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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김재완-r2b
    @김재완-r2b Рік тому

    선생님 보고싶어여😢

    • @역사2.0
      @역사2.0 Рік тому

      ㅈㅇ아 잘 지내니~~ 이렇게라도 인사받으니까 정말 반갑네. 졸업하고 이제 2년 다 되어가는데 사회인 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ㄷㄷㄱ 생활은 짧은 기간이지만 정말 즐거웠고 너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동시에 너희들에게 미안한 마음 항상 가지고 있다. 기회되면 한번 볼 수 있음 좋겠네. 파이팅하고 한 해 마무리 잘하길 빌어!

  • @Loudddddoudou
    @Loudddddoudou Рік тому

    멋있어요 쩜영씨❤❤ 목소리 너무 좋아요~~~~~~

  • @역사2.0
    @역사2.0 2 роки тому

    4:51 마지막 부분에 필기 추가 (명의 해금정책 때 류큐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잇는 중계 무역 실시)

  • @역사2.0
    @역사2.0 2 роки тому

    9:49 <내용 수정> 일본이 중국 상하이 공격(1932.1) → 국제 연맹이 일본군의 철수 요구(1932.10.) → 일본이 국제 연맹 탈퇴(1933) '일본이 중국 상하이 공격'에 '(31)윤봉길 의거' 필기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내용 수정합니다. 29:48 평양성을 되찾지는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 셋째 줄을 보면 ‘지금 평양성을 탈환하였으니’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료는 평양성을 되찾은 직후가 되겠습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12:09의 필기를 다음과 같이 고칩니다. '일본과 아메리카의 은은 유럽 상인을 거쳐 중국으로 유입'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0:32 후금건국(1616) 뒤에 필기 추가 (군사제도-팔기군)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인트로 아웃트로 음악 소리에 비해 설명 녹음 소리가 작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7:18 일본에 밑줄 긋고 추가 '조선이 대마도 정벌(1419) 이후 3포(부산, 진해, 울산) 개항하여 무역' 10:05 10번 삭제, '아시카가 다카우지'에 밑줄 긋고 추가 '무사' 10:22 가마쿠라 막부 쇠퇴 뒤에 필기 (전쟁 참여로 무사의 경제 부담大 but 승리의 대가로 무사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이 없음 → 무사들이 막부에 불만) 11:40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새로운 천황과 조정을 세움(1336) 고다이고 천황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조정을 세움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내용 수정> 6:14 '오다 노부나가'가 조총을 이용해 주도권 장악 → 나가시노 전투(1575) 승리 11:45 삼포왜란(1510), 을묘왜변(1555) → 일본과의 교역 단절 → 일본에 통신사 파견(1590) → 전쟁 여부에 대한 붕당 간의 의견 차이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25 한반도 출신의 도왜인 기용'해 한반도 문화 수용'으로 내용 추가 10:40 6세기와 7세기 사이의 화살표에 점 세 개 찍고, '수의 고구려 원정 실패(598, 612),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내용 추가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필기추가 8:45 수(隋, 581~619)의 고구려 공격 실패(598, 612),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9:40 토번에 밑줄 긋고, (6)나당 전쟁 때 당을 공격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2:12 위(3)을 위(5)로 수정합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5:44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X) → 일본인으로서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두번째 일본인이 바로 조금 전에 공부한 가네코 후미코입니다(O).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55 9를 8로 고칩니다. 3:34부터 나오는 쿠빌라이 칸의 재위년도를 1260~1294로 고칩니다. 5:46 쩐 왕조 공격(2.3차, 1284.1287) 뒤에 '(3차 침입, 바익당 강 전투)' 추가 필기하겠습니다. 바익당 강 전투는 몽골의 쩐 왕조 3차 침입 때 쩐흥다오가 이끄는 대월의 수군이 몽골군을 격파한 대표적인 싸움입니다.

