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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밋라이더 with e160 - 동해와 두타산 조망, 동해 초록봉(531m)
망망대해 동해, 수이역장(秀而亦壯) 두타산
동해(東海)는 한반도 동쪽의 바다를 뜻하는 고유명사이자, ‘동쪽바다’라는 보통명사다. 그러다 동해시에서 다시 한 번 고유명사가 된다. 동해시는 1980년 묵호읍과 북평읍을 합쳐서 생겨난 도시다. 묵호와 북평 지명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으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시가지는 양분되어 있다. 그래도 동해시는 원주, 춘천, 강릉 다음가는 강원 4대 도시이고 동해안에서는 강릉에 이은 2대 도시다. 동해가 속초보다 인구가 많다는 것이 새삼스럽다(동해 9만, 속초 8만).
초록봉(531m)은 동해시의 진산이다.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시가지 뒤편을 감싸 안아 완만하고 푸근하지만 지세가 복잡하다. 정상에는 중계탑이 서 있다.
초록봉은 높이에 비해 넓게 퍼져 있고 수많은 가지 능선과 골짜기를 품고 있어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은 산이다.
두타산 가는 길
초록봉은 동해시내와 두타산(1353m) 사이에 있어 동해안의 거산 두타산의 길목이기도 하다. 두타산은 청옥산(1404m)과 연봉을 이루며 동해안에서는 설악산(1708m) 다음으로 높다. 해안에서 가까워 비고가 엄청나고 웅장한 육산미와 빼어난 골산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서산대사가 전국의 명산을 평하면서, “금강산은 빼어나지만 웅장하지 않고(秀而不壯), 지리산은 웅장하지만 빼어나지 않으나(壯而不秀), 묘향산은 빼어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다(秀而亦壯)”라고 한 평가는 유명하다. 기암괴석이 돌출한 바위산을 빼어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리가 있는 평가다. 그런 면에서 두타산은 묘향산에 버금가는 ‘수이역장’(秀而亦壯, 빼어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다)의 산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끼고 흐르는 무릉계곡 주변의 기암절벽과 수많은 거대 폭포는 금강산이나 설악산을 방불케 하고, 그 위로 솟구친 웅장한 육산은 지리산을 닮았다. 일반 관광객처럼 무릉계곡을 따라 쌍폭포만 보고 오면 “계곡이 참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정도로 알기 쉽다. 암봉과 암벽이 즐비한 바위산은 골짜기 한참 위쪽에 있어 계곡 바닥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 좀 험하긴 해도 베틀바위~두타산성~마천루 구간만 가 봐도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초록봉은 동해와 더불어 이 두타산~청옥산 연봉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두타산과 망상해변 등 절경이 많은 동해시 8경에 초록봉이 포함된 것은 지당하다.
정상에 서면
초록봉은 시내와 바로 접해 있어 등산로가 많이 나 있고 산림과 중계탑 관리를 위한 임도도 사방으로 나 있다. 시내를 경유하지 않도록 남쪽의 이로동 삼흥마을에서 출발해 정상을 올랐다가 반시계 방향으로 산줄기를 돌아 서쪽의 비천골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짙은 숲 사이로 난 길은 노면이 좋고 간간이 조망이 트여 금방 주능선에 올라선다. 주능선의 임도사거리에는 ‘멧돼지 출몰 조심’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뿐 아니라 전국 어느 산을 가든 멧돼지가 출몰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지난번 합천 오도산에서는 다운힐 도중 멧돼지와 잠시 함께 달린 적도 있는데 내가 더 빠르다 싶으니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났다. 하지만 업힐 때 멧돼지를 만난다면 좀 곤란하다.
서편 기슭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두타산과 둔중한 청옥산 연봉이 내내 보인다. 초록봉 정상에는 중계탑이 서 있어 진입할 수 없고 바로 옆의 당산봉이 정상을 대신하지만 바다쪽 조망은 훨씬 낫다. 해안 따라 길게 펼쳐진 동해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미세먼지에 희미한 대기 저편으로 동해의 수평선이 아스라이 잠겼다. 대륙의 먼지는 백두대간을 훌쩍 넘어 동해까지 뒤덮고 있으니 좁은 한반도에서는 피할 길이 없다.
