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경 작가 <저 절로 가는 사람> 2015년 출판 7년 전이었다. C화백으로부터 경주 삼능 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대전에서 책 읽기 모임을 주도하는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박사님이 와 있으니 만나보라고 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분야라 관심이 기울었다. 그날 삼능에서 만난 사람이 박문호 박사였다. 경주 태생에 친가가 삼능에 있어 가끔씩 경주에 내려오는 듯했다. 박사가 내 신라역사 에세이 ‘능으로 가는 길’을 잘 읽었다고 하여 이내 친근감을 가졌는데, 근래에 그가 다녀온 호주가 화제에 올랐다. 지구산소의 기원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자라고 있는 남호주 샤크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는 암석덩어리에 대하여. 35억 년 전 생명의 시원을 담은 살아있는 화석이 지금도 산소를 보글보글 내뿜으며 샤크베이 해멀린폴 바닷가에 펼쳐져 있다고 했다. 35억 년이라…. 인류학과 진화생물학 책은 어느정도 읽었지만 본격적인 우주서적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오를 뿐이다. <코스모스>는 과학에 무관심했던 젊은 날 예상외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그마저도 세부적인 것은 잊어버렸다. 우주의 나이는 나의 이해를 넘어설 만큼 초현실적이지만 그날 삼릉에서 들은 35억 년이란 산소의 역사는 나의 무지를 흔들었고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보러 꼭 호주에 가리라! 1년 뒤 박사는 호주 탐사 계획을 세웠고 나는 70명이나 되는 회원과 동행하여 지구 초기의 원형을 간직한 생명의 현장을 찾았다. 명석한 자연과학자의 인식욕에 자극받아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았던 것이다. 어떤 만남으로 삶의 시야가 확장됐다면 행운일 것이다. 다른 회원처럼 나도 박사를 알게 되면서 과학적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독서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의식의 기원> <마음의 역사> <신은 왜 우리곁을 떠나지 않는가> 등의 책을 통해 인류의 뇌를 만들어온 신의 존재를 확연히 알게 됐다. 그가 불교방송에서 28회 강연했던 ‘뇌, 생각의 출현’은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불교까지 더 잘 이해하도록 했다. 작년엔 ‘박자세’(사단법인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회원들과 실크로드를 11박 답사하며 불교사에서부터 대승기신론까지 버스 안에서 박사의 명강의를 들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에서 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매주 서울에서 ‘137억년 우주의 역사’와 뇌과학에 관해 지속적인 강연을 진행하며 자연과학의 대중화운동을 한다. 다른 강연도 많거니와 1년에 두 번씩 ‘박자세’ 회원들과 해외 자연탐사를 위해 호주나 몽골로 간다. 그 후 펴낸 <서호주>와 <몽골>은 한 회원의 표현대로 ‘지식과 통찰의 향연’이어서 감사의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불교공부는 또 언제 했길래 학승처럼 강의를 하는지 놀라울 뿐이다.그는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 때 울진군 후포로 이사해 초등학교부터 고교 시절까지 성장기를 보냈다. 이사 갈 때 동해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강구를 지나가다가 바다를 처음 보았다. 무한대의 바다는 아이를 놀라게 했고, 자연에 대한 그 경외감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깔려 있다.
사람마다 다 변환기가 있지만 소년에게 공부에 대한 열망이 싹튼 것은 중학교 1, 2학년 때였다.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하루에 몇 마디를 하는지 궁금해서 한 달간 세어본 적이 있었다. 긴 호흡의 사고작용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에 TV가 단 한 대뿐이어서 친구 집에서 <주말의 명화>를 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본 펄벅의<대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러닝타임 3시간짜리 영화에 아이는 꼼짝도 않고 몰입했다. 그 후로도 소년은 긴 호흡의 대서사시를 좋아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자유교양도서 읽기 대회’를 매년했다. 그는 중1 때 울진군의 책 읽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생물시간에 배운 중복수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것이 지금의 ‘우주 137억 년’ 강의를 하게 된 먼 배경이 된 것 같다. 분자식을 배우는 물상 과목도 재미있었다. 중3 때는 어른이 보는 <중앙일보>를 1년간 보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후포고교에선 1년에 한 명 경북대학교에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물리학을 하고 싶었지만 전자과에 들어갔다. 생각과 달리 실용적인 학문이라 재미가 없었다. 다행히 사대 물리학과 고재걸 교수 강의를 통해 기초물리학을 배울 수 있었다. 서클활동으로 ‘대구 구도회’에 들어갔다. 이기영·정병조 교수가 주축이 된 ‘한국불교연구원’의 산하단체였다. 리더였던 김현준 씨는 중3 때 벌써 성철 스님을 친견하고 3천 배를 한 열성 불자였다. 박종린 선배의 대단한 수행의지도 대학시절 그의 본보기였다. 지도법사였던 우룡 큰스님은 지금도 설날이면 찾아가는 은사 같은 강백(講伯: 경론을 강의하는 승려)이다. 현 범어총림 방장 지유 큰스님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대학 신입생 박문호는 그해 여름 순천 송광사 수련대회에 참가했다. 그때 법정 스님이 수련원원장으로 계셨다. 중학 때부터 잡지 <샘터>를 읽어서 법정 스님을 알고 있었고 법문도 들을 수 있었다. 울력(노동) 시간에 밀짚모자를 쓴 스님이 앞에 보이는데 외국스님이었다. 궁극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송광사의 새벽예불은 청년의 감성을 흔들었다. 마루바닥을 울리는 범종소리가 온몸을 타고 울리면서 그를 전율케 했다. 사물이 깨어나는 송광사의 새벽예불은 박문호 인생에 각인된 두 번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것도 동해바다처럼 무한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대학 1학년 겨울부터 그는 방학 때면 2개월씩 절에 머물렀다. 영천 은혜사, 팔공산 묘봉암, 경주 단석산 신선암, 경주남산의 옥룡암 등 5년에 걸쳐 암자에만 스무 달 정도 살았다. 묘봉암에서 함박눈이 내릴때 문을 열면 영천 뜰이 하얗게 펼쳐졌다. 심장 뛰는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방이 조용했다. 그 시기 절간에서 고요에 길들여져 지금도 소음을 못 견딘다. 암자 생활이 기질을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반도체에 들어갔다. 1987년 지금의 전자통신연구원에 들어가서 불교모임을 만들었다. 20여 명이 점심시간에 경전공부를 했는데 서경수 선생에게 인도불
