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총선때 국민들 95.5퍼센트가 참석해서 후보자 9백몇십명 중 190여명의 국회의원을 아주 잘 뽑은 거 같다. 그 국회의원들이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을 뽑은 것이 정말 신의 한수가 아닌가! 다시 한번 다음 선거에서 일어나야 될 기적이다. 저때 처럼 부정선거의 위험이 있으니 유엔의 감시단 하에 공정하게 선거하자. 사전선거 하지 말고 큐알코드 쓰지 말고 수개표 하자!!
@Hyunjae Oh 3.1 운동이 무엇인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그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은 거죠. 3.1 독립선언서는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인은 식민지 백성이 아닌 자주민임을 선포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죠. 국제법상으로는 냉정하게 독립이 아닐지 몰라도 우리민족에게는 독립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있죠. 대한제국에서 황제만 빠지고, 백성의 나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에서 민짜로 바꾼 대한민국이 된 것이구요. 당신이 건국의 아버지라 칭송해 마다않는 이승만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을 1919년으로 하였으니, 그 의미를 참고하세요. 이승만 정부시절 관보를 찾아보시면 전부 대한민국의 건국년을 1919년으로 잡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죠.
Hyunjae Oh 현재씨 일 개인이 건국이 되고 안 되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건국의 주체가 그렇게 선포를 하였고, 그것을 기념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 까지 의미있게 이어져 온 것이죠. 당신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1948년 갑자기 강대국들이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제헌국회와 제헌헌법은 정확히 명문화하고 있죠. 대한민국은 3.1운동을 계승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아 세운 것이라고요. 심지어 대한민국의 헌법 1조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구요. 이승만이 1948년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낭독한 내용을 살펴볼까요?? 이 민국(民國)은 기미년 3월 1일에 우리 13도(道)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大韓獨立民主國)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야 민주주의(民主主義)에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불행히 세계대세(世界大勢)에 인연해서 우리 혁명이 그때에 성공이 못되었으나 우리 애국남녀(愛國男女)가 해내해외(海內海外)에서 그 정부를 지지하며 많은 생명을 바치고 혈전 고투하여 이 정신만을 지켜온 것이니 오늘 여기서 열리는 국회는, 즉 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己未年)에 서울에서 수립(樹立)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의 민국의 부활일(復活日)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년호(民國年號)는 기미년(己未年)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요 이 국회는 전(全)민족을 대표한 국회이며 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정부는 완전한 한국(韓國) 전체를 대표한 중앙(中央)정부임을 이에 또한 공포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죠. 기미년인 1919년부터 대한민국 건국일을 계산할 것이라구요. 정신나간 몇몇 선동가들이 이승만을 마치 건국의 아버지로 기념하며, 대한민국을 반공의 기치로 세워진 국가인 것 마냥 오도하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죠.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정신을 잇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입니다. 당연히 건국은 1919년이 되는 것이죠.
@Hyunjae Oh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인정은 대한민국이 국제연합 UN에 정식 가입한 1991년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 내에 설치된 괴뢰집단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으로 인정받은 정식국가라고 스스로 인정해야만 하는 꼴이구요.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바가 있고, 우리 국가가 세워지는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국제법에만 기준을 두고 우리 자신을 재단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태도죠. 국제법이란 어디까지나 국제법일 뿐이죠. 현실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땅인 거 아시죠? 북키프로스는 독립선언한지 이미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은 터키 뿐이죠. 대만 역시 우리나라도 국가로 인정 못하고 있는 거 아시죠?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우리가 우리 역사를 이해하고, 서술할 때 주체적인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강조해야하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있어서는 그것이 3.1운동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이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독립은 의제에 오르지도 못했으며, 임시정부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하지 않았다면(당시 국제기준으로는 테러활동) 조선인들은 한일합병에 긍정적이며, 일본의 통치에 찬성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만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일본이 패망을 했을지언정 조선반도의 일본 영토로부터의 분할은 여전히 요원했을 겁니다. 3.1운동 이후 각계각층의 조선인들이 조선독립을 위해서 여러모로 애썼고 그러한 노력이 외교적으로 전달이 되어 카이로회담의 의제로까지 올라 명문화될 수 있었던 겁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김구 주석과 단독면담을 가지게 되죠.)
