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다방이 유튭 전쟁 다큐면에서 원탑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 화를 통해서도 증명하네요. 보통은 이오지마 관련해서 특출난 일본의 쿠리바야시 장군과 그로 인해 발생한 미 해병대의 희생을 얘기하기 마련인데, 그를 넘어서 막후의 정치적 사정과 왜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미해병대가 고전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제대로 한 화였습니다. 초반의 샤를옹과 엠씨 허준의 맛깔난 티키타카는 유쾌해서 좋았습니다. 특히나 눈길을 사로잡은, 샤를옹의 이오지마 공략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해 일정부분 탄탄한 근거 및 최신 사학계의 전반적인 평가를 들어 반박하는 심소령님의 전개 과정은 백미였으며, 이러한 전문가들의 대화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귀를 즐겁게 하는군요. 뒤를 이은 채박사님의 자세한 설명 또한 충분히 좋았고 박원장님의 우리네와 연관한 첨언도 언제나처럼 짧지만 새겨볼만한 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패널들의 의견을 더욱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각종 이미지와 사례 등을 조사하여 영상에 첨부 편집한 제작진의 노고에도 언제나처럼 박수를 보냅니다.
이오지마를 보면서 느끼는 교훈은 공격을 할때는 방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것.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오지마는 그냥 보급기지 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도교 폭격이 더 많아질수 있는 핵심 지역. 그런 지역에 방어가 허술할리 없는데 미국은 그걸 생각 못했음. 또 다른 교훈은 들어가면 공격받기 너무 쉬운 지형이라면 축차 투입하지 말고 더 많이 한번에 들어가야 한다는것. 육군까지 다 합처서 6만명이 한번에 스리바치 산으로 갔어야 했음. 최대 병력을 동원해서 가장 중요한 거점을 점령하면 주도권을 바꿀수 있다고 봅니다.
언제나 역전다방은 저의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이오지마 전투 하나로 1.5회분이 나올줄이야.ㅎㅎ 2차대전하면 서부전선이 메인으로 다뤄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자세히 다뤄주시면 너무 감사합니다. 나중에 중일전선에서부터 동남아시아까지도 한번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매주 주중에 지식을 채워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다른 방송하고 밀도 자체가 다르네요. 참고서적 몇권 정리해서 읆는게 아니고 다방면에서 분석 하고 들어가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나오신분들 할얘기는 산더미인데 상당히 자중하는게 보이네요. 리미트 풀면 한주제에 3시간씩 방송 할듯 물론 저것도 잘라서 방송 하는거 겠지만요.
이오지마 참사는.. 쿠리바야시 지휘가 뛰어났고, 미군이 자만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달리 말하면 그 이전 숱한 상륙 전투에서 일본군이 미군 상륙작전에 맞섰던 전략전술이 형편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사상자가 미군 쪽이 더 많다지만 일본군은 아예 2만 명이 전원 절멸해버렸기도 했고요.
올바른 가치관? ㅋㅋㅋ 초딩도 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을 서울대 역사 교수가 할 말임? 자기 가치관을 드러내라고 저기 앉혀 놓은 게 아니라 감정에 휘둘려 도덕적 판단으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 막기 위해 저기 앉혀 놓은 건데 본인이 그러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존재감도 공기임. 솔직히 저기 없는 게 나음.
역사학자나 일반 밀덕들과 달리, 님이 언급한 분이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봤다고 님이 판단한 부분, 건들건들 영상과 여기 역전다방 영상 중에서 어느 편 어느 부분을 말하는지 솔직히 모르겠군요. 전쟁과 역사는 심각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국내 영화 흥행 랭킹 1위에 빛나는 ' 명량 ' ---------------------> 개봉관에서 감동과 함께 관람했지만, 그 얼마 뒤 인터넷 영화 관련 게시판의 한 댓글을 본 뒤 감동의 상당 부분이 그냥 사라지더군요. 촌철살인-시니컬한 댓글. 영화 볼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연 배우 이름 값으로 너무 관대하게 관람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댓글은 이랬습니다. " 고문당하고 백의종군 했던 초췌한 충무공의 모습과 거리가 먼 배우의 모습 " -----------------------------> 명량 당시의 충무공은 결코 영화 속 배우와 같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 그 배우 보다 한 참 후배 배우는 다른 작품에서, 질병에 걸린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건강이 상할 정도로 몸을 만들기도. 님의 여기 이 댓글 조금 위로 (최신순 정렬) 이런 댓글도 올라왔습니다. (전쟁은 현실인데... 여기 말씀하시는 분들은.. 그냥 "돼냥이"네요. 우크라이나 보면서 ㅠㅠ 전쟁은 말로 하지 마세요 ㅠㅠ 운동한 모습 기대합니다) -----------------------> 언급한 저 댓글은 상당히 겪한 표현이지만, 최근 CNN과 BBC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가족을 잃고 눈물흘리는 사람들 모습이 떠오르며 내용적으론 부정하기 어려운. 최근 방송에서 한 아주머니가 아들이 러시아군에 사살당한 뒤, 아들을 마당에 임시로 묻은 자리 가리키며 눈물 흘리더군요. 같은 영상을 보고도 "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본다는 것 " 감상과 냉혹한 전쟁을 너무 말로만 가볍게 대한다는 평이 함께. 최소한 역전다방 시리즈에서 님이 언급한 분이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보고 의견 피력한 부분은 못느꼈습니다.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은 책이나 지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겁니다. ---------------> 최소한의 경험은 전제되어야. 최류탄과 돌맹이 난무하는 정도 아닌 최소한 주변의 누군가가 희생되는 경험을 해야 비로서 이를 수 있을 겁니다. 대단한 분인 것은 맞지만, 그 대단함의 사유는 다른 측면 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아프리카, 롬멜이 공세 아닌 방어에 주력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까? Never!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 독일이 현상 유지로 방어에 집중하며 독소전 수행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까? Never! 야전지휘관 롬멜의 공세가 2차대전 독일의 대전략 무너뜨려 이길 수 있던 전쟁 패배한 것일까? --------------------> Never, Never, Never! 전투에만 집중하면 전쟁 숲은 안보입니다. 조금 떨어져 거리를 두면, 잎과 가지는 흐릿하더라도 숲을 놓치진 않습니다. 북아프리카, 롬멜이 방어에만 치중한다고 패배 못피합니다. 물론 공세를 펼쳤어도 패했죠. 그렇다면 롬멜은 왜 공세를 택했을까요? 어리석거나 명예욕 아닌, 그 전역에서라도 승리할 작은 가능성에 운명 걸었던. 독일의 적은 사실상 그 당시 전세계나 다름 없는 소련-영국-미국 연합. ---------------> 2차대전 독일의 패배는 단지 시간 문제.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만 놓고 봐도, 시간은 독일의 편이 아닌 영국의 편. 앉아서 적의 공세 기다릴수록 적은 나날이 강해집니다. 기다리면 그 전역에서의 승리 조차도 불가능하기에, 적이 더 강해지기 전 승리를 위해 주사위 던진 것. 몰타 보급을 위한 피데스탈 호송선단 규모, 독-이 추축국은 지중해 전역에서도 전쟁 역량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45년 영 태평양 함대 task force 57 지원을 위한 보급선단 150만톤이, 이태리가 2차대전 동안 상실한 200만톤에 근접할 정도. 이미 터진 전쟁 상황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롬멜도 알게 되었지만 군인 신분으로 최선을 다해 임무 수행. 2차대전 전체 최종 승리는 불가능. 하지만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의 한시적 승리는 희박하지만 노려볼 수 있는 정도. 방어에만 주력하면 그 희박한 가능성 마저도 사라지는. (롬멜은 일부 전역에서의 승리 내지는 북서유럽 상륙 저지등을 통해 서부연합국과의 협상을 통한 독일의 굴복성 휴전 정도 생각?) (그런 생각을 한 롬멜이라면 전략적으로 독일 최상층부 보다 못하다고 보기도 힘들고.) 독일의 2차대전 대전략은 파탄. 야전지휘관 롬멜에게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국 책임을 전가해선 안될 것. -------------------------------------------------------------------------------------------------------------------------------------------------------------------------------------------------- 독일의 야전지휘관은 탁월했지만, 독일 최고 수뇌부의 판단력과 전략은 참사급 -----------------> 특히 병력, 자원, 생산력 등 고려 불충분 상태서 전쟁 돌입한 것,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서 패하는 근본 원인.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해외 전문가 주장이라도 스스로 판단하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노벨상-필즈상 수상자도 얼마든지 계산 실수나 논리를 벗어날 경우도 있기에 냉정하게 바라봐야. DNA 이중나선으로 노벨상 수상했던 미국학자, 흑인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롬멜 신화를 깨부수는 것은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멋진 과업일 겁니다. 일단 폼나니까. 롬멜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계기 중에는 그런 도전 정신도 분명 포함. 공정하게 이성적으로 논리만으로 한다면 좋죠. 불행히도 유럽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 및 2차대전 독일 최고 지휘부 일부 등, 고의적 자료 취사선택 성격도. 롬멜의 취약점 최대한 부각하면서, 최전선 야전지휘관 아닌 국가 차원의 거대 삽질에 대해선 의도적 축소. 야전지휘관에게 국가 차원 전략적 오판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적당히 방어전만 했다면? -----------> 그 경우 영국은 토부룩 잃지도 않았고, 엘알라마인까지 후퇴도 없었을 것. ---------------------> 그 경우 영국의 병력 손실도 훨씬 적었을 것이고, 영국의 보급과 물자 축적도 훨씬 증가했을 것. --------------------------------------------> (어떤 분이 다른 댓글에서 주장했듯) 구릉지에서 안뛰쳐나가고 방어 ----------> 지켜지겠습니까? -------------> 롬멜은 토부룩 점령 때 막대한 영국군 군수물자 연료 획득. 