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5세기에 세계 3대 무덤(진시황릉,피라미드)으로 불리우는 인덕천황릉을 만들었구요. 한국의 최대 무덤인 황남대총은 인덕천황릉에 상대도 안되네요. 인덕천황릉에서는 무기,갑옷,철덩어리,몽기구,화살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에 비해 가야 무덤은 ㅋㅋㅋ 어휴, 과연 누가 국력이 쎗을까요?
내선일체.. 정말 무식한 소리합니다! 분명히 인덕천황의 무덤이 야마또지방에서 출현..아주 크다! 그런데 그 인덕의 아버지(?)오진천황 의 계보를 잘보라! 오진의 어머니가 그유명한 진공황후다.. 이름이 오끼나가다라히메! 한문은 "다라가야의 다라다.. 히메는 공주라는 일어. 즉, 다라가야의 공주라는 뜻이다.. 뭐... 이미 일본사학자들사이에서 이미 잘알려진 사실이다만... 단지 발표만 안할뿐이다... 무덤이 크고작고를 떠나서 어디서 왔는가 근본을 보라.. 일본서기에는 가야땅에서 야마또조정에 신라와의 대전쟁을 알리고 원군파병을 요청하는 글이 수도없이나온다... ㅈ,ㄱ 가야가 원 야마또조정의 조상이다...
파형동기가 나왔으니까 가야와 야마또조정간 누가 더 높은가 아시겠죠라고 물엇소이까? 누가 더 높고 더 낮고를 따지기전에 그 야마또조정이 도데체 어디서 나왔는가를 따져야 할것아닌가? 그 야마또조정을 창조한 진공이라는 기집의 이름이 "多羅姫”다라히메... 그중 다라는 "다라가야"의 이름이다! 그 귀하가 높다고하는 야마또조정은 어디서 나왔어? 병신이다!귀하!
임나일본부설로 인해 가야가 뭐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한것이죠. 지금은 가야와 왜가 교류했다라는 고대의 한일관계 증거라는 거가 맞다라고 해서 가야가 어케 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죠. 아무튼 임나일본부설은 효력이 거의 없는 설로 나온 것이 결론이고 일본학자들이 이거에 대해 반박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여기를 지배했다는 정당화는 버리지 못한 셈이죠.
삼국지위지왜인전(서기 3세기중옆의 쓰시마 규슈를 포함한 일본열도의 기록)에는 왜국에는 "말도 창도 칼도 무기도 없다" 그러나 "나무로만든 목궁"만있다 라고 돼어있다.... 그런데 3세기 중폄 반도에는 이미 철기문명시대로서 신라는 철기병이 지배하는 나라다! ..... 아프리카토인들이 철기병기갑부대를 다스렸ㅎ다고 생각하는가? ..... 가소롭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는 서기 2세기 3세기의 기록이다! 그 신라가 보낸인질은 사실은 지금의 일본이 아니라 반도남부에 있었던 (아마도 대도해지역) 엄연히 현한국인들의조상이다! 당시의 일본과는 상관이 전연없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신민이었음. 그런데 왜가 이를 빼앗았으므로 왜를 격퇴하는 것이 옳지. 그런데 고구려왕은 백제를 쳤는데. 실제로는, 고구려의 천하관에 따르면 백제>왜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임ㅇㅇ. 이 비는 호태왕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써둔 글이기 때문에. 치적을 과장하려면 따까리들을 쳤다는 것을 일일히 기록하겠냐, 대가리를 격파하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써두겠냐
만약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정벌했다고 치자. 그런데 바로 그 해, 즉 신묘년 영락6년에 고구려는 빡쳐서 남부로 내려가 백제를 정벌하였다. 따라서 만약 왜가 신묘년에 백제와 신라를 휘하에 두었다면 1년만에 지배권을 빼앗긴 것이 된다. 참고로 비문을 참고하면 이후 몇년 뒤 왜는 다시 한 번 왔다가 고구려에게 박살난다. 왜가 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면 굳이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는 것을 강조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다. 이는 한반도 남부를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아예 상충되는 이야기이므로 서로 모순이며, 거론할 가치조차 없음ㅇㅇ
@@김찬희-i5u 광개토비에 399년에 백제가 맹서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고 400년에 왜가 신라 수도를 박살내고 주둔해있어서 광개토가 구원하러왔다.... 서기 404년에 왜가 백제 패잔병을 길잡이로 삼아 고구려의 대방 땅(황해도)을 침공했다 .. 이런 내용들 있고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이 왜국에 왕자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고 분명 적혀있고. 그 인질을 받은 왜국 왕이 중국 송나라에 백제는 자기 쫄따구라는 편지를 몇차례나 보냈는데. 백제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 한번도 안함.
