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9월 군번 입니다. 강원도 현북면 하광정리 동방사 소속 해안부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해안에서 야간근무 하면서 바다를 경계하며 34개월을 보냈습니다. 봄,여름,가을 ,겨울 .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사하신 영웅들의 혼을 위로하고 명복을 빕니다.
와 이야기 주인공 존경합니다... 저도 그지역에서 군복무했는데, 관할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정말 많이 알고 있습니다. 직접 들으니 더 오싹하네요. 글고 밑에분 임병장말씀하시는데 저도 그 시절 말년입니다...... 물론..... 갔죠...... 잡으러........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이렇게 아픈일이 96년도에 있었나요..강릉에서?? 한국을 떠나온지 수십년이 지났고 한국 방송..한인들과 접촉이 없다보니.. 지금 이분이 겪었다는 무장공비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제 고향이 강원도 영월이고 어린 시절을 강과 산으로 놀러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우리의 젊은이들 분단국가로 인해 군복무가 필수적으로 된 나라에서 이런 슬픈일이 생긴건 그 누구탓을 해야 할까요. 글쓴이 말대로 옆의 전우는 그 누군가의 아들이요, 누군가의 애인이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오빠요 동생일수도 있는데..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건 사람의 운명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걸 생각하면 정말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야한다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이 글을 쓰신 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때 전사하신 장병 여러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외에 사고를 당하신 분들께도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아들을 잃으신.. 소중한 가족을 잃으신 모든 가족분들..꼭 건강하시고 힘내시길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95년 2월군번으로서 사건당시 강원도 양양군소재 모여단 수색대 근무중이었음 실제상황이라는 싸이렌 듣고 완전군장착용후 출동대기하다가 속초공항에서 실탄 수류탄 지급받고 ( 난 기관총 사수이었던지라 실탄을 통으로 받았었음) 시누크수송기 3대에 나눠타고 강릉으로 이동했었음 처음 2 ~3일동안은 밤마다 총소리 나고 진짜 이러다 죽을수도 있겠구나 했었음 며칠이 지나서는 계속된 수색정찰로 총이 아니라 힘들어 주겠다라는 생각으로 바뀜 추석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추석전에는 끝나겠지 싶었는데 40일 이상을 강원도 곳곳을 수색하러 다녔음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의 생생함은 잊혀지지가 않음 P.S . 1 추석연휴중에 어딘지 기억 안나는 산골속을 수색하던날 마을을 지나가다 전원주택같은 좋은 집앞에서 우리 소대원들 고생한다고 30대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양손바닥만한 유과를 모두에게 나눠주신 기억이 남 내 생애 최고의 유과이었음. 그 아주머니를 다시 뵙게 된다면 꼭 인사드리고 싶음. P.S . 2 장기간 수색정찰이 계속되니 배고프고 목말라서 가끔 마을인근 무우밭을 지날때는 주인허락없이 무우뽑아다가 씹으면서 지나갔던기억도 남 주인 아저씨 죄송했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그랬는데 이해해주셨길 바랍니다. P.S . 3 그때 고생했던 우리부대원들 진짜 보고싶네요. 2소대 정기식병장님 곽병수병장님 성석현병장님 다들 잘 지내고들 계신가요?? 꼭 한번 뵙고 우리 옛날 추억하며 소주한잔 합시다.
고2 가을 수학여행 중 터진 사건이라 생생히 기억나요. 하필이면 우리 버스가 가는 경로가 무장 공비가 지나간 길이라서 군인들이 쫘악 깔렸었고 가는 길목마다 버스를 스탑시키고 총든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 와선 구석구석 수색하고 계속 반복하다 보니 선생님들께서 상의 끝에 위험하다 판단하시고 경로를 변경해서 서울 혜화동 미술관으로 갔던 우울한 추억이 떠오르네요. 어린 맘에 수학 여행 망쳤다고 원망만 했는데 이런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프네요. ㅠㅠ
그 당시 옆중대 8중대 소속입니다 중화기중대 우리가 헬기를 타기로 하고 전날 헬기타는 연습을 했읍니다 그런데 취소가 됐다고 그 취소가 7중대 몫이였네요 그때 우리도 칠성산에 있었는데 우리는 밑에서 대기중이였고 7중대가 그렇게 공비를 잡고 담날 교전에서는 놓치고 우리는 밑에서 수류탄 얘기를 듣고 무릎밑으로 떤지는 연습을 그렇게 하루종일 연습하고 7중대 철수하면서 8중대가 투입됐다 7중대가 매복하던 곳에 우리가 매복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적막함이 흐르는 상태에서 옆에 호에서 총성과 수류탄 크레모아 터지고 조명탄까지 올렸다 환해지는데 그앞에는 공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날이 밝고 키작은 대대장님이 올라와 결과를 듣고 놀랬다 건너편소대 박격포소대장님이 야간에 보이는 각을로 보았는데 소나무 뒤에서 씩 웃더란다 소름이 쫙 식음땀이 등줄기로 흐르며 분명 둘이서 지그제그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고 그렇게 교전은 시작됐는데 잡지를 못했다 그 담날 매복에서는 아무 교전이 없었다 담날 계급이 없는 군복과모자를 쓴 사람들이 세파트와함께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HiD였다 그렇게 그 밤도 조용했다 10월에서11월경쯤 기억된다 넘 추웠다 그렇게 공비는 그곳을 뚫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대단하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산으로 이동을 했다 오후 소대원들은 휴식을 취하고 나는 호에서 경계근무를 쓰고 있는 중 조준을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내 철모앞에 총탄이 날라 왔다 그들은 대낮에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여러 사고로 죽은 전우들의 상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ksjsong 제가 운전병이었는데 가끔 고성에 부식수령하러가면 이상한 전투복에 계급장도 없고 머리카락이 긴 사람들이 몇명 오더군요. 그땐 그사람들이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느데 나중에 알고보니 HID. 그리고 어디 운전해서 산 깊은곳에 어느 부대가 있었는데 선탑했던 간부가 HID 훈련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강릉이 고향인데 저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였는데 저 무장공비 침투사건때 헬기 매일 뜨고 총소리도 다 들리고 민간인 저희들도 공포에 떨었어요. 혹시나 공비가 집에 처들어 오는거 아닌가하고 문 꼭 잠그고 매일 뜬눈으로 날샜던 기억나네요. 그리고 잠수함 조사하고 다시 안인으로 가져와서 육지에 올려서 전시한다고 해서 개보수 하기전까지 잠시 아무도 못들어가게 감시하는 알바했는데 민간인은 아마 제가 최초일 겁니다. 무장공비 사건후 유명해져서 저기를 안보 관광지로 만들어서 관광객 엄청 왔는데 제가 맏은 일은 고위급 군간부들과 관련자 아니면 방송국 기자든 민간인들 못들어가게 막는 일을 했습니다.나중에야 다 복원해서 일반인 한테 잠수함 안까지 공개했지만 그전까지는 아예 내려가지도 못하게 막았는데 그일을 민간인은 아마 제가 최초 일겁니다. 민간인 최초로 잠수함 복원전에 들어가본것도 제가 최초 이고요. 그당시 공비들이 잠수함 내부 증거 없앤다고 불질러나서 흉죽 그자체였어요. 근데 안이 생각보다 좁았는데 여기에 30명이 타고 왔다는게 믿어지지 않더군요. 원래 저도 못들어가는데 군인들 없을때 몰래 들어갔었는데 진짜 오금이 지렸던 경험이 있어요. 금방이라도 공비가 나올것 같이 무서웠지만 그때 어렸고 호기심이 많아서 들어갔죠. 그때 당시 기억으로 20명 정도가 산에서 자폭했고 나머지 공비들이 휘젔고 다닌건데 저 경비일 하면서 들었는데 공비들 워낙 빨라서 사살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미스테리는 공비 하나만 생존해서 북으로 넘어갔다는데 아직도 정확히 북으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지난일이지만 저당시 잠시나마 저사건으로 촌에서 잠수함 감시하며 용돈 벌이 했습니다. 우연히 듣고나서 생각이나서 적습니다.