숲속 다운힐 끝에는 계곡길
이제 북으로 다운힐을 시작한다. 정상 직전에서 배터리가 다되었지만 출발지까지는 전체가 내리막이니 별 걱정이 없다. 그런데 웬걸, 기대와 달리 짧고 가파른 업힐이 몇 군데 더 나온다.
자작나무가 전봇대처럼 휙휙 지나치는 숲은 빈틈이 없어 한눈팔 일 없이 라이딩에만 집중한다. 해발 300m 가까이 내려서자 첫 민가가 나오고, 산불 피해지역인 듯 잠시 민둥지대를 지나면 골짜기로 내려선다. 갈수록 골은 넓어지고 수량이 많아지더니 이윽고 절경의 비천골을 이룬다.
비천골을 나오면 42번 국도가 하늘 높이 지나는 이로동이다. 이로동과 삼화동 일대는 ‘쌍용’명칭이 흔한데, 두타산 길목에 자리한 국내최대 규모의 쌍용시멘트 공장 때문이다. 석회암 지대에 시멘트 공장은 당연한 입지이고, 장기간 지역의 일자리와 경제를 견인해왔지만 지금은 환경보호의 명분 아래 계륵이 된 모양새다.
강릉 망운산을 들렀다 오는 길이라 출발이 늦기도 했지만 서쪽이 고산으로 막혀 겨울 해가 더욱 짧다. 일주 19.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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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950m의 첨봉, 합천 오도산(1120m) 업힐과 다운힐. 최소자막, 무음악.
해발 1221m까지 편안히! 함양 대봉산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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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의 무대(6) 陶淵明(도연명) 飮酒(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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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전원시인으로 불리는 도연명(365~427)은 백제와 교류가 많았던 동진 사람이다. 여러번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곧 그만두고 전원에 은거했다. 세속과 영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을 읊은 '귀거래사'는 그의 대표작이다. 여기 소개하는 음주는 12수 연작시 중 5번째로, 총 10구의 5언고시다. 도연명이 마지막에 은거한 곳은 강서성 구강(주장)의 마을 가운데였다. 왜 이런 번잡한 곳으로 왔느냐고 물으니 '심원지자편'(마음이 멀리 있으면 땅은 저절로 멀어진다)이라고 답한다. 이 시의 백미이자 놀라운 격조와 달관을 보여준다.
당시(唐詩)의 무대(5) - 두목(杜牧) 청명(淸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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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杜牧, 803~852)은 당나라 말기의 낭만 가객이었다. 그의 시는 생기발랄, 자유분방 하며 무엇보다 운율과 발음이 좋아 가만히 읽는 것만으로도 입과 가슴과 머리를 사로잡는다. '청명'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배경이 된 행화촌(살구꽃마을)이 어디냐를 두고 지금도 중국내에서 논란 중이다. 현재 중국내 행화촌만 10곳이 넘는다. 물론 시 중의 행화촌은 특정장소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으나, 여행과 방랑을 일삼던 행각을 볼 때 어떤 장소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두목은 현재의 안휘성 지주( 池州, 츠즈우)인 귀지(貴池) 자사를 지냈기에 이곳의 행화촌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당나라 때부터 술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당시(唐詩)의 무대(4) - 孟浩然(맹호연) 春曉(춘효)
Переглядів 6453 роки тому
