니 편도 떠오르기도 하고 참 민족과 국가를 떠나 마음이 복잡해지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 영상이였습니다
36년의 일제치하에서 사실상일본인은물론 조선인들도 많이 융합된상태였음 물론 여전히 조선인에대한 차별이있는것도 맞음 하지만 한반도지역은 일본의 첫식민지였고 이미 그역사가 오래된상태였던대다 조선인귀족의 후손은물론 일반인중에서도 이제 부유한 계층들이 많이나오기시작함 이것은 갈수록 경제 계층간 인종구분이 줄어들고있다는것이고 실상 20~30년정도지나면 당시 평균연령상 조선을 기억하는사람도 거의없어졌을거임 여기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혼인으로 생긴 혼혈인도 많았음 같은황인종끼리 식민지인과 지배국인인 상태라 혼혈이라해도 차이가 크지않았기에 대하는 거부감도 적었고 거기에 일본에서 식민지로 이주한 사람들이 분명 식민지에서 여러혜택을 받은건맞는데 애초에 이주민 대부분은 일본에서 가난한사람들이 많았음 일본내에서 어찌보면 하류층인생들을 식민지이주하면 땅도주고 돈도준다면서 꼬셔서 이주시킴으로서 어떤면에선 근대화이후 발생했을 국내의 극심해진 빈부격차도 해소하는 방법이었을거같음 뭐 예를들면 일본이 근대화해서 상류층10명 중산층10명 하류층 80명의 사회가되었는데 식민지로 하류층 30명을 이주시키면 기존 1:1:8의 구조가 1.4:1.4: 7정도로 나아지게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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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면 좋은 영상
ua-cam.com/video/za-_NM97TZY/v-deo.html
광복 직후 북한에 남겨진 일본인들
1년전에 본...
영상 재업로드 하신 줄...
재업인줄..
영상 재업인가요? 같은 주제 있었던 것 같은데..
1:24 퍄퍄 뒤태 쌔끈한데~ 이런 말도 안 됨~~~~?
nervous
그때 당시 미군정에서 일본인들이 재산 못 가지고 가게 한것은 잘 한 일입니다. 36년간 수탈하고 공출 해 간것을 생각하면 ......
그 뒤로 1965년에 일본인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한적 있는데
수탈하고 공출한 적이 없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전 세계에서 자본을 끌어모으고 있는 게 또 대한민국이죠.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구시대적 발상은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적산은 미군정에 의해 동결이 되었지만 장면 정부 때 해제 되고 한일 수교 때 계산 되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수탈했다고 떠들며 남의 것을 마음대로 뺏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건 실제로 수탈한 게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 선동이에요. 지금도 대기업을 수탈로 보고 있고 은행을 부셔버리곘다는 선동. 그 선동에 심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역사관이 아직 바뀌지 않고 있는 겁니다.
미군정이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들의 재산을 한국 정부에 돌려주는 대신 더 이상 일본에 보상 요구 하지 말라고 했음. 근데 정작 5년 뒤에 전쟁이 일어나서 국고가 싹다 없어졌음;;
재산을 가지고 갈수 있게 했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또다른 한이 되었겠죠
이거라도 해줘서 다행이라고 할까… 다 엉망이였는데 말이죠 ㅠㅠ
이거와 반대로 광복직후 어느 조선인 국민학생의 말 "우리가 졌는데 왜 만세를 불러?" 경술국치 이후에 태어난 애들은 대부분 일본어를 배웠고 일본이 조국으로 생각하는 애들도 있었을겁니다 아마 한세대 더 일본의 통치를 받았으면 상당히 일본화가 되었을듯;;
가장 큰 예시로 아이누가 있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6.25 당시 한국의 호적을 사서 한국인으로 신분을 세탁했습니다.
그 당사자와 자손들이 현재 국회,사법부,사학계,언론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식민지에서 못 벗어난 걸 깨닫지 못하는 우민들이 너무 많은 듯
있었을 겁니다. 가 아니라 실제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한 세대만 더 늦게 광복이 되었어도 절대 독립하지 못하고 완전한 일본이 되었을 거란 말까지 있으니까요.
@@user-fz5iv2fo4h 그건 너무 과장된거 아닌가요?
100년만 지나도 그나라는 완전 다르게되긴함. 북한도 그래서 100년이상 분단되면 이제 같은 민족아님 아예 딴나라임 ㅋㅋ
똥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
마지막에 묵직한 팩트 날려주셨군요
본토 일본인 또한 히키아게샤들을 통해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부와 자원등을 똑같이 누린건 마찬가지인데 정작 히키아게샤들이 돌아오니까 흑역사 취급하며 차별하는게 참 코미디가 따로없죠 단지 차별대상이 식민지인에서 히키아게샤로 바뀐것일뿐..... 아참 히키아게샤 차별이 심했던 이유 또 한가지는 이들중 원래 가난하거나 하층민 출신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user-vd4gt7kd8r 오히려 본인들은 관동대지진때 수많은 조선인들을 분풀이로 집단학살했던 전과가 있으니 저런 명분으로 히키아게샤를 차별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죠.
@@사진의여유 맨발의 겐 보면 일본에살던 조선인들도 정말 많았구나 싶음 게다가 원폭마저 맞은 조선인들은 진짜 불쌍. 근데 우리나라가 조선족들 차별하는거보면 일본 본토사람들 욕할 입장은 되는지?
@@독일호텔가보자 그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칭하니 비교대상이 못됨.
일본 외지인들이 스스로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 말하겠음?
@@독일호텔가보자 걔들은 중국에 충성하니 그런거고. 한국전때도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남의 나라에서 피빨아먹다 쫒겨 나간게 억울한가보오
울할아버지는 강제징용가서 허리굽고 반죽음으로 돌아오시고 작은할아버지들 다 돌아가셨는데......
