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 18일 아직은 추웠던 날 논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수용 연대로 입대하던 날 달은 참으로 밝았다. 내무반 앞 동초를 서면서 부모님께 불효했던 일에 대해 눈물 흘리고 제대하고 나가면 효도 하겠노라 다짐을 했는데 그래도 반 쯤 그 약속을 지킨 것 같다. 효자인 척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근 입대해서 복무 중인 모든 장병들에게 제대하는 그날 까지 건강하세요
같은 해에 입대하셨네요. 저는 4학년때 조금 늦은 나이로 해병대 입대했습니다. 4월10일. 어머니께는 해경 간다 거짓말 하고 옷 보따리는 해병대서 오니, 우리 어머니 27달 동안 밤에 개 짖는 소리만 나도 제가 탈영한 줄 걱정하셨다 합니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지 벌써 두해가 지났는데, 이제는 어머니 계신 곳 생각 날 때마다 가서 혼자 어머니와 얘기 나누다 옵니다. 입대 년도가 같아 작은 동질감에 글을 남깁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3학년2학기 등록, 휴학계 제출하고 귀향...가까운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열차 타고 논산훈련소에 입영하던 날... 그로부터 34개월13일후 전역신고를 마치고 후배장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부대를 떠나 귀향길에 오르던 날이 떠오른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병역의무를 마쳤다는 뿌듯함...
75년 10월8일 어두움이 채가시지않은 서울 왕십리역에서 출발하는 입영열차를 타는날 두려움과 불안속에 영영 돌아올수 없는듯한 분위기속에서 아들은 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면서 떠났던 생각이 그후 33년이 넘게 군생활을 하면서 지금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건강하게 지내는 자신을 대견해 하면서 추억을 기억합니다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부르며 입영전야를 보냈었는데.... 이 노래도 좋으네. 전인권의 독특하면서도 위태로우면서도 감칠맛 나는 음색이 새롭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참 애처롭다. 입영전야 못들어본지 참 오래구나. 30개월 군생활이 나름 참 의미 있었다. 참 의미있었다. 내 아들도 투덜거리며 다녀왔지만 대한남아라면 꼭 갔다 와야지.
일시 멈춤의 시간... 성인으로의 삶이 시작 되는 젊은날의 초입에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입영. 푸른 제복의 공간으로, 단절의 시간으로 들어서야 했던 30여년전 나의 입영은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리 대한 일이 아니다가도, 따져 놓고 보면 이제까지의 삶에서 그런 단절을 맛볼 일이 또 있었던가 싶다. 그래서 였을까? 이별을 이유로, 푸른 제복이 주는 두려움으로 친구들과 마신술이 얼마였던가. 지금은 핸드폰으로 일과 후면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여인과 연결이 가능하지만, 30여년전의 젊은 병사들에겐 어쩌다 한번 날라오는 편지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애인이 있었던 병사들은 참 많이도 러브레터를 썼던 것 같다. 평생 쓸 편지를 그 때 다 쓴 것 같다. 편지를 보내고 받는데 걸리는 기다림의 시간...지금의 젊음에게도 그리움의 시간은 있겠지만, 기다림이 주는 애틋함과 설레임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등병의 편지"는 지금의 중장년의 남자들에게 더욱 다가오는 노래인 듯 싶다.
86년 겨례의 노래라는 LP에서 전인권과 가야(?)라는 이름으로 이 노래 LP가 망가지도록 들었었고, 87년 군입대해서 논산신병훈련소에서 엄청 혼자 불렀던 기억. 나중에 김광석버전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은데 난 전인권버전이 가장 심금을 울린다는... 지금 라이브곡보다 겨례의 노래에 실린 스튜디오 버전을 강추합니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 노래를 처음 접했었습니다. 겨레의 노래 라는 테입에 있던 곡이었는데 노래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전인권 씨의 창법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테입이 늘어질 까지 들었었습니다. 30여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가사를 기억할 정도니... ㅎㅎ
군대...이 단어를 떠올리면 언제나 만감이 교차합니다. 슬픔,고난,극복,희망,보람 등등 대학2학년을 마치고 다른 동기들처럼 입영희망원을 내고 의정부306보충대로 갔고 , 706특공연대로 배치되었을 때의 아찔함도 잠시 군대 다 똑같다는 생각으로 아무생각없이 2년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고 땀과 눈물도 흘렸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들만 남는것 같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아련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는 아비의 마음입니다. 자랑스런 아들들아 열심히 잘하고 나와라....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내가 군대가던 날, 1984.02.15. 어찌 잊을 수 있나. 그때는 이 노래가 없었고, 주로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불렀다. 군대가기 전 여러날 동안 돌아가면서 환송식을 하면서 술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작은 아들이 동원예비군을 마쳤으니 나도 이제는 늙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군대가는 모든 젊은이들이여 부디 몸성히 돌아오기를.