이렇게 보면 되는거 아닌가요? 1919년은 건국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1948년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독립국으로서 인정받으며 건국을 완성하는 시점이라고 1948년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출발하였고 6~80년대까지 고도경제성장을 90~00년대 선진국에 진입 2010년대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의무를 다 했고 2020년대는 선진국다운 선진국과 비슷한 사회보장시스템를 구축하며 쌓아올리는 과정에 서있는 중이라고
누군가 만든 영상만 보고 시대를 평가하지말고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해야된다. 그리고 비판받을 역사여도 왜곡없이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함 해방후 3년 동안 미군정 통치기였고, 미국이 5년간 신탁통치를 주장한 이유는 당시 많은 독립군들이 사회주의를 옹호 했기 때문에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거였음 사회주의가 지금은 실패한 사상이지만, 일제 강점기시절 노예 생활을 하던 조선에서는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좋았고, 마오쩌둥의 공산화 세력과 독립군이 함께 일본에 저항도 많이 했음 그러다 보니 많은 독립군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했지만, 모든 독립군이 사회주의자이진 않았음 실제로 신탁통치의 오보로 인해, 신탁을 반대하고 살아남기 위해 이승만을 지지했던 많은 친일파들은 애국자가 되고, 신탁통치에 반대한 독립군들은 매국노가되는 말도안되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는데, 목숨부지중인 친일파가 독립군을 고문해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게됨 이게 참 대한민국의 꼬여버린 역사적 비극인데 친일파세력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남한만의 정부수립이 필요했고, 북에서는 친일파 죄다 숙청당했거든 갈데가없는거야 그리고 민족지도자들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내기 꺼려하던 분단을 먼저 이야기 한게 이승만의 정읍발언임 이승만아니면 남한이 공산주의가 되었을거라고 하는데 절대 그럴일은 없음. 47년 트루먼의 독트린으로 사실상 미소냉전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절대로 남한이 공산화 되는걸 막았을거임 미국이 지지한 대통령 김규식, 부통령 여운형은 사람 됨됨이만 보더라도 이승만의 독재, 부정, 부패, 친일위주 정권 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거라 생각함 중도우파 김규식, 중도좌파 여운형은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신념을 대한민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접은 사람들임, 좌우대립이 어마어마하게 심했지만 대한민국의 분단을 막기위해 좌우 합작을 만들었고, 물론 그 안에서도 갈등은 있었지만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한 인물들이었음. 김구는 좌우합작을 해방이후 민족 최대의 성과라고 박수 치며 환영하셨고, 미국도 좌우합작을 지지했음. 이승만은 좌우합작을 견제함 말그대로 분단이 코앞이고 전쟁발발은 당연한 일인데도 남한만의 정부수립(건국x)을 위한 활동을 계속한거지 여운형이 암살되고 좌우합작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고, 이제 분단을 막을 인물이 없게 되어버림 김일성, 좌우합작, 이승만 등 당시 민족지도자들이 하나로 뭉쳐 미소에 대응하지 못한게 참 안타까움, 야욕을 앞세워 바라본 결과가 분단이 되었고, 전쟁으로 번졌으니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따지겠음 그치만 확실한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지않았으면 친일파들은 거의다 숙청 당했을거임 친일파세력을 등에 업고 정권을 출범한 이승만은 제대로 친일파 처단을 하지 않았고, 친일 박정희, 신군부 전두환 노태우가 민주주의를 박살내버리니, 우리나라 역사의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다 날려버린것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됨
1편부터 여기까지 다 지켜봤는데 궁금증이 있음. 1)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와 스탈린이 합의한 내용이 일본에 전쟁참여하면, 일본에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한다는 말 또는 합의가 있었나본데요, 그럼 루즈벨트가 죽고 부통령이였던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고, 자기는 몰랐다고해서 소련과 그 합의 내용을 번복할 수 있는 겁니까? 2)결국 1945,8.8일 소련이 만주를 공격하면서 남진 해왔고 38선을 기준으로 미-소 간 신탁통치를 서로 합의 했는데, 동아일보의 오보로인해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 미국이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읽혔습니다. 그럼 결국 남한의 임시정부는 이런 선동으로부터 발생한건가요? 듣다보면 초기에는 남한에 사회주의자나, 그쪽 입김이 쌨었는데, 나중가서 이런일이 있고 결국 총선때 바뀐 것 처럼 들려서요 3) 일단 그렇다고 쳐도, 미국이 그럼 원래 신탁통치를 서로 하자고 했고 소련 미국 양국다 동의 한 내용이 불리해지니까 UN에 자기 마음대로 상정해서 일을 처리한것 아닌가요?(양국 당사자인 소련은 거부 했다는 내용때문에요) 동영상 내용보다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뭔가 계속 자기입맛에 안맞으면 뭐 바꾸고 번복하고 그러는 것 같아서요 양아치 국가인가..