교사, 이기영 교수에게 <반야심경>과 <대승기신론>을 배웠다. 원문으로 공부하고 돌아가면서 원효사상을 발표했다. 10년간 이렇게 공부하면서 읽은 불교서적이 1천 권 정도 쌓였다. 당시엔 대전 불교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것이 일이었다. 또 해남 대흥사와 석굴암, 통도사와 범어사 등 수련대회에도 일곱 번이나 갔다. 사춘기에 동해바다를 보면서 자연과 만났다면 대학 1학년부터 유학 가기 전 34세까지 불교적 사고를 했다. “결과적으로 불교적 사고가 자연과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불교를 공부하면서 추상적 사고를 훈련시켰어요. 가장 추상적 학문이 입자물리학인데 물리의 세계, 극미의 세계, 양자역학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유식(唯識)사상도 ‘뇌 공부’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1991년부터 97년까지 미국 텍사스 A&M대학에 유학하여 전자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자공학은 굉장히 실질적인 학문으로 이것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문명을 이루고 역사를 바꾸는 분야를 몰랐을 것이다. 그는 미국시절부터 천문학을 공부했고 돌아올 땐 뇌에 관한 책을 100권 정도 사 왔다. 물리학은 자연 현상을 보는 훈련이고 천문학도 외부자연이 관찰대상이지만 불교를 공부했기에 기질적으로 자연히 인간의 내면세계에 들어왔다. 귀국 길에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날 때 일출장면이 펼쳐졌다. 장엄했고 압도적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세 번째로 마주친 무한대에 대한 직감이었다. 자연의 실체를 탐구하는 137억 년 우주 진화에 대해 연구할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귀국 후 연구소에 복직하여 연구경력을 쌓고 2002년 고미숙 박사를 만나 연구집단 ‘수유 너머’에서 천문학과 생물학 강의를 5년간 했다. 10년 전 삼성경제연구원에서 뇌 강의를 시작한 인연으로 뇌에 관한 전문서를 두 권 펴냈다. <뇌, 생각의 출현>은 2008년 7개의 신문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반향이 컸다.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은 2012년 미래부장관이 수여하는 저술상을 받았다. 그는 어떻게 시간을 조각 내어 그 많은 공부와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공부방법은 간단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이렇게 한지 10년가량 됐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3시나 4시경 일어난다. 집중적으로 두어 시간 공부하고 아침 먹기 전 운동하러 간다. 하루 3시간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여 10년만 지속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조언한다. 또 공부와 일상을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 일상 속에 공부가 양념처럼 들어 있다. 공부 속에 일상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복잡한 대인관계도 없어야 하고 다른 취미도 없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해요.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은 습관적 반사동작에 가까워요. 뇌에 도움이 안 되는 행위예요. 침묵하는 동안엔 공부하고 있는 것을 마음속에 장악하고 있어요.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 내적 대화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늘 잡담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박자세’의 정식 회원으로 등록한 사람은 100여 명이지만 강의를 듣는 사이트 회원 수는 4천 명에 이른다. 자연과학운동이 조금씩 확산되고 후원자도 늘어간다. ‘박자세’는 늘 암기와 반복을 강조하는데, 박문호 박사도 뇌공부를 하면서 도표를 수없이 그렸다. 회원들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리스만 도표(뇌의 주요 영역과 연결도)도 외워서 발표하는데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까지 외워서 2시간 동안 칠판에 푸는 회원도 몇 있다. 전문 과학자도 아닌데 상대성이론을 아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공식을 적어보았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그것을 10%만 이해하면 어떤가. 일단 시작하면 그 길로 간다. 도달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생에 다 못한다고 해서 아예 그만두면 영원히 기회를 놓친다.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깨달음에 다가간다고 한다. 당신은 깨칠 자신이 있다고 좌선을 하나? 초기경전에는 산책하는 붓다에게 아이들이 흙에 물을 부어 떡을 만들어 바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붓다는 기특한 아이에게 언젠가 깨칠 것이라며 수기를 내린다. 자연과학운동을 하는 선구자에게 “왜 당신은 자연과학을 하는가?”라고 기초질문을 하면 그는 시를 펼친다.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서 삶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나는 어디로 가며 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자연과학에 묻겠다고. 물질은 중력장에, 동물은 감각장에, 인간은 의미장에 구속되어 있다. 삶이 무의미해도 우리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암석은 그런 세계가 아니다. 언어가 없는 세계로 간다. 무생물, 무화된 세계로 가는 것이다. 그 무의미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두 달 전 그는 부친상을 당했다. 자연과학자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가까운 이가 죽었을 때 괴로운 것은 기억의 단절 때문이다. 물리적 실체는 사라져도 기억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은 슬퍼하고 어떤 죽음은 슬퍼하지 않는 이유도 기억의 강약에 있다. 죽음이란 물질의 측면에서 보면 분자 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화장하면 연기가 나는데 이산화탄소다. 남은 뼈는 칼슘이다. 죽으면 천국이 아니라 땅으로 간다. “의미가 없으면 어떤가. 문화적으로 허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본연의 자리예요.” 그는 문태준 시인과 황동규 시인을 좋아한다. 황동규 시인은 “초월은 초월하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풍장’ 연작시도 살아서 무생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 <사는 기쁨>은 노시인의 달관인 듯 한결 여유로운데 ‘무중력을 향하여’라는 시는 자연과학자의 무릎을 치게 한다. 