성당시대의 시인 맹호연은 평생 벼슬을 않고 고향인 호북성 양양 인근의 녹문산에서 은거했다. 녹문산(350m)은 높고 깊지는 않으나 양양시내에서 가깝고 들판에 솟아 상대적으로 입지가 두드러진다. 녹문산 은거 중에 지은 '춘효'는 맹호연의 대표작이자 당시(唐詩)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절창 중 하나다. 비 온 후의 청신한 봄 아침을 그리는, 겨우 20자의 시귀로 현실을 초극하는 듯한 도가풍의 관념과 격조, 깊이를 보여준다.
당시(唐詩)의 무대(3) 이백(李白)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Переглядів 5783 роки тому
이백의 명시 중 하나인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의 배경은 중국 강서성 여산(廬山, 1474m) 동남쪽 기슭에 걸린 개선폭포(開先瀑布)다. 실제 낙차는 150m이며 수직절벽을 떨어져 비류직하삼천척(약 1000m)이라고 한 시적 과장에 수긍이 간다. 풍경의 묘사에서 폭포 그 자체뿐 아니라 이백 특유의 낙천적이고 웅혼한 스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젊음의 패기가 느껴지듯 이백이 26세 때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산에는 22개의 폭포가 있다고 하며, 이보다 더 높은 삼첩천( 三疊泉) 폭포(155m)도 유명하다. 도연명이 '귀거래사'를 읊고 세속을 떠나 은거한 곳도 여산 북쪽의 구강 어디쯤이다.
당시(唐詩)의 무대(1) - 풍교야박(楓橋夜泊)
Переглядів 4793 роки тому
장소는 생각과 예술 작품의 최초이자 가장 기본적인 배경이 된다. 나는 어떤 작품을 보건 항상 그 배경이 된 장소가 궁금했다. 그 ‘장소’는 어떤 곳이길래 작자에게 그런 특별한 영향 혹은 영감을 주었을까. 그것을 조금이나마 상상하고 공감하고 싶었다. 당시(唐詩)는 7~8세기 이백과 두보를 비롯한 걸출한 시인들이 시대를 풍미하며 ‘당시’의 형식을 완성하고 보편명사로서의 시(詩)의 궁극적인 단계를 노크했던, 당대 최고의 문명(文明)이었다. 당나라는 문물 양면에서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고 그 예술적 성과 중 하나가 바로 당시였다. 지명과 인명을 우리식 한자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어차피 성조가 있는 중국발음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고,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우리식으로 부르는 것이 시적 정서에도 부합한다고 보기...
당시(唐詩)의 무대(2) - 강설(江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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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0자로 풍경과 정서를 치밀하고 격조 있게 표현해, 만고의 절창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이 시를 통해 당시의 매력에 빠진 경우가 매우 많다. 천산, 만경으로 점증하는 정서, ‘한강설’의 여백 혹은 절벽 같은 마무리는 참으로 여운이 길다. 작자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당나라와 송나라를 통틀어 8명의 최고문장가로 불리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정부 개혁운동에 나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해 호남성 영주(永州)의 하급관리인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불우한 10년을 보냈다. ‘강설’은 영주에서 울적하게 지낼 때 쓴 시로, 눈 내리는 강에서 홀로 낚시질을 하는 노인에게 자신의 신세를 빗대고 있다. 영주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있는 영릉(零陵)이 유종원이 지내던 곳으로 그를 기리는 유자묘(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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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sangjunlee7939
    @sangjunlee7939 21 день тому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안시성이 저정도 규모면 수십만이 아니라 1만명만 와도 수비 못합니다. 수십만을 상대한 안시성이 고작 저거라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일

