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의 뛰어남과는 별개로 관리 상태가 나무 엉망입니다. 관람하게 되어있는 좁은 공간이 너무 낡고 조잡해서 석굴암의 가치를 깎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서 보면 영상보다 작지요.. 어릴 때 갔을 때는 분명히 크고 웅장해보였었는데 그간 영상을 통해 밑에서 찍은 뷰들을 보다보니 환상이 더해졌던 것 같습니다.. 보존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가치를 좀 더 알릴 수 있는 관리 방법도 마련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신비롭게 잘 버텨온 석굴암은 오히려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상태가 안좋아졌다 합니다. 가장 최악은 영상에도 나왔듯이 일제놈들이 관리한답시고 발라버린 콘크리트가 가장 문제지만 그리고 관람을 하기 위한 시설 등으로 인해 관리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사료의 보존을 위해 원본대신 사본을 전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관리는 아예 관람을 하지 않고 그 좁은 관람시설도 모조리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석굴암과 완벽한 동일 사이즈의 모조시설을 인근의 박물관등에 건립하고 이를 전시하고 원본 시설은 카메라등을 통해 화면으로만 관람 가능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일제때 망가져서 지금은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고 석굴암의 상부에 위치한 작은구멍으로 달빛이 드리우면 반사되어 석굴암 내부를 밝히는 기술도 있고,자연적으로 내부를 순환풍 시키는 기술도 설계되어 있는 과학적인 건출물이라 내부공사가 현대과학기술로 불가합니다.
유럽 대리석은 땅에서 막 꺼내면 비누처럼 공예도구로도 조각이 가능할 정도이고 시간이 지나 수분이 증발하면서 딱딱해 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화강암은 공예도구로는 절대 조각 불가하고 오직 망치와 정으로만 깎을수 밖에 없죠. 유럽인들에게 화강암을 주고 대리석 처럼 조각하라고 하면 아마 화강암을 내던졌을 겁니다.
석굴암,불국사 등 우리나라 유적들이 유네스코에 많이 지정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술적으로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나다는게 첫 번째 포인트이고 그리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부분은 석굴암의 원기둥형 구조와 돔형으로 마무리된 지붕구조,불국사의 계단의 측부를 장식하는 별거 아닌것처럼 보이는 아치형 장식같은 석조기술이 뛰어나다는점임. 거기에 목조와 석조가 한데 어우러진 건축물이 100%라는 부분에서 프랑스의 건축가들이 영감을 많이 받고,우리나라에 자주 찾아와서 시찰하던 시기도 있었음.
건축공부를 할 수록 서양 건축물들에 경외감이 들었는데 석굴암의 이런 사실은 처음 아네요.. 우리나라 건축물도 정말 멋져요 그리고 기술력도 대단했네요 학교 다닐때 피렌체 대성당이 정말 대단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대 석굴암이 더 대단한 기술을 먼저 선보였다니.. 특히 황룡사 목탑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ㅜㅜ
석굴암 복원을 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복원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일제가 그 당시에 재료로써 최고라고 평가받던 콘크리트로 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했지 망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요. 그 조각돌 사이사이 콘크리트로 발라놔서 해체하기 매우 어려워요. 하다가 무너질 수도 있고 완벽하게 되리란 어렵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 다시 콘크리트로 재보수해 더욱 어려워요. 유리창을 없애야 한다고도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미 자체 습도 온도 조절을 못하는 상태기 때문에 유리창 존재는 필수입니다. 불가결의 존재예요. 모든 문화재 유적지를 발굴하는 과정만 온전히 밟아도 20년 정도 걸리는게 정석입니다. 가치가 클수록요. 너무 느리다고 뭐라 하지 말아주시고 복원 자체도 애매합니다. 복원하면 좋겠지만 조선시대처럼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부분도 아니니 어느 공법으로 어느 재료로 어느 형태로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을 지키지 않는다면 복원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이 훼손되겠죠
