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리즈시절 얼굴은 전형적인 오늘날 북방계형 몽골족 여자 얼굴이었음 저는태어나서 패티김 눈처럼 그렇게 위로 찢어진눈은 처음봤고 눈이그렇게도 위로쫙~ 찢어졌는데도 그렇게 선한얼굴은 또처음봄 몽골의 초원에서 양떼를 몰고가는 전형적인 아주 촌스럽운 몽골족 사람 얼굴이었음 전성기시절 세련되고 섹시한 얼굴과는 아주거리가먼 정반대되는 얼굴모습 데뷔초에는 눈에 쌍까풀 테이프 아이참을 붙이고다니다 70년도 쌍까풀 수술하고 오늘날 패티김 얼굴이 완성됐죠 지금도 인터넷 찿아보시면 화장안한 본래 모습사진 찿을수도 있을거임 그당시 여성으로선 패티가 키가크고 체구가.있고 그당시 유행하는 스모키 눈 화장을 했으니 이국적인 여자로 보였을 수도있죠 스모키눈 화장은 70년대말까지 유행했음 연예인이나 화류계유흥가 쪽은 거의가 스모키눈 화장을 다하고다녔음 저녁만되면 77.55.69.아가씨들 눈이 새까맣죠 다음날아침 화장지운 얼굴보면 그렇게 커보이던눈 신비스럽던 섹시한얼굴 과정반대되는 얼굴이 되어버림 그런이미지의 패티에 최원석씨가 뿅갔을 수도있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셨네요. 눈이 진짜 위로 치켜 올라가고 못생긴, 아주 얷세게 생긴 얼굴 에요. 얼굴도 넙대대애 광대가 돌출되고 하관이 발달된.. 남성적인 얼굴. 이런 얼굴을 서양인들은 매력적이라 좋아하더군여. 솔직히 인상은 안좋죠. 반면 길옥윤 씨는 젊은 시절엔 예쁘장하게 생기고 조용조용한 엘리트 스탈 꽃미남 여서 둘이 좀 안어울렸어요. 패티김이 관상학적으로 성욕이 강하고 바람기 있고 생활력 강한 상이라 하더니 나중에 그런 느끼한 이태리 남과 결혼한거 보고 맞다 싶었음
@@kimhigdon1489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통영-y9v 너무 충격이에요. 이런 자세한 내용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이혼했을까 궁금했는데 패티김 이야기만 있지 길옥윤씨가 한 이야기는 없더라구요. 패티김이 은근히 길옥윤씨를 많이 깠어요. 남편으론 별로 였다고. 그런데 이혼 하고나서 바로 느끼한 이태리 남자랑 재혼한거나. 길옥윤씨 미국 가 있을때 최원석 회장과 그런 문란한 쓰리썸 한것만 봐도… 패티김 주장이 신빙성이 떨어져 보였었죠. 패티김은 솔직히 인상 자체가 자유분방해 보이고 돈 밝혀 보여요. 그러니 결혼중에도 재벌 회장과 그랬겠지만. 미국 에서도 교포들 사이에서 별로 평판이 안좋았죠. 돈 떨어지면 국내 가서 한묶 챙겨 온다고. 그러고 보면 길옥윤 씨만 불쌍하네요
최원석과의얘기듣고 너무나 충격 받아서 이젠 그 여자의 노래 듣기도 싫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라고 믿고있었는데 그 짓을 하고 다녔다니 내가 다 창피하다 그책에서 보니 톱스타들 대부분이 고급콜걸 이었음 돈도 버는 여자들이 돈눈이 말었다 아유 생각 만해도 부끄러워 ... 잘나면 뭐하냐고요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패튀김님 우리 젊은시절 좋은곡들 많이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한국가요계의 거성. 패튀김. 정말 사랑합니다.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 그간 고마웠습니다. ,,,,,떠나는 그분에게 악담은 하지맙시다. 고마운것만 생각하세요. 패튀김님도 인간입니다. 그렇게 악담하는분들은 얼마나 어떻게 사시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세요.
