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창설의 주역은 광복군? 일본군?(코리아세진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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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9 січ 2025

КОМЕНТАРІ •

  • @army-studio
    @army-studio  Рік тому +5

    초반 음성이 노이즈로 문제가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 @k-brick9996
    @k-brick9996 2 місяці тому +1

    우리 증조할아버진 하사관 출신. 징병됬다가 몇년 살아남이서, 광복때 일본군 하사였죠.
    함경도 출신 이어었어요, 한국전쟁당시 이북해서, 국군이셨고.
    솔직히 광복이후 일본 밑에서 일한사람 없으면, 나라가 안돌아가죠. 그나마 배우고, 실전한 사람들은 일본밑에서 일한사람들이 대부분이죠.

  • @세바도인
    @세바도인 Рік тому +5

    어느 정도 나이 먹은 사람이라면 아는 것들을 편향적으로 나열하면서 은근히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육사 출신 유투버.

  • @찐만용
    @찐만용 3 місяці тому

    오랫동안 세진님을 존경하고 육사 출신으로서 군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올곧은 발언을 기대하면서 응원하던 저로서는 국군의 뿌리가 일본군이라는 세진님의 의견에 바닥부터 기대감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충격적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헌법조항에 따르면 육군을 포함한 우리 국군과 육사를 포함한 군사 교육기관은 모두 임시정부의 국군 광복군을 뿌리로 삼아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은 출신들은 친일청산 하지못한 이승만 때문에 끼어든 파렴치한 매국노 집단일 뿐입니다
    뿌리라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뿌리라는 의미는 육체적 정신적을 모두 포함한 우리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추구해야 할 근본이 아닌가요?
    우리 국군이 지켜야 한 나라가 일본이란 말입니까?
    오랫동안 존경하고 기대했던 세진님의 말 속에서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표현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있어 충격적이고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하지만 세진님을 존경하고 진정성을 믿는 저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은 세진님의 활약에 기대 해 봅니다

  • @애국자후손
    @애국자후손 3 місяці тому +2

    육군사관학교의뿌리는 연무공원입니다, 깊이있는 공부를하십시요.

  • @아모르파티-o4x
    @아모르파티-o4x Рік тому +5

    당시 광복군은 전투를 전혀 치루지 않고 훈련만 하다 광복을 맞이하여 실전경험이 전혀 없는 군대였었고 조직도 지금 국군처럼 피라미드식 구조가 아닌 반은 병사들과 반은 장교들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구조였고 부대편제는 3개 지대로 나뉘고 화려했을지언정 인원은 500여 명 정도의 상징적인 군대였죠.

    • @아모르파티-o4x
      @아모르파티-o4x Рік тому +3

      당시 광복군은 병사들보다 장교의 수가 더 많았던듯합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군 중 조선 출신들이 광복군에 대량으로 입대를하죠. 한 예가 박정희 당시 만주군 중위도 해방 후 광복군에 입대를 합니다.

    • @유건희-d4q
      @유건희-d4q Рік тому

      500이 아니라 50입니다

    • @DS1UKL
      @DS1UKL Рік тому +1

      @@아모르파티-o4x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적사병 구분과 국내송환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 박정희 전대통령은 광복군 입대하지 않았습니다.

    • @DS1UKL
      @DS1UKL Рік тому

      김준엽 지사의 장정 - 나의 광복군 시절을 보면 진공대 꾸려 여의도 비행장으로 가기 전에 이범석 장군이었나...이제 막 학병 탈출해서 갓 훈련 나온 김준엽에게 소령이란 계급장 남발했음. 그 계급이 있는 의미는 휘하에 부하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을때 이야기인데, 이범석 장군이 있던 2지대만해도 대원수가 많아봐야 200명도 안되었고 국내진공반 1기 수료가 40명 정도 밖에 안됨. 이미 일본 항복 소식을 듣고 간거라 그때 계급을 부여한다해도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 @아모르파티-o4x
      @아모르파티-o4x Рік тому

      @@DS1UKL 저도 고등학교때 이책을 읽었었는데 당시 계급이 대위였을겁니다. 병사보다 장교들이, 많은 항아리형 구조의 군대.