화강암이 단단한것 뿐만아니라 .. 더 다루기 어려운건 .. 금이 가거나 깨진다는거죠 ... 99프로 완성 됐는데 .. 마지막 1프로 남은것 때문에 정으로 찍었다가 .. 쩍~하고 전체가 다 깨져버릴 수가 있죠.. 이게 경도가 높은 재질의 특징인데 .. ... 그래서 화강암은 단단함을 넘어 훨!~씬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700년 앞선 기술을 보유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더욱 살펴봐야 할 것은 어떻게 그러한 기술력이 꽃필 수 있었는지 환경을 연구하는 것 입니다. 앞선 기술력에는 특별한 환경이 주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그 환경이 극도의 효율을 이끌어내게되는데 그 환경을 연구하는 것이 비슷한 효율을 습득하거나 활용하는 것에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구경만하기엔 아까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때 보는 석굴암과 커서 보는 석굴암이 다르죠..ㅎㅎ 어릴땐 저게 왜 멋있다는건지 의구심을 가졌지만, 화려한 조각은 없지만 심플함이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오죠. 스페인보다는 못하지만 이태리보다는 앞선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ㅎㅎ 김대성, 미칼렌젤로, 레오나드로 다빈치,가우디 한명의 천재들이 문화를 바꾸는것 같네요 ㅎㅎ
석굴암 본존불 정교하게는 조각되지는 안았지만 거룩하게 보이죠 실제로 위엄이 넘치는 신인을 대하는듯한 느낌을받습니다 반가사유상도 그렇고요 서양의 다비드상 정교하지만 그 예술성을 본존불과 비교하기는 모자라 보이내요 본존불은 신이 만든것같음 저의 느낌적인 생각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가룩하게 표현할수 있을까 상상으로 만들수는 없고 실제로 만은 수양을 한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안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조선 시대 선비의 초상을 보아도 범상치 안은것 처럼요
울나라 미술품을 통털어 대적할만한 상대가 없는것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금동대향로(원본임 / 용산 중앙박물관이 복제품)입니다. 사진으로만 보지 말고 부여엔 가볼만한 곳이 많이 있으니 가시는 일정에 하나 추가해 실물을 보시면 좋을듯.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어떤 예술작품보다 더 전율이 느껴지는 경험을 했죠.
한 10년 전인가? 지금처럼 유리 밖에서 보는거 말고 실제로 들어가서 봤을때 석굴암 진짜 레알 지림... 영엄하고 신성한 느낌이 엄청남. 주변이 백색으로 가득차있으며 고요하고 비밀을 간직한거 같은 느낌임. 근데 지금은? 그냥 산책로 10분 20분 걷는데 입장료 내는 느낌임
저 역시 석굴암의 돔 건축기술과 원근법을 이용한 배치를 듣고 천년전의 조상의 지혜에 감탄합니다 다만 조선시대때 숭유억불책으로 사찰의 외면 , 조선말 에서 일제 초기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폐허처럼 방치된 사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특히 석굴암은 전면이 허물어 졌는지 본존불 빼고 일부 인왕상은 밖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본존불도 거의 지척에 노출되어 있고요 이런 상태에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었다니 신기합니다
재상 김대성이 석굴암을 남산이 아닌 경주에서 좀 떨어진 토함산 깊은 골짜기에 지은 건 탁월한 위치 선정입니다 만약 남산에 만들었다면 조선조에 파괴되었을 겁니다. 조선 5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건 또 다른 기적입니다. 석굴암은 우리문화 유산 중에 탑중에서도 최고봉입니다.
조선 시대 기록보면 애초에 알고 있었습니다 억불정책은 맞지만 주자학에 미친건 전란 이후입니다 그리고 사진에 보면 관리를 전혀 못한걸로 나오는데 지진이후이고 그당시 열강의 침략으로 신경을 쓰기 어려웠죠 대표적인 역사왜곡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불교 최대의 전성기는 고려조 일제가 신라를 강조하면서 유난히 경주 경주 거리는 경향도 심해지고 그걸 그대로 배운 사학자들도 크게 주장한거
저도 문화사대주의는 아니지만 유럽의 문화유산을 직접 마주한 후 서양의 문화재가 우리나라보다 조금은 더 우수하고 정교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홀로 석굴암에 갔는데 본존불의 편안한 미소를 감상하고 같이 있던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재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 간단한 질문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소름돋게 저를 위한 주제의 영상인 것 같아 댓글 남겨요. 화려함과 정교함은 돌의 물성에 따라 그 한계가 달라지는건 몰랐네요. 서양미술과 건축도 아름답지만 한국의 문화재 건축물도 정말 멋집니다❤
