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인원도 많고 성과도 많았고 역할도 컸으니까요.. 선조가 생각보다 실용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 처음에 항왜들이 늘어났을 때 그 유성룡이나 이원익 같은 명재상들도 그냥 죽이자라고 했었는데 유용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수용하라고 명했는데, 정말 큰 역할을 했음.
@@shinbiapt.8627 그래도 뭇 조선 군인들보다야 훨씬 더 잘 싸웠을겁니다 실제로 이괄이 제일 아끼던 부대도 항왜 발도대였고요 디아도코이 시대에 아르기라스피데스라는 병종은 부대원 대부분이 나이 50을 넘긴 상당히 고령의 집단이었음에도 특유의 노련함과 호전성으로 훨씬 나이가 젊은 다른 부대들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발휘한 케이스도 있고요
이미 오랜 전국 시대 기간 동안 용병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어 있었고 또 일본이라는 같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는 무슨 가문 밑에 있는 신민이라는 봉건적 개념이 유럽처럼 강했기 때문에 항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죠 그래서 그 당시에 서남아시아 지역까지도 일본인들이 용병 생활을 하거나 흔히 말하는 항왜 같은 활동들이 다양하게 존재했습니다
@@made3rdaccount 왜 답을 못 내놓는 거냐면 그 당시 일본을 너무 모르기 때문임.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비천한 출생과 빈약한 지지 기반 때문임.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죽지 않았으면 노부나가의 통일은 귀족이라는 기득권 출신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총포 부대 + 경제적 기반 까지 갖춰져서 굳이 임진왜란을 일으키지 않아도 막부를 세우기 충분 했음. 그걸 일본 역사에서 알기 쉽게 찾아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막부를 세우던 과정을 보면 됨.
일본과 조선의 군대체계를 같다고 보면 안됩니다. 조선은 중앙집권 군사라고 본다면 일본은 호족연합군 + 강제징집된 용병부대 + 잠재적 적이될 군대 들이 뭉쳤다고 볼수있죠. 고니시랑 가토의 관계만 보더라도 그렇고 투항한 김충선부대는 과거 히데요시의 주군이였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끝까지 항전했던 스즈키 일족입니다.
@@Gumidaejang 조언을 해도 방송국 작가들이 그대로 안 따름. 왜냐면 웹툰은 그냥 그리면 되는 데 사극은 그거 하나 하나 다 제작 하는 데 돈이 어마 어마 하게 깨지기 때문임. 당장에 조선시대 하급 무관 갑주와 검만 해도 사극 전쟁 장면 하나 찍으려면 하급 무관만 해도 수십 벌은 필요한 데 그 돈이 어디 있음.
훌룡한 영상입니다. 인물을 실루엣으로 표현한 것이 좋았습니다. 항왜의 수가 만 명이 넘었고, 그들 다수가 여인을 만나 자식을 낳았을 겁니다. 그리고 400 여 년이 흘렀으니 대한 사람들의 몸에는 그들의 피도 흐를 것입니다. 어차피 일본사림들의 다수는 아득한 옛날 대한 땅에서 넘어간 사람들의 자손들이죠. 항왜들은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와 고통을 겪다 조선에 귀순했지만 평생 고향을 갈 수 없었으니 가슴에 피 멍이 든 채 세상을 떴을 겁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민초들이고 말단 병사들이죠.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충선의 본명 사야가가 정확히 일본에서 누구였을까는 안타깝게도 알 수 없지만 사야가는 가뜩이나 일본의 전국시대가 겨우 끝나서 나라를 안정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사무라이들 실업자 만들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의 한심한 작태를 보고 일본 같은 나라에선 도저히 못살겠다 하고 떠난 듯 싶습니다. 만약 사야가가 다이묘 즉 어느 지방의 영주였다면 더 신빙성이 있게 됩니다. 자 이제 정치 신경끄고 내정 좀 해볼까 하는데 뜬금없이 또 전쟁을 하라니. 김충선 장군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셈이죠.