가야에서 이주한 도래인이 일본에서 가장 힘이 강한 시절이었는데, 일단 천손강림이라는 신화는 대부분 북방에서 내려온 지배층을 은유하는 표현이라는 점 그렇게 해석하시면 야요이인들이 한반도 남부 이주민으로 문명을 형성하고 고분 시대에도 도래인이 여전히 대거 이주하던 당대 일본에서 도래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도래인이든 토착민이든 스진 덴노의 정권이 가야 도래인과 토착민의 연합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 있으니 일본 한부분이 우리나라 역사 되겠네요?
풍후책사 일본의 천강신화에서도 왕권의 기원을 천상(天上)에서 찾고 있는데, 한국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가야의 수로신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늘로 대표되는 '천신족'은 실제로는 문화적으로 후진한 지역에 온 외부 세력으로 새로운 통치자이자 문화전파자로서 해석되므로, 일본에 선진 문물을 가져온 집단이 고대 한국에서 온 도래(渡來)집단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야요이 후손은 한국계 맞음 중국신화에서 천손신화 찾을수 없어요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국가는 백잔, 가라, 신라 이구요 그래서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잔,가라,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로 중국 일본 학자들은 결론 내렸어요. 비문을 보면 ( 왜의 배후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라고 정확히 기록되어있네요 ^^ 고구려의 속국이였던 세개의 나라를 일본이 빼앗아가니깐 다시 고구려가 찾는다는 내용이 비문의 핵심이네요.
고령에서 시작한 대가야가 세력확장해서 순천까지 갈수도 있지 않나? 찾아보니 대가야가 남서쪽으로는 순천,여수뿐만 아니라 고흥반도까지 지배했었네요. 동쪽으론 고령,의령까지.. 북으로는 전북 무주 근처까지 갔네요. 사람들이 생각이 왜 이리 모자라노? 니들 그래가아 우예 공뭔시험 합격할라카노?
@@卞默然 민중사학이 다수인건 잘 모릅니다 그러나 국가에 소속된 역사 기관들을 점령을 했다는 게 문제 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46억원을 지원받아 한반도와 만주의 역사지도를 독도를 속 빼버리고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만든 만리장성이 한반도 평양까지 왔었다고 하면서 만든 지도를 수정 같은 것도 안하고 그대로 가저와서 지들이 연구를 통해 만든 거라고 했습니다 ,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최고 권위자가 김현구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쓴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란 책에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는 의견의 올려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님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비판을 해 법정에 회부된 적이 있습니다. 학자적인 의견이 법정에 회부된 것도 참 황당한데,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비판한것에 대해 왜 일본 사람도 아닌 한국사람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건지 그것도 웃기고. 김현구교수는 자신의 저서에 임나는 가야다. 가야는 백제가 지배했다. 나는 일본이 임나를 지배했다는 말을 한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이 백제를 지배했다. 임나일본부는 거짓이다. 란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결국에는 일본이 임나를 지배했다는 말을 돌려 한 말인데. 거기에 대해 비판했다고 고소를 하다니요. 한국사학계에서 권위자가 될려면 일본을 옹호하면 됩니다.
그리고 일본은 3세기에 중앙정권이 세워졌어요.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있는 마시무쿠 유적을 보시면 알수있어요.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하시하카 전방후원분이 있어요. 이곳에는 3세기 전반 최대 규모의 고상식 건물, 폭 5미터의 대운하, 간토와 규슈에서 만들어진 토기 , 전방후원분들. 주구, 토기가 등장해요. 규슈는 오사카 기나이 따르는 2인자에요. 일본 최초의 중앙정권이 오사카 기나이에 있었어요. 3세기에 들어서 일본의 물류가 전부 마시무쿠 유적으로 향해요. 이미 오사카 기나이에 중앙정권이 세워지고 규슈는 2인자 정권이 있었어요
삼국사기는 12세기에 쓰인거고 일본서기는 7~8세기이고 일본서기는 이미 있던 역사서들을 묶은것일뿐더러, 삼국사기는 폭우 가뭄 지진 따위 얘기들과 중국기록들 베낀게 무려 70%나 차지하는데 일본서기는 삼국 관련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왕인 아직기 칠지도 얘기도 일본서기에 나오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엔 전혀 안나온다. 근데 무슨 일본서기가 신화냐 ㅡ.ㅡ
잘들엇어요
임라는 큐슈에 이습니다
자세히 알아보세요
한반도에는 임라는 없습니다
당시 근초고왕의 백제 국력은 왜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한국학자의 해석이 정설입니다.