  • @GOLDCOW-zz3qm
    @GOLDCOW-zz3qm 25 днів тому

    묘향산 동쪽옆으로 큰봉우리 하나 있는데 이산이 1920m정도로 묘향산보다 높아보이는데 무슨산인지 아실까요?

  • @dybowskirana8544
    @dybowskirana8544 27 днів тому

    여름 철 캠핑장으로 개발하면 좋겠다.

  • @조태준-p2r
    @조태준-p2r Місяць тому

    거짓말 치지마라

  • @deoksanprosperous3893
    @deoksanprosperous3893 Місяць тому

    2000미터 이상의 산이 수두룩하네 남한의 산과 비교불가~가보고 싶다~

  • @ymkk1747
    @ymkk1747 Місяць тому

    안시성이 어딘지도 모르고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교과서대로 이런 영상을 왜 만드는지요? 안시성은 환도성이며, 압록강(호타하)의 북에 있어 화북성 안평현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삼국사기와 당서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 @오랜지-n9m
    @오랜지-n9m 2 місяці тому

    근데 백두산이 한라산 지리산 후지산보다 덩치가 더 큰가요?

  • @오랜지-n9m
    @오랜지-n9m 2 місяці тому

    근데 개마고원에 인구100만의 강남급 신도시 하나 만들면 살만할까요?

  • @sungbinee8
    @sungbinee8 2 місяці тому

    관모봉 주위에 불곰 산다는데 불곰 서식지로 딱 좋네 여름에도 그다지 덥지 않을테고

  • @권영호-t3l
    @권영호-t3l 3 місяці тому

    오늘 처음 접했는데 산성을 다룬 유튜브가 매우 인상적이고 유익했습니다. 많은 수고를 들여 보여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와 별개로 하나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막에 '주색잡기 ~ ~ ' 표현이 있는데, 정자가 주색잡기가 일상화된 공간은 아닙니다. 사극에서 흔히 그렇게 설정되어 나올 뿐입니다. 굳이 주색잡기가 행해졌다면 공식적인 연회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던 '~~루'와 같은 경우이겠지요. 규모가 크고 2층 누각 형태로서 대개 관아에서 건립했습니다. 개인이 지은 정자의 대부분은 말씀하신 것처럼 은일하고 소요하면서 학문과 수양을 일삼은 공간이자 교육과 교유,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 @Tomahawk95
    @Tomahawk95 3 місяці тому

    만탑산있는쪽이면 핵실험장쪽인데 저긴 북한이 개방되도 못갈듯 싶음

  • @lwe3417
    @lwe3417 4 місяці тому

    백두산은 웅장하나 빼어나지 못하고(장이불수) 금강산은 빼어나나 웅장하지 못하고(수이부장) 묘향산은 웅장하며 빼어났다(역장역수) 라고 했는 데 우리 명산 중 최고 명산이고 그 밑으로 산맥이 흘러흘러 천하명당 평양을 만들었으니 을밀대, 모란봉 ,만년 도읍지다~~ 고조선 부터 계속 도읍을 해왔고 지금도 수도로 삼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도읍을 하니 천하명당 터다~~신라 경주도 천년했고 다음에도 천년~경주는 도시는 작아도 산맥이 회룡고조한 천하명당이다~앞으로 서울은 핵으로 초토화되고 계룡산 팔백년 도읍, 그뒤 거창군 가조면에 이백년 도읍 ,다음은 함양읍 팔백년 도읍, 전라도 영광 앞바다 칠산도 섬 앞 바다 천리가 융기하여 팔백년 도읍, 그 다음은 황해도 해주 수양산 앞 팔백년 도읍, 그다음 평양 천년~~ 경주천년~~평양과 경주는 계속 돌아가면서 천년 도읍~~

  • @최대수-h5t
    @최대수-h5t 4 місяці тому

    아직도 이런 식민사관 역사가?? 쪽바리 한테 물어봐야하나? 태행산맥 기준 요동 요서로 나누어진다. 한중수교전 의 식민사관과 현고등역사교과서는 이제그만 사라져야...

  • @강태원-f3g
    @강태원-f3g 5 місяців тому

    저 웅대한 고원 평원 위로 여름이면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죠? 언젠가 꼭 가볼 수 있기를...

  • @samueloh9026
    @samueloh9026 5 місяців тому

    배후 산성에 앞에는 관청이 있는 것을 보면 관북리 유적지 같습니다.

  • @Lehman_Brothers
    @Lehman_Brothers 5 місяців тому

    코로나 터지기 직전에 갔다왔는데 고산병으로 힘들게 정상에 갔었는데 표범가죽은 없어습니다.