저 당시 항왜들을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일본이 통일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라 무사들이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생기기도 전에 전쟁에 끌려온 상황인데 굳이 목숨바쳐 싸울 가치를 느끼기는 힘들죠~ 게다가 통일 이전엔 서로 원수 관계였던 영주국 출신들끼리 내분도 꽤 있었구요~
@@countersee상시 전쟁중이었던 나라와 아닌 나라의 차이지 뭔 후진국? 원래 전쟁은 인간이 하는 짓중 가장 돈많이 드는 짓이라 오래 할수록 세금 팍팍 올라감. 현대의 체계적인 세금제도도 원래는 유럽이 전쟁비용 갚느라 만들어낸 온갖 종류의 세금을 정리한 거임. 참고로 2차 대전 한정으로 미국은 고소득층에게 최대 90%가 넘는 소득세 물리기도 했음.
웃긴건 그 세금 적다는 조선에서 피로인으로 잡혀서 왜국이 간 사람들이 사명대사가 쇄환사로 피로인들을 데리고 갈려 할때 대부분이 그걸 거부하고 정착했다는게 웃음 포인트................ 정말 왜국이 조선보다 세율이 극악해 살기 힘들었음 그리 했을까.................
항왜도 조선에 터를 잡고 살았던 명군의 후예들도 어느정도 자기 풍속 지키고 살았던 모양인데 결국 전부 동화되었죠 항왜 중 함길도에서 이괄군 소속으로 있었던 사람들은 이괄의 난에도 참여했는데 나이가 5-60줄이 넘어갔을텐데도 여전히 칼질을 잘해서 조선 조종이 동래에서 왜인 용병이라도 불러와야 되나 할 정도였는데 그 중 악명 높던 서아지라는 항왜는 김충선이 직접 목을 베어 죽였다는..
항왜들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가토 기요마사를 잡아 죽이지 않으면 두발 뻗고 못자고 우리 조선이 적의 수괴를 죽일 기회를 놓칠것 같아 마음이 졸여진다고 한 가토 기요마사측에서 도망한 항왜들 언제부터 우리 조선이란 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만큼 가토 기요마사가 휘하 병사들을 꽤 거칠게 굴린걸로 보이지만
당시 일본군의 특성상 국가 정규군의 개념이 아니라 토호의 사병에 가깝고 오랜 봉건시대의 영향 탓에 중앙정부에 대한 소속감이 없다시피 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지요 조선에 투항한 항왜들 뿐만 아니라 명군쪽에 투항해서 명군에서 활동한 항왜들도 많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전후 조선이 사실상 상비군 체제로 바뀌면서 훈련도감이 창설 되었을때 명의 절강병법을 교리로 채택하여 창설되었지만 항왜들이 실무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으리라 보여집니다.
전사, 병사 등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군의 사망률이 60%를 넘었고 종전 후 일본 본토에서 세키가하라 전투로 상징되는 내전이 벌어졌으니 당시 사무라이들의 운명도 녹록치 않았네요 항왜의 뛰어난 돌격술과 조총술은 당시 북방의 강자 여진족의 전투력과 필적할 정도여서 북방 방어에 요긴하게 활용되었으나 이괄의 난으로 상당부분 소진됩니다.
임진왜란의 항왜군들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칼싸움 실력이 강력했다함 ㄷㄷ;; 선조가 조선시대 군인들의 검법 실력을 높이기 위해 항왜군을 교관으로 삼아서 조선시대 장군들에게 검법을 전수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는데 일본놈에게 죽어도 배울수없다고 조선시대 장군들이 집단 수업 거부하기도 했음 ㄷㄷ;;
진주박물관은 진짜 최고입니다. 늘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제 세금을 제발 이런데 써주세요...
전라도 잼버리 f1 대회 2조 가까이쓴거 생각하면 십만분의 일만써도 더퀄 나아지고 시리즈 편으로도 매일 나올듯
역시 외주는 자기 끄나풀 말고 전문가 한테 맡겨야 됨
세금 타령하기 전에, 제작비가 얼마인지부터 묻는 게 순서 아니냐?
