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21세기와 이데올로기2(Slavoj Zizek On Russo-Ukraini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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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6 січ 2025

КОМЕНТАРІ • 55

  • @강수빈-j9t
    @강수빈-j9t Місяць тому +2

    선생님 돌아오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어니스트-z3k
    @어니스트-z3k Рік тому +14

    안녕하세요 내일 군에 입대하는 20대 초반 남자입니다. 군대에 입대한다고 예전부터 약속했던 친구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눠봤지만 막상 놀아보니 큰 재미도 없고 새로운 영감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미뤘던 책을 읽고, 언젠가 봐봐야지 했던 철학 영상들도 봐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skj님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정주행하면서 모든 댓글들을 전부 읽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토론들은 당연하게도 못읽었습니다) skj님이 번역해주신 영상들은 정말 흥미롭고 지적인 영상들로 제게 큰 영감과 제 낮은 수준에서 놀라운 지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댓글들에 일일이 답변해 주시면서 그 답변의 깊이와 노고에 감동받았습니다.
    영어를 해석할때 그 단어의 정확한 이해의 수준이 낮고 영어로 된 양서들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저로선 바로 받아드릴 수 있는 한국어로 이정도로 질 높은 영상을 볼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기회이자 경험이었습니다. 정말 큰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 @박근영-t6i9c
      @박근영-t6i9c 6 місяців тому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똑같네 나도 군대가기 전에 딱 이랬는데 물론 지금은 게임만 하는 백수임ㅋㅋㅋ

  • @ryudongmin
    @ryudongmin Рік тому +10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당

  • @dasistnacht
    @dasistnacht Рік тому +1

    오랜만에 지젝영상 찾아보다 뵙네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siryunim
    @siryunim Рік тому +1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송송포
    @송송포 Рік тому +1

    돌아오셨네요 감사합니다

  • @Schön-g5h
    @Schön-g5h Рік тому +1

    정말 대가의 가르침입니다.

  • @seonkyupark5432
    @seonkyupark5432 Рік тому +1

    땡큐

  • @fccf3965
    @fccf3965 Рік тому +2

    다시 돌아오셨군요ㅎㅎ

  • @리콜-p2v
    @리콜-p2v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여기에 부탁드려도 될지. AI 관련한 최신 담론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보석같은 영상 감사합니다.

  • @maypark01
    @maypark01 Рік тому +1

    skj님 사고하시는 게 정말 깊다고 느껴집니다. 어떻게 그런 사고능력과 언어능력을 기르셨나요?

  • @cigocy1146
    @cigocy1146 Рік тому +3

    복귀하셨군요
    감사합니다😂

  • @sjc1483
    @sjc1483 Рік тому +1

    King is back

  • @Kyudong69
    @Kyudong69 3 місяці тому

    선생님 어디 가셨나요? 돌아와주세요...

  • @강수빈-j9t
    @강수빈-j9t Рік тому +1

    sk j님 질문이 있습니다!!
    1. 혹시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에서 지젝이 설명하는 주체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혹은 지젝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라는 책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건지 조금이나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솔직히 좀 벅찬 것 같아서 sk j님의 의견을 비교해가며 읽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젝이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흔히 견고하게 외적 현실이라고 믿고 경험하는 것의 토대가 되어주는 '주체'는 사실 대타자에 의해 쓰여진 주체이다.
    즉, 진정한 현실(이라고 믿는 그것은) 이미 그 자체가 가상현실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주장하는 주체란 무엇인가?) - 진정한 의미에서 주체란 그러한 상징, 혹은 기표들의 내부에서 그것들의 분열을 초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틈, 혹은 텅 빈 무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손대기 전의 순수한 진리를 담고 있는 자연 같은 저 너머의 실체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징적 담화에 들어섬과 동시에 우리의 내부에 함께 들어서는 틈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지젝이 여기서 칸트 마르크스 헤겔 등등을 버무리고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에서 레플리칸트를 끌고 인공지능까지 설명하는데 잘 이해가 안가서욥...
    2. 그리고 실재계를 예전에 설명해주셨을 때 실재계가 사물에 대응한다고 하셨는데 혹시 여기서 '사물'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2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는 철학사를 재해석하면서 지젝 자신의 주체 이론을 세우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 맞습니다.
      '부정적인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개념인지 규정/미규정/재규정의 개념쌍으로 접근해봅시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은 속성(혹은 정체성)들의 합이라고 여깁니다. "나는 남자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어떤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고, 어떤 사상에 관한 어떤 견해를 갖고 있고..." 주체가 대타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말은, 이처럼 주체의 정체성이란 외부 타자와의 관계로부터의 구성물이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규정됩니다.
      자아란, 이와 같이 외부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구성된 특정 정체성, 혹은 그러한 정체성의 집합에 대한 동일시에 다름아닙니다. "나는 좋은 아들이고 아빠고 직원이고 시민이고 국민이고 자유주의자고 어쩌구..." 주체는 이러한 동일시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재前在자), 상징적 담화에 등록되고 질서잡히기 이전의 존재, 순수한 잠재성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주체는 규정들의 미규정된 토대입니다.
      지젝이 주체를 이론적으로 벼리는 데 애쓰는 것은, 규정/미규정의 관계 속에 있는 주체가 관계 자체를 재규정함으로써 심리는 물론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혁은 사회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행위입니다. 혁명은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행위를 말합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은, 소모품으로 창조된 인조인간 레플리컨트가 자신을 쫓던 주인공의 목숨을 구해줌을 통해 그에게 공감 능력은 물론 윤리적 선택을 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성을 획득'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이 '주체적 행위'이며, 관계 자체를 다시 씀으로써 레플리칸트의 규정 자체가 변합니다.
      사물은 그것이 지닌 속성들의 합이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미규정된 잠재성을 품고 있습니다. 지젝은 이 미규정성이 규정된 속성들의 토대이며, 사물의 이름이란 이 미규정성을 포함해서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속성들을 지닙니다. 기계고, 연료로 작동하는 엔진을 가졌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고, 방향과 속도를 조작하는 기능이 있고 등등... 이 속성들 중의 특정 일부만을 가리켜서는 자동차일 수 없습니다. 또한, 자동차는 이 속성들의 집합일 뿐 아니라, 무언가 다른 잠재성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 자동차는 화석 연료로 작동하는 엔진이나 부릉부릉 소리 대신에 다른 속성을 지니지만, 여전히 자동차에 포함됩니다(또는 우리가 관습적 용법의 확장으로써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간략히 말해 사물이란 '규정된 속성들+미규정된 잠재성'입니다.