미개한 이씨조선 왕들을 탓하길
우째 전쟁 한번 없이 나라를 빼앗기냐 ㅋㄱ
ㅠㅠ
너무 쓸퍼요 ㅠㅠ
우리 증조부는 강제징용 갔다가 살아돌아오셨더니 이미 집안은 다 풍지박산 나 있고 가족들도 다 뿔뿔히 흩어져서 생사도 알 수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사기를 치고 돌아가셨네요 어찌 연세드신 분이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그런 거짓말을 하나요
일제시기는 조선인들에게는 축복받은 시기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조선인들이 자발적인 지원자가 차고 넘치는 바람에 경쟁이 과열되어 면서기에게 뇌물까지 주면서 줄을 서서 대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뽑히기만 하면 큰돈을 벌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곳곳에는 조선인 이주자들로 차고 넘쳐서 온갖 범죄 등 큰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했지만 당시 일본과 조선은 같은 나라여서 조선인들의 일본 이주를 막을 방법이 없었고
1942년 일본본토 전체에 조선인 이주자들의 숫자는 약210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조선전체 인구2천만명의 10%를 넘는 수준입니다
당시 저팬드림을 실현한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가 바로 일본 국회의원이 된 박춘금이었고
그는 무학으로 일본에서 단순노동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일본기생이 자신의 고객이던 아카치 경시총감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그의 도움으로 조선인 상조회를 만드는 바람에 거물급 인사가 된 것입니다
해방후 일자무식으로 자유당 국회의원이 된 이용범 또한 경남 김해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일본 큐슈의 탄광에서 20년간 일한 돈을 모아서 해방후 강원도에서 탄광을 경영하다가 재벌급 기업인이 되고 그덕분에 일자무식임에도 자유당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사오입 개헌 당시 자유당이 0.3표 차이로 개헌안을 부결된 것을 다시 재번복 소동끝에 통과된 것은 애당초 이분이 글자를 몰라서 투표용지에 기표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할아버지께서 부디 저승에서나마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통영-y9v애미가 없나??
남의 눈에 눈물 나게하면, 본인 눈에는 피눈물이 흐른다는 걸 알길 바랍니다.
엄마손 잡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아이가 "왜 우리가 고향을 떠나야 하나요?" 라며 엉엉 울었다는 일화가 있던데,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돌아가야 하는 거라 생각함.
야이씨 그래도 애기는 애기지...
솔직히 아이마저 탓하기는 좀
대댓들 왤케 맥락맹임;; 아이는 당연히 조선에서 태어났거나 해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떠나는게 슬프겠지만 그 고향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식민지화에 의한 수탈과 인권 유린 등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걸 부모들이 교육해야되는데, 부모들도 그걸 모르거나 알지만 그게 나쁜 걸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그 부조리함에 묻어가면서 수혜를 받은거니까 돌아가야된다는 거잖음.
지들 스스로 잘못해놓고도 징징거릴 줄만 알지 잘못을 인정하고 자정할 능력은 없이 여전히 제국주의 향수만 존나 붙잡고 있으니까
@@Serpent7070 아니 어린 아이한테 교육 아직 못했을수도 있지 개논리를 하는건 좀;;; 그럼 북괴중국에 세뇌된 북괴 중공 어린애들도 다 죽여도됨?
야 그 당시에 누가 애들한테 인권 교육이란걸 했겠냐? 뭔 말도안되는 소릴ㅋㅋ
원 댓글부터가 이상한 비유 들은거 맞구만
광복직후 학생들이 조선인들에게 잘해주던 일본인 교사가 일본으로 귀국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나쁘게 굴었던 교사들을 집단린치했다는 썰이 생각나네
전부가 나쁜건 아니었으니깐
같은 인간인데 잘해주면 잘해줘야지
코끼리도 자기한테 침뱉고 화내는 사람은 밟아버리는데
@@SovietPikachu1945당시 조선땅에서 무고한 일본인은 단 한명도 없었음
@@해왕류그건 아님 당시 본토에서 넘어온 일본인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후반땐 진짜 먹고살려고 넘어온 노동자들도 많았음 그래서 당시 조선인들이랑 취급이 별차이가 없어서 아예 여기서 눌러앉는경우도 많았고 이들에게 동질감느끼던 조선인들도 많았음
@@김경수-z4q분노로만 살아가는 사람한테 이성적으로 얘기해봤자 안 들어요
비단 히키게이샤만드런게아니라 병자호란 이후에 공녀로 팔려갔다 겨우 돌아온 우리 민족의 여식들마저도 환향녀 라면서 수치스럽게 살지말고 스스로 죽도록 유도했다는걸 생각하면 이게 사람본성인가 하는 씁쓸함만 남기도함
죽은 군인들 오빠 동생 서방들 목숨은? 나라가 전쟁하면 남자만 뒤져야할이유있나 고대이후로 전쟁나서 여자라고 살려주고 강간안하고 그런거없었다 국민들 똑같이피해봤지 그이전 시대는 더했음 일본같은경우는 전쟁중도아니었는데 자국여성들 수만명 서양에 노예로 팔아먹고 총포무기사왔음.. 맨날 남자탓 피해의식 만땅은 그만좀
히키아게샤입니다.
@@BBShuwoo이 글을 남자탓으로 느낀다면 피해망상 만땅은 당신인 듯요. 전쟁에 남자만 죽어야할 이유는 없지만 여자라고 해서 죽어야하는거임? 환향녀는 조선시대에 손꼽히는 유명한 악행인데 그걸 단순히 젠더 갈등 색안경을 껴서 보는게 정말로 맞다고 생각하는 거임? 그리고 일본이 뭐 어째? 자국민을 납치해서 팔아치워서 무기를 사왔다는게 뭐? 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거지?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거라고?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글을 단순히 남자, 여자 프레임 씌우는거 정말 한심하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거 아는가 모르겠네.
사람본성x 남자의 간악함o
@@BBShuwoo저분 글에서 사람본성이랬지 남자탓이란 말은 없었는데요? 너무 피해망상 아님...? 그땐 그냥 모두 미개해서 돌아온 공녀들한테 손가락질 했지 노예는 남녀가 따로없는 거고 죽은 사람은 잊혀지는거고.
나라망하면 어느 나라의 재외국민이라도 저렇게 될 수 있겠네요. 국가의 중요성...
재외국민은 외국인임 나라에서 도와줄필요도없음
이 경우는 망한게 아니라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거
@@user-gq4lg5ox3b
재외국민은 외국에 있는 국적자(본토인)인데요...
