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선조 같은 경우 어쨌든 밀어내는데 성공이라도 했지, 인조는 해딩 인사 박고 빌빌 거렸으니 왕의 위세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임. 심지어 반정으로 왕이 되었으니 사람들 보기에는 자격 없는 놈이 왕 되니 이 모양이다부터 왕이 되었으면 똑바로 하든지까지 아주 갖가지 욕을 먹었을 거고 그런 상황에서 세자 사후 저런 일단의 숙청 작업은 백성들에게 꼴값 떤다는 인식이 있었지 않나 싶네요.
실제로도 진짜인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갈때 얼어붙은 강을 강의 뱃사공에게 엎혀서 건너갔는데 그때 뱃사공이 한탄하며 말하길 이전 임금님이 잘 계셨는데 갑자기 창칼로 왕이 바뀌더니 이런 난리가 터졌다고 한탄하자 인조가 한숨을 쉬며 얼굴을 못들었다는데 후에 뱃사공이 임금인걸 알고 고개를 조아렸으나 처벌하지않았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아마 당대의 민심이었던듯...다만 광해군자체도 그렇게 좋은 왕은 아니었기에 반정자체가 명분이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인조가 중종처럼 반정 세력에게 옹립당하기만 한 건 아니고 어느정도 반정의 주동자로서 참여하긴 했습니다. 그만큼 나름 리더십도 있었고 광해군의 정치도 문제가 많아서 어느정도 명분이 있었죠. 다만 갑자기 급발진해서 선전포고에 가까운 격문을 청에 보내서 전쟁의 명분을 주고선 굴욕적인 패배 이후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인건 인조의 평생까임권 중 하나죠...
소현세자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된게 없습니다. 왕이 된적도 없고 정책에 관여한적도 없었기때문이죠. 긍정적인 내용이 나오는것도 청의 기록뿐이니 어느정도는 감안해서 들어야할것도 있고...다만 인조입장상 기분이 좋은건 아닌게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잡혀가있을때도 청에서 은근슬쩍 인조가 왕위에서 빨리 내려오기를 시사하기도 했고 인조의 왕권을 흔들려는 일을 하기도 했던지라 인조입장에선 좋은게 없었던...그리고 문종과 비교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건 아버지가 세종이어서 업적자체가 문종이 비교거리가 안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때는 왕권이 안정적이었던데다 외세가 흔들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명청교체기때는 청이 대놓고 간섭하려든데다 소현세자가 죽고난이후 손자들까지도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하는등(의도야 어찌됐건 정상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이후에 왕위계승과 정통성문제가 생길수있음...) 특히 전조인 고려때 원나라의 심양왕제도때문에 고려의 왕권이 많이 흔들렸던걸 감안하면 참작할 여지는 있습니다.
인조가 살아있을 동안은 왕권의 개입을 못하겠지만 인조가 사망한 이후에는 소현 세자의 아들을 이용해서 조선의 정통성을 주장할수 있기 때문에 인조의 입장에서는 소현 세자의 가족들을 전부 죽이는게 옳다고 생각했을거 같아요. 용골대가 어떤 의중에서 그런 발언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인조의 마음을 흔든건 사실이지요.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뽑은 가장 안타가워 하는 인물 1위가 소현세자인데 그 이유가 청나라에 볼모로 생활할때 수많은 신문물과 서양의 신문물도 직접 본 인물이라 인조에게 서를 보낼때 신문물 이야기가 많았다고 함 물론 인조는 그런거에 관심이 없었고... 만약 왕이 된다면 개방된 조선으로 탈바꿈할 기회라고 여김 그러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지게 됨
정사 조선왕조실록에 수상한 정황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죠. 고종 시기에 김홍륙 독다사건이 있었듯이, 조선시대에 독살사건이 전무했다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근대 형사소송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시되지만, 역사의 법정에서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신성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소헌세자는 서양의 선진문물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세자비는 상업에 아주 재능이 많아서 만일 왕이 되었다면 과학발전이나 상업에 좀더 정책을 할애했을거 같기는 한데...조선후기 사회가 정통 성리학틀 안에서 완전히 쳐 박힌 상태라서 왕 혼자서 잘 이끌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한켠 듭니다..게다가 그 유명학 송시열이 있던 시대라서...숙종같은 카리스마있는 똘끼 있는 왕이라 송시열 죽였지만...기록보면 소헌세자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같아서...