제~인생 첫 댓글 입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얘기중 7할이상 진실 입니다 제가 댱시 작잔에 참여했던 중대원 입니다 어느덧 당시 일병에서 지금은 늙다리 꼰대가 되다보니 그때 함께했던 전우들이 보고 싶네요..... 지금은 없어진 2xx31r2bn7co3p 추억하며~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며 살지~ㅎ
벌써 시간이 이리 많이 흘렀네요. 당시 현역 예비역 사상자가 많았죠. 아군에 대한 오인사격도 있었구요. 가장 안타까웠던게 용변을 보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서 아군에게 죽은 경우도 있었어요. 강원도는 진짜 공포가...그 시간과 장소에 있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릅니다. 전쟁 간접체험...ㅠ 그때 희생된 전우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07년도인가 고성 건봉산 GOP 근무할 때 강릉무장공비 중 유일하게 생포된 사람이 와서 강의한적 있었는데,, 생포당시에는 10년차 북한 장교였고, 07년도에 강의 왔을 때는 대한민국 군무원이라고 했던것으로 기억남 그 사람 얘기로는 침투 계획은 없었는데 동해에서 잠수함 고장나서 몇일간 표류하다가 강릉에 왔다고함 (위키 내용과 다름) 가장 높은 사람 명령으로 잠수함에서 전원 수류탄 자살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절반 정도만 자살 나머지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 시도 강릉에 좌초되기 전부터 몇 일간 밥을 못먹은 상태라 민가 들어가서 음식을 훔치려는데 집주인이 아주머니가 들어옴 아주머니를 죽이고 도주할 생각 이었지만 집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상냥해서 그러지 못함 아주머니와 대화 중 남편이 들어옴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남편한테 소개시켜주고 음식을 가지러 간다고 하고 부엌에 감 아주머니 침착하게 간첩 신고!! 식탁에 앉은 채로 출동한 군인들에게 생포 당함 잡히면 죽으려고 이빨에 청산가리를 끼고 있었는데 청산가리 깨물지도 못하게 입까지 포박 당함 잡힌 자리에 장군이 들어와서 소원이 머냐고 물었는데 냉면 한그릇? (냉면인지 기억이 잘 안남)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배달 시켜준 냉면 먹고 끌려감 이후 북한 쓰레기 집단 얘기 구구절절 했는데, 기억나는 것은 본인 일가족 모두 처형 당한 것과 부산 아시안 게임 미녀 응원단 북한 돌아가서 모두 처형 당한 것 미녀 응원단 오기 오래전부터 사상교육 받고 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부산의 선진 시설을 보면 안된다고 호텔 거절하고 매일 응원 끝나고 타고온 배로 가서 잠 아시안 게임 끝나고 북한집으로 가기 전에 몇 개월간 사상교육 또 받고 집으로 돌아감 하지만 매일밤 부산 앞바다 배 위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본 여자들은 남한에 대한 얘기를 입으로 입으로 흘림 결국 북한 군 수뇌부 귀로 들어가고 미녀응원단 전원 공개 총살
95년 1월 군번이었는데.....고성 신평리 8군단 전차대대에서 근무했었고, 사건 발생 그 날이 마침 유격훈련 마직말 날이야....염병할넘들 ㅋㅋ 힘든 유격훈련 받고, 그 당시 애인(지금 마누라) 면회 오기로 했었는데......그때 총기 오발사고 참 많이 났었어. 야간 경계근무 나가기전 근무자 신고할때 피스톨로 지 발등 쏜 소대장도 있었지... 야간에 애먼 남의 집 소도 벌집낸 일도 있고, 민간인 희생도 있었고...우리는 주위 다른부대와 설악산에서 대기 했는데, 오대산에서 내륙으로 넘어 갔었고, 거기서 일병하나 교살, 교전중 대령한명 저격당하고 암튼 최후 두명은 사살 했다고는 하던데.....또 나중에 북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도 있고...뭐가 진실인지는아직도 모르겠음.
96년이면.... 와 제가 태어나던 해였네요.......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주로 박정희 정권시절인 1960~70년대.,... 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90년대에도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나마 알게된 사건도 영화 실미도에서도 언급됬던 1968년 김신조 사건뿐.....
