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아네이 외국으로 도망갈 때 은밀하게 몇명만 밤중에 떠났으면 안 잡혔죠. 음식과 재물들을 잔뜩 싣고 추천된 속도가 빠른 작은 마차대신 눈길을 끄는 여섯마리 말이 끄는 육중한 마차를 타고 행차에 나서서 곳곳에서 쉬면서 마차도 고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성들한테 환영도 받고 선물도 하사하면서 여유롭게 행차하다가 국경 마을에서 잡혔습니다. 자만해서 방심한 탓이죠.
근데 바렌 사건은 프랑스 혁명에 원인이 아니잖아요..혁명이 일어나고 루이가 도주한 사건인데..가만히 있었으면 성난 군중이 루이를 가만히 두었을까요..당시에 군이든 의회든 어느것 하나도 시민혁명원들 때문에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는데..? 바렌사건은 루이가 도망친 사건이지 그로인해 민심이 반정을 했다고 볼수는 없는 사건 같은대요..짧은 소견입니다..제 글이 백퍼 맞다는게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이 바렌사건 때문에 루이르루처형하고 아니고에 결정적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오로라-t1p 왕이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바렌 사건에 대한 영어위키의 해석은 대략 다음과 같아요. 그는 전통적인 군주제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과대평가했는데, 이는 파리 급진주의자들만이 혁명을 지지하고 대중 전체가 혁명에 반대한다고 잘못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이 농민과 다른 평민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있다고 잘못 믿었다. 국왕의 비행은 불안에서 폭력, 공황에 이르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프랑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국의 개입이 임박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국왕이 그 지점까지 구성되어져 온 (프랑스 혁명)의 개혁을 사실상 거부했다는 사실은 (국왕을) 신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통치하는 선의의 군주로 보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화주의는 카페에서의 논쟁 주제에서 혁명 지도자들의 지배적인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이렇기 때문에 바렌 사건이 루이의 실책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지현-b7x ㅠㅠ;; 원하는 대답은 아닌데..그래도 수고하셨네요..조심스럽게 말한다면 바렌 사건보다는 미라보 백작에 죽음이 왕조 몰락에 시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어차피 죽일왕 명분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듭니다..바렌사건은 왕을 잡아서 처형한 명분이란 생각이 드는게..어차피 죽이기 위한 법과 왕조 폐위등에 모든 법을 만들었는데..바보가 아닌이상 프랑스에 있으면 돌아오는건 폐위이니..바렌사건은 단지 그 행위때 왕이 잡혔으니 역사적 주제를 잡기위한 단어선택이라 생각됩니다..그냥 이런저런 평가중 하나라 생각해 주세요..^^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면 루이 16세가 암군이었던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면) 꽤 높게 평가 받을만한 인물임. 그의 치세 중 가장 잘 한게 미국 독립 지원이랑 미터법 제정이니 뭐 물론 미국 지원하다 재정 파탄나고 미터법 제정도 처형 당하기 전에 서명한거니 프랑스인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치적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진짜로 저시대 프랑스 시민들은 어떤기분이였을까 혁명의 시작과 어쩌면 혁명이 성공할수있겠단 생각 예상치못한 방향... 결과 그리고 다시 찾아올 전쟁 그리고 찾아온 황제나폴레옹이라...참 역사적으로도 참 중요한 프랑스혁명이지만 소설로 써도 참 과하다싶을정도의 드라마틱이네요 오늘 영상도 감사합니다
조선시대 "열하일기" 지은이 박지원은 이 책에서 "조선인은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인을 깔보고 한자를 빌려쓰면서 중국인의 문장을 깔본다. 조선인은 아무 이유 없이 조선의 풍물에 자부심이 강하다." 라고 비판. 매우 옹졸하고 폐쇄적이고 자폐적인 우물안 개구리 같았던 조선. 조선시대 500년간 양반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면서 자기들 끼리만 잘 먹고 잘 삶. 민란 동학운동 일어나자 외국 군대 끌어와서 자국민 토벌. 세계 유일무이.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 지구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이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 라고 말했음. 500년간 신분차별,우민화(500년간 도서관 없었음) 남자 노비는 대부분 결혼 못하고 노총각으로 착취만 당하고 죽었음. 왜냐면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노비가 되므로 여자 노비는 양반의 성노리개나 아무에게서나 임신함. 그래서 남자 노비를 결혼 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음. 미국 흑인 노예도 이런 비인간적 대우는 받지 않았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혁명 직후와 로베스피에르 처형될때까지 빵값도 못 잡은 것들임. 로베스피에르 일화보면 파리 아동들에게 우유를 무상공급하고 싶어서 축산업 종사 자들에 우유값을 엄청 낮게 제공하라고 함. 그래서 축산업자들이 소 도축해서 고깃값 벌고 끝내버림. 재정 운송 보급 전문가들이 죽거나 비협조 소극적 협조 탓에 분배도 안 되고 우유사건처럼 완장질해대고. 크크크크 처음에는 귀족들 탓 외국과 전쟁나서 외국탓, 그리고 국왕과 왕비탓, 그 다음에는 동료권력자들의 비리탓, 마지막에는 파리의 소공상인탓. . 로베스피에르 죽을때 다들 기뻐한 이유죠. 다음에는 누가 될 것인가 이니..
