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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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조는 단군의 후손, 폭탄투사
1920년 12월 27일 의열단원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2개의 폭탄을 투척했으나 폭발력이 미약하여 거사는 실패, 사형선고를 받고 1921년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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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이미 각오한 독립투사죽음은 이미 각오한 독립투사
죽음은 이미 각오한 독립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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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만에서 일본육군대장을 척살한 독립운동가.
조선인 일본군 중장의 최후조선인 일본군 중장의 최후
조선인 일본군 중장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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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익(1887~1946)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 육군 중장을 지냈다.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 출신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필리핀 마닐라 국제 군사 재판에서 전범으로 처형되었다.
아버지를 밀고한 밀정을 처단한 아들아버지를 밀고한 밀정을 처단한 아들
아버지를 밀고한 밀정을 처단한 아들
Переглядів 89 тис.10 днів тому
독립운동가 이규창은 아버지 이회영을 밀고한 밀정을 탐문해 처단, 흑색공포단을 조직하고 1935년 밀정 이용로를 사살하는데 성공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7세 조선인 불량학생의 일기17세 조선인 불량학생의 일기
17세 조선인 불량학생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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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규는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경성학교에 유학와 1941년 1월 ‘조선 독립을 열망하는 불량 학생’으로 경기도 경찰부에 검거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조국 앞에 사랑하는 여자도조국 앞에 사랑하는 여자도
조국 앞에 사랑하는 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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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는 원심창, 이강훈과 함께 상하이에서 중국 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암살을 모의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순국했다.
독립운동가 옥바라지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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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탄압의 상징, 서대문형무소. 1908년 일제가 서대문형무소를 만들고 그 건너편에 여관과 식당들이 들어섰다. 가족들은 감옥 주변에 머물며 사식과 옷가지를 넣어주는 옥바라지 생활을 몇 년이고 계속했다.
조선인 포로감시병의 최후조선인 포로감시병의 최후
조선인 포로감시병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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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포로감시병 조문상, 일본 이름 히라라 모리쓰네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후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47년 2월 25일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 26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군을 탈출한 한국청년의 최후일본군을 탈출한 한국청년의 최후
일본군을 탈출한 한국청년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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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한성수 : 1944년 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징집돼 중국에 배치됐으나 탈출에 성공,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군자금 확보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45년 3월 상하이 주둔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돼 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법정투쟁을 전개하다 그해 5월 순국하였다.
19년 감옥살이 독립투사19년 감옥살이 독립투사
19년 감옥살이 독립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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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형(1897~1956)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제5중대장, 정의부 사령부관, 고려혁명단 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사형도 두렵지 않은 독립투사사형도 두렵지 않은 독립투사
사형도 두렵지 않은 독립투사
Переглядів 89 тис.27 днів тому
*새롭게 구성한 독립운동가 김지섭 쇼츠 영상이 많이 노출될수 있도록 시청자분들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김지섭은(1884~1928) 의열단원으로 1924년 일본 왕궁에 폭탄 3발을 투척, 불발로 실패하고 체포되어 1928년 치바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전설의 쌍권총잡이 독립투사전설의 쌍권총잡이 독립투사
전설의 쌍권총잡이 독립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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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1889~192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혁신단, 의열단 등의 단체에서 일제 기관 파괴, 요인 암살 등의 활동을 전개, 종로경찰서 폭탄의거후 1923년 일본 경찰과의 교전에서 순국하였다.
형무소로 끌려간 10대 소녀들형무소로 끌려간 10대 소녀들
형무소로 끌려간 10대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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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락한 채널노출 회복을 위한 시청자분들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1919년 삼일운동 1주기를 맞은 1920년 3월 1일 서울 배화여학교 뒷산에서 여학생 40명이 만세를 부르다 이중 24명이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었다
악질 친일형사와 독립운동가의 반전악질 친일형사와 독립운동가의 반전
악질 친일형사와 독립운동가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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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친일 형사 신승희(일명 신철)에게 민족대표 최린은 독립선언서를 눈감아달라고 했고, 신승희는 묵인하고 헌병대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후 독립운동한 최린은 친일파로 변신했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독립운동가이름도 남기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름도 남기지 못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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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부인 단양 이씨(이름, 나이 미상) 홍범도 체포를 위한 투항편지를 쓰기를 거부하다 1908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