1970년 전후 TV에 길옥윤 선생과 함께 출연했던 것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큰따님을 안고 나와서 1999년 정아는스무살 하면서 길옥윤 선생이 기타를 치면서 두분이 노래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싸 5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1999년이 언제 올까 했는데 지금 1999년도 훨씬 지나서 2022년이 되었군요. 과거 결부선 새마을호를 타면 그 도시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부산에 도착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대구는 능금꽃 피고 지는 내고향 땅은 하는 노래가 나왔는데 영등포를 지나서 노량진역을 지나면 서울의 찬가가 나왔습니다 . 참 옛날 이야기 입니다. 그래도 패티김 선생이니 이미자 선생 같은 분들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계시니 성공한 인생 같습니다
패티김은 너무나 노래를 잘부르고 목소리가 예뻤던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가수는 아마 없을겁니다. 그러나 패티김도 성격이 너무 강직하고 직선적이 었던것 같습니다. 사람은 때로는 약간 바보스러울 정도로 참는것도 결과적으로 좋은경우가 많더라고요. 당시에는 참으면 바보 머저리 같아서 도저히 참을수 없더라도, 참고 인내하면 더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것을 늘 경험합니다.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길옥윤 선생님과 이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훗날 혜은이가 받았던 곡들을 전부 패티김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꼭 돈이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명작을 남겨보고 싶은것도, 음악인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가 원하는 바램일것입니다. 만약, 패티김이 새벽비를 부른다면, 패티김표는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곡이 됐을것이고, 혜은이가 받았던곡들 모두 패티김이 불렀다면, 또다른 명작이 됐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꼭 계산적인 생각으로 출발한 발상이 아니고, 이혼만 안했다면, 충분히 실현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좋은데 썸네일에 불륜.누드 등은 이미 오랜전에 수영복 사진을 누드와 불륜 등으로 날조된것인데, 썸네일에 불륜.누드 관련된 것은 전형적인 어그로성 썸네일 아니오? 전 남편 길옥윤님이 일본에서 돌아와 혜은이 라는 스타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 했었지만 다시 술중독으로 일본에 있으며 암까지 앓게된것을 패티김님이 알게되어, 길옥윤님을 그대로 방치할수 없다하여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으로 모셔와 휠체어에 있는 길옥윤님과 무대에 설수있게 패티김님이 주도해서 함께 방송까지 할수있었던 겁니다. 영상 내용에 좀 더 상세하고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고, 썸네일에 어그로성은 자제하면, 휠씬 더 좋은 유튜브 방송이 될 듯 하오이다.
패티김이 이혼한 이유는 패티김이 어느 잡지의 인터뷰에서 남편인 길옥윤이 매일 외박 해서 살수가 없었다 고 한다 이런 남자하고 살이유가 없지 능력있는 여자가 그리고 미국남편이 자기 딸보다 정아를 더 사랑해서 정아가 자기 친아버지 길옥윤을 안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미국 남자의 사랑은 팩키지 사랑이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면 그에 딸려있는 애 까지 사랑한다 우리 하고는 문화가 틀린다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길옥윤은 혜은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바다맑음-m8h 도배를 하고 안하고는 제 자유고요 제가 길 선생 대변인도 아니고 그냥 고등학교 다닐 때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그대로 얘기한 것이고 아마 길선생 사후에 본인이 쓴 회고록이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1996년인가 그 내용 일부가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이혼을 통보하기 