  • @리루트-i6g
    @리루트-i6g Рік тому +1

    국군 창설의 뿌리는 다양하다는 결론이 군인들은 항상 가슴속 깊은곳에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희석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런 저항이 필요한 상황이 안되도록 하는게 저희 장교들의 의무겠죠. 하지만 역사는 언제든지 소용돌이 치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주변국들중 군사력이 우리보다 약한 나라는 없습니다. 적어도 육사생도들은 아무런 지원도 없고 영광도 없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강한 적 앞에서도 굴복하고 타협하기보다는 목숨을 바쳐 싸우는 정신을 먼저 배우고 내면화 해야 합니다. 이름도 남기지 못 6.25 전쟁의 무명 용사들 또한 그런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국군의 뿌리는 물론 다양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은 북한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일본이든 그 어떤 국가라도 우리를 침략하고 병합하려한다면 적어도 군인들은, 정말 적어도 육사출신 장교들은 비록 실패하고 목숨을 잃을지라도 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MyongO-i8e
    @MyongO-i8e 2 місяці тому

    저희아버지 1947년 결혼하실적에군인이셨는데. 그떼도 군인이셨다고. 사진있내요. 제5병참 재생창군단 창립기념 이라고 42분찍은사진.

  • @여박지혜-y8l
    @여박지혜-y8l 2 місяці тому

    펙트를 말하죠. 개승마니의 유일하게 잘한 발언 중 "독독는 대한민국 영토이고 국군의 뿌리는 임시정부정신을 이어받은 대한광복군입니다"라고 말한점. 그리고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 분명히 3.1운동과 임시정부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 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국군의 뿌리라 하는건 제헌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 봅니다!

  • @moonrezyser4469
    @moonrezyser4469 2 місяці тому

    국군의 뿌리 다는 이 거지 같은 책을 쓰면서 시간을 낭비 할 것이 아니라 장교출신이라면 이 책을 쓸 시간에 이건 대위처럼 우크라이나에 가서 직접 싸워야 되는 거 아니요
    그 실전을 바탕으로 책을 쓰면서 실전에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일본군들이 왜 무너졌는지
    일본군의 악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한국군의 병 패를 없애기 위해서 싸워야 하지 않겠오?

  • @bcy0436
    @bcy0436 Рік тому +1

    이 유튜브 부족한 설명은 ..국가의 힘이 없는 상태에서 민족자본가들이 전재산을 동원하여 군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의 자금적 지원을 하며 싸워온바 이들은 군대식 체계와 전술의 형태를 충분히 체계화 하여 싸웠다. 아울러 상해 임시정부는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대내외 무력과 외교로써 행적이 증명되었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근대사이었디. 그러면 이것이 잘못이라는 설명을 했어야 한다. 만주군관학교는 어쩔 수 없이 먹고살 궁리가운데 군인월급으로 살기위한 방책? 으로 이해는 되어도 그들은 만주사변의 잔혹한 일들을 하셨고 ..그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함구하질 않는가 말이다.