    • @강수빈-j9t
      @강수빈-j9t Рік тому +1

      @@skjcast 오 그러니까 지젝이 주체와 사물을 같은 위치에 놓는 것을 저 질서 잡히기 이전의 존재(새롭게 재규정될 수 있는 가능성)를 포함한다는 뜻에서 같은 위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겠군요 마치 2 = 2+'0' 처럼요
      그런 의미로 본다면, 주체와 사물이 모두 자신 안에 공백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혹은 서로에게 열려있다는 의미에서의 상호성)자체가 열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나요?
      아니면 단순히 현재의 사태(상징계, 이데올로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으로만 봐야할까요?
      감사합니다~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1

      지젝의 주체론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주체의 죽음'에 맞서 주체의 위상과 주체적 행위의 가능성의 윤곽을 포착함으로써 윤리학의 초석이 된다면, 지젝의 타자론은 "자유롭게 결단하는 그러한 주체들이 어떻게 서로 공존할 수 있는가?"를 핵심 문제로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원성과 그 조율이라는 현대 정치학의 근본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에 의해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고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에 선천적으로 위치와 역할이 매겨져 있습니다. 반면에 근대화된 사회는 제도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근본 원리로 합니다. 안팎으로 끊임없이 타자성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되는 것은 이 시대의 구성 원리 자체에 내재된 증상입니다.
      지젝에 따르면 타자는, 자기가 아닌 타자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질적이고 성가시고 괴물 같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타자는 적대적이고 한편으로는 매혹적이기도 합니다. 타자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구속력 있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며, 근대화된 사회들은 이를 조율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역사적으로 형성 발전되어 온 제도를 채택합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에 접어든 현대 사회는 역사인식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테크놀로지, 글로벌 환경 이슈, 다국적기업의 출현, 포퓰리즘의 득세, 새로운 국제적 긴장 등을 민주적 절차나 논의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젝의 비판입니다. 지젝은 좌파들조차 더는 문제삼지 않는 자본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역사적 지평을 공유할 때에 현재 만연한 국지적이고 파편화된 저항을 넘어서 보편적 투쟁과 연대가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한물간) 고전적 좌파를 자처하면서 우파는 물론 리버럴, PC주의 등 주류 좌파를 모두 비판하고 헤겔 역사철학,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사회변동론, 라캉 정신분석학을 사회심리와 문화에 적용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현대에 다시 엮어내는 것이 지젝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어니스트-z3k
    @어니스트-z3k Рік тому

