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현-u2e 그들만의 특유의 꽉막힌 스타일이 하도 답답하셔서 그런지 웬만하면 정계에 얼씬 못 하게하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이 역시 승자 수양의 입장으로부터 일부러 본인을 따르지 않았던 사육신을 디스하기 위한 사료의 연출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서도)
@@표펙크쿻-o6q 세종이 진짜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네요. 다만, 제가 알기로(배상열 작가님 책에서 읽음)세조실록이 워낙 조작이 심해서(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더군요. 명나라 황도에 갔더니 코끼리가 수양대군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는 식이랍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다른 실록은 다 믿어도 세조실록은 못 믿을 정도라니 조작일 가능성도 배제는 못하겠네요. 역사에 대해 차근차근 탐구하면서 결론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이라트의 2만은 순수 기병 2만이고, 사냥으로 단련된 정예병이였습니다. 게다가 보급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 병력 만입니다. 게다가 1명의 기병은 그당시 탱크의 역할을 하던 군인이였기 때문에 지금으로 따지면 4~5개 최정예 기갑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의 경우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보병 위주였으며, 보병으로 저정도 군사력을 뽑아내려면 최소 8~10만 정예병이 필요합니다. 거기다가 생업=군사훈련이라 따로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유목민족과 달리 정주민족은 저 8~10만 정예병을 키우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예산을 꼴아박아야 합니다. 게다가 보병들은 보급수요도 많아서 최소 저 병력의 2배에 달하는 비전투인원이 필요합니다. 조선 국력으로 저정도 병력을 어찌저찌 짜냈다고 쳐봅시다. 조선은 오이라트와 달리 북벌을 위해 거쳐야 하는 자연장벽이 많습니다. 일단 요하를 넘어야 하고요, 요하를 넘으면 수십키로에 달하는 요택이라는 뻘밭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걸 통과하고 수백키로를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전병력을 모아서 명을 치면 그 해안지대는 왜구에게 탈탈 털릴텐데 이건 누가 지키나요? 해안이 털리는건 단순히 백성 고통 차원이 아니라 수운으로 운송되던 조세 시스템이 마비되는거라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자금조달, 식량보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소리입니다. 그냥 초원 달리면 바로 만리장성이 있고, 북방에 딱히 적이 없어 전병력을 집중할 수 있는 오이라트와 조건이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조선의 최선은 오이라트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명나라에게 먼저 굽히는 사대를 하고, 명에게 동아시아 no.2자리를 받아서 주변 이민족을 통제하는 것이 최선이였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명에게서 얻은 명분을 바탕으로 여진족을 상대로 임진왜란 전까지 수시로 예방전쟁을 하면서 북방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황제국만 쓸 수 있는 조/종 칭호를 내부에서 몰래 써왔고, 명은 이를 어느정도 눈치챘음에도 눈감아줬습니다. 만약 요동을 우리가 먹은 상태였다면 굳이 조선이 명에게 굽힐 필요는 없었겠지만, 요동이 우리에게 없는 이상 조선이 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혼자서 1인 5역을 맏아서 말씀을 하시온데 .. 어쩜 그렇게 구구절절 여러사람의 목소리도 연기 하시는지 ..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항상 응원 합니다.
Ai래요
왕진 같은 위대한 인물이 앞으로 주우욱 중국에서 태어나길 바랍니다.
조고를 보고 배웠나 보네요. 왕진이 대단한 넘이네...
출세를 위하여 자신의 거시기를 자르다니 참으로 대단한 넘일세.
하필 세종 말년에 이런 일이 터졌으니...;; 세종대왕은 말년에도 일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군여;;
👍👍
11:27 황제가 다시 황제가 되는 역사는 처음 듣네여 ㅋㅋㅋㅋ
저 시대에 스스로 거세라...나름 대단하다 ㄷㄷ
와.....출세를 위해 자기 거시기까지 자르다니.....저런 독한 놈은 벌써 그 싹을 알아보고 잘랐어야 하는데....ㅉㅉㅉㅉ.
관중이 환공한테 역아를 가리켜 자기 어린자식을 요리해 바치는 ㅁ*놈 따위가 어케 충신은 커녕 사람일 수 있겠냐고 따졌는데 딱 그꼴
역시 화근은 남기면 안됨☠️☠️☠️
중국역사에서
나라가 망할때 역적으로 욕을 처하다보면 항상 환관이더라..
주원장 말을 좀 듣지 ,, 한심한것들..