와 진짜 무서워요 저번에 글로 읽긴 했는데 무서워서 누워서 등바짝 바닥에 밀착시킨채 들었어요 귀신이야기보다 더무섭네요 어제 귀신보는 친구 이야기 몇시간들여서 다 듣고 잠못이루다가 오늘 새벽엔 절이야기와 무장공비이야기 듣고 가요 네이트판글로 다 읽은거라 아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라디오로 재구성해들으니 심장이 쫄깃ㅋㅋ
그렇게 철수를 하고 부대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우리부대옆 싸리나무밭에 수색을 해야된다고 십분만에 길옆 낙엽에 쌓여 있는 주검을 보았다 목에 끈자국이 있었으며 그는 표일병 이였다 그부대에서는 인원점검후 탈영으로 신고되었던 것이다 2명중 한명이 붙잡혔는데 양구지역에서 당구도치고 우리군부대 시설 사진 다 찍고 홍천스키장에서 놀다가 그렇게 한명은 북으로 넘어 간 걸로 마무리 됐다
96년도 서부전선에 근무해서 직접 피부로 느낄수없었지만 다시한번 이 작전에 참여해서 희생한 전우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심이 우러나네요 !! 꽃다운 나이었고 하고싶은것도 많았을텐데
멋진분이시네요!!
우리나라 군인들 진짜 존경하고 이 사태에서 희생당한 군인분들에게 조의를표합니다
이효준 우리아빠 7사단 강릉 침투사건에 가셨음 아빠가 말해주심
저희도 27보병사단대였음
나는3공수여단이었음
ㅅ
고 표종욱 일병
눈물밖에 나지않는다
어린나이일텐데...
누구의 어린 아들 일텐데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당신들덕분에 우리의 오늘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희생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하구요,
생동감있게 녹음해주신 쌈무이님도 감사합니다!
98군번인데 이야기 듣는 동안 계속 눈물 날거같고 가슴이 먹먹하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옆 중대 통신병이었는데 저희대대에서는 특별한날 그때죽은 송관종일병을 항상추모합니다. 칠성산전투를 기억하구요 그때의 생생한전투상황을 들으니 진짜 무섭네요
반가워요..저는 다부동전투 햇엇어요^^
@@김정훈-v6n1u 이건 뭔 개소리야?
@@김정훈-v6n1u ㅖㅖㅖㅖ
72년 9월 군번 입니다. 강원도 현북면 하광정리 동방사 소속 해안부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해안에서 야간근무 하면서 바다를 경계하며 34개월을 보냈습니다. 봄,여름,가을 ,겨울
.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사하신 영웅들의 혼을 위로하고 명복을 빕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인천상륙작전때 메가더 장군 도시락 담당했던 병장입니다^^
와 이야기 주인공 존경합니다... 저도 그지역에서 군복무했는데, 관할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정말 많이 알고 있습니다. 직접 들으니 더 오싹하네요. 글고 밑에분 임병장말씀하시는데 저도 그 시절 말년입니다...... 물론..... 갔죠...... 잡으러........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목소리와 발음이 좋아서 몰입도가 좋습니다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라를 지키는 국군 장병님들 화이팅 입니다!
95년 4월 군번으로 강원도 양양에서 매복했었는데 새벽에 서리가 내려서 너무 추워서 고생했던것으로 기억 되네..
이 이야기의 글쓴이가 글을 정말 잘쓴것도
있지만, 쌈무이의 목소리로 연기 하는 실제
주인공처럼 느껴져서 더 생생했다.
이분들 진짜 대단하네요.... 저는 임병장도 잡으러 가고 호국 훈련도 뛰고 전역 했지만.... 진짜 이분들 대단히신듯
kth6422 네 정말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글쓴이분을 포함해서 대단하신분들이십니다 정말...
저는 일병때 훈련나갔다가 그날밤에 천안함이 당하고 상병때 집중 정훈교육 2일차에 연평도가 피격당했었죠..ㅠㅠ
Bear Angry 전 일병6개때 목탄지뢰...사건
이렇게 들어보니 우리들도 참 처절한 군생활을 한거 같네요...
Bear Angry 님 해군 출신이에요?
이렇게 아픈일이 96년도에 있었나요..강릉에서?? 한국을 떠나온지 수십년이 지났고 한국 방송..한인들과 접촉이 없다보니.. 지금 이분이 겪었다는 무장공비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제 고향이 강원도 영월이고 어린 시절을 강과 산으로 놀러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우리의 젊은이들 분단국가로 인해 군복무가 필수적으로 된 나라에서 이런 슬픈일이 생긴건 그 누구탓을 해야 할까요. 글쓴이 말대로 옆의 전우는 그 누군가의 아들이요, 누군가의 애인이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오빠요 동생일수도 있는데..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건 사람의 운명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걸 생각하면 정말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야한다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이 글을 쓰신 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때 전사하신 장병 여러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외에 사고를 당하신 분들께도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아들을 잃으신.. 소중한 가족을 잃으신 모든 가족분들..꼭 건강하시고 힘내시길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95년 2월군번으로서
사건당시 강원도 양양군소재 모여단 수색대 근무중이었음
실제상황이라는 싸이렌 듣고 완전군장착용후 출동대기하다가 속초공항에서 실탄 수류탄 지급받고 ( 난 기관총 사수이었던지라 실탄을 통으로 받았었음) 시누크수송기 3대에 나눠타고 강릉으로 이동했었음
처음 2 ~3일동안은 밤마다 총소리 나고 진짜 이러다 죽을수도 있겠구나 했었음
며칠이 지나서는 계속된 수색정찰로 총이 아니라 힘들어 주겠다라는 생각으로 바뀜
추석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추석전에는 끝나겠지 싶었는데 40일 이상을 강원도 곳곳을 수색하러 다녔음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의 생생함은 잊혀지지가 않음
P.S . 1
추석연휴중에 어딘지 기억 안나는 산골속을 수색하던날 마을을 지나가다
전원주택같은 좋은 집앞에서 우리 소대원들 고생한다고 30대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양손바닥만한 유과를 모두에게 나눠주신 기억이 남
내 생애 최고의 유과이었음.
그 아주머니를 다시 뵙게 된다면 꼭 인사드리고 싶음.
P.S . 2
장기간 수색정찰이 계속되니 배고프고 목말라서 가끔 마을인근 무우밭을 지날때는 주인허락없이 무우뽑아다가 씹으면서 지나갔던기억도 남
주인 아저씨 죄송했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그랬는데 이해해주셨길 바랍니다.
P.S . 3
그때 고생했던 우리부대원들 진짜 보고싶네요.
