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실제 저런 내용이 있다구요. "백제국이 진나라·송나라·제나라·양나라 시기 부터 양자강 좌안에 웅거하였으며 북위 시 기 부터는 중원을 차지하였다." 自[전치사(개사)]晉·宋·齊·梁據江左[自]後魏宅中原 "북제의 후주가 또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 동청주(동청주는 지금의 산동성 자오저우완 일대로 백제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의미다.)자사로 삼았다." 齊後主以餘昌爲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 지 정확한 내용인 지 잘 모르겠네요
@@그사람-h7y KBS 다큐 백제 22개담로의 비밀과 ua-cam.com/video/lgPeTovH1fI/v-deo.html 흑치상지 장군편 참조해보세요. ua-cam.com/video/W_Ddr5QHGkY/v-deo.html 흑치상지는 베트남 필리핀유역까지 다스리던 흑치지방을 분봉받고 그 지역을 다스리던 흑치집안. 흑치국은 검은 이빨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으로 흑치집안은 원래 부여왕족 성씨를 가지고 있다가 백제황제에 의해 흑치라는 성을 부여받고 그 지역 제후가 된다
(중국사서에도 언급없는) 중국이 고무줄장성을 고구려 박작성, 평양,한강으로까지 그려놓는 순 날조 심지어 김치공정까지 되버린 중화주의만화 역사왜곡에 대응해서라도 오히려 실제 사실인 외백제 내백제 즉,대륙 해양백제강역은 복원해야하는것. 그리고 종로 한복판에 좌파근현대사 왜곡을 바로잡는 구심점으로 경제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동상과, 경상,전라도 북한통합 삼국 상징으로 을지문덕,김유신, 계백장군 동상도 세우기를 추천함. 철원에 후고구려 수도를 놓고 민족과 신라왕족을 한축으로 등용했었던 고려에 국권이양, (신라 복원 후속들은 북만주가서 금,청나라 세움) 고려로 이미 삼국재통일 했는데 언제까지 나당전쟁으로 당나라 쫒아낸 신라 비판만 할련지. 신라가 통일한 북방지역도 (이덕일 사학자님 말데로)요녕성 심양일대였음. 그런데 왠 발해신라 남북국 시절 신라의 영토를 평양이남이라 하는 강단사학. 실크로드의 끝이 분명 경상도경주 신라인데 만일 발해 신라간 맞닿은 국경선이 평양이남으로 국경선이 황선이면 신라북방과 중앙아 루트가 발해에 막혀있게 되는데 서역인들이 어떻게 육상루트로 신라까지 왕래 할까요? 즉 태백산맥을 경계선으로 함경남북 또는 평안남북도 위로 넘어 만주일대 중앙아 루트로 이어지는 어디쯤까지가 신라영역인것으로도 추정이 가능한데. 그런 신라영토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고려의 영토도 당연히 만주일대를 포함했었고 서희가 거란과 담판외교로 되찾은 강동6주가 만주일대인데 왠, 고려 북방이 또 평양이남? (적어도 불교전래가 가야 허왕후때 민전불교로 충분히 수용이 되있었다것을 알수가 있는데) 저러니 불교전래조차 그보다 몇백년 늦은 고구려 소수림왕때라고 말함. 등잔밑조차 어둡게 바보만드는 얼치기 사학자들. (고조선 멸망후 잊혀진 지역이나 단군의 둘째 지루일파들이 가서 세운 수도 서검성은 심양이라함. 옛 지명이 봉천 임 또한 밝혀지기를. 단군의 장남인 부루가 이어받은 고조선 수도는 왕검성은 현 북한 평양. 이탈리아 로마, 동로마 콘스티노플 몽골 본 수도가 울란바토르, 북경과 같은 2개의 경우) 고려의 본수도는 지금의 북한 황해도 구월산 일대. 참고-도선국사는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하면서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물었다. 도선이 "천년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삼각산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황급히 "아, 아니오. 삼각산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고 말했다고 한다.-풍수도참설로 고려 수도가 어딘지 이미 판명됨.) 당하는것도 반복하면 습관된다고 하지요. 역사의식에 관한 소유의식 소견머리가 좁으니 안보 영토의식이 그런것입니다. 한 인간을 봐도 똑같은 사람일지라도 기억을 잃으면 다른 의식,다른행동 다른 사람이 되듯이 그래서 일제가 역사기억,말의 기억을 지웠던 겁니다. 설령 일본이 ,중국이 물러갔어도 이런 역사왜곡 말의 왜곡으로 잔재가 남으면 자동 식민지가 되는겁니다. 일본은 35년간 식민지때 역사,언어를 조작을 하였지만 그보다 더한 고조선이하 역사 조작은 중국이 해옴. ex: 한가위,한강 ..'한'이라는 단어는 고유어로 크다라는 의미인데, 한자로 음차한 우리말들을, 한자발음으로 약속한 같은 동음은 전부 한자인양 둔갑시킴. 그러니 '한'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한' =크다라는 의미로 두는게 아니고 그렇다고 한(韓)이라고 쓰는것도 아니며 중국 한(漢)족 연상하듯 큰강=한가람=한강을 한(漢)강으로, 차타고 가면 기분 드럽게 보이는 표시판이 한강(漢)대교으로 쓰질않나. 삼각산을 북한(漢)산으로 변조. 고무줄장성 한강까지 해주려고? 없었던것조차? 반대로 대륙의 백제,고구려 지명은 중국은 없애고 사실과 거짓,주객이 전도됬음. 저런 왜곡들이 통하니 중공이 파로호 개명요구를 하질않나 그런겁니다. 한국(정치)인들 정말 눈앞에것만 봅니다. 이런 주제의식,문제의식 논하는 부류가 돈키호테 취급이나 받아야하니 도대체 누구의 의식이 정상입니까? 김치공정 당할때나 체감적으로 느끼시나? 일제가 고작 35년이었는데 중국이 고조선 이후 수천년간 조작은 더했겠지요. 그래서 한국인들의 공통 사회의식 시작점이라 볼수있는 역사 사회적 기억을 조종하는 사학자,언론인들의 책임이 어찌보면 더 크다고도 볼수 있죠.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이렇게 썼다.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 《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일본사가 백제사와 한국사의 토대가 될수없으니 반한친일 일본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외에는 90%이상을 친중사학으로 변조하는것이고) 정확히 말해선 대부분 친일이든 친중이든 결과적은도 역사왜곡은 겉은 일제식민 사학자들로 위장해선 속은 친중중화사관으로 대부분 변조하는 사학계의 친중부역자들이죠. 이들이 그렇게 좌파진영, 종북주의로 위장해선 근현대사는 반일이승만 극일박정희를 마치 친일파로 묘사하며 좌파사학으로 왜곡하는것이고요. 반면 방관적 친일하면서 국민당 쫒아내고 정권탈취한 중공에 대해선 마치 반일독립운동이며 반일의 거점인양 찬양하는 좌파들의 이념 역사관. 이런 사학자들이 언론계로 정치권으로 내려가면서 지식과 자금의 스폰서가 되니 정치권의 안보,외교의식이 반민족친중, 탈대한민국 종북주의 근현대사 이념 사상만 설치는것이며 각국이 국제이슈에 머리맞대고 세상 지분을 논할때 자국민 안전 국가밥그릇 의견 제시에도 아무관심이 없고 과거의 기억은 잃어버린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그저 아무때나 동방예의지국, 도전을 해야할땐 조용한 안개낀 아침의 나라로 그냥 있자고 하는것이 그간의 정치권 풍토 인식이었던 원인이 아닌가 함. 그러니 저런 외교관,정치인들 백날 있으면 뭐해.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이 사람은 일본인 댓글러 같기도 하다. 그건 당신들이 열등감이니 일본,중국이 신나게 한민족사를 조작했는데 뭔 역사열등감? 이에 관해선 동아시아 역사학자이신 고 존 카터 코벨 박사 저서들 참고하시도록. (일본과 연관성은 말할것도 없고 입만 아픈.) 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mjin1&logNo=222079871357&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daum.net%2Fsearch%3Fq%3D%25EC%25A1%25B4%2520%25EC%25B9%25B4%25ED%2584%25B0%2520%25EC%25BD%2594%25EB%25B2%25A8%26w%3Dtot%26nil_profile%3Dsuggest%26DA%3DGIQ%26rq%3D%26sq%3D%25EC%25A1%25B4%25EC%25B9%25B4%25ED%2584%25B0%26o%3D3%26sugo%3D10 그렇게들 대개 착각하기도 하지. 삼국이전에 구석기 청동기를 포함한 한반도 에서의 인간군집 문화형성권은 생각은 전혀 안하고 그저 한반도는 좁고, 대륙은 넓으니 대륙에서만 문화 문명 수도가 형성됬다. 이런착각들 하는데, (몰라서 그럴수도 있는데 한반도 역사증발을 시키려고 고의적으로 대륙중심 시각으로 그러는 부류들이 있음.) 심지어 삼국이 한반도 일대에 없었다는식. 심지어 고려,조선까지. 소위 친중사학이 안되면 대륙중심사학. 그러나 조금만 살펴봐도 답이나오거든. 조선 : 무학대사 이성계의 조선 수도 비정 지역 삼각산,인왕산 관련 경복궁터 일치. 고려 :구월산 삼각산 수도 관련 일화 도선국사 왕건 한반도 황해도 구월산 일대 개경 일치. 이후 후고구려 철원지역에서 수도 발굴. ua-cam.com/video/GwjAnxea-eo/v-deo.html 백제 : (아직 의견이 분분하나) 백제 풍납토성 발굴. ua-cam.com/video/zPiVnIWFm_w/v-deo.html 역사정설데로 비류와 온조가 한강일대로 남하 온조는 하남을 비류는 미추홀을 택함 수도가 하남인지 풍납토성인지 역사적 의견은 분분. ua-cam.com/video/vK4EXVfETeM/v-deo.html 중국 동부대륙일대 요서지방이 이들과 합쳐져 훗날 백제라 칭함. 