주원장의 넷째아들 주체가 환관의 도움으로 황제에 올라서
@@ii-xk2qe 영락제
정통제의 어진을 보면 호동이형이 생각납니다
웬 토목의 변인가 했더니 세조 스토리와 이어지는구려 경의 알차고 세심한 구성에 두 구슬을 탁 치게 되는구려
아쉽
1:02
4:29
환관의 가스라이팅 ㄹㅇ ㅋㅋ
홍콩 양우생 작가가 집필했고 고려원에서 번역출판된 '명황성'이 토목보의 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전장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무능한 아군 지휘관이다.
나(지나가는 역사덕후): 13:19 동의는 합니다만 왜 동복형제와 조카를 죽이셨나요?
세조:......
나(지나가는 역사덕후):당신 할아버지 이신 태종 대왕은 자기 이복 동생은 죽이셨지만 동복형제들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의 자식 또한 살리셨습니다 대왕께선 그러셨는지요?
세조:.....
나:님 후손중에 연산군도 자기 이복동생은 죽이지 않으셨어요
세조:그만해!!!
나:광해군은 자기 이복동생(영창대군)은 죽였어도 새엄마는 죽이지 않으셨는데 대왕께선 죽이셨죠?
세조:그...그만....
세종,문종:그럴줄 알았다...
세조:아바마마...형님....
세종,문종:가까이 오지마 난 너 용서 못해
세조:.....
역사의 사이다 .
@@타키수녀님허허허..... 그래서 태종이 성군? 세조가 성군?
@@yushin1994 태종이 성군이죠 세조는 조선의 전성기를 끝장낸 암군입니다.
잘볼께요 명나라가 계속 존재했다고 하면 현재 먹는 중화요리가 청요리가 아니라 명요리가 되었겠네요
저때 오이라트군이 만리장성을 넘어 남쪽까지 진군했다면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사대주의에서 깨어났을텐데 참으로 아쉽네요… ㅜㅜ ㅠㅜ 😢😢
임진왜란이 더 질질끌엇을거고 청나라가 더 빨리전성기왓겟지요.
과연 그럴까? 당시 시대가 중세시대고 못 믿겠지만 조선 정도면 저때 상타치 국가이면서도 태종 집권기라 군사도 막강했음
ㅜ현실은 게임이 아니에요.. 역사를 현대기준으로 보는 무지함이나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하는것만 안해도 이런 댓글은 좀..
명청 교체기때 어디 사대주의자들이 청나라 지지했었나요?
다꺼져가는 명나라 빨다가 삼전도에서 청태종한데 아홉번 조아렸죠?
저당시 명나라가 오이라트한데 발리면서 다시 몽골이 중원을 장악했어도 성리학자들은 명나라 빨았을거고, 그러다가 인조가 아닌 문종이 삼전도에서 골아박고는 종기터져 돌아가시겠죠,,
에센 타이시가 티무르같이 능력있는건 아닌가봄
윤루카스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면 생기는일
8:40 저때 정통제가 궁형을 받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ㅋㅋㅋ황제 두번 ㅈㄴ웃기네
인조 이야기를 듣는 듯 착각이 들 정도..
왕진 ㄹㅇ 호남상이네
명나라(1368~1644)는 아주 막장이네 막장 왕조야 ㅋㅋㅋ
고려를 무너트리고, 명나라 사대주의로~~~시작한 조선~~~연호도 못 쓰고, 명나라 시다바리 ~~~ㅎ~~아버지의 나라 명나라~~ㅋㅋㅋㅋㅋ 고려때까지 쭉 사용한 연호~~~ㅎ~~
조선 이전의 고려는 공민왕때까지 약 100년을 몽골족의 사위 국가였는데? 그나마 조선은 왕이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차지했지 고려는 왕도 몽골족에서 뽑아줬는데? 심지어 고려왕이 몽골족의 나라에가서 살면서 고려를 통치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통치한건데?
주원장은 외모가 턱주가리네
주원장이 외모 컴플렉스가 있었서 자신을 저격한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뱉은 사람들 싹다 유배보내거나 죽여버렸죠
@@유유-e3g 그렇지만 주원장의 관상은 대단히 좋았다고 합니다^^
@@niro8002 실제로 주원장은 못 생겼다는 게 정설입니다. (공신들이나 정적에게는) 잔인하기도 했고요. 단,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은 뛰어났고, 백성들에게는 아주 잘 했지요.