이건 제가 볼땐 인조가 노린 큰그림인것 같습니다. 만약에 소현세자가 병약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에 귀국후 세자를 제거까진 무리고 실추시킬 가능성 이 제일 높습니다. 알다시피 매우 병약한 상태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조 본인이 굳이 손댈 필요가 없고 상황만 지켜보고 움진일거라 추측됩니다. 타락죽을 준 이유도 조정사람들이 음모론을 꾸밀수 있는 귀찮은 일에 엮을수도 있었기에 아들이 걱정된다(?) 라는 뉘양스를 취한거라 생각됩니다. 정말 걱정 했었으면 본인이 직접 병문안 갔을텐데.. 그 이후 세자가 죽자 사건을 축소시키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제거 했으니 인조의 이상적인 그림이라 생각됩니다.
인조 아버지가 선조의 개망나니 아들 삼인방중 정원군이라는 사실 임해군이 워낙 독보적으로 미친짓을 마니해서 드라마 같은데서 비중이 좀 작게나올뿐이지 역시나 쓰레기 엿구요 죽기전에 광해에게 저주를 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인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게 인조 비겁하면서 무능한데 잔인하고 의심많은 성격 판박이 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사람의 현재 상태,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지요. 그리고 누군가에겐 약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기도 하구요. 특히 몸이 매우 안좋은 상태였다면, 제대로 된 치료법을 찾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되는대로 처방할 수도 있습니다. 즉... 빨리 죽도록 방기 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근데 인조 또한 이유없이 세자를 증오하진 않았는데 장남 소현세자의 경우 호란 이전에는 부자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며, 호란 이후 볼모로 잡혀간 아들들을 걱정하는 등 인간미가 있었죠 비록 호란을 겪으면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긴 했으나 세자가 죽자 일주일 동안 미음마저 먹지 않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애증이나마 최소한의 부성애는 남아있었는 것을 보면 과연 인조가 쇼현세자를 독살할지는 모르겠네요
음모론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전후 맥락인데 강빈은 왜 그리 미움을 받아야 했는지와 세손이 되야할 손자들이 유배를 가다 못해 전부 죽은 이유가 불명확합니다. 영상에도 이후 일들은 이상하지만이라고 하면서 음모론이다라고 단정하는 건 섣부릅니다. 학질은 한반도에 흔한 병도 아니고 남쪽도 아닌 연경에서 온 세자가 학질이란 것도 이상한데 학질로 단정시킨 것도 이상하고 고작 타락죽 내렸다고 인조가 세자를 미워한게 아니다라는 얘기도 말이 안됩니다. 추가로 시신을 감추려는 시도도 안했다라는 것도 어쩌면 오히려 결정적 증거가 아닌이상에야 본보기로 일부러 의심을 살만큼 보여준 걸수도 있죠
죽이지 않았다면 소현세자 죽음 이후의 일들은 지극히 인조의 인간적인 부분이라 생각할만하네요. 1. 어의를 두둔한 건, 그냥 인간적으로 실수할 수 있다. 어차피 정확한 병을 몰라 죽은 것이니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라고 생각햇을법함. 2.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와의 관계가 불안정한데 세손에게 종묘사직을 맡기기엔 세손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그 어린 세손을 좌지우지할 외척 세력을 경계했을 수 있다. 3.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혹시라도 역모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강씨를 죽인 것. 물론 유배로 끝낼 수 있었겠지만 죽인거라면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4. 봉림대군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세손들을 유배보냄. 이라고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오늘 업로드 예정이었던 제헌절 영상은 사정으로 인해 주중으로 업로드로 미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됑
퍄퍄킴 1212군사 반란 영상 만들어주세요 제발 ㅠㅠ
퍄퍄킴 무신정권도 해주세요ㅠ
소현세자는 죽은뒤에 인조가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죠.
다른건 음모론이라고 어떻게든 넘길수있어도, 죽은 뒤에 해준 대우는 심하게 문제가 많아서요.