그것으로 엘알라메인 까지 진격. ------------------------------------> 롬멜의 고글, 영국군에게서 노획한 겁니다. 롬멜이 탄 맘모스 지휘 차량도 영국군 노획품. ---------------------> 롬멜이 방어전에 주력해 필요 없어진 보급물자가 독소전에 추가 투입된다고 독소전 승리하겠습니까? ... ... ... ------------------------> 저런 기초적 상황, 당시 독일 최고 지휘부나 독소전 투입 장성들이 몰랐겠습니까? ------------------------> 전후 유럽과 미국의 일부 군사전문가들이 저런 상황 몰라서 롬멜의 전략적 식견 부족 들고나오진 않았을 것. -------------> 저런 조건들 알면서도 그랬다면 무슨 목적일까요? 독일 최고 참모부 및 독소전 투입 장성들 입장에선 자신들 면피 성격도. -------------> 독일의 참전 전쟁 지휘부 아닌 유럽과 미국의 민간 학자들은 왜? 잘모르겠지만 튀어보려는 심리도 포함되었을 것, 분명히. 저렇게 뻔한 측면을 아주 대놓고 싸그리 뭉개댄 주장이라고 비판받을 때 제대로된 반론이 가능하겠습니까? (롬멜전사록에 저런 부분이 언급됩니다. 가만히 앉아 방어에 치중하면 영국의 공세에 결국은 패배당한다. 따라서 영국군이 더 증강되기 전, 영국의 물량 우세가 더 압도적이 되기 전 수에즈를 점령해야만 한다. --------------------------------------------------------------> 롬멜은 자신이 처한 악조건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승리하려고 몸부림쳤던 것.) 우리가 롬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부 명령에 순응했을 겁니다. 롬멜은 독자적 공세를 취했고, 영국군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밀어붙였고, 엘알라마인에서 최종 패배당하는 순간엔 사수 명령 거부하고 퇴각. 거기서 전멸하면 그 즉시 북아프리카 전선은 종결되기에 명령 거부하고 후퇴했던 것. 롬멜에게 돌던질만한 능력이나 자격을 갖춘 이 찾기 쉽지 않을 것. 탁월한 능력의 야전지휘관, 히틀러 경호대장 출신임에도 결국 헛된 꿈에서 깨어났고 히틀러에게 독살된. 그런 이에게 돌을 던져야 할지. 롬멜은 신화가 될만 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신화는 안타깝게 쓰러져간 경우가 더 비장하고 잘 어울립니다.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승자가 된 몽고메리-패튼-아이젠하워-맥아더... 등에게 신화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 롬멜에겐 독일 국가 차원의 대전략을 펼칠 기회 없었지만, 주어졌다면 더 합리적 이성적 대응을 했으리란 믿음은 생기는 군요. 야전지휘관에게 국가 차원의 전략적 식견 부족 비판은 어이없는 것. 그것도 호랑이 같은 야전지휘관에게 개같은 수준의 독일 국가 최고지도부 전략적 오판 책임을 전가하는 거라면 더더욱.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 : 야전지휘관 롬멜의 전략적 식견 부족 아닌. 독-이 추축국 역량 부족으로 패배당한 것. 1942년 8월 operation pedestal 최대 몰타 호송선단 : 상선14, 전함2, 항모5, 순양함7, 구축함32, 잠수함7등 ua-cam.com/video/0inR2jRW_P8/v-deo.html Operation Pedestal: The Convoy That Saved Malta (2분25초 이후 지중해 진입할 때의 페데스탈 선단 배치 그래픽으로 나옴.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선단 배치 모습.) ua-cam.com/video/11173sD3kgc/v-deo.html Battle Of The Convoys (1942) 실제 전투 영상 ua-cam.com/video/Xf3vzsT40aI/v-deo.html Malta Convoy Battle (1942) 실제 전투 영상 ua-cam.com/video/qjUmRzKZH-E/v-deo.html Malta Convoy - Further Pictures (1942) 실제 전투 영상 ua-cam.com/video/it3pOYM0JkA/v-deo.html HMS Nelson Hit in Convoy Attack 실제 전투 영상blog.daum.net/mybrokenwing/387 몰타를 살리기 위한 발악들(5) 국내 블로거 봉달이님 글. 롬멜이 보급만 충분했다면? ---------------------->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롬멜의 전략적 식견이 부족해 ... ...? ------------------------> 롬멜 아닌 독-이 국가 차원의 문제. 독일-이태리 추축국 보다 압도적으로 길었던 영국의 해상교통로 및 방어하기 훨씬 어려웠던 환경. 최단 직항로 지브롤타-몰타-알렉산드리아 약 3,500km. 전황 악화로 직항로 이용 못할 때는 아프리카 대륙 우회 수만km 지구 차원. 몰타의 위치는 시칠리에서 약 90마일, 북아프리카에서 약 160마일로 지중해 전역은 사실상 이태리의 내해 성격으로 호수와 다름 없는. 추축국 잠수함은 상시 매복, 해상과 공중에서 추축국의 공세로 몰타는 말라죽기 일보직전으로 몰리기도. 영국의 최단 직항로 3,500km도 선단 집결지 지브롤타 기준 거리입니다. 실제 보급 시작은 아무리 짧아도 영국 본토이며, 길면 대서양 건너 캐나다와 미국에서 출발한. 독일 이태리 추축국의 공격을 뚫고 보급을 성공시켰지만,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거의 모든 함정이 손상당했고 격침된 함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선9, 항모1, 순양함2, 구축함1. 격침된 항모는 장갑항모 이전의 함대항모 이글, 독 유보트에게 격침당했습니다. 장갑항모 인도미터블은 대파. 상선은 14척이 출발해서 몰타엔 겨우 5척만 도착했죠. 불행중 다행으로 당시 세계 최대 유조선이었던 오하이오는 겨우 도착. 오하이오는 원래 미국 유조선이었지만 영국해군이 임대해서 승무원은 모두 영국인. 거의 1만톤급 유조선 오하이오 역시 피해가 커 전승무원이 퇴함하기도 했으나 구축함3척이 양 옆과 앞에서 지탱하며 끌고 반쯤 가라앉은 상태로 몰타 입항. 몰타 도착후에 기름 거의 다 퍼낸 상태에서 결국 침몰했습니다. 4척의 일반 상선과 1척의 유조선 도착으로 보급받은 물자는 약 5만5천톤, 그 중 석유는 약 9000톤, 식량과 탄약 4만5천톤. 페데스탈 작전 피해가 너무 커 다시는 이런 작전을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5만5천톤의 보급은 몰타를 살려냈고, 역으로 살아난 몰타로 인해 롬멜의 보급이 끊기고 몇 달 후 엘알라메인. 동원된 전함중 1척은 어뢰에 피격되었지만 천운으로 별 타격 입지 않았고, 동원된 항모 5척은 장갑항모2척, 구형의 함대항모였던 이글과 퓨어리어스, 그리고 세계최초의 전갑판 항모 아거스. 아거스는 세계최로로 상부구조물이 제거된 전갑판 항모였지만 함대항모가 아닌 소형 호위항모. 퓨어리어스는 항대방공 임무가 아닌, 몰타에 항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영공군 스핏파이어를 탑재, 몰타 약 1000km 전방에서 항공기를 몰타로 출격시키고 지브롤터로 바로 귀환했습니다. 즉 장갑항모 2척이 몰타 인근 해상까지 함대방공 임무를 수행 하다, 몰타의 영공군이 엄호하기 시작한 직후 역시 잽싸게 지브롤타로 후퇴. 아거스는 대잠 항공작전 위주. 피데스탈 작전 이외 여러 호송작전에서도 영국함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그러나 영국 장갑항모는 여러번 직격탄에 피격되었어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일러스트리어스 경우 피격된 상태에서 몰타 입항, 항구에서 다시 공습에 노출되자 밤에 탈출해 미국까지 도피, 수리 때문에. 영국 본토도 폭격에서 자유롭지 않아 병신된 몸 이끌고 대서양을 건너가 수리받음. 인도미터블은 슈투카에게 대형 폭탄 2발 직격당하고도 꾸역 꾸역 후퇴했죠. 장갑갑판이 찢어졌지만 갑판 아래 핵심 선체는 손상당하지 않아서 탈출에 성공했죠. 미국과 일본의 나무갑판 항모였다면 지중해 진입하면 다시는 못빠져나갑니다. 타격당하는 순간 끝이나 다름 없습니다. 몰타 가는 중에 피격되면 살려면 지브롤타까지 도망가야 하죠. 문제는 적 공군이 계속 추격할 수 있는 추축국 점령지대가 튀니지 알제리등 지브롤타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것. 호송선단은 대략 3일 정도 항해합니다. 그 3일 밤낮으로 항공기, 잠수함, 수상함의 공격을 당했고, 심할 경우엔 한 번의 공습에 대략 300기 정도의 추축 공군기들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함대가 생존한 이유는 하늘엔 몰타의 영국 공군도 출격해서 추축국 공군도 대함공격만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몰타의 영공군 엄호가 없는 구간에서는 항모 함재기와 함대의 대공포 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미드웨이나 태평양에서의 항모전투는 몇 시간 이내에 일단 끝나고 휴식기를 가지게 되죠. 항모가 격침되거나 대파되면 전장에서 이탈되어서 쉬는 거고, 항모 피해 별로 없더라도 무장 떨어지면 보급 때문에 후퇴. 지중해의 호송선단 전투는 약 3일간 밤낮 없이 지속되고, 적 항공기들은 육상기지에서 재급유 재무장받고 다시 출격. 즉 공격하는 측의 공군기지는 격침될 위험이 없어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방어하는 함대의 항모는 격침되거나 대파될 위험. 태평양에서 항모 대 항모 전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항모와 공군력의 대결이었습니다. 항모 단독은 아니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몰타에서 출격한 영국공군의 호위 아래 영국 항모들이 생존했던 것. 미국 일본의 항모전단이 만일 그 당시 지중해에 진입했다면, 항모전단 자체 세력만으로 살아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무 갑판이라 피격되는 순간 이미 운명은 결정되는 겁니다. 적 공군과 잠수함이 끊임없이 추격 반드시 격침시킵니다. 태평양의 항공모함전 때는 잠수함들 활약 어렵죠. 잠수함이 항모 따라다닐 속도가 못되니. 잠수함을 전장에 항상 미리 배치 매복시킬 수도 없고. 하지만 지중해에선 잠수함들은 상시 매복 상태. 강력한 대잠세력을 가지지 못한 항모전단 자체 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태평양과 달리 대서양에선 독일 상대로 항모 대 항모 전투는 불필요, 북해에선 적 공군력 위협이 너무나 커 무르만스크 호송과 같은 임무 이외엔 항모가 진입도 꺼렸고, 지중해에선 몰타 보급 때문에 정말 목숨걸고 들어가 죽다 살아나왔습니다. 물론 영국공군 엄호 아래서 겨우 생존했죠. 그러한 지형적 작전 제한 조건 때문에 영국은 장갑갑판을 채택하면서, 함재기 탑재수를 희생했고, 여러 곳에 산재한 영국 공군기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전쟁 전 함재기 개발 필요성 덜 느겼던 것. 전쟁 터진 이후엔 독일 상대하기 바빠 2차대전 중엔 대부분 미 함재기 의존, 45년 종전 후에야 고성능 씨퓨리와 제트기. 지중해 북아프리카 전선 보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독일 이태리 추축국은 시칠리에서 북아프리카 겨우 수백km 해상교통로, 영국은 최단거리 직항로라고 해도 지브롤타-몰타-알렉산드리아 3,500km, 전황이 악화되어 지중해 직항로를 택할 수 없을 경우엔 대서양-희망봉-인도양-홍해-이집트로 아프리카 대륙 우회 수만km. 짧디 짧은 해상교통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보급이 말라버린 것, 그 자체로 추축국은 승리할 기본 자격이 없었던 것.
