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8 설교/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30 вер 2024
  •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바다를 건너 자기 마을에 돌아오셨다.
    2.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날라 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라, 아이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3. 그런데 율법학자 몇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5.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들이 알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일어나서, 네 침상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8. 무리가 이 일을 보고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이런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NIV]
    1. Jesus stepped into a boat, crossed over and came to his own town.
    2. Some men brought to him a paralytic, lying on a mat.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Take heart, son; your sins are forgiven."
    3. At this, some of the teachers of the law said to themselves, "This fellow is blaspheming!"
    4. Knowing their thoughts, Jesus said, "Why do you entertain evil thoughts in your hearts?
    5. Which is easier: to say,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Get up and walk'?
    6. But so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Then he said to the paralytic, "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
    7. And the man got up and went home.
    8. When the crowd saw this, they were filled with awe; and they praised God, who had given such authority to men.
    =====9:1
    배에 오르사 건너가 - 이는 예수께서 자기들의 지역에서 떠나달라는 가다라 지방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며 건너왔던(8:23-27) 게네사렛 호수를 다시 건너 되돌아 가심을 뜻한다. 그런데 마가와 누가는 본 사건의 평행기사를 다루면서 예수께서 되돌아가기 전에, 귀신들렸던 사람에게 자기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그 지역 사람에게 증거할 것을 당부하시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막 5:18-20; 눅 8:38, 39).
    본(本) 동네에 - 이는 가버나움을 가리키는 것으로서(4:13; 막 2:1),가버나움이 갈릴리 지방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한편 본절의 문맥을 보면 뒤이은 2-8절의 내용이 마치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서 돌아온 후에 발생한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가다라 광인(狂人) 사건을 살펴볼 때 오히려 다음의 중풍 병자 사건이 가다라 사건 이전에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막 2:2-12과 막 5:1-20 비교). 이는 이 두 사건이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일어난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상, 즉 예수는 귀신과 죄 문제같은 영적 차원에서도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보다는 신학적 주제에 따라 마태가 이를 재구성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뒤에 언급될 2-8절의 도입부로서가 아니라 앞의 8:8-34의 사건을 마무리짓는 결론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2절은 원문상,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고 있는, 새로운 사건을 소개할 때 흔히 등장하는 '카이 이두'(* )란 어구로 시작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 본 사건에 대한 마가와 누가의 평행 기사에 의하면 예수가 계신집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병자의 친구인 듯한 자들이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그를 줄에 매달아 예수앞에 데려다 놓았다고 설명되고 있다(막 2:1-12; 눅 5:17-26). 여기서 침상을 뜻하는 '클리네스' (* )란 그것을 들고 돌아가라는 6절의 예수의 명령에서도 암시되어 있다시피 한사람의 힘으로도 들 수 있을 만한 가벼운 메트리스(mattress)같은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여기서 '저희'란 것은 데리고 온 사람들 뿐만 아니라 병자 자신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Clarke, Plummer). '저희의 믿음'이란 것은 예수께서 이 병자의 질병을 고쳐 주실 능력이 있음을 그들이 믿었다는 것을 뜻한다. 칼빈(Calvin)은 이를 문자적 의미로 이해하여 하나님만이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실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편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한가지 사실은 예수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것이 그들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예수께 대한 '믿음'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실로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오직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된다(히 11:1, 6). 더욱이 중풍병자의 치유는 단지 동료들의 믿음에 근거하기 보다 근본적으로 중풍병자 자신의 예수께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가능했다(겔 18:1-4).
    소자야(* , 테크논) - '테크논'은 연장자가 손 아래 사람을 다정하게 부를 때 사용되는 말이다(요일 2:1).
    안심하라(* , 다르세이) - '용기를 가지라', '무서워 말라'는 뜻으로 중풍병자가 지니고 있던 철저한 절망의 파도를 일거에 잠재우시는 위로의 메시지이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긴 자는 진정 무서움의 그늘을 벗고 용기의 햇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피엔타이' (* )는 현재 수동 직설법으로서 진행의 의미보다는 완료의 뜻이 강하다. 즉 이는 예수께서 사죄(赦罪)를 선언하시는 그 순간 이미 그 은총이 실현되었음을 나타낸다(Burton). 이 말씀은 적어도 이 중풍병자의 경우에 있어서 죄와 질병이 어떤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주목할만한것은 이 사람이 예수를 찾아온 이유란 다름아니라 자신의 질병을 고침받기 위해서였는데, 예수께서는 질병 치료에 앞서 그의 죄가 사함받았다고 선언했다는 점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1) 그는 오랫동안 나쁜 죄악에 빠져있다가, 즉 오랫동안의 타락과 방탕이 원인이 되어 이 중풍병에 걸렸으며, 그후 지난 날에 범한 죄악에 양심을 가책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자신과 같은 나쁜 인간을 주목해 주시지 않을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지난 날 지은 범죄가 용서받았음을 먼저 선언한 것은 질병의 치유선언과 같은 뜻인 동시에 나아가 질병의 원인까지도 제거해 주신것이었다. (2)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자기에게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보이려는 적절한 기회로 삼았다. 만약 그가 어떤 기적도 행치 않고 말로만 죄 용서함을 선언했다면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않았을 것이고 또 제자들까지도 의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 용서함과 아울러 이적을 행하심으로 어느 누구도 그의 이런 권능을 부인할 수가 없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두 이유는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전자는 중풍병자의 관점에서 이 구절을 이해한 것이고 후자는 예수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한 것으로 두 가지 견해를 모두 취할 수 있다.
    =====9:3
    어떤 서기관들이 - 서기관이란 용어는 바리새나 사두개 등과 같은 종교적 당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중앙 성전 또는 각급회당 등에 속하여 율법 필사 또는 각종 종교 행정을 담당하던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서(2:4) 공직을 가리키는 직명(職名)이었다. 이들은 유대 종교의 수구(守舊) 세력으로서 예수의 메시야직에 대한 이해가 없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가 2절과 같은 예수의 선언을 듣고는 결정적인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 후토스 블라스페메이) - '참람하다'란 말의 '블라스페메이'는 원래 '남을 욕하다', '부당하게 비난한다'(shander)는 뜻이며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다', '하나님에 대해 불경스럽게 말하다'로 쓰였다. 그후 이 말은 그 개념이 확대되어 '신성모독'(blasphemy)의 뜻을 가졌다. 즉 어떤 서기관들은 죄사함을 받았다는 예수의 말을 듣고 그가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하며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를 지을 때에 그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이시며(사 43:25; 44:22). 그런 이유에서 죄를 용서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시 51:4). 이런 점에서 마가는 여기에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는 어구를 덧붙이고 있다.
    =====9:4
    그 생각을 아시고 -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와 그 동료들의 믿음을 직시하셨던(2절) 것처럼 서기관들의 마음의 심연(深淵)을 꿰뚫어보고 계셨다. 이에 대해 마가는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막 2:8).
    2024년 6월 27일 목요 새벽
    #예수그리스도 #christjesus #복음서 #gospelsermons
    채널에 가입하여 혜택을 누려보세요.
    / @mercyreformedchurch

КОМЕНТАР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