제 생각에는 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쟁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세자 장래까지 하면 백성들 세금을 더 거둬야 하잖아요
진짜... 소현세자의 독살 의혹이 안그래도 안좋은 인조의 이미지를 조선 사상 최대 최악의 암군으로 만드는데 결정타를 날린 듯...
풍토병+생활패턴의 변화+스트레스+약골+면역력 약화 거기에 온갖 약재 때려박아 간이 못버틴 것도 한몫한 듯
저런 소문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으며 퍼질 정도면 인조의 인망은 진짜 바닥의 바닥을 제대로 뚫었다는 의미이지요.
솔직히 선조 같은 경우 어쨌든 밀어내는데 성공이라도 했지, 인조는 해딩 인사 박고 빌빌 거렸으니 왕의 위세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임. 심지어 반정으로 왕이 되었으니 사람들 보기에는 자격 없는 놈이 왕 되니 이 모양이다부터 왕이 되었으면 똑바로 하든지까지 아주 갖가지 욕을 먹었을 거고 그런 상황에서 세자 사후 저런 일단의 숙청 작업은 백성들에게 꼴값 떤다는 인식이 있었지 않나 싶네요.
선조보다 더했쥬
병자호란 때 김상용이 강화성에서 화약더미에 불을 지르고 자폭해 죽었는데 자격지심에서인지 담배피다가 죽은거라고 음해하고 순국대우도 안해주다가 뒤늦게서야 인정하기도 했으니
실제로도 진짜인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갈때 얼어붙은 강을 강의 뱃사공에게 엎혀서 건너갔는데 그때 뱃사공이 한탄하며 말하길 이전 임금님이 잘 계셨는데 갑자기 창칼로 왕이 바뀌더니 이런 난리가 터졌다고 한탄하자 인조가 한숨을 쉬며 얼굴을 못들었다는데 후에 뱃사공이 임금인걸 알고 고개를 조아렸으나 처벌하지않았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아마 당대의 민심이었던듯...다만 광해군자체도 그렇게 좋은 왕은 아니었기에 반정자체가 명분이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선조랑은 비교도안되는 찌질이인조 ㅋㅋㅋㅋㅋ
조선의 변화를 일으킬수 있던 세자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래도 봉림대군이 잘했어서 ㄱㅊ은듯
근데 소현세자가 왕이 됬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효종 정도면 인조의 백업플랜이 성공한거 아닌가요
골골거려서 왕건을 불안하게 하는 소현세자보다는 능력도 비슷한 봉림대군으로 교체한건 잘한거죠
그리고 백업 플랜의 위협이 되는 소현세자의 자식과 아내의 일족을 친것도 잘한것같아요
능양군처럼 망나니 오랑캐에 삼전도에서 굴욕먹은것에 비하면 소현세자 효종은 잘했음
다만 북벌을 못한게 아쉬울뿐
저는 효명세자가 먼저 떠오르네요..진짜 요절 안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의주로 도망가는 선조처럼 달려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늦게 오셨네요
선조정도면 그래도 명군까진 아니었는데 중타는 치는거 아님? 명 마지막 황제는 대신들말 믿고 원숭환 죽였는데 선조는 그래도 이순신 복직도 시켜주잖아 물론 나중에 임진왜란 공신 올릴때 무신은 3명밖에 안올린건 킹받긴 하지만
개빨리 온거 아님??
강화도로 도망간 인조보단 빨리 오셨네요
진짜 인조는 제대로 한게 뭐고 왜 반정을 해서 광해군 제거한거임?? 아무리 무능력해도 잘한부분이 조금은 있어야하는데 이 놈은 도저히 각이 안보임 ㄹㅇ
아버지 정원군의 유언도 한몪햇을거구요 죽기전에 광해를 저주하고 죽었다고 하니까요 지 나름대로 아버지의 복수 반정일당들이 보위에 오르라하니까 냉큼 받았겟죠
우린 그런걸 권력욕의 화신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습니다.
정통성이라곤 1도 없는 능양군이 왕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욕을 들어먹을 일입니다.