몽골은 정통제를 사로잡아
기세를 올릴대로 올려
더 나아가 원나라의 부흥까지 실현시킬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지? ㄷㄷ
거기다 세종이 뒷날 본인의 손주를 위해 충절과 역사의 한축이 된 사육신을 극혐하던 사실이 있었다던데 ㄷㄷ
국가는 영토 군사력과 함께 행정력이 필요한데 칭기즈칸 쿠빌라이칸같은 사람이 몽골에는 없었죠
세종이 사육신을 극혐했다는 사료가 있어요?
@@안강현-u2e 그들만의 특유의 꽉막힌 스타일이 하도 답답하셔서 그런지
웬만하면 정계에 얼씬 못 하게하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이 역시 승자 수양의 입장으로부터
일부러 본인을 따르지 않았던 사육신을 디스하기 위한 사료의 연출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서도)
@@표펙크쿻-o6q 세종이 진짜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네요. 다만, 제가 알기로(배상열 작가님 책에서 읽음)세조실록이 워낙 조작이 심해서(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더군요. 명나라 황도에 갔더니 코끼리가 수양대군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는 식이랍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다른 실록은 다 믿어도 세조실록은 못 믿을 정도라니 조작일 가능성도 배제는 못하겠네요. 역사에 대해 차근차근 탐구하면서 결론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나오는 몽골 칸 에센타이시는 칭기즈칸 후손(황금씨족) 이 아니어서 무리하게 권력 잡다가 암살당함
오이라트가 2만으로 저렇게 명을 유린했는데...조선은...한번이라도 을러볼생각은 안하고...그저 꼬붕마냥...ㅠㅠ
왜냐면 회군해서 정변일으킨 이유가 대국소국타령이고 백성들 신료들이 납득할 수 있을 대의명분이 약하니 큰 나라한테 응딩이 비빈거임 ㅋ
오이라트의 2만은 순수 기병 2만이고, 사냥으로 단련된 정예병이였습니다. 게다가 보급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 병력 만입니다. 게다가 1명의 기병은 그당시 탱크의 역할을 하던 군인이였기 때문에 지금으로 따지면 4~5개 최정예 기갑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의 경우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보병 위주였으며, 보병으로 저정도 군사력을 뽑아내려면 최소 8~10만 정예병이 필요합니다.
거기다가 생업=군사훈련이라 따로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유목민족과 달리 정주민족은 저 8~10만 정예병을 키우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예산을 꼴아박아야 합니다. 게다가 보병들은 보급수요도 많아서 최소 저 병력의 2배에 달하는 비전투인원이 필요합니다.
조선 국력으로 저정도 병력을 어찌저찌 짜냈다고 쳐봅시다. 조선은 오이라트와 달리 북벌을 위해 거쳐야 하는 자연장벽이 많습니다. 일단 요하를 넘어야 하고요, 요하를 넘으면 수십키로에 달하는 요택이라는 뻘밭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걸 통과하고 수백키로를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전병력을 모아서 명을 치면 그 해안지대는 왜구에게 탈탈 털릴텐데 이건 누가 지키나요? 해안이 털리는건 단순히 백성 고통 차원이 아니라 수운으로 운송되던 조세 시스템이 마비되는거라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자금조달, 식량보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소리입니다. 그냥 초원 달리면 바로 만리장성이 있고, 북방에 딱히 적이 없어 전병력을 집중할 수 있는 오이라트와 조건이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조선의 최선은 오이라트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명나라에게 먼저 굽히는 사대를 하고, 명에게 동아시아 no.2자리를 받아서 주변 이민족을 통제하는 것이 최선이였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명에게서 얻은 명분을 바탕으로 여진족을 상대로 임진왜란 전까지 수시로 예방전쟁을 하면서 북방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황제국만 쓸 수 있는 조/종 칭호를 내부에서 몰래 써왔고, 명은 이를 어느정도 눈치챘음에도 눈감아줬습니다.
만약 요동을 우리가 먹은 상태였다면 굳이 조선이 명에게 굽힐 필요는 없었겠지만, 요동이 우리에게 없는 이상 조선이 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기마민족이랑 우리나라를 같게 볼 수가 있는지 게임처럼 숫자로 비교할게 아니에요.. 게임처럼 생각하는건 그만두는게 좋아요
나중에 현대사 들어가면 구독자를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겠군
용산 대통령실을 보는것같네요
역시 세조가 답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