영국,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사회는 당시 식민지를 거느리던 제국 국가였기 때문에 조선의 독립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죠. 이런 상태에서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이 문서에 명시된 것은 굉장히 획기적이고도 놀랄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있으나, 기존에는 장제스 역할론 설이 주였고, 최근에는 미국의 결정론이 나오고 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장제스와 개인면담을 성공시킨 김구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구요. 그러나 조선의 독립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죠. 회담 초안의 문구였던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시기에 '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가 ‘적당한 시기를 의미하는 'at the proper moment’라고 고쳐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최종적으로는 처칠에 의해 'in due course’로 바뀌죠. 결국 우리는 자주적인 독립을 꿈꿨으나, 서구 열강은 처음부터 조선의 독립을 신탁통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omdd985 당시 소련은 혁명 이후, 노동자 세상, 민중해방을 기치로 내건 신생국이었고, 서구 유럽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민족해방, 식민지 독립을 내세웠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동맹이 되었을 뿐, 미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과 공존할 수 없음은 너무도 명확한 것이었죠. 한반도의 신탁통치 찬반논쟁은 그저 명분을 쌓기위한 책임 떠넘기기일 뿐, 소련은 자신의 위성국을 북한지역에 세운 것이고,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정권을 UN의 이름 하에 남한에 세운 것입니다. 당시 UN은 오늘날의 위상과 같지 않았고, 당시 소련은 UN을 제국주의 국가들의 모임 정도로 여겼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죠. 즉, 소련은 조선의 독립에 우리가 아무런 간섭을 하지않았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볼 수 있구요. 미국은 조선의 문제를 미국 일국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해결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UN을 표면적으로 내세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5.10총선때 국민들 95.5퍼센트가 참석해서 후보자 9백몇십명 중 190여명의 국회의원을 아주 잘 뽑은 거 같다.
그 국회의원들이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을 뽑은 것이 정말 신의 한수가 아닌가!
다시 한번 다음 선거에서 일어나야 될 기적이다.
저때 처럼 부정선거의 위험이 있으니 유엔의 감시단 하에 공정하게 선거하자.
사전선거 하지 말고 큐알코드 쓰지 말고 수개표 하자!!
95.5퍼센트가 설마 진짜라고 믿는건 아니겠지?
이 영상 추천합니다. 매일 매일 하루 한번씩 두고두고 봐고 손색없는 영상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한편으로는 민족의 절반만이 참여한 정부임
이점이 안타까움
@@user-jm8hw3ij6p 절반이 빨갱이가 되어버렸으니..
@@user-uu5em4sw7y ㅇㅈ
@@user-uu5em4sw7y 빨갱이만 아니라면 온전한나라가 되는건데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여러 어려운가운데 자유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감격스러운날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김일성 밑에서 살았을겁니다 이승만대통령을 비롯해서 여러건국 선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이야 이 나라 멋진데? 한국 멋지다! 한국이 자랑스럽다!
@효정카지노톡fkbo1 ㅈㄹ ㄴ
친미반중! 멸공!!..자유대한민국 만세!
제발 좀 국민들이 이 영상 좀 봐라...제발 좀....
ㅇㅈ 특히 공산당 패거리들.
짝짝짝 매우 잘 만들었군요....감사합니다!
이세상에서 대한민국같은 훌륭한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도 우리나라 만큼은 아니구요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이 영상을 통해 우리나라 대한의 청년들이 건국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기를,,,, 갈등과 분쟁만 남기는 이념전쟁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 행복을 누리는 진정한 자유평화가 한반도에 있기를 !
좋아 아주 좋아~~!