알제리 해적들은 유럽인들을 납치해 이슬람 국가에 노예로 팔았음.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2백만명 이상의 백인들이 노예로 팔려 오토만 제국 등에서 비참하게 살았음. 특히 백인 여성 노예가 다른 인종 노예보다 값이 더 나갔다고 함. 이슬람 노예시장에서 알몸의 백인 여자들이 매매되는 장면을 그린 작품도 여럿 있음.
여기에는 안나오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절친이었던 마라의 살해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음. 원래 로베스피에르는 급진파 중에서도 온건한 편으로 전쟁도 반대하고 시민계급에 권리 확산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인데 이런 개혁들을 두려워한 초기 의회 멤버들이 본보기로 마라를 암살해버림, 근데 역으로 로베스피에르가 빡쳐서 다 쓸어버리고 과격한 정치를 펼치는 계기가됨
근데 루이 16세는 실제로도 오스트리아와 내통했다는 논란이 퍼지기 전 까지는 당시 시민들에게 루이 16세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물론 제대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당시 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안들을 내고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걷게 하려는 노력이라도 했고요.(근데 귀족들의 반대로 인해 흐지부지해져서 문제지.) 당시 시민들이 혁명 초기에는 무능하고 부패한 귀족들을 몰아내어 왕을 지키자는 명문도 있었고 혁명 주도자들 내에서도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던 파벌도 있을 정도였죠.(바스티유 사건 전 까지는 당시 혁명군 사이에도 공화정을 외친 사람들도 몇몇 안 됬음, 하지만....)
@@minzokielizabeth3830 당시 파리시에 거주하던 시민들이 기득권층이랑 무슨 관계인 것인지 몰라도 파리 수복 작전 때 잔다르크에 엄청 대항했었어요. 잔다르크도 화가 나서 점령한후 그냥 두지않겠다고 공언했었죠. 백성들의 지지보다는 군소귀족들 그리고 준 대영주급들이 왕실과 잔다르크의 대 영국 브루고뉴전의 공훈을 따졌어요. 그리고 잔다르크가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녀서 종교계의 시선도 안 좋았고요. 원래 영국측도 몸값만 받고 잔다르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 위신만 떨굴 작정이었는데. 프랑스가 모른채해서 죽인거죠. 이 때문에 브루고뉴와 영국의 연결선이 끊기고 영국이 칼레만 남기고 후퇴했죠.
"거의 언제나 자유의 적들만을 위해 탄식하는 동정심은 내가 보기에 미심쩍은 것입니다." 로베스피에르의 당시에도 언제나 부귀영화를 누리던 왕과 귀족, 성직자에게 자비롭던 이들은 도시빈민과 농민, 식민지에서 착취당하고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끔찍하리만큼 냉정합니다. 공포없는 미덕은 종이호랑이일 뿐입니다.
@@khd5031 아쉽지만 역사적으로 혁명을 주도 하는 부류는 보통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 주도 합니다 이유는 배움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과거에만 해도 일반 평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일만 죽으라고 하는 정도 였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던 이들은 공부를 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부조리를 인지 하는거죠 과거 조선시대 때도 사대부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이유 중에 하나가 글을 읽고 배운 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알기에 혹여나 일반 백성이 글을 읽기 시작하면 본인들의 위치가 조금이라고 위협을 받을까 한 우려도 있었던 겁니다
Bonjour , ANIASEOO ! 안녕하세요, 다음 혁명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비디오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중산층은 "상류층"에 의해 파괴되는데, 이 계급만이 잠재적으로 혁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반복된다... Bonjour , il est possible que vous deviez faire une autre vidéo pour expliquer la prochaine révolution. Actuellement la classe moyenne est détruite par la classe "supérieure" car seul cette classe est potentiellement révolutionnaire. L'histoire se répète ...
입헌군주 공화제가 매우 저렴하고 유용합니다. 대선이 필요 없고, 봉급 안주고, 직계 가족만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면서 24-7 부려 먹을수 있는게 입헌 군주 입니다. 왕좌에 옹립되면 죽을때까지 부려먹을수 있어서 연금 혜택도 없습니다. 대통령제는 선거비용, 봉급 과 연금을 국가에서 지급해야합니다. 숙식 의복도 국가에서 지급해야하니, 대통령제가 비용면에서 훨씬 고비용 제도 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비, 왕자, 공주들도 공짜로 부려먹을수 있으니 개꿀.