  • @지성빠이웅-b9m
    @지성빠이웅-b9m 3 роки тому

    한국사.고려.정리.잘보고갑니다..*^^* 꼼꼼하게.설명을.잘해주시네요~^^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7.5번 영상의 고려 부분은 17.7번을 보고 공부해주세요.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2:50 이후 고려 시대만 재촬영해서 17.7번으로 올렸습니다. 고려 흐름 정리는 17.5보다 17.7가 잘 되어있습니다. (ua-cam.com/video/ClK9gPanpjI/v-deo.html)

  • @hee5110
    @hee5110 3 роки тому

    6:30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3:00 호족의 출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위 다툼에서 패배하여 지방으로 내려온 몰락한 진골 귀족, 봉기를 일으킨 농민, 지방의 군인 등 이들 호족은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초까지 그 세력을 유지합니다. 후삼국 통일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실시했던 호족 포용 및 견제 정책이 이들을 통제하기 위함이었죠(12).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21:36 독서삼품과는 8세기 말 신라 하대에 실시되었습니다(교과서29쪽).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5:19 설명 수정합니다. 김윤후라고 하는 승려가 처인성에 있는 노비들을 이끌고 몽골군에 맞서 싸웠는데요(X) → 김윤후라는 승려가 처인성에서 부곡민들과 함께 몽골군에 맞서 싸웠는데요(O) 슬라이드 내용도 처인성 전투(김윤후, 노비)(X) → 처인성 전투(김윤후, 부곡민)(O)으로 수정합니다. 부곡민에 밑줄 긋고 '(13)부곡에 사는 사람' 추가합니다. 8:36 교과서와의 용어 통일을 위해 8:36 이후로 등장하는 모든 '삼별초의 항쟁'을 '삼별초의 저항'으로 수정하겠습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48 '먹고 남아서 보관해둔 것'을 '먹고도 남음 → 보관 가능'으로 고치겠습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08:27 수정해주세요 정전 협정 시작(X) → 정전 회담 시작(O) 06:32 평양 '탈환'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탈환이란 빼앗긴 것을 되찾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6.25전쟁 당시 적용되던 제헌헌법(1948.7.17) 제1장 4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38선 이북의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38선 이북의 영토도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헌법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의 영토인 북한 정권의 수도를 되찾았다 하여 평양 '탈환'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입니다.

  • @user-pd5lr3fq1j
    @user-pd5lr3fq1j 3 роки тому

    15:43 선생님 이거 373이 아니라 372쪽이죠?? 373에 안나와서요!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치명적인 내용 오류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반드시 확인해주세요@ 07:22 '153.33'을 '135.33'으로 고칩니다. 07:32 154를 136으로 고칩니다. 07:52 153명을 135명으로 고칩니다. 08:20 '135.33을 반올림하면 135'로 고칩니다. 08:26 '따라서 135명의 찬성으로 개헌 가능'으로 고칩니다. 08:40 153명을 135명으로 고칩니다. @07:00부터 08:40는 아래 내용을 참고해주세요(설명 방식은 같지만, 숫자를 바로 잡은 내용입니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전체 숫자 중 2/3이상이 찬성해야 했다. 당시 국회의원 수인 203명의 2/3은 135.33이었으므로 개헌을 위해서는 136명의 찬성이 필요했다. 개헌 투표 결과 135명이 찬성하여 개헌은 실패로 끝나는 듯하였다. 하지만 부결 선언 다음날, 자유당은 135.33을 사사오입(=반올림)하면 135와 같다고 주장하며 135명의 찬성으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중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통과시켰다. 이를 사사오입 개헌이라 한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14:00 고등경찰은 언론 통제, 사상 탄압 등을 실시했던 경찰기구입니다.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청산리대첩은 여러 독립군 부대가 함께 일본군에 맞서싸웠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부대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입니다(4:41). 대한독립군단은 간도참변 이후 밀산에 집결한 여러 독립군 부대를 하나로 통틀어 부르는 이름입니다(6:23). 대한독립군단은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는 서로 구별됩니다(2:21)