깨진다면 롬멜 신화 아닌, 패튼의 코브라 돌파 신화가 먼저 깨집니다. ua-cam.com/video/34oR2D1GVU4/v-deo.html BREAKOUT from NORMANDY: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패튼은 북아프리카에서 별다른 전과 없었고, 노르망디 코브라 돌파 순간에도 전투 지휘하진 못했고. 첨부한 동영상에 달린 댓글에 그런 점에 충격받은 이들의 대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코브라 돌파 시점 까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한 상세한 소개 영상인데, 제목은 패튼의 코브라 돌파지만 내용적으로 패튼은 거의 언급도 되지 않고, 패튼 아닌 브래들리 내용이 거의 다라, 혼란스러워하는 댓글들이죠. 44년 7.25일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작전 개시 44년 7.28일~7.31일, 독일군 방어선 붕괴 시작되고. 7.31일, 브래들리 미1군 보카쥬 벗어나 프랑스 내륙으로 돌입.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돌파 이후 신규 편성된 미3군을 패튼이 지휘 시작. 즉 패튼은 코브라 돌파와 아무런 상관 없는. 브래들리 미1군의 코브라 돌파, 영국군이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80% 및 거의 모든 타이거 전차 몸빵하며 고착 분쇄 공세를 펼칠 때 독일의 모든 예비 전력이 영국군 지역으로 투입되어 미군 담당 지역 독일 방어력이 매우 취약해져. 패튼은 할리웃 선전 최대 수혜자 성격이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미 기갑부대의 사실상 첫 데뷰전인 캐서린 협곡 전투에서 미군 거의 전멸당하자, 새로운 지휘관으로 패튼이 교체 투입 시점 43년 2월경. 43년 5월 튀니지에서 독-이 추축국 25만 항복까지 별다른 전과 없는. 시칠리에서도 미군은 별다른 전투 없이 팔레르모 입성, 거의 지프 타고 손들면서 팔레르모 입성. 에트나 화산 동부지역에서 격결한 전투하며 전진한 영국군과 달리. 공황장애로 의무대 있던 몸 멀쩡한 사병 뺨싸대기 날린 것 언론보도로 사과 및 문책되어 일선 지휘에서 배제. 3군 부임 전까지 노르망디 상륙일만 아니라 그 후 약 1달 후까지도 노르망디에 없었죠. 영국에서 가상 페이퍼 부대 지휘관으로 대기. 코브라 돌파되는 시점까지도 전투 지휘를 하지 못하고 재편성되는 되는 3군의 지휘관으로 돌파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패튼이 실질적으로 능력을 보인 것은 벌지 전투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할리웃 영화 패튼대전차군단, 패튼이 북아프리카, 시칠리, 노르망디 다 한 것 같은 착각 들 정도. 패튼은 사실 롬멜과 단 1번의 교전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웃 효과로 패튼이 롬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된. 롬멜은 패튼과는 다릅니다. 적당히 다른 것이 아니라 너무나. 롬멜은 패튼과 같은 여러 실체 없는 승리의 주인공 아닌. 국가 차원 지원에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했고. 제대로 지원해주지도 못했고, 지원할 능력도 안되었던 독일 최고 지휘부와 독소전 투입 일부 장성들은 롬멜이 독일의 대전략에 혼선을 가져와 전쟁 수행을 어렵게 했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롬멜 신화 깨부수기의 시발점임도 인정해야만 할 것. 롬멜 신화는 적인 영국군 장병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롬멜 신화 깨부수기는 롬멜의 조국 독일에서 싹이 텄습니다. 롬멜은 2차대전 파탄난 독일의 대전략 수립할 위치에 없없고, 야전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패했던 것. 부족한 보급을 기다린다고 온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적극적 공세로 토부룩 함락해 대량의 물자 탈취해 엘알라메인 까지 진격. 엘알라메인을 뚫고 수에즈까지 진격해 수에즈 이집트에 집적된 대규모 물자까지 확보하려 했던 것은 전략적 오판 아닌 주어진 결핍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 그런 롬멜에게 전략적 식견 부족 운운은 것 지나친. 독일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탄을 야전지휘관에게 묻는 것은 책임 전가이며 비합리적 태도. 코브라 돌파 영상 관련 댓글 일부 펌. ( John Emerson 3개월 전 Interesting. General Patton was never mentioned in this video. 22 Carl Welty Carl Welty 2개월 전 Good point - 2 Todd Is god Todd Is god 2개월 전 Because his command of the 3rd army had to wait until they were activated, which was immediately after Cobra 6 John Emerson John Emerson 2개월 전 @Todd Is god Yeah,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and he isn't even there yet. Mis-titled I guess. 7 Jc Wheeler Jc Wheeler 1개월 전 @John Emerson 997ot Ronnie Bishop Ronnie Bishop 21시간 전 He wasn’t involved with this operation it was Bradley all the way. Patton was in England. )
노르망디, 미군의 코브라 돌파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ua-cam.com/video/p-9w2J5s0xU/v-deo.html 코브라 돌파 직전 까지, 독일 기갑부대 80% 및 모든 타이거 전차는 까앵에서 영국군과 교전. 그 빈 틈으로 미군의 돌파. 까앵 최종 함락 단일 작전에서 영국군은 약 500대의 전차 손실. 당시 영국군 총 전차의 약 35%를 단일 작전에서 손실. 까앵 함락 때 독일군 전차 약 600대 및 독일의 모든 타이거 전차가 영국군에 붙들려 고착 분쇄되어 나감. 당시 미군 전면에 배치된 독일 전차는 약 150대, 타이거는 없었고. 노르망디 전역 종결 때 까지 교전국들의 최종 전차 손실. 영국 약 1200대. 독일 알보병을 주로 상대했던 미국 역시 약 1200대 손실. 독일은 약 1300대. 당시 미 지상군이 독일 주력을 담당했던 영국과 거의 동일한 전차 손실을 당했다는 것은 미군이 신병 수준이었기에. 독일이 당한 전차 손실은 전차 대 전차 전투 보다는 공중공격 및 함포사격에 의해 손상당한 후 후퇴할 때 유기 자폭 많음. 즉 전차 대 전차 전투에서 영국과 미국이 독일 전차와 겨루기는 힘들 정도의 압도적 성능 차이. 패튼의 미군은 유능했고, 영국군은 무능했던 것 아님. 영국군은 노르망디 전역 독일 주력 기갑부대를 몸빵으로 처절하게 공격하며 독일군을 제거한 것. 미국과 영국은 불행히도 45년 초가 되어서야 타이거와 대등하게 전투할만한 신형 전차를 전선에 투입. 하지만 너무 늦게 투입되어 교전할만한 독일 전차 기갑부대 자체가 소멸해 별 전과 없음. ------------------------------------------------------------------------------------------------ 노르망디 전역 미군의 코브라 돌파에 대한 다큐 링크를 걸면 유튭에서 글이 삭제되곤 해서 간단 소개합니다. 노인이 된 브래들리 장군의 인터뷰 및 코브라 돌파 상세한 과정을 다룬 다큐인데, 그 유튭 영상엔 수 많은 영미권의 댓글들로 넘쳐났습니다. -------------------> 패튼이 코브라 돌파한 것 아닌 것에 놀라고, 패튼이 노르망디 상륙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놀라고, 그 영상 제목이 영어로 패튼의 코브라 돌파라는 어구도 포함되었는데 내용적으로 패튼은 나오지 않고 브래들리만 나왔기에 영상 제목을 바꿔야한다는 댓글들도 있더군요. 패튼대전차군단 할리웃 영화 영향력 때문인지 미국 일반인들도 패튼이 코브라 돌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 흔히 패튼이 지휘한 미3군이 코브라 돌파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패튼이 아닌 브래들리 휘하 미1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냈고 패튼은 그 이후에, 재편성된 신규 미3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된 겁니다. 브레들리의 코브라 돌파는 44년 7월 말 이루어진. 노르망디 상륙 당일만이 아니라 상륙 후 1달이 넘어서 까지 패튼은 영국 본토에서 대기. 코브라 돌파를 해낸 미1군 지휘관, 오마 브래들리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해 직접 서술한 내용. 맨 앞 첫 구절만 우리 말로 옮기면 ---------------------------------> (영국군은 독일군을 갈아버리기 위해 깡의 독일 기갑부대로 진입했다, 미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낼 수 있도록.)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압도적 전차 성능 차이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동안 영국군도 갈려나갔습니다. 소개된 뒷 부분을 옮기면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격 속도와 전진한 거리로 그 전투의 성공을 평가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즉 영국군의 돌파라는 자부심을 계산하지 않고 몽고메리는 최종 작전 계획에 서명했다... ... 영국군은 인내와 자제로 그들에게 부여된 수동적 역활을 견뎌냈다.) -------------------------> 많은 이들은 인용한 원문 마지막 부분 주장과 같이, 군이 적진을 돌파하는 진격 속도와 전진 거리로만 성공과 능력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적 주력을 견제-고착- 섬멸 등을 해야, 그런 돌파가 가능한. 40년 프랑스를 항복시킨 전격전은 적 주력을 견제만 하는 뒤통수 때리는 돌파, 하지만 44년엔 견제만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던. 40년엔 장난감 수준의 전차로도 전격전이 가능했지만, 전쟁 말에는 그 어떤 중무장 전차도 쉽게 뚫을 수 없이 변해버린, 게다가 전차 성능에선 독일의 압도적 우세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갈려나가면서 적 주력을 고착-분쇄시켜야만 했던. --------------------------> 노르망디 전역, 당시 미군은 독일군 주력을 상대할 역량이 없었기에, 영국군이 갈려나가면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별로 폼나지 않는 수동적 역활을 담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미군 지역의 독일군 방어력 약화를 이용해 미군이 돌파하도록 상륙 전에 이미 작전 계획을 세웠던 것. ----------------> 오마 브래들리가 얼마나 겸손하고 사려 깊은 지휘관인지 패튼의 알려진 언행과 비교해보길. 만일 패튼이 코브라 돌파를 지휘했고 성공시켰다면, 오마 브래들리와 같이 서술하기는 힘들었을 것. 모든 것이 위대한 미국과 탁월한 자신의 능력으로 독일군을 분쇄한 것이라고 했을 가능성 큰. 그렇다면 패튼은 왜 이렇게 과대 평가되고 널리 알려졌겠습니까? ----------------> 극한의 할리웃 영향력? 또한 벌지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결정적 지상전 승리이기에 패튼을 미국의 영웅으로 부각시킬 필요성도 있었을 것. (콰이강의 다리)-(패튼 대전차군단) 두 영화는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지만, 영화 내용과 성격은 완전히 상반되죠. 성조기 나부끼고 번쩍이는 별 박힌 철모에 상아 손잡이 권총의 지휘관이 2차대전 독일군 괴멸시킨 것으로 선전하는 영화가 과연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만한 수준인지 지극 의심스럽지만 받았답니다. 어릴 때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역사를 좀 알게 된 이후에 그 영화 다시 보니 참... 자잘한 것 하나 더 추가한다면, 강릉에 잠수정 침투했을 때, 소탕전 나선 우리 군 일부 번쩍이는 계급장 때문에 저격당해 전사. (오마 브래들리 서술 관련 펌.