이게 정설이겠지. 백제수도는 한반도 송파일대 풍납토성 고구려에 침공당해 빼앗겨 충청도 공주로 수도 이전 남하. 만일 백제 수도가 요서지방이면 소정방이가 수도 공략으로 요서를 공략해서 거기에 흔적을 남겼겠지 부여에서 정방뜰(소정평)을 남기나? 사실 이건 조선총독부처럼 부셔야할 가치지만 오히려 이것이 (한성백제 수도이남후)백제의 수도 일대였음을 반증하는거겠지. 즉, 님은 한반도에 어떻게 삼국 수도가 있을수 있느냐. 대륙이 더 넓은데? 이런 식민,대륙중심 고정관념 인식을 전제로 깔고 말하는것. 그러나 조금만 살펴봐도 삼국 유물,증거들이 한반도에 있었던건 기본이고 수도 한반도와 그 일대인건 밝혀진건데 일례로 한반도 경주가 수도가 아니면 실크로드 종착지 끝인 경주까지 왜오나? 그리고 황금보검이 왜 나올까? 그리고 황룡사 9층석탑 기단이 경주에 흔적이 있음. 고구려는 첫수도는 한반도 인근 만주 국내성이고 후고구려는 철원,고려는 황해도 구월산 일대 개경.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얘 왜이러냐? 중국역사서에 대륙백제가 나온다는데 니 망상이 심하다. 중국 사서에 나타난 백제 관련기록 ○ 자치통감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백제는 진(晉)대부터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 구당서 “백제의 영토는 남으로는 바다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른다.” ○ 북사 “백제국이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 주서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의 좌안을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 때는 중원을 차지했다.” ○ 만주원류고 “금주, 의주, 애훈(중국 동해안 지역) 등지가 다 백제이다.”
@@모범튜브실제 저런 내용이 있다구요. "백제국이 진나라·송나라·제나라·양나라 시기 부터 양자강 좌안에 웅거하였으며 북위 시 기 부터는 중원을 차지하였다." 自[전치사(개사)]晉·宋·齊·梁據江左[自]後魏宅中原 "북제의 후주가 또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 동청주(동청주는 지금의 산동성 자오저우완 일대로 백제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의미다.)자사로 삼았다." 齊後主以餘昌爲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 지 정확한 내용인 지 잘 모르겠네요.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JH-ih7eg 진실은 불편한 법이죠 그리고 만리장성은 나의 주장과는 전혀 무관한데 뜬금없이 왜 튀어 나온걸까요? ㅋㅋ 만리장성의 기점은 산해관이 맞습니다 산 산해관 동북 방향에 갈석산이 있고 갈석산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죠 그 낙랑 대방 땅 요서에 백제가 있었습니다 뭐 지금 주제는 그게 아니니까 이건 이정도로만 알고 계시구요 백제가 요서에서 한반도 중부로 밀려났다는것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다는것 군사를 얻기 위해 야마토왜에 수많은 인력들이 넘어가면서 야마토왜의 정권을 백제계가 잡았다는것 가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선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햇다고 주장하는건 말이 된다는것 이거 모두 역사적 팩트라는것만 알아두세요 ㅋㅋ 진실을 마주하는것도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모범튜브 중국 사서에 나타난 백제 관련기록 ○ 자치통감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백제는 진(晉)대부터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 구당서 “백제의 영토는 남으로는 바다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른다.” ○ 북사 “백제국이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 주서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의 좌안을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 때는 중원을 차지했다.” ○ 만주원류고 “금주, 의주, 애훈(중국 동해안 지역) 등지가 다 백제이다.”
그렇게 걱정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한반도의 재출발은 누가 뭐라해도 남북통일임을 님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북한의 역사관은 이덕일님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광대하면 광대하지 덜하지 않읍니다. 남북통일되면 남북한 역사학계간 대논쟁이 붙을 것이고 남한의 역사학자들은 일종의 숙정작업 대상이 되도록 대한민국은 설계되어 있읍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강단사학자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지금" 마음컷 뛰놀라하십시오. 놀음을 멈추어야할 날이 다가오니까요. 진정한 삼한의 관경을 걸고, 통일한국은 중국과 격돌하게 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지지 않읍니다. 일본은 불행히도 남북한이 통일되어 삼한관경을 다시 차지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열도침몰에 빠질 것 같군요.
@할말은 하고 사는 강아지 모든 한국인은 대범하고 대담하고 대담무쌍해져야 한다. 과거 침략을 받은 역사때문에 한국인은 외세가 들어오는 데 대하여 지나치리만치 거부반응을 보인다. 첫째, 중국 자본이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중국식 영화를 팍팍 찍어냈는데, 할리우드가 그래서 중국으로 넘어갔는가 ? 둘째, 인도 볼리우드도 있고 나이지리아 영화산업도 있고, 기타 국가들도 있는데 왜 유독 한국에 투자하는가 ?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하기위함인가 ?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고려는 벽란도가 있었다. 조선은 개항장이 없었다. 조선에 개항장이 하나만 있었어도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문화이던 경제이든 융성한 곳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는 것은 자고이래의 인간 본성에 속한다. 50억투자받고 중국어 한마디해주는게 그렇게 배알이 꼴린가 ? 누가 승리호를 중국영화로 간주하는가 ? 역사의 중심지는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물자와 인력, 문화, 이런 것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지역이지, 거기에 돈좀 출자했다고 해서 출자한 나라가 문화의 중심지가 되지 않는다. 나는 기원한다. 이번 승리호 성공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2천만불이 아니라 정말 2억불짜리 대작이 만들어지기를. 그 영화에 중국인 배우가 출연해서 중국어로 이야기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산업이 글로벌 체인으로 가동되는 요즘, 왜 영화만 순수혈통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 중국이 한국 문화콘텐츠를 장악가능한가 ? 무엇으로 장악가능한가 ? 돈과 사람으로 장악하는 것인데 그들은 돈은 있지만, 인적자본은 없다. 중국이 설령 영화제작비의 70% 자본을 댄다고 해도 상관없다. 계약만 잘해서 수익금은 한국이 70% 갖도록 계약하면 된다. 문화콘텐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거대한 문화콘텐츠 기반이 "한국에" 갖추어지게 된다. 중국어를 80%이상 구사가능한 중국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되는가 ? 대찬성이다. 중국영화가 이제는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시대가 된다. 한국은 문화콘텐츠 제조중심국으로 부상한다. 아이폰 설계는 캘리포니아, 제조는 중국인데, 영화라고 스토리, 각본등은 다국적, 제작은 한국, 이러면 안되는가 ? 결론 : 문화란 강탈할 수 없는 무형의 요소이다. 사회현상에서 문화가 나오는 것이지 돈에서 문화가 나오는 게 아니다. 대결론 : 한국인은 더욱 대담무쌍해져야 한다. 구글 : 야후를 표적으로 카피해서 사업시작한 것 아닌가 ? 하나는 대만인, 하나는 유대인, 승리는 뻔한 것. 넷플릭스 : 유트브와 그렇게도 다른 것인가 ? 니콜라 : 현대자동차 카피한 것 아닌가 ? 테슬라 : 테슬라가 전기차 처음 만들었나 ? 아이폰 : 이미 존재하던 터치판넬 기술 훔쳐다가 만든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 중국 텐센트는 카피를 해도 크게 성장한 것은 내수가 크기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나는 국수주의를 극도로 혐오함.