@@wegohome
진짜 그랬으면 이제부터 사극은 방송국이 아닌 박불관에서 작가를 고용하고 만드는 시대가 될듯
@@수집쟁이드라하카 스토리는 작가가 쓰고, 역사가는 고증에 도움을 주는게 역할에 맞지않음?? 스토리도 역사가가 쓰면, 그것도 작가가 역사다루는것만큼 비전문분야 월권임.
선조실록에 이렇게 항왜에 대한 내용이 많았단 걸 이번에 알았네요. 고마워요 국진관!
워낙에 인원도 많고 성과도 많았고 역할도 컸으니까요..
선조가 생각보다 실용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 처음에 항왜들이 늘어났을 때 그 유성룡이나 이원익 같은 명재상들도 그냥 죽이자라고 했었는데
유용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수용하라고 명했는데, 정말 큰 역할을 했음.
이괄의 난때는 반란군에 속한 항왜들을 진압하기 위해 김충선이 나섬으로써 항왜들끼리 서로 싸워야 하는 비극이 펼쳐지죠
당시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까지도 일본인 용병들끼리 전투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는데, 당시 귀화했던 항왜들의 동류 의식은 어땠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당시 사무라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를 섬기냐였기 떄문에 같은 출신지가 아니라면 애초에 모든 항왜들에게 동료의식 같은건 없었을겁니다.
당시 항왜들 나이가 최소 50살이 넘었을텐데 전투력이 예전 같지는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shinbiapt.8627제 아무 근거 없는 추측입니다만 그들중에는 실제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항왜들뿐 아니라 그들이 조선에 정착하고 혼인하여 나은 후손들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일본식으로 무사 수업을 받으며 자랐었을….
@@shinbiapt.8627 그래도 뭇 조선 군인들보다야 훨씬 더 잘 싸웠을겁니다 실제로 이괄이 제일 아끼던 부대도 항왜 발도대였고요 디아도코이 시대에 아르기라스피데스라는 병종은 부대원 대부분이 나이 50을 넘긴 상당히 고령의 집단이었음에도 특유의 노련함과 호전성으로 훨씬 나이가 젊은 다른 부대들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발휘한 케이스도 있고요
이미 오랜 전국 시대 기간 동안 용병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어 있었고
또 일본이라는 같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는 무슨 가문 밑에 있는 신민이라는 봉건적 개념이 유럽처럼 강했기 때문에 항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죠
그래서 그 당시에 서남아시아 지역까지도 일본인들이 용병 생활을 하거나 흔히 말하는 항왜 같은 활동들이 다양하게 존재했습니다
항왜가. 1만이였다니. 이런 놀라운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네요 한편으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들의 기구한 운명또한 안타깝네요
정말 좋은 채널입니다.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진주박물관 완전 응원합니닷 공공기관 역사 유튜버의 센세이션 진주 박물관!!🎉
영화 한편 제대로 봤습니다 이런 컨텐츠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퀄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매번 동영상 잘봅니다 재미있어요~^^!
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 사극 보다 이런 퀄리티의 다큐라니!
흥미로운 주제 많이 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진주박물관 감사해요~ 몰랐던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되고, 수업에도 활용할만한 좋은 자료가 많습니다^^
좋은 컨테츠네요. 다음은 일본에 붙은 조선인들 순왜에 대해 다뤄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유익한 영상과 자료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평소 항왜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주박물관 덕분에 항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가네요~^^
1. 언제나 고퀄의 영상을 보여주시는 국립진주박물관 영상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2. '대항왜시대'라는 표현에서 뿜었습니다~ㅋㅋㅋ
3. 안타깝게도 자막 중 오타가 있네요~
5:11 조선 관료로써 → 조선 관료로서
그 게임을 해봣던지라 저도 뿜었답니다 😂
꿀잼 다음 편도 빨리 나어길!!!
영상 너무 재미있네요 ㅎㅎ 국진관 언제나 대박!
