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철학티비 제135강 '금오신화'의 저자가 벌인 '미친 사람' 행각 김시습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9 лют 2025
  • 강성률 철학 티비 제135강 ‘금오신화’의 저자가 벌인 ‘미친 사람’ 행각-김시습
    어느 날 재산을 빼앗아간 사람을 고소하여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운 김시습, 마침내 승리한 그는 관아 밖을 나와 하늘을 보고 웃은 다음, 문서를 갈가리 찢어 개천에 던져버립니다. 마흔 살이 넘어 한양 거리를 쏘다니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어디서건 골마리를 열어 소변을 갈겨댄 그를 아이들은 “늙은 거지야!” 라 부르며 돌멩이와 막대기를 마구 집어 던졌는데요.
    방랑의 천재 시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 또 남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작가였던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서울 성균관 근처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나 세종대왕 앞에까지 불려 나갔는데요. 이 자리에서 다섯 살의 김시습은 깜짝 놀랄만한 시를 지어 ‘오세(五歲)’라는 별호를 얻고 비단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삶은 평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열 다섯 살에 모친을 여의고, 이후 계모를 맞이한 아버지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스무 살에 혼인한 여자와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고, 마흔 일곱에 재혼한 여자는 얼마 가지 못해 죽고 맙니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당해서는 3일 동안 통곡하다가 책을 불살라버렸고, 전국을 유랑하며 항의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고요.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참형을 당한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가에 묻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수양대군(세조)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임금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는데요. 이 일은 그의 생애에 있어 하나의 오점으로 남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 후 경주의 금오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쓰게 되지요. 평생 오붓한 사랑을 나누지 못한 저자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자유 연애를 구가한 이 책은 사랑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 됩니다.
    신숙주와 정인지,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면 욕설을 날리기도 하고, ‘조우’라는 중을 만나서는 ‘노사신의 제자’라며 목을 틀어쥐는가 하면, 당시 최고의 권세가였던 한명회의 시를 조롱하기도 합니다. 김시습은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겼으며, 몸은 뚱뚱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자화상을 보고는, “너는 구덩이 속에 쳐 박아두어야 마땅하다.”는 처절한 자기 반성의 글을 남기기도 하는데요.
    제자들은 (스승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을 절 옆에 묻어 두었는데, 3년 후 장사 지내려 관을 열어보니, 얼굴색이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았다고 합니다. 불교식 화장법인 ‘다비’를 해보니 사리가 나왔고 그 사리를 탑에 안치했습니다.
    이밖에 본 영상에는 ‘시습’이라는 이름이 ‘논어’의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배우고 때로 익히면)”에서 나왔다는 대목, 오늘날 파고다 공원에 있었던 원각사, 서울 압구정동 근처의 ‘압구정 푯돌’ 위치, 생육신 외에 사육신 이름도 등장합니다.

КОМЕНТАР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