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While Collins was hoisting his VII Corps flag over Cherbourg, Montgomery was spending his reputation in a bitter siege against the old university city of Caen. For three weeks he had rammed his troops against those panzer divisions he had deliberately drawn towards that city as part of our Allied strategy of diversion in the Normandy Campaign. Although Caen contained an important road junction that Montgomery would eventually need, for the moment the capture of that city was only incidental to his mission. For Monty’s primary task was to attract German troops to the British front that we might more easily secure Cherbourg and get into position for the breakout. In this diversionary mission Monty was more than successful, for the harder he hammered towards Caen, the more German troops he drew into that sector. Too many correspondents, however, had overrated the importance of Caen itself, and when Monty failed to take it, they blamed him for the delay. But had we attempted to exonerate Montgomery by explaining how successfully he had hoodwinked the German by diverting him toward Caen from the Cotentin, we would have also given our strategy away. We desperately wanted the German to believe this attack on Caen was the main Allied effort. But while this diversion of Monty’s was brilliantly achieved, he never the less left himself open to criticism by over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his thrust toward Caen. Had he limited himself simply to the containment without making Caen a symbol of it, he would have been credited with success instead of being charged, as he was, with failure at Caen. For Monty’s success should have been measured in the panzer divisions the enemy rushed against him whilst Collins sped on toward Cherbourg. Instead, the Allied newspaper readers clammered for a place name called Caen which Monty had once promised but failed to win for them. The containment mission that had been assigned Monty in the Overlord plan was not calculated to burnish British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ir troops. For in the minds of most people, success in battle is measured in the rate and length of advance. They found it difficult to realise that the more successful Monty was in stirring up German resistance, the less likely he was to advance. For another four weeks it fell to the British to pin down superior enemy forces in that sector while we maneuvered into position for the US breakout. With the Allied world crying for blitzkrieg the first week after we landed, the British endured their passive role with patience and forbearing.)
전쟁의 승패가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제 때 항복하지 않은 일본 지도부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원폭의 잔인함을 더 이야기하는 거죠. 국민들이 원폭의 피해만 알도록 만들어 다시 한 번 청일 전쟁의 승리를 반복하려고 자국민을 전쟁에 갈아넣으려는 일본 정치인들의 수작질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그리고 일본 국민들 중 소수만이 이 수작질을 알고 대다수는 아무 생각 없던가 국가가 알려주는 것만 앵무새처럼 따라 말한다는 것이 문제이죠.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징용되셔서 끌려 다니시며 땅꿀 파셨어요 술한잔 하시면 그때 얘기를 자주 하셨었는데 돌아가신지 벌써 돌아가신지 20년이 되어가네요
저의 선친께서 일제강점기에 카미카제 훈련을 받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일본 조기 항복 때문에 귀환 하셨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옥같은 고생을 하셨을지...ㅠㅠ
@@조재창-j6z 천만다행입니다 정말..
위정자들이 무능하고 부패하면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고초를 겪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우리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잘 뽑아야 겠지요
그럴러면 우리가 먼저 지혜로워야 할듯요 ㅋ
참...영상속 징용된 조선인 투항표시로 손들며 나오는데...공포심보다는 얼굴에 미소가 왜 이리 딱하게 느껴지는지 ㅜㅜ...
역전다방이 유튭 전쟁 다큐면에서 원탑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 화를 통해서도 증명하네요.
보통은 이오지마 관련해서 특출난 일본의 쿠리바야시 장군과 그로 인해 발생한 미 해병대의 희생을 얘기하기 마련인데, 그를 넘어서 막후의 정치적 사정과 왜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미해병대가 고전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제대로 한 화였습니다.
초반의 샤를옹과 엠씨 허준의 맛깔난 티키타카는 유쾌해서 좋았습니다. 특히나 눈길을 사로잡은, 샤를옹의 이오지마 공략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해 일정부분 탄탄한 근거 및 최신 사학계의 전반적인 평가를 들어 반박하는 심소령님의 전개 과정은 백미였으며, 이러한 전문가들의 대화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귀를 즐겁게 하는군요.
뒤를 이은 채박사님의 자세한 설명 또한 충분히 좋았고 박원장님의 우리네와 연관한 첨언도 언제나처럼 짧지만 새겨볼만한 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패널들의 의견을 더욱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각종 이미지와 사례 등을 조사하여 영상에 첨부 편집한 제작진의 노고에도 언제나처럼 박수를 보냅니다.
그동안 이오지마는 미군의 오판이었다로 넘어가기는 했는데 역전다방도 결론은 결국 미군의 오판이란 것은 그대로이지만 그 오판하게되는 과정과 원인을 여러방면으로 다뤄줘서 그 오판의 이유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정말 최고의 프로. 토전사와 함께 최고의 전쟁 역사 프로.
역시 결과만 보기 보다는 이렇게 고민과 협의를 거쳤다는 과정들을 보며 배우는게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본방 사수와 유튜브까지 꼭 ~~~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생이 많았고 실제적 자료도 많았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교수님의 말처럼 그 어느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거 같습니다.
역전다방 주 2회가 시급합니다!!!
진짜 국방TV라는 공영방송에서 제작 됐다고는 믿기힘든 퀄리티입니다! 매주매주 기다려집니다!
이오지마를 보면서 느끼는 교훈은 공격을 할때는 방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것.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오지마는 그냥 보급기지 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도교 폭격이 더 많아질수 있는 핵심 지역. 그런 지역에 방어가 허술할리 없는데 미국은 그걸 생각 못했음. 또 다른 교훈은 들어가면 공격받기 너무 쉬운 지형이라면 축차 투입하지 말고 더 많이 한번에 들어가야 한다는것. 육군까지 다 합처서 6만명이 한번에 스리바치 산으로 갔어야 했음. 최대 병력을 동원해서 가장 중요한 거점을 점령하면 주도권을 바꿀수 있다고 봅니다.
역전다방이 다른 프로와 다르게 차별화를 갖는 지점을 가장 잘 보여준 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오지마 전투 이야기는 간소화되었지만 더 생각이 많아지는 화였던 것 같아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역시 최곱니다.^^
전문가들이 정말 다방면으로 잘 분석해서 말해주니까 너무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허준캐스터님도 정리가 너무 깔끔하게 진행되구요 너무 좋은 프로입니다!
훌륭한 컨텐츠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와 역사, 인사이트와 교훈까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캬 역시 역전다방 이오지마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풀어줘서 넘 좋다
이오지마가 큰 그림의 한 축이었다라는 심소령의 말 박원장님의 역사학자서의
딜레마 등 씹어볼만한 포인트가 많네 담편도 기대됩니다
너무 흥미롭습니다.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심형은 딕션이 너무 좋으셔요. ^^ 그리고, 더 자세한 전투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으로 봐서 대략 알고는 있었는데, 전투 세부 이야기와 그 배경에 대해 알게 되니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이번화는 뭔가 생각에 잠기게 하는 편이네요
지난회까지 전술과 폭격기,전투기 등의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자연재해, 정치, 인간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니 생각할 부분이 달라지네요...
정말로 참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수요일이 기다려집니다!!
맥아더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필리핀 탈환전, 킹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이오지마 점령 그과정에서 피흘리는건 살만큼 산 수뇌부들이 아닌 아까운 젊은이들이란게 참 야속하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잘볼께요!!
역전다방 기가막히네. 흐름을 쫘악 훑어주네. 진짜 최고다.
해군있을때 여름에 태풍피해서 인천으로 간적 있었는데 진짜 배 안에서 당직서면서 너무 힘들었음 계속 흔들려서ㅋㅋ.. 한반도로 올라오면 그나마 약해진 태풍이었을텐데도 그정도인데 가장 바람 쌜때 직격으로 맞았으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이 안간다
수고하셨습니다 필승
황천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잠수함으로 변신
언제나 역전다방은 저의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이오지마 전투 하나로 1.5회분이 나올줄이야.ㅎㅎ
2차대전하면 서부전선이 메인으로 다뤄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자세히 다뤄주시면 너무 감사합니다.
나중에 중일전선에서부터 동남아시아까지도 한번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매주 주중에 지식을 채워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쟁역사를 이렇케까지 자세하게 해주는 방송은 대한민국 역사상 없엇다 ! 너무 잼잇어요~~
오늘도 선추천 후감상!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어요~!!!
역전다방 정주행 다해야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국방TV
오늘도 잘보고있어요!!
해군여러분들 그 고생 직접 겪어 봐서 아는데 태풍이 없어도 그 고생 말로표현할수가 없네
역시 다른 방송하고 밀도 자체가 다르네요.
참고서적 몇권 정리해서 읆는게 아니고 다방면에서 분석 하고 들어가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나오신분들 할얘기는 산더미인데 상당히 자중하는게 보이네요.
리미트 풀면 한주제에 3시간씩 방송 할듯
물론 저것도 잘라서 방송 하는거 겠지만요.