와 응원합니다 진주박물관!!ㅠㅜ 동영상 퀄리티에서 일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의식이 느껴지네요!!
이 채널 어느날부터 갑자기 퀄리티 미쳐 날뛰기 시작함...
얼마전 전,란 보고 이 영상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요 잘 보고 갑니다 퀄이 좋네요
마지막 김충선 시 진짜 슬프다... 따지고보면 풍신수길 한명 때문에 고향 못가게 된 사람들이 수십만이었겠네
사실 혼노지의 변이 몇 년만 늦게 시도 되었어도 임진왜란은 없었음.
왜냐면 히데요시의 통일을 노부나가가 했을 것이고 그럼 무리한 명분 세우기 용의 침략 전쟁은 시도 안 했을 거임.
@dri13829 풍신수길이 왜 임진왜란을 일으킨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연구와 추측이 나왔지만 무엇 하나 시원한 답을 못내놓는걸 보면 풍신수길이 문제인건 맞는듯
@@made3rdaccount
왜 답을 못 내놓는 거냐면 그 당시 일본을 너무 모르기 때문임.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비천한 출생과 빈약한 지지 기반 때문임.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죽지 않았으면 노부나가의 통일은 귀족이라는 기득권 출신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총포 부대 + 경제적 기반 까지 갖춰져서 굳이 임진왜란을 일으키지 않아도 막부를 세우기 충분 했음.
그걸 일본 역사에서 알기 쉽게 찾아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막부를 세우던 과정을 보면 됨.
@@made3rdaccount 그만큼 침략할 이유도 많으니까요.. 역사상 창업 군주들이나 정복형 군주들이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확장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그 업보로 토요토미가는 씨가 말라버림..
유튜브로 역사채널 여러개 구독하고 보는 게 취미인데 이 채널이 가장 퀄리티 높습니다
흥미롭고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일본과 조선의 군대체계를 같다고 보면 안됩니다. 조선은 중앙집권 군사라고 본다면 일본은 호족연합군 + 강제징집된 용병부대 + 잠재적 적이될 군대 들이 뭉쳤다고 볼수있죠. 고니시랑 가토의 관계만 보더라도 그렇고 투항한 김충선부대는 과거 히데요시의 주군이였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끝까지 항전했던 스즈키 일족입니다.
그렇죠...
일본은 오히려 유럽의 봉건제와 더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명분상 성주고 실제론 국가였다고 봐야죠..
어찌 박물관 고증이 사극보다 뛰어난것인가
왜냐면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사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임.
박물관에서 전시 해설 하는 사람조차 석사 학위는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임.
@dri13829 근데왜 사극작가들 조언을 안구함-? 웹툰 칼부림만봐도 고증이 장난아닌데
@@Gumidaejang
조언을 해도 방송국 작가들이 그대로 안 따름.
왜냐면 웹툰은 그냥 그리면 되는 데 사극은 그거 하나 하나 다 제작 하는 데 돈이 어마 어마 하게 깨지기 때문임.
당장에 조선시대 하급 무관 갑주와 검만 해도 사극 전쟁 장면 하나 찍으려면 하급 무관만 해도 수십 벌은 필요한 데 그 돈이 어디 있음.
@@dri13829사실 소품을 제외하고 연출이나 스토리 측면에서 고증을 맞춰달라고 해도 그냥 신경을 안쓰는 부분도 있음
@@Ch-en9dm
연출이나 스토리 자체가 소품이 있어야 가능한 거임.......
소품 없이 연출, 스토리 진행이 가능 하다 생각하면 님은 님이 비판하는 그 방송국 사극 작가들보다 기획력이 떨어지는 사람인 거임.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유튜브중 최고급 ❤❤❤
정말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1만명이라니 엄청 나군요
국립박물관에서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를 이렇게나 높은 수준으로 보여주다니.. 대단하네요..
진심 궁금하던거 다 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컨텐츠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항왜가 주인공이 된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를 바람
그나마 나올 수 있는게.