그리고 병자호란이 그 병신력에 방점을 찍은 일이 된 것이고요.
인조가 중종처럼 반정 세력에게 옹립당하기만 한 건 아니고 어느정도 반정의 주동자로서 참여하긴 했습니다. 그만큼 나름 리더십도 있었고 광해군의 정치도 문제가 많아서 어느정도 명분이 있었죠. 다만 갑자기 급발진해서 선전포고에 가까운 격문을 청에 보내서 전쟁의 명분을 주고선 굴욕적인 패배 이후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인건 인조의 평생까임권 중 하나죠...
광해군이 나라를 못 굴렸으니까...
소현세자 부인과 자식들까지 싹다 죽였는데 독살이 아니라고 하는게 더 이상함
소현세자 죽고 봉림대군으로 세자 바꾼 상황에서 소현세자 가족들은 왕권에 위험될뿐임 정치적으로는 제거하는게 맞지
@@Turn-Off ㅋㅋㅋㅋ 그럼 세종은 양녕대군 몰살시켜야 맞는거에요? 공부 좀 하고 떠드세요 ㅎㅎ
ㄱㅅㄲ 같은것을 자식이라고 하니( 실제로 기록된 말)
@@Turn-Off 그러니 의도적인 죽음이 맞는거지 그럼 사도세자 죽고 곧바로 정조를 후계자로 한건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연구가 쌓이면서 전엔 사실로 여겨지던 것들이 하나씩 파훼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소현세자는 ㄹㅈㄷ 였지... 성군 중 하나였는데. 왕비도 어마무시했고
선조는 ㅆㅂ... 어차피 아들내미한테 물려줄 건데.. 시기를 왜 하나..
자기 보다 잘났으면 오히려 기뻐해야지.. 내 대신 일해줄 건데
그러게요, 문종의 경우처럼 대리청정 하다가 세운 업적도 자연스레 본인 업적으로 인식 되는데요.
본인이 잘 났다고 확신을 못 하면 라이벌로 의식 되나봅니다.
@@어다-s6b 선조 아니고 인조
그래도 봉림대군(효종)이 명군이었어서 다행이죠.
@@Goosebump2 확실히 학계에서도 효종과 그가 다스리던 시절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가 두드러지더라고요. 전후복구 농업생산량 향상과 상업 발달 국제무역을 통한 이득, 시스템정비와 국방강화
소현세자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된게 없습니다. 왕이 된적도 없고 정책에 관여한적도 없었기때문이죠. 긍정적인 내용이 나오는것도 청의 기록뿐이니 어느정도는 감안해서 들어야할것도 있고...다만 인조입장상 기분이 좋은건 아닌게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잡혀가있을때도 청에서 은근슬쩍 인조가 왕위에서 빨리 내려오기를 시사하기도 했고 인조의 왕권을 흔들려는 일을 하기도 했던지라 인조입장에선 좋은게 없었던...그리고 문종과 비교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건 아버지가 세종이어서 업적자체가 문종이 비교거리가 안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때는 왕권이 안정적이었던데다 외세가 흔들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명청교체기때는 청이 대놓고 간섭하려든데다 소현세자가 죽고난이후 손자들까지도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하는등(의도야 어찌됐건 정상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이후에 왕위계승과 정통성문제가 생길수있음...) 특히 전조인 고려때 원나라의 심양왕제도때문에 고려의 왕권이 많이 흔들렸던걸 감안하면 참작할 여지는 있습니다.
정확을 보면.. 세자는 원래 몸이 약했음 -> 청나라 조정에서도 인질이 죽으면 외교적으로 골치 아플거 같아 돌려보냄 -> 타이밍 딱 맞춰 죽음 -> 인조는 병약한 아들을 돌보지 않은 며느리가 괴씸해서 숙청함 -> 기왕 이렇게 된거 후계구도 정리겸 그 자식들도 숙청.
와 이거는 좀 설득력이 있는 추리다
적장자의 후손인 자기 손자들을 유배 보내서 죽인다고요? 세조도 찬탈한것
때문에 두고두고 까였는데.