@할말은 하고 사는 강아지 영화라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논하는데 왜 정치체계가 등장하고 쇼를 부립니까. 중국의 그런 문제 모르는 사람 어디있읍니까. 정말 할 일도 없으시네요, 상식적인 것을 그렇게 길게 적어내고........... 그런 정치체제가 승리호, 나아가 2억불짜리 정말 대작영화랑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요 ? 한국 영화계가 중국 사상을 대변하는 창구로 변질될 것 같은지요 ?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할말은 하고 사는 강아지 나는 귀하가 전해주는 소식을 보고, 한국에 행운이다, 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읍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그런 타이트한 규제를 뚫고 세계인의 호소에 와닿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욱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한국이 더욱 빛나겠지요. 봉준호감독의 기생충도 중국에서는 상영불가 판정을 받을 것 같은데요. 한국은 중국에 문화콘텐츠를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나쁜 것에도 좋은 게 들어있다고 한한령때문에 중국 이외 다른 시장에 고개를 돌리는 계기가 되었지요. 님의 글은 중국사정이고, 문화콘텐츠 창작하기 어려워지면 한국에 더욱 더 돈을 싸들고 올지도 모르지요. 한국은 영화제작사 덩치도 더 커져야 하고,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자본 60%내지 70%, 외국자본 30%-40% 유치해서 덩치를 더욱 키워야하겠지요. 중국비판, 중국 걱정은 별반 우리에게 도움이 안되겠네요. 중국에 수출할 것을 의식해서 제작하는 것은 게임하나로 족합니다.
백제의 역사에 많은 관심이 생깁니다.또한 매우 중요하다고도 느껴집니다.대한민국이 1945년 해방과 함께 탄생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제대로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것 같아서 안타깝네요.이덕일소장님을 통해서 한국역사학의 문제점을 깨닫게 됩니다.
이덕일소장님 존경합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70평생 관변 재야를 가리지않고 섭렵하고 있지만 이제 중심이 섭 니다 정치인이고 학자들 공히 5000년역사 운운 하는데 정작 사학자란자 들은 왜곡사관에 같혀서 입증도 못하면서 국민들 은 뭔소리인줄도 모르며 5000년만 읍조리는모습 안타까워요 하면 한단고기 위서로 매도하는 학자들 대구빡 은 뭡니까??? 중공이나 일본은 없는역 사도 만드는데 위대한역 사서인 한단고기 연구나 해보고 위서타령하면 밉지나않지 부정하는데 온갖정력소모 하는모습 보면 자괴감이듬니다 위서니 정사니가 아니라 안타까움에 걱정으로 세월보냄니다 ㅎㅎ 네 😭
강단사학자들을 이겨낼방법,축출할방법들을 고민해주시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데 앞장서주시지요. 이박사님 항상 성원합니다. 역사바로세우기 적극실시하여야 할것입니다. 강의 늘 감명깊게 보고, 세기고 있습니다. 위대한한국 바로세우고 세계 최고의 선직국으로 나아가려면 교수님의 역사바로알리기부터 매우 중요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할것입니다. 그게 기본이 되겠지요.
안녕하십니까? 역사 광복을 위해 논력해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심백강 원장님의 강의를 듣다보니 백제가 삼국중에 가장 늦게 멸망했고 원나라 시대까지 사신을 보냈다고 하시는 강의를 본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부분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삼국 통일 시기에 백제 멸망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일본서기, 당서 등의 기록을 잘 요약하여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일본서기에 663년 주류성이 함락될 때 "국인들이 우리 조상들의 묘가 있는 곳을 이제 언제 가볼 수 있겠는가"하면서 울었다는 기사를 소개해 주셨듯이 일본서기에 우리와 관련된 아주 세부적인 내용들이 많이 보입니다. 일본서기가 과장된 것도 있고, 거짓인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듯이 이 책에 있는 내용을 많이 알고 좀더 복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늘 감사히 잘 보고있습니다. 몰랐던 부분을 배울 수 있어서 열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막 업무해주시는 분이 조금만 더 오타없이 신경써주시길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자막을 영상마다 다 달았으면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교수님.
강단사학자들은 언제즘 현실을 인정하고 제대로된 역사를 가르쳐줄까요? 가슴이 아픈 현실입니다. 위대한 대륙백제, 해양백제, 22담로 그 어마어마한 백제의 역사를 다없애고 반도사관으로 왜곡축소하기 바쁜 강단아자씨들 한심합니다. 이박사님 늘 감사드리고 우리나라 역사계에 했불과도 같은 위대한 리더, 그리고 학자이십니다. 성원합니다
일본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부르는 원래 백제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꽤 설득력이 있더군요. 중국에서 보면 백제가 해뜨는 곳의 나라라는 겁니다. 임나일본부라는 말은 그 당시 임나백제부라는 말이랑 같은거죠. 실제 백제가 가야를 그 당시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맞아떨어집니다.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야인천하 낙랑군 이동설이 아니라 애초에 낙랑은 요서에 있었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만리장성이 한반도 중부까지 들어왔다고 우기는 근거가 뭔 줄 아세요? 바로 만리장성의 기점에 낙랑이 있다는 사료 때문인데 한국인 입으로 낙랑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니 어떻게 반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낙랑은 한반도에 없었어요 한반도 낙랑은 일제가 만든 조작이고 낙랑은 요서에 있었고 그 요서에 백제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일본 사람들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왜 " 라는 나라의 정체성이다. 어느 민족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하지 설명하지 않으면서 백제나 가야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일본의 토착민도 아니고 또한 토착민인 아이누족을 지금까지도 차별하며 무시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 그들의 노예처럼 취급 하며 천민 계급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서 고구려 역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제의 역사를 부각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큰 확장성과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만주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지만, 백제는 만주전체(백제는 부여의 계승정신이 강해 이름까지 ‘남부여’ 라고 부를 정도였음), 요서, 산둥, 중국 동해안 전체, 일본 전체, 동남아 일부까지 사방으로 다 확장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제 역사는 지금까지 숨겨져 왔던 보물이며, 이 소중한 보물을 찾아 주신 이덕일 박사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이제부터 라도 백제역사를 발굴하고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삼국사기 천문기록에 초기 신라는 중국안후이성에 있다고 나오고 2021년 아직도 그부근에 신라촌이 절강성,복건성에 존재합니다. 안후이성에 김일제 사당과 후손이 살며 팔공산, 황산, (토)함산등등 신라지역명이 아직도 모두 존재합니다 김교각신라왕자 절도요. 통일신라시 한반도로 수도를 옮긴것이 삼국사기 일식기록으로 확인됩니다
선생님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백강전투에서 왜국이 수 많은 배와 전투병을 보냈다는것만 배웠지 왜 보냈는지 역사 교사들은 안 가쳐 주었어요. 왜국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직도 닛뽄의 아류들이 역사학자라고 주둥이만 나불 거리니 뇌의 구조가 의심스럽습니다. 사실의 역사, 기록의 역사를 무시하고 소설의 역사만 짖어 대니 천불이 납니다. 선생님은 역사 대통령입니다.
제대로된 역사를 밝히려면 문헌사학자, 고고학자뿐 아니라 지리학자,한문학자, 북방계 어학자 등이 모인 융합적인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문헌사학자들이 자신들만이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학계에서 왕따시키거나 유사역사학자로 호도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강단사학을 추종하는 역사관련 유튜버들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면 마치 자신들이 선생인냥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에게 '한수 가르쳐주니 잘 들어'라는 식으로 마치 자신들이 배운 선생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답습하고 있지요. 요즘에는 역사에 관심있지만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인터넷을 통해 많은 문헌과 자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꼴통수구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이를 앵무새처럼 읍조리는 유튜버들ㅇ을 엄정하게 반박하고 올바른 우리역사를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KBS 다큐 백제 22개담로의 비밀과 ua-cam.com/video/lgPeTovH1fI/v-deo.html 흑치상지 장군편 참조해보세요. ua-cam.com/video/W_Ddr5QHGkY/v-deo.html 흑치상지는 베트남 필리핀유역까지 다스리던 흑치지방을 분봉받고 그 지역을 다스리던 흑치집안. 흑치국은 검은 이빨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으로 흑치집안은 원래 부여왕족 성씨를 가지고 있다가 백제황제에 의해 흑치라는 성을 부여받고 그 지역 제후가 된다
이덕일 교수님 질문입니다.... 백제의 왕자 부여풍이 왜에 인질로 가 있었다고 화면 (1:43)에 나오는데 뭔 뜻인지....? 인질이라니요? 원전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아는 인질이란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이 아끼는 자식이나 기타 피붙이를 정치적 담보로 제공하는 겁니다... 일본에 백제의 태자를 인질로....??? 일본에 가 있던 백제 왕가의 인물들은 인질이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감독관이었다고 보십니까?