병자호란 직전의 이괄의 난이긴 한데... 이게 하필 난을 다루다보니..
이괄군 쪽에 항왜가 많이 있었죠.
그럴일 없을듯 김원봉주인공되도 빨겡프레임 정권이라고 욕먹는데 항왜가 주인공이다? 민주당정권에서 당연히 심의 통과될일 없고 국힘정권에서도 즈그가 김원봉프레임으로 재미봤는데 사서 역공당할일 없지. 지역감정 프레임씌우기의 달인들인 586세대가 지난 20년뒤나 가능할듯
"칼부림" 드라마화 하면 재밌겠네요
김충선 장군의 일대기를 드라마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성 김해김씨 문중의 도움을 받으면 될 거 같긴 한데.
되겠음? 일본에 일짜만 붙어도 분노하는 사람들 절반인대 ㅋㅋㅋㅋㅋ
"이길수 없으면 합류하라"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조선을 외쳤다"
오오 좀 멋진말이네요
@@roidekim4525 ㅋㅋㅋㅋㅋㅋ 이거 원본은 리버풀의 레전드였던 오웬이 라이벌인 맨유로 이적할때 했던말 과 아스널의 스트라이커였던 반페르시가 라이벌인 맨유로 이적할때 했던 말들입니다
16세기 반통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 너 '왜군' 부수기에 동참해라"
적은 예산으로 이렇게 고품질 콘텐츠를 만드는 진주국립박물관 ❤❤❤
2:57 대항왜시대 미쳤냐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훌룡한 영상입니다. 인물을 실루엣으로 표현한 것이 좋았습니다. 항왜의 수가 만 명이 넘었고, 그들 다수가 여인을 만나 자식을 낳았을 겁니다. 그리고 400 여 년이 흘렀으니 대한 사람들의 몸에는 그들의 피도 흐를 것입니다. 어차피 일본사림들의 다수는 아득한 옛날 대한 땅에서 넘어간 사람들의 자손들이죠. 항왜들은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와 고통을 겪다 조선에 귀순했지만 평생 고향을 갈 수 없었으니 가슴에 피 멍이 든 채 세상을 떴을 겁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민초들이고 말단 병사들이죠.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최근에 대구에서 김충선을 모시는 녹동서원과 달성 한일우호관을 다녀왔는데요. 이런 우연이... 그나저나 항왜의 숫자가 정말로 많았군요. 1만명이 넘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6:17 저 당시 작은 해협이라도 바다 하나 건너 있는 땅이란 개념은 지금의 태평양 건너 한국과 미국보다 감각적으로 더 깜깜하고 무소식인 아득한 느낌의 먼 곳일듯. 도대체 아무 것도 듣지도 볼수도 없으니...
김충선 장군도 귀순한 이유가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사족 출신이라 글을 알고 어느정도 세상물정을 아니 저렇게 표현했울 뿐이겠지
김충선의 본명 사야가가 정확히 일본에서 누구였을까는 안타깝게도 알 수 없지만 사야가는 가뜩이나 일본의 전국시대가 겨우 끝나서 나라를 안정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사무라이들 실업자 만들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의 한심한 작태를 보고 일본 같은 나라에선 도저히 못살겠다 하고 떠난 듯 싶습니다. 만약 사야가가 다이묘 즉 어느 지방의 영주였다면 더 신빙성이 있게 됩니다. 자 이제 정치 신경끄고 내정 좀 해볼까 하는데 뜬금없이 또 전쟁을 하라니. 김충선 장군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셈이죠.
영상의 수준이 어마어마해서 누가 만든것인가 했더니.. 국립박물관 작품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일전쟁시 투항한 일본군이 엄청나게 많았군요 !!!!
저 당시 항왜들을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일본이 통일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라 무사들이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생기기도
전에 전쟁에 끌려온 상황인데
굳이 목숨바쳐 싸울 가치를
느끼기는 힘들죠~
게다가 통일 이전엔 서로 원수
관계였던 영주국 출신들끼리
내분도 꽤 있었구요~
이 역시 다시 관심을 가져야할 우리의
미세사네요
앗 6:27 마루 위에 소화기 있어요😅
당시 일본의 세율은 50% 가까웠고, 조선의 세율은 10%대 였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일본 군들도 알게 되었을 때, 상당히 군심이 요동쳤다고 하더군요..