@@노약자-w5k말이 적장자지 인조가 이미 자기 차남을 왕세자로 임명했는데 손자들은 그냥 도움안될 왕족들일뿐이지. 음모론 다 재끼고 진짜 자연사한게 맞다면 이분 말이 맞겠지. 아니면 진짜 인조가 죽인거거나
독살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며느라 잡아죽이고, 그리고 할아버지라는 작자가 손자들을 잡아 죽인 것이 그 이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
진짜 죽은 후 대처를 보면ㅋㅋㅋ 확실히 인조는 지 아들이 잘 죽었다 생각했을 것 같아서 찝찝해짐...
최고의 암군...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용골대가 고의는 아니었지만 소현세자 아들들 다 죽인거라고 봅니다. 인조 입장에서는 세자가 안미웠을수는 있어도 세자빈 아들들이 청나라로 가면 얼마든지 정통성 내밀고 재침공 해올 명분거리가 되니 어떻게든 손자들은 반드시 처리했어야 한거죠. 용골대의 발언때문에
인조가 살아있을 동안은 왕권의 개입을 못하겠지만 인조가 사망한 이후에는 소현 세자의 아들을 이용해서 조선의 정통성을 주장할수 있기 때문에 인조의 입장에서는 소현 세자의 가족들을 전부 죽이는게 옳다고 생각했을거 같아요.
용골대가 어떤 의중에서 그런 발언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인조의 마음을 흔든건 사실이지요.
인조의 평가가 얼마나 박했으면 자기 아들도 독살했다는 음모론이 도는건지ㄷㄷ
인조도 아버지인데 자식을 아꼈고 당연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살리려 했겠지만 시대적 한계가 있으니 그것도 어려웠을거고...
여기서도 또 뵙네여....
명청 공존기에 왕ㅋㅋ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노ㅋㅋ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뽑은 가장 안타가워 하는 인물 1위가 소현세자인데
그 이유가 청나라에 볼모로 생활할때
수많은 신문물과 서양의 신문물도 직접 본 인물이라 인조에게 서를 보낼때 신문물 이야기가 많았다고 함 물론 인조는 그런거에 관심이 없었고...
만약 왕이 된다면 개방된 조선으로 탈바꿈할 기회라고 여김 그러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지게 됨
만약은 없지만 소현세자가 왕이 됐다면 북학이 훨 빨리 조선으로 돌아왔을텐데
@@Jaemmin_jae 그래서 죽었다는 음모론..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픈고영희 표현너무 귀엽게 잘하세요 너무 귀엽고 유익합니다!!
그나마 효종이 조선 중기 최상급 명군이어서 다행이었지... 그냥 무난한 군주가 재위했다면 참 아까운 세자였을듯 합니당
다만 소현세자 사망 이후로 빠른 숙청은 인조가 의도한 것인듯
소현세자의 아들이 세자가되고 왕이되었으면 그야말로 적통인데... 그어린것이 얼마나 원통했을까..
다른 유툽 채널에서는 소현세자 사인을 지금도 위험한 질병인 제1형 당뇨를 언급하던데..
만일 이게 정말이라면 그 당시에 인슐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관련 지식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죽는 건 시간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조선왕들 유전적으로 당뇨에 취약했을거란 이야기도 있죠. 환경자체도 당뇨가 오기 쉬운 상태였구요.
이 영상때문에 구독합니다.
'타락죽'이라는건 '우유죽'을 의미하는 겁니다. 젓을 짜내기 위한 젓소가 없었던 시절이다 보니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죠
방금 차에서 내려서 영상 올리신지 16분 후에 왔습니다. 다음부터는 더 일찍 오도록 하겠습니다.
소현세자가 많은 질병을 얻은 것은 처음 들었는데, 정말 소름끼쳐!! 😱
인조가 영상 업로드했나??
손처경이 소현세자의 아들이라고 사기를 쳤다가 걸렸던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결국 죽이고싶었지만 죽인건 아니구나 안그래도 치우고 싶던 놈인데, 유교적으로 아들 죽이는것도 옳지 못하고 중국 눈치도 보이고 , 그 와중에 잘 죽어줘서 치워버린 느낌인듯
런조는 잘 런 한데다가 광해를 죽이지 않았음
런도못한조는 런도 못하고 아들도 죽임
한국사 최악의 암군이 아니면 누가 최악의 암군인지..