전에 먼저 미국으로 나갈 것을 강요하고 싫다는 분을 억지로 내보냈어요 눈치빠른 길옥윤은 그것이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 별볼일없는 작곡가 남편 주제에 어쩔수없이 순순히 응할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김포공항에서 패티킴과 헤어지는 장면인데 당시 엄마를 따라나온 6살정도된 어린딸이 아무것도 모르고 고사리같은 손을 흔드는데 가슴이 미어질듯 아팠다고 합니다 길옥윤은 가요계에 데뷔하기 전에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수재였지요 그래서 그딸도 아빠를 닮은 엘리트여서 유엔에서 외교관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반면에 패티킴의 두번째 남편의 자녀들은 그렇게 잘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 지난 일이라고 퉁치자고 하시는데 여기에 길옥윤을 욕하는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들이 차고 넘쳐서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한것 뿐인데 뭣땜에 그걸 막으려고 하십니까 혹시 패티킴 집안분이신가요
@@이통영-y9v 자유 아닙니다. 꼭 같은 내용의 글을 10개도 넘게 올리시는 걸 개인의 자유라고 한다면 더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진정한 팬은 이러지 않죠. 저는 길선생님의 빼어난 작곡실력과 연주의 애닯음이 아직도 가슴에 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이별 콘서트 할 때의 그 애잔한 눈이 너무 가슴 아파 눈물지었던 사람이예요. 서울치대를 나오신 빼어난 능력자신데 어찌 예술에도 그런 탁월한 발자취를 남기셨나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을 얼마나 더 비참한 모습으로 팬들의 뇌리에 남기시려고 같은 댓글을 "복붙" 하시는 것입니까? #조용히 말씀드리면 생각만이라도 하셔야지...이 공간이 우리들의 공간이고 그 분들을 사랑하던 팬들의 공간인데 남이사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다니요. #쓰시고 싶은 글 쓰시는 자유는 있어요. 단, 꼭 같은 글을 도배하여 계속 올려야 할 권리는 없으시단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안타까운 마음은 잘 알겠으나 지나치면 도리어 역효과가 되실 수도 있으시단 걸 아셨으면 합니다. 저는 패티김 여사 친척도 아니며 길옥윤 선생님도 패티킴도 같이 좋아해서 안타까워했던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일 뿐입니다!! 내 맘대로 한다 도배도 자유다라고 하는 답글이 하이라이트 되신 걸 축하합니다!!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감동심금을울립니다
생명의 가치
인연 ~~
말로할수없는 시간의선함 길옥윤선생님
영면하시고
패티김선생님은남은날동안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행복하세요
주옥같은 길옥윤 작사작곡은 당대에
최고급 멋진 시와 멜로디
세련된 패티김이 불러한쌍에 콤비 이혼이란 굴레속에 묻치고 말았죠 두분
그립습니다
패티김이 노래는 다 감동 이였고 아름다우길옥윤 선생곡이 다 명곡 이였죠!가족만 잘지키고 방랑생활 자유인 생활 않했으면 지금도 살아계시지 않았을 안타까우분이였죠!❤😂🎉😅🎉😂❤🎉😂❤
길옥윤 패티 멋진 커풀이라고 결혼당시
화제 였지요
그러나 부부는 같이살아본사람 만이 그마음을 알겠지요
병석에있는 길옥윤을 위해 멋진위안쾌유 공연도하여주시고 멋진은퇴 무대 위에
멋진 모습 잠시만 이라도
보고싶네요 패티여사님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끔이라도 나와주셔서 노래하여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위대한 아티스트면서 너무나 멋진분 이분의포스는 공부해서 되는게 아니지 요 건강하고 멋진인생 계속응원합니다
패티김은 최원석이 와의 관계를 해명 해야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배인숙에게 사과도 해야만 된다/인그러면 두고두고 개 ㅇ ㅇ소리 듣는다.
No more 카드라...
바람 못피는자가 시기
최원석 해명
배안순은 총각 최원석을 만났나 ?
똥개
천재적인 작곡가 길옥윤 그립습니다
ㅅㅎ
ㅏ ㅇ
표절 작곡가인데요
버젓이 부인있는 최원석집에 방문했다고
배인순이 자서전에
썼다고 나온다던데.
패티김이 이 자서전에
명예회손 문제제기했다는
뉴스 못봤음.
글게요.최석원이랑
패티킴 여하튼멋지다
누구도 패티킴 욕 못한다~한번씩 노래가 마음을적신다
그녀의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데 다시 볼 수 없다니 안타까워요.
멋진 노후를 기도합니다.