@@countersee상시 전쟁중이었던 나라와 아닌 나라의 차이지 뭔 후진국?
원래 전쟁은 인간이 하는 짓중 가장 돈많이 드는 짓이라 오래 할수록 세금 팍팍 올라감.
현대의 체계적인 세금제도도 원래는 유럽이 전쟁비용 갚느라 만들어낸 온갖 종류의 세금을 정리한 거임.
참고로 2차 대전 한정으로 미국은 고소득층에게 최대 90%가 넘는 소득세 물리기도 했음.
웃긴건 그 세금 적다는 조선에서 피로인으로 잡혀서 왜국이 간 사람들이
사명대사가 쇄환사로 피로인들을 데리고 갈려 할때
대부분이 그걸 거부하고 정착했다는게 웃음 포인트................
정말 왜국이 조선보다 세율이 극악해 살기 힘들었음 그리 했을까.................
이 영상에서 나오는 항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알아야 됨. 전국시대의 전모를 어느정도 알게되면 항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짐.
이런영상은 지방박물관급이 아닌데 넷플릭스 다큐에 시리즈 올려도 대박날듯
진짜 웬만한 사극 제작팀보다 더 뛰어나죠 다들
이해하기 쉽게 잘 만들었내요
감사합니다
박물관 예산 사용 모범 사례
👍 👍 👍 👍 👍 👍 👍
잘 만든 외국 히스토리 영상에 걸맞는 우리나라 영상이 드물어서 아쉬운데, 이곳 영상은 어디 내놔도 좋은 역사영상입니다 !
진짜 진주박물관 대박이다 꼭 놀러갈게요
2024년 한해 수고 많으 셨습니다. 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모 넷플릭스 영화에서 항왜를 지나치게 (조선군도 스스로 조총 장전도 못하는 무지렁이로) 묘사한게 역했는데,
참 그 항왜들의 진면목을 보여줘서 감사합니다.
영화아님?
드라마 작가들 대다수가 사전조사 잘 안해서요
고증 안지키는게 싫으면 걍 한국 사극은 보지 마셈 미스터 선샤인처럼 유명한 드라마도 조선 최후의 암군이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인 고종을 무슨 하루종일 백성만 생각하는 서윗 성군마냥 포장하는 지경인데 ㅋㅋ
@@rightbloodyelbow 헷갈렸네요 수정합니다
뭔소리입니까?
항왜는 이괄의 난때 대거 숙청 되었고 이후에도 호란때도 동원되서 개고생만 죽도록 했던걸로 아는데....
병자호란때는 이미 늙어서 큰 업적 없고 이괄의 난때 대활약했었죠..
일본에서 전쟁+임란 거친 베터랑이라서 이괄의 가장 주력부대였죠.
능양군(인조)실록에 '이괄의 난' 이괄이 이끌고 온 반란군은 보병 13000명 기병 700기 항왜 130명입니다! 임진왜란때 투항한 항왜 1만중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알수 없으나~ 이괄의난때 죽은 항왜는 130명뿐입니다!
@@kili-uv7jn 정묘재란이 1598년에 끝났고 병자호란이 1627년에 시작이네요
30년 정도 시간 지났으면 전투원으로 뛰긴 힘들었을건데요.
모든 정부 부처에 하고 싶은 말: 제발 진주박물관 만큼만 해라. 그게 어려우면 딱 반만큼이라도 해라.
시른데?
니가 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구 정부부처에 원한이라도 있니?