대한민국사람들은 역사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덕일 교수님과 서길수 교수님, 책보고님을 통해서 말이죠
강단사학에서 전혀 알려주지 않는 진짜 우리 역사를 이덕일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왜곡 축소된 백제의 역사를 다시 써야합니다~ 역사바로세우기에 동참합시다~ 감사합니다...
이덕일 소장님의 우리역사 바로 세우기에 적극 동감합니다!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실제 저런 내용이 있다구요. "백제국이 진나라·송나라·제나라·양나라 시기 부터 양자강 좌안에 웅거하였으며 북위 시
기 부터는 중원을 차지하였다." 自[전치사(개사)]晉·宋·齊·梁據江左[自]後魏宅中原 "북제의 후주가 또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 동청주(동청주는 지금의 산동성 자오저우완 일대로 백제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의미다.)자사로 삼았다." 齊後主以餘昌爲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 지 정확한 내용인 지 잘 모르겠네요
@@그사람-h7y 날조입니다
@@그사람-h7y KBS 다큐 백제 22개담로의 비밀과 ua-cam.com/video/lgPeTovH1fI/v-deo.html
흑치상지 장군편 참조해보세요. ua-cam.com/video/W_Ddr5QHGkY/v-deo.html
흑치상지는 베트남 필리핀유역까지 다스리던 흑치지방을 분봉받고 그 지역을 다스리던 흑치집안. 흑치국은 검은 이빨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으로 흑치집안은
원래 부여왕족 성씨를 가지고 있다가 백제황제에 의해 흑치라는 성을 부여받고 그 지역 제후가 된다
@@모범튜브 되지 않은 얄팍한 지식 여기 저기 쓰지 마시요
백제 관련 연구가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말씀에 가슴이 답답해지네요...우째 이런 일이...이러니 자주성은 상실된 채 강대국 눈치만 보는 자들이 지배층을 이뤄 사익을 추구하고있으니 다수인 민중들이 힘들게 살 수 밖에,.......혁명적인 개혁이 일어나야 전 분야에....
교수님 적은 돈이지만 위 계좌로 후원했습니다.
박사님때문에 대한민국 희망보이네요 이덕일박사님 만세 꼭 건강하세요
패전국이지만 백제도 우리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우리민족중심사고를 가지고 백제사를 복원하는데 열정을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환국-배달국-고조선-북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도도한 역사를 하루 빨리 정립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사서에도 언급없는)
중국이 고무줄장성을 고구려 박작성,
평양,한강으로까지 그려놓는 순 날조
심지어 김치공정까지 되버린
중화주의만화 역사왜곡에 대응해서라도
오히려 실제 사실인 외백제 내백제
즉,대륙 해양백제강역은 복원해야하는것.
그리고 종로 한복판에 좌파근현대사 왜곡을
바로잡는 구심점으로 경제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동상과,
경상,전라도 북한통합 삼국 상징으로 을지문덕,김유신, 계백장군 동상도 세우기를
추천함.
철원에 후고구려 수도를 놓고
민족과 신라왕족을 한축으로 등용했었던
고려에 국권이양,
(신라 복원 후속들은 북만주가서 금,청나라 세움)
고려로 이미 삼국재통일 했는데
언제까지 나당전쟁으로 당나라 쫒아낸
신라 비판만 할련지.
신라가 통일한 북방지역도
(이덕일 사학자님 말데로)요녕성 심양일대였음.
그런데 왠 발해신라 남북국 시절 신라의 영토를
평양이남이라 하는 강단사학.
실크로드의 끝이 분명 경상도경주 신라인데
만일 발해 신라간 맞닿은 국경선이 평양이남으로 국경선이 황선이면
신라북방과 중앙아 루트가 발해에 막혀있게
되는데 서역인들이 어떻게 육상루트로 신라까지
왕래 할까요? 즉 태백산맥을 경계선으로 함경남북
또는 평안남북도 위로 넘어 만주일대 중앙아
루트로 이어지는 어디쯤까지가
신라영역인것으로도 추정이 가능한데.
그런 신라영토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고려의 영토도 당연히 만주일대를 포함했었고
서희가 거란과 담판외교로 되찾은 강동6주가
만주일대인데 왠, 고려 북방이 또 평양이남?
(적어도 불교전래가 가야 허왕후때
민전불교로 충분히 수용이 되있었다것을
알수가 있는데)
저러니 불교전래조차 그보다 몇백년 늦은
고구려 소수림왕때라고 말함.
등잔밑조차 어둡게 바보만드는 얼치기 사학자들.
(고조선 멸망후 잊혀진 지역이나
단군의 둘째 지루일파들이 가서 세운 수도
서검성은 심양이라함. 옛 지명이 봉천
임 또한 밝혀지기를.
단군의 장남인 부루가 이어받은 고조선 수도는
왕검성은 현 북한 평양.
이탈리아 로마, 동로마 콘스티노플
몽골 본 수도가 울란바토르, 북경과 같은
2개의 경우)
고려의 본수도는 지금의 북한 황해도
구월산 일대.
참고-도선국사는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하면서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물었다. 도선이 "천년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삼각산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황급히 "아, 아니오. 삼각산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고 말했다고 한다.-풍수도참설로
고려 수도가 어딘지 이미 판명됨.)
당하는것도 반복하면 습관된다고 하지요.
역사의식에 관한 소유의식 소견머리가
좁으니 안보 영토의식이 그런것입니다.
한 인간을 봐도
똑같은 사람일지라도
기억을 잃으면 다른 의식,다른행동 다른 사람이 되듯이 그래서 일제가 역사기억,말의 기억을
지웠던 겁니다.
설령 일본이 ,중국이 물러갔어도
이런 역사왜곡 말의 왜곡으로 잔재가 남으면
자동 식민지가 되는겁니다.
일본은 35년간 식민지때
역사,언어를 조작을 하였지만
그보다 더한 고조선이하 역사 조작은 중국이 해옴.
ex: 한가위,한강 ..'한'이라는 단어는 고유어로
크다라는 의미인데, 한자로 음차한
우리말들을, 한자발음으로 약속한
같은 동음은 전부 한자인양 둔갑시킴.
그러니 '한'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한' =크다라는 의미로 두는게 아니고
그렇다고 한(韓)이라고 쓰는것도 아니며
중국 한(漢)족 연상하듯
큰강=한가람=한강을 한(漢)강으로,
차타고 가면 기분 드럽게 보이는 표시판이
한강(漢)대교으로 쓰질않나.
삼각산을 북한(漢)산으로 변조.
고무줄장성 한강까지 해주려고? 없었던것조차?
반대로 대륙의 백제,고구려 지명은 중국은 없애고
사실과 거짓,주객이 전도됬음.
저런 왜곡들이 통하니
중공이 파로호 개명요구를 하질않나 그런겁니다.
한국(정치)인들 정말 눈앞에것만 봅니다.
이런 주제의식,문제의식 논하는 부류가
돈키호테 취급이나 받아야하니
도대체 누구의 의식이 정상입니까?
김치공정 당할때나 체감적으로 느끼시나?
일제가 고작 35년이었는데
중국이 고조선 이후 수천년간 조작은 더했겠지요.
그래서 한국인들의 공통 사회의식 시작점이라
볼수있는 역사 사회적 기억을 조종하는 사학자,언론인들의 책임이 어찌보면 더 크다고도 볼수 있죠.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이렇게 썼다.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
《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일본사가 백제사와 한국사의 토대가 될수없으니
반한친일 일본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외에는 90%이상을 친중사학으로
변조하는것이고)
정확히 말해선 대부분 친일이든 친중이든
결과적은도 역사왜곡은 겉은 일제식민 사학자들로 위장해선 속은 친중중화사관으로 대부분
변조하는 사학계의 친중부역자들이죠.