2소대 정기식병장님 곽병수병장님 성석현병장님 다들 잘 지내고들 계신가요??
꼭 한번 뵙고 우리 옛날 추억하며 소주한잔 합시다.
우와...정말 고생하셨네요..감사합니다 지켜주셔서..
정성훈
당신의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정성훈 감사합니다. 성훈님과 다른 군동기분들 덕에 우리나라가 안전하게 된겁니다.
정성훈 고생하셨습니다.
96년 8월 입대. 훈련소 시절 강릉 터짐. 뉴스 등 아무것도 못 접하는 상태서 선전포고했다는 소문에 전쟁나는 줄 알고 식겁. 후반기 교육받던 11월인가 잔당 소탕. 작전 투입된 선배님들 진심 고생했습니다.
고2 가을 수학여행 중 터진 사건이라 생생히 기억나요. 하필이면 우리 버스가 가는 경로가 무장 공비가 지나간 길이라서 군인들이 쫘악 깔렸었고 가는 길목마다 버스를 스탑시키고 총든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 와선 구석구석 수색하고 계속 반복하다 보니 선생님들께서 상의 끝에 위험하다 판단하시고 경로를 변경해서 서울 혜화동 미술관으로 갔던 우울한 추억이 떠오르네요. 어린 맘에 수학 여행 망쳤다고 원망만 했는데 이런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프네요. ㅠㅠ
그때 경로를 바꾸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할 뻔 했네요 ㄷㄷ
다시 영상 하나하나 제일 뒤에서부터 정주행 중 입니다 공포라디오는 쌈무이!!
감쟈님 최고😃
그 당시 옆중대 8중대 소속입니다 중화기중대 우리가 헬기를 타기로 하고 전날 헬기타는 연습을 했읍니다 그런데 취소가 됐다고 그 취소가 7중대 몫이였네요 그때 우리도 칠성산에 있었는데 우리는 밑에서 대기중이였고 7중대가 그렇게 공비를 잡고 담날 교전에서는 놓치고 우리는 밑에서 수류탄 얘기를 듣고 무릎밑으로 떤지는 연습을 그렇게 하루종일 연습하고 7중대 철수하면서 8중대가 투입됐다 7중대가 매복하던 곳에 우리가 매복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적막함이 흐르는 상태에서 옆에 호에서 총성과 수류탄 크레모아 터지고 조명탄까지 올렸다 환해지는데 그앞에는 공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날이 밝고 키작은 대대장님이 올라와 결과를 듣고 놀랬다 건너편소대 박격포소대장님이 야간에 보이는 각을로 보았는데 소나무 뒤에서 씩 웃더란다 소름이 쫙 식음땀이 등줄기로 흐르며 분명 둘이서 지그제그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고 그렇게 교전은 시작됐는데 잡지를 못했다 그 담날 매복에서는 아무 교전이 없었다 담날 계급이 없는 군복과모자를 쓴 사람들이 세파트와함께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HiD였다 그렇게 그 밤도 조용했다 10월에서11월경쯤 기억된다 넘 추웠다 그렇게 공비는 그곳을 뚫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대단하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산으로 이동을 했다 오후 소대원들은 휴식을 취하고 나는 호에서 경계근무를 쓰고 있는 중 조준을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내 철모앞에 총탄이 날라 왔다 그들은 대낮에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여러 사고로 죽은 전우들의 상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원도 토성면 우리부대 근처에 hid 부대가 있었는데 거기서 간것같네요
@@ksjsong 제가 운전병이었는데 가끔 고성에 부식수령하러가면 이상한 전투복에 계급장도 없고 머리카락이 긴 사람들이 몇명 오더군요. 그땐 그사람들이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느데 나중에 알고보니 HID. 그리고 어디 운전해서 산 깊은곳에 어느 부대가 있었는데 선탑했던 간부가 HID 훈련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전투중 씨익 웃다니 미친ㅡ
정말 큰고생하셨고 글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기자 수색대 96군번입니다. 저는 일병때이었고 당시 최전선에 투입되었었죠. 이기자 노도 화랑 그리고 공수부대 군단특공 그리고 예비군들... 모두들 시간이 지날수록 전사가 되어가던게 기억이 나네요. 벌써 25년전...세월이 무색하군요.
야간전투장비가 중요한 이유.. 미군이랑 한국군이랑 보병 모의전 했는데 낮에는 잘 가다가 밤되니까 한국군들 썰림..
아이고 전갈이 털린 이유도 그것때문
후방이었는데 공감합니다 야간해안경계하는데 시발 야투경 예미시벌 존나 덜렁거리고 표적지시기는 레이저가 나오는건지 마는건지 해안가에선 보이지도 않습니다
진짜 그냥 폭탄돌리기하는 기분이었음
이런새끼 특 : 주워들음
아투경은 별보기좋지
야투경 있으면 뭐하냐 내가 있던데는 교육도 안하다가 갑자기 불시에 와가지고 개털듯이 털더라 어이가없어가지고;;
20번은 들은듯 ㅎㅎ
그래도 가끔 생각나서 계속 들어요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은 천안함 다음으로 아니 천안함보다 더한 북한의 역대 최악의 도발이었죠.
이런 북한의 도발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릅니다..
멸공!
몇마디만하고싶네요ᆢ저때ᆢ저상황ᆢᒺ다음날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보며 살아있음에 감사 기도를 해보신적 있나요?