일본은 5세기에 세계 3대 무덤(진시황릉,피라미드)으로 불리우는 인덕천황릉을 만들었구요.
한국의 최대 무덤인 황남대총은 인덕천황릉에 상대도 안되네요.
인덕천황릉에서는 무기,갑옷,철덩어리,몽기구,화살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에 비해 가야 무덤은 ㅋㅋㅋ 어휴, 과연 누가 국력이 쎗을까요?
내선일체..
정말 무식한 소리합니다!
분명히 인덕천황의 무덤이 야마또지방에서 출현..아주 크다!
그런데 그 인덕의 아버지(?)오진천황 의 계보를 잘보라!
오진의 어머니가 그유명한 진공황후다.. 이름이 오끼나가다라히메!
한문은 "다라가야의 다라다.. 히메는 공주라는 일어.
즉, 다라가야의 공주라는 뜻이다..
뭐... 이미 일본사학자들사이에서 이미 잘알려진 사실이다만...
단지 발표만 안할뿐이다...
무덤이 크고작고를 떠나서 어디서 왔는가 근본을 보라..
일본서기에는 가야땅에서 야마또조정에 신라와의 대전쟁을 알리고 원군파병을 요청하는 글이 수도없이나온다...
ㅈ,ㄱ 가야가 원 야마또조정의 조상이다...
+karasade wal 가야의 수장급 무덤인 김해대성동고분 88호에서 일본천황의 위신재인 파형동기가 나왔어요.
이 파형동기는 천황을 따르는 무사들이나 귀족에게 주는것인데요. 암행어사의 마패 같은것이죠.가야왕은 방패에 이 파
형동기를 달고 싸웠어요. 일본천황을 따른다는 표식인거죠.
가야와 일본중에 누가 위인줄 아시겠죠?
파형동기가 나왔으니까 가야와 야마또조정간 누가 더 높은가 아시겠죠라고 물엇소이까?
누가 더 높고 더 낮고를 따지기전에 그 야마또조정이 도데체 어디서 나왔는가를 따져야 할것아닌가?
그 야마또조정을 창조한 진공이라는 기집의 이름이 "多羅姫”다라히메...
그중 다라는 "다라가야"의 이름이다!
그 귀하가 높다고하는 야마또조정은 어디서 나왔어?
병신이다!귀하!
내선일체 네 백제인들이 만들었네요 당시 왜는 백제의 속국이며 백제인들은 기술인들이 상당하며 근초고왕부터 유역이 뛰어났고 인도도 가서 무역을 햤다하니
임나가라는 대마도고요 임나는 큐슈로 보아야 합니다 ^^ 대마도는 무역으로 부강했다고 들었습니다
임나일본부설로 인해 가야가 뭐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한것이죠. 지금은 가야와 왜가 교류했다라는 고대의 한일관계 증거라는 거가 맞다라고 해서 가야가 어케 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죠. 아무튼 임나일본부설은 효력이 거의 없는 설로 나온 것이 결론이고 일본학자들이 이거에 대해 반박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여기를 지배했다는 정당화는 버리지 못한 셈이죠.
ji hong jeong 님이랑 TheNeo1219님은 댓글 설명을 잘 해주시네요~
내선일체님은 한나님 영상을 안보시고 말씀하시는 건가..;; 아니면 일본에서 주장하는 일본역사를 바탕으로 말씀하시는 건가요..?
삼국지위지왜인전(서기 3세기중옆의 쓰시마 규슈를 포함한 일본열도의 기록)에는 왜국에는 "말도 창도 칼도 무기도 없다" 그러나 "나무로만든 목궁"만있다 라고 돼어있다.... 그런데 3세기 중폄 반도에는 이미 철기문명시대로서 신라는 철기병이 지배하는 나라다! ..... 아프리카토인들이 철기병기갑부대를 다스렸ㅎ다고 생각하는가? ..... 가소롭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는 서기 2세기 3세기의 기록이다! 그 신라가 보낸인질은 사실은 지금의 일본이 아니라 반도남부에 있었던
(아마도 대도해지역) 엄연히 현한국인들의조상이다!
당시의 일본과는 상관이 전연없다!
양직공도에 나온 신라는 글이 없어서 나무에 새겨서 사용한다네요.