이들이 그렇게 좌파진영, 종북주의로 위장해선
근현대사는 반일이승만 극일박정희를 마치 친일파로 묘사하며 좌파사학으로 왜곡하는것이고요.
반면 방관적 친일하면서 국민당 쫒아내고 정권탈취한 중공에 대해선 마치 반일독립운동이며 반일의 거점인양 찬양하는 좌파들의 이념 역사관.
이런 사학자들이 언론계로 정치권으로 내려가면서
지식과 자금의 스폰서가 되니
정치권의 안보,외교의식이 반민족친중,
탈대한민국 종북주의 근현대사 이념 사상만 설치는것이며
각국이 국제이슈에 머리맞대고 세상 지분을 논할때 자국민 안전 국가밥그릇 의견 제시에도 아무관심이 없고 과거의 기억은 잃어버린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그저 아무때나 동방예의지국,
도전을 해야할땐 조용한 안개낀 아침의 나라로 그냥 있자고 하는것이 그간의 정치권 풍토
인식이었던 원인이 아닌가 함.
그러니 저런 외교관,정치인들 백날 있으면 뭐해.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이 사람은 일본인 댓글러 같기도 하다.
그건 당신들이 열등감이니
일본,중국이 신나게 한민족사를 조작했는데
뭔 역사열등감?
이에 관해선 동아시아 역사학자이신 고 존 카터 코벨 박사 저서들 참고하시도록.
(일본과 연관성은 말할것도 없고 입만 아픈.)
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mjin1&logNo=222079871357&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daum.net%2Fsearch%3Fq%3D%25EC%25A1%25B4%2520%25EC%25B9%25B4%25ED%2584%25B0%2520%25EC%25BD%2594%25EB%25B2%25A8%26w%3Dtot%26nil_profile%3Dsuggest%26DA%3DGIQ%26rq%3D%26sq%3D%25EC%25A1%25B4%25EC%25B9%25B4%25ED%2584%25B0%26o%3D3%26sugo%3D10
그렇게들 대개 착각하기도 하지.
삼국이전에 구석기 청동기를 포함한 한반도 에서의 인간군집 문화형성권은 생각은
전혀 안하고 그저 한반도는 좁고,
대륙은 넓으니 대륙에서만 문화 문명 수도가 형성됬다. 이런착각들 하는데,
(몰라서 그럴수도 있는데
한반도 역사증발을 시키려고 고의적으로
대륙중심 시각으로 그러는 부류들이 있음.)
심지어 삼국이 한반도 일대에 없었다는식.
심지어 고려,조선까지.
소위 친중사학이 안되면 대륙중심사학.
그러나 조금만 살펴봐도 답이나오거든.
조선 : 무학대사 이성계의 조선 수도 비정 지역
삼각산,인왕산 관련 경복궁터 일치.
고려 :구월산 삼각산 수도 관련 일화
도선국사 왕건 한반도 황해도 구월산 일대 개경 일치.
이후 후고구려 철원지역에서 수도 발굴.
ua-cam.com/video/GwjAnxea-eo/v-deo.html
백제 : (아직 의견이 분분하나)
백제 풍납토성 발굴.
ua-cam.com/video/zPiVnIWFm_w/v-deo.html
역사정설데로 비류와 온조가
한강일대로 남하 온조는 하남을
비류는 미추홀을 택함
수도가 하남인지 풍납토성인지 역사적
의견은 분분.
ua-cam.com/video/vK4EXVfETeM/v-deo.html
중국 동부대륙일대 요서지방이
이들과 합쳐져 훗날 백제라 칭함.
이게 정설이겠지.
백제수도는 한반도 송파일대 풍납토성
고구려에 침공당해 빼앗겨 충청도 공주로 수도
이전 남하.
만일 백제 수도가 요서지방이면
소정방이가 수도 공략으로 요서를 공략해서
거기에 흔적을 남겼겠지 부여에서
정방뜰(소정평)을 남기나?
사실 이건 조선총독부처럼 부셔야할 가치지만
오히려 이것이 (한성백제 수도이남후)백제의 수도
일대였음을 반증하는거겠지.
즉, 님은 한반도에 어떻게 삼국 수도가 있을수
있느냐. 대륙이 더 넓은데? 이런 식민,대륙중심
고정관념 인식을 전제로 깔고 말하는것.
그러나 조금만 살펴봐도 삼국 유물,증거들이
한반도에 있었던건 기본이고 수도 한반도와
그 일대인건 밝혀진건데
일례로 한반도 경주가 수도가 아니면
실크로드 종착지 끝인 경주까지 왜오나?
그리고 황금보검이 왜 나올까?
그리고 황룡사 9층석탑 기단이 경주에 흔적이
있음.
고구려는 첫수도는 한반도 인근 만주 국내성이고
후고구려는 철원,고려는 황해도 구월산 일대 개경.
@@zzz1936 문장 꼬라지 보니까 학력이 짐작이 가네요 ㅉㅉ
@@모범튜브
저렇지. 저런 한국인 가장한 익명댓글러들.
핵심을 말해야지 할말 없으니 말투를 가지고
인신공격 말꼬리나잡고 학력운운하나?
진실성,진정성이 없으니 태도바꿔서
느닷없이 학력,학식 운운하며
본인은 자못 예의차리듯이 정제된 왜곡을
하며 가증스런 당신 말투,문장이나 바로 보세요.
당신 지식이 알면 세상 얼마나 알까?
차라리 통찰력 좀 기르시길.
느닷없이 학력 운운하면서
가증스럽게 거짓 학식으로 얼치려
하지말고 진정성을 갖고 말하시오.
강단의 일본간첩들을 한 놈씩 축출해야.
이덕일 선생님 감사합니다...역사 공부를 새로하고 있습니다....강단사학회를 혁신해야 한다....
임나 본부설은 진짜 말도 안되는 이야기네요
강의 감사합니다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얘 왜이러냐? 중국역사서에 대륙백제가 나온다는데 니 망상이 심하다.
중국 사서에 나타난 백제 관련기록
○ 자치통감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백제는 진(晉)대부터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 구당서 “백제의 영토는 남으로는 바다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른다.”
○ 북사 “백제국이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 주서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의 좌안을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 때는 중원을 차지했다.”
○ 만주원류고 “금주, 의주, 애훈(중국 동해안 지역) 등지가 다 백제이다.”
@@Jangjaehun "북사" "주서"에는 실제 저런 내용이 없다구요
날조 까지 해서 판타지를 실현시켜야 되겠습니까? ㅋㅋㅋㅋㅋ
@@모범튜브실제 저런 내용이 있다구요. "백제국이 진나라·송나라·제나라·양나라 시기 부터 양자강 좌안에 웅거하였으며 북위 시
기 부터는 중원을 차지하였다." 自[전치사(개사)]晉·宋·齊·梁據江左[自]後魏宅中原 "북제의 후주가 또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 동청주(동청주는 지금의 산동성 자오저우완 일대로 백제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의미다.)자사로 삼았다." 齊後主以餘昌爲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 지 정확한 내용인 지 잘 모르겠네요.
@@그사람-h7y 날조라구요
역사는 진실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는전제아래 우리의역사가 올바르게 되돌려지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아있는 역사강의 잘들었습니다.
대륙백제, 백제의 패망과정과 일본역사의 허구성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망상 이런자들때문에 오늘날 중국이 대담하게 만리장성을 한반도까지 끌어내려 그리고 초창기엔 자기것이 아니라고했던 홍산문화를 지금에와선 차이나 유적이라 하지
@@JH-ih7eg 진실은 불편한 법이죠
그리고 만리장성은 나의 주장과는 전혀 무관한데 뜬금없이 왜 튀어 나온걸까요? ㅋㅋ
만리장성의 기점은 산해관이 맞습니다
산 산해관 동북 방향에 갈석산이 있고
갈석산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죠
그 낙랑 대방 땅 요서에 백제가 있었습니다
뭐 지금 주제는 그게 아니니까 이건 이정도로만 알고 계시구요
백제가 요서에서 한반도 중부로 밀려났다는것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다는것
군사를 얻기 위해 야마토왜에 수많은 인력들이 넘어가면서 야마토왜의 정권을 백제계가 잡았다는것
가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선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햇다고 주장하는건 말이 된다는것
이거 모두 역사적 팩트라는것만 알아두세요 ㅋㅋ
진실을 마주하는것도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모범튜브 망상을 꽤 재미있게 하시네요. 칠지도 하나만 봐도 끝나는 얘기 아닙니까? 어떤 신하가 왕한테 칼을 하사합니까?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겁니다. 문체도 딱봐도 일본 번역체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한글공부 빡시게 한듯하네요.