서양의 조각상이 정교하며 아름답게 세공이 되었지요. 다비드상은 혈관과 근육마저 묘사했을정도니깐요. 하지만 석굴암은 화강암을 가공해서 만들어졌는데 현대에서도 다이아가루를 뿌리구 연마해도 잘될까말까인 그런돌을 천년전에 못과망치로 옷의주름마저 표현하며 돌의 재질과도 무관하게 세밀함을 챙겼죠. 이로인해 불상의 인자함과 온화함 그리고 동굴의 구조 배치를 통해 웅장하마저 표현했죠. 경향성이 다르고 그안에 내포된 기술력이 다르기에 어릴때는 서양의 조각상을 그 세밀함에 감탄하며 보았는데 이제는 석굴암을 만드는데 들어간 기술을 알고보니 또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개성과 거기에 담긴노력 기술들이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을뿐 둘다 훌륭하머 예술의 본질을 훌륭히 녹여낸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토함산 석불은 철저하고 완벽한 수학적 계산으로 축조되었으며, 팔만대장경에 적힌 장황한 내용이 그 작은 공간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영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제가 발견한 후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복원한답시고 콘크리트를 처발랐을 뿐 아니라, 초당 10리터의 차가운 지하수를 내뿜어 바닥으로 결로현상을 유도하던 샘물을 배수시켜버려 습도 조절 기능을 상실했고, 이끼가 끼기 시작하자 고온의 스팀을 분사해 다박솔로 박박 닦아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광복 후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면서 토함산 석불은 또다시 수난을 겪는데, 일제가 발라놓은 콘크리트 위에 또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상태를 더더욱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전문가의 반대가 있었으나 묵살당했고, 외국에서 초청한 전문가의 말만 들었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365일 에어컨 가동이라는 마지막 조치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슨 악영향을 줄지 확실치 않아,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쇄기돌이라 부르나요? 우리땐 주먹돌이라 불렀는데. 무개중심이 아래로 향하게 주먹같이 만들고 그 뒤를 완만한 사다리꼴로 만들어서 돌과 돌사이를 꽉 끼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천개석으로 눌러주는 형태. 어지간한 붕괴가 일어나도 나머지는 무너지지 않죠. 그 모습이 강점기때 사진에도 나와있죠. 천장의 태반이 무너졌는데도 천개석과 일부만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 90년 후반 사학과 출신이라 요즘은 머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네요.
석굴암의 뛰어남과는 별개로 관리 상태가 나무 엉망입니다. 관람하게 되어있는 좁은 공간이 너무 낡고 조잡해서 석굴암의 가치를 깎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서 보면 영상보다 작지요.. 어릴 때 갔을 때는 분명히 크고 웅장해보였었는데 그간 영상을 통해 밑에서 찍은 뷰들을 보다보니 환상이 더해졌던 것 같습니다.. 보존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가치를 좀 더 알릴 수 있는 관리 방법도 마련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존은 일제때문에 개망해서..
오랜 세월 신비롭게 잘 버텨온 석굴암은 오히려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상태가 안좋아졌다 합니다.
가장 최악은 영상에도 나왔듯이 일제놈들이 관리한답시고 발라버린 콘크리트가 가장 문제지만
그리고 관람을 하기 위한 시설 등으로 인해 관리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사료의 보존을 위해 원본대신 사본을 전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관리는 아예 관람을 하지 않고 그 좁은 관람시설도 모조리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석굴암과 완벽한 동일 사이즈의 모조시설을 인근의 박물관등에 건립하고 이를 전시하고 원본 시설은 카메라등을 통해 화면으로만 관람 가능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놈들이 맘대로 해체하고 부터 저렇게 됐지요 지금은 원상태를 모르니 손쓸 방법이 없어요😢
이미 일제때 망가져서 지금은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고 석굴암의
상부에 위치한 작은구멍으로 달빛이
드리우면 반사되어 석굴암 내부를 밝히는
기술도 있고,자연적으로 내부를 순환풍
시키는 기술도 설계되어 있는 과학적인
건출물이라 내부공사가 현대과학기술로
불가합니다.
일제가 관리한답시고 시멘트를 바른게
아니라 필요하답시고 석굴암 외부돌들을
빼내서 일부러 망가뜨린겁니다.
주변에 망가뜨린 돌들의 잔해까지
그대로 불국사에서 보존하고 있어요.
유럽 대리석은 땅에서 막 꺼내면 비누처럼 공예도구로도 조각이 가능할 정도이고 시간이 지나 수분이 증발하면서 딱딱해 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화강암은 공예도구로는 절대 조각 불가하고 오직 망치와 정으로만 깎을수 밖에 없죠. 유럽인들에게 화강암을 주고 대리석 처럼 조각하라고 하면 아마 화강암을 내던졌을 겁니다.
화강암은(는) 효과가 좋아보인다!
화강암 준 사람은(는) 눈이 깜깜해졌다!