감동 ~~~~~~
자유대한민국
이승만 없었으면 통일 됐을것이다. 물론 공산주의로 그런데 그것에 대한 평가가 올바르지 않고 대단히 매도 되었다 이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왜 그렇게 까지 반공 했는지 긍정적으로 평가가 이루어 져야한다
이승만 김구도 애국자로써 최선을 다하셨지만 김규식 여운형이 미군정의 지원을 받아 주력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역사란게 정말 한끝차이로 10년후 100년후가 확확 달라진다는게 영상을 통해 느껴진다 하루하루 신중하게 살아야지
꿀잼이다
정부수립은 이퀄 대한민국 건국의 완성
따라서 이승만대통령은
초대대통령이자 건국대통령
고마워라! 건국의 원훈들이여!
너무 재밌게 잘 봤어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올바른 표현 정부가 잘 사용하고 있네요.
@Hyunjae Oh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시절 건국된 것이 맞죠. 이승만 통치기간 관보를 봐도 대한민국의 건국시기는 임시정부 시절부터 년도를 세서 표기합니다.
@Hyunjae Oh 3.1 운동이 무엇인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그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은 거죠. 3.1 독립선언서는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인은 식민지 백성이 아닌 자주민임을 선포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죠. 국제법상으로는 냉정하게 독립이 아닐지 몰라도 우리민족에게는 독립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있죠. 대한제국에서 황제만 빠지고, 백성의 나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에서 민짜로 바꾼 대한민국이 된 것이구요.
당신이 건국의 아버지라 칭송해 마다않는 이승만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을 1919년으로 하였으니, 그 의미를 참고하세요. 이승만 정부시절 관보를 찾아보시면 전부 대한민국의 건국년을 1919년으로 잡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죠.
Hyunjae Oh 현재씨 일 개인이 건국이 되고 안 되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건국의 주체가 그렇게 선포를 하였고, 그것을 기념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 까지 의미있게 이어져 온 것이죠.
당신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1948년 갑자기 강대국들이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제헌국회와 제헌헌법은 정확히 명문화하고 있죠. 대한민국은 3.1운동을 계승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아 세운 것이라고요. 심지어 대한민국의 헌법 1조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구요.
이승만이 1948년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낭독한 내용을 살펴볼까요??
이 민국(民國)은 기미년 3월 1일에 우리 13도(道)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大韓獨立民主國)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야 민주주의(民主主義)에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불행히 세계대세(世界大勢)에 인연해서 우리 혁명이 그때에 성공이 못되었으나 우리 애국남녀(愛國男女)가 해내해외(海內海外)에서 그 정부를 지지하며 많은 생명을 바치고 혈전 고투하여 이 정신만을 지켜온 것이니 오늘 여기서 열리는 국회는, 즉 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己未年)에 서울에서 수립(樹立)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의 민국의 부활일(復活日)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년호(民國年號)는 기미년(己未年)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요 이 국회는 전(全)민족을 대표한 국회이며 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정부는 완전한 한국(韓國) 전체를 대표한 중앙(中央)정부임을 이에 또한 공포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죠. 기미년인 1919년부터 대한민국 건국일을 계산할 것이라구요. 정신나간 몇몇 선동가들이 이승만을 마치 건국의 아버지로 기념하며, 대한민국을 반공의 기치로 세워진 국가인 것 마냥 오도하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죠.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정신을 잇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입니다. 당연히 건국은 1919년이 되는 것이죠.
@Hyunjae Oh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인정은 대한민국이 국제연합 UN에 정식 가입한 1991년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 내에 설치된 괴뢰집단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으로 인정받은 정식국가라고 스스로 인정해야만 하는 꼴이구요.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바가 있고, 우리 국가가 세워지는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국제법에만 기준을 두고 우리 자신을 재단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태도죠. 국제법이란 어디까지나 국제법일 뿐이죠. 현실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땅인 거 아시죠? 북키프로스는 독립선언한지 이미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은 터키 뿐이죠. 대만 역시 우리나라도 국가로 인정 못하고 있는 거 아시죠?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우리가 우리 역사를 이해하고, 서술할 때 주체적인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강조해야하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있어서는 그것이 3.1운동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이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독립은 의제에 오르지도 못했으며, 임시정부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하지 않았다면(당시 국제기준으로는 테러활동) 조선인들은 한일합병에 긍정적이며, 일본의 통치에 찬성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만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일본이 패망을 했을지언정 조선반도의 일본 영토로부터의 분할은 여전히 요원했을 겁니다. 3.1운동 이후 각계각층의 조선인들이 조선독립을 위해서 여러모로 애썼고 그러한 노력이 외교적으로 전달이 되어 카이로회담의 의제로까지 올라 명문화될 수 있었던 겁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김구 주석과 단독면담을 가지게 되죠.)