사람은 흔히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지만 그런 세계가 있을까. 내가 죽고 없는 세계를 시인은 이렇게 그렸다. ‘이제 나는 내가 아니야!’ 병원 침대에 누웠다가/ 세상 뒤로 아주 몸을 감추기 전 친구의 말./ 가면처럼 뜬 누런 얼굴./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창틀에 놓인 화병의 빨간 가을 열매들이 눈 반짝이며/ ‘그럼 누구시죠?’/ 입원실을 나와 마른 분수대를 돌며 생각에 잠긴다./ 조만간 나도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겠지./ 그 순간, 내가 뭐지? 묻는 조바심 같은 것/ 홀연 사라지고/ 막혔던 속 뚫린 바보처럼 마냥 싱긋대지 않을까./ 뇌 속에 번뜩이는 저 빛./ 생각의 접점마다 전광 혀로 침질하던 빛/ 문득 사라지고/ 생각들이 놓여나 무중력으로 둥둥 떠다니지 않을까./ 내가 그만 내가 아닌 자리./ 매에 가로채인 토끼가 소리 없이 세상과/ 결별하는 풀밭처럼/ 아니면 모르는 새 말라버린 춘란 비워낸 화분처럼/ 마냥 허허로울까?/ 아니면 한동안 같이 살던 짐승 막 뜬 자리처럼/ 얼마 동안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 무중력 냄새로 떠돌게 될까? 그는 12년째 뇌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진화적 관점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감정과 본능의 기원을 추적하여 드러내길 좋아한다. 자연은 생물과 무생물 모두를 포함한다. 생명은 무생물에서 출발하였기에 우리는 무생물적 자연이 우리가 돌아갈 본연의 곳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뇌를 공부하는 것은 내 안의 물고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5억 년 전 물고기가 인간까지 오는 과정을 추적하면 동물적 본능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다. 그 점이 중요하다. 인간사회를 이루면서 조야하고 거친 면은 걸러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자연과학자인 그는 유교학자들처럼 윤리도덕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연과학 운동이란 어찌 보면 완전한 인격체에 반하는 운동이다. 반유교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 본성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청년기 15년간 불교의 진리를 추구했고 지금도 철마다 마곡사며 법주사를 ‘저 절로’ 찾아가지만 이 자연과학자는 구도자라거나 종교적인 수식어로 불리면 정색을 한다. ‘박자세’의 한 진지한 회원은 “광대한 우주 속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 현상을 탐구하는 구도자를 몰라보았고, ‘박자세’를 통한 그의 공부는 수행의 여정이라는 것 또한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지만 정작 박사는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다시 생각하고 싶다. 물고기의 후예가 구도하고 수행하면 동물답지 못한 건가?
불교는 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궁극을 추구하는 종교다. 그 강한 의지력을 긍정한다. 선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언어가 끊어진 자리 즉 의미장―인과로써 밀폐된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의식 너머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의식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이다. 청년기에 <화엄경> <대승기신론> 같은 대경전을 만난 것도 뿌듯하다.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경전은 <반야심경>과 남방불교의 <사념처경>이다.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 네 가지를 관찰하여 번뇌를 없애고 바른 도를 얻게 하는 것인데, 내면의 심리적 관찰이다. 붓다는 생물학적 관찰자다. 몸의 관찰자로서 깨친 방법이 ‘요가’다. 어떤 세계의 철학자도 안의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 몸의 감각기관을 말한 사람이 없다. 그것이 중생이라는 것을 정확히 정의했고, 물질(色)과 정신(受·想·行·識)의 다섯 기관인 오온이 모두 비어 공(空)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생리학에서 출발하여 진여문(眞如門: 의미가 없는 곳, 무의미의 장)까지 넘어간 점이다. 사회문화적 형태로서의 불교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는 종교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 종교현상은 언어가 출현하고 4만 년 전 동굴벽화를 시작으로 나타난 구석기시대 문화의 대폭발이었다.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출현한 종교의 본질은 구원이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도 문화적 현상이다. 종교가 지향하는 상당부분은 과학에서도 충족할 수 있다. 달라이라마가 외국서 연설하는 것을 TV로 보니 너무 불교적이지 말라, 과학에서 답을 얻으라고 했다. 박사의 열강은 유명하다. 6년에 걸친 350여 시간에 한 번도 결강한 적이 없다. 열강을 하는 만큼 청중에게도 ‘열청’을 원한다. 회원 중 누가 졸기라도 하면 이런 걸 들으면서 어떻게 잠이 오나, 핀잔을 주면서 “졸리면 서서 들으세요!”라고 한다. 진리를 흘려버리는 부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실크로드 답사 때에도 버스에서 법성게를 강연하며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衆生隨器得利益)”을 강조했다. “진리가 비처럼 쏟아지는데 중생은 자기 그릇만큼만 가져갑니다. 제발 그릇 좀 넓히세요”라고. 몽골 초원에서 새벽 5시 ‘별 강의’를 하면 대원들은 시리우스가 보인다고 탄성을 지른다. 어느 새벽에 꿈결인 듯 들려오는 양자-중성자 단어들과 강의 풍경은 누구에게는 영원히 각인된다. 한 회원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바로 지금, 우리 존재의 비밀에 간단없이 들어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수백 번 미루어 녹슬었던 공부의 문이 이날 새벽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이었다.” 실크로드 답사 때에는 새벽의 쿠무타크 사막에서 모래에 도표를 그리며 힉스입자 강의를 했다. 한 회원은 이것을 산상강의라 했는데, 모래 둔덕에 서서 아침 해를 맞이하며 열강하는 모습은 명장면이었다. 역시 실크로드 답사 때다. 도로에 사고가 났는지 버스가 한없이 정체되자 순발력으로 시작한 강의도 잊을 수 없다. 박사는 늘 하듯이 통로에 서서 <대승기신론> 강의를 시작했고 나는 요의(尿意)를 느꼈으나 통로에서 강의가 진행되니 꼼짝없이 갇혀서 들어야
10 years ago from now, Dr. Pak Munho at this time had enough hair...I have been watching on his videos every day since I found a month ago. Thank you for uploading this video. (sorry for English I don't have Korean keyboard yet)