    사랑해요

  • @seneca-c5u
    @seneca-c5u Рік тому +1

    웰컴..ㅠㅠ

  • @철학종교신화
    @철학종교신화 Рік тому +3

    sk j님 혹시 글 읽는 법에 대한 질문에 답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국어국문학과라고 하신 게 기억이 나서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위 영상과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혹시 여러 질문에 대해 답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성, - 적, -도로 끝나는 말
    (ex -성: 사회성, 체계성)
    (ex -적: 사회적)
    (ex -도: 기여도)
    1. 각각 -성,-적,-도를 가리키는 문법적 이름은 무엇인가요? (어미? 관형사? 등등)
    2. paraphrasing 바꿔 읽기 하는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의역?)
    (그대로 읽지 않고 풀어서 매끄럽게 번역해서 읽고 싶어요)
    (글을 잘 읽는 사람은 문장을 자유자재로 변형해가면서 읽더라고요. 그래서 추상 명사 등을 분해해서 읽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3. 관련 공부하면 좋은 책 추천 부탁
    (학문이 외국이 주류라 국내에 번역투 글들이 많으니 번역 관련 책 읽는 것도 괜찮은가요?)
    ex) [지문] 관료제는 그 내적인 '필요성'에서 행정의 합리적 수단을 창출하게 되었다
    [번역 예시] 내적인 필요성 = 스스로가 필요해서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2

      언어는 기호의 일종입니다. 기호 가운데 고도로 추상화된 종류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언어는 일종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 그림이지요. 저는 텍스트를 일종의 그림처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사회라는 단어를 볼 때 저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자원과 물자가 교류되는 사회공간을 떠올립니다. 사회에 관한 진술을 이해하기 위한 밑그림인 셈입니다.
      1. '-성, -적'은 접사, 그 중에서도 접미사입니다. '-한 성격이 있음' 등의 뜻을 더해주는 문법적 표지입니다. 도는 정도를 나타내는 한자어(국어에 수용된 한자어)입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사회성(사회+-성), 사회적(사회+-적)은 파생어이고 기여도(기여+도)는 합성어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문법은 언어라는 기호를 결합하는 규칙의 체계입니다.
      2. paraphrasing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내용을 다른 맥락 속으로 풀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관해 대학생에게 말하는 것과 초등학생에게 말하는 것은 다른 표현 방법을 요구합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과 공적으로 말하는 것, 남자에게 말하는 것과 여자에게 말하는 것, 노인에게 말하는 것과 아이에게 말하는 것 등 다른 맥락을 타면 다른 표현이 흐르고 그중 더 적합한 것이 발견됩니다.
      3.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우선 '내적인 필요성'을 '스스로가 필요해서'로 번역하는건 딱히 유용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 효율적인 표현을 덜 효율적인 표현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바뀐 점 정도일 것 같습니다.
      번역투 글에 관한 질문이 나오게 된 맥락을 짚어드리는 정도가 제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요성'은 'necessity'의 번역어고 이는 '-ity' 접미사가 붙어 파생된 단어로 우리말의 '-성'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들어온 것으로, 대부분 문물이 아시아 선진 근대화 국가였던 일본을 거쳐 유입되는 역사적 배경 하에서 우리말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본래 없던 용어를 일본어 번역을 거쳐서 수용하다 보니 순우리말과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생긴 것입니다. 근데 근대화라는 것은 세계사적 흐름으로서 전통을 비틀고 그 위에 자리잡는 과정이고,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각국 어디든 그렇습니다. 개중 우리는 꽤나 근대화 과정을 잘 마치고 자립하는 데 성공한 편입니다. 물론 아직도 강대국반열에 들기는 부족한 편이기는 합니다.
      저는 텍스트를 그림 보듯이 읽고, 중요한 그림을 직접 그려보면서 그림들 간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을 체크하고 비교하는 식으로 읽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know-how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이 읽기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개인적인 방법들은 저도 모릅니다. 본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끼는 본인의 특성에 맞는 방법을 발전시켜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언어의 역사성이나 내적인 구조를 이해한다면 텍스트 처리의 효율성이나 배경지식의 활용 면에서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첨언해드립니다.

    • @철학종교신화
      @철학종교신화 Рік тому

      ​@@skjcast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찾아보니 스키마 이론이라는 게 있더군요. 스키마는 지식을 표상하는 구조로 인식의 틀이라고 하네요. 텍스트를 도식화하며 읽는 훈련을 많이 하면 새로운 정보도 잘 처리할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 @handavid6421
    @handavid6421 Рік тому +3

    EBS 는 참 대단합니다. 수신료 70원의 기적...

  • @kxy88
    @kxy88 Рік тому +1

    복귀환영요

  • @oo-hu7wm
    @oo-hu7wm Рік тому +1

    안녕하세요! 좋은 영상과 글 늘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학생인데요, 혹시 간단한 조언 부탁드려봐도 될까요?!
    저는 (수험생으로서 몇 번 좌절한 경험이 있는데 이것과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신적으로 위험하다 싶을 만큼 공허함을 심하게 못 견디는 시기를 겪었는데, 그 시기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공허함,불안,실존,실재,…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영상이나 글들을 유튜브나 구글링하는 가벼운 수준에서 많이 접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여쭙고 싶습니다!
    Q1.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만큼 철학을 여태보다 더 와닿게 느껴보고 또 공부해보고 싶은데요, 대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 있을까요? 의도적으로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해보면서, 또 간간히 끌리는 책들을 읽어보고, 이런 식으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은 방향일까요?
    Q2.
    sk j님께선 저처럼 철학자들의 생각에 막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에, 어떤 식으로 철학자들을 더 알아가셨는지 궁금해요.
    답변하기 너무 번거롭고 내용도 붕뜨는 이런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ㅠ ㅠ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2

