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대는 부정부패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은 사실상 부도상태였습니다 .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부도난 기업을 인계받았다고 봐야죠 . 그 상태에서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돼죠 . "좌고우면" 할 시간을 없었죠 . 당시 국외상황도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 영국은 산업혁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고 일본도 "자의반타의반" 으로 국가개혁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고 . . . 그런 점에서 조선도 "적극적개혁" 으로 눈을 돌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홍영식선생같은 소극적개화파보다 김옥균같은 적극적개화파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
홍영식을 죽인건 청군이 아니라 조선군이었습니다. 그러니 고종이 뒷통수를 친 것이지요. 고종이 개화파들을 보고 자기를 따르면 보호해줄것처럼 말해놓고 정작 홍영식과 박영교가 따라오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 모두 죽였고 바로 삼족몰살로 들어갔지요. 이때문에 외국 지식인들의 조선에 대한 혐오심만 극대화시켜 불리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오의택-f3u 명성황후는 고종을 미화하기에 실제 역사와 다른게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갑오개혁 마저 개화파의 업적을 다 지워버리고 그저 일본이 모든걸 좌지우지한 개혁인 것마냥 왜곡을 시켜놨지요. 심지어 갑오개혁으로 만들어진 대군주 폐하라는 호칭을 대군주 전하로 아주 대놓고 왜곡을 해놓기도 합니다. 때문에 홍영식, 박영교의 죽음도 마치 고종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것마냥 만들어놓기 위해서 청군이 죽인걸로 뒤바꿔놨지요.
1850년대는 부정부패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은 사실상 부도상태였습니다 .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부도난 기업을 인계받았다고 봐야죠 .
그 상태에서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돼죠 .
"좌고우면" 할 시간을 없었죠 .
당시 국외상황도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
영국은 산업혁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고 일본도 "자의반타의반" 으로
국가개혁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고 . . .
그런 점에서 조선도 "적극적개혁" 으로 눈을 돌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홍영식선생같은 소극적개화파보다 김옥균같은 적극적개화파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
안보는 게 암기에 도움됨
ㅇㄱㄹㅇ
조상님들 정말....
갑신 정변 후에 살해 당한 정치가 두분 계셨네요?
구한말 버젼 사보이호텔 칼부림사건~*
온라인 수업 ^^ 아주 싫다
여러분 홍영식 선생님은 진정한 애국자 이십 니다 김옥균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 정난교 와는 다르게 일본 망명 거부 하고 고종 황제 곁에 남아 갑신 정변 주도하신 인물로 청나라 군인 들에게 떳떳 하게 순국 하신 분이 시에요
홍영식을 죽인건 청군이 아니라 조선군이었습니다. 그러니 고종이 뒷통수를 친 것이지요. 고종이 개화파들을 보고 자기를 따르면 보호해줄것처럼 말해놓고 정작 홍영식과 박영교가 따라오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 모두 죽였고 바로 삼족몰살로 들어갔지요. 이때문에 외국 지식인들의 조선에 대한 혐오심만 극대화시켜 불리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gerughigiulio9190 진짜 에요?
@@오의택-f3u 실록에 홍영식과 박영교를 죽인 이들이 아병(我兵) 즉 조선군으로 분명히 나옵니다. 위안스카이의 입장에서는 개화파 정권을 붕괴시키고 일본군을 몰아내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지 괜히 조선 관료를 살해해 외교적 약점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gerughigiulio9190 그러 네요 찬란한 여명 홍영식 선생님 께서 조선군의 검에 최후를 맞이 하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이 나오는 데요 명성 황후 에서는 청나라 군사의 총에 최후를 맞이 하는 것으로 각색이 되어 나오 더라고요 어찌 된 거에요?
@@오의택-f3u 명성황후는 고종을 미화하기에 실제 역사와 다른게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갑오개혁 마저 개화파의 업적을 다 지워버리고 그저 일본이 모든걸 좌지우지한 개혁인 것마냥 왜곡을 시켜놨지요. 심지어 갑오개혁으로 만들어진 대군주 폐하라는 호칭을 대군주 전하로 아주 대놓고 왜곡을 해놓기도 합니다. 때문에 홍영식, 박영교의 죽음도 마치 고종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것마냥 만들어놓기 위해서 청군이 죽인걸로 뒤바꿔놨지요.
일본탓으로 시작해서, 일본탓으로 끝나는 한국역사.
언제까지 반일팔이 할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