@@anetteseong987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말씀 드리지 못하나 많은 사료를 토대로 보면 고려시대 때 여성은 정치적 활동은 못했어도 가정내에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위치 였다고 해요 재산 상속도 받고 남편이 죽으면 호주가 되고 족보에 올릴 때도 여성이라고 뒤에 올리는 경우가 없었다고 함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자인 여성이 많았다고 해요
현대 가쉽스캔들로 소문이 변질되어서 한사람을 망치는 사례의 중세판이었죠. 사실 제일 큰 이유는 마리앙투아네트의 출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왕에게 일본공주가 시집온 거라 비유할 수 있음)그로인한 반대파의 소문을 통한 공작때문에...사실 잘못한것도 없는 앙뚜아네트는 희대의 악녀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결국 그 무형의 소문으로 죽은거기도 하죠.
혁명 저지르고 평민들 살림살이 나아져야 하는데. . 재정 운송 전문가들 다 죽여버려서. 당시 파리 빵값이 혁명전보다 수배나 높았다고 하죠. 처음에는 귀족들 탓, 그리고 국왕과 왕비 탓 . 마지막으로 빵집 주인탓.. 크크크크 혁명가 혹은 좌파들 답게 빵값이 올랐다고 하면 빵값 올린 빵집 주인 처형...물가고정제 크크크크 재정전문가 그리고 운송전문가들 다 처형.. 처형 혹은 규제 그리고 금지. . 이게 한계까지 다다르니까 공포정치 마구잡이로 쳐죽이고. .이것도 한계에 다다라서 로베스피에르도 모든 책임지고 처형된것임.
루이 16세는 나름대로 개혁 시도를 했고 앙뚜아네뜨는 사치가 심하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역사는 진짜 승자의 것이 맞는 것같아요
앙트와네트는 궁궐이 싫어서 궁궐 뒤에 따로 지은 작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산책, 농사와 정원 가꾸는 걸 즐겼다고 합니다. 앙트와네트가 샀다 소문난 호화 다이아먼드 목걸이 사건도 조작된 것이었고요.
루이16세를 시민들은 살려주려했는데 정작 본인이 무덤을 판 꼴이라...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죠
@@닉아네이 외국으로 도망갈 때 은밀하게 몇명만 밤중에 떠났으면 안 잡혔죠. 음식과 재물들을 잔뜩 싣고 추천된 속도가 빠른 작은 마차대신 눈길을 끄는 여섯마리 말이 끄는 육중한 마차를 타고 행차에 나서서 곳곳에서 쉬면서 마차도 고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성들한테 환영도 받고 선물도 하사하면서 여유롭게 행차하다가 국경 마을에서 잡혔습니다. 자만해서 방심한 탓이죠.
@@jy7213 도망의 뜻을 모르는가? ㅋㅋㅋㅋ
@@jy7213 ㅋㅋㅋㅋㅋ 몰랐던 사실인데 웃기네요
왕과 귀족에서 부르주아로 권력이 넘어온거 뿐...
그 권력의 이양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tsardoletsamvon7692 그개 바로 사람들이 가장착각하고 혼동하는거임...착취 하는 위에가 바뀐거 뿐임..산업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중세시대보다 심하개 착취 당했었슴...
@@김기연-y7f 저는 사회진화론을 긍정한 적이 없는데요
중세시대 유럽에서 동물이 재판을 받았던 일에 대한 설명도 해주세요! 비문학에서 나온 소재인데 흥미로워서 더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혁명 과정만 보면 그야말로 당장 내일 망할 것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그대로 전 유럽과 전쟁해서 이긴;;
국가를 사람 신체로 비유하면.. 가장 건강할때 가장 공격성이 커지죠.. 그때 수양을 안하고 냅두면 자멸하는법
나폴레옹이라는 사기캐도 있었죠
언제나 멋진 목소리로 좋은 퀄리티의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이의 실책은 바렌 사건이었죠. 이것만 아니었더라도 목숨은 건졌을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근데 바렌 사건은 프랑스 혁명에 원인이 아니잖아요..혁명이 일어나고 루이가 도주한 사건인데..가만히 있었으면 성난 군중이 루이를 가만히 두었을까요..당시에 군이든 의회든 어느것 하나도 시민혁명원들 때문에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는데..? 바렌사건은 루이가 도망친 사건이지 그로인해 민심이 반정을 했다고 볼수는 없는 사건 같은대요..짧은 소견입니다..제 글이 백퍼 맞다는게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이 바렌사건 때문에 루이르루처형하고 아니고에 결정적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오로라-t1p 사실 바렌을 기점으로 혁명이 격화된 부분은 충분히 지적 가능한 것 같아요. 저도 그 이상은 좀 더 분석해봐야 할 것 같지만요.
@@여지현-b7x 네..분석이 되면 언제든 답장해 주세요..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서요..^^ 뭐든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요..감사합니다..
