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제1회 상고사 토론회 영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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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0 січ 2025

КОМЕНТАРІ • 149

  • @김용전-m7s
    @김용전-m7s 7 років тому +49

    우리의 위대했던 상고사 심백강 선생님 덕에 자부심이 커져갑니다. 우리교과서도 빨리 바뀌어야 하는데요. 언제나 바뀔것인지요.

  • @홍원위
    @홍원위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매우 유익한 강의 잘듣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 @이-k7h
    @이-k7h Рік тому +2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 @dolgoddodolgo
    @dolgoddodolgo 7 років тому +41

    심백강박사님 해박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역수가 요하!
    천진이남 탕산이남이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 지금의 서안근처의 피라미드무덤 과 고구려유적이 있는거 보면 서쪽경계는 더 남쪽으로 간거 같습니다

  • @kodisa20
    @kodisa20 Рік тому +5

    심백강 선생, 공부를 제대로 많이하신 진정한 정통 사학자이시네요. 이런 발전적인 토론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면 좋겠네요. 젊은 사학자들 배움의 장이네요, 동북아재단 힘

  • @양가람-v3u
    @양가람-v3u 2 роки тому +7

    다시 태서난 듯 합니다
    강단사학자들을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일을까요
    심박사님은
    홀로 빛나는 밤하늘의 북극성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네요

  • @youngk4175
    @youngk4175 Рік тому +2

    고생하셨습니다. 우리역사 확립의 시기가 서둘러 왔으면 좋겠군요.

  • @sungwonlee9862
    @sungwonlee9862 4 роки тому +18

    심교수님의 훌륭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한사군 위치 등 한국 강단사학이 저지른 어리석은 반도사관을 어서 빨리 극복했으면 합니다!!

  • @모루한55대
    @모루한55대 6 років тому +24

    서울대 교수부터 물갈이 하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전원을 해고하고 다시 뽑아라. 특히 동북아역사재단은 정부기관인데 뭘 망서리냐 단칼에 정리해 버리지.

  • @rock1564_naver_
    @rock1564_naver_ 7 років тому +37

    역사를 잊은 우리는 반성해야 된다. 더 정확하게는 잃어 버렸다..이제 잃어 버렸다는걸 알았다면 다시 찾으면 된다.잘못된 역사를
    배웠던 너무 긴 아픔의 시대를 이제 딛고 일어나 합심하여 우리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볼수있는 자세를 길러 진짜 역사를 말하자!

    • @최기석-o4k
      @최기석-o4k 3 роки тому +4

      잃은게아니고 강단사학자 아니친일하는것들이 우리역사를 버린것같아요 늦엇지만 역사를 바로잡아 국민에게 가르쳐야하겠네요 정말슬픈일

  • @ksgk5526
    @ksgk5526 7 років тому +49

    아, 동북아역사재단은아니 동북아역사재단 내 인물들은 다 쓸어내야 할 민족반역자들인것 같다.어찌 아직도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학을 그대로 말하는가?

  • @베드로-b2z
    @베드로-b2z 3 роки тому +15

    동북아 역사재단이 아직도 있나요? 식민, 사대 사관 재단으로 알고 있는데요.

  • @leejulee5333
    @leejulee5333 7 років тому +27

    새로운 역사를 다시 공부하자.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다시 시작합시다.

  • @bbombbi678
    @bbombbi678 6 років тому +21

    심백강 박사님 감사합니다. 이제 이상했던 고조선 실타래가 풀립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훨씬 넓었을 거라 봅니다. 둔황 고구려 벽화를 이거 연구해야할듯.
    정부는 진정한 역사학자 돈퍼줘서라도 10만양병... 필수.

  • @chrislee2577
    @chrislee2577 Рік тому +5

    심백강 박사님은 하늘이 우리민족을 위해 낸 당대 최고의 학자이십니다. 존경하오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leejulee5333
    @leejulee5333 7 років тому +30

    심백강박사님 해박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우리는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

  • @윤용섭용섭
    @윤용섭용섭 2 роки тому +7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감춰진 자료들을 찾아내어
    고대사 정립의 큰 획을 그으셨습니다.

  • @박태호-x9y
    @박태호-x9y Рік тому +1

    저도 책을 사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존경합니다.

  • @happyhan608
    @happyhan608 6 років тому +10

    더욱 더 건강하셔서 좋은 연구 부탁 드립니다. 꾸뻑 심원장님!

  • @jhsphinx81
    @jhsphinx81 4 роки тому +9

    이야 정말 멋집니다 사실여부를 떠나 저 꽂꽂함과 절개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옛 조상의 얼개를 보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말로만 전해듣던 고고한 선비 혹은 대학자를 보는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논증에 따른 유려한 정리에 감탄합니다

  • @leejulee5333
    @leejulee5333 7 років тому +26

    역사를 모두다시 재 검토해야한다.

    • @kslee612
      @kslee612 3 роки тому +1

      옳은 말씀

  • @강호랑객
    @강호랑객 7 років тому +36

    나라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라. 이자까지 모두 받아내라.