여기 유튜버가 영상 기본 자료가 된 참고문헌 소개했지만,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역사비평사 (2012.11 초판)]은 10년째 steady seller로 꼭 읽어볼만한 도서입니다 ^^ 제가 10년전 읽은 책의 세세한 내용이 콘탠츠로 나오니 신기방기
어 저도 그거 봤는데 ㅎㅎ 보고 여러 사실 알게되서 좋았어요 ㅎ
@@joonseolee3611 배우신 분이시네요 ㅋ
본편의 전편을 보고 흥미가 생겨 관련 서적을 읽어봤습니다. '조선을 떠나며'라는 책인데 남한에 있던 일본인은 양반이였습니다. 북에 있던 일본인들은 더 처참하고 소련으로 끌려가 강제노동 했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분들은 한번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ㅎ.
1도 동점심이 안 든다. 역지사지라고 하기엔 지들이 강간을 당했어 고문을 당했어 수용소를 끌려갔어 뜬금없이 개죽음을 당했어? 세뇌교육을 떠나서 사람새끼라면 갑질과 차별이 나쁘다는 건 본능적으로 인지하는거 아닌가? 겨우 목욕탕 청소가지고 징징?
저 시절에는 갑질과 차별이 나쁘다고 인지 못했겠지
저 목욕탕 징징이는 그냥 일본 사람일 뿐이었지 강간 고문은 군대에서 한거고
조선이 당한일을 다 모아서 겨우
화장실잡부 하나한테 벌받으라고하네
ㅋㅋㄱㄱㅋㅋ
저때 조선에 대한 순수한 애향심이 있어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6.25 전쟁에도 자진해서 참전한 일본인들도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지요.
듣고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흥미롭네요.
조선인 남성과 결혼했다가 광복 후 이혼한 일본인 여성도 조선에서 살았던 세월이 더 많아서 일본으로 돌아가도 향수병에 다시 돌아와 모여살았음
그건 인정 해야할듯
그런거면 인정하는데 남에 나라와서 멸시하고 모욕했던 인간은 받아주면 안되지
반성문 쓴다고 수십년동안 이뤄진 그들의 인식틀이 깨지겟나
저들의 우익이 말하듯 우리나라의 전신인 조선의 국력이 약해 주권을 빼앗긴게 당연한 일이었다면, 일본이 패전국이 되어 국민들이 버림받고 차별받는 현상도 당연한 일이 되는거지.
그래놓고 한국전쟁때 수혜봤자나? 엄청 빠르게 잊혀지고 회복했는데 징징대는거 들어주고 싶지 않음.
한국전쟁 물론 미국, 소련 때문이라지만 한국전쟁 만 생각해도 열불이나네요
그래서 마루코는 아홉살과 검정고무신을 보면 같은 시대를 다루는데 사는거는 차이가 굉장히 나는걸 볼 수 있음
@@독일호텔가보자한국전쟁이 왜 미국때문임? 소련 중국 일성이때문이지
'군도의 역사사회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 등의 거주민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전쟁에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전쟁 후 일본 사회에서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되었는지 분석한 책인데요. 히키아게샤가 아니라, '내지'의 연장선이었던 주민들에게도 당대 일본의 현실이 어떠했는지 잘 설명한 책입니다.
30여년 후 나리타 공항이 착공때 난항을 겪던 이유도 거기에 터잡아 살던 히키아게샤 때문이었죠
ㅇㅈㅇㅈ 나도 이걸로 댓글 쓸라고 했은데… 아까비!!!
페덱스 80편ㅠ
거기 주민들이 히키아게샤라는걸 첨 알았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게 나리타공항까지 이어질줄 몰랐네요
고마워요너굴맨
일본의 만행을 생각하면 인과응보요,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걸 떼어놓고 인간으로만 바라봤을 때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참해지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좋지는 않고 복잡합니다
우리 조상님들께서 36년 동안 받은 모멸과 핍박, 고통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하고...
두 번 다시 일제강점기와 같은 역사가 지구 어디에서든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에서 출생한 사람은 실향민으로 생각되기도 하니 가여운 측면도 있지만 그 부모세대나 자신들이 벌였을 고리대금업이나 기타 악행은 무거우면 무거웠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인 고리대금업자들의 악행은 당대에는 양심적인 자국민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고 후대에는 다른 이들도 아닌 일본인 학자가 그들을 비판하는 책에 실렸을 정도입니다.
@@사진의여유 그렇죠...
그냥 동정심이고 뭐고 그냥 다 되갚아야지요 부모 앞에서 자식을 패든가 조선인이라고 괴롭힌 놈들을 조리돌림하든가 악질 순사 총으로 쏴 죽인다든가 30년 넘게 당한거 다 갚아야지요
@@사람그냥-n7j 근데 행패부렸던 놈들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모르기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는 건 함정
반일충들 특징 : 중국이 5천년 동안 한민족 괴롭혀온 건 생각도 안함 ㅋㅋㅋㅋㅋ
목포엔 일본으로 가지 않고 남은 일본 여성 한 분이 세운 공생원이란 고아원이 아직도 있어요. 제 고향인데, 해방과 625 와중에도 목포 사람들은 다 이분과 고아원을 잃지 않고 지키려 노력했어요. 시민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나은 것도 아닐텐데 이런 천사같은 분들의 진심은 그런 소용돌이같은 시대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민도타령ㅋㅋㅋㅋ 역겹다진짜
@@user-gq4lg5ox3bㅋㅋ 거리지 말고 먼저 대가리로 생각을 좀 하고 글을 써라!
민도? 그딴 근본도 없는 말 쓰지 마라
민도는 우리의 국민성에 해당하는 일본식 표현임.
일본인은 이런거 참 좋아하는듯요 다른사람에게 사랑받는 일본
오해 중 하나가 한국에서 돈 잘벌고 있었으니 된거 아니냐 라는건데.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후진국 이민은 정부 주도하에 보내진 사회 하층민이였음. 즉 36년간 한반도에서 하층민을 벗어나 가정을 꾸린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본토에 아무런 기대도 할수 없었음
우리가 35년동안 겪었던 고통을 단 몇년동안 그대로 겪었다죠. 선댓후감!