이괄의 난 때는 런 성공했는데
@@LF-mz5if그래서 런 확률 100퍼임?
최악의 암군은 순조인듯 ㅇㅇ 인조는 망조가 들게 하진 않았지만 순조는 망조가 들게했음
선조는 광해군 빼면 선택지가 없었기때문에 못죽임 ㅋㅋ 임해군 정원군 순화군 죄다 조선 역사상 탑티어 사이코패스들이라
편집자라도 더 구하셔야되나 넘 바쁘신듯 ㅠㅠ
@@shipduck111 주제 정하는 것도 시간 걸리는데 죄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드시니 시간 걸리는건 어쩔수 없는듯
남한산성에 틀어박힌 인조처럼 기다렸습니다
사실 독살설이 나오는 이유는 세자빈과 소현세자 자식들, 즉 손자들에 대한 핍박이 크죠.
영조의 게장에 들어있던 게 처럼 달려왔습니다
퍄퍄킴 1일 5영상 올려야되면 개추
인조는 진짜 괴담밖에 없다
소현세자 불쌍 ㅜ
동영상 만드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봤습니다
그것 때문에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주제가 되죠
추노 라던가
숙종도 그렇고 경종도 그렇고 영조도 그렇고...
정원군 혈통이여서 그런가? 어떻게 왕이랍시고 있는 인간들이 다들 정신적으로...
정사 조선왕조실록에 수상한 정황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죠. 고종 시기에 김홍륙 독다사건이 있었듯이, 조선시대에 독살사건이 전무했다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근대 형사소송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시되지만, 역사의 법정에서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신성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있다는 증거가 없으면 없는거고 무슨 무죄추정ㅋ 갑자기 역사의 법정은 왜 튀어 나오는지ㅋㅋ
사실 소현세자가 조선의 모든 백성들 독살하려다가 실수로 본인이 먹은겁니다. 연쇄 살인마임
아니면 아니라는 증거 가져오세요 ㅋㅋ
잉굴다이 호감도 미쳤네 소현세자 자식들 까지 챙길 줄이야 0:47
소헌세자는 서양의 선진문물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세자비는 상업에 아주 재능이 많아서 만일 왕이 되었다면 과학발전이나 상업에 좀더 정책을 할애했을거 같기는 한데...조선후기 사회가 정통 성리학틀 안에서 완전히 쳐 박힌 상태라서 왕 혼자서 잘 이끌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한켠 듭니다..게다가 그 유명학 송시열이 있던 시대라서...숙종같은 카리스마있는 똘끼 있는 왕이라 송시열 죽였지만...기록보면 소헌세자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같아서...
송시열은 산당에있다가 효종이 조정으로 부른거아닌가
별 차이는 없을거임
뜯어보면 그 당시 가장 합리적인게 거기서 거기임
소현세자 사후 흔적 지우기가 음모론이 아닐 거 같은 심증이
안녕하세요 본인입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선조 = 런조
인조 = 런못한조....
독살은 아니고, 옳다구나 한 면은 있을듯
어렸을 때 만화로 인조가 벼루를 던져 죽였다고 봤었는데.. 이런 야사가 돌 정도면 인조는 대체 어떤 왕이었을까?
이건 제가 볼땐 인조가 노린 큰그림인것 같습니다. 만약에 소현세자가 병약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에 귀국후 세자를 제거까진 무리고 실추시킬 가능성 이 제일 높습니다. 알다시피 매우 병약한 상태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조 본인이 굳이 손댈 필요가 없고 상황만 지켜보고 움진일거라 추측됩니다. 타락죽을 준 이유도 조정사람들이 음모론을 꾸밀수 있는 귀찮은 일에 엮을수도 있었기에 아들이 걱정된다(?) 라는 뉘양스를 취한거라 생각됩니다. 정말 걱정 했었으면 본인이 직접 병문안 갔을텐데.. 그 이후 세자가 죽자 사건을 축소시키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제거 했으니 인조의 이상적인 그림이라 생각됩니다.