무삭제를 보고 싶은건 나만의 생각인가요
@@glgdsmk 저는 모든 주제에서 무삭제편을 보고 싶었어요 ㅎㅎ
@@lkb38317 저두요
이오지마에서 미군의 희생이 엄청났구나 그 엄청난 전력을 갖추고도 ㄷㄷ
원래 방어하는 곳으로 진입하는 보병은 예나 지금이나 개죽음입니다.
조사를똑바로안하고 가볍게본결과죠ㅠ
덕분에 원자탄 두방 먹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
이오지마 카미카제 오키나와 죽창부대 ----- 본토상륙 재고 --- 원자탄
기다린 보람!!!!!!!!!!
밀리터리 사이언스스쿨^^ 좋아요
한주에 2번 방송 부탁드립니다 ㅡ
이오지마 참사는.. 쿠리바야시 지휘가 뛰어났고, 미군이 자만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달리 말하면 그 이전 숱한 상륙 전투에서 일본군이 미군 상륙작전에 맞섰던 전략전술이 형편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사상자가 미군 쪽이 더 많다지만 일본군은 아예 2만 명이 전원 절멸해버렸기도 했고요.
태평양전쟁 끝나고 6.25전쟁도 이만큼 자세히 다루는 방송편성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진짜 다 이겨놓고 싸운거 같은 시기의 미군도 그 이면에는 저런 치열함이 있었군요
밀리터리 사이언스 스쿨만큼이나 소령님의 인물위주의 역사 이야기도 너무 재밌어요!!!! >_
진짜 허준 진행능력은 대체불가네요 ㄷㄷ
개인적으로 도쿄대공습이 원폭투하보다 더 끔찍한 공격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곧 볼 수 있겠네요. 기대됩니다
이오지마전투에서 한달도 안되서 6천명이 넘는 전사자가 나와서 쇼크였다고 하는데 현재 우러전쟁에서 러시아군도 한달만에 만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한걸로 추측되니 러시아 피해가 엄청난거네요!
채 박사님 정장 너무 잘 어울려요~~~
오늘도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주 2 회 안해 줄껍니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선좋아요. 리플 후감상. 왜냐면 꿀잼이니
선따봉 후시청
진찌 너무 잼있습니다 ㅠㅠㅠ
오늘은 심소령님이 다 했네;; 진짜 군에 계셔서 그런지 심도 있네요~
오늘은 어느분이 짱 먹으실까? 보지도 않고 댓글 답니다
이 2027년쯤에 독소전 꿑날듯 ㅋㅋㅋㅋㅋㅋㅋ
너므 좋아~~
보면볼수록 박태균 교수님의 올바른 가치관과 넓은 시야와 관점이 존경스럽다. 막 드러나지는 않지만 최고다.
올바른 가치관? ㅋㅋㅋ 초딩도 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을 서울대 역사 교수가 할 말임? 자기 가치관을 드러내라고 저기 앉혀 놓은 게 아니라 감정에 휘둘려 도덕적 판단으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 막기 위해 저기 앉혀 놓은 건데 본인이 그러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존재감도 공기임. 솔직히 저기 없는 게 나음.
역시 역전다방!!!!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을 보면 이오지마 전투가 정말 잘나오죠 역시나 언제나 고생 하는거는 현장에 투입된 병사들이 제일 불쌍 하죠
국방티비라면 이런 심도있는 컨텐츠를 다뤄야지 굳
이오지마 자체가 주요 목표라고 여겼고 그래서 양국이 태평양 전쟁 사상 가장 치열하게 교전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어는데 애초의 의도는 오키나와를 가기 위한 조공에 불과했군요. 이후 엄청난 희생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투처럼 선전한 것 같습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ㅜㅜ
군대에서 미해병대 관련 책중에 이오지마 내용 봤는데 깊은 감명을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ㅋㅋㅋ
와 저 이거 1화부터 정주행했는데 태평양 전쟁편 끝나면 학점 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태평양 전쟁사 시험봐도 B+이상은 맞을 수 있을 듯.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 영화 두개 다 보셈 둘 다 이오지마 전투 배경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품인데 개미쳤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ㄹㅇ 인생작임
저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랑 미드 퍼시픽이 태평양전쟁을 다른 작품중 제일 재미있게본듯 싶습니다
채승병 그를 처음 알게 된것이
PC통신 하이텔에서 알다 얼굴을 알게 된건
건들건들 궁극의 인터뷰 에서 였다
그가 역사학자나 우리같은
일반 밀덕들과 다른것이라면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본다는것
그면에서 동년배 지만 존경합니다
역사학자나 일반 밀덕들과 달리,
님이 언급한 분이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봤다고 님이 판단한 부분,
건들건들 영상과 여기 역전다방 영상 중에서 어느 편 어느 부분을 말하는지 솔직히 모르겠군요.
전쟁과 역사는 심각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국내 영화 흥행 랭킹 1위에 빛나는 ' 명량 ' ---------------------> 개봉관에서 감동과 함께 관람했지만,
그 얼마 뒤 인터넷 영화 관련 게시판의 한 댓글을 본 뒤 감동의 상당 부분이 그냥 사라지더군요. 촌철살인-시니컬한 댓글.
영화 볼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연 배우 이름 값으로 너무 관대하게 관람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댓글은 이랬습니다.
" 고문당하고 백의종군 했던 초췌한 충무공의 모습과 거리가 먼 배우의 모습 "
-----------------------------> 명량 당시의 충무공은 결코 영화 속 배우와 같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 그 배우 보다 한 참 후배 배우는 다른 작품에서, 질병에 걸린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건강이 상할 정도로 몸을 만들기도.
님의 여기 이 댓글 조금 위로 (최신순 정렬) 이런 댓글도 올라왔습니다.
(전쟁은 현실인데... 여기 말씀하시는 분들은.. 그냥 "돼냥이"네요. 우크라이나 보면서 ㅠㅠ 전쟁은 말로 하지 마세요 ㅠㅠ 운동한 모습 기대합니다)
-----------------------> 언급한 저 댓글은 상당히 겪한 표현이지만,
최근 CNN과 BBC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가족을 잃고 눈물흘리는 사람들 모습이 떠오르며 내용적으론 부정하기 어려운.
최근 방송에서 한 아주머니가 아들이 러시아군에 사살당한 뒤, 아들을 마당에 임시로 묻은 자리 가리키며 눈물 흘리더군요.
같은 영상을 보고도 "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본다는 것 " 감상과 냉혹한 전쟁을 너무 말로만 가볍게 대한다는 평이 함께.
최소한 역전다방 시리즈에서 님이 언급한 분이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 까지 보고 의견 피력한 부분은 못느꼈습니다.
전쟁과 인간 내면의 밑바닥은 책이나 지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겁니다. ---------------> 최소한의 경험은 전제되어야.
최류탄과 돌맹이 난무하는 정도 아닌 최소한 주변의 누군가가 희생되는 경험을 해야 비로서 이를 수 있을 겁니다.
대단한 분인 것은 맞지만, 그 대단함의 사유는 다른 측면 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아프리카, 롬멜이 공세 아닌 방어에 주력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까? Never!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 독일이 현상 유지로 방어에 집중하며 독소전 수행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까? Never!
야전지휘관 롬멜의 공세가 2차대전 독일의 대전략 무너뜨려 이길 수 있던 전쟁 패배한 것일까? --------------------> Never, Never, Never!
전투에만 집중하면 전쟁 숲은 안보입니다.
조금 떨어져 거리를 두면, 잎과 가지는 흐릿하더라도 숲을 놓치진 않습니다.
북아프리카, 롬멜이 방어에만 치중한다고 패배 못피합니다. 물론 공세를 펼쳤어도 패했죠.
그렇다면 롬멜은 왜 공세를 택했을까요? 어리석거나 명예욕 아닌, 그 전역에서라도 승리할 작은 가능성에 운명 걸었던.
독일의 적은 사실상 그 당시 전세계나 다름 없는 소련-영국-미국 연합. ---------------> 2차대전 독일의 패배는 단지 시간 문제.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만 놓고 봐도, 시간은 독일의 편이 아닌 영국의 편. 앉아서 적의 공세 기다릴수록 적은 나날이 강해집니다.
기다리면 그 전역에서의 승리 조차도 불가능하기에, 적이 더 강해지기 전 승리를 위해 주사위 던진 것.
몰타 보급을 위한 피데스탈 호송선단 규모, 독-이 추축국은 지중해 전역에서도 전쟁 역량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45년 영 태평양 함대 task force 57 지원을 위한 보급선단 150만톤이, 이태리가 2차대전 동안 상실한 200만톤에 근접할 정도.
이미 터진 전쟁 상황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롬멜도 알게 되었지만 군인 신분으로 최선을 다해 임무 수행.
2차대전 전체 최종 승리는 불가능. 하지만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의 한시적 승리는 희박하지만 노려볼 수 있는 정도.
방어에만 주력하면 그 희박한 가능성 마저도 사라지는.
(롬멜은 일부 전역에서의 승리 내지는 북서유럽 상륙 저지등을 통해 서부연합국과의 협상을 통한 독일의 굴복성 휴전 정도 생각?)
(그런 생각을 한 롬멜이라면 전략적으로 독일 최상층부 보다 못하다고 보기도 힘들고.)
독일의 2차대전 대전략은 파탄. 야전지휘관 롬멜에게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국 책임을 전가해선 안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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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야전지휘관은 탁월했지만, 독일 최고 수뇌부의 판단력과 전략은 참사급
-----------------> 특히 병력, 자원, 생산력 등 고려 불충분 상태서 전쟁 돌입한 것,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서 패하는 근본 원인.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해외 전문가 주장이라도 스스로 판단하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노벨상-필즈상 수상자도 얼마든지 계산 실수나 논리를 벗어날 경우도 있기에 냉정하게 바라봐야.
DNA 이중나선으로 노벨상 수상했던 미국학자, 흑인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롬멜 신화를 깨부수는 것은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멋진 과업일 겁니다. 일단 폼나니까.
롬멜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계기 중에는 그런 도전 정신도 분명 포함. 공정하게 이성적으로 논리만으로 한다면 좋죠.
불행히도 유럽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 및 2차대전 독일 최고 지휘부 일부 등, 고의적 자료 취사선택 성격도.
롬멜의 취약점 최대한 부각하면서, 최전선 야전지휘관 아닌 국가 차원의 거대 삽질에 대해선 의도적 축소.
야전지휘관에게 국가 차원 전략적 오판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적당히 방어전만 했다면?
-----------> 그 경우 영국은 토부룩 잃지도 않았고, 엘알라마인까지 후퇴도 없었을 것.