  • @이동식-c8l
    @이동식-c8l 7 місяців тому

    제일 쏙쏙머릿속에 박히게 설명해주시니 이해가됨니다

  • @matthewyang3954
    @matthewyang3954 6 років тому +9

    혜안을 밝히는 영상이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Happyvirus6
    @Happyvirus6 3 роки тому +8

    친일강단사학자들이 이 땅에서 퇴출되는 그 날까지 투!쟁! 좋은 강의 감사한니다. 국사편찬위원회도 얼릉 정신차리길 바래봅니다.

  • @모루한55대
    @모루한55대 7 років тому +10

    대단합니다. 적극 지지합니다.

  • @모루한55대
    @모루한55대 6 років тому +17

    식민사학자=역적
    척결 강단사학자.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끌어내 버리자.

  • @king-je6ul
    @king-je6ul 4 роки тому +11

    궁금합니다.
    이런 상황을 왜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수정하지않나요?

  • @jameschoi442
    @jameschoi442 7 років тому +37

    이리 많은 자료에 대해서 식민 강단 사학자들이 하나라도 반박하는 내용을 볼 수 있나? 대체 그동안 교수라는 작자들이 역사 연구 안하고 뭐했나? 일본우익하고 중국에서 연구비 대주니까 걱정이 없었던 모양이지?

  • @안파견
    @안파견 4 роки тому +5

    과거의 일을 올바르게 정리한다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그 틀에서 우리의 영토수복에 대한 방법도 아니 기반도 잡아주세요
    찾아오기는 너무 힘들겠지요
    너무 아쉽고 허탈합니다

  • @wndgj6196
    @wndgj6196 7 років тому +18

    심원장님의 새로운 사료를 추가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보다더 밝게 밝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세상만사-h9v
    @세상만사-h9v 4 роки тому +12

    심백강 선생님 자랑스러운 우리역사를 되찾을수 있을때까지 애써주시기바랍니다

  • @하회-p1s
    @하회-p1s 2 роки тому +6

    심백강 원장님을 응원합니다

  • @MackKim-x6g
    @MackKim-x6g 4 роки тому +12

    우리나라의 강단사학계도 식민사관/반도사관의 편협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백지에서 우리 상고사를 다시 정립하기 바랍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해묵은 사고를 벗고 청출어람의 발전이 있길 기대합니다

  • @chansoochoi6440
    @chansoochoi6440 5 місяців тому

    획기적인 연구성과 잘 배웠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cliffhwang1463
    @cliffhwang1463 3 роки тому +5

    환단고기, 규원사화. 민족사가 완전히 망실된 상태에서 이 두 책의 발견 및 등장은 민족의 복이요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적 자긍심이 있는 사학자라면 위서논쟁 이전에 가치논쟁부터 먼저 했어야 했고 사료적 논쟁 보다는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논쟁부터 먼저 했어야 했다.

  • @aztecasadal2627
    @aztecasadal2627 6 років тому +9

    다시 보는 발표지만 심백강 선생의 중국 문헌에 대한 통찰력 있는 고찰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일제 사학자를 추종하며 민족의 역사적 뿌리를 팔아먹은 이병도와 그를 중심으로한 식민사관의 주류사학계는 패악의 부끄러움을 알고 강단에서 떠나라.

    • @예언자-c9z
      @예언자-c9z Рік тому +1

      진수성찬을 놔두고 제 발로 나가는 넘은 없음. 쫓아내기 전에는.

  • @Sun-rr9zy
    @Sun-rr9zy 6 років тому +7

    고대 중국 자료집, 역사서들에 역점을 두길
    공부하는 학생들
    학자들을 필두로 이 분처럼 연구에 매진해 주길.
    감사합니다.

  • @sl8hf_may
    @sl8hf_may 8 місяців тому

    심백강박사님 존경합니다. 그나마 우리역사를 옳바르게 바로잡을 분입니다ㅡ
    ㄱ대륙남부에 백제마을 신라마을 있다는 걸 역사학자들이 증명을 못하겠지만.. 북경근처에 백제허가 있다는 것도 사서로는 증명을 못하겠지만...
    연구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우리역사가 바로 설 거라 믿습니다

  • @youngjoon88
    @youngjoon88 7 років тому +27

    역시나 심백강박사님의 강의는 탁월하시고 현재의 한국의 강단사학계가 정신 좀 차리고 공부좀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lyongduc9361
    @lyongduc9361 4 роки тому +3

    심박사님 저는 요동이 산해관을넘지못했다고봅니다 그래서 조양은 아님니다 고구려가 망할때 연남생의묘비에 요동사람연남생 이라 했습니다 그때의요동은 북경동쪽 옜 북평일대일걸로 봅니다

  • @황소-t3x
    @황소-t3x 3 роки тому +1

    귀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

  • @이수택-s5v
    @이수택-s5v 3 роки тому +6

    심백강 박사님 같은 분들이 진짜 애국자이십니다.

  • @네이버블로거.파이코
    @네이버블로거.파이코 4 роки тому

    다시,또,감사드립니다!
    추석에 농장에와서,들으면서 들러보고있습니다!
    꾸뻑~

  • @sookil5910
    @sookil5910 3 роки тому +2

    강단사학자들은 하루빨리 밥그릇 걱정하지 말고 식민지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조상들을 더이상 욕되게 하지말아야 하며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된 역사를 가르쳐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해 주기를 바란다.