어떻게 보면 북한이 친일척산하는 것을 엄청 잘했음
@@이호연-b8w 그건 아님 이후에 친일파들이 정부각료가 됨
@@이호연-b8w 북한은 친일파 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도 지들 맘에 안들면 숙청했자너
@@이호연-b8w 어찌보면 북한이 친일청산 잘했다고 프로파간다 한 건 그냥 "말 안들어서 죽였는데 알고보니 친일파였다", 혹은 "친일파도 아닌 사람을 죽여놓고 친일파로 누명을 씌웠다"에 가깝겠지....
@@AUH77 그렇군...
오늘도 몰랐던거 잘 배워 갑니다
마지막 개인적인 결론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영상 내내 아 저것들이 조선안에서 조선인들을 착취하고 괴롭힌 주범들이고 조선의 뿌리즙까지 탈탈 짜먹던 새끼들 이었는데.. 하고 용상이 계속 마음한켠이 불편했는데 마지막 보니 파파킴님도 역시 한국인 이었어ㅋㅋ
일본여자들이 조선남자랑 결혼하고 본국을 떠나 조선에 와서 정착하는 이유가 착취하기 위함이라 생각함? 조선인들도 일본인과 동일한 교육기회 동일한 지위상승 기회가 있었고 벌이 또한 동일했음. 일본인 농민 조선인 농민 한께 일하고 동일한 임금도 받았음. 강제징용? 참 웃긴 게 당시 일본순사 일본군 지원모집에 몰린 조선인 인원수만 봐도 답 나오지? 2차세계대전때는 조선인 강제징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참고로 당시에 12세 일본인 꼬맹이도 징용에 끌려갈 정도로 인원이 없었고 강제징용된 조선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 해봐야함. 한국 역사에는 이러한 사실을 절대 감추지. 그저 일본을 절대악으로만 만들고 조선인들은 힘 없는 약자+선으로만 만들어야 하니까. 현재 대한민국에 일어나는 범죄만 봐도 절대 선은 아니지?
@@이선희J에게-s7zㄹㅇ 반일에 취한 새끼들이나 저런거보고 믿음 ㅇㅇ 애초에 한반도가 일본이었던 시기라 그렇게 심한 차별도 안하고 오히려 인구 50%이상이 노비였던 조선보다 훨 나았음. 노비 출신이라도 똑똑하면 공부열심히 해서 유학도 가서 일본에서도 성공할수있었던 시기임.
@@이선희J에게-s7z 그럼 마루타 부대는?? 거기도 일본인 있었음? 동일한 교육기회 동일한 신분상승 말하는데 그게 친일파 아님?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터졌을 때
실향민들더러 방사능을 옮기고 돌아다니지말라고 차별하던거보면 참..
ㅋㅋㅋㅋㅋ 일본 엄청난 약육강식의 나라네요. 우리나라도 영광, 경주, 울진 이런데 잠재적으로 생길수도있는 위험한곳임
원래 일본은 강자중심나라 약자에게배려안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에대해서 좀더알고싶다면 유튜브에 롯본기김교수 처보시면 나옵니다
한국 자칭 보수애국이라고 발광하는 사이비 기레기 조중동도 후쿠시마 원전을 비난하는 건 좌파 음모라능 쿵쾅거리고 있죠
아마도 모든 일본인들이 돌아가지는 않았을겁니다. 70년대 이전엔 산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들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던곳에서 쫓기다시피 나와서 본토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예 다른 곳으로 도망쳐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을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살았던 곳에서 일궈놓았던 재산도 거의 가지고 나오지도 못했으니 일본으로 돌아가도 살아것도 막막할테고 사실상 한반도가 그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인지라 일본은 고향이 아니었죠.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서 저희 고향에 살던 일본인들과 종종 만나셨는데, 그분들 중에 일부는 일본에 돌아가기도 했지만 일부는 한국에 남아서 다른 도시에 사시거나 저희 고향에 그대로 한국인으로 사시는 분도 계시다고 하더군요.
저희 고향은 워낙 작은 지방도시라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차별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과 현지 한국인과는 차별없이 그냥 어울리기도 하며 지내기도 해서 할아버님 살아생전에는 고향 친구 만나듯이 해마다 만나셨다고 하시더군요.
님 말대로 모든 일본인이 일본으로 간 게 아니라 저희 같은 지방도시에는 그냥 눌러 사는 분도 꽤 있었을거고 고향이 여긴데 어디 가냐며 그냥 한국 국적으로 어떻게 따서 살아가시거나 외국인으로 지낸분도 꽤 계신것 같더군요.
특히 6.25 때 행정 개판 돼서 존버하던 일본인들의 존버가 성공했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놀이문화의 유사성을 보면 아이들끼리의 차별은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들의 후손들은 처음부터 한국에 태어나고 계속 한국에 있었으니까, 후손들은 본인들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알고 살았을거고, 그러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혹시 조상이 일본인이 사람도 있을 수가 있겠네요.🤔
충청도쪽인가 강원도쪽인가 어떤마을에는 아예 본토귀향 거부한 일본 사람들이 마을꾸려서 한국인으로 동화된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조선인과 혼인으로 적지않은 일본인인 할머니들이 어릴때부터 한국전쟁까지 겪고 쭉 살아 오신분들도 있으시더라구요
토착왜인들은 실존하는 거죠. 그들이 친일파 짓을 하면 토착왜구가 되는 것이고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서 이렇게 됐는데 차별까지 해? 이러니까 아이누 사람들도 사람 취급하지 않고 부라쿠민인가 뭔가 하는 것도 있구만. 이래 놓고 2차대전 시기에 죽은 군인 장교들이나 정치인들을 영웅 취급하다니.
그런 위험한 극우 정치세력(전범들 영웅으로 모시는)이 의외로 인기도 많다는 게 참 어이가 없네요
부라쿠민 오키나와인 아이누인들도 그냥 일본인들로부터 차별이 있었으니 말이죠
가끔씩은
퍄퍄킴님 서양사 요약 시리즈 재생목록처럼
일본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조건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인 관점이 아닌 그런 영상 말이죠...