      안녕하세요ㅎㅎ 대학생이 되신 것 축하드려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해보시고, 대학 도서관을 끌리는 책들과 접하는 창구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oo-hu7wm
      @oo-hu7wm Рік тому

      @@skjcast 감사합니다🥺😉🤤

  • @권석민-z1h
    @권석민-z1h Рік тому +1

    형 왜 이제 왔어ㅠㅠㅠ

  • @미래인이세리
    @미래인이세리 Рік тому

    지젝 사랑함
    안티고네처럼 살자 다들

  • @강수빈-j9t
    @강수빈-j9t 8 місяців тому

    sk j 님 혹시 이-팔의 공거 가능성에 대해서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그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다룬 어떤 철학자에 대해서 읽었는데 그는 유대교 내부에 이미 이질적인 것이 기입되어 있다는 식으로 타자와의 공동 거주의 가능성의 논리를 전개하던데 제게는 조금 불충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질성이 우리 몸에 서로 다른 수많은 세포들이 협력해 하나의 신체를 구성하듯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간혹 암세포를 생각해보면 '나'라고 하는 신체는 그것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가지고 도려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즉, 이질성이 어떻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화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나의 지위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다음으로는 그러면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익숙함을 느끼는지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이미 들어와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하는데, 그 지식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부적절한 방식으로 집약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타자의 지위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다음으로는 관념 자체가 이질적(어떤 생각은 완전하게 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일 수 있다는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잘만하면 나에서 우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개념화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것이 실제 인간의 행동, 실천을 멈추게 하는 정도까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유=실천이 되어야 할텐데 지금으로써 제가 생각해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여기서 나와 너의 연결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인식론적인 것과 행동, 실천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체 개념을 넘어서는 주체 개념이 필요한 것 같은데.. 너무 어렵습니다 흑
    혹시 아이디어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욥! 감사합니다.

  • @원원-i9z
    @원원-i9z Рік тому

    Sk j님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신가요?

  • @치타목살
    @치타목살 Рік тому +1

    우왕

  • @강수빈-j9t
    @강수빈-j9t Рік тому

    sk j 님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시간 괜찮으실 때 읽어주세용 감사합니다
    1. 루만에게는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한가요?
    루만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소위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은(혹은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관찰된 것을 다시 관찰하는 방식으로 즉, '관찰된 것을 다시 관찰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면서 정보는 일종의 차이에 의한 차이이고 커뮤니케이션이란 정보-통보-이해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루만이 말하는 정보 자체에 이미 차이(혹은 구분)가 들어있고 중심적인 개념이 사라졌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혹은 없음)한가요? 만약 소위 이데올로기라고 불리는 개념을 루만의 이론에 끌고 온다면 이데올로기 문제는 더 첨예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애매해지는 걸까요?
    2. 루만의 개념들에 관해 혹시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작동상 폐쇄성 - 구조적 연결 - 자기조직,자기생산,자기준거 - 재진입 - 합리성 이념(?) - 기능(주의) - 체계의 범위
    (1) 작동상 폐쇄성이란, 자신이 가진 자체 구조의 법칙을 가지고 환경의 자극(교란)에 합당하게 반응함으로써 변화를 계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가 열려있음으로써 체계 내 변화를 외부로부터(외부에 '있는' 무언가를 체계 내에 그저 '전달'하는 식으로)
    체계에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러니 체계는 닫힌 체계(폐쇄성)여야 한다. 그러나 (체계 스스로의)자율성이 자족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은 환경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정확히 폐쇄성과 구조적 연결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폐쇄성을 띤 체계에서 어떻게 구조적 연결이 가능하지..? 그렇다면 느슨한 결합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2) 자기조직, 생산, 준거 등은 체계 고유의 법칙(혹은 논리)을 말하는 것 같고 그 논리를 가지고 환경의 자극에 교란당함으로써 자신의 체계를 관찰하고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재진입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 같은데 잘 이해가 안갑니다..
    (3) 합리성 이념? 과 기능의 의미는 아예 모르겠습니다..
    (4)루만의 체계에서 생물-심리-사회체계 말고 법, 정치, 경제 같은 것도 체계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 체계들의 하위분야를 이루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3. sk j님은 루만을 어떻게 평가하고 비판하시나요?
    전 개인적으로 루만이 말하는 세계사회가 솔직히 좀 나이브 하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루만의 저서를 정말 조금 읽어봤기에 편향된 생각일 수 있고, 루만은 그런식으로 세계사회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세계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영토와 문화 문제를 제쳐두고 사용해도 좋을지도 의문이구요. (최근 이루어지는 전쟁들만 보더라도..)
    4. 현대를 대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사회학 혹은 사회과학, 경제 책 몇 권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1