  • @주주몽
    @주주몽 7 років тому +8

    한국 만세 ~~~~~~~~~~~~~~~~~~~~~

  • @허종억-f4h
    @허종억-f4h 6 років тому +4

    적패의 청산은 동북아 역사재단의 청산으로 시작돼어야한다.

  • @sourceland111
    @sourceland111 7 років тому +16

    심백강박사님을 응원합니다.

  • @김수원-r9s
    @김수원-r9s 4 місяці тому

    심백강님을 통해 한민족 상고사가 제대로 파악되고 있으니 우리 사학의 밝은 미래가 감지됩니다

  • @타미드LOG
    @타미드LOG 2 роки тому +1

    심백강박사 같은분을 재단 이사장으로 모시고, 식민사관 확대재생산하며 국고만 탕진하는 동북아역사재단 현 연구위원들 사퇴하라!

  • @ShangriLa_
    @ShangriLa_ 5 років тому +3

    환단고기는 믿지 않지만 한국의 상고사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대주의 서부터 + 일제시대 역사왜곡 + 현재의 친일사관의 후예들의 작품. 진짜 한국 상고사에 대해서 국가적인 복구작업이 시급한것 같습니다.

  • @광개토태왕-h5f
    @광개토태왕-h5f 7 років тому +11

    [중국문헌]들은 는 시베리아에서 동남아에 이르는 1만리의 중앙국(군자국)으로 지구중심국이였습니다. 산해경에 군자국은 무궁화가 아침 저녁으로 피고 서로 양보를 잘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공자는 군자가 죽지 않는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 했습니다. 군자국은 고려라고 했으니 우리의 한국을 의미합니다. 유튜브-[군자국]의 비밀을 참조바랍니다. 중국대륙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한민족 문명의 어머니 나라가 군자국으로 불리운 중앙국(중국=한국)이였습니다.

    • @ysj2755
      @ysj2755 6 років тому

      음~참 역사를 아시다니 내공이 대단하심 인정!

  • @S.G_OH
    @S.G_OH 4 роки тому +6

    여기가 식민강단사학의 집대성인 동북아식민재단인가? 위로는 낙랑군으로 한국삭제 아래론 임나로 한국삭제 대체 이사람들이 말하는 한국역사는 무엇인가?

  • @성수홍-d6r
    @성수홍-d6r 3 роки тому +1

    사마천 사기 효무본기에 따르면 원봉2년 5월에 무제가 변방순찰을 하는데 배을타고 북상하여 산해관근처 임유현에 도착하고 육로로
    다시 서쪽으로 요서을지나 북경부근 구원을 순찰하고 구도을 통하여 감천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읍니다..따라서 북경오른쪽으로 요서군 우북평군 요동군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그당시 요동군 동부도위가 어디에 이었는지가 문제가 되겠지요..???

  • @crenchebae
    @crenchebae 3 роки тому +4

    심백강 최강!!

  • @심종훈-d9j
    @심종훈-d9j 4 роки тому +2

    정말 멋지다.
    심백강 박사님

  • @태웅태연
    @태웅태연 4 роки тому +2

    강단사학자들의 대응법
    어디서 개가 짖네
    정신병자가 미친소리하네
    하며 절대로 대웅하지 않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아예 투명인간 취급함. 그러니 논쟁을 통한 발전은 커녕 이런 내용의 발표가 있었는 지 조차 사람들은 모름.

  • @김용욱금강경강해정태
    @김용욱금강경강해정태 3 роки тому +2

    내가 원하는 것은 친일파 없는 세상 에서 살아보고싶다

  • @천지인삼태극
    @천지인삼태극 7 років тому +1

    강의자료 파일이나 게시물은 없나요?

  • @gnothiseauton3075
    @gnothiseauton3075 3 роки тому

    평소 역사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제가 봐도 이분 논리가 꽤나 탄탄하네요. 한 가지 살짝 나이브해 보이는 추론이 있다면, 문인이 특정 시에서 특정 산과 강을 같이 언급한 것을 근거로 그 산과 강이 서로 인접한 지역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셨는데, 이게 타당한 추론이 될만큼 그당시 문인들이 시에서 인접하지 않은 강과 산을 같이 언급하는 경우가 결코 없는지 혹은 그렇게 할리가 없는지에 대한 또 다른 근거 정도가 추가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king-je6ul
    @king-je6ul 4 роки тому +1

    존경합니다

  • @johnbeomseoklee5115
    @johnbeomseoklee5115 6 років тому +1

    궁금한것이 잇는데요
    심백강님 말대로 낙랑군이 왕험성이 있는 고조선의 중심지였다면 역사에 나온 한무제가 왕험성공격시에 수군 8천명이 동원됏다는 기록은 거짓인가요?
    심박사님의 주장대로 백석 안문을 위치한 곳이 낙랑이라면 수군이 동원될수가 없습니다.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4 роки тому

      그부분은 제가 직접 이메일을 보냈지만, 본인도 답을 못내고 있으시더라고요. 문제는 낙랑군의 25개현이지만 유주에서 인구수로 따지면 제일 큰 군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요서군이 더 크죠. 저 낙랑군 위치는 요서고 요동이고 다 망라하고 커버를 하니까, 이부분을 설명이 필요한거죠. 그리고 저런 오류들을 범함는 이유가, 지금현재에 있는 지명들이 당시고대부터 쭉 있었다는 보장이 없기때문에, 사기부터 후한서까지 다시 검토해야합니다.