석사 학사 박사 따면 뭐합니까 환자를 무시하고 앓고 있는 병 보다 더 아픔을 주는 그런 사람한테는 진료받고 싶지 않네요! 진료는 1분이고 환자말 안듣고 본인 얘기만 하고 나가라고 합니다 환자한테 신경질 짜증부리고 본인맘에 안드니 나가라고 하네요 그러지 마세요 힘들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약자인 환자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요즘 휴대폰이나 태블릿에 전자펜을 이용하여 다이아그램 이나 산술식 혹은 생각그림을 입력하면 OCR 문자인식으로 PDF 파일을 만들어 줘서 언제든지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데 굳이 펜을 이용하여 종이 수첩에 기록할 필요가 있나요? 종이 수첩에 펜으로 기록 한다면 검색 기능이 없는데 저 많은 쌓아두신 수첩 중에 내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검색에서 찾기 위한 수첩 기록이 아니라 내 공부한 것과 내 생각을 정성들여 기록함으로써 암기하고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저도 자격증 서브노트를 아이패드로 만들어서 공부해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결국 종이에 손필기가 좋더라구요! 직접 해보셔야 압니다! 아무리 120hz 고주사율 액정이라도 몇시간 지나면 눈이 피곤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또 암기할때 노트 위치로도 기억을 하는데 전자노트는 두께 개념이 없어서 여기쯤에 이 내용이 있었는데 하는 개념이 떨어져서 수백장 외울때 제본한 종이책보다 암기효율이 떨어집니다! 이건 해보셔야 압니다! 저는 3년간 굿노트로 암기노트 천장 넘게 만들어보고 실제 공부해보고 느낀점이 결국엔 종이에 손필기가 최고다 입니다! 애플펜슬로 쓴거랑 노트에 볼펜으로 쓴거랑 가독성이 다르고 눈에 딱 들어오는 느낌이 다릅니다! 결국엔 다 출력해서 스프링노트 만들어서 공부했어요! 제본한책 여백에 펜으로 요점 적어놓은거 보면 확실히 전자펜으로 쓴것과 볼펜으로 쓴게 가독성이 다릅니다. 장시간 공부하면 할수록 이 작은 차이가 공부효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참어려운 토론입니다 신념이 강화학습 되면서 벌어지는 개똥철학의 향연~과학적 학습이 선행된 인문 사회 종교 철학...이게 맞다고 봅니다 과학은 반증이 나타나면..기존 이론이나 주장은 사장됩니다. 철학이나 종교는 반론이 나오면 싸우고 파가 갈라지고 각자의 신념을 고수 하려합니다 교통정리는 과학을 통해 어느정도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는 그 회로를 관찰하면 뇌세포는 어떤 구조이며 어떤 기능일까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면 다른 뇌세포와의 관계에서 그것이 정보로 저장되고 나중에 다시 정보에서 끄집어 내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뇌과학자는 궁궁한 것이 너무 많다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것중에 학문이라는 분야가 있다. 심리학 인문학 종교학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알면 자신의 학문분야를 더욱 심화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조장희 박사님 반갑습니다.
강석경 작가 <저 절로 가는 사람> 2015년 출판 7년 전이었다. C화백으로부터 경주 삼능 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대전에서 책 읽기 모임을 주도하는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박사님이 와 있으니 만나보라고 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분야라 관심이 기울었다. 그날 삼능에서 만난 사람이 박문호 박사였다. 경주 태생에 친가가 삼능에 있어 가끔씩 경주에 내려오는 듯했다. 박사가 내 신라역사 에세이 ‘능으로 가는 길’을 잘 읽었다고 하여 이내 친근감을 가졌는데, 근래에 그가 다녀온 호주가 화제에 올랐다. 지구산소의 기원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자라고 있는 남호주 샤크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는 암석덩어리에 대하여. 35억 년 전 생명의 시원을 담은 살아있는 화석이 지금도 산소를 보글보글 내뿜으며 샤크베이 해멀린폴 바닷가에 펼쳐져 있다고 했다. 35억 년이라…. 인류학과 진화생물학 책은 어느정도 읽었지만 본격적인 우주서적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오를 뿐이다. <코스모스>는 과학에 무관심했던 젊은 날 예상외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그마저도 세부적인 것은 잊어버렸다. 우주의 나이는 나의 이해를 넘어설 만큼 초현실적이지만 그날 삼릉에서 들은 35억 년이란 산소의 역사는 나의 무지를 흔들었고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보러 꼭 호주에 가리라! 1년 뒤 박사는 호주 탐사 계획을 세웠고 나는 70명이나 되는 회원과 동행하여 지구 초기의 원형을 간직한 생명의 현장을 찾았다. 명석한 자연과학자의 인식욕에 자극받아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았던 것이다. 어떤 만남으로 삶의 시야가 확장됐다면 행운일 것이다. 다른 회원처럼 나도 박사를 알게 되면서 과학적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독서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의식의 기원> <마음의 역사> <신은 왜 우리곁을 떠나지 않는가> 등의 책을 통해 인류의 뇌를 만들어온 신의 존재를 확연히 알게 됐다. 그가 불교방송에서 28회 강연했던 ‘뇌, 생각의 출현’은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불교까지 더 잘 이해하도록 했다. 작년엔 ‘박자세’(사단법인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회원들과 실크로드를 11박 답사하며 불교사에서부터 대승기신론까지 버스 안에서 박사의 명강의를 들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에서 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매주 서울에서 ‘137억년 우주의 역사’와 뇌과학에 관해 지속적인 강연을 진행하며 자연과학의 대중화운동을 한다. 다른 강연도 많거니와 1년에 두 번씩 ‘박자세’ 회원들과 해외 자연탐사를 위해 호주나 몽골로 간다. 그 후 펴낸 <서호주>와 <몽골>은 한 회원의 표현대로 ‘지식과 통찰의 향연’이어서 감사의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불교공부는 또 언제 했길래 학승처럼 강의를 하는지 놀라울 뿐이다.그는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 때 울진군 후포로 이사해 초등학교부터 고교 시절까지 성장기를 보냈다. 이사 갈 때 동해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강구를 지나가다가 바다를 처음 보았다. 무한대의 바다는 아이를 놀라게 했고, 자연에 대한 그 경외감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깔려 있다.