픽션이 가미 됐지만 그래도 올빼미 보면서, 인조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름,,최악의 왕
퍄퍄킴 1212군사반란 영상 만들어줘요 ㅠㅠ
독살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들의 죽음에 옳다구나를 외쳤지 슬퍼하지는 않았을거 같다
영화 올빼미도 소현세자 독살설을 전제로 만든 영화죠
태평천국의 난도 다뤄줄수 있나요?
유튜브를 보면 저 독살설 다룬 영상 있는데 거기 보면 독살이 아니라 당뇨 합병증으로 추정된다고 했죠
세계사 프랑스대혁명 영상 만들어 주세요 제발요 🙏 😭
이후로 나락...ㅜㅜ
음모론 이라니! 파파킴 이번 동영상은 쫌 마니 괴상하다
인조 아버지가 선조의 개망나니 아들 삼인방중 정원군이라는 사실
임해군이 워낙 독보적으로 미친짓을 마니해서 드라마 같은데서 비중이 좀 작게나올뿐이지
역시나 쓰레기 엿구요 죽기전에 광해에게 저주를 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인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게
인조 비겁하면서 무능한데 잔인하고 의심많은 성격 판박이 입니다
용골대가 왜 소현세자의 아들을 데려다가 키우려고 한거지??와 몰랐던 새로운사실 궁금하네. 유배를 풀어주려 그랬던건지…아니면 소현새자하고 사이가 좋아서 그랬던건지 궁금하네
소현세자의 죽음이 음모론이라고 하기엔 세자빈과 자식들까지 그렇게된걸 보면 인조의 행동이 심하긴하죠
세자 죽은 김에 소현세자 가족을 몰락 시켜서 권력을 다질려고 한 것 같음 ㅇㅇ
5:22 'XXX 같은 것'이라고 해서 조선왕조실록에 순도 100%로 기록된 유일한 욕설 대목이라던가....
인조 입장에서는 제위 기간 동안 왕이 병에 시달리면 안되기 때문에 소현세자의 자식들도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차남을 세자로 책봉하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선의 역사가 늘 그러했듯이 왕권을 위해 자식 혹은 형제 조카를 죽이는 일은 빈번했습니다.
경종독살설도 궁금합니다 이금의 소행이 맞을까요
경종이 승하할 때 곁에 있었던 처남 심유현이 영조가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올려 죽였다고 한 발언이 이인좌의 난의 명분과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자가 울화병이라는게 슬프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사람의 현재 상태,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지요. 그리고 누군가에겐 약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기도 하구요. 특히 몸이 매우 안좋은 상태였다면, 제대로 된 치료법을 찾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되는대로 처방할 수도 있습니다. 즉... 빨리 죽도록 방기 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카카오맵 인조묻혀 있는 파주 장릉 보면 별점 개박살 남ㅌㅋㅋㅌㅋㅋ
결국 인과응보라고 해야할까요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죽여가면서 정통성을 보장하려 했던 효종의 직계는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온갖 고초를 겪은 소현세자의 후손들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인과응보라기 보다는 효종 이후로 조선 왕실에 저출산 현상이 발생함. 죄다 1명 정도에 자손이 없는 왕도 있었음. 근데 뭐 역모나 이런거에 휘말려서 죽는 경우도 허다해서 이게 더 심해졌고 결국 철종 대에서 직계는 끊겨버림.
젊은나이에 단순질병으로 죽는다? 납득은 안되네요 독살이라기엔 증거가불분명하고
근데 인조 또한 이유없이 세자를 증오하진 않았는데 장남 소현세자의 경우 호란 이전에는 부자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며, 호란 이후 볼모로 잡혀간 아들들을 걱정하는 등 인간미가 있었죠 비록 호란을 겪으면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긴 했으나 세자가 죽자 일주일 동안 미음마저 먹지 않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애증이나마 최소한의 부성애는 남아있었는 것을 보면 과연 인조가 쇼현세자를 독살할지는 모르겠네요
자식한테 개xx라는 욕을 한 것도 모자라 손자들도 제주도에 방치해서 죽게 만들고. 대체 왜 묘호가 어질 인을 쓴 인조인지 알 수가 없는 왕 ㅋㅋㅋ
효종의 입김
도망은 잘 가는 페급 두 아빠 선조와 인조
@@user-gx3if2hl1h 정작 능양군은 선조와 달리 런도 못쳐서 잡힘ㅋㅋㅋㅋ
오랜만에 한국사라 재밌네요
'누가 세자에게 벼루빡을 던졌을까?'