    • @johnbeomseoklee5115
      @johnbeomseoklee5115 4 роки тому +3

      @@dennythedavinchi3832 저도 심박사님 강의는 빼놓지 않고 듣고 있는데요. 신빙성이 있는 부분이 많고 특히 사서가 아닌 시조나 기록문에서 그 답을 찾으시는거에 저도 힘을 실어 드리고 싶습니다. 심박사님 말대로 역사서는 승자의 기록이고 승자들의 입맛대로 얼마든지 고쳐질수가 있거든요.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인들의 그것에서 찾는다는게 참 안타까을 따름입니다.

  • @잡초-k7j
    @잡초-k7j 7 місяців тому

    심백강 교수는 상고역사 연구의 희망이다.

  • @gn.l3762
    @gn.l3762 2 роки тому +1

    요서ㆍ요동의 분기점은 조백하로 보아야합니다.ㅡ 진시황의 만리장성 전체 모양으로 볼때 태행산맥 북단의 백석산에서 시작한 장성은 베이징 북쪽을 지나 연산산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연산산에서 서쪽으로 감숙성까지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를 볼때 사기 수경주에 장성은 요수를 끊고 갈석산에서 시작한다 했고, 사기 하본기 태강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의 기점이다 라는데서 현 난하 동쪽에 갈석산이 있으므로 해서 난하가 요수로 보이나 장성의 모양으로 볼때는 연산산이 고대의 갈석산이며 조백하가 요수라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베이징 일대가 낙랑군이고 그남쪽 영정하는 고대 대수이며 그 아래가 대방군 일것입니다. 그리고 현도군은 지금의 서요하 고대 서구려하이며 그남쪽 발해만까지가 임둔군이며 현도군과 낙랑군사이 지금의 조백하 상류와 적봉시 서부지역 일대가 요동군 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 @gn.l3762
      @gn.l3762 2 роки тому +1

      낙랑군은 지금의 베이징일대. 대방군은 영정하 이남 보정시까지. 현도군은 지금의 서요하. 임둔군은 발해만 북쪽입니다.

  • @이훈-s2f
    @이훈-s2f 4 роки тому +1

    고려에 위화도는 지금에 어디에 속한 섬인가요

    • @최기석-o4k
      @최기석-o4k 3 роки тому +1

      저도 의문을 갖고있답니다

    • @이훈-s2f
      @이훈-s2f 3 роки тому

      @@최기석-o4k 그걸 정확히 알수있다면 고려에 국경과 조선에 국경를 알수있를탠데요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이 않이라 진군를위해 강를 건너가서 전쟁를 승리로 이끌고 빼앗은 땅에 조선를 건국했다면 고지에 자주나오는 한반도 고려설과 대륙에 조선설은 설이 않이라 진실이 될수있고 요서 요북 북경 산둥 몽골 강소성 하남성 산시성 요녕성 길림성 흙룡강성 섬서성 일대가 조선에 광역이라고 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생각

  • @들불-f9w
    @들불-f9w 4 роки тому +2

    아니 이나라는 돈이많아
    혈세를 저따위 식민사관 쓰레기들한테 수십억씩 지원
    하는지ㅡ청와대는 뭐하는겨!

  • @장종혁-c5y
    @장종혁-c5y 3 роки тому +1

    존경합니다 강단사학자을 퇘출 해주세요

  • @킬카이사르
    @킬카이사르 4 роки тому +5

    역사전쟁 고조선고구려백제 를찾자

  • @cskim6311
    @cskim6311 2 роки тому

    심교수님 훌륭하신데, 패수, 요수의 위치 비정은 ua-cam.com/video/ihuwHa-vEPE/v-deo.html 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백이숙제 묘도 있구요.. 발해도 고대의 발해는 호수였고, 지금의 발해 명칭은 근대에 개명된 걸로 나옵니다. 위치 비정은 조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jung-wancho9140
    @jung-wancho9140 Рік тому +1

    이런 발표도하는 재단이 어떻게 지도사업은 그 따위로? 아마 재단이 존나 2중적인거지 표리부동

  • @최연우-r8y
    @최연우-r8y 8 місяців тому

    나라가 힘이생기면 반드시회수할수있음

  • @이-k7h
    @이-k7h Рік тому

    식민사학자들 강단사학자들 어떻게 해야 하는지

  • @63213140
    @63213140 6 років тому +1

    요하가 한반도 북단 근처에 있었나? 언제부터?

  • @김용욱금강경강해정태
    @김용욱금강경강해정태 3 роки тому +2

    강단 사학자 친일파집단 결론적으로 요런놈들 을 몰아내자

  • @이득영-m7g
    @이득영-m7g 4 роки тому +3

    고조선 1차 자료는 중국 역사서에 너무나 많다 그런데 왜 있는 역사도 없다 하는가?
    왜 국민 세금 받아먹고 일제식민사학을 따르고 주장하는가?
    공부 좀 하자. 한자 공부 좀 하자.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6 років тому +2

    심백강 선생님 역수를 이상한데서 찾으시는 느낌을 받네요. 역수가 호타하강과 같이 만나는 강이고 석가좌시에서 조금 북쪽에 있는 강인데, 왜 더 북쪽에서 찾으세요? 지금 노룡현이나 조선하나 창평군이 언제 바꼈을지 모르는 곳인데.