사람마다 다 변환기가 있지만 소년에게 공부에 대한 열망이 싹튼 것은 중학교 1, 2학년 때였다.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하루에 몇 마디를 하는지 궁금해서 한 달간 세어본 적이 있었다. 긴 호흡의 사고작용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에 TV가 단 한 대뿐이어서 친구 집에서 <주말의 명화>를 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본 펄벅의<대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러닝타임 3시간짜리 영화에 아이는 꼼짝도 않고 몰입했다. 그 후로도 소년은 긴 호흡의 대서사시를 좋아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자유교양도서 읽기 대회’를 매년했다. 그는 중1 때 울진군의 책 읽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생물시간에 배운 중복수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것이 지금의 ‘우주 137억 년’ 강의를 하게 된 먼 배경이 된 것 같다. 분자식을 배우는 물상 과목도 재미있었다. 중3 때는 어른이 보는 <중앙일보>를 1년간 보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후포고교에선 1년에 한 명 경북대학교에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물리학을 하고 싶었지만 전자과에 들어갔다. 생각과 달리 실용적인 학문이라 재미가 없었다. 다행히 사대 물리학과 고재걸 교수 강의를 통해 기초물리학을 배울 수 있었다. 서클활동으로 ‘대구 구도회’에 들어갔다. 이기영·정병조 교수가 주축이 된 ‘한국불교연구원’의 산하단체였다. 리더였던 김현준 씨는 중3 때 벌써 성철 스님을 친견하고 3천 배를 한 열성 불자였다. 박종린 선배의 대단한 수행의지도 대학시절 그의 본보기였다. 지도법사였던 우룡 큰스님은 지금도 설날이면 찾아가는 은사 같은 강백(講伯: 경론을 강의하는 승려)이다. 현 범어총림 방장 지유 큰스님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대학 신입생 박문호는 그해 여름 순천 송광사 수련대회에 참가했다. 그때 법정 스님이 수련원원장으로 계셨다. 중학 때부터 잡지 <샘터>를 읽어서 법정 스님을 알고 있었고 법문도 들을 수 있었다. 울력(노동) 시간에 밀짚모자를 쓴 스님이 앞에 보이는데 외국스님이었다. 궁극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송광사의 새벽예불은 청년의 감성을 흔들었다. 마루바닥을 울리는 범종소리가 온몸을 타고 울리면서 그를 전율케 했다. 사물이 깨어나는 송광사의 새벽예불은 박문호 인생에 각인된 두 번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것도 동해바다처럼 무한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대학 1학년 겨울부터 그는 방학 때면 2개월씩 절에 머물렀다. 영천 은혜사, 팔공산 묘봉암, 경주 단석산 신선암, 경주남산의 옥룡암 등 5년에 걸쳐 암자에만 스무 달 정도 살았다. 묘봉암에서 함박눈이 내릴때 문을 열면 영천 뜰이 하얗게 펼쳐졌다. 심장 뛰는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방이 조용했다. 그 시기 절간에서 고요에 길들여져 지금도 소음을 못 견딘다. 암자 생활이 기질을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반도체에 들어갔다. 1987년 지금의 전자통신연구원에 들어가서 불교모임을 만들었다. 20여 명이 점심시간에 경전공부를 했는데 서경수 선생에게 인도불
교사, 이기영 교수에게 <반야심경>과 <대승기신론>을 배웠다. 원문으로 공부하고 돌아가면서 원효사상을 발표했다. 10년간 이렇게 공부하면서 읽은 불교서적이 1천 권 정도 쌓였다. 당시엔 대전 불교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것이 일이었다. 또 해남 대흥사와 석굴암, 통도사와 범어사 등 수련대회에도 일곱 번이나 갔다. 사춘기에 동해바다를 보면서 자연과 만났다면 대학 1학년부터 유학 가기 전 34세까지 불교적 사고를 했다. “결과적으로 불교적 사고가 자연과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불교를 공부하면서 추상적 사고를 훈련시켰어요. 가장 추상적 학문이 입자물리학인데 물리의 세계, 극미의 세계, 양자역학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유식(唯識)사상도 ‘뇌 공부’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1991년부터 97년까지 미국 텍사스 A&M대학에 유학하여 전자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자공학은 굉장히 실질적인 학문으로 이것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문명을 이루고 역사를 바꾸는 분야를 몰랐을 것이다. 그는 미국시절부터 천문학을 공부했고 돌아올 땐 뇌에 관한 책을 100권 정도 사 왔다. 물리학은 자연 현상을 보는 훈련이고 천문학도 외부자연이 관찰대상이지만 불교를 공부했기에 기질적으로 자연히 인간의 내면세계에 들어왔다. 귀국 길에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날 때 일출장면이 펼쳐졌다. 장엄했고 압도적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세 번째로 마주친 무한대에 대한 직감이었다. 자연의 실체를 탐구하는 137억 년 우주 진화에 대해 연구할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귀국 후 연구소에 복직하여 연구경력을 쌓고 2002년 고미숙 박사를 만나 연구집단 ‘수유 너머’에서 천문학과 생물학 강의를 5년간 했다. 10년 전 삼성경제연구원에서 뇌 강의를 시작한 인연으로 뇌에 관한 전문서를 두 권 펴냈다. <뇌, 생각의 출현>은 2008년 7개의 신문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반향이 컸다.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은 2012년 미래부장관이 수여하는 저술상을 받았다. 그는 어떻게 시간을 조각 내어 그 많은 공부와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공부방법은 간단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이렇게 한지 10년가량 됐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3시나 4시경 일어난다. 집중적으로 두어 시간 공부하고 아침 먹기 전 운동하러 간다. 하루 3시간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여 10년만 지속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조언한다. 또 공부와 일상을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 일상 속에 공부가 양념처럼 들어 있다. 공부 속에 일상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복잡한 대인관계도 없어야 하고 다른 취미도 없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해요.