저자: 이종, 출판사: 삼전도, 가격: 1.645 만원
지극히 소중국스런 역사
이연 이종 이명복 3대 암군
형 사랑해
올빼미 인가 거기서 주인공이 세자가 독살되는걸보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알 유튜브에 부검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사료에 나온 증상들을 볼때 학질이 아니라 제 1형 당뇨를 앓았다며 당뇨병성 케톤산증을 사인으로 보고 있더군요.
칠천량에서 도망친 원균처럼 달려왔습니다
5일만에 한양에 도착한 팔기군처럼 달려왔습니다
음모론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전후 맥락인데 강빈은 왜 그리 미움을 받아야 했는지와 세손이 되야할 손자들이 유배를 가다 못해 전부 죽은 이유가 불명확합니다. 영상에도 이후 일들은 이상하지만이라고 하면서 음모론이다라고 단정하는 건 섣부릅니다. 학질은 한반도에 흔한 병도 아니고 남쪽도 아닌 연경에서 온 세자가 학질이란 것도 이상한데 학질로 단정시킨 것도 이상하고 고작 타락죽 내렸다고 인조가 세자를 미워한게 아니다라는 얘기도 말이 안됩니다. 추가로 시신을 감추려는 시도도 안했다라는 것도 어쩌면 오히려 결정적 증거가 아닌이상에야 본보기로 일부러 의심을 살만큼 보여준 걸수도 있죠
그당시 약물 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으로 보는것도 괜찬을것같습니다
소현세자가 왕위에 즉위했다면... 크게 가보면 국권침탈까지도 막을 수 있었을듯
불가능
효종도 충분히 명군인데..
세도정치가 말아먹은거라 그건 모르지
죽이지 않았다면 소현세자 죽음 이후의 일들은 지극히 인조의 인간적인 부분이라 생각할만하네요.
1. 어의를 두둔한 건, 그냥 인간적으로 실수할 수 있다. 어차피 정확한 병을 몰라 죽은 것이니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라고 생각햇을법함.
2.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와의 관계가 불안정한데 세손에게 종묘사직을 맡기기엔 세손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그 어린 세손을 좌지우지할 외척 세력을 경계했을 수 있다.
3.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혹시라도 역모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강씨를 죽인 것. 물론 유배로 끝낼 수 있었겠지만 죽인거라면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4. 봉림대군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세손들을 유배보냄.
이라고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소현세자가 한 것 중 서구 문물에 대한 관심은 그 이 후 왕들이 쭉 보여줬고
천주교회에 대한 관심은 아담 샬 개인의 기록에만 나와서 ......
이렇게 보면 소현세자는 닥히 고평가 받을 만한 실체가 없는 사람이지요
증상이나 경과에 따른 진행을 보면 1종 당뇨라고 보는 사람이 많더군요.
청나라도 후금을 본받아 개혁개방을 했으면 아편전쟁은 없었을텐데...
후금이 대체 뭔 개혁개방을...?
후금이 청나라인데
중국정복하고 이름만 바꾼거ㅋㅋ
그런가요?
법의학자분 말씀으로는...1형 당뇨 아닐까 추측하시더락요. 일단 확실히 독살은 아닌것으로 보입니다.
ua-cam.com/video/35uSrYTA5To/v-deo.htmlsi=dSL7NbcQxJaygP5N
고종:최소한 잘해보려는 시도는 함
인조:그런 시도 조차 안함
3빠 퍄퍄 사랑해요💜❤
선조도 광해군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그며느리와 자식들까지 죽이는 미친짓은 안했다.
제 생각으로는 세손에게 왕위를 넘겨줬다가는 다시 반정이 날 수 있음을 걱정해서 차남을 세자로 정했고 후에 세손복위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소현세자 일가족을 몰락시킨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