그렇습니까 이태리조각들이 섬세한 것이
듣고 보니 이해가 갑니다
마치 빨래비누 같다는 거죠
석회수만 나오는 대신 그런 장점이 잇지요
마치.. 대장장이에게 기름이 아닌 물을 주면서 칼을 열처리하라는거네
펄럭~
난 정말 충격이었던게 옛날에 직접본 석굴암이 지금은 이상한 유리창안에 갇혀있어서 온전히 못본다는점이었음😢
아 맞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 석굴암을 조그마한 유리로 볼 수 있었어서 석굴암이 생각보다 작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석굴암 보려고 경주갔는데 유리안에 석굴암이 작게 보여서 아쉬웠어요..ㅜ ㅜ
부처님 오신날 아니면 일부 세벽 기도 때 직접 들어가 볼수 있습니 참고하세요
석굴암 안에서 보면 존나 무섭습니다
진짜 공감함...어렸을때 굉장히 크고 거대했다고 느껴서 요근래 다시가서 석굴암갔다가 깜짝놀랬잖아요...그 어마어마한 웅장함이 없어져서 아쉽더라구요..
대학교때 동양미술사 교수님이 석조문학의 최고의 작품이 석굴암이라고 하셨습니다. 국뽕이 ᆢ 대학교때 한국을 공부한것은 온돌과 석굴암을 배운것이 기억납니다
전 국뽕없고 유럽사는 교민인데 그래도 자신있게 한국 문화재에 대해 비교하여 말씀드릴 수 있는게 1. 진짜 우리꺼다 고유의 미가 있다 2. 남의 꺼 훔쳐온 게 아니라 송사(?)가 없다 깔끔하다 죄책감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석굴암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하지만 예술 감각 또한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석굴암 부처님의 표정은 정말 품격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시다면 딱 저런 표정일 것 같은 느낌. 경지에 오른 장인의 작품이라 봅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같음...
종교는 없지만 우리나라 불교가 자랑스럽네요
완전 멋지고 신기해요!!! 석굴암 별 생각 없이 봤었는데, 너무 멋진 걸요! 이번 편 설명이 단연 최고입니다. 고맙습니다.
석굴암,불국사 등 우리나라 유적들이 유네스코에
많이 지정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술적으로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나다는게 첫 번째 포인트이고 그리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부분은 석굴암의 원기둥형
구조와 돔형으로 마무리된 지붕구조,불국사의
계단의 측부를 장식하는 별거 아닌것처럼 보이는
아치형 장식같은 석조기술이 뛰어나다는점임.
거기에 목조와 석조가 한데 어우러진 건축물이
100%라는 부분에서 프랑스의 건축가들이 영감을
많이 받고,우리나라에 자주 찾아와서 시찰하던
시기도 있었음.
와 몰랏던부분까지 자세한설명 진심 감사드립니다 시청료는 구독 좋아입니다 응원합니다 👏👏👏👏👏👍👍
미리 클스마스
석굴암의 무서운 점은 저게 화강암이라는 겁니다. 조각하기에 유리한 무른 대리석이 아니라요 ㅋㅋ 당시 기술력으로 저만한 석굴을 반듯하게 깎고 조형물을 유려하게 만든거 부터가 미쳤다고 봅니다.
사실 고려시대 대리석 조각들 남아있는 거 보면, 절대 유럽못지 않죠.
이 영상에서 언급되지 않은 석굴암의 비밀들이 몇 배는 더 됩니다.
정말 놀라운 문화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걸 가르쳐줬다면 수많았던 경주 여행을 훨씬 재밌었을 것 같다
이번편 최고네요..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집 안방에 있는 봉황을 못 보고 옆집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 공작새만 쳐다보고 살아온 저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석굴암 뿐만 아니라 그 시기 통일신라 시대에 건조한 건축물과 구조물이 모두 뛰어 남. 엄청 뛰어 남. 한국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렇게 뛰어난 예술 작품들이 없음. 매우 신기한 일이고 연구할 가치가 있음.
솔직히 신라 너무 억까 당함
@@질래야질수가없다 신라라는 국가가 뛰어나지도 않았으면 그런 양반이 석굴암, 불국사 만들 기회는 생겨나지도 않았음. 신라가 국가로서 대단한 것도 맞음.
@@waitingforgodot7867 망한 백제 인재나 기술을 흡수한 걸 수도 있음. 신라하면 당나라 끌어들여 같은 민족 뒤통수친 거밖에 생각 안 남
@@steampunk329 그때는 민족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같은 민족 뒤통수 쳤다는 말은 당시 기준으론 맞지 않음
@@minsugu8023 맞아요.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고대에서 옆 동네 산다고 "민족"이라니...? 민족 뒷통수 라는 말은 혈통을 중시하는 현대 한국의 민족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너무나 시대 착오적
학교에선 이런 영상을 보여줘야 하는데.