백제는 오랑캐 마한에 속한 나라라고 적혀있구요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마한은 성을 건설하는 방법을
몰라서 흩어져 산다네요. 어떻게 된거죠?
내선일체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았는데 그 기록을 못 봤는데요? (제가 잘못 본거임?)
"백잔 가라는 본래 고구려의 속민인데 신묘년 이후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 가라 신라를 격파해 신민으로 삼았다. (이에 분노한 태왕이 삼한을 해방시키러 남침하여) 396 병신년에 백잔국을 격파 ......."
백제와 신라는 본래 속국이었으므로 조공을 바쳤는데, '이에 왜가 신묘년에 □백제□□신라, 신민으로 삼았다. 이에 영락6년 왕이 직접 군졸을 이끌고 백제군을 파하였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신민이었음. 그런데 왜가 이를 빼앗았으므로 왜를 격퇴하는 것이 옳지. 그런데 고구려왕은 백제를 쳤는데. 실제로는, 고구려의 천하관에 따르면 백제>왜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임ㅇㅇ. 이 비는 호태왕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써둔 글이기 때문에. 치적을 과장하려면 따까리들을 쳤다는 것을 일일히 기록하겠냐, 대가리를 격파하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써두겠냐
만약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정벌했다고 치자. 그런데 바로 그 해, 즉 신묘년 영락6년에 고구려는 빡쳐서 남부로 내려가 백제를 정벌하였다. 따라서 만약 왜가 신묘년에 백제와 신라를 휘하에 두었다면 1년만에 지배권을 빼앗긴 것이 된다. 참고로 비문을 참고하면 이후 몇년 뒤 왜는 다시 한 번 왔다가 고구려에게 박살난다. 왜가 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면 굳이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는 것을 강조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다. 이는 한반도 남부를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아예 상충되는 이야기이므로 서로 모순이며, 거론할 가치조차 없음ㅇㅇ
@@김찬희-i5u 도대체 비석 어디에 고구려가 왜를 백제보다 하급으로 취급했다는 내용이 있음? ㅡ.ㅡ
@@김찬희-i5u 광개토비에 399년에 백제가 맹서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고 400년에 왜가 신라 수도를 박살내고 주둔해있어서 광개토가 구원하러왔다.... 서기 404년에 왜가 백제 패잔병을 길잡이로 삼아 고구려의 대방 땅(황해도)을 침공했다 .. 이런 내용들 있고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이 왜국에 왕자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고 분명 적혀있고. 그 인질을 받은 왜국 왕이 중국 송나라에 백제는 자기 쫄따구라는 편지를 몇차례나 보냈는데. 백제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 한번도 안함.
임나설은 학문적으로 논파됐습니다. 당시 백제 등의 국력이 왜보다 월등히 강했습니다. 일본학계에서도 극소수 학자가 임나라는 왜인 전용 행정기구(외교관서) 정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정도입니다.
@Kaku Souichi 중국정사에 그런게 나온다고요?
@Kaku Souichi 근데 일본, 중국은 왜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한거죠? 말만들으면 맞는거같은데..
@Kaku Souichi 그리고 백제가 일본 따까리인데 백제가 일본보다 관작이 더높은것좀 설명좀
개소리 전세계에서 인정하는 학설을 한국만 부정함
가야(가라) 신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어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일본도 자기가 주어로 바꾸 는거죠.
신공은 가공 인물 이다라구요.
저도 역사를 주제로 하는 크리레이터 꿈꾸는
사람 입니다. 준비하고 여러가지 많네요.
많이 보고 배우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길게 볼 필요없고 이것만 보세요
백제가 동으로 하여 신라를 쳐 정벌함으로써 속국을 만들어 6년 후 광개토가 백잔을 공격하였다로 해석 됩니다
임나일본부설이 맞아도 결국 나중엔 신라가 삼국통일하고 고려 조선 전기까지 왜는 씨가 마름
김해 대성동에 야마토 천황의 파형동기 방패와 통형동기 창이 출토되었고 , 전라도에서 야마토 호족왕릉 전방후원분들이 출토되고 야마토 하니와 토기들도 출토되고 전라도 경상도에 야마토군 투구 갑주들이 우르르 출토되는데 무슨 안나와.
가야에서 이주한 도래인이 일본에서 가장 힘이 강한 시절이었는데, 일단 천손강림이라는 신화는 대부분 북방에서 내려온 지배층을 은유하는 표현이라는 점 그렇게 해석하시면 야요이인들이 한반도 남부 이주민으로 문명을 형성하고 고분 시대에도 도래인이 여전히 대거 이주하던 당대 일본에서 도래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도래인이든 토착민이든 스진 덴노의 정권이 가야 도래인과 토착민의 연합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 있으니 일본 한부분이 우리나라 역사 되겠네요?