김광석.... 감성이 풍부한 경영학도 출신 음악가... 재미있는 것은 본인은 1985년에 6개월 단기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는 것 (1985년 1월 입영)..... 당시 30개월이상 군복무하던 시절에 6개월 방위병 복무는 특혜 중의 특혜..... 물론 친형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중 사망하여 그랬던 것이라지만... 김광석의 그러한 군생활 배경이 이런 명곡을 작성하게 했다는 것이 대단..... 아니면, 형의 입장에 서서 작곡했을지도 모르겠다........
1974년 4월3일 집앞 골목 언저리에서 다녀 올께요 하고 엄마는 엄마갈곳으로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각자헤어질때 말못할순간 혼자 버스타고 논산가서 보충대 가는 버스 갈아타고 보충대 앞 여관에서 하룻밤자고 아침먹고 보충대 위병소에 가서 입대하려 왔는데요그냥 들어가래서 수용연대 23일 군대생활도 아닌 시간 허비하고 시작된 군대생활 지금도 생생하네
포레 미안 그래도 그시절 열차소리 들으며 세벽초소에서 달을 봐야 보며 긴장했던 기억이 전인권의 가슴 저리는 음색이
그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게 하네요 . . . .
이런 곡은 포레는 안되는구나.
포레스텔라보배님들~반짝반짝 고급지다
전인권님 감성 저린다
두아들 군대 갈때 생각나서
가슴 아프고 눈물난다
포래스텔라 와 같은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게 행복 합니다.
1975년 2월 18일 아직은 추웠던 날 논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수용 연대로 입대하던 날 달은 참으로 밝았다.
내무반 앞 동초를 서면서 부모님께 불효했던 일에 대해 눈물 흘리고 제대하고 나가면 효도 하겠노라 다짐을 했는데 그래도 반 쯤 그 약속을 지킨 것 같다. 효자인 척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근 입대해서 복무 중인 모든 장병들에게 제대하는 그날 까지 건강하세요
시 한 구절을 읽어 보는것 같습니다.
밭에서 눈물흘리시던 어머님이 생각 나네요. 벌써 내 나이 50 가버린 청춘이 오래된 필름 처럼 흘러갑니다.
혹시 보실까요?
88년 다리 다친 아들 군대 끌려갈때 비탈길 허우적 거리시며 뛰다 울다 배웅인지 이별인지...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
눈물만 일없이 흘립니다.
지난 주는 입대 34주년이었는데... 그 때 같이 들어갔던 동기들 뭐하나 모르겠네.. 이젠 군에 간 아들 잘 복무하길 기원하는 나이가 되었네...
읽는 오늘 저도 37주년입니다. 87년 그 암흑기를 뒤로 하고 …. 자대 배치 받았을때는 철원의 색이 갈색으로 변해 있을 무렵 … 그렇게 참았습니다.
40년전 이맘때 자대생활 중이엇습니다.. 그 당시 잔우들 지금도 만납니다.. 대대장 중대장 사병 .. 이렇게요..
막내아들 군대본핸후 노래방에서 불러봤는데 가슴이 울컥 노래를 못불르겠드라요.ㅎㅎㅎ
@@길문-z1y 80년대 이전에는 조영남“점이” 최백호 “ 입영전야” 친구들 떠나 보낼때 많이 불렀었지요.
@@whkim4422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셨군요 부럽습니다
이노래를 들으니 85년 입대해서 신교대 훈련 마치고 바로 금강산이 보이는 철책에 따블백 메고 눈 맞으며 올라가던 때가 엊그제 같네요.