@@모범튜브 중국 사서에 나타난 백제 관련기록
○ 자치통감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백제는 진(晉)대부터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 구당서 “백제의 영토는 남으로는 바다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른다.”
○ 북사 “백제국이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 주서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의 좌안을 진대로 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 때는 중원을 차지했다.”
○ 만주원류고 “금주, 의주, 애훈(중국 동해안 지역) 등지가 다 백제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발전하고 세계적이 되어가는데 역사만 그대로구나 언제 중국이 쪼개질지 북한이랑 통일할지 모르는데 이러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가는 그 중요한 때가 왔을 때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걱정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한반도의 재출발은 누가 뭐라해도 남북통일임을 님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북한의 역사관은 이덕일님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광대하면 광대하지 덜하지 않읍니다. 남북통일되면 남북한 역사학계간 대논쟁이 붙을 것이고 남한의 역사학자들은 일종의 숙정작업 대상이 되도록 대한민국은 설계되어 있읍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강단사학자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지금" 마음컷 뛰놀라하십시오. 놀음을 멈추어야할 날이 다가오니까요. 진정한 삼한의 관경을 걸고, 통일한국은 중국과 격돌하게 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지지 않읍니다. 일본은 불행히도 남북한이 통일되어 삼한관경을 다시 차지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열도침몰에 빠질 것 같군요.
@할말은 하고 사는 강아지 모든 한국인은 대범하고 대담하고 대담무쌍해져야 한다. 과거 침략을 받은 역사때문에 한국인은 외세가 들어오는 데 대하여 지나치리만치 거부반응을 보인다. 첫째, 중국 자본이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중국식 영화를 팍팍 찍어냈는데, 할리우드가 그래서 중국으로 넘어갔는가 ? 둘째, 인도 볼리우드도 있고 나이지리아 영화산업도 있고, 기타 국가들도 있는데 왜 유독 한국에 투자하는가 ?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하기위함인가 ?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고려는 벽란도가 있었다. 조선은 개항장이 없었다. 조선에 개항장이 하나만 있었어도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문화이던 경제이든 융성한 곳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는 것은 자고이래의 인간 본성에 속한다. 50억투자받고 중국어 한마디해주는게 그렇게 배알이 꼴린가 ? 누가 승리호를 중국영화로 간주하는가 ? 역사의 중심지는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물자와 인력, 문화, 이런 것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지역이지, 거기에 돈좀 출자했다고 해서 출자한 나라가 문화의 중심지가 되지 않는다. 나는 기원한다. 이번 승리호 성공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2천만불이 아니라 정말 2억불짜리 대작이 만들어지기를. 그 영화에 중국인 배우가 출연해서 중국어로 이야기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산업이 글로벌 체인으로 가동되는 요즘, 왜 영화만 순수혈통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 중국이 한국 문화콘텐츠를 장악가능한가 ? 무엇으로 장악가능한가 ? 돈과 사람으로 장악하는 것인데 그들은 돈은 있지만, 인적자본은 없다. 중국이 설령 영화제작비의 70% 자본을 댄다고 해도 상관없다. 계약만 잘해서 수익금은 한국이 70% 갖도록 계약하면 된다. 문화콘텐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거대한 문화콘텐츠 기반이 "한국에" 갖추어지게 된다. 중국어를 80%이상 구사가능한 중국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되는가 ? 대찬성이다. 중국영화가 이제는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시대가 된다. 한국은 문화콘텐츠 제조중심국으로 부상한다. 아이폰 설계는 캘리포니아, 제조는 중국인데, 영화라고 스토리, 각본등은 다국적, 제작은 한국, 이러면 안되는가 ? 결론 : 문화란 강탈할 수 없는 무형의 요소이다. 사회현상에서 문화가 나오는 것이지 돈에서 문화가 나오는 게 아니다. 대결론 : 한국인은 더욱 대담무쌍해져야 한다. 구글 : 야후를 표적으로 카피해서 사업시작한 것 아닌가 ? 하나는 대만인, 하나는 유대인, 승리는 뻔한 것. 넷플릭스 : 유트브와 그렇게도 다른 것인가 ? 니콜라 : 현대자동차 카피한 것 아닌가 ? 테슬라 : 테슬라가 전기차 처음 만들었나 ? 아이폰 : 이미 존재하던 터치판넬 기술 훔쳐다가 만든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 중국 텐센트는 카피를 해도 크게 성장한 것은 내수가 크기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나는 국수주의를 극도로 혐오함.
@할말은 하고 사는 강아지 영화라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논하는데 왜 정치체계가 등장하고 쇼를 부립니까. 중국의 그런 문제 모르는 사람 어디있읍니까. 정말 할 일도 없으시네요, 상식적인 것을 그렇게 길게 적어내고........... 그런 정치체제가 승리호, 나아가 2억불짜리 정말 대작영화랑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요 ? 한국 영화계가 중국 사상을 대변하는 창구로 변질될 것 같은지요 ?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할말은 하고 사는 강아지 나는 귀하가 전해주는 소식을 보고, 한국에 행운이다, 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읍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그런 타이트한 규제를 뚫고 세계인의 호소에 와닿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욱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한국이 더욱 빛나겠지요. 봉준호감독의 기생충도 중국에서는 상영불가 판정을 받을 것 같은데요. 한국은 중국에 문화콘텐츠를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나쁜 것에도 좋은 게 들어있다고 한한령때문에 중국 이외 다른 시장에 고개를 돌리는 계기가 되었지요. 님의 글은 중국사정이고, 문화콘텐츠 창작하기 어려워지면 한국에 더욱 더 돈을 싸들고 올지도 모르지요. 한국은 영화제작사 덩치도 더 커져야 하고,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자본 60%내지 70%, 외국자본 30%-40% 유치해서 덩치를 더욱 키워야하겠지요. 중국비판, 중국 걱정은 별반 우리에게 도움이 안되겠네요. 중국에 수출할 것을 의식해서 제작하는 것은 게임하나로 족합니다.
백제의 역사에 많은 관심이 생깁니다.또한 매우 중요하다고도 느껴집니다.대한민국이 1945년 해방과 함께 탄생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제대로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것 같아서 안타깝네요.이덕일소장님을 통해서 한국역사학의 문제점을 깨닫게 됩니다.
공감 동감 합니다 감사합니다
1960년도경부터 이덕일교수의 재야사학자의 학술이론과실제를 학계와 언론계를 통하여 잘 알고있었습니다 학자로서의 기개와 지조 주장이 그대로입니다 존경합니다 국사학회에 영원히 기록될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통해 진실을 알고
다지고 있습니다
역사바로잡기 후원회를 만들고 싶네요. 역사는 반드시 후손들애게 바르게 명과암을 알려야합니다.
대한민국 독립투사 이덕일박사 만세만만세 박사님 건강하세요
이덕일소장님 존경합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70평생 관변 재야를
가리지않고 섭렵하고
있지만 이제 중심이 섭
니다 정치인이고 학자들
공히 5000년역사 운운
하는데 정작 사학자란자
들은 왜곡사관에 같혀서
입증도 못하면서 국민들
은 뭔소리인줄도 모르며
5000년만 읍조리는모습
안타까워요
하면 한단고기 위서로
매도하는 학자들 대구빡
은 뭡니까???
중공이나 일본은 없는역
사도 만드는데 위대한역
사서인 한단고기 연구나
해보고 위서타령하면
밉지나않지 부정하는데
온갖정력소모 하는모습
보면 자괴감이듬니다
위서니 정사니가 아니라
안타까움에 걱정으로
세월보냄니다 ㅎㅎ 네 😭
이덕일 소장님 응원함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건강잘챙기세요 ~👍👍👍👍👍👍👍👍
한국의 고조선지역에서 청동기문명이 번성할 떄(고조선지역 청동기시대,홍산청동기 bc3500년,아시아최초) 일본은 원시사회(석기시대)였습니다.일본이 백제로부터 영향받아 청동기시대에 진입한 것은 ad400년으로 일본은 한국보다 청동기시대가 3900년 뒤집니다.중국은 bc1600년으로 한국보다 1900년이 뒤집니다.