석굴암의 예술적 측면이 다른 건축물과 비교해서 설명해주셔서 더욱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석굴암이 원래 모습을 되찾길 바랍니다
건축공부를 할 수록 서양 건축물들에 경외감이 들었는데 석굴암의 이런 사실은 처음 아네요.. 우리나라 건축물도 정말 멋져요 그리고 기술력도 대단했네요 학교 다닐때 피렌체 대성당이 정말 대단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대 석굴암이 더 대단한 기술을 먼저 선보였다니.. 특히 황룡사 목탑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ㅜㅜ
어린시절 가족여행 간 불국사, 아빠가 길치라서 주차장 나오려다 석굴암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크고 압도적이라서 놀랐어요.
완전 신기해요!!! 석굴암 별생각없이 봤었는데 너무 멋진걸요!
석굴암 복원을 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복원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일제가 그 당시에 재료로써 최고라고 평가받던 콘크리트로 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했지 망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요.
그 조각돌 사이사이 콘크리트로 발라놔서 해체하기 매우 어려워요. 하다가 무너질 수도 있고 완벽하게 되리란 어렵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 다시 콘크리트로 재보수해 더욱 어려워요.
유리창을 없애야 한다고도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미 자체 습도 온도 조절을 못하는 상태기 때문에 유리창 존재는 필수입니다. 불가결의 존재예요.
모든 문화재 유적지를 발굴하는 과정만 온전히 밟아도 20년 정도 걸리는게 정석입니다. 가치가 클수록요. 너무 느리다고 뭐라 하지 말아주시고 복원 자체도 애매합니다. 복원하면 좋겠지만 조선시대처럼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부분도 아니니 어느 공법으로 어느 재료로 어느 형태로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을 지키지 않는다면 복원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이 훼손되겠죠
너무 유익하고 좋은 영상이네요. 잘 봤습니다.
통일신라 퀄리티도 못쫓아가는 조선.. 가슴이 웅장해지는군요
좋은정보 밤사합니다
솔직이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나 중세 성당 건축물들과 석굴암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는 사람들을 보며 말문이 막혔었는데
대꾸를 해볼 자료를 본거 같습니다ㆍ
수준 높은 교양 지식 감사합니다
쐐기돌 소름돋네요 석굴암에 대한 설계도까지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싶습니다 ㄷㄷ
잘봤어요 많이 도움이 됐어요
화강암이 단단한것 뿐만아니라 .. 더 다루기 어려운건 .. 금이 가거나 깨진다는거죠 ...
99프로 완성 됐는데 .. 마지막 1프로 남은것 때문에 정으로 찍었다가 .. 쩍~하고 전체가 다 깨져버릴 수가 있죠.. 이게 경도가 높은 재질의 특징인데 .. ...
그래서 화강암은 단단함을 넘어 훨!~씬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700년 앞선 기술을 보유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더욱 살펴봐야 할 것은 어떻게 그러한 기술력이 꽃필 수 있었는지 환경을 연구하는 것 입니다. 앞선 기술력에는 특별한 환경이 주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그 환경이 극도의 효율을 이끌어내게되는데 그 환경을 연구하는 것이 비슷한 효율을 습득하거나 활용하는 것에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구경만하기엔 아까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집트에 피라미드나
왕가의 무덤을 보고 오면서 왜 불가사의인지 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크기에 압도 당하였던 기억이 있다
서양인들도 석굴암에서 그런류의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국뽕을 가져도 충분한 문화재가 맞다
이 정도면 거의 논문 수준이네요. 이런 정보들은 어디서 구하는 거죠? 알찬 내용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석굴암 보고 왔는데~ 영상 보고 갔으면 더 좋았겠어요~
수학여행때도 이걸 알았더라면... 유익한내용 감사합니다
선생님 매우 유익한영상 재밌게봤습니다
이 영상을 계기로 떡상하실듯!!
영상 퀄리티가 장난이 아닙니다 채널 떡상하셔야할듯..
인간중심이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휴머니즘 만편평등사상이 있고 에너지와 힘 시간을 널리널리 확산시키는 만물애 우주애가
충만합니다.
하나가 아니라 전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우주역사를 쓰는 민족의 결정
체이자 빛입니다.
