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승(風水僧) 성지(性智)가 차비문(差備門)에 출입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풍수는 임금이 숭상할 일이 아니고, 대궐 안은 중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성품이 토목 공사를 일으키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요사스런 이야기에 잘 빠져들어서, 임금으로서 숭상해서는 안될 일을 숭상하고 중으로서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니, 오늘날의 나랏일이 참으로 통곡할 만하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11권, 광해 9년 1월 13일 기묘 12번째기사)
영의정이 새 궁궐터 잡는 일에 관상감 제조 박홍구를 동참하게 할 것을 청하다. ...성지(性智)는 미친 중으로, 스스로 지리(地理)에 대한 방서(方書)를 잘 이해한다고 하였다.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언문으로 풍수(風水)에 대해 논하였는데, 그 말이 예전 방술대로 하지 않아 괴이하고 어긋나서 가소로웠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01권, 광해 8년 3월 24일 갑오 2번째기사)
전교하기를, "여러 재신들 가운데서 풍수(風水)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있는가? 아는 자가 없을 것 같으면 이는 군국(軍國)의 대사(大事)가 아니니 널리 조정의 의논을 거둘 필요가 없다. 시문용(施文用)과 성지(性智)가 〈말한 곳에는 외정전(外正殿)을 조성하고〉 김일용(金馹龍) 등이 말한 곳에다가는 외정전(外正殿)·시사전(視事殿)을 〈조성하고 그 안에〉 야대청(夜對廳)을 조성하며, 흥안군(興安君) 집의 빈 터가 몹시 넓으니, 전각(殿閣)을 두세 곳에 조성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도감에서 다시금 잘 조처하라. (광해군일기[중초본] 115권, 광해 9년 5월 17일 경진 1번째기사)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이야 이 채널 왜 몰랐지?넘나 유익합니다.응원해요♡
재미있게 봤어요
광해군의 추악한 이면을 알게되었습니다.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뭐가? 추악한지? ㅋㅋㅋ
지 아들 죽인 능양군은 휼륭?
풍수지리를 모르는 내용
저 풍수지리가 맞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아직도 그딴걸 믿나요? 21세기에 ㅎㅎㅎ
궁궐인줄 알았는데 묘지를 지은셈이군
몰아보기 재생목록 만들어주세요
성군과 폭군?
조선시대중 가장 태평성대시절이 연산군때다.
전쟁도 없고 풍년이 몇년간 계속~~
조선 사대부 관점으로 보는거 아닌가? 성군 폭군 ㅋㅋㅋ
❤
조선시대 양반들은 이중인격자..
소중화사상에 빠져서 살던 인간들..
그러고 보면 정조는 대단하다...
못믿을게 뭐있나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더하면 더했지
허허 지금도 목멱산을 주산으로 하는 용산 왕기설이 횡횡하니
미친, 역사적 증거를 대고 영상 찍으시오! 이건 계축일기에서 나온 순전 자작극인데 그걸 가져다 쓰다니 쯧!
풍수승(風水僧) 성지(性智)가 차비문(差備門)에 출입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풍수는 임금이 숭상할 일이 아니고, 대궐 안은 중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성품이 토목 공사를 일으키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요사스런 이야기에 잘 빠져들어서, 임금으로서 숭상해서는 안될 일을 숭상하고 중으로서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니, 오늘날의 나랏일이 참으로 통곡할 만하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11권, 광해 9년 1월 13일 기묘 12번째기사)
술관 이의신(李懿信)이 상소하여, 도성의 왕기(旺氣)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도성을 교하현(交河縣)에 세워 순행(巡幸)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니, 왕이 예조에 내려 의논토록 하였다. (광해군일기[중초본] 59권, 광해 4년 11월 15일 을사 3번째기사)
창경궁을 세울 때의 풍수 논의를 《태조실록》으로써 고찰하게 하다. (광해군일기[중초본] 93권, 광해 7년 8월 8일 임오 4번째기사)
영의정이 새 궁궐터 잡는 일에 관상감 제조 박홍구를 동참하게 할 것을 청하다. ...성지(性智)는 미친 중으로, 스스로 지리(地理)에 대한 방서(方書)를 잘 이해한다고 하였다.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언문으로 풍수(風水)에 대해 논하였는데, 그 말이 예전 방술대로 하지 않아 괴이하고 어긋나서 가소로웠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01권, 광해 8년 3월 24일 갑오 2번째기사)
전교하기를,
"여러 재신들 가운데서 풍수(風水)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있는가? 아는 자가 없을 것 같으면 이는 군국(軍國)의 대사(大事)가 아니니 널리 조정의 의논을 거둘 필요가 없다. 시문용(施文用)과 성지(性智)가 〈말한 곳에는 외정전(外正殿)을 조성하고〉 김일용(金馹龍) 등이 말한 곳에다가는 외정전(外正殿)·시사전(視事殿)을 〈조성하고 그 안에〉 야대청(夜對廳)을 조성하며, 흥안군(興安君) 집의 빈 터가 몹시 넓으니, 전각(殿閣)을 두세 곳에 조성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도감에서 다시금 잘 조처하라. (광해군일기[중초본] 115권, 광해 9년 5월 17일 경진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