---------------------> 그 경우 영국의 병력 손실도 훨씬 적었을 것이고, 영국의 보급과 물자 축적도 훨씬 증가했을 것.
--------------------------------------------> (어떤 분이 다른 댓글에서 주장했듯) 구릉지에서 안뛰쳐나가고 방어 ----------> 지켜지겠습니까?
-------------> 롬멜은 토부룩 점령 때 막대한 영국군 군수물자 연료 획득. 그것으로 엘알라메인 까지 진격.
------------------------------------> 롬멜의 고글, 영국군에게서 노획한 겁니다. 롬멜이 탄 맘모스 지휘 차량도 영국군 노획품.
---------------------> 롬멜이 방어전에 주력해 필요 없어진 보급물자가 독소전에 추가 투입된다고 독소전 승리하겠습니까?
... ... ...
------------------------> 저런 기초적 상황, 당시 독일 최고 지휘부나 독소전 투입 장성들이 몰랐겠습니까?
------------------------> 전후 유럽과 미국의 일부 군사전문가들이 저런 상황 몰라서 롬멜의 전략적 식견 부족 들고나오진 않았을 것.
-------------> 저런 조건들 알면서도 그랬다면 무슨 목적일까요? 독일 최고 참모부 및 독소전 투입 장성들 입장에선 자신들 면피 성격도.
-------------> 독일의 참전 전쟁 지휘부 아닌 유럽과 미국의 민간 학자들은 왜? 잘모르겠지만 튀어보려는 심리도 포함되었을 것, 분명히.
저렇게 뻔한 측면을 아주 대놓고 싸그리 뭉개댄 주장이라고 비판받을 때 제대로된 반론이 가능하겠습니까?
(롬멜전사록에 저런 부분이 언급됩니다.
가만히 앉아 방어에 치중하면 영국의 공세에 결국은 패배당한다.
따라서 영국군이 더 증강되기 전, 영국의 물량 우세가 더 압도적이 되기 전 수에즈를 점령해야만 한다.
--------------------------------------------------------------> 롬멜은 자신이 처한 악조건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승리하려고 몸부림쳤던 것.)
우리가 롬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부 명령에 순응했을 겁니다. 롬멜은 독자적 공세를 취했고,
영국군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밀어붙였고, 엘알라마인에서 최종 패배당하는 순간엔 사수 명령 거부하고 퇴각.
거기서 전멸하면 그 즉시 북아프리카 전선은 종결되기에 명령 거부하고 후퇴했던 것.
롬멜에게 돌던질만한 능력이나 자격을 갖춘 이 찾기 쉽지 않을 것.
탁월한 능력의 야전지휘관, 히틀러 경호대장 출신임에도 결국 헛된 꿈에서 깨어났고 히틀러에게 독살된. 그런 이에게 돌을 던져야 할지.
롬멜은 신화가 될만 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신화는 안타깝게 쓰러져간 경우가 더 비장하고 잘 어울립니다.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승자가 된 몽고메리-패튼-아이젠하워-맥아더... 등에게 신화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
롬멜에겐 독일 국가 차원의 대전략을 펼칠 기회 없었지만, 주어졌다면 더 합리적 이성적 대응을 했으리란 믿음은 생기는 군요.
야전지휘관에게 국가 차원의 전략적 식견 부족 비판은 어이없는 것.
그것도 호랑이 같은 야전지휘관에게 개같은 수준의 독일 국가 최고지도부 전략적 오판 책임을 전가하는 거라면 더더욱.
지중해-북아프리카 전역 : 야전지휘관 롬멜의 전략적 식견 부족 아닌. 독-이 추축국 역량 부족으로 패배당한 것.
1942년 8월 operation pedestal 최대 몰타 호송선단 : 상선14, 전함2, 항모5, 순양함7, 구축함32, 잠수함7등
ua-cam.com/video/0inR2jRW_P8/v-deo.html Operation Pedestal: The Convoy That Saved Malta
(2분25초 이후 지중해 진입할 때의 페데스탈 선단 배치 그래픽으로 나옴.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선단 배치 모습.)
ua-cam.com/video/11173sD3kgc/v-deo.html Battle Of The Convoys (1942) 실제 전투 영상
ua-cam.com/video/Xf3vzsT40aI/v-deo.html Malta Convoy Battle (1942) 실제 전투 영상
ua-cam.com/video/qjUmRzKZH-E/v-deo.html Malta Convoy - Further Pictures (1942) 실제 전투 영상
ua-cam.com/video/it3pOYM0JkA/v-deo.html HMS Nelson Hit in Convoy Attack 실제 전투 영상blog.daum.net/mybrokenwing/387 몰타를 살리기 위한 발악들(5) 국내 블로거 봉달이님 글.
롬멜이 보급만 충분했다면? ---------------------->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롬멜의 전략적 식견이 부족해 ... ...? ------------------------> 롬멜 아닌 독-이 국가 차원의 문제.
독일-이태리 추축국 보다 압도적으로 길었던 영국의 해상교통로 및 방어하기 훨씬 어려웠던 환경.
최단 직항로 지브롤타-몰타-알렉산드리아 약 3,500km. 전황 악화로 직항로 이용 못할 때는 아프리카 대륙 우회 수만km 지구 차원.
몰타의 위치는 시칠리에서 약 90마일, 북아프리카에서 약 160마일로 지중해 전역은 사실상 이태리의 내해 성격으로 호수와 다름 없는.
추축국 잠수함은 상시 매복, 해상과 공중에서 추축국의 공세로 몰타는 말라죽기 일보직전으로 몰리기도.
영국의 최단 직항로 3,500km도 선단 집결지 지브롤타 기준 거리입니다.
실제 보급 시작은 아무리 짧아도 영국 본토이며, 길면 대서양 건너 캐나다와 미국에서 출발한.
독일 이태리 추축국의 공격을 뚫고 보급을 성공시켰지만,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거의 모든 함정이 손상당했고 격침된 함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선9, 항모1, 순양함2, 구축함1.
격침된 항모는 장갑항모 이전의 함대항모 이글, 독 유보트에게 격침당했습니다. 장갑항모 인도미터블은 대파.
상선은 14척이 출발해서 몰타엔 겨우 5척만 도착했죠.
불행중 다행으로 당시 세계 최대 유조선이었던 오하이오는 겨우 도착.
오하이오는 원래 미국 유조선이었지만 영국해군이 임대해서 승무원은 모두 영국인.
거의 1만톤급 유조선 오하이오 역시 피해가 커 전승무원이 퇴함하기도 했으나 구축함3척이 양 옆과
앞에서 지탱하며 끌고 반쯤 가라앉은 상태로 몰타 입항. 몰타 도착후에 기름 거의 다 퍼낸 상태에서 결국 침몰했습니다.
4척의 일반 상선과 1척의 유조선 도착으로 보급받은 물자는 약 5만5천톤, 그 중 석유는 약 9000톤, 식량과 탄약 4만5천톤.
페데스탈 작전 피해가 너무 커 다시는 이런 작전을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5만5천톤의 보급은 몰타를 살려냈고, 역으로 살아난 몰타로 인해 롬멜의 보급이 끊기고 몇 달 후 엘알라메인.
동원된 전함중 1척은 어뢰에 피격되었지만 천운으로 별 타격 입지 않았고,
동원된 항모 5척은 장갑항모2척, 구형의 함대항모였던 이글과 퓨어리어스, 그리고 세계최초의 전갑판 항모 아거스.
아거스는 세계최로로 상부구조물이 제거된 전갑판 항모였지만 함대항모가 아닌 소형 호위항모.
퓨어리어스는 항대방공 임무가 아닌, 몰타에 항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영공군 스핏파이어를 탑재, 몰타 약 1000km 전방에서
항공기를 몰타로 출격시키고 지브롤터로 바로 귀환했습니다. 즉 장갑항모 2척이 몰타 인근 해상까지 함대방공 임무를 수행
하다, 몰타의 영공군이 엄호하기 시작한 직후 역시 잽싸게 지브롤타로 후퇴. 아거스는 대잠 항공작전 위주.
피데스탈 작전 이외 여러 호송작전에서도 영국함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그러나 영국 장갑항모는 여러번 직격탄에 피격되었어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일러스트리어스 경우 피격된 상태에서 몰타 입항, 항구에서 다시 공습에 노출되자 밤에 탈출해 미국까지 도피, 수리 때문에.
영국 본토도 폭격에서 자유롭지 않아 병신된 몸 이끌고 대서양을 건너가 수리받음. 인도미터블은 슈투카에게 대형 폭탄 2발
직격당하고도 꾸역 꾸역 후퇴했죠. 장갑갑판이 찢어졌지만 갑판 아래 핵심 선체는 손상당하지 않아서 탈출에 성공했죠.
미국과 일본의 나무갑판 항모였다면 지중해 진입하면 다시는 못빠져나갑니다.
타격당하는 순간 끝이나 다름 없습니다. 몰타 가는 중에 피격되면 살려면 지브롤타까지 도망가야 하죠.
문제는 적 공군이 계속 추격할 수 있는 추축국 점령지대가 튀니지 알제리등 지브롤타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것.
호송선단은 대략 3일 정도 항해합니다. 그 3일 밤낮으로 항공기, 잠수함, 수상함의 공격을 당했고, 심할 경우엔 한 번의 공습에
대략 300기 정도의 추축 공군기들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함대가 생존한 이유는 하늘엔 몰타의 영국 공군도 출격해서
추축국 공군도 대함공격만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몰타의 영공군 엄호가 없는 구간에서는 항모 함재기와 함대의 대공포
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미드웨이나 태평양에서의 항모전투는 몇 시간 이내에 일단 끝나고 휴식기를 가지게 되죠.
항모가 격침되거나 대파되면 전장에서 이탈되어서 쉬는 거고, 항모 피해 별로 없더라도 무장 떨어지면 보급 때문에 후퇴.
지중해의 호송선단 전투는 약 3일간 밤낮 없이 지속되고, 적 항공기들은 육상기지에서 재급유 재무장받고 다시 출격.
즉 공격하는 측의 공군기지는 격침될 위험이 없어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방어하는 함대의 항모는 격침되거나 대파될 위험.
태평양에서 항모 대 항모 전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항모와 공군력의 대결이었습니다.
항모 단독은 아니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몰타에서 출격한 영국공군의 호위 아래 영국 항모들이 생존했던 것.
미국 일본의 항모전단이 만일 그 당시 지중해에 진입했다면, 항모전단 자체 세력만으로 살아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무 갑판이라 피격되는 순간 이미 운명은 결정되는 겁니다. 적 공군과 잠수함이 끊임없이 추격 반드시 격침시킵니다.