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은 습관적 반사동작에 가까워요. 뇌에 도움이 안 되는 행위예요. 침묵하는 동안엔 공부하고 있는 것을 마음속에 장악하고 있어요.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 내적 대화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늘 잡담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박자세’의 정식 회원으로 등록한 사람은 100여 명이지만 강의를 듣는 사이트 회원 수는 4천 명에 이른다. 자연과학운동이 조금씩 확산되고 후원자도 늘어간다. ‘박자세’는 늘 암기와 반복을 강조하는데, 박문호 박사도 뇌공부를 하면서 도표를 수없이 그렸다. 회원들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리스만 도표(뇌의 주요 영역과 연결도)도 외워서 발표하는데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까지 외워서 2시간 동안 칠판에 푸는 회원도 몇 있다. 전문 과학자도 아닌데 상대성이론을 아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공식을 적어보았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그것을 10%만 이해하면 어떤가. 일단 시작하면 그 길로 간다. 도달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생에 다 못한다고 해서 아예 그만두면 영원히 기회를 놓친다.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깨달음에 다가간다고 한다. 당신은 깨칠 자신이 있다고 좌선을 하나? 초기경전에는 산책하는 붓다에게 아이들이 흙에 물을 부어 떡을 만들어 바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붓다는 기특한 아이에게 언젠가 깨칠 것이라며 수기를 내린다. 자연과학운동을 하는 선구자에게 “왜 당신은 자연과학을 하는가?”라고 기초질문을 하면 그는 시를 펼친다.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서 삶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나는 어디로 가며 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자연과학에 묻겠다고. 물질은 중력장에, 동물은 감각장에, 인간은 의미장에 구속되어 있다. 삶이 무의미해도 우리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암석은 그런 세계가 아니다. 언어가 없는 세계로 간다. 무생물, 무화된 세계로 가는 것이다. 그 무의미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두 달 전 그는 부친상을 당했다. 자연과학자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가까운 이가 죽었을 때 괴로운 것은 기억의 단절 때문이다. 물리적 실체는 사라져도 기억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은 슬퍼하고 어떤 죽음은 슬퍼하지 않는 이유도 기억의 강약에 있다. 죽음이란 물질의 측면에서 보면 분자 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화장하면 연기가 나는데 이산화탄소다. 남은 뼈는 칼슘이다. 죽으면 천국이 아니라 땅으로 간다. “의미가 없으면 어떤가. 문화적으로 허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본연의 자리예요.” 그는 문태준 시인과 황동규 시인을 좋아한다. 황동규 시인은 “초월은 초월하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풍장’ 연작시도 살아서 무생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 <사는 기쁨>은 노시인의 달관인 듯 한결 여유로운데 ‘무중력을 향하여’라는 시는 자연과학자의 무릎을 치게 한다. 사람은 흔히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지만 그런 세계가 있을까. 내가 죽고 없는 세계를 시인은 이렇게 그렸다. ‘이제 나는 내가 아니야!’ 병원 침대에 누웠다가/ 세상 뒤로 아주 몸을 감추기 전 친구의 말./ 가면처럼 뜬 누런 얼굴./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창틀에 놓인 화병의 빨간 가을 열매들이 눈 반짝이며/ ‘그럼 누구시죠?’/ 입원실을 나와 마른 분수대를 돌며 생각에 잠긴다./ 조만간 나도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겠지./ 그 순간, 내가 뭐지? 묻는 조바심 같은 것/ 홀연 사라지고/ 막혔던 속 뚫린 바보처럼 마냥 싱긋대지 않을까./ 뇌 속에 번뜩이는 저 빛./ 생각의 접점마다 전광 혀로 침질하던 빛/ 문득 사라지고/ 생각들이 놓여나 무중력으로 둥둥 떠다니지 않을까./ 내가 그만 내가 아닌 자리./ 매에 가로채인 토끼가 소리 없이 세상과/ 결별하는 풀밭처럼/ 아니면 모르는 새 말라버린 춘란 비워낸 화분처럼/ 마냥 허허로울까?/ 아니면 한동안 같이 살던 짐승 막 뜬 자리처럼/ 얼마 동안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 무중력 냄새로 떠돌게 될까? 그는 12년째 뇌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진화적 관점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감정과 본능의 기원을 추적하여 드러내길 좋아한다. 자연은 생물과 무생물 모두를 포함한다. 생명은 무생물에서 출발하였기에 우리는 무생물적 자연이 우리가 돌아갈 본연의 곳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뇌를 공부하는 것은 내 안의 물고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5억 년 전 물고기가 인간까지 오는 과정을 추적하면 동물적 본능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다. 그 점이 중요하다. 인간사회를 이루면서 조야하고 거친 면은 걸러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자연과학자인 그는 유교학자들처럼 윤리도덕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연과학 운동이란 어찌 보면 완전한 인격체에 반하는 운동이다. 반유교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 본성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청년기 15년간 불교의 진리를 추구했고 지금도 철마다 마곡사며 법주사를 ‘저 절로’ 찾아가지만 이 자연과학자는 구도자라거나 종교적인 수식어로 불리면 정색을 한다. ‘박자세’의 한 진지한 회원은 “광대한 우주 속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 현상을 탐구하는 구도자를 몰라보았고, ‘박자세’를 통한 그의 공부는 수행의 여정이라는 것 또한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지만 정작 박사는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다시 생각하고 싶다. 물고기의 후예가 구도하고 수행하면 동물답지 못한 건가?