ㅇㅇ감정적으로 격분하거나 무조건 박수치는게 아닌 그런 시각이 필요하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져
731 생체실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받았던 교육이나 시대상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기에 그들의 태도에 대해 뭐라 논할 입은 없지만, 조금 소름이 돋는 것은 '역사왜곡의 폐해'가 이렇게 기록으로 남았는데 또 역사왜곡을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모레성이 무너졌을 때 입을 피해를 진짜로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눈앞에 놓인 이익에 홀려서 국가의 흐름은 내다 버리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인지.
일본인 추방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인 나치의체코슬로바키아 정복이 "주테텐란트 지역에 특히 많이 거주하는 독일계 체코슬로바키아인들" 때문이었고, 그래서 유럽에서도 독일계는 모두 독일로 추방을 당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와는 다릅니다. 그건 침략논리고요. 저건 해방논리입니다. 완전히 달라요
@@sugarfree97 왜 다르죠? 나중에 일본이 힘을 기르고 나치 독일이 체코를 병합했던 논리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쫓아낸 건데
@@sugarfree97책 한권만 읽은 사람이 위험한 이유 ㅋㅋ
그것 때문이라기 보단 그게 명분인거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이상한 논조다.
일본인들은 원래 일본사람이니까 일본땅에서 사는 것이 맞으니까 돌려 보낸거지.
재미있네요 고양이 말풍선이 이해하는데 도움되네요
내지인들 자신들의 생활이 힘들어지니까 불만을 히키아게샤 에게 풀엇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지매의 나라잖아요?
영상이랑 다른 이야기지만 퍄퍄킴님의 기존 내용을 보다가 문득 떠올라서 댓글 남깁니다. 보실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 큰 참고가 되는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보관이되며 물려내려왔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중간에 각종 전쟁이나 난을 겪으면서 위조나 손실이 되었을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현대까지 큰 참고가 될 수 있는건지 신기하네요.
지나가다가 남깁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전국에 백업본이 4개는 있어서 임진왜란때 3개가 불탔어도 나머지 하나로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seiji_nyasu 백업의 민족ㄷㄷ…
몇몇 어진과 함께 불타버린 기록도 있긴함
백업본으로 전국에 4개 서고를 두어서 관리해왔는데 임란 이후 진주서고 1곳만 남고 나머지는 다 소실 되버려서 광해군때 5개 서고로 늘렸습니다
1:10 실제로 시마타니는 일본패망후 가장 늦게 귀국한 일본인 중 하나라고 합니다. 퍄퍄킴님 말마따나 시마타니 야스야는 엄청난 대부호였고 정읍에 병원까지 세운 다른 부호인 구마모토와 비견될 정도였다고 해요. 지금으로는 수천억의 재산이 다 날아가버렸고 두개의 가방만 든채 귀국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에게 섬기라고 명령할 때에는 몰랐을 것이다..
한번 계급이 지배하는 삶에 발을 담근 이상,
앞으로 두번다시 남은 삶에 평등이란 없게 된다는 것을..
무섭습니다.
대부분은 아무 잘못 없는 일본인이었르니 그렇게까진 ㄴ...
@@dwb3791 ????
@@dwb3791 저시대 한반도에 사는 일본인들은 태어난거 자체가 범죄를 저지르고 사는거임
@@dwb3791???? 저능아다
그래도 남한의 미군은 일본인들을 일본 본토로 송환이라도 도와줬지, 북한의 소련은... 시베리아 벌판행...
일본 본토놈들 남탓 대단하다 대단해 ㅋㅋ 지들도 식민지 통해 들어온 물자들로 호사 다 누렸으면서 ㅋㅋ
조선거주 일본인들 보내길 잘한 듯 쟤들이 남아서 크림반도 같은 사태 터짐 어찌되어겠어 걍 싹다 다 보내길 잘했음
호사 누린건 아님.
당시 일본 본토인들은 식민지인들이랑 비슷하게 살았음.
식민지 일본인들 자체가 일본에서 주류층이 아니였고 잘살아 보려고 식민지로 나간건데
일본이 전쟁기계가 되면서 본토인들은 ㅈㄴ게 착취 당했는데 식민진일본인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았으니 당연히 본토인들이 아니꼽게 볼수 밖에 없었다고함
@@임현태-m1q 만주에서 살던 일본인 학생들이 일본으로 수학여행 갔더니 일본 본토인들이 막노동, 인력거꾼을 하는걸보고 일본인이 저런 일을 하느냐며 충격먹었다고함..
크림반도는 대대로 러시아 사람이 살던데인데 이걸 비교하고 자빠졌네 ㅋ 우구라는 동남부와 크림반도에서의 땅에 대한 자격이 없음 ㅋ
이와 반대로 광복 직후 귀국하지못하고 일본에 남겨진 조선인들도 꽤 많았는데 무국적(조선적)으로 일본인에게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았죠
일본에 남겨진 조선인들은 민단 (pro 대한민국) 조총련 (pro북괴) 로 나뉩니다. 근데 한일 국교성사되고나서 민단은 한국국적이라 상관없는데 조총련 이놈들은 여러가지로 짜증나는놈들입니다. 이영상에서쳐럼 재산 다 뻈고 북괴로 보내야하나 생각들정도에요
재일 조선인들을 강제로 추방도 가능했을 텐데, 일본 정부는 안 했죠..(식민지 지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에 있었던 미군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일본에 산 재일 조선인들 경우도 약간의 차별이 있는 수준이 높은 일본 생활과 차별은 없지만 낙후된 한국 생활 중 일본을 택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인종 차별의 피해를 그렇게 비난하면서 미국에 사는 이유가 무얼까요??
많은 동남아사람들이 인종차별한다며 한국을 비난하면서 한국에 사는 이유가 무얼까요??
조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모께서 재일인데 당시에 야끼니꾸 음식점 창업해서.. 돈 오지게벌어서 한국와서 부동산 재벌되심..
일본인 재산이 아니라 한국에게 뺏은 재산이지. 놓고 가는 게 당연.
그나마 일본이 패전국이라 다행이지 프랑스 같은 경우 아이티가 독립할 때 독립조건으로 프랑스가 아이티에 식민지 시절 놓아둔 다리나 공장 등 각종 시설에 대한 배상금 요구하는 통에 그거 갚는데만 10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수탈해서 백배 사죄해도 모자를 놈들이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는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이야기를 하는 거지만 프랑스가 승전국이다 보니 그럴 악랄한 짓거리가 가능했지요...