태평양의 항공모함전 때는 잠수함들 활약 어렵죠. 잠수함이 항모 따라다닐 속도가 못되니. 잠수함을 전장에 항상 미리
배치 매복시킬 수도 없고. 하지만 지중해에선 잠수함들은 상시 매복 상태. 강력한 대잠세력을 가지지 못한 항모전단 자체
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태평양과 달리 대서양에선 독일 상대로 항모 대 항모 전투는 불필요,
북해에선 적 공군력 위협이 너무나 커 무르만스크 호송과 같은 임무 이외엔 항모가 진입도 꺼렸고,
지중해에선 몰타 보급 때문에 정말 목숨걸고 들어가 죽다 살아나왔습니다. 물론 영국공군 엄호 아래서 겨우 생존했죠.
그러한 지형적 작전 제한 조건 때문에
영국은 장갑갑판을 채택하면서, 함재기 탑재수를 희생했고,
여러 곳에 산재한 영국 공군기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전쟁 전 함재기 개발 필요성 덜 느겼던 것.
전쟁 터진 이후엔 독일 상대하기 바빠 2차대전 중엔 대부분 미 함재기 의존, 45년 종전 후에야 고성능 씨퓨리와 제트기.
지중해 북아프리카 전선 보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독일 이태리 추축국은 시칠리에서 북아프리카 겨우 수백km 해상교통로,
영국은 최단거리 직항로라고 해도 지브롤타-몰타-알렉산드리아 3,500km, 전황이 악화되어
지중해 직항로를 택할 수 없을 경우엔 대서양-희망봉-인도양-홍해-이집트로 아프리카 대륙 우회 수만km.
짧디 짧은 해상교통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보급이 말라버린 것, 그 자체로 추축국은 승리할 기본 자격이 없었던 것.
깨진다면 롬멜 신화 아닌, 패튼의 코브라 돌파 신화가 먼저 깨집니다.
ua-cam.com/video/34oR2D1GVU4/v-deo.html
BREAKOUT from NORMANDY: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패튼은 북아프리카에서 별다른 전과 없었고, 노르망디 코브라 돌파 순간에도 전투 지휘하진 못했고.
첨부한 동영상에 달린 댓글에 그런 점에 충격받은 이들의 대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코브라 돌파 시점 까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한 상세한 소개 영상인데, 제목은 패튼의 코브라 돌파지만
내용적으로 패튼은 거의 언급도 되지 않고, 패튼 아닌 브래들리 내용이 거의 다라, 혼란스러워하는 댓글들이죠.
44년 7.25일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작전 개시
44년 7.28일~7.31일, 독일군 방어선 붕괴 시작되고. 7.31일, 브래들리 미1군 보카쥬 벗어나 프랑스 내륙으로 돌입.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돌파 이후 신규 편성된 미3군을 패튼이 지휘 시작. 즉 패튼은 코브라 돌파와 아무런 상관 없는.
브래들리 미1군의 코브라 돌파, 영국군이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80% 및 거의 모든 타이거 전차 몸빵하며
고착 분쇄 공세를 펼칠 때 독일의 모든 예비 전력이 영국군 지역으로 투입되어 미군 담당 지역 독일 방어력이 매우 취약해져.
패튼은 할리웃 선전 최대 수혜자 성격이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미 기갑부대의 사실상 첫 데뷰전인 캐서린 협곡 전투에서 미군 거의 전멸당하자,
새로운 지휘관으로 패튼이 교체 투입 시점 43년 2월경. 43년 5월 튀니지에서 독-이 추축국 25만 항복까지 별다른 전과 없는.
시칠리에서도 미군은 별다른 전투 없이 팔레르모 입성,
거의 지프 타고 손들면서 팔레르모 입성. 에트나 화산 동부지역에서 격결한 전투하며 전진한 영국군과 달리.
공황장애로 의무대 있던 몸 멀쩡한 사병 뺨싸대기 날린 것 언론보도로 사과 및 문책되어 일선 지휘에서 배제. 3군 부임 전까지
노르망디 상륙일만 아니라 그 후 약 1달 후까지도 노르망디에 없었죠. 영국에서 가상 페이퍼 부대 지휘관으로 대기.
코브라 돌파되는 시점까지도 전투 지휘를 하지 못하고 재편성되는 되는 3군의 지휘관으로 돌파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패튼이 실질적으로 능력을 보인 것은 벌지 전투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할리웃 영화 패튼대전차군단, 패튼이 북아프리카, 시칠리, 노르망디 다 한 것 같은 착각 들 정도.
패튼은 사실 롬멜과 단 1번의 교전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웃 효과로 패튼이 롬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된.
롬멜은 패튼과는 다릅니다. 적당히 다른 것이 아니라 너무나.
롬멜은 패튼과 같은 여러 실체 없는 승리의 주인공 아닌. 국가 차원 지원에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했고.
제대로 지원해주지도 못했고, 지원할 능력도 안되었던 독일 최고 지휘부와 독소전 투입 일부 장성들은 롬멜이 독일의 대전략에
혼선을 가져와 전쟁 수행을 어렵게 했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롬멜 신화 깨부수기의 시발점임도 인정해야만 할 것.
롬멜 신화는 적인 영국군 장병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롬멜 신화 깨부수기는 롬멜의 조국 독일에서 싹이 텄습니다.
롬멜은 2차대전 파탄난 독일의 대전략 수립할 위치에 없없고, 야전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패했던 것.
부족한 보급을 기다린다고 온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적극적 공세로 토부룩 함락해 대량의 물자 탈취해 엘알라메인
까지 진격. 엘알라메인을 뚫고 수에즈까지 진격해 수에즈 이집트에 집적된 대규모 물자까지 확보하려 했던 것은 전략적 오판 아닌
주어진 결핍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
그런 롬멜에게 전략적 식견 부족 운운은 것 지나친.
독일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탄을 야전지휘관에게 묻는 것은 책임 전가이며 비합리적 태도.
코브라 돌파 영상 관련 댓글 일부 펌.
( John Emerson
3개월 전
Interesting. General Patton was never mentioned in this video.
22
Carl Welty
Carl Welty
2개월 전
Good point -
2
Todd Is god
Todd Is god
2개월 전
Because his command of the 3rd army had to wait until they were activated, which was immediately after Cobra
6
John Emerson
John Emerson
2개월 전
@Todd Is god Yeah,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and he isn't even there yet. Mis-titled I guess.
7
Jc Wheeler
Jc Wheeler
1개월 전
@John Emerson 997ot
Ronnie Bishop
Ronnie Bishop
21시간 전
He wasn’t involved with this operation it was Bradley all the way. Patton was in England. )
노르망디, 미군의 코브라 돌파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ua-cam.com/video/p-9w2J5s0xU/v-deo.html
코브라 돌파 직전 까지, 독일 기갑부대 80% 및 모든 타이거 전차는 까앵에서 영국군과 교전. 그 빈 틈으로 미군의 돌파.
까앵 최종 함락 단일 작전에서 영국군은 약 500대의 전차 손실. 당시 영국군 총 전차의 약 35%를 단일 작전에서 손실.
까앵 함락 때 독일군 전차 약 600대 및 독일의 모든 타이거 전차가 영국군에 붙들려 고착 분쇄되어 나감.
당시 미군 전면에 배치된 독일 전차는 약 150대, 타이거는 없었고.
노르망디 전역 종결 때 까지 교전국들의 최종 전차 손실.
영국 약 1200대. 독일 알보병을 주로 상대했던 미국 역시 약 1200대 손실. 독일은 약 1300대.
당시 미 지상군이 독일 주력을 담당했던 영국과 거의 동일한 전차 손실을 당했다는 것은 미군이 신병 수준이었기에.
독일이 당한 전차 손실은 전차 대 전차 전투 보다는 공중공격 및 함포사격에 의해 손상당한 후 후퇴할 때 유기 자폭 많음.
즉 전차 대 전차 전투에서 영국과 미국이 독일 전차와 겨루기는 힘들 정도의 압도적 성능 차이.
패튼의 미군은 유능했고, 영국군은 무능했던 것 아님.
영국군은 노르망디 전역 독일 주력 기갑부대를 몸빵으로 처절하게 공격하며 독일군을 제거한 것.
미국과 영국은 불행히도 45년 초가 되어서야 타이거와 대등하게 전투할만한 신형 전차를 전선에 투입.
하지만 너무 늦게 투입되어 교전할만한 독일 전차 기갑부대 자체가 소멸해 별 전과 없음.
------------------------------------------------------------------------------------------------
노르망디 전역 미군의 코브라 돌파에 대한 다큐 링크를 걸면 유튭에서 글이 삭제되곤 해서 간단 소개합니다.
노인이 된 브래들리 장군의 인터뷰 및 코브라 돌파 상세한 과정을 다룬 다큐인데, 그 유튭 영상엔 수 많은 영미권의
댓글들로 넘쳐났습니다. -------------------> 패튼이 코브라 돌파한 것 아닌 것에 놀라고, 패튼이 노르망디 상륙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놀라고, 그 영상 제목이 영어로 패튼의 코브라 돌파라는 어구도 포함되었는데 내용적으로 패튼은 나오지 않고 브래들리만 나왔기에
영상 제목을 바꿔야한다는 댓글들도 있더군요. 패튼대전차군단 할리웃 영화 영향력 때문인지 미국 일반인들도 패튼이 코브라 돌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
흔히 패튼이 지휘한 미3군이 코브라 돌파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패튼이 아닌 브래들리 휘하 미1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냈고 패튼은 그 이후에,
재편성된 신규 미3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된 겁니다. 브레들리의 코브라 돌파는 44년 7월 말 이루어진.
노르망디 상륙 당일만이 아니라 상륙 후 1달이 넘어서 까지 패튼은 영국 본토에서 대기.
코브라 돌파를 해낸 미1군 지휘관, 오마 브래들리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해 직접 서술한 내용. 맨 앞 첫 구절만 우리 말로 옮기면 --------------------------------->
(영국군은 독일군을 갈아버리기 위해 깡의 독일 기갑부대로 진입했다, 미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낼 수 있도록.)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압도적 전차 성능 차이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동안 영국군도 갈려나갔습니다. 소개된 뒷 부분을 옮기면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격 속도와 전진한 거리로 그 전투의 성공을 평가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즉 영국군의 돌파라는
자부심을 계산하지 않고 몽고메리는 최종 작전 계획에 서명했다... ... 영국군은 인내와 자제로 그들에게 부여된 수동적 역활을 견뎌냈다.)