길옥윤이라는 천재를 만난 가수들은 큰 행운이었다. ㅎ
사생활 실망
최원석
실망입니다. 저도요. 역겨워요
패티김 리즈시절 얼굴은 전형적인 오늘날 북방계형 몽골족 여자 얼굴이었음
저는태어나서 패티김 눈처럼 그렇게
위로 찢어진눈은 처음봤고 눈이그렇게도
위로쫙~ 찢어졌는데도
그렇게 선한얼굴은 또처음봄
몽골의 초원에서 양떼를 몰고가는 전형적인
아주 촌스럽운 몽골족 사람 얼굴이었음
전성기시절 세련되고 섹시한 얼굴과는
아주거리가먼 정반대되는 얼굴모습
데뷔초에는 눈에 쌍까풀 테이프 아이참을 붙이고다니다
70년도 쌍까풀 수술하고 오늘날 패티김
얼굴이 완성됐죠
지금도 인터넷 찿아보시면 화장안한
본래 모습사진 찿을수도 있을거임
그당시 여성으로선 패티가 키가크고
체구가.있고 그당시 유행하는 스모키 눈
화장을 했으니
이국적인 여자로 보였을 수도있죠
스모키눈 화장은 70년대말까지 유행했음
연예인이나 화류계유흥가 쪽은 거의가
스모키눈 화장을 다하고다녔음
저녁만되면 77.55.69.아가씨들 눈이
새까맣죠
다음날아침 화장지운 얼굴보면 그렇게
커보이던눈 신비스럽던 섹시한얼굴
과정반대되는 얼굴이 되어버림
그런이미지의 패티에 최원석씨가 뿅갔을
수도있죠
그얼굴이 우리가 익숙한 몽골계통 이었지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셨네요. 눈이 진짜 위로 치켜 올라가고 못생긴, 아주 얷세게 생긴 얼굴 에요. 얼굴도 넙대대애 광대가 돌출되고 하관이 발달된.. 남성적인 얼굴. 이런 얼굴을 서양인들은 매력적이라 좋아하더군여. 솔직히 인상은 안좋죠. 반면 길옥윤 씨는 젊은 시절엔 예쁘장하게 생기고 조용조용한 엘리트 스탈 꽃미남 여서 둘이 좀 안어울렸어요. 패티김이 관상학적으로 성욕이 강하고 바람기 있고 생활력 강한 상이라 하더니 나중에 그런 느끼한 이태리 남과 결혼한거 보고 맞다 싶었음
사랑합니다💜
패티김 선생님
건강하세요~^^♡
패티킴의 마지막 콘서트를 관람한 사람입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노래를 들으며 참 안타까웠지요.
행복한 여생 보내시기를~~~
두분 모두 건강하십시요!
내노래를 위해서
나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는 말이 기억하게 하는군요
배인순씨가 쓴책에 나오는데~~집에까지 와서~~실루엣~~뻔뻔스럽고 가증스럽기까지~~이미지 좋아하네~~
사생활은 그다지
색골이지
헉ᆢ 레알ᆢ원래 싸가지는 없는 얼굴이긴 ㅎㅎ
그래도 천의 목소리를 지녔으니 이쁘장 생긴 길선생도 뻑이갔네요
노래는 진짜 최👍👍👍오죠
오래 전 잡지에서 그 내용 보고 안 믿어졌는데 그렇게 민감한 내용을 공개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겠죠. 그 이후 저 여자만 보면 그걸로 바로 연결돼서 ㅉㅉㅉ
배인순씨는 최원석이라는분을
총각으로 만났나 ?
예수님이 돌을 던질수있는 사람만 던지라고했다.
그래도 길옥윤이가 죽어갈때에 마지막 콘서트에 출연해주는 대인배에요.
사생활 영아니지요
남편 외국에 두고
최원석과 놀아났지요
산사람이 무슨 말을해도 죽은사람은 말이없다
'박수칠때 떠나라'는 말이 이분에게도 통하는듯하다. 그 어떤 후배들도 언니 혹은 누님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조영남아저씨만 유일하게 누님이라 부르신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가족들이랑 배타러 가서 표 끊으면서 연예인dc안해 준다고 해달라는 찌질함 보여줬죠.그 장면 티비에서 편집없이 보여줬어요
이세상에 예수님은 한분이였읍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길옥윤 선생은 가셨으니 패티김의 그 사연(?)을
그 누가 알리오.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남편이 훤씬돌아가시기전에 톡쇼에서 이미말했어요.이혼의 원인은 넘편의 술과 도박ㅡ
@@kimhigdon1489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통영-y9v 너무 충격이에요. 이런 자세한 내용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이혼했을까 궁금했는데 패티김 이야기만 있지 길옥윤씨가 한 이야기는 없더라구요. 패티김이 은근히 길옥윤씨를 많이 깠어요. 남편으론 별로 였다고. 그런데 이혼 하고나서 바로 느끼한 이태리 남자랑 재혼한거나. 길옥윤씨 미국 가 있을때 최원석 회장과 그런 문란한 쓰리썸 한것만 봐도… 패티김 주장이 신빙성이 떨어져 보였었죠. 패티김은 솔직히 인상 자체가 자유분방해 보이고 돈 밝혀 보여요. 그러니 결혼중에도 재벌 회장과 그랬겠지만. 미국 에서도 교포들 사이에서 별로 평판이 안좋았죠. 돈 떨어지면 국내 가서 한묶 챙겨 온다고. 그러고 보면 길옥윤 씨만 불쌍하네요
@@이통영-y9v 그랬군요
저작권이 있을텐데 그돈이 있음
편히살수있는데 ᆢ 그게궁금하네요
이별노래듣다가 길옥윤선생님 이 궁금하고
불쌍해서 여기까지왔네요 ㅎㅎ
최원석과 패티김의 과거사는 사람들이 모르는모양이다
참 웃기는 세상사,,,,,,,,
그러게 말씁입니다.!