참고로 이때 일본에 돌아간 히키아게샤 중 맛의 달인 작가인 카리야 테츠,오소마츠 군 작가인 아카츠카 후지오도 있습니다
두분다 일본 우경화 적극 반대자
7:40 정작 그랗게 말한 자신들도 그동안 자국 정부가 식민지에서 착취한 자원을 통해 본토에서 이득을 봤으니 그런말을 할 처지가 안되죠.
뿌린대로 거둔 것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전혀들지 않는 이번 영상
공장이나 일본인의 재산, 적산가옥을 일본으로 떠나는 히키아게샤로 부터 물려받았던 운 좋은 조선인들이 있었지. 예전에 읽었던 회고록집에서 평소에 자신을 좋게보던 일본인 고용주에게 재산을 물려받아 일약 부자가 된 이야기도 있었지
와 0.1의 동정심도 안 들어.
이후 1965년에 정상회담 할때 일본측이 우리에게 인양자들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한적 있었대요. 적산 기업, 적산 가옥 등등. 하지만 우리는 3억 불을 받고 그들의 재산은 한푼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유리했죠.
77ㅓ억~
사는게 뭔지....시대와 환경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구나,
미쳐버린 댓글 중에서 그나마 발견한 정상적인 댓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안됬긴 하지만, 미군정에서 바로 추방한게 잘한것이, 식민지 독립국중에 제국주의 시절 점령국 인종이 아직도 부를 틀어쥐고있는 나라들이 꽤 많음...친일 청산이 완벽하게 된건 아니였지만 일본인 세력이 아직도 한국의 부를 쥐고있진 않아서 다행임...
좋은 내용입니다!!! 대나무의 노래인가 뭐시긴가 ... 찾아보니 "요코 이야기"(원제: 대나무 숲 저 멀리서(So Far from the Bamboo Grove))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가지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랍시고 쓴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라는 ㄴ이 이 영상을 좀 봤으면 좋겠군요. 이런 좋은 내용은 번역해서 외국에 퍼트려야 합니다!
내용과는 별개로 팔짱낀 퍄파 졸귀...
경주 감포의 역사기록에는 이런게 있죠.
"일제시대가 끝나고 평소 조선인에게 잘해주었던 일본인들은 배를 받는것을 대가로 보내주었다."
그럼 못해준 일본인은 어... 예상대로.
자선사업을 하시며 정말로 조선인과 사이가 괜찮은 일본인은 한국인들이 도움을 줘서 인민재판을 비롯한 각종 고초를 넘겼죠. 그 분은 계속 자선사업을 하면서 돌아가신 후 장례식 때 상당한 수의 사람이 참석했다네요.
맞아죽었을듯
선댓 후 감상😆😆!!!
예전에 들은 얘기지만, 일본에서 나리타 국제공항을 처음 건설할 당시 그 건설부지로 낙점한 땅이 히키아게샤 집단 거주지었다고 하네요
조선을 포함한 외지에서 귀환하고 온갖 험한 꼴을 당하다가 겨우 정착한 곳이었는데, 이제 좀 정착해서 제대로 맘잡고 살아보려고 하자 또 국가에서 쫓아내는 꼴을 겪게 되니까
그때부터 나리타 국제공항을 반대하는 시위가 굉장히 격하게 일어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인천국제공항 쯤 되는 일본의 관문공항인데도 그 모양새가 영 신통치 않았던 이유가 히키아게샤의 투쟁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 영상을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와 대박
재미있는 영상 감사합니다.
식민지로 간 사람들이 최소한 지들이 말하는 내선일체를 믿고 식민지 사람들을 자기들과 동등하게 대우 했다면 강제로 끌려갈때 동정이라도 받고 도움이라도 받았겟지만
그딴거 없고 말로는 내선일체라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으니 그야 당연히 저런 취급을 받지
웃긴건 저렇게라도 살아간게 북쪽에있던 일본인들보단 나앗단점ㅋㅋ
시베리아 자원봉사(강제)
거긴 남자는 재산 몰수 후 시베리아행, 여자는 강간....ㄷㄷㄷ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이럴때 쓰는거군요.
이렇게 보니 차별할 이유가 있어서 차별이 생기는 게 아니라, 차별할 이유를 만들어 씌우니 차별을 하게 되는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몽양 여운형 없었고 조선 총독이라는 것이 여운형 불러서 협상하지 않았으면 저 조선 거주 일본인들 신세는 더 비참했겠지만요..
형사 기소할 이유를 만들어 씌우는 요즘도 별반 다를 게 없네요
원래 혐오가 그렇게 이루어지죠. 감정을 위해 명분을 가져다 붙일 뿐이니
쇼부를 봤었군요
여운형은 빨갱이아님?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해보자면, 전후 틈바구니에서 미군정이 재조선 일본인들을 죄다 열도로 보낸 건 정말 잘한 일 같습니다. 지금 수십만에서 수백만 단위 일본계가 한반도에 있었으면 분명 일본이 그 핑계를 대고 다시 한반도에 땅 내놔라 할 것 같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재일교포들을 좀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평화를 위해서는 나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남아있었어도 6.25때 인민군에게 학살당했을테니 본인들에게도 일본으로 강제송환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음
@@tasha5585 저는 왠지 그전에 한국군에 징집되는 일이 생기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드네요.
일본인이 안나가고 버텼을 경우와 제일 유사할 사례가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발트3국에 남은 러시아계로 볼 수 있겠네요.
그 사람들은 그 나라 말도 안배우고 러시아어만 구사하는 사람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친러, 친푸틴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가뜩이나 러시아와 사이가 안좋은 발트 3국에서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다네요.
@@tasha5585 ㅇㅈ 일본인들 지금 남아있었으면 현재 일본의 조총련들 취급받았을듯
6.25전쟁때문에 리셋되거나 어차피 본토로 갔을꺼같음 ㅋㅋ
우리 작은할아버지 일본인 면장때문에 강제징용당해서 남양군도 끌려가셨는데 오장계급달고 휴가나와서는 그 면장찾아가 따귀부터 후려갈겼었죠.