  • @역사2.0
    @역사2.0 3 роки тому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성립된 것은 1919년 4월입니다(2:08). 그리고 각 지역에 성립된 임시정부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1919년 9월입니다(3:07). 따라서 3:07의 성립(1919.4)는 잘못된 표기입니다. 날짜는 지워주시길 바랍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13:00~13:34는 317쪽입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5:05 '최류탄'을 '최루탄'으로 고칩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2:05, 2:43, 6:18의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수정합니다. 21:47, 29:10의 사료와 지도는 그 내용을 학습지의 내용과 연관지어 정리해야 합니다. 사회주의는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자본주의 발달의 폐해(노동자의 열악한 처지, 빈부격차 확대 등)를 비판하며 등장한 이론입니다. 생산수단의 공동 운영, 협동 경제와 평등 분배 등을 주장하였지요. 초기에는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인물이 활동을 했습니다. 이 시기의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 부릅니다.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발달하면서 그 이론도 과학적 법칙에 따라 정교화됩니다. 이때부터의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 부릅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다듬으면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바탕으로 경제사회 공동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공산주의'를 발표합니다. 즉, 공산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 중의 한 부분에 속합니다. 영상의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라 고친 이유도 당시 소련 체제가 사회주의를 넘어선 공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때문입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05:20 30번을 29번으로 고칩니다. 08:30 315쪽을 312쪽으로 고칩니다. 08:49 여기부터 315쪽입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15:11 '회사령 실시와 신고제'를 '회사령 실시와 허가제'로 고칩니다.

  • @쮸잉껌-c5x
    @쮸잉껌-c5x 4 роки тому

    우왕 오늘도 멋지세요...^^🤭

  • @Junyoung-U
    @Junyoung-U 4 роки тому

    사투리 안 쓰면 안되나요

  • @RockcrabGGim
    @RockcrabGGim 4 роки тому

    관료전에서는 공물을 거둘 권리가 없지 않았나요?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신라의 토지 제도에 대해서는 아직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관료전에서 공물을 거둘 수 있었는지의 여부도 한국사 교재마다 서술이 다릅니다. '관료전에서는 조세만을 거둘 수 있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09개정 미래엔 한국사 40쪽), '조세와 공납을 거둘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큰별샘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115쪽, 수능한국사 읽기책 71쪽). 제가 만든 자료는 이 관점에서 만든 것이지요. 아니면 아예 두루뭉실하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수탈, 지배력을 약화시켰다'라고 서술한 경우도 있습니다(09개정 비상 한국사 50쪽, 09개정 금성 한국사62쪽). 다만 '역'을 거둘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관료전은 불가능하다, 녹읍은 가능하다’라고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함으로써 신라 귀족들이 역을 걷지 못하게 하여 지배력을 약화시켰다*에 초점을 두면 될 것 같습니다. 관료전과 녹읍에 대한 다양한 해석 및 추가 설명은 아래 자료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09_0040_0020_0040#ftid_0506) 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01_0040_0020_0020_0020&whereStr=%40where+%7B+IDX_TITLE%28HASALL%7C%27%EA%B4%80%EB%A3%8C%EC%A0%84%27%7C100000%7C0%29+or+IDX_CONTENT%28HASALL%7C%27%EA%B4%80%EB%A3%8C%EC%A0%84%27%7C100%7C0%29+or+IDX_ALL%28HASALL%7C%27%EA%B4%80%EB%A3%8C%EC%A0%84%27%7C1%7C0%29+%7D

  • @강갸릴
    @강갸릴 4 роки тому

    30번학습지 돌파기념 새로운 브금인가용!!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예스예스 분위기 전환

  • @강갸릴
    @강갸릴 4 роки тому

    와 브금 너무 멋있어용👍👍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진짜 고민해서 골랐는데 멋지다니 다행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은 사망하지만 유신 헌법은 1980년 10월에 폐지됩니다. 따라서 11:17~13:07의 유신체제(1972~1979)를 (1972~1980)으로 고칩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학습지에 표시된 교과서 쪽수와 영상속 쪽수가 다릅니다. 영상 기준으로 보면 됩니다.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학습지에 표시된 교과서 쪽수와 영상속 쪽수가 다릅니다. 영상 기준으로 보면 됩니다.

  • @정은희-y4d
    @정은희-y4d 4 роки тому

    선생님 학습지 15번에는 223쪽 안 적혀있어요

  • @역사2.0
    @역사2.0 4 роки тому

    5:08 필기 내용 중 18번을 17번으로 고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