    • @이렇9먼
      @이렇9먼 Рік тому

      제1로군이 활동하고 있던 남만주는 조선과의 국경지대였고 전투가 잦았기 때문에, 제1로군의 활동은 조선에서도 널리 알려졌다.보천보 전투 이전부터 제1군의 김일성이나 최현( 제1로군 제 4사의 단장으로, 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장)의 이름은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등을 통해 조선에 알려져 있었다. 일본은 김일성이나 최현에 현상금을 걸었다. 이들 신문에서는 그들을 도적떼로 비난해, 피해를 받은 주민에게 동정하는 논조가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의 조선에서는 언론은 일본 정부에 의하여 검열을 받았으므로 항일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 후도 만주국이나 일본군 관동군을 상대로 게릴라 활동을 실시했기 때문에, 일본은 이를 식민지 지배·만주국 통치를 가로막는 장해물로 간주하여 철저한 탄압을 하였다. 일본은 만주국의 경찰·군대나 관동군 등을 동원해 게릴라의 거점이나 협력하는 촌락 등을 섬멸하고, 이것과 병행하여 집단 부락을 건설하여 그들의 활동을 고립시키고, 귀순 공작 등의 수법을 이용해 동북항일연군을 탄압했다. 특히 집단 부락의 건설로 동북항일연군은 물자의 공급이 곤란해져 두메 산골에서의 게릴라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북항일연군은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제한적 물자의 보급을 받았고 그 외에 만주국 내부에서도 동북항일연군에 비밀리에 협력하였고, 무기를 공여하는 사람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무기를 밀매하는 사람이 있었다. 인원을 보급과 혁명과업인 전국해방을 위해서 만주 농가 및 특히 조선인부대로 알려진 조선인민혁명군은 북부조선을 중심으로한 사상교육과 조직화에 힘썼다. 물자나 인원의 보급 수단으로 볼 때에는 비합법 게릴라와 큰 차이 없다고 하는 연구자도 있다.
      1937년에 제1로군 제2군 제6사(사장은 김일성)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함경남도(현재는 양강도) 보천보를 습격한 사건은 언론에 보도가 되어 한국 내에도 알려졌다.
      동북항일연군의 전성기에는 참여인원이 1만명이 넘어 일본제국의 만주 및 중국 침략에 커다란 장애였다. 동북항일 연군은 한반도 내로 진공작전을 펼치기도 해,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도 위협으로 작용했다. 1939년부터 관동군과 만주국군의 마지막 특설대 등에 의한 대규모 소탕 작전을 전개하여 동북항일연군은 양징위,(楊靖宇), 이홍광,(동북인민혁명군 35년 전사)허형식 등 많은 전사자를 내었고 전광 등이 일본에 귀순하였다. 1940년 일제는 관동군을 76만명으로 늘려 항일연군 토벌을 강화했다. 저우바오중,(88연대장 중공 중국인) 최용건, 김책, 김일성 (88대대장) 등 남은 사람들도 물자가 부족하여 활동의 지속하기 어려워져 소련영토로 이동해서 소련의 지원하에 군사활동을 계속했다. 항일연군 1~3로군의 지도부와 잔여 병력들의 상당수는 1941년까지 소련 영내로 이동했다.1942년까지, 전사·귀순하고 있지 않는 구성원은 소련에 탈출하였으므로 동북항일연군은 소멸했다.
      그 뒤 동북항일연군교도려(소련적군88특별저격여단)를 설립하고는 소부대 활동을 통해서 1945년 8월 해방을 맞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벌여 나갔다.

    • @이렇9먼
      @이렇9먼 Рік тому

      이건 어떻게 생각함?

  • @bertjo5249
    @bertjo5249 Рік тому +1

    코리아 세진 멋지네용~~

  • @황병찬-p6v
    @황병찬-p6v Рік тому +1

    일본군 출신들도 따지고 보면 일본육사 출신, 하사관 출신, 학병 출신 등으로 나뉘죠.

  • @UserAaa-ye2ih
    @UserAaa-ye2ih Рік тому

    이형 오랫만에보네 진짜 멋진분

  • @kwanyoungkang1371
    @kwanyoungkang1371 Рік тому

    중간에 러시아 교관 입국한 날이 1986년으로 오타가 있네요

  • @kmh5632
    @kmh5632 Рік тому +1

    누가 뭐래도 국군의 시초 주역이 광복군이라는 걸 희석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렇9먼
      @이렇9먼 Рік тому

      근데 국군 창건에 일본군 출신이나 만주군 출신이 대부분인데?

    • @kmh5632
      @kmh5632 Рік тому +1

      @@이렇9먼 그럼 친일파 2중대 해야죠

  • @なるどまくと
    @なるどまくと Рік тому +4

    3:34
    세진이 형
    박정희 가카께서는 일본 육사를 먼저가고 만주군관학교로 간게 아니라
    만주에 있는 신경군관학교로 먼저가고
    일본 육사로 편입해서 졸업한 케이스야
    진짜 순수 일본 육사출신이라면
    참군인 이종찬 장군이 대표적이지

