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사단칠정론 쉽게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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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4 вер 2024

КОМЕНТАРІ • 5

  • @롸우혀왕성
    @롸우혀왕성 23 години тому +1

    영상 감사합니다

  • @성이름-c4e9x
    @성이름-c4e9x День тому +1

    노비 400명 가졌던걸 안 이후부턴 이황 저자식은 위선자로 알고있음

    • @동휘쌤의_클래스룸
      @동휘쌤의_클래스룸  22 години тому

      저도 이황이 노비를 약 400명 정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아래의 내용들도 고려해봐야 한다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 이황의 처가가 부유했고, 이황은 그 재산을 잘 관리하여 늘렸다.
      2. 토지 매입과 변상 과정에서 어떠한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다.
      3. 양반들의 평균 노비가 7~80명이었지만, 이황은 5배 정도의 규모로 실제로 많이 거느리긴 했다.
      4. 편법으로 평민들을 노비로 바꿔 들이는 양반들의 관행에 반대했다.(정당하게 노비를 들였다.)
      5. 방대한 토지를 관리하기 위해 노비를 사용했으며, 노비를 함부로 착취하지 않았다.
      * 출처: The Yangban’s Perception of the Ideal Economic Life During the Mid-Chosŏn Era - LEE Uk(2007)
      모든 부자가 악이 아니듯이, 노비를 많이 보유한 것이 곧 위선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노비는 노예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양반의 재산 취급을 받긴 했지만 나름의 사유재산과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긴 했습니다. 즉, 노비는 사람에 귀속된 노예보단 토지에 귀속된 유럽의 '농노'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물론 이황 본인도 엘리트 중심의 성리학 사상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순 없었을 것입니다.
      신분제 폐지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위로 인해 재산을 어렵지 않게 증식할 수 있었다는게 그 근거겠지요.
      그렇지만 사람과 시대를 엄밀하게 구분하여 현대적인 관점으로 파악하기보단, 다양한 시대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인물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댓글에 긴 글로 답장드려서 죄송합니다.
      이황의 사상에 감명받았던 사람으로서 나름의 항변(?)을 해보았습니다.
      혹여나 다른 생각을 가지신다면 그 생각도 충분히 존중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이름-c4e9x
      @성이름-c4e9x 21 годину тому +1

      @@동휘쌤의_클래스룸 1. 노비를 많이 보유한 것이 곧 위선자가 아니라고 생각에 반대합니다. 조선 노비제도는 면천이 불가능한 세습이기때문에 학습으로 도덕군자가 되어 귀한사람이 된다는 유학(儒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제도입니다. 유학을 정면으로 부정 하면서 존경받는것이 위선자가 아니라니요?
      2.농노든 노비든 노예든간에 본질은 '합법적 인신매매'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합법적으로 사고파는 야만적 제도라는 점에서 농노든 노비든 그걸 구별할 가치가 있습니까? 한 여성의 영혼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강간이든 강간치상이 본질이 다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말은 비컨데, 강간은 했지만 치상까지는 아니었으니 나름 피해자에게 인권을 보장해 줬으니 이해해줘야한다는겁니까?
      3. 이황이 생존하던 그 시대에 허균이 태어났습니다. 누구는 수백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위선을 떨때 같은 시대를 살던 누구는 명문가의 후예임에도 신분제 철폐를 위해 목숨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시대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꺼라고 함부로 매도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