마실물이 공수되지않아 무우밭에서 무우로 갈증을 대신해보신적있나요? 살아있음에ᆢ 편히 쉴수있음에ᆢ 사랑하는 이들을 볼수있고 안을수있음에 감사하며 사시길ᆢ
님 맞아요 새벽 되면 살아있음에 감사했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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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전투력을 갈고 닦아야 할 시기같습니다. 외교로는 한계가 있지요. 어쩌겠습니까? 나라의 운명인것을..복무기간 더 늘이고 기합빵빵하게 넣고 스마트폰은 다시 폐지해야합니다. 지금같은 당나라 군대상황에 공비 1개소대만 와도 분명 1개 대대가 전멸할겁니다
@@헬스팟 지금 복무중인 군인들을 너무 비난만 하지 마세요 세대가 달라진것도 이해해주셔야죠 연평도 포격사건때도 우리 장병들은 대처 잘 했다고 생각해요
현역 예비역 국군장병들 모두 너무나 대단하십니다
강원도 근무자 입니다. 앞서 제대했지만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트라우마 잘극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가끔씩 생각 날때 듣는 썰...10번은 들은 듯...쌈무이 팬으로 만든 썰 이기도 하고 쵱썰~
그러시군요^^ 여전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다른 최애썰을 만들떄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강릉이 고향인데 저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였는데 저 무장공비 침투사건때 헬기 매일 뜨고 총소리도 다 들리고 민간인 저희들도 공포에 떨었어요. 혹시나 공비가 집에 처들어 오는거 아닌가하고 문 꼭 잠그고 매일 뜬눈으로 날샜던 기억나네요. 그리고 잠수함 조사하고 다시 안인으로 가져와서 육지에 올려서 전시한다고 해서 개보수 하기전까지 잠시 아무도 못들어가게 감시하는 알바했는데 민간인은
아마 제가 최초일 겁니다. 무장공비 사건후 유명해져서 저기를 안보 관광지로 만들어서 관광객 엄청 왔는데
제가 맏은 일은 고위급 군간부들과 관련자 아니면 방송국 기자든 민간인들 못들어가게 막는 일을 했습니다.나중에야 다 복원해서 일반인 한테 잠수함 안까지 공개했지만 그전까지는 아예 내려가지도 못하게 막았는데 그일을 민간인은 아마
제가 최초 일겁니다. 민간인 최초로
잠수함 복원전에 들어가본것도 제가 최초 이고요. 그당시 공비들이 잠수함 내부 증거 없앤다고 불질러나서 흉죽 그자체였어요. 근데 안이 생각보다 좁았는데 여기에 30명이 타고 왔다는게
믿어지지 않더군요. 원래 저도 못들어가는데 군인들 없을때 몰래 들어갔었는데 진짜 오금이 지렸던 경험이 있어요. 금방이라도 공비가 나올것 같이 무서웠지만 그때 어렸고 호기심이 많아서 들어갔죠.
그때 당시 기억으로 20명 정도가 산에서 자폭했고 나머지 공비들이 휘젔고 다닌건데 저 경비일 하면서 들었는데
공비들 워낙 빨라서 사살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미스테리는 공비 하나만 생존해서 북으로 넘어갔다는데
아직도 정확히 북으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지난일이지만 저당시
잠시나마 저사건으로 촌에서 잠수함 감시하며 용돈 벌이 했습니다. 우연히
듣고나서 생각이나서 적습니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북한의 도발이 대한민국 탓이라고 하는 진영이 참 부끄럽습니다.. 이 채널 이 이야기가 널리 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9년도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본 채널인데 아직 까지 있어서 오늘도 한편 보고 잠 듭니당. 구독하고 갑니당~
쌈무이님 영상중 레전드////
감사합니다. 글쓴이분이 정말 대단허시죠😄
당시 나도 현역이었지만 북한에게 우리 군 전투력만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이건 언제들어도 레전드
워,., 왠만한 공중파 아나운서, 성우 씹어먹는 화법과 호흡 음성의 안정감!!!!
제~인생 첫 댓글 입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얘기중 7할이상 진실 입니다 제가 댱시 작잔에 참여했던 중대원 입니다
어느덧 당시 일병에서 지금은 늙다리 꼰대가 되다보니 그때 함께했던 전우들이 보고 싶네요.....
지금은 없어진 2xx31r2bn7co3p 추억하며~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며 살지~ㅎ
95년2월군번 으로 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때 비슷한 나이의 전우들 정말고생많았고, 또 예비군 선배들도 장기간 고생많았죠.
휴..너무 마음아픈이야기였어요. 우리나라를 지켜주시는 군인분들께 감사드리고 당시 희생당하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전쟁은 정말 일어나면 안됩니다ㅜ마지막에 공비도 사람이라는 느낌에 마음이 너무 아팠네요ㅜ..
지금저는 강릉 무장공비들어온데 살고있고 무장공비가 초등학교사진찍은 학교 졸업했습니다 진짜 수고하셨습니다
전 갠적으로 실화로 바탕으로 얘기하는게 좋은데 이건 완전 리얼입니다 그래서 생각날때마다 듣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한 맘으로요
나 95년에 11사단갔는데 저때 생생하구나!!96년 추석 연휴 며칠을 앞두고 공비 잠수함투입ㅠ새벽에 훈련도 없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ㅠ 실전상황이다!!완전군장으로 갈아입어라!!수류탄 지급 실탄지급 유서도 썼는데 정말 무서웠지!칠성산에 투입했는데 진짜 밤 산속은 아무것도 안보임 !!야간산속은 그야말로 상상 그이상이야!!동물들 부스럭 소리만 들려도 ㅎㄷㄷ!!강정영상병도 우리11사 13연대 3대대 출신인데 강정영상병 전사와 더불어 화기중대 애들이 부함장 잡았지!!강정영도 화기소대였는데 대대장1 계급특진!!부함장 잡은같은 호에 있던 화기중대 애들 전원 1계급특진!!
ㅅ
지금 육군 내무반 돌아가는 상황에 만약 공비 1개 소대가 남침한다면 소탕할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헬스팟
할수있다용~더 잘해용
@@헬스팟 당연 스마트폰으로 배그하고있음
벌써 시간이 이리 많이 흘렀네요. 당시 현역 예비역 사상자가 많았죠. 아군에 대한 오인사격도 있었구요. 가장 안타까웠던게 용변을 보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서 아군에게 죽은 경우도 있었어요. 강원도는 진짜 공포가...그 시간과 장소에 있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릅니다. 전쟁 간접체험...ㅠ 그때 희생된 전우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돈 해처 먹지말고 군인들 총에 야간 광학장비나 좀달아줘라
있어요...이미 수년 전부터 있어요...
전방 보병들은 전부 다 하나씩 소지합니다...
04k 05k 지오피가면 다들 받긴한데 불량도 좀 있어요ㅠㅠ
야간장비 장착하면 너무 무거움ㅋㅋㅋ
집사람 아이디로 접속했습니다.
댓글중 그때 그시절 그자리에 계셨던 분들이 몇분계시는군요..
부대도 다른데 전사하신 기무대장님과 동향이라고 가끔 원주까지 데려다 주곤 하셨었어요.
지금도 현도지나다닐때면 생각합니다...
그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딱 하나만 물어보면 알죠.