이렇게 보면 되는거 아닌가요? 1919년은
건국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1948년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독립국으로서 인정받으며 건국을 완성하는 시점이라고
1948년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출발하였고 6~80년대까지 고도경제성장을 90~00년대 선진국에 진입 2010년대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의무를 다 했고 2020년대는 선진국다운 선진국과 비슷한 사회보장시스템를 구축하며 쌓아올리는 과정에 서있는 중이라고
현대사 공부하고 싶어서 듣고 있는데 배경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최고
대한민국민세!
이런거 볼면 볼수록 문재인 대통령은 저쪽인데 ㅠㅠ
I wish I could read Hangul.
김형석 독립유공자 를 건국장 에서 대한민국 장 으로 격상하라
이승만아니었으면 어쩔뻔했나?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누군가 만든 영상만 보고 시대를 평가하지말고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해야된다. 그리고 비판받을 역사여도 왜곡없이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함
해방후 3년 동안 미군정 통치기였고, 미국이 5년간 신탁통치를 주장한 이유는 당시 많은 독립군들이 사회주의를 옹호 했기 때문에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거였음
사회주의가 지금은 실패한 사상이지만, 일제 강점기시절 노예 생활을 하던 조선에서는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좋았고, 마오쩌둥의 공산화 세력과 독립군이 함께 일본에 저항도 많이 했음
그러다 보니 많은 독립군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했지만, 모든 독립군이 사회주의자이진 않았음
실제로 신탁통치의 오보로 인해, 신탁을 반대하고 살아남기 위해 이승만을 지지했던 많은 친일파들은 애국자가 되고,
신탁통치에 반대한 독립군들은 매국노가되는 말도안되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는데,
목숨부지중인 친일파가 독립군을 고문해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게됨 이게 참 대한민국의 꼬여버린 역사적 비극인데
친일파세력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남한만의 정부수립이 필요했고, 북에서는 친일파 죄다 숙청당했거든 갈데가없는거야
그리고 민족지도자들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내기 꺼려하던 분단을 먼저 이야기 한게 이승만의 정읍발언임
이승만아니면 남한이 공산주의가 되었을거라고 하는데 절대 그럴일은 없음. 47년 트루먼의 독트린으로 사실상 미소냉전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절대로 남한이 공산화 되는걸 막았을거임
미국이 지지한 대통령 김규식, 부통령 여운형은 사람 됨됨이만 보더라도 이승만의 독재, 부정, 부패, 친일위주 정권 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거라 생각함
중도우파 김규식, 중도좌파 여운형은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신념을 대한민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접은 사람들임, 좌우대립이 어마어마하게 심했지만 대한민국의 분단을 막기위해
좌우 합작을 만들었고, 물론 그 안에서도 갈등은 있었지만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한 인물들이었음.
김구는 좌우합작을 해방이후 민족 최대의 성과라고 박수 치며 환영하셨고, 미국도 좌우합작을 지지했음.
이승만은 좌우합작을 견제함 말그대로 분단이 코앞이고 전쟁발발은 당연한 일인데도 남한만의 정부수립(건국x)을 위한 활동을 계속한거지
여운형이 암살되고 좌우합작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고, 이제 분단을 막을 인물이 없게 되어버림
김일성, 좌우합작, 이승만 등 당시 민족지도자들이 하나로 뭉쳐 미소에 대응하지 못한게 참 안타까움, 야욕을 앞세워 바라본 결과가 분단이 되었고, 전쟁으로 번졌으니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따지겠음
그치만 확실한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지않았으면 친일파들은 거의다 숙청 당했을거임 친일파세력을 등에 업고 정권을 출범한 이승만은 제대로 친일파 처단을 하지 않았고,
친일 박정희, 신군부 전두환 노태우가 민주주의를 박살내버리니,
우리나라 역사의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다 날려버린것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됨
1편부터 여기까지 다 지켜봤는데 궁금증이 있음.