      일반 체계 이론 그리고 루만
      서양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는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발언에 빗대자면, 루만의 방대한 저작 전체는 "체계들이 있다." 라는 하나의 명제에 관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체계 이론의 역사에서 체계들을 가장 상세히 분류한 이는 아마도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일 것이다. 그러나 루만은 체계 이론이 다루는 대상을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우리의 인식 자체로 정교하게 확장함으로써, 체계 이론으로 무엇을 알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일반 체계 이론에서, 체계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볼딩은 복잡성의 정도에 따른 9가지 수준의 분류법을 제시했다. 정태적 구조, 시계장치수준의 시스템, 온도조절장치수준의 시스템, 세포수준의 시스템, 식물수준의 시스템, 동물수준의 시스템, 인간수준의 시스템, 사회적 시스템 및 초월적 시스템이 그것이다. 루만에게는 4가지 분류법이 있다. 각각 기계 체계, 생물 체계, 심리 체계, 사회 체계이다. 기계 체계는 작용의 연쇄를 통해 시간에 대해 가용한 에너지가 점차로 소멸해가는, '엔트로피 시스템'이다. 생물 체계는 그 구성소로부터 자신을 재생산함으로써 시간에 대해 스스로의 고유한 패턴을 지속시키는 '자기 생산 시스템'이다. 심리 체계는 생물 체계가 환경과 구분된 채로 그 내부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작동의 시스템이다. 사회 체계는 생물 개체들이 모여 형성하는 조직화 시스템이다.
      기계 체계는 궁극적으로 우주 자체이다. 생물 체계는 환경에 대한 우리의 존재 양식이다. 심리 체계는 느끼고 생각하는 우리 각자이며, 사회 체계는 환경에 대해 안정성과 적응력을 높이려는 우리의 보다 큰 존재 양식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건대, "체계들이 있다." 또한 루만에게 있어 체계 이론은 근본적으로 존재론적이며 인식론적이다. 체계가 체계로서 존재하려면, 즉 체계가 환경에 대한 구별을 잃고 환경 속으로 소멸하지 않으려면, 작동의 연쇄 속에서 환경과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야 한다. 즉, 체계가 재생산하는 것은 환경과의 차이이다. 이것이 루만의 "체계/환경 차이" 이론이다. 또한, 루만에게 체계와 환경은 상호의존적이며 동시 발생적이다. 환경은 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해, 관찰되는 채로 있다. 인식은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반영이며 동시에 그것의 우리 내부로부터의 구성이다. 루만에게 세계는 "체계와 환경의 통일"이다. 이 통일은 체계/환경의 차이를 소멸시키는 통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차이에 기반한 통일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일반 체계 이론과 루만의 관계이다. 우선 일반 체계 이론은 8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요소들의 긴밀한 상호의존적 연결로서의 시스템'이라는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다수의 이론가에 의해 형성되어 온, 포괄적이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이론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루만은 사회학자로서, 사회체계 이론가로 불린다. 그러나 일반 체계 이론은 생물학의 패러다임으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루만의 이론 구성은 일반 체계 이론 전체의 일관성이라는 면에서 볼 때 두드러지게 이질적인 면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루만은 '자기 생산'에는 '구성소의 동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루만에게는 생물 체계의 구성소는 세포, 심리 체계의 구성소는 사고, 사회 체계의 구성소는 소통이다. 그러나 '자기 생산' 개념의 창시자인 생물학자 마투라나에게 구성소의 동류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 마투라나는 '구성소들'을 인정한다. 마투라나에게 생명이란 유전자나 세포로 환원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유전자, 세포, 조직, 기관, 개체 등 생명을 구성하는 각 단위 전체에서 창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외에도 유전체에서부터 개체군까지를 생물의 사회행동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는 사회생물학, '확장된 표현형'과 같은 개념을 통해 도구나 문화와 같은 문화소들 역시 생물의 확장으로 보는 진화생물학 등, 생물학의 일반적인 관점은 구성소의 동류성에 의해 체계를 구분하는 루만의 이론적 구성과 결이 잘 맞지 않다.
      본 글은, 루만의 경탄할 만한 이론적 엄밀성에도 불구하고, 때로 너무나 냉정하고 기계적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설정한 '구성소의 동류성'이라는 이론적 주춧돌의 한계로 인해 '구성소들의 창발적인 조직화'를 다루는 것이 어려움에 있다고 관찰하고 있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꼽자면, 루만의 분류법에서는 '생태 체계'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생태 체계에 단일한 구성소를 설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만이 설정한 '구성소의 동류성'을 포기하고 '구성소들'을 인정한다면, 생태 체계를 "특정 권역 내에서의 생물 체계와 기계 체계의 통일"과 같은 식으로 파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이론 구성상의 차이를 이해해 두고, '자기 생산'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기 생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핵심적 특성이 있다.
      1, 자기생산 체계는 자기구성 요소로부터 자기구성 요소를 재생산한다.
      2, 자기생산 체계는 스스로 환경과 경계를 긋는다.
      3, 자기생산 체계는 자기구성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변형해나가며(자기준거), 다음 단계에서 변형한 지점이나 상태로 진입한다(재투입).
      생물에서 이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예는 염색체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가운데 활성화/비활성화하며 분열하는 것, 학습과 피드백을 통해 나타나는 사고와 행동의 변화 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하나의 단위로서 본다면, 그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체계로 볼 수 있다.
      루만은 사회적 체계의 세 종류를 제시했다. 각각 개체들의 대면을 통해 형성되는 상호작용 체계, 가입과 탈퇴가 가능한 조직 체계, 이러한 체계들을 포괄하는 사회 체계이다. 또한 루만은 세포의 성장과 분열에 관한 생물학의 '분화' 개념을 도입해 사회 분화의 역사적 형태들을 네 종류로 제시했다. 각각 분절적 분화, 중심-주변 분화, 계층적 분화, 기능적 분화이다. 분절적 분화는 사회가 수평적으로 분화하는 것, 중심-주변 분화는 사회가 중심과 주변으로 분화하는 것, 계층적 분화는 사회가 수직적으로 분화하는 것, 기능적 분화는 사회가 서로 자율성을 띤 기능체계들로 분화하는 것이다.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1