일제 정권은 조선인 일본인 차별없이 수탈했다죠. 본토 일본인은 일부 고위층 제외하고 전쟁말쯤 되면 거지꼴이 되었다는데 식민지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았던 고위공무원이나 사업가들에게 이 증오를 돌린게 아닐까 싶네요.
인천상륙작전(윤태호)이라는 웹툰 에서도 나오죠.... 조선에서 태어나고 조선을 떠나야 하는 일본인들을 동정하는 대사가....
일제시대에 개교한 학교들은 동문모임 하면, 일본인 어르신?들도 참석한다는 얘기가 있죠....
일본은 전쟁에서 귀환한 일본군까지 차별함
종전후 일본군이 저지른 참혹한 전쟁범죄가 전범재판들에서 밝혀지자 일본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생겼다고하죠
근데 그 사람들 전쟁으로 밀고 지원해준건 자신들일텐데
참 똥묻은 개가 똥묻은 개를 나무랐다는 표현이 잘 맞네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퍄퍄킴 역사님
유독 일본, 특히 2차대전 시기의 일본 내용 영상에는 유독 일뽕들이 많이 보임. 일본의 문화를 좋아해서 일뽕하는게 아니라 일본의 범죄 행위를 찬양하고 옹호하려고 당시 식민지배 당하는 조선에 원죄가 있다고 별의별 헛소릴 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네 ㅋㅋㅋ 당시 미군정아래 친일 청산을 못한게 아직도 스노우볼링 된건가
ㄹㅇ ㅋㅋ 진짜 너무 추함 일뽕들. 너 구독
국뽕도 존나 많자네 끼리끼리지 뭐 ㅋㅋ
솔찍히 우리 입장에선 일본 본토에 있는 녀석이나 우리땅에 온 녀석이나 다를 바 없죠..
재조선일본인 관련 모 연구에 의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들이 내지이자 모국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그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죠....
식민지 조선에서 귀족과 같은 지위에서 부렸을 패악질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전후 자신에게 닥쳐온 단면들에 대해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구요....
소속감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배타는 필수불가결한 거라죠
ㅇㅇ더 단단히 더 확실하게
할머니가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해방되고 삼촌이 일본인에게 맞아서 뇌를다쳐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ㅠ
역사관도 개판이고
천성적으로 남탓하던거 때문인지 지금도 이 악물고 우민화 하고 죄는 모른척하고 향수병에 절어있는게 참 짠한듯
그러면서625때문에 얼마 못가 금방 부흥하여
우리조상들이 쫄쫄굶으며 농사짓고 공부할때
해외여행다니며 따따블외치고 다녔죠
정말분합니다
영향이 없진 않았지만 625덕에 부흥한건 아님
팩트는 바로 잡읍시다
군대서 뺑이칠때 해외여행다니면서 흔들고다니는 한국여자들?
일본은 기본적으로 기술이 있었고 1930년대에 자체 기술로 비행기와 항공모함 만들던 나라였다
제발 머가리에 뇌가 있으면 생각부터 하고 싸지르자
@@부엉이-i9c 6.25 덕에 부흥한거 맞고 일본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항목임.
"조선특수(朝鮮特需)" 라고 당당히 써있음.
일본 정치인들도 당시 6.25는 일본에 축복이었다고 지껄임.
팩트는 바로 잡읍시다
@@부엉이-i9c 원래 미국이 일본을 농업 국가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시행하려고 했는데
6.25가 터져서 일본내 군수공장을 비롯한 모든 생산 시설이 재가동되고 제조업 전반이 살아나며
경제 부흥에 밑거름이 된겁니다.
그게 우리가 36년을 겪은 굴욕이란다... 아무리 세뇌교육 받은 시대 현실이라고 하지만 용서가 안돼 저따위 사상이라니..
님 100살 넘음?
어릴적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얘기를 잠깐 소개하면 할아버지 동네에 한 일본인 가족이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조선인들과 사이 좋게 살고 있었는데 해방이 되자 며칠전까지 사이좋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그 일본인 가족을 집에서 내쫓고 가게를 뺐었다고 함.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그 일본인 가족을 귀국전까지 잠시 집에 데려와서 살게 해 주었다고 했음. 귀국때에도 일본인들을 호송하던 조선인 경비병들이 일본인들을 집단 구타하는 일이 많았다고 함.
너희 할아버지가 친일파였겠구나 ㅋㅋ
그 경비병 중에서도 친일 경찰들도 있을텐데 참 아이러니 하겠네요.
시골에서 소학교 교사를 하면서 인망이 좋았던 일본인도 해방후 떠날 때 청년들이 때렸다고 함. 그래서 마을 학생들이 왜 조선인은 사람을 때리느냐고 이야기 했다고 함.
당연히 쫓아내야지. 식민지 재산과 땅 뺐어서 가게 차린 거잖아. 그리고 그 당시 일본인 교사들이 조선인 여학생들 속여서 조선인 여학생들 뭣도 모르고 위안부로 가게 만들기도 했는데, 다 자업자득이지.😤
세계테마기행 이스라엘 텔아비브 편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같은 가게에서 사이좋게 동업하며 지내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아랍인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 침략자고 서로 죽고 죽이는 게 현재진행형이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뺀다면 순수하게 민간인들 끼리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나라 사람도 차별하는 일본 사람. 즉 섬에 가면 외지인 차별하는 근성이 있는데, 일본은 섬나라라 그런 근성이 배어 있음.
4:40 신라구 ㅋㅋㅋㅋ 서로 돕고살자구 ㅋㅋㅋㅋㅋ
-어디서 읽은 글-
이 내용에서 말한 내용처럼, 그래서 한국에 남은 일본인들은 대부분 자산은 있던 일본인들이라
자기들끼리 이렇게 생존하기로 했다고 함
"아예 한국인으로 살자!"
그렇게 일본인들이 경남의 시골에 모여서 살기로 함.
그리고, 그 재산을 이용해서 한국의 재벌로 성장.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대부분이 그 지역 출신.
-이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오래된 기억이라 출처를 못찾겠음-
이게 음모론만이 아니다 싶었던 게, 그 동네 출신은 아니지만, 이명박 집안을 보면, 그게 가능하겠다 싶기도 했음
이명박 친형이 노년에 일본식 이름을 쓰는 게, 그게 본인 정체성이 일본이라는 뜻이거든.