불교는 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궁극을 추구하는 종교다. 그 강한 의지력을 긍정한다. 선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언어가 끊어진 자리 즉 의미장―인과로써 밀폐된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의식 너머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의식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이다. 청년기에 <화엄경> <대승기신론> 같은 대경전을 만난 것도 뿌듯하다.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경전은 <반야심경>과 남방불교의 <사념처경>이다.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 네 가지를 관찰하여 번뇌를 없애고 바른 도를 얻게 하는 것인데, 내면의 심리적 관찰이다. 붓다는 생물학적 관찰자다. 몸의 관찰자로서 깨친 방법이 ‘요가’다. 어떤 세계의 철학자도 안의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 몸의 감각기관을 말한 사람이 없다. 그것이 중생이라는 것을 정확히 정의했고, 물질(色)과 정신(受·想·行·識)의 다섯 기관인 오온이 모두 비어 공(空)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생리학에서 출발하여 진여문(眞如門: 의미가 없는 곳, 무의미의 장)까지 넘어간 점이다. 사회문화적 형태로서의 불교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는 종교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 종교현상은 언어가 출현하고 4만 년 전 동굴벽화를 시작으로 나타난 구석기시대 문화의 대폭발이었다.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출현한 종교의 본질은 구원이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도 문화적 현상이다. 종교가 지향하는 상당부분은 과학에서도 충족할 수 있다. 달라이라마가 외국서 연설하는 것을 TV로 보니 너무 불교적이지 말라, 과학에서 답을 얻으라고 했다. 박사의 열강은 유명하다. 6년에 걸친 350여 시간에 한 번도 결강한 적이 없다. 열강을 하는 만큼 청중에게도 ‘열청’을 원한다. 회원 중 누가 졸기라도 하면 이런 걸 들으면서 어떻게 잠이 오나, 핀잔을 주면서 “졸리면 서서 들으세요!”라고 한다. 진리를 흘려버리는 부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실크로드 답사 때에도 버스에서 법성게를 강연하며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衆生隨器得利益)”을 강조했다. “진리가 비처럼 쏟아지는데 중생은 자기 그릇만큼만 가져갑니다. 제발 그릇 좀 넓히세요”라고. 몽골 초원에서 새벽 5시 ‘별 강의’를 하면 대원들은 시리우스가 보인다고 탄성을 지른다. 어느 새벽에 꿈결인 듯 들려오는 양자-중성자 단어들과 강의 풍경은 누구에게는 영원히 각인된다. 한 회원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바로 지금, 우리 존재의 비밀에 간단없이 들어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수백 번 미루어 녹슬었던 공부의 문이 이날 새벽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이었다.” 실크로드 답사 때에는 새벽의 쿠무타크 사막에서 모래에 도표를 그리며 힉스입자 강의를 했다. 한 회원은 이것을 산상강의라 했는데, 모래 둔덕에 서서 아침 해를 맞이하며 열강하는 모습은 명장면이었다. 역시 실크로드 답사 때다. 도로에 사고가 났는지 버스가 한없이 정체되자 순발력으로 시작한 강의도 잊을 수 없다. 박사는 늘 하듯이 통로에 서서 <대승기신론> 강의를 시작했고 나는 요의(尿意)를 느꼈으나 통로에서 강의가 진행되니 꼼짝없이 갇혀서 들어야
노복미 1956년생 저널리즘 석사 2018년 박자세 발표 데뷰 대단하십니다.
11년 전 영상 신양수님께 감사드립니다.
10년전 6시간짜리 강의!
감사합니다
10 years ago from now, Dr. Pak Munho at this time had enough hair...I have been watching on his videos every day since I found a month ago. Thank you for uploading this video. (sorry for English I don't have Korean keyboard yet)
박문교 !!! 찬양합니다 ㅎ
건축이란? 거주 풍경(Landscape)을 만드는 작업. 감사합니다^^
과학을 유일신처럼 숭배히는 것은 진화한 우상종교.
자기는 자신이 직접 찾아 밝히는 것이 정도..목적적. 나머지는 참조사항일 뿐.. 보조도구.
지각을본다는것은 현생을정확하게볼수있는가장현실적각성
감사합니다
장진우라고 쓰고 마귀라고 읽습니다
진료시간 30초입니다. 이 새끼가 의사 입니까 ??
이 인간 개 쓰레기 인데... 향정신성 약만 처방하는놈 피피티를 무슨 중 고등학생 보다 못만드냐 ...
석사 학사 박사 따면 뭐합니까 환자를 무시하고 앓고 있는 병 보다 더 아픔을 주는 그런 사람한테는 진료받고 싶지 않네요! 진료는 1분이고 환자말 안듣고 본인 얘기만 하고 나가라고 합니다 환자한테 신경질 짜증부리고 본인맘에 안드니 나가라고 하네요 그러지 마세요 힘들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약자인 환자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카메라 존 돌리지 마라 신경질나서 못 보겠다.