      1. 루만에게는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라는 개념이 불가능한가?
      루만은 체계/환경 차이 이론, 즉 "차이의 존재론"자이기도 하면서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개체들 간 '정보-통지-이해' 소통으로 생성하고 작동하는 "차이의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소통의 구조를 '정보-통지-이해'로 파악함으로써 루만이 밝히려는 것은, 소통이란 언제나 차이에 기반한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루만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라는 개념이 불가능함을 웅변하는 일종의 상대주의적 소피스트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루만에게는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소통매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란 소통의 성공 개연성을 보장하는 특별한 구조들을 말한다. 그러한 소통매체들은 정치에서는 권력, 경제에서는 화폐, 학문에서는 진리 등이다. 체계들은 고유한 매체에 기반해 고유한 구별들을 생산한다.
      둘째로 루만은 관찰을 통한 이론 구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루만이 강조하는 것은 그러한 이론들이 선험적 정당화의 절대적 토대에서 벗어나, 관찰한 것을 다시 관찰하는 방식으로 자기준거적이고 재귀적으로 된 현대 사회의 현실이다.
      셋째로 루만은 사회 분화의 시간적 과정을 사회 진화로 명명하면서, 생물학의 진화 이론에서 차용해 온 '변이-선택-안정화'를 그 메커니즘으로 제시한다. 루만의 관점에서 지식은 소통매체의 생산물의 일종이며 사회의 일부이다. 즉 지식 역시 변이하고, 선택되고, 안정화되며 환경에 대한 사회체계의 내적 복잡성의 구축과 확대에 기여한다.
      기능주의자, 개중 가장 철저한 기능주의자로서 루만은 사이버네틱스 이론가 푀르스터로부터 "고유값"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고유값이란 체계가 존속하기 위한 기능상의 최소 경계선을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고유값은 그 선을 넘지 못하면 체계가 소멸하는, 체계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존속 조건이다.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소통매체", "고유값" 등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 루만은 진리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상대주의적 소피스트와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대략적으로 표현하자면, 체계는 쉽게 소멸하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작동의 가능성들을 생산하며 내적 복잡성을 확대하고 축소하고 안정화해 간다는 것이다.
      2. 루만의 개념들
      (1) 작동상 폐쇄성과 구조적 연결
      자기생산 체계는 폐쇄적인 동시에 개방적인 체계이다. 자기생산 체계는 구성요소와 작동의 측면에서는 폐쇄 체계이지만, 물질과 에너지의 측면에서는 개방 체계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감각 자극은 외부로부터 온다. 더 정확히 말해 감각 자극은 환경으로부터 와서 우리의 감각을 촉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각되는 과정은 감각 체계와 신경계 등 우리가 가진 구조, 달리 말해 체계의 내적 복잡성에 의존적이다. 작동상 폐쇄란 이렇게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정보가 내적 복잡성에 의존해 처리되고 결정됨을 일컫는 개념이다. 물론 체계는 환경으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가령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은 환경으로부터의 형태를 잃고 우리의 소화계와 순환계에 의해 분해되고 각 조직으로 공급되어 우리 자신의 구성소를 재생산하는 데 쓰인다.
      구조적 연결(Structural Coupling)은 체계들이 구조를 이루고 있을 때, 상호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자율적인 관계를 일컫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소화계와 순환계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능은 각기 고유하며, 서로의 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호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연결이라는 명칭은 자칫 특정 체계가 다른 체계들을 인과적으로 또 선형적으로 결정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데, 이 구조의 복잡계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보다는 구조적 연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2) 역설/재진입
      루만은 '교착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역설"을 사용한다. 교착상태란 체계가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다음 작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재진입 개념은 역설과 함께할 때 쉽게 이해된다. 재진입이란 역설, 즉 교착상태를 돌파하려는 체계의 자기준거적 변화를 말한다.
      (3) 합리성
      루만에게 합리성이란 대략 체계가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과 절차들의 정비를 뜻하는 것이다. 즉 체계, 기능, 합리성은 밀접한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
      (4) 하위체계들
      루만에게 법, 정치, 경제 등은 사회체계의 하위체계를 이루는, 그러나 특정 체계가 중심이 되거나 우위를 갖지 않는, 기능 분화가 완료된 체계들이다.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1