  • @sirgjl
    @sirgjl Рік тому +2

    참 파란만장한 역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항상 화약고군요

  • @hailshonny
    @hailshonny Рік тому +1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으면 대부분 알법한 팩트들 가지고 교묘하게 헌법정신을 폄훼하는것 같은데... 🤔 광복후 국군에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는 헌법에 명시한 광복군 정신의 지향점을 고려할때, 별 의미가 없음. 어차피 일제는 패망했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상황에서 친일파 출신들도 새로이 명시된 헌법의 지향점을 따라야 살수있기 때문임.
    인류 역사상 반민족 반공동체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모조리 처단한 예가 없음. 르완다, 비시프랑스, 남아공의 예를 봐도 마찬가지임. 그 이유는 그냥 불가능 하기 때문임. 그래서 대부분 적당히 용서하고 함께 가게 되있음. 하지만 이건 말그대로 현실을 받아드리고 관용을 베푼거고, 이걸 가지고 한국군의 뿌리는 일본군이라고 할수없고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적통성이 가짜인건 절대 아니지.
    광복직후 한국에서 벌어진 모든 정치적 폭력과 이념싸움은 다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주도했음. 친일파들은 그저 다른 이념을 가진 독립영웅들에게 줄을 서서 그들의 도구가 되어 살아남을 길을 찾았고 종국엔 친미반공주의 성향의 파벌에 줄선 사람이 대부분 살아남아 승자가 됬을뿐. 여기서 유일한 예외로 박정희가 있지만 대부분의 친일파 출신들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소신과 이념을 관철시키기 보단 파벌에 줄을 대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음.
    이는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지만 다르게 보면 당시 정국을 주도한건 일제잔재가 아닌 독립영웅들이란 뜻임. 그리고 그들이 주도하여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방향성을 제시한것이 바로 임시정부 적통설임. 근데 왜 육사출신 역사학자가 징용 끌려간 사람들 숫자도 어거지로 일본군 출신이라 우기며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폄훼 하는지?
    그리고 자꾸 임시정부내 파벌싸움을 물고 늘어지며 좌우합작의 의미를 퇴색 시키려 애쓰는데, 그정도 파벌싸움 없는 집단이 세상 어디있음? 그것도 이념과 성향이 다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심지어 황국정신으로 똘똘 뭉친 일본제국군 내에서도 파벌싸움으로 병크에 병크가 터지는데?
    그리고 왜 이런 궤변론자들은 죄다 육사출신이지? 요즘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그걸 주도한것도 육사였지? 처음엔 아예 다 치워버린다고 ㅈㄹ하다가 나중에 문제 되니까 홍범도만 물고 늘어지고 결국 독립영웅 흉상들 모조리 치웠다지. 😂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외치며 창군 과정속 친일파의 역활은 인정하는데 헌법에 명시된 자주성이란 방향성은 인정 못하시겠다... 손으로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만 보고있는 꼴이네. 육사는 분명히 문제가 많은 집단임은 틀림없군.

  • @bmcap510
    @bmcap510 Рік тому

    와 너무 반갑습니다

  • @jaegimania
    @jaegimania Рік тому +4

    한국군이라고 하기엔... 육군만 해당되는거 아닌가요?
    해군은 공식적으로 독립운동가이신 손원일 제독이 주축이 되서 창설되었는데, 이때 주로 합류한 인원들이 상선사관 출신들이라, 일본육사나 만주군과는 역사가 다른데..
    육군=한국군 으로 보는 육군중심 사고가 뭍어나오는거같아서 아쉽네요.

    • @Captain_kim
      @Captain_kim Рік тому +4

      그것은 다음편에

    • @KoreaSeJin
      @KoreaSeJin Рік тому +5

      다음편을 기다려주세요😂😂

    • @なるどまくと
      @なるどまくと Рік тому +1

      애초에 조선이 일제에 먹혀서 일본군제도를 따른게 죄는 아니잖아 ㅂㅅ아
      좀 대가리 빠가야 그렇게 독립군 독립군 타령 하지좀마라
      어차피 걔네들 인원도 별로 없는 놈들인데 무슨 독립군제 타령이야 인마
      하...이 대가리 빠가사리 진짜

    • @mcdonnelldouglas4261
      @mcdonnelldouglas4261 Рік тому

      근데 손원일 주도로 창설된 해병대는 만주군 출신 신현준이 초대 사령관을 맡았죠.

    • @DS1UKL
      @DS1UKL Рік тому

      육군의 문화는 일본제국주의 영향을 엄청 받은게 맞는데...
      공군은 6.25때 대전방어선까지 밀리다가 해체되고...(훈련기에서 수류탄 떨구던 시절의 공군임) 우리나라 공군의 실체는 진해에 주둔한 미 5공군이 들어오면서 미국식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창설됨. 실제로 복장, 분위기 이런게 육군하고 다를 수 밖에 없음. 그래도 사람이 한국사람이라 정신력강조하는 인간도 있겠지만, 육군만큼은 아님.

  • @MyongO-i8e
    @MyongO-i8e 2 місяці тому

    군속단

  • @upcheer2775
    @upcheer2775 Рік тому

    88용띠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