과학은 진리다 ㆍ 종교는 언어를 획득한 인간들이 무엇이다 라는 가정하에서 만든 규범 또는 절차다
요즘 휴대폰이나 태블릿에 전자펜을 이용하여 다이아그램 이나 산술식 혹은 생각그림을 입력하면 OCR 문자인식으로 PDF 파일을 만들어 줘서 언제든지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데 굳이 펜을 이용하여 종이 수첩에 기록할 필요가 있나요? 종이 수첩에 펜으로 기록 한다면 검색 기능이 없는데 저 많은 쌓아두신 수첩 중에 내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검색에서 찾기 위한 수첩 기록이 아니라 내 공부한 것과 내 생각을 정성들여 기록함으로써 암기하고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저도 자격증 서브노트를 아이패드로 만들어서 공부해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결국 종이에 손필기가 좋더라구요! 직접 해보셔야 압니다! 아무리 120hz 고주사율 액정이라도 몇시간 지나면 눈이 피곤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또 암기할때 노트 위치로도 기억을 하는데 전자노트는 두께 개념이 없어서 여기쯤에 이 내용이 있었는데 하는 개념이 떨어져서 수백장 외울때 제본한 종이책보다 암기효율이 떨어집니다! 이건 해보셔야 압니다! 저는 3년간 굿노트로 암기노트 천장 넘게 만들어보고 실제 공부해보고 느낀점이 결국엔 종이에 손필기가 최고다 입니다! 애플펜슬로 쓴거랑 노트에 볼펜으로 쓴거랑 가독성이 다르고 눈에 딱 들어오는 느낌이 다릅니다! 결국엔 다 출력해서 스프링노트 만들어서 공부했어요! 제본한책 여백에 펜으로 요점 적어놓은거 보면 확실히 전자펜으로 쓴것과 볼펜으로 쓴게 가독성이 다릅니다. 장시간 공부하면 할수록 이 작은 차이가 공부효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편하신대로 써보시죠.
일 년 전 쯤 137억년 강의를 들은 후로 뇌과학을 본격적으로 듣고 있습니다. 대학때 이해못한 핵심을 이제야 속이 후련히, 체증이 쑥 내립니다. 계속 매진하여 박사님의 열정을 주변에나마 알리는 데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자연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시공에 처해서도 종교의 개념으로 흡수되지않는 인간됨이 멋집니다. 계속 듣고 배우니 참 즐겁습니다
학습용 수첩. 수첩 활용 성공의 핵심은 얼마나 자주 보는가. 얇은 것. 수량화. 눈에 보이는 곳에 쌓아두기. 년 20권 인생 달라짐. 한 손아귀에. 정성으로. 애착. 그림. 서술은 핵심 키워드로. 스마트폰 대신 수첩. 오직 학습용으로. 쌓이는 재미. 따라하기가 지름길.
종교! 신! 허상! 우상! 관념! 개념... 사회의 시작... 불공정의 시작... 관점과 입장에 따라 필요악... 박문호 박사님... 파편적 지식을 연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카메라맨 머더냐? 머찍고 있어? 이영상 왜 올렸는데? 박사님 강의들으라고 올린거 아녀? 그럼 카메라를 왜 그리 이리저리 돌리고 있냐? 어? 정신없어서 도대체 집중을 할 수가 있나.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추
굿굿...
과학에 무지한 나에게 호기심을 심어준 분!!
박문호박사님 말씀 넘나 통쾌, 명쾌 탁월해서 넘나 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다른강의들도 꼭찾아 듣겠습니다
참어려운 토론입니다 신념이 강화학습 되면서 벌어지는 개똥철학의 향연~과학적 학습이 선행된 인문 사회 종교 철학...이게 맞다고 봅니다 과학은 반증이 나타나면..기존 이론이나 주장은 사장됩니다. 철학이나 종교는 반론이 나오면 싸우고 파가 갈라지고 각자의 신념을 고수 하려합니다 교통정리는 과학을 통해 어느정도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장진우 교수님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알고리즘에 왜 뜨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는 그 회로를 관찰하면 뇌세포는 어떤 구조이며 어떤 기능일까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면 다른 뇌세포와의 관계에서 그것이 정보로 저장되고 나중에 다시 정보에서 끄집어 내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뇌과학자는 궁궁한 것이 너무 많다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것중에 학문이라는 분야가 있다. 심리학 인문학 종교학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알면 자신의 학문분야를 더욱 심화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공상의 나. ㅠㅠ 공부의 수준을 올려야지..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기억하면 뇌가 바뀐다"
쉽고 유익한강의 감사합니다.
종교학을 전공햇다는 사회자의 편협한 발언들이 굉장히 수준 낮습니다. '힘들게 공부햇구나' '머리털이 빠졌구나' 등등... 아주 수준 낮은 진행 사회자... 이찬수 .... 프레임에 갇히니 그 수준의 이야기밖에 ... ㅋㅋㅋ ...
수첩학 잘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행
와 영업비밀 대방출! 선 프리노트 ㅡㅡ 후 수첩 모든걸 수치화.
통찰,상상,자연,의식,복합,감각,지각,생각,지식,창의,과학 등이 어울어져 수학적 근거로 해석 가능고 현실에 절묘한 발명, 5차 산업혁명~~~ ~~~
더 나아가는 강의~~~~~~~
창의성 하나하나의 지식이 단단한 껍질에 쌓여 있어 싹을 트지 못한다. 지식의 질이 창의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껍질이 무엇인지 그것을 자각해야 한다. 껍질은 사회적 관습과 기존 사상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창의성은 생각이 아닌 곧 혁명이다.
대단한 강의입니다. 열번 스무번이라도 반복해서 들어야할듯.
대가의 강의 넘 유쾌하게 잘 들었습니다. 인간이라는 현상을 이렇게 명쾌하게 잘 설명을 해주시네요. 잠꼬대라도 단백질 하겠습니다.
만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를 능가하고..... 그의 지적능력을 압도하는 "만물의 아버지" 라고 할 정도로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참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