석굴암은 당시 기술로 가능한가 싶을정도로 어려운 가로세로 1미리 오차도 허용치 않을만큼 정밀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중 가장 잘 만든 것 하나만 고르라면 성덕대왕신종과 비견 혹은 그 이상일듯하네요.
어릴때 보는 석굴암과 커서 보는 석굴암이 다르죠..ㅎㅎ 어릴땐 저게 왜 멋있다는건지 의구심을 가졌지만, 화려한 조각은 없지만 심플함이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오죠. 스페인보다는 못하지만 이태리보다는 앞선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ㅎㅎ 김대성, 미칼렌젤로, 레오나드로 다빈치,가우디 한명의 천재들이 문화를 바꾸는것 같네요 ㅎㅎ
유럽의 대리석과 한국의 화강암 가공난이도부터가 다르죠
우왕 모야 이런 유용한 TMI 정보는 너무 좋네요!
우리 선조의 훌륭한 문화와 기술을
국뽕빼고 정말 알차고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최상급 최고 입니다.
대학생때 석조수업이랑 미술사듣고 석굴암 보러갔더니 자동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기억이..ㅋㅋㅋㅋ순식간에 엄청나게 압도적으로 기술력이랑 예술적인 면모 모든것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대단한 유적도 해외에서 대중에게 발간되는 세계 문화재 서적에는 전혀 실리지 않는 현실이죠. 그저 중국 일본의 새로 복원된 빤지르르한 목탑등만 소개. 석굴암 같은 건 진짜 세계적으로 훨씬 알려져야 한다 봅니다.
석굴암 본존불 정교하게는 조각되지는 안았지만 거룩하게 보이죠 실제로 위엄이 넘치는 신인을 대하는듯한 느낌을받습니다 반가사유상도 그렇고요 서양의 다비드상 정교하지만 그 예술성을 본존불과 비교하기는 모자라 보이내요
본존불은 신이 만든것같음 저의 느낌적인 생각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가룩하게 표현할수 있을까 상상으로 만들수는 없고
실제로 만은 수양을 한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안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조선 시대 선비의 초상을 보아도 범상치 안은것 처럼요
석굴암..보면..감탄을 자아냄 한편으론 당시 제작인력들이 저 깊은 산 속에 또 그 무거운 화강암을 들어올리거나 깍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어우야...예술이전에 진짜 인력을 갈아넣은 기술임..진짜 고생했을듯..ㅎ
이 채널 영상은
너무나도 궁금하게 잘 만든 내용과 구성
그리고 너무나도 잠이 잘오는 편안한 목소리
두개가 동시에 나와서 졸리면서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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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유용한 컨텐츠입니다
박수
감안해야하는게...
르네상스는 14~16세기
신라는 2세기~10세기
울나라 미술품을 통털어 대적할만한 상대가 없는것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금동대향로(원본임 / 용산 중앙박물관이 복제품)입니다. 사진으로만 보지 말고 부여엔 가볼만한 곳이 많이 있으니 가시는 일정에 하나 추가해 실물을 보시면 좋을듯.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어떤 예술작품보다 더 전율이 느껴지는 경험을 했죠.
석굴암이 이런 비밀이 숨겨져있었다니 놀랍네요!! 다시 가보게 되면 새로이 보일것 같습니다
이런정보는 너무 좋음 나라사랑과 진짜 국뽕이니
진짜 유익하고 재미있어요..