봤냐 봤어
최원석 아내가 있는 집에 버젓이들어와 최원석과 그짓을했다고 최원석아내 배인순이 그의 회고록에서 밝힌바있죠
@@chongranleekim8042 최원석의 전부인 펄씨스터즈 의 언니 배인순 자서전에 나와있슴
배인순말만 믿냐
속된말로 요즘것들은 조금만 맘에안들면 이혼한다고 말을하는데 실상 예전이 더 이혼율이 높은것같네 올바로산사람이 별로 없는것같은
옛날 광대는 암묵적으로 허용되던 시대였죠
패티는 동아그룹최원석 집에까지 갔었다 가수 배인순씨가 밝혀 화제가 되었다 어떡게 동료 가수하고 살고있는 최원석하고 잠자고나갔나 머니가 없었나 무슨 개같은 짖까지 품위까지 잃어버리나
큰돈을 주는 최원석이었오 ㅋㅋ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패티김은 실력있는 가수였지만
자존감이 아주 바닥이었군요
연예계가 동물의 왕국인게 맞지요
겉보기와 너무 다른 사생활
최원석과의얘기듣고 너무나 충격 받아서 이젠 그 여자의 노래 듣기도 싫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라고 믿고있었는데 그 짓을 하고 다녔다니 내가 다 창피하다 그책에서 보니 톱스타들 대부분이 고급콜걸 이었음 돈도 버는 여자들이 돈눈이 말었다 아유 생각 만해도 부끄러워 ... 잘나면 뭐하냐고요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아버지는 노래는 모르지만, 돈떨어지면 귀국해서 돈들어오면 나가고, 다시 똔떨어지면 들어온다고 싫어한 사람 나도 동감이었다!
애국심은 단 항게도 없는 여자.
돈욕심만 그득한 여자.
그래서 난 좋았는데 내가 해외까지 가서 공연 안봐도 되니까 심통나니까 괜히 헐뜯고 지랄들이네 ㅋㅋ
아무나 좋아하지 말고 강제로 하지 말고 조건부 댓가 받는 거래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얼굴 몸매 보지 말고 맘씨 보고 선택하라 얼굴 몸매 아름다워도 맘씨 나쁘면 향기 없는 꽃이다 맘씨보고 선택하라 맘씨
패튀김님 우리 젊은시절 좋은곡들 많이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한국가요계의 거성. 패튀김. 정말 사랑합니다.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
그간 고마웠습니다. ,,,,,떠나는 그분에게 악담은 하지맙시다.
고마운것만 생각하세요. 패튀김님도 인간입니다. 그렇게 악담하는분들은 얼마나 어떻게 사시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세요.
어디서 보니까 연예계를 동물의 왕국 이라고 함
배인순 회고집에
나오는 패티킴 아닌가요?
Patti Kim sei una grande Cantante che meraviglia! !❤💙💛💚💜
최석원 이야기는 왜 안나옴?
화려한뒤엔
다그런가
인생의삶은 항상
자신만이알고있는
애절함 가슴아픈 ^~^
패티김최고지요
패티가누군가 노래수준으로말한다면 우리나라최고 더불어 최고의씹꾼 펄시쓰터즈 언니가 자서전에서 애기했음
공감
@@vincero671 여기서 윤복희가 왜 나오나요? 윤복희는 현미 패티보다
9~10년 어려요
윤복희 장미화 김미성이 동갑이고
김상희가 윤복희 보다 3살 많아요
1970년 전후 TV에 길옥윤 선생과 함께 출연했던 것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큰따님을 안고 나와서 1999년 정아는스무살 하면서 길옥윤 선생이 기타를 치면서 두분이 노래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싸 5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1999년이 언제 올까 했는데 지금 1999년도 훨씬 지나서 2022년이 되었군요.
과거 결부선 새마을호를 타면 그 도시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부산에 도착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대구는 능금꽃 피고 지는 내고향 땅은 하는 노래가 나왔는데 영등포를 지나서 노량진역을 지나면 서울의 찬가가 나왔습니다 .
참 옛날 이야기 입니다.
그래도 패티김 선생이니 이미자 선생 같은 분들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계시니 성공한 인생 같습니다
패티김은 너무나 노래를 잘부르고
목소리가 예뻤던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가수는 아마
없을겁니다.