속 시원하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습니다.
해방전에 부산에 거주하던 사람의 절반이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인은 해방후에 일본으로 돌아간 인원보다도 남아서 조선인인척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조선에서 조선인을 차별 하더니 패전후 같은 일본인한테 차별받으니 진짜 아이러니하네요
우리로 치면 조선족 차별하는 거랑 비슷하죠.
비슷한 내용 전에 본 거 같은데 재업로드인가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간 일본인은 그나마 다행 아닐까? 중국에 살던 일본인들은 지옥을 맛 봤을거 같은데 ㅋㅋ
귀환 도중 만주에 남겨진 고아들 수가 그리도 많았는데 이들은 1970년대에 중일수교로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중국에살던 일본인뿐만아니고 조선족들까지 싸잡혀서 만명이넘게 약탈 살해 강간당했다고 합니다 조선족들 지네역사인데도 미움살까봐 쉬쉬하죠
이후 6.25 터졌는데 다행?
속이 시원하네ㅋ
재업인가여
재입인 듯?
아뇨 재업 아닙니당
어후 말잘하신다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네요
지금도 재한일본인 약 70-100만 정도 있으면 어땠늘까하는 흥미로움이
5ch:자이니치 반도로 돌아가라
디시:히키들 열도로 돌아가라
개꿀잼이네. 가슴이 웅장해진다
디시는 지금은 오히려 일본에 빌붙어들고있음
조선인과 같이 합세해서 파업 시위 벌었던 일본인 노동자들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이때 일본의 반응은 그 노동자들도 자기네 일등시민이 아니라고 식민지의 조선인과 똑같이 탄압했다고
역사와 정치는 그들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기 마련.
역시 미국형님 짱♥
전에 광복 후 북한의 일본인들에 대한 영상 올리셨었는데 오늘은 그 후속편인가 보네요?
차별했던 조선인들에게 역차별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조국으로 돌아가서도 같은 민족들에게 차별을 받다니...자업자득이네요 ㅋ
인과응보
전혀 안타깝지않음 죗값치를거 더 많이 남아있다
아무리 고향이 그리워도 종전 이후 막장이된 일본으로 돌아가는것보단 한반도에 남아서 살려고 했다가 북한군,국군에 강제로 징병된 일본인도 있었죠. 2:31,3:46,5:01,6:49
옛날 얘긴데,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으로 참전하셨던 한 선생님께서 동남아에서 전투에서 져서 미군 포로로 잡혔는데,
미군들이 자신은 조선인이라서 포로 수용소에서 특별 대우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화단에 물주는 일만 했다고 ㅎㅎ
그리고, 조선에 돌아오려고 하는데, 동네 일본 처녀가 우리 나라 망했으니, 조선으로 돌아갈 때 자기도 데려다 달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 시킬 수 없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제는 이해해 가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20년 정도만 지나면, 광복한지 벌써 백년이나 됩니다..
어떤 사학자가 그랬죠..
20세기는 광기의 시대였다고...
애초에 조선으로 오는 일본인들은 본국에서 하류층인 경우도 많았으니까 당연히 일본으로 가기 싫었겠죠
ㅋㅋㅋㅋ 인과응보 전 이 부분이 반만년 한국사에서 제일 편한한 부분입니다.
안
편안한
제일 편안한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뗏놈 30만 저 세상 보낸거죠
잼민이땐 원폭 투하 사실 자체가 식민지배의 당연한 업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일본인과 조선인 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결국 지배층을 제외하고 개인의 범위로 본다면 식민시대의 피해자였을 뿐이지 않을까 싶네요
당장 원폭 투하의 피해자의 10퍼센트가 재일 조선인이였던 부분만 생각해도 참 그렇습니다
특히 일본 본토의 국민들이 히키아게샤를 욕하는 것은 맨발의 겐에서 당장 전쟁중까지만 해도 태평양 전쟁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태도를 싹 바꾼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식객의 미국 할머니 편도 떠오르기도 하고 참 민족과 국가를 떠나 마음이 복잡해지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 영상이였습니다
일본인들 특임ㅋㅋ거기는 이지매의 나라잖아
불쌍한데 결코 불쌍히 여길 수 없는 사람들…
36년의 일제치하에서 사실상일본인은물론 조선인들도 많이 융합된상태였음
물론 여전히 조선인에대한 차별이있는것도 맞음
하지만 한반도지역은 일본의 첫식민지였고 이미 그역사가 오래된상태였던대다
조선인귀족의 후손은물론 일반인중에서도 이제 부유한 계층들이 많이나오기시작함
이것은 갈수록 경제 계층간 인종구분이 줄어들고있다는것이고 실상 20~30년정도지나면 당시 평균연령상 조선을 기억하는사람도 거의없어졌을거임
여기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혼인으로 생긴 혼혈인도 많았음
같은황인종끼리 식민지인과 지배국인인 상태라 혼혈이라해도 차이가 크지않았기에
대하는 거부감도 적었고
거기에 일본에서 식민지로 이주한 사람들이 분명 식민지에서 여러혜택을 받은건맞는데
애초에 이주민 대부분은 일본에서 가난한사람들이 많았음
일본내에서 어찌보면 하류층인생들을 식민지이주하면 땅도주고 돈도준다면서 꼬셔서 이주시킴으로서
어떤면에선 근대화이후 발생했을 국내의 극심해진 빈부격차도 해소하는 방법이었을거같음
뭐 예를들면 일본이 근대화해서 상류층10명 중산층10명 하류층 80명의 사회가되었는데 식민지로 하류층 30명을 이주시키면
기존 1:1:8의 구조가 1.4:1.4: 7정도로 나아지게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니까
귀환 안 했더라도 6.25 전쟁으로 개고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에 1표 겁니다.
귀환하지 않았다면 죄다 좌우진영에게 학살 당하고도 남았죠.
너무재밌어요ㅋㅋㅋ 언제봐도 재밌어~~~
당시 귀향 일본인의 고충을 한국인이 영화로 만들어서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다면 역으로 일본을 엿먹일수 있겠다. 좋아요 올려주셈
반딧불이의 무덤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