같은 해에 입대하셨네요. 저는 4학년때 조금 늦은 나이로 해병대 입대했습니다.
4월10일. 어머니께는 해경 간다 거짓말 하고 옷 보따리는 해병대서 오니,
우리 어머니 27달 동안 밤에 개 짖는 소리만 나도 제가 탈영한 줄 걱정하셨다 합니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지 벌써 두해가 지났는데, 이제는 어머니 계신 곳 생각 날 때마다 가서 혼자 어머니와 얘기 나누다 옵니다. 입대 년도가 같아 작은 동질감에 글을 남깁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인사하고 혼자춘천102보충대에 입소하여3일간 대기하다가 하염없이 소양강을 배타고가서 양구에 2사단 훈련소에 입소하던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40여년이지났네요
이노래를들으며 추억에잠기어봅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2사단 신교대 출신
양구 동면 3군단 포병여단에서 근무했었네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진교정-o7o 반갑습니다
고생하셧네요
소양강.
산과 하늘만 보이고
하염없이 구비도는 물길따라 떠가는 군용선에 앉아 아득하기만 하던 50여전의 먹먹함이 되새겨집니다
낯설고 이름마져 생소했던 그 양구
청춘의 한 마디를 고이 묻고 온 고장
아련하고 귀한 추억이고 이름입니다
남면 구암리~~~32연대
@@밀까리-i4c 32연대 2대대8중대
방금 전 군에 가있는 아들과 통화했는데 목소리가 힘이 없네요...ㅠ 힘내라~아들
젊은날 한시절 국방의 의무를 다했던,그리고 지금 열일하는 우리 군인들 힘내십시오~~자랑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포레는 박자 음정이 정확하지만 전인권은 가슴을 저미네 군 입대를 앞둔 남자라면 어떤 감정인지 분명하게 눈 시울 맺게합니다
3학년2학기 등록, 휴학계 제출하고 귀향...가까운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열차 타고 논산훈련소에 입영하던 날...
그로부터 34개월13일후 전역신고를 마치고 후배장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부대를 떠나 귀향길에 오르던 날이 떠오른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병역의무를 마쳤다는 뿌듯함...
60 개월 의무 복무한 사람은 나!!!
포레스텔라 노래가 아련하게 남아서 자꾸 또 듣게된다. 도대체 몇번째 듣는지, 모르겠다.
포레스텔라 노래는 아름답고 멋지지만 전인권의 목소리와 감성이 이노래에 더 어울리고 내기슴에 파고듭니다.
75년 10월8일 어두움이 채가시지않은 서울 왕십리역에서 출발하는 입영열차를 타는날
두려움과 불안속에 영영 돌아올수 없는듯한 분위기속에서
아들은 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면서 떠났던 생각이
그후 33년이 넘게 군생활을 하면서 지금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건강하게 지내는 자신을 대견해 하면서 추억을 기억합니다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부르며 입영전야를 보냈었는데.... 이 노래도 좋으네.
전인권의 독특하면서도 위태로우면서도 감칠맛 나는 음색이 새롭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참 애처롭다.
입영전야 못들어본지 참 오래구나. 30개월 군생활이 나름 참 의미 있었다. 참 의미있었다.
내 아들도 투덜거리며 다녀왔지만 대한남아라면 꼭 갔다 와야지.
포레스텔라를 심하게 좋아하지만 이노래만큼은 전인권씨가 판전승! 주관적 생각~~^^
이제 50 넘었지만,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는.. 다시 나를 입대시키는 기분..
뭐라 표현해야할지.. 표현할필요없이 그냥 느끼면되는거겠지.. 👍👍👍👍👍
전인권은 절규로 끊맺었지만
암흘 터널로 들어가는 듯한
숱한 청춘영혼들의울부짖음으로
끝없이 귓속을 맴돈다
역시 거친듯하면서 가슴속에 회한을 토하는듯 짠~한감동 전인권노래는 그런매력이 참좋아요
포레는 세련되고 고급진 느낌, 들국화는 거칠지만 가슴 울컥한 진정성
같은 느낌을 받았네요. 가슴을 후벼내는 전인권의 노래...
노래가 너무 고급스럽고 화음이 천상의 소리다
분단된 나라의 남아로의 회한이 깊게 표현된 인권이형의 음색이 늘 맘을 후비죠.