  • @sungmoon2378
    @sungmoon2378 3 роки тому +2

    지도와 연관해 설명 바람.
    지도는 장식이냐?
    요수 와 요하가 다르다는 게 요전이 요점.
    유수 위치는 북경 북쪽 90리( 36km)
    구글 맵으로 찾으면 바로 나온다.
    이 강이 요수이다. 일명 요하..구려하...

  • @lyongduc9361
    @lyongduc9361 Рік тому

    강단의 식민사학자중 한자를 해독할줄 아는사람들은 이런책을 릵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말도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들이 친일사관을 기초로한 논문 때문에 입다물고 잇다고 봅니다 이를 말하는순간 자신의논눈은 쓰레기가되고 자신의 밥줄도 끊어지기때문에 말을못한다고 봅니다 하루빨리 역사학의 풍토를 바꾸어 이런말을해도 밥줄이 끊어지지않는 세상을 만들어야됩니다

  • @시깜둥
    @시깜둥 2 роки тому

    원장님 제안합니다.
    중국 가짜역사학자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방송공사 또는 관련 업무자들이 중국역사학자들과 인터뷰하는것은
    한국이 어떠한 말을 할까하고 인터뷰하는데 결과는 우리에게 불리한 인터뷰하니 절대 인터뷰 하지말고 우리역사 찾아서
    우리가세워야 합니다.. 가짜 중국역사학자와 대화하지 말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름대로 자료을 가지고 역사책을 편찬하면 됩니다.. 원장님 부탁드립니다

  • @jipark_2373
    @jipark_2373 2 роки тому

    고대 서요하 지역 농경민들에 대한 유럽 학자들의 연구논문은 동아시아 문명의 형성과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매우 가치있는 시사를 해주었습니다... 동일 문명권이었는데 왜 오늘날 중국인과 한국인의 언어가 다른가... 요하유역의 농경민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면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왜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요하유역의 농경민들은 약 1만년전 간빙기가 지나 인간이 농경에 집중할수 있을만큼 기온이 온난해진 시기 초원지대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로 이주하여 살았던 사람들이죠... 그들은 수만년을 살아온 중국 내륙의 수렵 토착민들에 비해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하인들은 bc 3천년~4천년경 조,기장농사에서 벼농사로의 농업혁명을 통해 더 많은 인구를 가질수 있었고 더 넓은 땅을 필요로 했죠... 그래서 그들 농경민들이 이동할수 있었던 곳은 .... 1. 인접한 만주평야 2.서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연산산맥을 지나 하북평야, 산동반도, 중원내륙 황하유역의 하남평야지대 3.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 서부지역의 광활한 평야지대...입니다... 그중 기존 토착민 세력이 압도적으로 많이 있었던 중국내륙으로 이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언어적으로 토착민들과 동화되어 살거나 일부집단은 자신들끼리 뭉쳐서 살았겠죠... 산동반도의 동이 세력들입니다... 그러나 산동반도와 중원지역의 동이족들도 기존 토착민 화하세력에 밀려 자신들이 살던 발해만 요하유역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로부터 동아시아는 화하와 동이의 세력이 현저하게 구분되어지게 되고 언어적으로 완전히 이질적으로 분리되게 됩니다