@@오로라-t1p 왕이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바렌 사건에 대한 영어위키의 해석은 대략 다음과 같아요.
그는 전통적인 군주제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과대평가했는데, 이는 파리 급진주의자들만이 혁명을 지지하고 대중 전체가 혁명에 반대한다고 잘못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이 농민과 다른 평민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있다고 잘못 믿었다. 국왕의 비행은 불안에서 폭력, 공황에 이르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프랑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국의 개입이 임박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국왕이 그 지점까지 구성되어져 온 (프랑스 혁명)의 개혁을 사실상 거부했다는 사실은 (국왕을) 신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통치하는 선의의 군주로 보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화주의는 카페에서의 논쟁 주제에서 혁명 지도자들의 지배적인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이렇기 때문에 바렌 사건이 루이의 실책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지현-b7x ㅠㅠ;; 원하는 대답은 아닌데..그래도 수고하셨네요..조심스럽게 말한다면 바렌 사건보다는 미라보 백작에 죽음이 왕조 몰락에 시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어차피 죽일왕 명분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듭니다..바렌사건은 왕을 잡아서 처형한 명분이란 생각이 드는게..어차피 죽이기 위한 법과 왕조 폐위등에 모든 법을 만들었는데..바보가 아닌이상 프랑스에 있으면 돌아오는건 폐위이니..바렌사건은 단지 그 행위때 왕이 잡혔으니 역사적 주제를 잡기위한 단어선택이라 생각됩니다..그냥 이런저런 평가중 하나라 생각해 주세요..^^
혁명사상 과 구시대의 사상의 혼제속에서 과격한 분노와 증오를 이 영상한편으로 아주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편의 전개과정 아주 흥미진진 할꺼라고 기대합니다!
루이 16세가 간발의 투표차이로 사형당했는지는 몰랐습니다. 오늘도 역시 잘 배우고 갑니다 ~~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면 루이 16세가 암군이었던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면) 꽤 높게 평가 받을만한 인물임. 그의 치세 중 가장 잘 한게 미국 독립 지원이랑 미터법 제정이니
뭐 물론 미국 지원하다 재정 파탄나고 미터법 제정도 처형 당하기 전에 서명한거니 프랑스인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치적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진짜로 저시대 프랑스 시민들은 어떤기분이였을까 혁명의 시작과 어쩌면 혁명이 성공할수있겠단 생각 예상치못한 방향... 결과 그리고 다시 찾아올 전쟁 그리고 찾아온 황제나폴레옹이라...참 역사적으로도 참 중요한 프랑스혁명이지만 소설로 써도 참 과하다싶을정도의 드라마틱이네요 오늘 영상도 감사합니다
무늬만 혁명인 학살의 연속이었기에 흉흉한 시기였음
ㅋㅋ 혁명 정권의 탄생으로 무자비한 독재가 시작됬죠 ㅋㅋ 오죽했으면 나폴레옹이 쿠테타 일으켰을까
조선시대 "열하일기" 지은이 박지원은 이 책에서 "조선인은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인을 깔보고 한자를 빌려쓰면서 중국인의 문장을 깔본다. 조선인은 아무 이유 없이 조선의 풍물에 자부심이 강하다." 라고 비판.
매우 옹졸하고 폐쇄적이고 자폐적인 우물안 개구리 같았던 조선.
조선시대 500년간 양반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면서 자기들 끼리만 잘 먹고 잘 삶.
민란 동학운동 일어나자 외국 군대 끌어와서 자국민 토벌. 세계 유일무이.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 지구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이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 라고 말했음.
500년간 신분차별,우민화(500년간 도서관 없었음)
남자 노비는 대부분 결혼 못하고 노총각으로 착취만 당하고 죽었음. 왜냐면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노비가 되므로 여자 노비는 양반의 성노리개나 아무에게서나 임신함.
그래서 남자 노비를 결혼 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음. 미국 흑인 노예도 이런 비인간적 대우는 받지 않았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혁명 직후와 로베스피에르 처형될때까지 빵값도 못 잡은 것들임. 로베스피에르 일화보면 파리 아동들에게 우유를 무상공급하고 싶어서 축산업 종사 자들에 우유값을 엄청 낮게 제공하라고 함. 그래서 축산업자들이 소 도축해서 고깃값 벌고 끝내버림. 재정 운송 보급 전문가들이 죽거나 비협조 소극적 협조 탓에 분배도 안 되고 우유사건처럼 완장질해대고. 크크크크 처음에는 귀족들 탓 외국과 전쟁나서 외국탓, 그리고 국왕과 왕비탓, 그 다음에는 동료권력자들의 비리탓, 마지막에는 파리의 소공상인탓. . 로베스피에르 죽을때 다들 기뻐한 이유죠. 다음에는 누가 될 것인가 이니..