Taeho Kwon 야요이는 한반도에서 온게 아니라 중국 오나라에서 왔다는게 하플로그룹 연구로 드러났다합니다. 그리고 중국 기록에도 왜인들은 진시황 시절 오나라를 떠난 농민들이라 나옴
Taeho Kwon 그리고 고분 시절 도래인들은 야마토 연맹에 ‘귀부’ ‘귀화’한거지. 정복한게 아닙니다.
Taeho Kwon 야요이인들은 일부는 중국 일부는 한반도. 그중에서도 야마토,규슈계는 한국 고조선이나 진국에서 왔다 보입니다.
풍후책사 일본의 천강신화에서도 왕권의 기원을 천상(天上)에서 찾고 있는데, 한국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가야의 수로신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늘로 대표되는 '천신족'은 실제로는 문화적으로 후진한 지역에 온 외부 세력으로 새로운 통치자이자 문화전파자로서 해석되므로, 일본에 선진 문물을 가져온 집단이 고대 한국에서 온 도래(渡來)집단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야요이 후손은 한국계 맞음 중국신화에서 천손신화 찾을수 없어요
당시 일본의 국력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문장의 일부입니다.
1.일본학자들의 해석: 而倭以辛卯年, 來度海, 破百殘 □□新羅 以爲臣民
2.한국학자들의 해석: 而倭以辛卯年來, 度海破, 百殘 □□新羅 以爲臣民
이같이 구두점 두개의 위치가 다를 뿐이지만 번역문의 내용상 주어가 바뀌어버립니다.
1.일본학자들의 해석: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과 신라를 쳐부숴 신민으로 삼았다.
2.한국학자들의 해석: 왜가 신묘년에 침입해왔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가서 쳐부쉈다. 백잔이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국가는 백잔, 가라, 신라 이구요
그래서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잔,가라,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로 중국 일본 학자들은 결론 내렸어요.
비문을 보면 ( 왜의 배후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라고 정확히 기록되어있네요 ^^
고구려의 속국이였던 세개의 나라를 일본이 빼앗아가니깐 다시 고구려가 찾는다는 내용이 비문의 핵심이네요.
거짓말장이가짜일인내선일체..
그 비문에대하여는 확살한 설이없다..
일본서기에서조차 그런 내용이 없는 걸어쩌냐?
있으면 소개하여보시라...
꿈의직장 공무원 한국사를 가르치다니..^^^^^^
대가야가 순천이냐? 고령합천이지 ㅉㅉ
대가야 순천 듣고 바로 껐다...
고령에서 시작한 대가야가 세력확장해서 순천까지 갈수도 있지 않나?
찾아보니 대가야가 남서쪽으로는 순천,여수뿐만 아니라 고흥반도까지 지배했었네요.
동쪽으론 고령,의령까지.. 북으로는 전북 무주 근처까지 갔네요.
사람들이 생각이 왜 이리 모자라노?
니들 그래가아 우예 공뭔시험 합격할라카노?
거긴 백제가 아니라 마한이고.
한국역사멍청했어요
일본계속쳐들어가서 조선그냣
먹고당하고 살죠
발견된 유물 많아요. 전방후원분,파형동기, 일본군 갑옷 넘쳐나는데.... 하니와 토기도 나오는데 ㅎㅎ
교류가 많았으니 당연히 유물도 나온거지 그게 임나일본부 설의 증거는 아니잖아 바보야
+karasade wal 사료 출처좀 알려주세요. 어디서 가지고 오셨죠?
macriari greed 수서왜국전 隋書倭国伝
백제가 신라와의 전쟁에 패하자 일본으로 피신해 나라를 세웠고 다시 치려고 온 그게 백제군이라니까~
고구려가 도와줄려고 남쪽가서 일본놈들 혼내줬죠 ㅋㅋ
이거 보면 시험 떨어지지 않을까...
그럴 듯.. 공부는 안하고 샘 얼굴만 쳐다볼 테니..ㅋㅋ
떨어지겠죠 지금 역사 교과서는 주류 역사학계를 장학한 친일 강단사학과 동북아역사재단이 역사 왜곡을 통해 만든 역사로 서술되어 있을 테니까요
@@배명순-j9d 근데..잘못된 사실이죠.