      3. 루만의 한계들
      루만은 자신이 "구 유럽적 담론"이라고 부른 것과 자신의 이론을 철저히 구별하는 데에 학문적 역량을 집중했다. 투명하고 자기완결적이어서 대상을 표상하고 진리를 아는 주체, 주체를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굴절시키는 일종의 중력장과 같은 사회 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의식들은 데카르트로부터 출발하는 주체 철학 담론의 역사 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루만의 이론에서는 제각기 고유한 차이에 기반해 정보들을 구성하는 개체들이 있고, 사회 체계는 그러한 개체들과 작동상 폐쇄된 고유한 자기생산 체계이며, 현대 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특정 체계가 중심이나 지배권을 가질 수 없는 사회이다.
      20세기 이후 루만에 비견될 수준의 거대 체계를 구축한 이론가는 없다고 해도 좋다. 그러한 의미에서 루만은 "세계정신 없는 헤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루만은 헤겔과 어떻게 구별될까? 고대-중세-근대를 역사를 관통하며 개념들을 이념으로 조직하여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에 이르는 웅대한 철학을 정립한, 가장 거대한 근대 철학자와 말이다. 헤겔은 신학 담론의 구조를 빌려서 절대자의 어깨에 올라타 '자유의 확대 과정으로서의 역사'라는 이념 하에서 세계를 관찰했다. 루만은 이런 절대적 관찰 지점이 불가능해진 현대 사회의 실상과,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헤겔적 관찰자는 어떤 이념적 확신에 찬 채로 사회와 역사를 인식하는 반면, 루만적 관찰자는 철저히 가치중립적인 채로 그렇게 한다. 루만은 주체 우위의 근대적 담론의 철저한 반대, 가치중립성의 극한 지점을 표시하는 모델이다.
      확실히, 루만은 현대 사회의 실상을 경탄할 만큼 정교하게 인식했다. 루만의 한계는 존재론, 인식론이 있을 뿐 가치론이 없다는 데에 있다. 가령 루만의 이론에서 이데올로기는 정치 체계의 재생산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으로 위치가 매겨진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지(혹은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루만은 일절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근대적 담론의 입장에서 볼 때 루만은 오히려 고대적인, 관조적인 태도로 보인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루만의 세계에는 현존재가 없다. 마찬가지로 루만의 "세계사회" 개념은 우리가 세계사회에 살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해 줄 뿐 그에 관한 어떤 판단을 내리게끔 도와주지는 않는다. 오늘날 자급자족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는 없다. 자본, 물자와 인력, 지식과 정보, 무기와 질병까지도 국경을 넘어 연동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계사회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루만은 그런 현실을 정교하게 인식하게 해 줄 수 있으나, 거기에 그칠 따름이다. 루만의 이론은 근대성과 대비되는 현대성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만 거기에 어떤 방향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거기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은 루만과 대화하는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4. 현대를 조망하기
      다음과 같은 책들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다니엘 벨,
      아나톨 칼레츠키,
      찰스 킨들버거,
      찰스 킨들버거,

    • @강수빈-j9t
      @강수빈-j9t Рік тому

      @@skjcast 엥 알림이 안떠서 써주신 줄 몰랐습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 늦었지만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길 바랍니다 ! 다음에는 더욱더 양질의 질문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 @김영진-k9k
    @김영진-k9k 5 місяців тому +2