복무중인 모든 아들들을 위해 위로를 보냅니다.
일시 멈춤의 시간... 성인으로의 삶이 시작 되는 젊은날의 초입에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입영. 푸른 제복의 공간으로, 단절의 시간으로 들어서야 했던 30여년전 나의 입영은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리 대한 일이 아니다가도, 따져 놓고 보면 이제까지의 삶에서 그런 단절을 맛볼 일이 또 있었던가 싶다. 그래서 였을까? 이별을 이유로, 푸른 제복이 주는 두려움으로 친구들과 마신술이 얼마였던가. 지금은 핸드폰으로 일과 후면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여인과 연결이 가능하지만, 30여년전의 젊은 병사들에겐 어쩌다 한번 날라오는 편지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애인이 있었던 병사들은 참 많이도 러브레터를 썼던 것 같다. 평생 쓸 편지를 그 때 다 쓴 것 같다. 편지를 보내고 받는데 걸리는 기다림의 시간...지금의 젊음에게도 그리움의 시간은 있겠지만, 기다림이 주는 애틋함과 설레임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등병의 편지"는 지금의 중장년의 남자들에게 더욱 다가오는 노래인 듯 싶다.
옛날 군대입대는 정말 슬프고 젊음을 빼앗기는 아픔과 처절한 것이었으니... 스마트 폰은 커녕 전화통화도 불가능한 시절의 감성을 표현한 전인권의 절규하는 버젼이 가슴을 흔든다...
seo님 수고 하셨습니다.. 😅
저는 알몸으로 쓰레빠로도 맞았어요
평생잊지못하죠
인권이란게 없엇죠
82년12월 11일 논산입대했네요@@seogheuikim0007
ㅋㅋ.전인분도 먹었는데 2:45 2:46
전인권보이스 역시 최강! 최고!!
58년 개띠 입니다.
인생을 다시 돌린다면
군대시절 상병쯤으로 돌아가면 멋진인생 살것 같습니다.ㅠ.
이등병으로
상병쯤으로가 키포인트네요 ㅋㅋㅋㅋ
상병 ㅋㅋ
상병이 군생활의
최고 전성기 이지요 식기 당번
군기반장 병장 달면 서서히 사회인의 초입으로 들어 갈려고 노력 하지요 마치 벤데기가 허물을벗고
매미가 되듯이.
나하나가 아닌 우리 모두를 생각하게하는 군입대! 난 여전히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라고 입으로 말하지만 가슴은 항상 우리나라 우리민족에 뜨겁게 달아오른다
20 대 용산역에서 논산행 열차에 올라타기전까지 용산역 광장에서, 부모님께 인사하고 친구들하고 선배들과 악수하던 기억.. 한강교 지나가면서 차창밖으로 보이던 한강과 여의도 모습을 뒤로하며, 열차안에서 기관병들과 헌병들의 모습에 잔뜩 긴장하며 떠났던 그시절..
오늘도 그곳에서 우직하게 서서 이밤을 지새우는 우리의 대한의 아들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전인권 자체가 장르입니다!
포레스텔라와 정말 같은 하늘아래 살고있다는것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런 그룹 알게되어 세상이 아름다워요~ 포레 포에버~
86년 겨례의 노래라는 LP에서 전인권과 가야(?)라는 이름으로 이 노래 LP가 망가지도록 들었었고, 87년 군입대해서 논산신병훈련소에서 엄청 혼자 불렀던 기억. 나중에 김광석버전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은데 난 전인권버전이 가장 심금을 울린다는... 지금 라이브곡보다 겨례의 노래에 실린 스튜디오 버전을 강추합니다.
삼십년전 스무살때 테이프로 듣고 눈물 흘렸는데..
이걸 이렇게 듣다니 ㅠㅠ
고맙네요.
포레스텔라도 좋고 전인권도 좋고 다 좋지만,
전인권씨 목소리와 창법엔 가슴을 훅 당기는 뭔가 묘한 매력이 있어요.
옛날에 락페에서 들국화 공연봤는데 전율이라고 표현해야하나? 전인권 목소리 듣자마자 털이 다 솟았음... 라이브로 들으면 진짜.... 노래듣고 그런기분 처음 느껴봄
역시 최고의 버전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꾸미지 않고 담백한 목소리에 쓸쓸함이 배어 있는 김광석의 것을 들어야 겠다
두그룹 모두 멋져요.