왕정이 전복되고 그 자리를 부르주아가 차지하며 자본주의의 득세를 보며 굶주렸겠죠.
모든 인간으 평등 어쩌고 저쩌고
천부적으로 권리를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지들끼리 써 놓고는
알제리한테는 왜 그랬니?????
알제리 ㅋㅋㅋㅋㅋㅋ
지들 기준에 해당되는 '인간'으로 인정 받아야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
그래도 내부적으로나마 저런 소리한건 정말 혁신적인거였어요
알제리 해적들은 유럽인들을 납치해 이슬람 국가에 노예로 팔았음.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2백만명 이상의 백인들이 노예로 팔려 오토만 제국 등에서 비참하게 살았음. 특히 백인 여성 노예가 다른 인종 노예보다 값이 더 나갔다고 함. 이슬람 노예시장에서 알몸의 백인 여자들이 매매되는 장면을 그린 작품도 여럿 있음.
대서양 항해하던 미국 상선도 알제리 해적에 공격을 받아 미국 정부가 몸값을 지불한 것이 미국 해군을 창설한 계기가 됨. 19세기초에 미국과 유럽 연합 함대들이 알제리 해적을 토벌했고 19세기 중반에 프랑스가 완전히 점령함.
로베스피애르는뭔가 그냥 자기 무시하던 왕,귀족을 자기가 왕,귀족들보다 없애고 그들의 권력을 차지하고싶었던것같은데
결국 땡강~
여기에는 안나오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절친이었던 마라의 살해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음. 원래 로베스피에르는 급진파 중에서도 온건한 편으로 전쟁도 반대하고 시민계급에 권리 확산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인데 이런 개혁들을 두려워한 초기 의회 멤버들이 본보기로 마라를 암살해버림, 근데 역으로 로베스피에르가 빡쳐서 다 쓸어버리고 과격한 정치를 펼치는 계기가됨
@@Cccc11123 그후 로베가
의회장악자들을 숙청한것임?
혼탁하다 혼탁해!
패러다임의 변화는 늘 아픔을 동반하지만
이 역사는 정말 혼돈 그 자체인 듯..
내용 좋네요. 정리도 잘 되어있고요.
니콜라이 2세보다는 더 불쌍한데 여러 번 기회가 왔는데도 걷어 찬 대가이니 ..
막말로 한 번 작심하고 귀족 몇 명만 기획 반역으로 엮어서 단두대로만 보냈어도 혁명 안 일어 났을 듯
3일치의 평금 임금. 극빈층이 진짜 어마어마 하게 많았네요.
이런거 보면
러시아도 프랑스처럼 혁명이 일어났는데
러시아 귀족들이 단두대로 처형안된게 신기하다.
니콜라이는 총살당했지만
근데 루이 16세는 실제로도 오스트리아와 내통했다는 논란이 퍼지기 전 까지는 당시 시민들에게 루이 16세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물론 제대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당시 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안들을 내고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걷게 하려는 노력이라도 했고요.(근데 귀족들의 반대로 인해 흐지부지해져서 문제지.)
당시 시민들이 혁명 초기에는 무능하고 부패한 귀족들을 몰아내어 왕을 지키자는 명문도 있었고 혁명 주도자들 내에서도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던 파벌도 있을 정도였죠.(바스티유 사건 전 까지는 당시 혁명군 사이에도 공화정을 외친 사람들도 몇몇 안 됬음, 하지만....)
와! 기다렸읍니다! 선생!
프랑스혁명 몰아보기 영상 만들어주세요
ㄹㅇ 루이 16세는 자기 운명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죠
조선 이왕가도 저렇게 했으면 일제강점기 안당할수도 있었을텐데
민주주의 시작이 아니라 자본주의도 권력을 차지할 수 있게 만든 신분시대의 전환이었었음
루이 16세가 왜 도망갔을까.. 가만히 있다가는 권력을 다 잃을까봐 외국으로 도망가서 재기할 기회를 노린거였을까요? 만약 도망가지 않았다면 입헌군주제로 됬을지, 아니면 급진파에 의해서 결국 죽거나 폐위됬을지도 궁금해지네요.
시민들이 궁전앞까지와서 시위하는거 보고 난 뒤에 불면증 걸리고 공포심이 극대화됐다고 함
막상 시민들은 왕 죽일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결국 자기가 자기를 죽인셈
루이16세랑 마리앙뚜아네뜨는 사람은 좋지만 정치적인 감각이 떨어져서... 조금만 상황을 빨리 볼 줄 아는 정치적 감각이 있었으면 적어도 단두대까진...
로베스피에르만은 전쟁에 반대했지만, 결국 좌우를 막론한 찬전 물결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으니 참...
그냥 도망만 쳤다면 그냥 외국으로 추방 내지는 유배를 보내는 방법도 있었을 터인데, 문제는 외국 군대까지 글어 들여 자기 왕권을 복원하려 한 건 어떻게 해도 유예의 여지가 없네요.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루이가 정말 트롤짓을 많이도 햇구나...