사실 우리 역사학계의 다수는 이른바 민중사학이 다수예요.
@@卞默然 민중사학이 다수인건 잘 모릅니다
그러나 국가에 소속된 역사 기관들을 점령을 했다는 게 문제 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46억원을 지원받아 한반도와 만주의 역사지도를 독도를 속 빼버리고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만든 만리장성이 한반도 평양까지 왔었다고 하면서 만든 지도를 수정 같은 것도 안하고 그대로 가저와서 지들이 연구를 통해 만든 거라고 했습니다 ,
일본서기에 일본이라는건 야마토라고 훈독으로 읽으라고 표기되어있는데 뭔 문제야
후한 광무제 때(57년)로, 지금의 규슈 북부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노쿠니(奴國)의 왕이 후한에 조공하여 "漢委奴國王(한위노국왕)이라는 칭호와 금인을 하사 받고 나서이다. 이때
왜국 쓰기 시작하것임
일본ㅉㅉ 우기는거 개잘하네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최고 권위자가 김현구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쓴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란 책에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는 의견의 올려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님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비판을 해 법정에 회부된 적이 있습니다. 학자적인 의견이 법정에 회부된 것도 참 황당한데,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비판한것에 대해 왜 일본 사람도 아닌 한국사람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건지 그것도 웃기고.
김현구교수는 자신의 저서에 임나는 가야다. 가야는 백제가 지배했다. 나는 일본이 임나를 지배했다는 말을 한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이 백제를 지배했다. 임나일본부는 거짓이다. 란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결국에는 일본이 임나를 지배했다는 말을 돌려 한 말인데. 거기에 대해 비판했다고 고소를 하다니요.
한국사학계에서 권위자가 될려면 일본을 옹호하면 됩니다.
그리고 일본은 3세기에 중앙정권이 세워졌어요.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있는 마시무쿠 유적을 보시면 알수있어요.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하시하카 전방후원분이 있어요. 이곳에는 3세기 전반 최대 규모의 고상식 건물, 폭 5미터의 대운하,
간토와 규슈에서 만들어진 토기 , 전방후원분들. 주구, 토기가 등장해요. 규슈는 오사카 기나이 따르는 2인자에요.
일본 최초의 중앙정권이 오사카 기나이에 있었어요. 3세기에 들어서 일본의 물류가 전부 마시무쿠 유적으로 향해요.
이미 오사카 기나이에 중앙정권이 세워지고 규슈는 2인자 정권이 있었어요
중앙정권이 문제가 아니라 왜가 백제를 지배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거짓말하면 곤란합니다요..
삼국지위지동이전에 (서기 3세기의 왜열도에간 기록) 는 "왜에는 칼도 말도 창도 무기도없다. 단지 목궁 목화살만 있다"라고 되어잇다... 3세기에 무슨 중앙정권? 없었다!
+karasade wal 누가 거짓말을 했다는거에요. 삼국사기에도 3세기부터 왜왕이 화친을 걸어오는데요.
그리고 이미 야마타이국이 주변 씨족들을 통일해서 중앙정권을 만들어요.
야마타이국 여왕 이름은 히미코구요.
내선일체 돌대가리내선일체...
그 3세기왜가 왜열도냐? 어디 왜열도라고되잇던? 야마다이는 돌대가리도 알다싶이 아프맄토인국ㄱ다.무슨 중앙정권?
중앙정권이 있으니까 3세기부터 왜왕이 화친 걸어오고
석우로 장군이 왜왕 욕했다고 화형시키죠.
마시무쿠 유적지의 하시하카 고분은 왜 있겠습니까
중국사료에도 히미코 여왕 무덤이라고 나오는구만
그게 중앙정권이죠
삼국사기는 12세기에 쓰인거고 일본서기는 7~8세기이고 일본서기는 이미 있던 역사서들을 묶은것일뿐더러, 삼국사기는 폭우 가뭄 지진 따위 얘기들과 중국기록들 베낀게 무려 70%나 차지하는데 일본서기는 삼국 관련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왕인 아직기 칠지도 얘기도 일본서기에 나오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엔 전혀 안나온다. 근데 무슨 일본서기가 신화냐 ㅡ.ㅡ
쩌바리 니들 나라에서 발견된 신황기나 찾아서 정독해라...백제가 섬에 가서 천황이 되어 니들 원생이 조상들 교육시키고 부려먹었다 이렇게 나온단다.
7~8세기 지나가는 개소리 임진왜란때 글도 몰라 땡중에 의존했던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