-------------------------> 많은 이들은 인용한 원문 마지막 부분 주장과 같이, 군이 적진을 돌파하는
진격 속도와 전진 거리로만 성공과 능력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적 주력을 견제-고착- 섬멸 등을 해야, 그런 돌파가 가능한.
40년 프랑스를 항복시킨 전격전은 적 주력을 견제만 하는 뒤통수 때리는 돌파, 하지만 44년엔 견제만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던.
40년엔 장난감 수준의 전차로도 전격전이 가능했지만, 전쟁 말에는 그 어떤 중무장 전차도 쉽게 뚫을 수 없이 변해버린, 게다가 전차
성능에선 독일의 압도적 우세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갈려나가면서 적 주력을 고착-분쇄시켜야만 했던.
--------------------------> 노르망디 전역, 당시 미군은 독일군 주력을 상대할 역량이 없었기에,
영국군이 갈려나가면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별로 폼나지 않는 수동적 역활을 담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미군 지역의 독일군 방어력 약화를 이용해 미군이 돌파하도록 상륙 전에 이미 작전 계획을 세웠던 것.
----------------> 오마 브래들리가 얼마나 겸손하고 사려 깊은 지휘관인지 패튼의 알려진 언행과 비교해보길.
만일 패튼이 코브라 돌파를 지휘했고 성공시켰다면, 오마 브래들리와 같이 서술하기는 힘들었을 것. 모든 것이 위대한
미국과 탁월한 자신의 능력으로 독일군을 분쇄한 것이라고 했을 가능성 큰.
그렇다면 패튼은 왜 이렇게 과대 평가되고 널리 알려졌겠습니까? ----------------> 극한의 할리웃 영향력?
또한 벌지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결정적 지상전 승리이기에 패튼을 미국의 영웅으로 부각시킬 필요성도 있었을 것.
(콰이강의 다리)-(패튼 대전차군단) 두 영화는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지만, 영화 내용과 성격은 완전히 상반되죠.
성조기 나부끼고 번쩍이는 별 박힌 철모에 상아 손잡이 권총의 지휘관이 2차대전 독일군 괴멸시킨 것으로 선전하는 영화가
과연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만한 수준인지 지극 의심스럽지만 받았답니다. 어릴 때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역사를
좀 알게 된 이후에 그 영화 다시 보니 참... 자잘한 것 하나 더 추가한다면, 강릉에 잠수정 침투했을 때, 소탕전 나선 우리 군 일부
번쩍이는 계급장 때문에 저격당해 전사.
(오마 브래들리 서술 관련 펌.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While Collins was hoisting his VII Corps flag over Cherbourg, Montgomery was spending his reputation in a bitter siege against the old university city of Caen. For three weeks he had rammed his troops against those panzer divisions he had deliberately drawn towards that city as part of our Allied strategy of diversion in the Normandy Campaign. Although Caen contained an important road junction that Montgomery would eventually need, for the moment the capture of that city was only incidental to his mission. For Monty’s primary task was to attract German troops to the British front that we might more easily secure Cherbourg and get into position for the breakout.
In this diversionary mission Monty was more than successful, for the harder he hammered towards Caen, the more German troops he drew into that sector. Too many correspondents, however, had overrated the importance of Caen itself, and when Monty failed to take it, they blamed him for the delay. But had we attempted to exonerate Montgomery by explaining how successfully he had hoodwinked the German by diverting him toward Caen from the Cotentin, we would have also given our strategy away. We desperately wanted the German to believe this attack on Caen was the main Allied effort.
But while this diversion of Monty’s was brilliantly achieved, he never the less left himself open to criticism by over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his thrust toward Caen. Had he limited himself simply to the containment without making Caen a symbol of it, he would have been credited with success instead of being charged, as he was, with failure at Caen. For Monty’s success should have been measured in the panzer divisions the enemy rushed against him whilst Collins sped on toward Cherbourg. Instead, the Allied newspaper readers clammered for a place name called Caen which Monty had once promised but failed to win for them.
The containment mission that had been assigned Monty in the Overlord plan was not calculated to burnish British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ir troops. For in the minds of most people, success in battle is measured in the rate and length of advance. They found it difficult to realise that the more successful Monty was in stirring up German resistance, the less likely he was to advance. For another four weeks it fell to the British to pin down superior enemy forces in that sector while we maneuvered into position for the US breakout. With the Allied world crying for blitzkrieg the first week after we landed, the British endured their passive role with patience and forbearing.)
리더의 판단력 결정 리더쉽
엄청 중요~~
흐으....ㅠㅠㅠ 너무 재마있어요
태평양 전쟁 끝나고, 유고내전 한 후에 베트남전 자세히 다뤄주세요
이오지마 전투 하면 그 유명한 성조기 사진과 미군의 꽤 큰 손실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내부에선 이런 정치적 셈법도 있었군요..
킹 주장대로 대만을 점령 했다면 현재 미군 주둔지가 오키나와가 아니라 대만이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아깝네요
아니지.....홍콩이나 상하이 산둥반도???
미군이 대만에도 1979년까지 주둔했어요. 중국 공산당하고 외교관계 복원하면서 대만과 단교하고 미군도 철수시킨거임.
태풍 코브라는 일본입장에서는 진짜 가미카제였네요 전투보다 더 많은 손실을 미군에게 주었으니
정주행 오늘아침까지 다 했습니다 .혹시 필리핀전투나 헬쉽 이오지마에 대해 관련 책 있으면 알려주세요!!!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 같습니다
드디어 이오지마!!! 선 댓글 갑니다
이 프로그램 진행 하시는 분 5명이 2차대전 유럽 전선으로 120편 정도 만들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심호섭 교수님 보고 싶습니다 ㅜㅜㅜㅜㅡㅜ
다음은 독소전해주실거죠? ㅎㅎㅎㅎㅎ
태풍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핵무기 수만배를 상회한다 합니다. 물론 그 에너지가 국지적으로 집중하여 작용하지는 않지만 그 거대한 에너지를 고작 몇만톤의 배로 견딘다는건 엄청나게 무모한 일이겠지요.
영화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 전투 영화 추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함께. 클린튼 이스트우드 감독. 전쟁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명작. 감독으로서도 최고.
👍👍👍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나름 볼만합니다. 영상 보기 전에 단 댓글이라 언급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이죠 원래는 아버지의 깃발만 찍으려 했는데 외전 스타일로 만든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죠
아니 난 이런거 하는줄도 몰랐네.. 멤버들 너무좋은듯 ㅋㅋㅋㅋ 세환이형!!!!!
일본군이 워낙 삽질을 해대는 통에 일본군 수준을 좀 낮게 보고 방심한 것도 있을거같음
Who wouldn't?
그랬다면 펠릴루이서 일본군 방어체계가 바뀐 걸 보고 배웠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독소전 다루면 300부작도 턱없이 부족하다니까
높으신 분들이 이상한거에 꽂히면 아래 부하들은 죽어난다. ㅋㅋ
볼수록 느끼지만 저는 지휘관은 못 될 것 같네요. 죽을 후배들의 수를 계산하고 강재로 밀어넣는게 와 상상만해도 끔찍할 것 깉아요. 역시 전쟁은 없었으면 합니다 제발 제발
비극을 보고 재밌다하면 안되는데...재밌네요......영상 내용이.....공부도되고
전투는 결국 실수의 연속 이군요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 이었을텐데 ...
우리의 일상적 삶도 그렇더군요 ㅠ
참혹했네요 정말
오이오이 오래기다렸다구우 ~~@
제목은 이오지마인데 정작 이오지마전투에 대해서는 너무 간략하게 지나가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뭔가 더 있겠죠.
다음 영상에 너올듯
대사의 태평양 전쟁 이야기라는 블로그에는 정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국방비 이전하지 말고 그 비용으로 주2회 해주세요
다른회차보다 볼륨이 적어요 쫌 크게 올려주세요 ㅋ
태풍엔 침몰, 전투중엔 격침이 옳바른 표현 ㅋ
한국군도 내부알력이 있으니
대간첩작전을 총괄하는 합참의장은 육군이 맡더라도
장관은 공군과 해군이 번갈아 맡는 것이 좋겠다
지금은 육군에 과도한 힘이 쏠려있다
미해병대 이오지마 성조기 존바실론하사 람보의 조상님 ㅠㅠ
왜 일본은 본인들이 전쟁 피해국이라고 주장하는지,,,,,,너무 화나요
전쟁의 승패가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제 때 항복하지 않은 일본 지도부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원폭의 잔인함을 더 이야기하는 거죠. 국민들이 원폭의 피해만 알도록 만들어 다시 한 번 청일 전쟁의 승리를 반복하려고 자국민을 전쟁에 갈아넣으려는 일본 정치인들의 수작질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그리고 일본 국민들 중 소수만이 이 수작질을 알고 대다수는 아무 생각 없던가 국가가 알려주는 것만 앵무새처럼 따라 말한다는 것이 문제이죠.
18킬로의 그 긴 터널을 우리백성이 끌려가서 팟다는게 너무 억울하고 슬픕니다. 이럼에도 징용이 없다하고 일제와 한몸으로 미국과 싸웠다는 거짓을 떠벌리는 것들이랑 한나라에 산다는게 너무 화납니다.
25:49 충북에 진천이란 곳이 있죠. 아무래도 격전적인 의미가 강하다보니, 선수단 훈련소도 그쪽에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정도로 피해가 클줄 알았다면 이미 보급은 봉쇄했고 항공전력은 없앴으니 공격을 안했겠지. 사실상 패전.
밀리또리의 신~~샤르르 세환
2024, 6, 11, 15:57
잘 보고 있습니다
전략적 필요... 랑 더불어서... 정치적 타협... 이 들어간 선택이었었네;;
(수정)이오지마.... ㅠ ㅠ 존바실론 중사가 여기서 전사 하셨다죠?
이오지마, 이리오지마, 이러지마, 제발 안돼
이오지마... 참 멀다... 드디어 왔다 ㅋㅋ
4.19혁명이 태풍 사라의 피해로 악화된 여론의 배경도 있었다는 분석은 탁월하네요.
유황도 라는 그섬?
아 또 시간 삭제당함 ㅋㅋ 이 짜임새에 그냥 탈탈 털리네
야.. 이.. 오지마!
나… 까지마!
치..치지마 ㅜㅜ
(일본의 속마음을 섬들이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었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