그런데 파리와 파리시민들은 잔다르크도 재판해서 화형에 처하게 만든 전적이 있음. 재판 지도부가 파리 대학교였으니. ..이상하게도 파리시민들은 유명인이나 고위층에 대한 적대감이 높다고 봐야될까. .
잔다르크는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죠 거기 불안감을 느낀 당시 프랑스 왕이 영국과 합의보고 마녀로 죽인거
@@minzokielizabeth3830 당시 파리시에 거주하던 시민들이 기득권층이랑 무슨 관계인 것인지 몰라도 파리 수복 작전 때 잔다르크에 엄청 대항했었어요. 잔다르크도 화가 나서 점령한후 그냥 두지않겠다고 공언했었죠.
백성들의 지지보다는 군소귀족들 그리고 준 대영주급들이 왕실과 잔다르크의 대 영국 브루고뉴전의 공훈을 따졌어요. 그리고 잔다르크가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녀서 종교계의 시선도 안 좋았고요. 원래 영국측도 몸값만 받고 잔다르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 위신만 떨굴 작정이었는데. 프랑스가 모른채해서 죽인거죠.
이 때문에 브루고뉴와 영국의 연결선이 끊기고 영국이 칼레만 남기고 후퇴했죠.
저게 바로 시민혁명일세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사건.
맞아용 민중이 언론 여론 선동에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죠 그외 잔다르크 등등등
암군만 아니었어도 영국처럼 입헌군주제 국가로 남았을 것
"거의 언제나 자유의 적들만을 위해 탄식하는 동정심은 내가 보기에 미심쩍은 것입니다." 로베스피에르의 당시에도 언제나 부귀영화를 누리던 왕과 귀족, 성직자에게 자비롭던 이들은 도시빈민과 농민, 식민지에서 착취당하고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끔찍하리만큼 냉정합니다. 공포없는 미덕은 종이호랑이일 뿐입니다.
오 오랜만
남의 권리를 지켜주기 싫어서
강제로 쓴 권리장전 이후
뒷통수 시전. 살려주면. 위험
나폴레옹 전쟁까지 가는건가요? 제발 부탁드려요
루이의 죽음을 비통하게 여긴 사람이 만든 브랜드가 바로 '루이비통'
아재개그 아닌가요?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순간 믿은 내 자신이 부끄럽다.... 😂
ㅋㅋㅋㅋ
오마이갓;;;
차별 싫다고 혁명해놓고 지들이 또 차별하네.
저 혁명은 사실상 평민이지만 자본력은 있었던 브루주아들이 주도해서 농민들을 부추겨
귀족과 왕족들을 몰아내버린 일종의 권력교체의 성격이 강했음 그러니 여전히 차별이 남을수밖에
@@khd5031 아쉽지만 역사적으로 혁명을 주도 하는 부류는 보통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 주도 합니다 이유는 배움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과거에만 해도 일반 평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일만 죽으라고 하는 정도 였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던 이들은 공부를 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부조리를 인지 하는거죠 과거 조선시대 때도 사대부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이유 중에 하나가 글을 읽고 배운 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알기에 혹여나 일반 백성이 글을 읽기 시작하면 본인들의 위치가 조금이라고 위협을 받을까 한 우려도 있었던 겁니다
루이 16세의 할아버지가 만든 궁전의 문은 제 3신분에게 굳게 닫혀있었죠.
의회와 잘 타협해 지금까지도 호의호식하며 특권을 누리는 영국왕족과 많이 비교가 되네요ㅎ...
세상을 바꾼다면서 사람을 죽이네...
Bonjour , ANIASEOO !
안녕하세요, 다음 혁명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비디오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중산층은 "상류층"에 의해 파괴되는데, 이 계급만이 잠재적으로 혁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반복된다...
Bonjour , il est possible que vous deviez faire une autre vidéo pour expliquer la prochaine révolution.
Actuellement la classe moyenne est détruite par la classe "supérieure" car seul cette classe est potentiellement révolutionnaire.
L'histoire se répète ...
민비도 일본의 건달이 아닌 백성의 손에 진작 처단 됬어야 나라가 바로 서고 식민지가 안됐을지도. 그런점에서 민비 시해 사건은 국치이긴 국치.
백성들이 처단할 힘이 없어서 일본에 부탁했다죠...민비 좀 쓸어달라고...;
사실 루이 16세도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왕으로써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것은 변함이 없죠
루이 16세: 솔직히 나도 왕 되는 것 원하지 않았어…
대학의시초가 무엇이고 누가 대학을 만들었나요?
그냥 지배자의 계급만 바뀐 혁명
걍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지랖 & 자폭.