강단사학자들을 이겨낼방법,축출할방법들을 고민해주시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데 앞장서주시지요. 이박사님
항상 성원합니다. 역사바로세우기 적극실시하여야 할것입니다. 강의 늘 감명깊게 보고, 세기고 있습니다. 위대한한국 바로세우고 세계 최고의 선직국으로 나아가려면
교수님의 역사바로알리기부터 매우 중요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할것입니다. 그게 기본이 되겠지요.
그들을 강단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치운동이라서 시민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정부와 유력 후보에 요구해야함
박사님은 연구성과로 그들 이론을
무력화시켜야함
그간 우리는 백제 역사를 너무 과소평가해왔습니다.
해상활동과 교역의 선구자 백제 역사에 등장하는 장개석까지 흥미롭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 건강하세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활동하셨으면 좋겠어요.
동영상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사님 응원합니다. 교수님들은 식민사관 달달 외워서 학생들 가르치지 말고 중국의 25사 연구 제대로 해서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역사 제대로 가르칩시다.
고구려의 진취적인 다물 정신을 이어받읍시다.
소장님이 써야할 책이 한권 더 늘어난것 같습니다. ㅎㅎ
안녕하십니까?
역사 광복을 위해 논력해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심백강 원장님의 강의를 듣다보니 백제가 삼국중에 가장 늦게 멸망했고 원나라 시대까지 사신을 보냈다고 하시는 강의를 본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부분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항상 이덕일 선생님 응원합니다. 힘드시더라도 일본 식민사학과 꿋꿋이 맛서주시기를!
삼국 통일 시기에 백제 멸망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일본서기, 당서 등의 기록을 잘 요약하여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일본서기에 663년 주류성이 함락될 때 "국인들이 우리 조상들의 묘가 있는 곳을 이제 언제 가볼 수 있겠는가"하면서 울었다는 기사를 소개해 주셨듯이 일본서기에 우리와 관련된 아주 세부적인 내용들이 많이 보입니다. 일본서기가 과장된 것도 있고, 거짓인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듯이 이 책에 있는 내용을 많이 알고 좀더 복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런데 그건 일본서기에서는 주인공이 왜고 조공을바치던 백제인들이 그리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상 그들조상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황상 그들의 조상이죠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식민강단사학의 대변인이군요
@@임병영-s9k 강단 식민사학자들이 야마토를 가야계가 세웠다고 가르치나보죠?
대한민국엔 뇌가 망가진 앵무새들이 넘쳐 납니다 님처럼요
늘 감사히 잘 보고있습니다. 몰랐던 부분을 배울 수 있어서 열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막 업무해주시는 분이 조금만 더 오타없이 신경써주시길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자막을 영상마다 다 달았으면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교수님.
백제는 고대 해양 국가.
로마에 비견할만큼 백제사는 위대했다는
사실. 동아시아에서 인도 남방까지 이어지는
위대한 국가.
이덕일 선생님 응원합니다
방송등을 통해 쫌더 공론화가 이뤄져서 제대로된 역사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감사드립니다!
좋은 공부 감사합니다
역사를 올 바르게 바꾸는 것, 나부터 시작 하고 참여 해야 겠습니다.
이덕일 박사님 우리와 함께 역사가 바르게 될떼 까지 같이 갑시다.
특히 일본 역사가 왜곡 되지 않고 바른역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 합시다.
임나 일본부가 아니라.
임나 백제부 같은데요. 대륙에서 한반도를 경략하고 세운 담로 중 하나를 직영으로 거느린 안동도호부 같은 임나 백제부를 일본부로 기록한 것으로봅니다 .
응원합니다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역사 바로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응원합니다~
강단사학자들은 언제즘 현실을 인정하고 제대로된 역사를 가르쳐줄까요?
가슴이 아픈 현실입니다. 위대한 대륙백제, 해양백제, 22담로 그 어마어마한
백제의 역사를 다없애고 반도사관으로 왜곡축소하기 바쁜 강단아자씨들
한심합니다. 이박사님 늘 감사드리고 우리나라 역사계에 했불과도 같은
위대한 리더, 그리고 학자이십니다. 성원합니다
박사님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바른 나라가 될지~ 답답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이덕일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변해 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ㅎ
멋집니다!
선생님 수고많으십니다 꾸뻑
항상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합시다.
우리가 깨어납시다!
감사합니다 일본 건국이 궁금했는데 오늘 670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교수님 한국통사 구매 완료, 배송기다리는중,
잘보겠습니다 ㅎㅎ
조상님들이 위대한역사를 지금까지도 몰라 있으니 얼마나슬픈가.참으로 안타깝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역사공부 처음부터 다시해야 합니다 역사를모르면 나라가망한다!! 소식 감사합니다 ~^^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잘 보고 갑니다...
일본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부르는 원래 백제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꽤 설득력이 있더군요. 중국에서 보면 백제가 해뜨는 곳의 나라라는 겁니다.
임나일본부라는 말은 그 당시 임나백제부라는 말이랑 같은거죠. 실제 백제가 가야를 그 당시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맞아떨어집니다.
예군의 묘 발견으로 밝혀졌죠...한국사학이 조용한 이유를 모르겠음..일본학자가 일본은 백제를 뜻하는것이라 말했는데...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보아하니 쓰레기 국내 사학과에서 사쿠라 교수들이 싸지르는 걸 그대로 맹신하시는 티가 팍팍 나네요. 이래서 점수맞춰서 가는 애들이 사학과에 가면 안되는겁니다.
@@clumsymm 국내 사학과 교수들이 일본을 가야계가 세웠다고 가르치나보죠?
국내 사학과 교수들이 일본의 건국신화와 가야의 건국신화가 같다고 가르치나 보죠?
다른 의견이 있으면 반론을 하면 되는거지 하나같이 반응이 왜이렇게 저열하지?
이러니 맨날 당하는거지 ㅋㅋㅋㅋ
@@모범튜브 저도 가야와 왜- 일본은 밀접한 관계가있다고 봅니다. 현대일본어는 옛가야어를 기본으로 할수도있나요? 아님 백제어?
이 나라 역사교육은 '경성제국대학 사학과'가 아주 박살을 내 놓았다는...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장개석의 동서인 손문 역시 광동성(홍콩옆 중산)출신으로 그 역시 백제의 후예라 했으니
광동성 진평이 백제의 행정구역이었음(지금은 백제허)
와 대박이네요
잘보았읍니다
건의사항: 화면시청시,, 이덕일박사님은 우측으로 이동!!화면 1/2(좌측)은 지도를 걸고
지도를 보면서 역사강좌를 쉽게 이해되도록 편집 또는 촬영해주시면 고맙습니다!!
마오쩌둥 : 거 요동은 원래 조선 땅이래두
대한민국 : 조선은 압록강에서 두만강이 강역이라니깐
중국 주은래총리는 1963년 6월28일, 간도,만주는 조선 땅 이라고 말했어요, 기자조선으로 중국사학자들이 왜곡하는 것을 비난했어요, 기자조선은 가짜입니다,
@@인성-g1t 기자조선이 가짜라기 보다는 기자가 동이족(조선족)이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 모든 사단은 동이족이 중국인이라고 하는 문제에서 시작하는 거죠.
대한민국이 그랬는게 아니라 김일성이가 그랬는데...
백강 전투는 국사책에 문장으로는 없고,
옆에 지도 도표에 백강전투 라고 작게 적혀 있었음
존경합니다
교수님.잘가르쳐주세요
백제에서 볼때 해가 뜨는곳이 일본이니 그 국호도 백제가 만든거죠.
상식과 순리대로 보니 왜곡되었던 역사가 풀리네요.
백제 배신자 웅진성주 예식진의 묘지석에 백제를 일본으로 부른 기록이나옵니다 백제가 일본이란 예칭으로 불렸습니다
윗분 말대로 예군의 묘(예식진과 형제) 발견으로 일본국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혀졌음..백제유민을 일본으로 칭함. 생각해보면 그당시 당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했으니 백제가 중국대륙에서보면 해가 뜨는곳임..