그러나
패티김도 성격이 너무 강직하고
직선적이 었던것 같습니다.
사람은 때로는
약간 바보스러울 정도로
참는것도
결과적으로 좋은경우가
많더라고요.
당시에는 참으면
바보 머저리 같아서
도저히 참을수 없더라도,
참고 인내하면 더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것을 늘 경험합니다.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길옥윤 선생님과
이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훗날 혜은이가 받았던
곡들을 전부 패티김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꼭 돈이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명작을 남겨보고 싶은것도,
음악인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가
원하는 바램일것입니다.
만약,
패티김이 새벽비를 부른다면,
패티김표는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곡이 됐을것이고,
혜은이가 받았던곡들 모두
패티김이 불렀다면,
또다른 명작이 됐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꼭 계산적인 생각으로
출발한 발상이 아니고,
이혼만 안했다면,
충분히 실현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패티김은
진정한 음악인 입니다
무대를 위해
팬들을 위해
무한정 노력하는 가수,,, 라고 들었습니다..
다시한번
노래하시는 모습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다 좋은데 썸네일에 불륜.누드 등은 이미 오랜전에 수영복 사진을 누드와 불륜 등으로 날조된것인데, 썸네일에 불륜.누드 관련된 것은 전형적인 어그로성 썸네일 아니오?
전 남편 길옥윤님이 일본에서 돌아와 혜은이 라는 스타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 했었지만 다시 술중독으로 일본에 있으며 암까지 앓게된것을 패티김님이 알게되어, 길옥윤님을 그대로 방치할수 없다하여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으로 모셔와 휠체어에 있는 길옥윤님과 무대에 설수있게 패티김님이 주도해서 함께 방송까지 할수있었던 겁니다.
영상 내용에 좀 더 상세하고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고, 썸네일에 어그로성은 자제하면, 휠씬 더 좋은 유튜브 방송이 될 듯 하오이다.
패티김 헛소리 하시네 동료가수 남편 하고도 볼일 보시고 기가막혀서요
⁰
패티 김 하여간 대단한 여자임에 틀림업다
배ㅇㅅ 전남ㅍ 과도
와 완전 자유로운 인생
최원석네집 지하방에서 씹질은 안밝히넹???????
여자가 남자와 10질하는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당연히 눈맞으면 누구나 라면 끓일수있다 그게 남여관계이다
@@맑고상쾌한주말아침
당신 자식도 남편도 그렇게 살라고 말할수 있는가 ~!?
맑고 상쾌한 ~? 어울리지않는 위선자 같으니라고 ~!!!
배인순씨의 자서전을 읽고 실망 했습니다.
얼굴은 길씨가 훨씬 낫지.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절대 탈선하지 않습니다
감성 깊은 패티 선생님!
인정에 이끌려서...오죽이나 했으면 아픈 이별을 했겠습니까?
멋진 매너 큰 사람!
길옥윤이 죽었으니 지혼자 떠벌린다고 누가 아는사람있나 혼자변명하고 다해먹어라
성욕은 남녀 본능 섹스는 때와 장소 상대를 가려서하고 파트너에게 책임지는 섹스를하라 난잡하면 성병에 걸리고 원치않는 임신을하고 패가망신한다 성욕억제 못하고 감옥가는 사람이 많다 삼가하고 조심하라 쾌락은 순간 고통은 길다
You're absolutely right
최원석과 가끔 하세요
보셨나요
패티김이 이혼한 이유는 패티김이 어느 잡지의 인터뷰에서 남편인 길옥윤이 매일 외박 해서
살수가 없었다 고 한다
이런 남자하고 살이유가 없지
능력있는 여자가
그리고 미국남편이 자기 딸보다 정아를 더 사랑해서 정아가 자기 친아버지 길옥윤을 안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미국 남자의 사랑은 팩키지 사랑이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면 그에 딸려있는 애 까지 사랑한다
우리 하고는 문화가 틀린다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매일 술마시고 외박 한다고 했는데 어떻케 살아요
남자친구하고 어떻케 외박해요
여자랑 외박 했겠죠
그건 패티김얘기잖아요?
그여인이 최원석과 놀았는데
신뢰하기어렵군요 ㅎ
I miss her and whole family. When
Almando & Patti came to stay at my house in Hong Kong, Almando ask me to have Kimchi at home.