혁명 일어나고 ‘그냥 잡아 족쳐!’ 일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ㅎㅎ
루이조제프가 살아서 왕위만 이었어도... 당시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사도세자가 있었네요 효장세자가 살아만있었어도 오귀스트든 사도세자든.. 비극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요
말이 혁명이지 공화정 지지자였던 나폴레옹이 대중의 지지로 스스로 다시 황제가 된걸보면 소위 형명군이라는 사람들의 폭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수 있음
프랑스 혁명도 포장만 이쁘게 되어 있을 뿐이지 혁명의 이름으로 벌어진 집단 학살 내용 들어보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
에초에 피안보는 혁명이 없음. 영국도 명예혁명이후 2세기동안 각종 반란에 시달렸는데 그나마 중동의 봄때 튀니지가 그럭저럭 무난하게 넘긴편
@@닉아네이 정작 그 피를 사회적 약자들이 봐서 문제죠 1792년에 일어난 파리 그랑 샤틀레 학살 보면 반혁명범법자 처벌을 빌미로 수많은 사람들 집단학살 했습니다.
@@Doyouknow-e6w 사회적약자들의 권리획득을 위한 싸움이니 당연히 피해를 입겠죠 어느 권력자들이 순순히 자기걸 내줌? 가족끼리도 재산권력때문에 죽여대던 인간들인데
유럽국가에서 피의 혁명 아니였던 적은 없음 다만 그런 혁명들 때문에 지금 사회가 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된 계기 일 수 있다는 설이 있지만
@@Doyouknow-e6w그 희생자들 대다수가 프랑스혁명에 반대해왔던 애들이라 학살은 정당하다고 여겨짐
루이16세의 일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와 한표차이로 사형...
말이 한표차이지 사실상 확정된건 변함없었음 사형찬성이 이미 과반을넘은거라서 별의미도 없었음
@@zzohhodduoccohlh3493 집행시기가 나중으로 미뤄졌으면 구제될 가능성도 있지요
저 상황에서 외국에서 전쟁을 이겼데요? 그리고 그 외국의 나라가 어디죠?
독일 철학의 역사도 부탁드립니다.
막판에 국가를 버리고 도망치려 해서
16세면...중2병 말기라서 처형...
10:05 반증 방증 제대로 못쓰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역시 믿고 봅니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배후에는 일루미나티가 있다는 말이 있음.
처형안당했으면 나폴레옹은 없었을 것
독재자 로베스피에르가 저런다는게 참 아이러니
영국 혁명은 그나마 좀 정리가 되는데, 프랑스 대혁명은...ㅗㅜㅑ
2:08 이게 어려울 만큼, 빈민층이 많은 건가요?
제목부터가 틈새를 찍었네 대단한 안목
요런게 진짜 컨텐츠죠.
1:12 복잡하네요.
원주 판사는 소송사기가 적법이라고 하는 자도 존재..국민은죽어요 ..부패국가로
루이16세가 만든 베르사유궁전이 프랑스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다주고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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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인 권리선언이다
필요할 때는 차별한다고 써 있다
왕을 죽여서 일어나는 사태를 사전에 대비를 했었을까요.
아무래도 구체제를 뒤엎는거라, 그 여파를 예상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슬슬 학살자의 등장인가...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한민국보다
여성참정권을 늦게 부여했음…
역사는 반복된다 기득권들은 종교와 지형과 과학기술을 이용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지 아는것이고
가여워 여기면 기어오르기 마련이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이다
어찌보면 왕이란 자리는 사이코패스성격이 가장 잘하는 자리일것이다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감싸주면
결국 저렇게 당하는것이가
이씨조선의 반만 배우고 따라했다면 저렇게 당하진 않았겠지
좋댓구!
입헌군주 공화제가 매우 저렴하고 유용합니다. 대선이 필요 없고, 봉급 안주고, 직계 가족만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면서 24-7 부려 먹을수 있는게 입헌 군주 입니다. 왕좌에 옹립되면 죽을때까지 부려먹을수 있어서 연금 혜택도 없습니다. 대통령제는 선거비용, 봉급 과 연금을 국가에서 지급해야합니다. 숙식 의복도 국가에서 지급해야하니, 대통령제가 비용면에서 훨씬 고비용 제도 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비, 왕자, 공주들도 공짜로 부려먹을수 있으니 개꿀.
부르주아 들의 반란
중세시대에는 교회와 카톨릭이 주된 종교였나요?
역사 댓글들은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참 많네
그 놈의 세금
시민혁명도 결국 파워게임이었을 뿐 정의와 자유의 승리는 아니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죠
프랑스 국민들에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서ㅎ
그들의 투쟁이 자유가 아닌 빵이 엿던거 같네요
이익단체들에 의한 밥그릇 싸움이 인권운동이란 이름하에 힘을 실어주는 지금 시대와 관통 하네요
귀족 사형 시키고 싶어서
17세가 아니니깐
가짜뉴스가 이렇게 무서움.