포레스텔라는 국가대표급을 넘어
세계적인 그룹입니다
이분들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길 바랍니다💕
표현이 너무 국가주의 시절 같다...
국가대표 다 얼어죽었다 주위나 지금까지본것중 인물이나 세계적기량을가진자가 그리없는 멍청이였냐 세상넓다 하나에혹해서 우를 범하며 사는 인생이되지말길
난 전인권이 국대같은대
이 노랜 전인권이다
스무살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 모를때 입영했다. 논산훈련소,,고속버스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버스 뒷창..손 흔들며 눈물짓는 어머니 모습이 아련하다. 60개월 꽉 채운 군생활이 내 청춘을 빛나게 장식했다.
고생하셨어요.고맙습니다
전인권 음성은 가슴이 저리고 머리속이 간질간질하다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 👍👍👍👍
누가 불러도 아름답고 슬픈 노래다.
하~~아~~하~~~~!! 쓸쓸함 막연함 먹먹함 그래 그랬었지 ᆢ 울아들들 사랑합니다 금방갈거야 힘들내자~~ 대단한 명인들의 위로와 고요한전설로 남아있을 멜로디 ᆢ
인권이형 노래는 늘 영감을 준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 노래를 처음 접했었습니다.
겨레의 노래 라는 테입에 있던 곡이었는데 노래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전인권 씨의 창법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테입이 늘어질 까지 들었었습니다.
30여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가사를 기억할 정도니... ㅎㅎ
이노래는 50대이상만 알수있는 감성이 있다.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는 그런 감성.
가수들의 특징이 있으니 다 좋다~!!!
훈련소로 떠나는 이들의
막연함과 불안함, 애절함이 느껴진다~!!!
항상 어린 남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무척 더 든다~!!!
넘 넘 넘 포레스텔라 좋은데......전인권은 독보적이네요.
멋지게 부르시네요.
전인권은 멋지지도 않은데 가슴을 두들겨요......
전인권의 노래는 현실의 이등병이 떠오르고 포레스텔라의 노래는 상상속의 이등병이 떠오른다 전인권의 감성이 보다 현실적인 경험이 보이는 듯하다
군대...이 단어를 떠올리면 언제나 만감이 교차합니다. 슬픔,고난,극복,희망,보람 등등
대학2학년을 마치고 다른 동기들처럼 입영희망원을 내고 의정부306보충대로 갔고 , 706특공연대로 배치되었을 때의 아찔함도 잠시 군대 다 똑같다는 생각으로 아무생각없이 2년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고 땀과 눈물도 흘렸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들만 남는것 같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아련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는 아비의 마음입니다. 자랑스런 아들들아 열심히 잘하고 나와라....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반갑습니다.
저도 의정부 306보충대로 입대해서 26사 신교대를통해 706에서 복무했습니다...
구두닦이 하다 18세 되자마자 해병대 로 지원해서 갔는데..
이런 애잔함과 이별도 내게는 그저 남 이야기 일뿐 난 그저 밥먹을수있고 잠자리걱정 은 이제 안해도 되는구나 하는 그저 돼지처럼 살았던 시절 이었는데
30년전 집이 농촌이라 아버님 오토바이로 버스정류장 데려주시던날 친구들과 버스에 오르는데 뒤로보이는 아버님 눈물흘리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던게 생각나네요
형님이 두분이나 계서서 늦둥이로 태어 나긴 했지만 농사일에 찌든 아버님은 특별한 애정표현이런거는 없이 저희들을 키우셨죠
형님들 군대갈때도 그냥 다녀오라 하셨던 분이신데
막둥이 군대가는날 눈물보이시니 제가 많이 놀랐네요
지금은 90을 바라보고 계시지만
아직 건강하신 모습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입대 할때 들으면 슬픈노래 분위기 있고 제대하고 나이 먹어서 친구들과 술마실때 들으면 탁한 목소리가 넘,좋죠 !