미술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설명 되게 쉽게 잘 하시고 전달력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역시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게 많아지는군요
한 10년 전인가? 지금처럼 유리 밖에서 보는거 말고 실제로 들어가서 봤을때 석굴암 진짜 레알 지림... 영엄하고 신성한 느낌이 엄청남. 주변이 백색으로 가득차있으며 고요하고 비밀을 간직한거 같은 느낌임. 근데 지금은? 그냥 산책로 10분 20분 걷는데 입장료 내는 느낌임
심지어 유럽은 대부분 석회암이라 가공이 쉬운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화강암이라 가공이 어렵죠. 진짜 어떻게 만든 건지 ㄷㄷ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문 -
어릴 적 경주가서 유리창 세워지기전 석굴암을 보고 온 내가 승자구나.... ㅜㅡ
1955년초등학교때어렵게소풍을갔다불국사에.선생님을따석굴암에갔다.세월이흘러10년전석굴암구경가서보았다.너무안름다움에내영원이빨려들어감을늦겼다.그런데외국관광객이참많았다
중동과 신라의 교류, 화강암으로 원근법을 바탕한 불상. 이렇게 또 역사공부를 하고갑니다
저 역시 석굴암의 돔 건축기술과 원근법을 이용한 배치를 듣고 천년전의 조상의 지혜에 감탄합니다
다만 조선시대때 숭유억불책으로 사찰의 외면 , 조선말 에서 일제 초기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폐허처럼 방치된 사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특히 석굴암은 전면이 허물어 졌는지 본존불 빼고 일부 인왕상은 밖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본존불도 거의 지척에 노출되어 있고요
이런 상태에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었다니 신기합니다
올해 경주 처음 여행가서 석굴암을 본적이 있는데 나도모르게 눈물이 나올만큼 갬동이었습니다
겁나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니 서양의 섬세한 그런 조각은 힘들었지
그러나 삼국시대 금 세공의 화려하고 정교한 수준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한반도에 대리석이 풍부했다면 서양의 조각 수준을 뺨치는 수준으로 우리도 만들었을 듯
석굴암과 인도의 아잔타 석굴의 천신상을
가본 사람으로 석굴이 화강암으로 제작 과정상
어려움이 훨씬 크죠.국뽕 없이 논평 좋아요
최근 5년간 본 영상중 가장 유익한 영상
국사선생님들이 석굴암을 얘기할 때면 항상 눈에 총기를 띈채로 말하던게 생각나네요.
석굴암의 원래 설계는 관람자가 석굴암 내부로 들어가서 본존불 주변을 걸어서 도는 건데...
지금은 영상 후반에서 말한 에어컨을 하루종일 켜둬야 하는 문제까지 겹쳐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죠.
분명 신라 시대에 수학 잘하는 사람이 있었을 거임
재상 김대성이 석굴암을 남산이 아닌 경주에서 좀 떨어진 토함산 깊은 골짜기에 지은 건 탁월한 위치 선정입니다
만약 남산에 만들었다면 조선조에 파괴되었을 겁니다. 조선 5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건 또 다른 기적입니다.
석굴암은 우리문화 유산 중에 탑중에서도 최고봉입니다.
조선 시대 기록보면 애초에 알고 있었습니다 억불정책은 맞지만 주자학에 미친건 전란 이후입니다 그리고 사진에 보면 관리를 전혀 못한걸로 나오는데 지진이후이고 그당시 열강의 침략으로 신경을 쓰기 어려웠죠 대표적인 역사왜곡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불교 최대의 전성기는 고려조 일제가 신라를 강조하면서 유난히 경주 경주 거리는 경향도 심해지고 그걸 그대로 배운 사학자들도 크게 주장한거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신라시대 그대로 의 석굴암 시스템을 복원못해 유리로 막아놧다는게 그당시 기술이 월등하단소리네요
와....여태까지 우리나라는 화강암을 단단한걸 조각했다만 알고
뭐다른 특징이지 관찰과 연구로는 이어간적이없는데.
저의 5년을 해결해주셧군요
감사합니다.
blog.naver.com/dbsgksdjq0/222935428227
요약하고 정리했습니다.
많은분들이보고 이영상을보면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와........대단합니다...
좋은정보감사합니다
저도 문화사대주의는 아니지만 유럽의 문화유산을 직접 마주한 후 서양의 문화재가 우리나라보다 조금은 더 우수하고 정교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홀로 석굴암에 갔는데 본존불의 편안한 미소를 감상하고 같이 있던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재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 간단한 질문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소름돋게 저를 위한 주제의 영상인 것 같아 댓글 남겨요.
화려함과 정교함은 돌의 물성에 따라 그 한계가 달라지는건 몰랐네요. 서양미술과 건축도 아름답지만 한국의 문화재 건축물도 정말 멋집니다❤
서양의 조각상이 정교하며 아름답게 세공이 되었지요. 다비드상은 혈관과 근육마저 묘사했을정도니깐요. 하지만 석굴암은 화강암을 가공해서 만들어졌는데 현대에서도 다이아가루를 뿌리구 연마해도 잘될까말까인 그런돌을 천년전에 못과망치로 옷의주름마저 표현하며 돌의 재질과도 무관하게 세밀함을 챙겼죠. 이로인해 불상의 인자함과 온화함 그리고 동굴의 구조 배치를 통해 웅장하마저 표현했죠. 경향성이 다르고 그안에 내포된 기술력이 다르기에 어릴때는 서양의 조각상을 그 세밀함에 감탄하며 보았는데 이제는 석굴암을 만드는데 들어간 기술을 알고보니 또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개성과 거기에 담긴노력 기술들이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을뿐 둘다 훌륭하머 예술의 본질을 훌륭히 녹여낸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아야할 영상
초등학생때 경주 수학여행 가기전에 담임선생님한테 석굴암에 대해 배우고 갔어는데 설명을 들을때도 감탄했고 실물보고도 감격적..