    앞으로의 세계는 적어도 저에게 있어선 암울한 세계인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부상, 국가주의, 권위주의의 확대, 사회보수주의적 이념의 대중화 등등..
    물론 제가 낡은? 리버럴적인 관념을 가지기에 우울감을 느끼는 것일수도 있겠지요
    지젝이 지적했다시피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좌파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인권, 성평등 등의 성취(적어도 저는 성취라고 생각합니다)가 위축되어가는것이 참 안타깝군요
    skj님 께서는 좌파가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거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raif5302
    @raif5302 Рік тому +1

    sk j님 이 영상의 논지(전체적인 틀과 세부사항)에 대해 동의하시나요? 만약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그 부분을 전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드는 궁금점은 과학적 주류 의견(다른 입장에서도 문제없습니다)과 이 주장이 문제점을 일으키는 부분은 어디이고 어떻게 반박될 수 있는가입니다. 저는 믿음에 대한 신앙체계의 충돌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데 과학과 종교 충돌의 지점에서 이 부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ua-cam.com/video/8Nk-e1C17mM/v-deo.html

    • @raif5302
      @raif5302 Рік тому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1

      첫째, '종교와 세속화 과정'이라는 사회학적 문제. 둘째, 과학과 종교의 관계와 그 조정 방법.
      근대화가 종교를 약화시킨다는 것은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 사회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들에서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를 둘러싼 일군의 입장들의 충돌을 묶어서 '세속화 논쟁'이라 부르며, 특히 1960년대 독일 철학계에서 크게 쟁점화된 적이 있습니다. 근대 정치학의 개념들은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고대와 근대의 단절을 강조하는 주장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주장 등등등... 근대 사회에서 종교가 약화되는 이유는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과 사상의 자유 등이제도화되는 근대화 자체의 원리 때문입니다. 토마스 홉스가 최초로 사회계약론을 내놓을 때 명확히 한 것이 종교는 개인의 내면만을 규율한다고 하는 정교분리 선언 및 종교와 학문의 자유였습니다.
      리처드 파인만의 구분을 빌면 과학은 탐구 체계이고 종교는 신앙 체계이기에 그 근본 속성에서부터 다릅니다. 이들이 충돌하는 문제는 과학과 종교 체계 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많고, 이 체계들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학적 프레임 내에서, 근대화 이후의 사회에서 과학과 종교의 역할을 밝히는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조정해가는 것이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 @raif5302
      @raif5302 Рік тому

      @@skjcast 감사합니다. 지금 돌아보니 제가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좀 빨랐던 것 같습니다..ㅎㅎ 던져주신 이야기의 화두를 포함한 다양한 내용을 제가 더 공부하고 생각해보면서 확장해보겠습니다

  • @김영진-k9k
    @김영진-k9k Рік тому

    skj님은 고보수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2

      세계사적 흐름에서 2차세계대전에서 냉전종식까지 20세기 중, 후반에 걸쳐 획득한 미국의 패권국 지위가 지금 여러 도전에 의해 위협받기 때문에 미국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고전적 보수주의 사상이 대중에게 정치적으로 어필된다고 보고 있습니당

    • @김영진-k9k
      @김영진-k9k Рік тому

      @@skjcast 고보수주의 프로젝트가 성공할지와, skj님의 고보수주의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가 궁금하네용
      저는 gen z들의 정치적 성향을 볼 땐, 고보수주의 프로젝트가 성공할거 같지는 않고 그리고 좀 좌파적이라 이런 고보수주의 유행이 겁나기도 하네요

    • @skjcast
      @skjcast  Рік тому +4

      @@김영진-k9k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고 정치적 프로젝트로서도 비판적입니다
      현대정치학의 근본문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원성을 어떻게 조율할까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세계사적 상황에 대한 고찰 없이 다원성을 특정 국가 중심주의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그게 미국이라고 해도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고 봅니다. 포퓰리즘적인 대중 동원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인류가 치러온 값비싼 역사적 대가와 교훈들을참조하면서 어떻게 사회적이고 국제적인 긴장을 제도화, 규범화할지에 관한 논의들을 더해가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 @김영진-k9k
      @김영진-k9k Рік тому

      @@skjcast 그쵸 저는 보수주의자들이 시도하는 생물학, 종교를 기반으로 정치철학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일한 거대 서사로 모든걸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과 사회의 진정한 본성이 존재하고 그 본성과 일치한다면 사회는 공정해진다는 믿음, 참은 곧 공정한 것이라는 믿음은 전체주의로 연결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다원성을 다루는 방식으로는 일단 사실 - 가치 구별을 확실히 하여 어떤 보편적인 도덕적 진리의 출현을 경계하고
      다양성과 그로 인한 갈등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리오타르가 말한 분쟁을 좀 더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갖춰지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 @Leonardo_Wilhelm_DiCaprio
    @Leonardo_Wilhelm_DiCaprio Рік тому +1

    형 왜캐 늦었어

  • @케로로파이터
    @케로로파이터 Рік тому +1

    ㅎ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