공수부대가 마무리 지었는지 모사단 장갑차
죽은 무장공비 주머니안에 아군 전투식량 포장지 접혀있었는데
안에 밥알이 몇 개 있었다.........
나라를 지쳐주신 군인 여러분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11사단에서 제가 군복무시절 들은 이야기로 저희 보급관님이 하사때 무장공비 침투사건 저쪽에 투입되셨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지 손가락 지가 쏘고 부상당한애도 있엇다고함. 그리고 무장공비 사격 솜씨가 미쳤다고 들었음. 정밀사격때문에 한국군인들 많이 죽었다고했습니다.
07년도인가 고성 건봉산 GOP 근무할 때 강릉무장공비 중 유일하게 생포된 사람이 와서 강의한적 있었는데,, 생포당시에는 10년차 북한 장교였고, 07년도에 강의 왔을 때는 대한민국 군무원이라고 했던것으로 기억남
그 사람 얘기로는 침투 계획은 없었는데 동해에서 잠수함 고장나서 몇일간 표류하다가 강릉에 왔다고함 (위키 내용과 다름)
가장 높은 사람 명령으로 잠수함에서 전원 수류탄 자살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절반 정도만 자살
나머지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 시도
강릉에 좌초되기 전부터 몇 일간 밥을 못먹은 상태라 민가 들어가서 음식을 훔치려는데 집주인이 아주머니가 들어옴
아주머니를 죽이고 도주할 생각 이었지만 집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상냥해서 그러지 못함
아주머니와 대화 중 남편이 들어옴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남편한테 소개시켜주고 음식을 가지러 간다고 하고 부엌에 감
아주머니 침착하게 간첩 신고!!
식탁에 앉은 채로 출동한 군인들에게 생포 당함
잡히면 죽으려고 이빨에 청산가리를 끼고 있었는데 청산가리 깨물지도 못하게 입까지 포박 당함
잡힌 자리에 장군이 들어와서 소원이 머냐고 물었는데 냉면 한그릇? (냉면인지 기억이 잘 안남)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배달 시켜준 냉면 먹고 끌려감
이후 북한 쓰레기 집단 얘기 구구절절 했는데,
기억나는 것은 본인 일가족 모두 처형 당한 것과 부산 아시안 게임 미녀 응원단 북한 돌아가서 모두 처형 당한 것
미녀 응원단 오기 오래전부터 사상교육 받고 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부산의 선진 시설을 보면 안된다고 호텔 거절하고 매일 응원 끝나고 타고온 배로 가서 잠
아시안 게임 끝나고 북한집으로 가기 전에 몇 개월간 사상교육 또 받고 집으로 돌아감
하지만 매일밤 부산 앞바다 배 위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본 여자들은 남한에 대한 얘기를 입으로 입으로 흘림
결국 북한 군 수뇌부 귀로 들어가고 미녀응원단 전원 공개 총살
공포중 최고의 공포담 입니다.
95년4월 군번으로 수십년전 얘기지만 그당시 긴장감은 기억나네요 사건 끝나고 휴가나왔을때 주변에서 무장공비 잡다 왔다고 격려 많이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보니 그때 생각이 납니다.. 저도 그시절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고 강릉으로 출동해서 작전을 했던 사람으로써 참...암튼 다들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상병 두달째 였는데 탐침봉 들고 이름모를 산야를 휘젓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전사하신 동료 장병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전 94년7월 군번이라 96년9월5일날 12사단 (인제 원통)근무하다가 전역했는데 제대후 얼마있다가 공비들 넘어왔더라구요~고생많이하셨내요~~
미군은 방독면부터가 달라
씨벌 그놈에 생화학전 생화학전 거리면서 훈련시키고 강조 시키려면
장비 좀 바꿔
방독면 연식을 봐라
시대가 어느때인데 쓰는 것도 존내게
불편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라를 지켜주시는 대한민국의 젊음이여
12사단 37연대 1대대근무 94년12월군번
당시 병장으로 도주로 매복하던중 총격전 일어남
기무사 오영환대령등 사상자발생
그때생각이납니다
김용석 안녕하십니까 12사단37연대 1대대 을지신병교육대 출신입니다 ㅎㅎ
반갑네요!
87년에 37연대 안에 파견 근무했던 사람 입니다! 지금은 없어졌겠죠!? 토우중대 근무 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오영환중령 지셨죠.
그때 일이 머리에서 안지워집니다.
저와 15m 거리에서 왼팔을 타고 들어가는 탄환이 지금도 보이네요...
저희 아빠93년도에 군대 입대하셨는데 96년도에 제대 하신 바로 얼마후 강릉무장공비사건 일어남 ㄷㄷ
여신 pink나은 다시 예비역으로 가셨겠네요...
93군번이 96년 제대했는데 그다음 해에 공비사건 났다고? 아버지 구라치지 마라고 하세요~~
@@안정숙-c2m 공군이셨나봅니다...12월군번이면가능하죠~~
이때는 육군도 26개월이라 96년 제대 가능...
76년도에 6살때 강원도 현리에 살았는데 누나랑 토끼풀 뜯으러 앞산에 갔다 타원형으로 둥글고 사각형 홈이 나 있는 쇳덩이를 주워 엿장수오면 바꿔먹을 생각에 좋아라 토끼풀 광주리에 넣고 내려와 신작로서 꺼내 보고있는데 그때 마침 언덕위에 통신대 군부대 아저씨 두분이 휴가 다녀오시다 이광경을 보시고 아가야!~그거 아저씨줘 아저씨가 건빵 갖다 줄께 !!~ 그게 온전히 터지지 않은 슈류탄 이였다 ~어린기억에 두분이 소스라치게 놀라시며 안도의 한숨 쉬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슈류탄 핀과.클립을 건드렸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지금도 돋는다..국군장병 여러분 화이팅 하세요
나도
병장 말년에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는데......
몇명은
도망갈줄 알았는데
신기할정도로 다들 잘 견뎠음
교전은 안했지만
실전에 투입되는 기분이란.......
그것이 36개월 복무기간과 악과깡의 선효과죠. 몸이 기억하는겁니다. 요즘 18개월짜리 스마트폰 쓰는 현역들이 전투수행 가능할까요?
저랑 같은 연대시네요. 저는 6co 3p입니다.
참고로 96군번 철없는 일병이였습니다.
