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멀리서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들으십시요. 1. 강제징용이란 말은 역전앞처럼 2중 표현 된 말이고. 2. 징용은 1944년 9월~1945년 3~4월까지(이후는 미군이 제해권 장악)시행 되었으며 약 15만이 조선인 노무자가 이에 해담됨. 전체 75만으로 약 60 만은 지원,소개로 간ㅡ돈벌러 간ㅡ노무자였습니다. 임금은 다 지불되었습니다.ㅡ적정 임금이냐는 별개문제. 일부 못 받은 경우가 있는데 해방전 1개월 치,미성년으로 가서 조선인 브로커에게 속아서 못 받은 경우가 있음 출처ㅡ이우연 박사 논문. 3. 보르네오는 1922년부터 일본군이 점령한걸로 봐서 지원한 노무자로 판단 됨. 근거는 종전이 되었는데도 다수가 귀국을 안 하고 현지에서 결혼 가정생활 한 경우가 여럿 있슴. 4. 동 티모르에도 조선인 후예들이 있슴. 그들이 안 돌아온 건가 못 돌아 온건가 하는 문제가 있슴. 결론 보르네오에 갔던 '조선인 노무자들이 강제로 끌려가서 죽도록 착취당했다'식의 섣부른 예단은 진실을 아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됨. 그냥 단순히 외국에ㅡ70,80년대에 중동에도 많이 갔음ㅡ나 간 노무자가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보는 게 맞음.
조명섭 가수님대단해요사랑해요
노랫말을 따라 역사적인 현장으로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우리가 아끼는 보배가수 조명섭의 노래 따라 돌아보는 민족의 과거사가 눈물 겹습니다.
이 모든 것을 노래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천재적인 조명섭 가수!
사랑합니다.
너무나 멋지고 그 깊은 울림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조명섭가수는 노래에 의미를담고 부르는것같습니다
참 우러러볼수록 예쁜 가수입니다 그래서 더 사랑하는 모릅니다
징용도 정신대도
남의 애기로만 알고 살았던 제가 미안해집니다~~ㅠㅠ
눈물나는 영상이 더해지니
가요무대에서 웃음기 싹 빼고 숙연한 표정으로 노래부르던 울 가수님
이해가 갑니다
그미님 덕분에 제가 애국자가 되어갑니다~~ㅎㅎ
고맙습니데이^^
볼때마다 감동감동
그저 노래가좋아
그의 음성이 좋아
쫒아 왔는데
울컥 합니다
그미님 감사합니다 ♡
내일이면 만나겠지
돌아가는 배
노래 들을때마다 울컥했는데
결국 울고마네요
역사 시간에도 귓등으로 듣고
깊이 생각도 안했는데
그래서 더 미안하네요
감사해요
오늘도 감동입니다
노래 담백하게 글구 청아하게 잘 부른다
조명섭 호ᆢ이팅
우리네 슬픈 역사
명섭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들으면서
영상을 보니
가슴이 멍먹해집니다
사진과 노래가 같이 나오니 넘 가슴이 아립니다 ㅠㅠ
얼마나 가고싶었을까요..그리운 고향에ㅠ
G티미 영상감사합니다 어릴적에 저의아버지 빛바랜 사진 속 한장면👍👍👍💖💖💖
화면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니 멀리 인도네시아에서 고향을 그리는 애타는 심정이 제게도 느껴지는 듯 합니다.
남편 작은 아버님이
징용가서 열아홉 에 가서
돌아가셨답니다
호적에 나와 있지요
고향만리 노래릘 수십번
듣고 있어요
눈물이 많이 났어요
가슴이 먹먹하네요.
너무나도 가슴아프고 슬픈
과거의 잊을수없는역사를
우리가수님의 노래로 들으니
더욱 가슴속에 스며듭니다
이영상은 그미님이라 하는분이
정성을 다해서 만드신겁니다~^^
G 키미
수고하십니다
고향만리 노래도 좋군요
부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름니다
좋은 날되세요
조명섭스타도 좋은날 되세요
조명섭 노래마다 가사자막도 넣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완전 키미 팬되었어요😍😍😍👍👍👍키미님의 기발한사진영상 감동입니다
조명님 항상행복하세요 화이팅입니다 👍💚💎👑🌴🌳🍀🌿
노래와 영상을 같이보니 더욱 눈물 나네요.....!!!! 그미님 눈물어린 투어 감사드려요!!
현인 선생님 생전에 노래하는 모습을 봤지만 이 노래는 조명섭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현인 선생님으로부터 흘러와
조명섭 명품 보이스로 완성이 되는군요.
노래에 담긴 소중한 역사관 잘 보았습니다. 그미님, 투어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상궁~
슬프죠
그미님이 좋은일하셨네요
고향만리 노랴는 슬픈데
왕자님목소리가 넘좋따
@@유숙자-n6w
그니깐요.
애국자 이십니다요.ㅎㅎ
여기에서 만나네요~^^
슬프네요
왕자님 목소리가 애절하네요
누구도 소화못하는 노래
딱 조명섭만 부을수있는 노래
그미님 감사드려요
아픈역사를 뒤돌아보게 해주시고 이렇게 영상까지
준비해주시니 진정한 펜이십니다 .두분다 사랑해요 ♡♡♡
안 당해본 사람이 어찌 그 맘을 헤아리겠습니까마는, 부모님 다 떠나신 고향길이 뜸해지면서 고향만리 노래가 절절해지는 듯..
허나 일제때 징용당해 고향의 어머님을 그리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움은 피맺힌 절규였으리라..사진 발품 감사합니다 ❤❤
그냥 멀리서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들으십시요.
1. 강제징용이란 말은 역전앞처럼 2중 표현 된 말이고.
2. 징용은 1944년 9월~1945년 3~4월까지(이후는 미군이 제해권 장악)시행 되었으며 약 15만이 조선인 노무자가 이에 해담됨. 전체 75만으로 약 60 만은 지원,소개로 간ㅡ돈벌러 간ㅡ노무자였습니다.
임금은 다 지불되었습니다.ㅡ적정 임금이냐는 별개문제. 일부 못 받은 경우가 있는데 해방전 1개월 치,미성년으로 가서 조선인 브로커에게 속아서 못 받은 경우가 있음
출처ㅡ이우연 박사 논문.
3. 보르네오는 1922년부터 일본군이 점령한걸로 봐서 지원한 노무자로 판단 됨. 근거는 종전이 되었는데도 다수가 귀국을 안 하고 현지에서 결혼 가정생활 한 경우가 여럿 있슴.
4. 동 티모르에도 조선인 후예들이 있슴.
그들이 안 돌아온 건가 못 돌아 온건가 하는 문제가 있슴.
결론
보르네오에 갔던 '조선인 노무자들이 강제로 끌려가서 죽도록 착취당했다'식의 섣부른 예단은 진실을 아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됨.
그냥 단순히 외국에ㅡ70,80년대에 중동에도 많이 갔음ㅡ나 간 노무자가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보는 게 맞음.
이런거 처음. 왜 꽃청년에게 발목잡혔을까? 내가 잡았다가 정답~^^^
@@G키미tv
역시 유튜브에서도
열응하시는 그미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