와 대단하네요,
국뽕에 취하네요 좋은 영상 고맙습니다
섬세한 백제의 예술.건축.토목
일본으로도 전수하여준 백제의 문화예술은 감탄.
내용이 너무 좋으네요
애국심이 있든 없든 석굴암 안에 들어가 보고 그 앞에서 입 쩍 안 벌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석굴암은 예뻐
크진 않지만 고급지게 이뻐
눈을 가진 자라면 그 조화로움이 아름답단걸 알거야
3:48 뒤에 양각들을 보면 묘하게 우리문화에서 나올법한게 아닌 이질감이듦. 비잔틴문화같다고해야하나
번역,자막이 필요해!! 많은 이들이 봤으면
중학교때 석굴암 실제로 처음 봤는데 감정이 없는편인 내가 진짜 거짓말 안하고 너무 아름답고 웅장해서 눈물날뻔했음
철웅대선사께서 법문하시면서 인류역사의 최고걸작이 석굴암이다 라고 사자후를 포효하심 ! 지금은 열반하신 철웅스님 법문들으시면 대한민국이얼마나 위대한 나라인가를 느낄수 있읍니다.
옛날엔 석굴암 안에 들어가서 찍고 그랬는데 이젠 막아놓음
안에서 찍은 사진 아직 있음
우리나라 문화재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거치며 도굴되거나 훼손된 경우가 태반이라...대놓고 못옮길 정도로 거대한 것들만 남아있는게 현실임.
화강암으로 저 정도 수준의 세밀한 조각을 한 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함
석굴암은 무슨 3D 프린터로 만든 듯한 디테일임 ㄷㄷ
저는 불자라 국민학교 때부터 청년기까지 많은 법사님,스님,강사님,선배님들의 말씀이 하실때마다 새로워는데 오늘 비교 설명하시니 국뽕이 충만,성불합시다()
토함산 석불은 철저하고 완벽한 수학적 계산으로 축조되었으며, 팔만대장경에 적힌 장황한 내용이 그 작은 공간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영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제가 발견한 후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복원한답시고 콘크리트를 처발랐을 뿐 아니라, 초당 10리터의 차가운 지하수를 내뿜어 바닥으로 결로현상을 유도하던 샘물을 배수시켜버려 습도 조절 기능을 상실했고, 이끼가 끼기 시작하자 고온의 스팀을 분사해 다박솔로 박박 닦아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광복 후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면서 토함산 석불은 또다시 수난을 겪는데, 일제가 발라놓은 콘크리트 위에 또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상태를 더더욱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전문가의 반대가 있었으나 묵살당했고, 외국에서 초청한 전문가의 말만 들었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365일 에어컨 가동이라는 마지막 조치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슨 악영향을 줄지 확실치 않아,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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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유도 그냥 눈물이 나네...
석굴암을 탑(절)으로, 탑(절)을 석굴암으로 만들기. 세계관을 트랜스포머 해보면 좋겠네요.
유홍준 교수 : 통일신라 건축, 석조물/탑 등이 이 땅의 고전양식이다.
(형식의 표본~)
요즘은 쇄기돌이라 부르나요? 우리땐 주먹돌이라 불렀는데. 무개중심이 아래로 향하게 주먹같이 만들고 그 뒤를 완만한 사다리꼴로 만들어서 돌과 돌사이를 꽉 끼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천개석으로 눌러주는 형태. 어지간한 붕괴가 일어나도 나머지는 무너지지 않죠. 그 모습이 강점기때 사진에도 나와있죠. 천장의 태반이 무너졌는데도 천개석과 일부만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 90년 후반 사학과 출신이라 요즘은 머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네요.
유럽은 건축과정과 설계도가 전수되는데 우리나라는석굴암이 있었는지도 모름
유럽은 기록등이 다른나라가 약탈해서라도 어딘가로 흘러가서 보존되는데 조선은 무슨 불이라도 나면 그 뒤가 없음.
그렇다기엔 로도스의 거상,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은 흔적도 없지 않나요
솔직히 국뽕없리 석굴암 본존불상형님이 섬세히 생기긴 했다.
석굴암. .안타 깝죠 .. 부서지고 훼손대고 .. 콘트리트 들어가고 ..
석굴암 원형이 깨뜨린.. 자들이 누군지 잊지들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