까슬까슬한 전인권님 보이스 매력 있네요
소양강 배타고 노도부대 갔던 기억이...그리운 기억의 2사단이 해체되었다는게..믿기지 않네요
언제 들어도 그때 그느낌 그대로
전인권 특유의 쇳소리가 왜 가슴을 후벼파는지...
노래가 단지 기술이 아니란걸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우리때는.최백호씨에. 입영전야 이였는데. 친구놈. 군대가기전날. 카페에서 부탁해서 2번 연속으로들으면서. 우정을다졌는데. 이제는 나이가 60이넘었는데도.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맞아요 최백호의 입영전야였죠
1978년 3월 논산 훈련소로 가던 날
비바람, 논보라에 철모를 스치던
살을 애는 바람소리...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춘들...
전우들과 뛰고 쏘며, 달 밝은 밤에
어머니를 그리며 보초를 서던
아득하기만 한 군대 생활, 전우들이여
청춘은 어디가고 이렇게 늙어가고
있나
전인권님의 목소리는
이등병이 아니고
제대 앞둔 원사님 톤인듯
같은 군번
인권이 형은 멋지다~~~
얼룩무늬 젊은 시절.. 훈련소에서 삐뚤삐뚤 걱정 한가득 적힌 어머니 편지 받고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 그 시절..안타까웠던 그 젊음은 이젠 추억으로만 남았네..
겨레의노래 1집에 수록된 전인권의 노래를 듣는다면 ᆢ 이곡의 베스트라 할거에요. 87년 LP로 수없이 듣던노래
겨레의 노래 1집은 1990년 이후데 87년이라니요. 쫌 앞서간 듯
자대 배치받고 신고하고 바짝 알어서 뭐한지도 기억안나게 하루를 보내고 내무반 침상에 누워서
앞날을 생각하며 몰래 한숨짓던때가 생각나내요
82년에 입소하여 어찌나 뺑뺑이 돌리던지 3일을 화장실 못간경험 요즘 식욕이 떨어질때 그때먹은 맛있는 짬밥과 피엑스에서 사먹은 얼어붙은 닭고기 생각난다.그걸 먹고도 좋아했으니...벌써 70줄에 들어셨는데 또 생각나네. 그리운 중대 한명은 꼭 있는 고문관들.ㅎㅎ
저는 8일만에 첫 배변...
40년이 넘었네요!
@@배귀재-k9g 저도 그 정도 시간이 경과 되었는데, 3인 1조로 화장실을 갔는데,
변비로 1시간 이상은 쭈그려 앉아 저린 다리와 통증에 고생한 기억이 생생 합니다. ^^
저도 82년 입대.85년 제대했습니다~70줄이시라니 꽤 늦은 나이에 입대하신 모양이군요
82년 해병 진해 훈련소 입소 같은 시기네요
84년 대학 교련으로 조금 전역 40년 금방 가네요
거칠고 애절하고 그래서 추억이 생각나고 눈물나는 인권이형님의 노래는 그냥 삶 그 자체이다
역시 전인권^^
역시 전인권..
논산훈련소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들 평생 기억에 남을듯합니다.
하루가 일년같던 지옥같은 신병때 2년반을 어떻게 버티나 했었는데 벌써 몇십년이 지났네요.
둘다 좋아요. ❤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듣고 있느니 갑자기 눈물이 울컥하네. 1990년 입대하여 과연 93년도가 올까 했는데 어느듯 30년이 흘렀네. 부대에서 의정부 가는 기차를 보며 저 기차를 타면 고향에 갈수 있겠지 하던 생각....
3년 선배님 같은 마음었습니다. 전93입대ㅠㅠ
92년 한여름 입영해서 정말 힘들었는데
어느듯 50 중반이 되었네요.
20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평생을 살았다니...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보초설 때 산너머의 마을 불빛과 10시를 알리는 나팔소리…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군대가던 날, 1984.02.15. 어찌 잊을 수 있나.
그때는 이 노래가 없었고, 주로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불렀다. 군대가기 전 여러날 동안 돌아가면서 환송식을 하면서 술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작은 아들이 동원예비군을 마쳤으니 나도 이제는 늙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군대가는 모든 젊은이들이여 부디 몸성히 돌아오기를.