    • @jipark_2373
      @jipark_2373 2 роки тому

      '이'는 한국어로 사람을 의미한다(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고대 수천년전 중국내륙 중원보다 문명이 앞섰던 홍산, 요하 문명의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이' 였다... "이"는 고유명사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이'를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동이의 예맥족이다... 맥이란 밝다는 의미고 밝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예는 만주의 예수 지역으로 옮겨 살았던 맥족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예맥은 모두 같은 족이다... 예족은 북만주 부여의 중심이 되었고 맥은 남만주, 발해만, 요서지역, 한반도에 널리 분포한 농경민들이었다... 예맥은 모두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중심이었다... 신시배달 시기 요하의 예맥족은 일부가 황하지역으로 이동하여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황하문명을 일으킨다... 중국의 3황이라 일컬어지는 복희, 신농, 수인 등은 중원의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해준 동이의 지배계층이다... 5제도 역시 동이족이다... 3황5제는 중국 토착민들의 관점에서 동쪽에서 온 문명을 전수해 준 사람들이었고 그들보다 소수의 세력이었으므로 수천년의 기간이 지나며 언어적으로 다수의 토착민들과 동화되면서 중국 내륙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동이였지만 화하족의 시조가 된것이다... 정통 동이족인 발해만, 만주 그리고 일부 산동반도의 예맥 동이족은 신시배달로부터 단군조선까지 왕조를 이루며 동아시아 문명의 가장 앞선 국가로 천제의 나라, 천독국, 군자국으로 주변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며 동일 문화권을 형성한다... 방계 동이족인 요,순,우의 당,하나라는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황하의 치수를 관리하며 독자적 황하문명의 시초를 이루는 나라를 세웠고 이후 하나라 걸왕의 폭주로 산동반도 지역 동이의 백성들이 일어나 상나라를 세우게 된다... 상은 동이족이 세운 왕조로 단군조선의 거수국에 불과하였으나 중원의 많은 인구와 토지 등 경제적 이점으로 발해만, 만주지역과 문화적으로 대등한 입장에 서게된다... 상나라 말기 은주왕의 폭주로 서쪽의 주문왕이 일어나 은을 멸하고 주를 세운다... 사료에 주문왕 세력을 '서이'로 기록하였으며 당시까지 '이'는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서이의 주나라 세력은 지금의 관중땅 서안지역을 중심으로 하였고 그들이 중원의 패권을 잡으면서 은나라, 산동반도 지역의 동이 사람들은 상당수가 발해만의 고죽, 조선으로 돌아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중원은 서안 지역의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원의 제후 봉건국가로 화하족이 지배하게 된다(화하는 관중지역 화산의 화족과 황하유역 하나라의 하족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란 것이 중국인들의 주류 관점이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제도, 문화, 예법을 그대로 물려받아 황하문명을 발전시키게 된다... 춘추시대 공자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문제 해법은 주나라의 문화와 예법을 다시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그것이 그가 말한 유교의 핵심 원리이다... 공자는 죽기전 자신은 은나라 사람이다 라고 말하였다(공자의 선조는 송나라 왕족출신이었고 송나라는 은나라 왕족인 미자계가 세운 주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이다) ... '동이' 라는 명칭은 주나라 이후 서서히 고유명사화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의 동쪽지역에 사는 이민족들을 모두 '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라는 말이 사람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닌 외부 특정 이민족의 의미를 갖게된 것이다... 당대 사료적 관점에서 화하가 바라본 동이는 3부류가 있었다... 1. 자신들과 인접한 발해만의 고죽, 번조선 등 예맥 집단 2. 내몽골 동부 유목민 집단 3. 만주의 군자국,대인국(군자국은 단군조선을 의미하고 대인국은 부여를 의미한다) ... 화하족이 동이를 오랑캐로 멸시한 것은 대부분 유목민 집단들이다... 산융(북융), 동호, 선비, 오환, 거란... 내몽골 유목민은 산융때까지 단군조선의 거수국으로 통제되었으며 춘추시대 고죽과 연합하여 연,노,제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단군조선이 쇠퇴하여 bc238년 망하면서 내몽골 동부 유목민 동호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강성하게 되었으나 흉노에 멸망당하게 된다... 유목민 집단인 동호는 예맥 농경민 집단인 조선이 아니다... 고죽, 번조선 역시 단군조선(진조선,진한,대부여) 멸망후 정치적 독립하여 단군조선은 열국으로 분열되게 된다.... 한반도의 마한과 수십개 소국들도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분열하게 된다... 한무제에 의한 위만조선 침공은 발해만의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이 열국으로 분열된 북부여와 만주, 한반도 북부의 기타 중소국가들과의 무역을 방해하여 중개 이권을 차지한데 대한 보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에 대한 열국들의 이간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한무제는 흉노 등 북방 유목민 집단에 대한 보복으로 강력한 토벌을 하였으나 발해만의 번조선 등 이민족 농경민 집단인 예맥에 대해서는 적대하지 않았고 서로가 오랜기간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위만조선에 대한 침공은 여러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본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도 당시 만주에 있던 북부여를 사마천은 조선이라 칭하고 기록하였다... 위만의 손자 우거의 아들과 조선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북부여와 통하였고 그것이 발각되어 모두 처형되게 된다... 위만조선 유민들과 통하였던 북부여를 당대의 중국인들은 조선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 @jipark_2373
      @jipark_2373 2 роки тому

