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성당 - 충청도 최초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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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3 вер 2024
  • 합덕성당은 당초 1980년 예산의 고덕면에 양촌성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899년에 당시 초대 본당주임이었던 퀴를리에(Curlier, J. J. L.) 신부가 현 위치의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물을 건축하고 성당을 옮겨오면서 합덕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인 이 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둘레와 종탑의 각 모서리는 회색 벽돌로 쌓았다. 창 아래와 종탑의 각면은 회색 벽돌로 마름모형의 장식을 하였다.
    현재의 성당은 1929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약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에는 순교의 장소가 되기도 한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적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뒷뜰에는 네 분의 성직자 묘지가 있다고 한다.
    이 매스트르 (1808-1857) 신부는 성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신학생의 스승으로 1852년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전교하다가 황무실 공소에서 선종하신 분이다.
    홍병철(랑드르, 1828-1863) 신부는 1861년 우리 나라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시다가 병사하셨다.
    백문필(패랭, 1885-1950) 신부는 1921년 부터 1950년 피납되기까지 계셨다. 현 성당 건물을 지은 분이다. 1950년 성모승천대축일 전날 고해성사를 집전하다가 납치되었는데 시신은 현재 대전 사정공원 애국지사 묘에 묻혀 있다.
    심재덕(마르코, 1908-1945) 신부는 1942년부터 백문필 신부 보좌로 있다 병사하셨다.
    합덕성당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많이 배출한 성소 못자리로도 유명하다.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5명(수사 수녀는 1990년 통계)을 배출하였다.
    ※ 윗글은 인터넷 위키백과를 참조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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