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낯선 문물을 받아들인 항구도시 나가사키. 일본 유일의 교류창고로 활약하며 개항 후 지금까지 열린 항구로 남아있다 (KBS 20100609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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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2 гру 2023
  • ■ 일본 큐슈의 항구도시 나가사키
    원폭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나가사키에는 수많은 서양식 건물과 기독교 유적이 복원되어 남아 있다.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하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 일본 최초의 개항은 1571년 포르투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포르포르투갈의 빵 카스텔라는 이제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특산품이 됐다.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나가사키 유리공예 비드로 역시 포르투칼이 전해 준 기술이 바탕이 됐다. 나가사키는 포르투갈과의 교역으로 점차 부유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로 발전해 나갔다. 당시 일본은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이었으나 1864년 프랑스 신부에 의해 세워진 오후라 천주당은 이곳에서 죽은 26명의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기독교 탄압의 아픔이 서려 있다.
    ■ 데지마-쇄국시대 일본 유일의 교역창구
    유럽의 문물은 받아들이되 기독교 확산을 막기 위해 에도막부는 특단의 결정을 내린다. 포르투갈인을 수용하기 위해 나가사키의 앞바다에 부채꼴 모양의 인공섬을 만든 것이다. 인공섬 데지마. 막부는 포르투갈 이내 생활반경을 이곳으로 제한했다. 19세기 개항 전까지 서양을 향해 열린 유일한 문이었던 데지마. 데지마는 쇄국시대 일본 유일의 교역창구였다.
    ■ 데지마에서의 네델란드와의 교역
    1641년 네덜란드 상관들이 데지마로 옮겨온다.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네덜란드는 이후 18년간 일본과 독점 무역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 상관들은 유럽의 생활물품을 많이 가지고 들어와 생활했다. 악기, 그릇, 의상, 스포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인공섬에 불과했지만 전세계 문물이 교차하던 곳, 데지마. 네덜란드 배는 서구의 다양한 문화와 첨단 문물을 싣고 왔다. 그들이 가져온 것들은 데지마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 유럽에서 일본 도자기의 유행
    17세기 나가사키가 주로 수출한 것은 나가사키에서 만든 도자기와 칠기공예품이었다. 유럽으로 수출된 일본 도자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자기는 유럽의 궁전에서 장식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 난학-서양의학
    네덜란드 상인들이 가져온 현미경. 그리고 시계 같은 과학신제품은 일본의 실용학문을 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근대화의 싹이 된 학문이 있다. 바로 난학. 서양의 학문 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서양의학이었다. 동인도회사 파견의사로 1823년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온 시볼트. 일본 근대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일본 의학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인물이다. 한편 시볼트는 일본 문화를 서구에 소개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오페라 나비부인
    1853년 미국에 페리제독이 내항, 5년 뒤 일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은 전면 개방됐다. 그후 외국 상인들이 나가사키로 몰려들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 출신의 토마스 글로버다. 그의 일본인 부인 쓰루. 손님을 접대할 때 나비문양이 그려진 기모노를 입어 나비부인이라 불렸다는 쓰루. 그녀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델이 됐다.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일본 게이샤와 미 해군의 슬픈 사랑을 다룬 나비부인. 작품 속에 녹아든 일본 전통의상과 민요는 전세계에 일본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개항도시 나가사키
    개항 이후 쏟아져 들어온 서양문화에 나가사키만의 색깔이 더해져 나가사키는 국제도시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들의 실정에 맞도록 발전시켜온 일본. 그런 점에서 나가사키는 가장 일본다운 곳이다. 지난 400여 년간 단 한 번도 바다의 문을 닫은 적이 없는 항구. 개항도시 나가사키는 세계로 열린 문이었다. 그리고 교류를 통해 축적된 다양성과 개방성은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정신이 됐다. 일본 최초의 무역항으로 일본의 근대화가 싹튼 곳. 440년 전 일본의 변방이었던 나가사키는 바다를 통해 소통하는 21세기 해항도시였다.
    ※ 이 영상은 2010년 6월 9일 방영된 [세계 해양 도시를 가다 1편 근대의 문 나가사키] 입니다.
    #암자 #상견성암 #규봉암 #도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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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14

  • @user-cf9ri9oe1c
    @user-cf9ri9oe1c 2 місяці тому

    감사합니다😊

  • @user-us4ir1zm9f
    @user-us4ir1zm9f 7 місяців тому +5

    나가사키 짬뽕이나 먹어야겠다

  • @sonagi-ue5iy
    @sonagi-ue5iy 5 місяців тому +1

    나가사키 여행 다녀왔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 @snowcountry322
      @snowcountry322 3 місяці тому

      그런가요? 담달가서 일주일 보낼 계획인데 관광객들 적어서 좋을듯요 ㅎ

    • @sonagi-ue5iy
      @sonagi-ue5iy 3 місяці тому +1

      후쿠오카 나가사키 두 곳 다녀왔는데 후쿠오카는 한국인 정말 많았습니다. 물론 성수기이도 했지만요. 반면에 나가사키는 한국인 거의 없더군요. 저는 나가사키가 훨씬 좋았습니다 ㅎㅎ

  • @kisoolee
    @kisoolee 7 місяців тому +3

    임진왜란이후 우리의 장인들을 데려가서 네덜란드 무역 수출품을 만들었네!

    • @hjkim8595
      @hjkim8595 7 місяців тому +5

      조선을 먼저 개항했다면 역사가 바꿨겠죠.

    • @user-ux3gn9pn7k
      @user-ux3gn9pn7k 3 місяці тому +6

      .조선에서 ㅈ빠지게 명품만들어봤자 대접도 못받고 인정도 못받고...
      오히려 일본넘어가서 더 풍족하게 살았다는게 현실..

    • @multibus2886
      @multibus2886 Місяць тому

      지금도 마찬가지. 근데 예전에는 시작은 강제로 데려간 거였지만 지금은 개인의 자유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탈조한다는 게 다르죠 ㅋㅋㅋㅋㅋㅋ

  • @LEE-je4rm
    @LEE-je4rm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카스텔라 듣기에 매우 거슬립니다 카스테라 라고 하시길!! 언제부터 카스텔라 라고 했다고 칫!

  • @johnathanha9340
    @johnathanha9340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일본 정부의 쇄국 정책과 선교 금지로 인해서 천주교가 전달되지 못한 점이 굉장히 아쉽네요. 지금이라도 일본 전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아멘+

  • @eunicejj2298
    @eunicejj2298 7 місяців тому +3

    한뚜껑 마눌 진가네딸 과 별거중이라는데 성괴가마니인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