      북부여는 단군조선(대부여,진조선,진한)을 이어받은 나라였고 동일 지역에 있었으므로 중국인의 관점에서는 만주의 북부여도 조선이라 본것이다... 발해만 위만조선 지역에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오래가지 못하였다... 조선 유민들을 모아 쇠퇴해가는 북부여를 대신하여 동명국을 세워 동명성왕이라 불리운 고두막한이 한사군을 몰아내어 얼마못가 한사군은 한나라와 인접한 낙랑군만 남게 된다... 낙랑 지역에 살던 조선유민들은 일부가 한반도로 이동하여 대동강 유역에 최씨의 낙랑국을 세운것으로 보인다... 한사군을 몰아내고 세력을 떨친 고두막한은 북부여의 단군 해우루를 압박하여 나라를 옮겨갈 것을 요구한다... 고두막한은 자신을 북부여가 멸망시킨 진조선(대부여)의 마지막 단군 고열가의 후손이라 칭하며 무력에 의한 시위와 더불어 단군의 정통성을 내세운 것이다... 해우루가 얼마후에 죽고 동생 해부루가 나라를 옮겨 동부여를 세우게 된다... 고두막한은 동명국을 동명부여, 홀본부여라 칭하고 단군을 계승한다... 고두막한의 딸 파소는 미혼으로 임신을 하여 왕가에서 쫓겨나 한반도 남부로 가서 박혁거세를 낳고 혁거세는 사로 6촌의 고조선 유민들의 추대로 어린나이에 신라의 왕이 된다... 혁거세가 왕이 될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천제 단군의 외손자라는 혈통에 기인한 것이며 박혁거세의 왕호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또는 대부족장의 호칭인 가한(거서간)이라고 칭하게 된다... 고두막한의 아들 고무서 단군의 딸 소서노는 동부여에서 도망쳐온 고주몽과 재혼한다... 고주몽은 정략결혼으로 아들이 없는 고무서의 홀본부여를 소서노의 도움으로 접수하며 어렵지 않게 나라를 세우게 되고 자신은 북부여 해모수 단군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홀본부여의 정통성을 버리고 북부여를 이은 고구려를 세운다 (사생아인 고주몽의 아버지는 북부여의 제후국인 고리(고죽)국의 가한이었던 고모수이다)... 북부여 해모수의 4세손인 고주몽은 북부여의 정통성을 잇고자 하였으며 단군조선, 진조선, 대부여의 정통성을 잇고자한 홀본부여는 고무서 단군에서 끊어지게 되고 소서노는 홀본부여의 정통을 잇고자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요서지역 패대의 땅으로 옮겨가 살다가 한반도 남부 마한지역으로 다시 옮겨 백제를 세우게 된다... 후에 백제는 홀본부여를 이은 남부여를 칭한다... 백제의 왕들은 동명성왕 고두막한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사료 기록이 있다... 5호16국 혼란기에 백제는 요서지역을 경략하여 차지하게 되는데 그곳이 자신들의 발원지였기 때문이다 (요서지역 패대의 땅은 지금의 난하 서쪽 중국의 수도권지역이다)... 고구려는 부여의 정통성을 자신들에게 두고자 홀본부여를 지우고 북부여를 잇고자 하였다... 2개 부여의 정통성의 차이가 고구려와 백제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홀본부여가 망하게 되자 신라 혁거세의 손자 3대왕 유리는 가한, 차차웅의 칭호를 버리고 임금을 뜻하는 이사금을 왕호로 삼는다... 북부여를 이은 고구려를 천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예맥과 부여의 정통성을 잇는 나라가 되었으나 홀본부여와 북부여라는 2개 부여의 정통성의 차이에서 역사적 혼란이 발생한다... 훗날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역사에 무지한 인간이므로 이런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김부식은 동명성왕 고두막한과 고구려 고주몽을 동일 인물인 것으로 왜곡하였다... 신라는 고조선 유민이 나라를 세우고 천제 단군(밝은임금)의 제후국인 가한의 나라임을 표방하였으나 후에 스스로 임금을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물왕 시기 왜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에 속국임을 자처하며 원군을 청하였다... 광개토태왕은 신라를 속국, 제후국으로 삼고 왜를 물리쳤다... 내물왕은 고구려를 천제의 나라로 받들어 가한(마립간)의 칭호를 다시 사용한다... 내물왕 이후 신라는 1백년 이상 고구려의 속국으로 간섭과 비호를 동시에 받으며 내부적으로 골품제를 실시하여 안정적으로 김씨 왕위세습을 유지한다... 그후 고구려가 왕권분쟁으로 쇠퇴함에 따라 신라는 지증왕에 이르러 마립간 칭호를 버리고 '왕'을 칭한다... ... 이로서 만주와 발해만, 한반도의 동이가 세운 국가와 구성원들은 모두 예맥족이 정통이었음을 알수 있다... 단군조선 멸망과 북부여, 홀본부여 등 만주, 한반도의 수십개 크고 작은 열국들은 모두 예맥이 지배층이요 핵심 구성원이었다... 이후 중국 사료에는 동쪽의 이민족을 모두 동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핵심은 예맥이다
      위 내용들은 모두 우리 사료에 근거한 것들이다... 고대역사를 몰라서 신화, 설화만 인용한 삼국사기, 유사보다는 더 신뢰성 있다고 생각한다... 신라의 흉노 김씨왕조는 예맥 부여를 자신들의 선조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신라는 만주의 정통 예맥국가의 왕조에 대한 사료를 남기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고대사 은폐와 왜곡의 시작점이다

  • @eastsea5021
    @eastsea5021 Рік тому

    심백강박사님을 국방부장관으로
    이덕일박사님을 문교부장관으로..

  • @timfoinc.6879
    @timfoinc.6879 7 років тому

    Turn everybody into original faces and heights.

  • @TV-DOCJON
    @TV-DOCJON 2 роки тому

    20:00 장성 요수

  • @최종인-m3x
    @최종인-m3x 2 роки тому

    중국사료도 활용하지 않은 강단사학..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한 참칭 역사학자, 그 논문 ,학설을 언제 폐기할까?

  • @설향-h8y
    @설향-h8y 2 роки тому

    중국 하북 산동 요령 길림성은 고대 한민족의 텃밭이였고 기후나 식생토한 한반도하고 다를바업다
    고대 동이족 조상들이 본향인 4성을 언젠가는 후손들이 수복해야할 사명감이있으면 현 대한민국은 역대 동이족 역사중 보잘업이 가장 협소한 영토로 밀려나서 남한이라는 삼한땅 가장 변두리에 몰려서 살고있다

    • @gn.l3762
      @gn.l3762 2 роки тому +1

      산서성 중북부에는 고조선 제후국 藍國 즉 藍夷가 있던 우리민족 고유영토 였습니다.