패티김은 대한민국의 애국자 입니다 그냥 그렇게들 알고 계세요
길옥윤? 가수분과위원장시 공금횡령한적 있죠! 길옥윤? ?
결혼은두번연애는 셀수없음
볼 때마다 토가 쏠린다.
패티김 연세도 85세쯤 될것 같다 세월 넘 빨라
가수는 죽어도 무대에서 죽어야 한다고 후배한테 자주 얘기했다,근데 갑자기 은퇴?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남자 열을 거느러야자
ㅎㅎㅎㅎㅎ
멋진 이태리 남자 만나 딸 낳고 행복하게 산답니당
자기관리가 철저했을 것 같더니 역시였군요
패티 가수왕
이만한 가수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어렵다
보고싶고 그립다
어떤 프로라도 나왔으면
요즘 근항이 너무 궁금하다
참멋진분인데.지금도.한번씩.나왔어면좋겠네요..
항간 소문 다 버리고 ! 패티 킴 괜찮은 가수죠 참~! 멋있고 실력있는분이신데 가끔씩 모습보여 주세요 보고싶군요~
저질 왜 이런걸 써
최태원회장이랑 바람폈고 눈은 성형했다고 말한적잇는데
최원석
최태원아니고 원석
최원석 입니다 죄송
[길오균]음주를 용서받지 못했다.
작사가 전우(전승우)경우같이~
이게 멋진 인생이냐???한심하군///쓰레기 삶이지///
남의 인생을 ?
본인은 ?
광대뼈와 찢어진 눈매.. 인물은 없지만 성욕은 강할 상..
외국남자맛 알아서 떠난거 아니였나,돈떨어졌나부지.남편도 망했다던데,
페티김은 동아그룹 최회장과 놀아났다고 최회장의 전부인이 말했다.
사실 저여자의노래를 좋아하진않았다.
패티김선생님 그립습니다 💞💞💞
길옥윤이 혜은이랑 관계때문에
이혼한 걸로 아는데~~
길옥윤은 혜은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색꼴 같이 생겼잖아
패티김씨는 대장부네요
동네챙피한이야기좀그만해라,
패티김씨는
품위있고 자존감 높으신 가수입니다
가정교육도 훌륭하고 중앙여고를
나오셨다고 해요 좋은 학교중 하나...
언행이 흩으러진 모습 못봤습니다
한국인들의
몹쓸루머 만들어
사람 매장시키는 국민성
어떻게 고쳐질지요
특히 연예인들에게...
소문이 사실이아닌데 저기쎈여자가
가만있겠어요!ㅎ
노래는 참 좋은데
미국 카지노 디너쇼는 정말
디너쇼로인한 한인도박 문제가
컸어요
본인은 모를수있지만
원래 이복보다 동복은 잘지냅니다
대단하다
길옥인은 생활비를 준 적이 없다나,
,
그 주옥같은 곡들을 주었지요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통영-y9v 너무 도배를 해버리시니
도리어 신뢰감이 떨어집니다.
다 지나간 일인데 이렇게까지 도배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바다맑음-m8h 도배를 하고 안하고는 제 자유고요 제가 길 선생 대변인도 아니고 그냥 고등학교 다닐 때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그대로 얘기한 것이고 아마 길선생 사후에 본인이 쓴 회고록이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1996년인가 그 내용 일부가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이혼을 통보하기 전에 먼저 미국으로 나갈 것을 강요하고 싫다는 분을 억지로 내보냈어요 눈치빠른 길옥윤은 그것이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 별볼일없는 작곡가 남편 주제에 어쩔수없이 순순히 응할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김포공항에서 패티킴과 헤어지는 장면인데 당시 엄마를 따라나온 6살정도된 어린딸이 아무것도 모르고 고사리같은 손을 흔드는데 가슴이 미어질듯 아팠다고 합니다 길옥윤은 가요계에 데뷔하기 전에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수재였지요 그래서 그딸도 아빠를 닮은 엘리트여서 유엔에서 외교관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반면에 패티킴의 두번째 남편의 자녀들은 그렇게 잘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 지난 일이라고 퉁치자고 하시는데 여기에 길옥윤을 욕하는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들이 차고 넘쳐서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한것 뿐인데 뭣땜에 그걸 막으려고 하십니까 혹시 패티킴 집안분이신가요
@@이통영-y9v 자유 아닙니다.
꼭 같은 내용의 글을 10개도 넘게 올리시는 걸 개인의 자유라고 한다면 더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진정한 팬은 이러지 않죠.