@@kakalotto 역시 공노비다운 반응이네 사명감 갖고 일하는 진주박물관등 진짜 공직자들과는 현격한 차이다 너넨 그냥 그렇게 살아랴
@@kakalotto원한 있지. 세금 좀먹고 있잖아.ㅎ 납세자 국민들은 죽어나는데, 너네들은 그걸로 대충 대충 시간만 때우고, 월급 받아가잖아.ㅎ 공무원가 족이나?ㅎㅎ
정치인들은 진주 박물관에 계신 형님, 언니들한테 당장 포상 해드려야 합니다, 지방에 있는 박물관 직원 분들이 이렇게 고퀄리티 동영상도 많이 만들어 주시고 정치인들이 너무 무심하네용, 당장 포상을 해드려야 해요 👍👍
유튜브만보다 가까워서 ㅇ믿고 진주박물관 갔다왔는데 시설 이랑 아주 관리가 잘되어있더라고요
참 좋은 소재로 잘 만들었네요 전란으로 비참히 죽거나 투항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 심정도 안타깝고. 암튼 잘 봤습니다
김충선장군님은 자기가 죽을지라도 부모를 엎고 도망가는 사람을 보고서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기에 감동해서 투항했다죠
하지만 말년에는 가끔 태평양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셨다죠
이괄의 항왜가 살아있었다면 정묘 병자 두호란이 어떻게 되었을까?
요새 임진왜란 관련 책들 여러권봤는데
항왜가있었고 조선에 기여한사례가 많다고는 했지만 그 항왜의 수가 얼마나되는지, 그들의 노고에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된건 없었는데
지금에서야 많이 알게되네요
진주 박물관에 아이들이 체험학습 많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얼마나 괴롭혔으면 적국에게 투항 까지 하는 사람이 나오냐 ㅠ
참 기구한 운명이네요. 장편영화 하나가 나와도 재미있을 듯 하네요.
조선이 조총을 빠르게 주력 무기로 채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김충선같이 총포 기술을 아는 항왜들이 투항했기 때문이지요. 임난 발발 이후 얼마 되지도 않아 일본 정규군이 쓰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높은 품질의 조총을 만들어낼 정도였지요.
지금과 같은 국가관이 없던 시대였던지라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가담, 협조하여 순왜로 활약한 일도 있습니다.
순왜도 해주시길
진주박물관에 천재가 있구나ㅡ🎉
항왜도 조선에 터를 잡고 살았던 명군의 후예들도 어느정도 자기 풍속 지키고 살았던 모양인데 결국 전부 동화되었죠
항왜 중 함길도에서 이괄군 소속으로 있었던 사람들은 이괄의 난에도 참여했는데 나이가 5-60줄이 넘어갔을텐데도 여전히 칼질을 잘해서 조선 조종이 동래에서 왜인 용병이라도 불러와야 되나 할 정도였는데 그 중 악명 높던 서아지라는 항왜는 김충선이 직접 목을 베어 죽였다는..
혹시 웹툰 '칼부림'을 보셨나요?
항왜들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가토 기요마사를 잡아 죽이지 않으면 두발 뻗고 못자고
우리 조선이 적의 수괴를 죽일 기회를 놓칠것 같아 마음이 졸여진다고 한 가토 기요마사측에서 도망한 항왜들
언제부터 우리 조선이란 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만큼 가토 기요마사가 휘하 병사들을 꽤 거칠게 굴린걸로 보이지만
당시 일본군의 특성상 국가 정규군의 개념이 아니라 토호의 사병에 가깝고 오랜 봉건시대의 영향 탓에 중앙정부에 대한 소속감이 없다시피 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지요 조선에 투항한 항왜들 뿐만 아니라 명군쪽에 투항해서 명군에서 활동한 항왜들도 많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전후 조선이 사실상 상비군 체제로 바뀌면서 훈련도감이 창설 되었을때 명의 절강병법을 교리로 채택하여 창설되었지만 항왜들이 실무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으리라 보여집니다.
적으로 배우지 못 하면 전쟁을 이길 수 없다
조선으로 투항한 항왜들은 잘해줘야되는 귀화 대한민국인같은거네요
대구 달성 우록동에 가시면 한일우호관이라고 김충선 장군님의 박물관이 있습니다.