  • @삶바른
    @삶바른 2 роки тому

    11:00

  • @은나라가고조선
    @은나라가고조선 3 роки тому

    선생님 고조선이라는 곳은
    기자단군시대인 은나라 2천년시기입니다 김부식흉노놈이 은나라를 고조선이라고 딴이름으로 적어 지네선비한족 대륙의 지시에 따른겁니다 분명 고조선은 주나라에 밀린 상나라후기인 은허도읍으로 이동한 기자단군시대 즉 은나라인것입니다 그 2천년동안 한자 ㆍ불교ㆍ 천자문 등 이 다 이루어집니다

  • @timfoinc.6879
    @timfoinc.6879 7 років тому

    Sichuan Basin was built by the Chok(Korean sound; Shu;Chinese sound) kingdom. Sui-Eui means funerary cloth for death. Dan-Gun, Egyptian Hyksos(Soshaky) and the Shang empire might be Hyksos people(18 th-16 th century BC Egyption empire by Semite people).

  • @배달겨레
    @배달겨레 3 роки тому +1

    각성하라우

  • @TV-xd6ut
    @TV-xd6ut 7 років тому

    중국동북공정을 깨기에는 좀 어렵슴니다.그들을 깨려면 반드시 당시의 지형을 근거로 역사를 바라봐야 가능함니다.제가 듣기에 지금의 발해만이 과거 내륙까지 들어와 하북성의 일부와 요녕성 대부분이 짠물호수엿따고 함니다.물론 2000~4000년 전이 아니라 120~600년 전의 일임니다.동북공정을 깨려면 중공의 정사만을 인용해서는 어렵슴니다.

  • @은나라가고조선
    @은나라가고조선 3 роки тому

    고조선이 바로 은나라인거나 말하시죠 즉 상나라가 주나라에 밀려 은허로 도읍을 옮겨갓던 기자조선이래 1908년시기 그것은 상나라후기인 은나라인것이오

  • @박카스7
    @박카스7 Рік тому

    아...동복아 역사재단 이곳이 문제다.
    독도 빼고 지도 그리고....반나도 남부가 임나일본이라는 애들이 우글거리는곳~~

  • @조경규-z2q
    @조경규-z2q 3 роки тому

    요수 평양 나라 낙랑 다라 민족 시대 이동에 따른 이동 지명임ㅡ

  • @a7205-t1e
    @a7205-t1e 2 роки тому

    역사 유튜브 책보고 참조
    요동이 왜북쪽이야.

  • @timfoinc.6879
    @timfoinc.6879 7 років тому

    @15;57. history manipulators lied of that because they wanted to be rich ship merchants not invaders through land road. Jag-Gn-gut-dl Ja-Gm-Sung-dl Gol-gap-ha-ne. The mountain bird clan lied also. They are bird,Se, iron as a sign, bird in Egypt Hieroglypic.

  • @조경규-z2q
    @조경규-z2q 3 роки тому +1

    조하 ㅡㅡ조선하 임

  • @pocost
    @pocost 7 років тому +1

    그역사 왜곡을 당신도 하고있소이다 .
    요동은 더 서쪽이라는거 고구려 초기에 북경근처가 고구려의 서쪽경계였고 요동진출후 낙랑군을 평정하는데 그러면 요동은 당연히 서쪽 아닌가 초등학생 도 아는걸 모르면서 역사학자라고

    • @bbombbi678
      @bbombbi678 6 років тому +2

      옳습니다. 한자모르면 역사를 잃습니다. 한글만 고집하는은 진보가 아닙니다.
      현정부는 진정한 진보가 되기를..

    • @dennythedavinchi3832
      @dennythedavinchi3832 6 років тому +1

      저는 오히려 다르게 봅니다. 고구려의 발원은 고구려현이고 즉 처음 시작이 낙랑과 멀리 떨어져있지않은 현토성 즉 하북일대에서 발원한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모용선비와 싸움에서 이지역을 잃어버리고 광개토대왕시대에도 이곳을 완전 굴복시키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할수없이 원래 낙랑자리인 평양자리가 원 위치에 서지 못하고 할수없이 요령성에 평양을 세운것으로 보입니다. 지 지역은 고려시대 서경까지도 있던 자리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나중 조선에 평양부가 한반도로 내려왔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 @재섭김-h5k
    @재섭김-h5k 3 місяці тому

    진짜 나라돈 낼름 먹으려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추종자들이
    있다는 집단 아님니까?
    어떻게 간첩질 대놓고 하면서
    유튜브까지 올리나요?

  • @김기석-g6g
    @김기석-g6g 7 років тому +4

    고조선 또한 위조된 역사.
    고조선 명칭의 시작점과 역사서를 다시 잘살펴 보시길.
    모든 역사서를 아무리 따지고 따져봐도
    우리역사는 군자국인데 어찌 고조선으로 국한시키는지...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4 роки тому

    심백강 말대로 하북성 난하 하구의 갈석산이 곧 지석산이고 거기에서 요수가 나오는거라면 조조가 원소 격파하고 갈석산에 올라서 시 쓴건 뭐임?
    벌써 조조가 요동 평정한거? 그럼 사마중달이 요수 건너서 요동군 공격해서 공손연 목 딴건 뭐냐? 지 스스로 앞뒤 안맞는 소리 한다는건 생각도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