방갑습니다.
2사단17연대 95년11월군번으로 당시 출동할때 일병으로 참전했습니다
정말무섭고 힘든49일...
점호끝나고 텐트들어가는 찰나에 뒷편 산에서 총소리가 들려 참호도없이 달빛에 노출된상태로 밤새워 총구를 겨눴던적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였겠어요😢
칠갑산 정상에서 급히 호파고 저녁되자마자 유탄발사기에 소총소리에 힘들었던기억나네요
저희 친형이 저때 제대 얼마 안남았을때죠 형 이야기로 내무실 20명이 작전 나가서 실제 돌아온 사람은 친형 포함 4명 살아돌아왔다더군요 언론 사망자 수와 실제 사망자 수는 엄청 나게 틀림 주로 오인 사격으로 아군이 많이 죽었다더군요
그건 구라일 가능성이큼 아무리 군대가 썩고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라지만 한 작전에서 내무실 20명중 16명이 죽은게 묻힐순 없음 더욱이 온 언론이 주목하고있는 사건이라 더더욱 불가능하지
왜 이걸 영화로 안만드냐
그대로만 만들어도 존잼일듯
강추~영화대박
제대 60일 남겨놓고 57일 작전나갔음.
바로위 고참들은 작전지역에서 중대장한테 전역신고하고 전역했음
부대 1명 바로옆에서 전사했고, 현재 대전현충원에 영면하고있음
같은 아군끼리 두번 교전사격했음
난 실전경험있어, 그래서 전역후 실전경험없는 아무리쎈 부대라도 인정하지 않음
해병대건 특전사건 실전경험 없으면은 일반 군인하고 별차이 없다고 생각함
참고로 94년 10월초 입대했음
그리고, 작전개시 3주정도 수색 매복하면은 야간에 전방에서 부스럭 거리면은 숨어버리고, 잠을 잘수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어 극도의 스트레스가 있음, 허나 4주차 부터는 전방에 물체가 있으면은 바로 조준사격 들어감, 간첩들 얼굴이라도 한번보고 죽자는 심정임, 아님 사살해버리던지, 2달동안 작전의 경험으로 현재 사회생활은 어떤거라도 견딜수 있음
아주고마운 군대임...젠장
순국한 최상병이 생각납니다.
배트남 전쟁 치루신분들 보면 쨉도 안되쥬???
@@서민먹방 나보다 더한 경험을 한 이들이 있다고해서 내가 한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진 않음... 뜬금없는 소리좀 마세요.
@@서민먹방
ㅡ..ㅡ 그 베트남 경험은 해보시고?
94년10월24일군번입니다 병장3호봉때 9월추석때 비상걸려서 칠성산에서40일넘게 생생합니다 그때 그정신으로 오늘하루도 열심히 살아갑니다^^
지금 이시대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이 알아야할텐데요
너?
@@뚜버기-t7w니가튼 대깨문 좌좀
일전에 새벽에 갑자기 생방송 하실때 어떤 이야기 틀어 드릴까요?라고 하셨을때 강릉 무장공비 부탁 드린다고 말씀 드렸는데 드디어 올려 주셨네요...잘 듣겠습니다.감사합니다.
새로 제작하였습니다^^
무전으로 고의로 정보흘려서 다른쪽으로 도주 야간에 국군참호옆에서 낙옆덮고 군인들 하는얘기 다 듣고 수첩에 일기쓰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음
한국군의 특성--시끄럽고 잘 운다--는 월남전에도 그대로 나왔죠.
강릉무장공비사건을 다룬 어떤 영상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실감나는 스토리
그 어떤 무서운 이야기 보다 더 무섭다...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기절 했을 듯...
14 년도 군번으로 비교 할바 못되는 핵 찌끄래기 짬찌이지만 15년도 북한 목함 지뢰때 완전군장하고 총기수령하에 생횔관대기했는데... 정말 그때도 전쟁나는거 아닌가하는 두려움속에서 있었는데.. 존경합니다 선배님들 특히 탄약고에 실탄 실을때의 느낌이란.... 고생많으셨습니다
95년 1월 군번이었는데.....고성 신평리 8군단 전차대대에서 근무했었고, 사건 발생 그 날이 마침 유격훈련 마직말 날이야....염병할넘들 ㅋㅋ 힘든 유격훈련 받고, 그 당시 애인(지금 마누라) 면회 오기로 했었는데......그때 총기 오발사고 참 많이 났었어. 야간 경계근무 나가기전 근무자 신고할때 피스톨로 지 발등 쏜 소대장도 있었지... 야간에 애먼 남의 집 소도 벌집낸 일도 있고, 민간인 희생도 있었고...우리는 주위 다른부대와 설악산에서 대기 했는데, 오대산에서 내륙으로 넘어 갔었고, 거기서 일병하나 교살, 교전중 대령한명 저격당하고 암튼 최후 두명은 사살 했다고는 하던데.....또 나중에 북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도 있고...뭐가 진실인지는아직도 모르겠음.
잘 들었습니다 제가 23사단 나왔는데 강릉에서 근무했습니다. 안보교육때마다 강릉 무장공비 이야기를 듣었고.. 직접 지금도 있는 잠수함 방문도 했는데 이렇게 직접 겪으신분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생각만해도 무섭네요...
Anghell Death 저도 23사 나왔는데 9월18일에 안인진리에서 훈련하고 그랬는데... 그당시 훈련나갔을때 마을앞에 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니까 주민들이 공비왔냐고 그러더군요
Anghell Death 98군번이고 68사단때 자대배치받고 강릉시 안인진리 22소초 근무했습니다. 22-6초소가 96년 잠수함들어온곳이고 현재는 안보박물관이있죠. 후반야근무후 복귀때 잠수함들어가봤는데 정말좁더라구요. 분대막내때 분대장이 11사 출신이였고 96년 작전에 투입됐는데 이야기들으면서 오줌지릴뻔했던 생각이 나네요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는걸 다시금 명심하게 해주는 가슴 아프면서도 무서운 썰이네요.
96년이면.... 와 제가 태어나던 해였네요.......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주로 박정희 정권시절인 1960~70년대.,... 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90년대에도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나마 알게된 사건도 영화 실미도에서도 언급됬던 1968년 김신조 사건뿐.....