저는 길선생님의 빼어난 작곡실력과 연주의 애닯음이 아직도 가슴에 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이별 콘서트 할 때의 그 애잔한 눈이 너무 가슴 아파 눈물지었던 사람이예요.
서울치대를 나오신 빼어난 능력자신데 어찌 예술에도 그런 탁월한 발자취를 남기셨나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을 얼마나 더 비참한 모습으로 팬들의 뇌리에 남기시려고 같은 댓글을 "복붙" 하시는 것입니까?
#조용히 말씀드리면 생각만이라도 하셔야지...이 공간이 우리들의 공간이고 그 분들을 사랑하던 팬들의 공간인데 남이사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다니요.
#쓰시고 싶은 글 쓰시는 자유는 있어요.
단, 꼭 같은 글을 도배하여 계속 올려야 할 권리는 없으시단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안타까운 마음은 잘 알겠으나 지나치면 도리어 역효과가 되실 수도 있으시단 걸 아셨으면 합니다.
저는 패티김 여사 친척도 아니며 길옥윤 선생님도 패티킴도 같이 좋아해서
안타까워했던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일 뿐입니다!!
내 맘대로 한다 도배도 자유다라고 하는 답글이 하이라이트 되신 걸 축하합니다!!
아름다운 빛나는 노을이고 싶다~!!
제목이
바르고 참되게 후회 없는 인생
최태원바람피고 길옥윤새삼 왜그러세요
최태원 회장이 22세 어리다 ㅋㅋㅋ
최태원❌ 최원석🅾️
아이쿠 깜짝아 ㅡ 수정 안한 그대로네 ㅉ
피가 한국인이 아닌듯 몽골사람같아
음악적으로는 대단하나 고급콜걸 + 옹녀
기로균 으로 읽어야 하지않나?
그때 우리가 힘들고 어려웠던때 ㄱ녀의노래는 우리를 어려운 환경을 잊고 행복했었던게 아니었을가
웃기지네
패티김을 잘알자
패티김은 성적으로 색정이강해
길옥윤같은 적고 약한 남자는 안돼!!
미군들과 상대해서 색스에는 센편
길옥윤의 적은것으론 택도없었지
그래서
사랑했기에 해여진다고 했던것
너무큰 여자는 절대 결혼상대가 못되!!!
길옥윤이 1980년대 초반 mbc라디오 드라마 < 고백>에서 말한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드라마 은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인생 뒷이야기를 본인이 고백하는 형식의 드라마인데 당사자 역할의 대역성우가 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의 고백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그때부터 제대로 작품활동을 못하고 침체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티킴은 항상 뭔가 할말이 있는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패티킴은 길옥윤에게 미국에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미국을 가라는 겁니다 자꾸 재촉을 해서 길옥윤은 영문도 모른채 도미 길에 올랐는데 결국 그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지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패티킴은 외국인 사업가와 재혼하고 길옥윤은 할일없이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일본에서 밤무대 악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에 걸려서 회복불능의 몸이 되어 1989년 늦가을에 비행기값이 없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입국합니다 돈이 없어 당시 부산시장(관선)의 도움으로 부산시민의 노래 3곡을 지어주는 댓가로 부산시립병원(현 부산의료원)에 무료입원을 하게 되는데 당시만해도 국가예산이 지금보다 빈약해서 시 도립병원은 떠돌이 행려병자들의 무료치료소 수준밖에 안됐습니다 하여간 그런 곳에 한1년 정도 있다가 길옥윤은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길옥윤은 드라마에서 고백하기를 패티킴은 다른것은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냉정했다고 하며 출연료를 한푼도 깍아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옥윤은 돈에 대해서는 전혀 집착하지 않았고 노래와 술과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그런것을 너무나 혐오하는 패티킴과는 처음부터 좀 맞지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당시 유명한 말 생각나네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그게 그뜻이었나? 일설에는 권력자와의 루머 였다던데... 다 지난 이야기... 부질없는이야기...ㅎ ㅎ
@@jaseooh7551 그 얘기의 시초는 1960년대 최무룡 김지미 커플이 원조였지요 이분들은 워낙 유명한 분들이라 기자들 요청으로 이혼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런말을 했지요 기자들에게 일문일답 하면서 이혼이유를 그렇게 둘러대고 헤어졌습니다
풋~
뭐냐?
패튀김 ㅋㅋㅋㅋ
갠적으로 목소리가 탁성이어서 별ㄹ 루
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