1)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와 스탈린이 합의한 내용이 일본에 전쟁참여하면, 일본에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한다는 말 또는 합의가 있었나본데요, 그럼 루즈벨트가 죽고 부통령이였던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고,
자기는 몰랐다고해서 소련과 그 합의 내용을 번복할 수 있는 겁니까?
2)결국 1945,8.8일 소련이 만주를 공격하면서 남진 해왔고 38선을 기준으로 미-소 간 신탁통치를 서로 합의 했는데,
동아일보의 오보로인해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 미국이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읽혔습니다.
그럼 결국 남한의 임시정부는 이런 선동으로부터 발생한건가요?
듣다보면 초기에는 남한에 사회주의자나, 그쪽 입김이 쌨었는데, 나중가서 이런일이 있고 결국 총선때 바뀐 것 처럼 들려서요
3) 일단 그렇다고 쳐도, 미국이 그럼 원래 신탁통치를 서로 하자고 했고 소련 미국 양국다 동의 한 내용이
불리해지니까 UN에 자기 마음대로 상정해서 일을 처리한것 아닌가요?(양국 당사자인 소련은 거부 했다는 내용때문에요)
동영상 내용보다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뭔가 계속 자기입맛에 안맞으면 뭐 바꾸고 번복하고 그러는 것 같아서요
양아치 국가인가..
왜냐면 독립이 된 후 남한 (당시 38선 이남 사람들)은 김구나, 이승만이라는 사람에대한 지지도 보단
사회주의쪽을 더 긍정했다고 하더라고요, 늘 무슨이유에서 의식이 바뀌었나 생각하고있었는데
이것도 2번의 내용의 배경이라고 볼수있나요?
영국,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사회는 당시 식민지를 거느리던 제국 국가였기 때문에 조선의 독립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죠. 이런 상태에서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이 문서에 명시된 것은 굉장히 획기적이고도 놀랄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있으나, 기존에는 장제스 역할론 설이 주였고, 최근에는 미국의 결정론이 나오고 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장제스와 개인면담을 성공시킨 김구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구요.
그러나 조선의 독립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죠. 회담 초안의 문구였던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시기에 '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가 ‘적당한 시기를 의미하는 'at the proper moment’라고 고쳐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최종적으로는 처칠에 의해 'in due course’로 바뀌죠. 결국 우리는 자주적인 독립을 꿈꿨으나, 서구 열강은 처음부터 조선의 독립을 신탁통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omdd985 당시 소련은 혁명 이후, 노동자 세상, 민중해방을 기치로 내건 신생국이었고, 서구 유럽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민족해방, 식민지 독립을 내세웠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동맹이 되었을 뿐, 미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과 공존할 수 없음은 너무도 명확한 것이었죠. 한반도의 신탁통치 찬반논쟁은 그저 명분을 쌓기위한 책임 떠넘기기일 뿐, 소련은 자신의 위성국을 북한지역에 세운 것이고,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정권을 UN의 이름 하에 남한에 세운 것입니다. 당시 UN은 오늘날의 위상과 같지 않았고, 당시 소련은 UN을 제국주의 국가들의 모임 정도로 여겼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죠.
즉, 소련은 조선의 독립에 우리가 아무런 간섭을 하지않았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볼 수 있구요. 미국은 조선의 문제를 미국 일국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해결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UN을 표면적으로 내세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은 원래 양아치 국가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 자체를 싫어하진 않지만 옛날에 세계 전쟁 때부터 깡패, 양아치의 대명사
이철순이라는 저 부산대 교수 요즘 위안부 피해는 없다고 주장하고 다니던데 이 영상 우리나라정부에서 만든거 맞는겁니까?
37:43~38:28
대한민국만세!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2024년에 이걸 또 보냉 -..-
이상 이상 없이 없이
47:57
킬구~
부정의 산물인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이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거의 연민에 사로 잡혀 사는 무지한 좀 벌래들. .
과거의 대한 민국이 아니다.
누구든 건들면, 회생 못하게 만든다.
사이버 공격은 개인 혼자도 가능한 시대 !
ㅓㅓㅓㅓ 왜케 길어ㅓㅓ
동아일보는 저 때나 지금이나 가짜뉴스 만드는 건 똑같네
20:47 이승만 정읍개드립은 사건 한반도 분단의 촉매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 당시 북한은 이미 1946년 2월에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실상의 단독 정부인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있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영상을 보고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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