대학교 1학년 때네요. 서울에서 고향 속초 가는데 도로에서는 검문검사 빡세게 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이지 도토리 주워먹는 공비는 인간이 아니 기계인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공비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을!
북공비들은 인간이아니죠.공비한명잡는데 국군2만명이동원되도힘들다더군요.
ykk1205 말은 2만 vs 몇명이지만 사실상 몇개 호 vs 소수정예니까요
SE Ka 빨갱이공비들은 님말씀대로 기계지요.인간병기.죽이지않으면 내가죽어야하는 냉혹한현실.무장공비토벌에나가봐야 진짜군인이된다고하더군요.님답글에감사.
와 진짜 무서워요
저번에 글로 읽긴 했는데 무서워서 누워서 등바짝 바닥에 밀착시킨채 들었어요
귀신이야기보다 더무섭네요
어제 귀신보는 친구 이야기 몇시간들여서 다 듣고 잠못이루다가 오늘 새벽엔 절이야기와 무장공비이야기 듣고 가요
네이트판글로 다 읽은거라 아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라디오로 재구성해들으니 심장이 쫄깃ㅋㅋ
선배님 고생하셧습니다..2사 32연대였습니다...
저도 .. 32연대 수송대요
노도부대 전우님들 수고 많았습니다
96년 9월 18일 공비가 침투하고
22시단에서 근무하다 9월 19일 전역했습니다
후배님 고생하셨네요
난 31연대12중대 90.6월 전역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장갑차가 마무리 지었는지...
장갑차는 몇대가 얼마나 쏘아 댔는지...
그냥 그시절 잊고 살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 저는 특공이 마무리지은걸 특전사에게 공을 넘긴걸로알고있었는데.
그당시 연변장에서 삽질하고있는데..싸이렌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거때문에 말년에 휴가 짤리고 5분대기조 비상걸리고 난리였죠
아 그런일이 또 있었군요 ㄷㄷ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 전 휴가 다음날요 집에서 티비트니 웬 잠수함이 둥둥
류상훈
96년6월군번 화랑11사 칠성산에서 땅파고 호안에서 벌벌떨며 밤새던 기억이 다시나네..이때부터 군생활 꼬이기 시작
쌈무이님...대단히 감사하게 들었습니다....고맙습니다....
11사단 96년 5월군번 당시 이등병 이였습니다..
역시 귀신보다 무서운게 사람...
교전경험이 없으면 공부라도 해야하는대,땅굴발견때도 그렇고 이때도 TV에 중계방송 하듯 했으니.......언론통제도 필요하다.그들은 전쟁때에 아무 도움 안된다.피해상황만 보여주어 반전여론만 만들기 때문이다.
강릉무장공비사건의 전반적인 사항을 보면 딱 이런생각이 듭니다 국내 고위직에 간첩이 반드시있다그렇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항이 많았죠
성우신가요? 새벽 라디오에 들으면 좋은 목소리
이때 밤에 쒹 소리만 나도 무조건 총알갈김... 암구어 모름 그냥 연발 난사 당함.... 지금 생각만해도 손에 땀난다...^^;;;
유튜브보다가 내가근무하던 사단얘기나오는데 전부다제가알고있는 얘기는아니지만 내가확실히알고있고 겪은얘기는 달라서 그냥 그날생각나서 보고갑니다
여기서 동기들 다만나는거 아닌가요ㅋ
저두 그때 수류탄소리 옆에서 들은 사람입니다.정말 식겁햇던 시간이엿죠..수류탄 보급받은건 처음인듯..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저두 그때 강원도 양양 현북면 하조대 쪽에 근무하고 있을때인데 살벌했었죠 옛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헉...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__)
우리형님도양양군현북면 민정경찰수색대근무
하조대쪽이면 어느 부대인가요?? 유격때 하조대 유격장으로 갔었는데
@@돌아이-s1v 유격장 바로 근처입니다 해군 108전대에 있었습니다
@@그흔한김씨 그렇군요 해군이셨구나
그렇게 철수를 하고 부대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우리부대옆 싸리나무밭에 수색을 해야된다고 십분만에 길옆 낙엽에 쌓여 있는 주검을 보았다 목에 끈자국이 있었으며 그는 표일병 이였다 그부대에서는 인원점검후 탈영으로 신고되었던 것이다 2명중 한명이 붙잡혔는데 양구지역에서 당구도치고 우리군부대 시설 사진 다 찍고 홍천스키장에서 놀다가 그렇게 한명은 북으로 넘어 간 걸로 마무리 됐다
아~ 전원 토벌한 것이 아니었었나요? 한 명은 살아 돌아갔었나요? 쉬벌...
아~~무전기가열악하다니~~!!
국회원들월급삭감해서장병들대우좀하자...
군인들이용하지말고...
북한 무장공비들 진짜로 지능적이네요;; 그리고 이해가 안되는건 그 산에서 무장공비가 있는데 버섯을 캐러 산에 왜 올라가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ㅠㅠ
송이 버섯 채취가 큰 소득이 되다 보니 주민들 입장에선 설마 하는 마음에 갔다가 변을 당한거죠...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추석연휴가 대목인데다가, 송이버섯이 자연산만 채취가 가능한지라 고소득 보장이였대요
욕심 (먹고사는 문제)내다 일찍 가는거다.그래봐야 자기운명선 (수명)안이지.
주머니에 도토리 몇개...이 말이 정말 전쟁의 모든걸 말해주는...
그리고 한국군이 먹은 전투식량 봉지를 몇 개 접어 호주머니에 넣어 놨고, 접힌 안쪽에 남은 밥풀 몇 개!
2사단 31연대 2대대 6중대 출신 15군번 예비역입니다
부대 기념 행사때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순직하신 7중대 고 송관종 선배 장병님 추모하며 묵념하던 시간 갖던게 생각나네요
조국은 아직 그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와아.. 진짜.. 소오름.. 도토리랑 밥알 몇개..
우순경급 생생한 편이네요... 실제 사건의 체험담이니만큼 ㄷㄷ
진짜....ㄷㄷ합니다...
우리군을 믿는이유가 껄렁해도 야전나가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는게 멋지네
맞습니다.👍👍
21사단 지오피근무......야간 14시간 말뚝근무.....체감온도 영하 4-50십도......무장공비가 목따간다고 실탄장전하고 후방경계만......
9-10월에 영하 40 50도 라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