미친 거짓의 역사 모든게 그들의 거짓 승자들의 거짓 죽은자는 말이없다 이용당하는 왕과 노동자들 왕과 귀족이 불쌍할뿐 멍청한 인간 현대에도 꾸준히 멍청한인간들
이래저래 토사구팽 당하는 시민들 ㅋ 그건 시민이라는 계급의 숙명이겠죠? 100%
왕죽이면 살림살이 더 나아질줄 알았제? ㅋㅋ
그냥 사람들 선동해다가 대단한 정의 찾는척하지만 그 자리에 못올라가니까 그 ㅈㄹ 못떠는거지 그 자리 올라가면 다 똑같음
부르조아들 도 시민은 시민이고 ~ 헐벗고 가난한 시민들은 말 이 시민이지 이름도 우리처럼 성도 없는 그냥 개똥이들 이 었을 텐데 ~ 요....
저 시대에 여성의 인권은 어땠나요?
유럽 국가는 역사적으로 여성 인권이 높았던 적이 없어요 동양 보다는 진보 했다는 서구권 조차도 여성 인권이 보장 된 게 불과 몇 십년 안됌 오히려 우리나라 고려시대 때 여성인권이 높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myhyekoy 고려시대때가 인권이 더 높았나요?
@@anetteseong987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말씀 드리지 못하나 많은 사료를 토대로 보면 고려시대 때 여성은 정치적 활동은 못했어도 가정내에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위치 였다고 해요 재산 상속도 받고 남편이 죽으면 호주가 되고 족보에 올릴 때도 여성이라고 뒤에 올리는 경우가 없었다고 함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자인 여성이 많았다고 해요
하기사 우리나라 사람들도 무제한적 대통령제를 지지하니까.. 익숙함이란게 무섭지
우쭐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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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경찰의 고소장 손괴를... 뇌물수수도 300만원... 허위의 수사기록도 계속 재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은죽어요 간청합니다 긴급점검 조치해야 합니다
주변국가의 우려로 인한 전쟁은 필연적이었을 거 같긴 한데 전쟁이 없었다면 나폴레옹이란 황제가 나왔을지...
아.... 반성 합니다 ㅎ 그만 좀 해라.
근대 의문이 있습니다. 그도 사람이였습니다. 근대 그를 뭐라고 하는것자체가 인권침해 아닌가 싶네요...
앙투아네트는 참 억울할 것임 : 그 교양에 죽고사는 오스트리아 공주출신이 미친개이 사치할 확률은 적음, 단 가난한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왕비역할은 안했기 때문에 유죄임.
가방끈 짧은게 알지도 못하면서 씨부리노 ㅋㅋㅋ
무학의 통찰 ㅎ 십새야 ㅎ
@@leehyangje 가난한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게 여왕의 의무가 됨? ㅋㅋㅋㅋ
@@앙기모찌-r7l 이항제 이사람 뭐라는지 모르겠네. 마리는 애초에 빈민들도 많이 구제해줬음 ㅋㅋ 근데 그게 다 선동에 묻혀서 그렇지 ㅋㅋ
현대 가쉽스캔들로 소문이 변질되어서 한사람을 망치는 사례의 중세판이었죠. 사실 제일 큰 이유는 마리앙투아네트의 출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왕에게 일본공주가 시집온 거라 비유할 수 있음)그로인한 반대파의 소문을 통한 공작때문에...사실 잘못한것도 없는 앙뚜아네트는 희대의 악녀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결국 그 무형의 소문으로 죽은거기도 하죠.
위선자들 ㅋㅋ
그 다음 벌어질 일은 이게 혁명인거야 대숙청인거야 ㅋㅋㅋ 그렇게 혁명해서 다 죽이고 난 다음에 나폴레옹 황제라니 정말 아이러니
혁명 저지르고 평민들 살림살이 나아져야 하는데. . 재정 운송 전문가들 다 죽여버려서. 당시 파리 빵값이 혁명전보다 수배나 높았다고 하죠. 처음에는 귀족들 탓, 그리고 국왕과 왕비 탓 . 마지막으로 빵집 주인탓.. 크크크크
혁명가 혹은 좌파들 답게 빵값이 올랐다고 하면 빵값 올린 빵집 주인 처형...물가고정제 크크크크 재정전문가 그리고 운송전문가들 다 처형.. 처형 혹은 규제 그리고 금지. .
이게 한계까지 다다르니까 공포정치 마구잡이로 쳐죽이고. .이것도 한계에 다다라서 로베스피에르도 모든 책임지고 처형된것임.
이렇게 된 제일 중요한 이유는 이 당시 총이 단발 머스킷이라서 파리 시민 다 들고 일어나면 막을 방법이 전무했기때문이기도 함. 뭐 오늘날이야 10만명 들고 일어나도 기관총 몇정이면 진압가능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