한반도 백제가 대륙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 했다는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망상이구요
요서에서 쫒겨난게 한반도 백제 입니다 (요서,요동은 대륙으로 부르기도 뭐하죠)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한반도 백제 안의 22개 읍을 말하는것이지 해외를 통치했다는 문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야마토 왜는 가야계가 세운 정치체이고 백제가 정권을 잡게 되는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을 제후국으로 표현하는거 또한 망상입니다
백제가 최초로 왕자를 야마토에 보낸건 396년 광개토왕에게 처참하게 발린 다음 해 (397년) 이므로 군사를 요청하기위한 인질이 명백합니다
일본 열도의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세운 나라이므로 369년 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은
일본으로 넘어간 가야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요서에 있던 백제가 밀려나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았고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가야계가 야마토왜를 세웠으며
군사를 빌리기 위해 백제에서 많은 인력들이 야마토 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백제계가 야마토의 정권을 잡게되고
한반도 백제가 완전히 망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국호를 고치게 되었다
일본열도에는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다 있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가야이므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가 같으며
천황가에서는 한신 제사를 지낼때
韓神(한신)을 쿠다라(백제)카미(신)이 아니라 카라(가야)카미(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한반도 남부 가야(임나)를 자신들이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범튜브 낙랑군 이동설에 이제는 백제 이동설까지 어딘지 알만하네!
@@야인천하 낙랑군 이동설이 아니라 애초에 낙랑은 요서에 있었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만리장성이 한반도 중부까지 들어왔다고 우기는 근거가 뭔 줄 아세요?
바로 만리장성의 기점에 낙랑이 있다는 사료 때문인데
한국인 입으로 낙랑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니 어떻게 반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낙랑은 한반도에 없었어요 한반도 낙랑은 일제가 만든 조작이고 낙랑은 요서에 있었고
그 요서에 백제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한국의 지역색 또한 일본의 식민사관이 만들어놓은걸 한국의 정치인들이 계승한거네요?
도대체 일본 사람들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왜 " 라는 나라의 정체성이다. 어느 민족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하지 설명하지 않으면서 백제나 가야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일본의 토착민도 아니고 또한 토착민인 아이누족을 지금까지도 차별하며 무시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 그들의 노예처럼 취급 하며 천민 계급으로 인식한다.
몰랐던 사실을 점점 알게되니.. 재미있는데..
🙏
지지합니다
저는 흑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의
사진을 베트남에서 봤네요
사진을 보고 이빨에 대해 물어 보니
요즘은 거의 없어 졌지만
몇십년 전 까지도 있었다 하네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서 고구려 역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제의 역사를 부각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큰 확장성과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만주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지만, 백제는 만주전체(백제는 부여의 계승정신이 강해 이름까지 ‘남부여’ 라고 부를 정도였음), 요서, 산둥, 중국 동해안 전체, 일본 전체, 동남아 일부까지 사방으로 다 확장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제 역사는 지금까지 숨겨져 왔던 보물이며, 이 소중한 보물을 찾아 주신 이덕일 박사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이제부터 라도 백제역사를 발굴하고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차산 보루터에서 옛날 검을 주워 그걸 빼빠로 대충 녹을 제거하고 갖고 놀던 생각이 나는데 나중에 거기가 보루터라 하길래 이상하게 사기 그릇들이 나올길래 왜 이런것 나오나 했지요
천문으로 보면 고구려는 몽골땅에 있었고 백제는 북경지역에 있었다 합니다
맞습니다.한수漢水는 은하수가 흘러가는 강 황하강이죠.고대 요동이 바로 황하가 흘러가는 살수 즉 노란강입니다.투르크어죠.
삼국사기 천문기록에 초기 신라는 중국안후이성에 있다고 나오고 2021년 아직도 그부근에 신라촌이 절강성,복건성에 존재합니다. 안후이성에 김일제 사당과 후손이 살며 팔공산, 황산, (토)함산등등 신라지역명이 아직도 모두 존재합니다 김교각신라왕자 절도요. 통일신라시 한반도로 수도를 옮긴것이 삼국사기 일식기록으로 확인됩니다
쿠슈의 흑치가 백제의 '서부'사람이 되려면...
나라가 백제의 중심이라는 건가요?...
그건 잘못된 해석입니다. 식민 자학사관도 문제지만 비과학적인 해석오류로 이런 얘기를 하면 오히려 공격 당합니다.
청화수란 분이 저 대신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놨으니 한번 보세요.
너무 비약적인디요
선생님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백강전투에서 왜국이 수 많은 배와 전투병을 보냈다는것만 배웠지 왜 보냈는지 역사 교사들은 안 가쳐 주었어요. 왜국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직도 닛뽄의 아류들이 역사학자라고 주둥이만 나불 거리니 뇌의 구조가 의심스럽습니다. 사실의 역사, 기록의 역사를 무시하고 소설의 역사만 짖어 대니 천불이 납니다. 선생님은 역사 대통령입니다.
제대로된 역사를 밝히려면 문헌사학자, 고고학자뿐 아니라 지리학자,한문학자, 북방계 어학자 등이 모인 융합적인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문헌사학자들이 자신들만이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학계에서 왕따시키거나 유사역사학자로 호도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강단사학을 추종하는 역사관련 유튜버들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면 마치 자신들이 선생인냥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에게 '한수 가르쳐주니 잘 들어'라는 식으로 마치 자신들이 배운 선생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답습하고 있지요. 요즘에는 역사에 관심있지만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인터넷을 통해 많은 문헌과 자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꼴통수구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이를 앵무새처럼 읍조리는 유튜버들ㅇ을 엄정하게 반박하고 올바른 우리역사를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잖아요? 역사 교육 의무도 아니고~
제일 좋은 방법은...이런 것들을 재해석 다큐가 제일인데 말입니다.~ 아쉽네요~
강의에서 말하고 있다시피, 일본서기의 백제 관계 기사의 상당부분은, 우리의 역사를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소장님 백강 백촌강을 어디로 보시는지요?
백제사는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흡수중입니다. 고구려도.
일본에 고구려, 백제 왕조 후손들과 귀족들이 현지귀족과 결혼해서 왕가와 지배층 귀족을 이루었으므로 형제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복원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서 중국대륙의 백제사, 고구려사까지 찾아와야합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이고 전남 전북쪽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해야되는데 발전없이 역사에 묻히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젊은 사학도들이 움직여야하는데...
흑치상지 아들 흑치준 묘지명에 흑치씨는 부여씨서 갈러져 나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어떻게 된건지?
원래 왕족부여씨나 이빨이 빈랑열매를 씹고 검정색이된 부족 중국 백제향쯤 태국위쪽에 있었기에 흑치라 불렀습니다 패망백제후예 일본기생도 검정이빨을 아름다움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흑지상지는 백제사람이 아닌가요? 아니면 중국 백제향이 백제땅인가요?
흑치국에 봉해졌기 때문에 흑치씨 를 준거죠. 흑치국 출신이란 소리가 아니죠.
고대 로마에서 야만인들의 영토를 정복한후, 그 봉지의 이름을 따서 사람이름을 지은거 처럼.
Germanicus 처럼 말이죠. 로마인이지, 게르만족 출신 아닙니다.
KBS 다큐 백제 22개담로의 비밀과 ua-cam.com/video/lgPeTovH1fI/v-deo.html
흑치상지 장군편 참조해보세요. ua-cam.com/video/W_Ddr5QHGkY/v-deo.html
흑치상지는 베트남 필리핀유역까지 다스리던 흑치지방을 분봉받고 그 지역을 다스리던 흑치집안. 흑치국은 검은 이빨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으로 흑치집안은
원래 부여왕족 성씨를 가지고 있다가 백제황제에 의해 흑치라는 성을 부여받고 그 지역 제후가 된다
라오스 베트남에도 흑치 풍습이 있습니다.
소장님 항상 감사하게 잘보고 있습니다. 다른 자료를 보다가 선덕여왕(재위632~647) 황룡사 9층 목탑에 층마다 주변 나라를 표시해두었다고 하는데요. 1층에 일본이라고 되어있다고 하는데요. 일본이란 국호가 670년에 생겼다고 하셨는데 이해가 안되서 여기에 여쭙습니다.
백제를 더 알고싶습니다
처음으로 10000원 후원했다^^
이덕일 교수님 질문입니다....
백제의 왕자 부여풍이 왜에 인질로 가 있었다고 화면 (1:43)에
나오는데 뭔 뜻인지....? 인질이라니요? 원전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아는 인질이란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이 아끼는 자식이나 기타 피붙이를
정치적 담보로 제공하는 겁니다...
일본에 백제의 태자를 인질로....???
일본에 가 있던 백제 왕가의 인물들은 인질이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감독관이었다고 보십니까?
역사여 바로 서라.
대륙백제 최소 산둥이고 최대 베트남까지 같은데
임나=큐슈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