군대 나의 인생 전환점
사랑 헤어짐 깊어가는 가을 속에 깊어지는 인생의 시간
그리움만 남아 그때 그시절 사랑과 우정이 그립다
김광석.... 감성이 풍부한 경영학도 출신 음악가... 재미있는 것은 본인은 1985년에 6개월 단기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는 것 (1985년 1월 입영)..... 당시 30개월이상 군복무하던 시절에 6개월 방위병 복무는 특혜 중의 특혜..... 물론 친형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중 사망하여 그랬던 것이라지만... 김광석의 그러한 군생활 배경이 이런 명곡을 작성하게 했다는 것이 대단..... 아니면, 형의 입장에 서서 작곡했을지도 모르겠다........
86년 2월 만기 제대.
아름답고 고운 나의,
그리고 우리들의 청춘들이여.
60 개월 의무 복무 친구들이랑 같이 입대하고 혼자 면회 한 번 없이 제대했네 ........
아~~~ 1980년 11월 얼어붙은 철원을 만났다. 금학산 찬바람은 8월에도 차갑다. 그래도 그 때가 그립구나~~~ 청성 동기들아 잘지네라~~~
인권이 형.....소주 마시게 만드네
둘다 좋지만.. 전 전인권님의 노래가 더 좋네요
뭔지 모를 진정성과 후벼파는 목소리와 창법이죠... 걈성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네요. 인권 형님..
군생활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의미없다 생각하는 젊은 층들 좀 더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
전인권에 한표
#Forestella👍👍👍💐💚👈
남한, 북한할것 없이 군대갈때 한번씩 부른다는 전설의 곡
포레스텔라는 세계적 코러스 지만, 이 노래는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
군대 다녀와 본 사람은 당연히 전인권 스타일이 가슴을 울리지...
역시 김광석이 최고다
1974년 4월3일 집앞 골목 언저리에서 다녀 올께요 하고
엄마는 엄마갈곳으로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각자헤어질때 말못할순간
혼자 버스타고 논산가서 보충대 가는 버스 갈아타고 보충대 앞 여관에서 하룻밤자고 아침먹고 보충대 위병소에 가서
입대하려 왔는데요그냥 들어가래서
수용연대 23일 군대생활도 아닌 시간 허비하고 시작된 군대생활 지금도 생생하네
포레스텔라는 Midas의 touch를 가졌다. 어느 외국인 말한 것처럼 그들이 노래를 만지면 모든 곡이
masterpiece 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자랑!!!
인권이형이 단연 짱이지... 느낌이 있잖아... 목소리에 입대자의 아우라가 느껴지잖아.... 포레스텔라는 개인적으로 너무 상업적인 느낌이 생긴다.
전인권!!
벌써 40년인가 훈련소 나팔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네
동기생들이여 건강들 하이소
아들 보고싶네
군생활이 얼마나 변했는지 노래를 통해 알수있다.
638fa-c 30개월
내인생의 전환점 이었다
벌써 33년전에 전역했지만
아직도 그곳의 생활이 선명하게
내기억 한쪽을 채우고 있네
포레 음색 미쳤다.와...
김민기님의 친구. 최백호의입영전야가 우리세대 입영 노래였지,,,, 그 시절 입영전 지리산 종주하면 군생활 견디는데 도움 된다고 씰데없는짓 많이 했는데,,,
전인권 승 !!! .. 포레스텔라 는 소끌려 가는 느낌 ... 전인권 ... 그냥 찹찹한 .. 그리고 덤덤함 .... 그냥 무지무지 싫치만 어쩔수 없이 가는것을 받아 들이는 ..
그렇네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며칠있다 군에 지원입대 했는데 벌써 제대38년 되었네요 군에 있을때는 그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더니 제대후 뒤 돌아보니 60십이 넘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것 같아요
102보충대에서 버스타고 7사단 신교대로 가던 길, 동기들과 낮선 환경과, 바위와 구조물에 총탄 자국을 보고 공포심과 긴장감에 잔뜩 움추렸던 37년전 소심한 청춘이 생각 납니다. 돌아 가고 싶다.-
아저씨 노래는 최소 (참전 용사)이등병의 편지임...ㅠㅠ 우리 포레도 잘 해~~~
전인권은 수학적 분석에서는 노래 잘 부르는건 아니지만 듣고 있으면 가슴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