궁금한거 있는데요. 1592 임닌때 호환 당한 왜나 조선인이 있나요
항왜 이야기로 드라마나 영화 만들어야 겠네요. 한국말 도 잘하는 일본배우 섭외해서요. 그 오타니 료헤이 분처럼요.
전쟁에 징집된 사무라이급 항왜들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가정(노비)까지 데리고 귀순함, 주인의 음식, 무기, 의복, 취사를 직접챙기는 노비들이 수명씩 전쟁터까지 따라다니는 신분제 중세사회였습니다. 그 사람들까지 조선에서 신분제로 살다 죽었고, 김충선을 죽을까지 모셨던 가정 노비도 조선인이 되어 우록동 주인곁에 뭍혀습니다.
배경설명이 조금 아쉽지만 잘 보았습니다.
김충선장군은 돌려보냈어도 적응을 했을까..배척받지않았을까
풍신수길 처럼 달려왔습니다
ㅋㅋㅋㅋ 대항왜시대!!!! 퇴근시간전이라 지루 했는데....한참 웃고 갑니다.
1:00에 나오는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가 한국에 번역되어야 하는데...
전사, 병사 등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군의 사망률이 60%를 넘었고
종전 후 일본 본토에서 세키가하라 전투로 상징되는 내전이 벌어졌으니 당시 사무라이들의 운명도 녹록치 않았네요
항왜의 뛰어난 돌격술과 조총술은 당시 북방의 강자 여진족의 전투력과 필적할 정도여서 북방 방어에 요긴하게 활용되었으나
이괄의 난으로 상당부분 소진됩니다.
임진왜란의 항왜군들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칼싸움 실력이 강력했다함 ㄷㄷ;;
선조가 조선시대 군인들의 검법 실력을 높이기 위해 항왜군을 교관으로 삼아서 조선시대 장군들에게 검법을 전수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는데 일본놈에게 죽어도 배울수없다고 조선시대 장군들이 집단 수업 거부하기도 했음 ㄷㄷ;;
내가 왕이 였으면 깽판치는 장군들 한테 응 잘가 꺼져ㅎ 하면서 무과 새로 치르고싶네ㅋ
영어와 일본어로도 서비스 해주세요
여기는 미친곳 (좋은의미) 같은데??? 상상하기 힘든 컨텐츠를 만드네
확실히 전투 기계다
가등청정은 덕천가강이 보낸 자객에 의해 독살당하는데...
사야가가 씨인지 명인지 알면 지금 사야가의 방계혈족이라도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니면 투항 장병의 가족이라고 해서 해코지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불쌍한 항왜....결국 북방으로 쫒겨가고 이괄의난에 동원되어 갈리고...이순신장군이 항왜랑 손잡고 새 왕조를 창시했다면 어땠을까 늘그렇듯 국난을 이겨낸 영웅에겐 토사구팽이 기다리고있음...
무슨 늘 그렇듯? 임진왜란 끝나고 나서 살아있는 전쟁 영웅들은 너무 나이가 많은 경우가 아니면 두루두루 잘 나갔고
무슨 항왜랑 손잡고 새 왕조를?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런 식으로 바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님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
현대의 국가관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죠. 단지 주군이 바뀐 것일뿐. 같은 주군을 모시면 같은 백성.
항왜가 1만이나 된건 처음 알았네요... 그래도 일본보다 세율이 낮으니 행복하게 살았으려나..
세율 그거 헛소리라니까 조선도 다 농민들 뒤지지 않을정도 폭동안날정도로 가져가는거야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1000번째 좋아요는 제가 차지하겠습니다😊
사랑한다 진주박물관!
국경인 같은 순왜특집도 재밌겠네
ㅋ, 역사란 있는 그대로 말하는건가 어떤 이유이든지
민족의식 고취란 명분만 가지고 있던 역사를 의도적으로 감춘다면 그건 국립 박물관이 아니라
빠돌, 빠순이들 친목단체죠
주인공은 일본배우로 하는 항왜 영화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