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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실존
프로젝트 실존 #2022
(Actor, Scene, Cut)
작가노트
감독 박치치
피사체와 촬영자. 배우와 감독. 연기란 무엇인가. ‘카메라’라는 이름의 작고 검은 기계를 서로의 사이에 둔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기록하는가. 우리는 세계에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도대체 그 무엇으로 존재하기위하여 이토록 간절히 발악하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실존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배우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영혼으로서? 자아로서? 영혼은 영혼 그 자체로 온전한가? 자아는 자아 그 자체로 온전한가? 이런 형이상학적 인식체계는 우리와 우리 세계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단순한 존재를 너머 주체로서 실존하고자하는 욕망이고 그것이 곧 자아이자 영혼이고 인류의 역사이며 인간 본질이며 세상의 실체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규정할 때 비로소 온전히 존재한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실존하고자 몸부림 칠 때 비로소 온전히 존재한다. 실존하고자 하는 욕망은 욕망하는 그 형태 그대로 온전하다. 존재는 존재일 뿐 그 자체로는 세계의 단순한 형태와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어떠한 존재가 단순한 존재 이상의 주체성을 띈 존재로서 세계에 실존하려는 욕망의 몸부림은 때때로 그 몸부림을 마주치는 이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하고,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고, 전율케 하고, 해방케 하고, 때로는 세계를 압도한다. 배우는 연기를 할 때 비로소 배우로서 실존한다.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연기자라는 존재 이상의 실존적 의미로서 배우 스스로 연기 그 자체가 된다. 실존하는 얼굴들과, 소리들. 실존하는 손 짓, 몸 짓 들과 공간에 들어차는 에너지. 눈빛들. 배우는 연기 할 때 세계를 압도한다.
공간
공간(space)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공간을 이루는 물리적인 바닥, 벽, 대기, 온도, 습도 -공중이거나 수중일수도- 등의 특징을 갖는 문자 그대로의 공간이고 또한 환경이다. 공간은 세계에서 단편적인 수동태로 존재한다. 연출자는 공간을 찾는다. 연출자는 공간을 수집하고 공간과 배우는 서로를 수집한다. 배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공간 스스로가 공간 스스로의 존재를 해체하고 배우들의 연기 속에서 배경(Scene)으로서 실존하게 된다. 공간과 배우라는 유리된 존재들이 연기라는 실존속에 세계라는 씬을 구성한다. 공간은 뷰파인더 앞에 선 촬영자에 앞서 배우를 먼저 관조하고 배우 또한 공간을 먼저 포착한다. 공간과 배우, 연출자는 하나로 묶인 채 동시에 함께 실존하고 또 동시에 따로 실존한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공간은 공간이고 배우는 배우이다. 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할 때 공간은 실존적 층위에서 공간임과 동시에 배우 그 자체이기도 하며 동시에 배우가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장면
장면(Cut)은 배우의 연기를 극의 흐름에 맞게끔 이어 붙이는 과정임과 동시에, 장면이 장면 그 자체로서 기능한다. 장면은 극의 흐름을 번개처럼 거칠게 몰아 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유구한 강물처럼 서서히 관객을 압도하기도하는. 공학적인 감정의 재배열의 과정이기도 하다. 편집자의 의도로써 공학적인 장면과 장면을 설계할 순 있어도 편집이 끝나 세상에 나온 장면은 장면 그 자체가 유동적으로 실존한다. 영화의 탄생이다. 배우와 공간은 장면을 넘나든다. 그러나 더 깊은 단위의 본질적 층위에서 우리가 장면을 보았을 때 장면은 그 하나로 오롯이 존재하는 극이고 영화이고 실존 그 자체이다. 실존하는 존재들이 용광로처럼 녹아 엉켜 흐름으로서 극으로서 개인으로서 무한히 다시 실존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장면(Cut)이다.
배우의 실존은 무한히도 유한한 순간들의 조각들로 그 어떤 기술적 방법으로도 그 조각들을 온전하고 완전히 수집할 수 없다. 배우와 공간, 장면들은 극을 관통하는 고고한 실존의 흐름속에 하나의 생명체처럼 동작한다. 배우가 공간이 되기도, 촬영자가 배우가 되기도, 공간이 연기를 하기도한다. 때때로 장면은 운명이 되기도 한다.
촬영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피사체의 실존을 담는다. 피사체는 찰나의 호흡, 소리, 몸짓, 눈빛 등의 실존을 공간에 뿌리고 공간은 대기와 온도, 습도, 조도 등의 환경적 요인으로 연기자와 실존하게 된다. 촬영이란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들을 느슨한 뜰채로 포집해내는 작업이다. 연기라는 실존들은 선형적으로 극을 이루고, 극이라는 실존은 비선형적인 장면으로서 세계에 실존하게된다. 배우의 연기를 촬영하는 순간 연기는 연기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로서 실존하지만 촬영은 그 실존의 일부분만을 떼어내 일종의 수집, 보존, 배치만을 하는 작업이므로 동시에 연출자는 필연적으로 실존을 온전히 담지 못 해 치열하게 아쉬워하는 존재로서 실존하게 된다. 이것은 연출자에게 평생을 거쳐 넘어야 할 거대한 벽으로 다가온다. 뷰파인더를 보는 이는 평생에 걸쳐 기술과 경험을 쌓아 운명을 거슬러 벽을 넘고자 하지만 결국 이 지고한 실존의 벽을 넘지 못 하고 좌절한다. 우리 촬영자, 연출자들은 한줌이라도 더 순간의 온전한 실존을 담으려 노력하지만 결국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실존의 편린들만을 마주하게 된다. 인류 존재 이래 단 한 컷트, 단 한 컷트도 온전하고 완전한 컷트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연출자들은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천형속에 영원히 발악하게 된다. 감독은 끝없는 후렴처럼 비극속에 실존하는 것이다.
존재가 존재 스스로를 규정하고 주체적인 세계의 존재로서 실존하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연기라고 부른다. 존재들이 실존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되 그것이 온전하지 못 해 괴로워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촬영이라고 부른다. 배우와 감독, 공간과 장면은 연기와 연출이라는 각자의 실존을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것을 영화라고 부른다. 우리는 존재이기에 앞서 실존한다.
우리는 배우고,
우리는 감독이고,
우리는 카메라고,
우리는 연기다.
우리는 실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