  • @송야삐히히
    @송야삐히히 6 місяців тому

    말고개는 있는데 중고개 영상은 없네여 ㅋㅋ 중고개가 제대로 인데 ㅋㅋ 참고로 중고개 998챠리 엿음 ㅋㅋ 고개가 험해 차 못 타고 맨날 걸어 다녓던 기억이

  • @sl8hf_may
    @sl8hf_may 6 місяців тому

    사기치고 있네.. 삼국시대 무슨 지금의 요하가 장개와 우리가 경계나? 역사를 식민반도로 배웠으니 그걸 바꾸기가 힘들겠지만 좀 공부를 해라.. 역사조작질에 동참하지 말고.

  • @파랑파랑-v3u
    @파랑파랑-v3u 6 місяців тому

    갑자기 왜 떳는지 모르겠는데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정작 북한 사람들은 남해에 와서 따듯한 바다에 몸 담궈보고 꽃보고 하는게 일생 소원이라던데 참 ㅋㅋ

  • @미네르바k
    @미네르바k 6 місяців тому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이 있을정도인데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빨리 관광이라도 왕래 하면 좋을텐데. 코앞에 있어도 가볼수가 없으니....

  • @jiangzhejiang569
    @jiangzhejiang569 6 місяців тому

    천하절승 묘향산경치는 ㄱ야말로 세상에 제일이요

  • @user-mu6fd5um9z75
    @user-mu6fd5um9z75 6 місяців тому

    백제 유물이라는 증거 제시 필요

  • @나일권-h4r
    @나일권-h4r 6 місяців тому

    역사는역시 책보고

  • @soccer2088
    @soccer2088 6 місяців тому

    혹시, 以北 실향민 가족 되시나요? 황해도쪽이신가요?

    • @SOOLMEEE
      @SOOLMEEE 6 місяців тому

      실향민은 아니고 이 땅의 산야를 사랑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 @rk6622
    @rk6622 6 місяців тому

    이런 위대한 자연이 있는데 북한 3대가 이 위에 군림한다고?????

  • @hae-meo-sum
    @hae-meo-sum 7 місяців тому

    일찍이 가야 분국론이 자리잡은 곳이기도 합니다.

  • @리대로-f2e
    @리대로-f2e 7 місяців тому

    고구려 땅을 되찾자, 요하를 국경ㅇ로 만들자. 한글이 만들어 줄 거다.

  • @jamespark4105
    @jamespark4105 7 місяців тому

    저희 아파트에서 맑은날에 보여요 설마했는데 진짜 천마산이네요

  • @yeongheo3600
    @yeongheo3600 7 місяців тому

    자신이 왕족이라면 닭장 같은 성벽을 쌓고 700년을 버티고 살거라 생각 하나 보지요? 700년을 버티고 살아간 고구려 왕들이 지금 한반도인들 처럼 그렇게 비전문적이고 원칙도 없고 허술하고 어리버리하게 보이나요? 그렇다고 당에서 쌓은 토성은 어디에 잇지요? 그 근거는요... 근거가 없는 지식은 허세에 불과 합니다 그리고 50년 안된 잡국 나라들 삼국지 소설엔 열광이나 하고...그러니까 역사도 없는 일본에 식민지배나 받지만...등등

  • @sungchunchoi4817
    @sungchunchoi4817 8 місяців тому

    아직도 이런 터무니 없는 왜곡된 역사를 믿는 사람들이 있네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저런 영상 만드는 노력이면 역사관련 서적이나 한번 더 보시죠. 오녀산성이 고구려 도읍지라거나 집안에 있는 성이 국내성이었다니요. 일제시대의 양심있는 일본학자도 유물발굴 결과 고구려 건국시기나 관련된 시기의 유물이 하나도 출토되지 않았다고 보고서에 기록했습니다. 삼국사기나 중국의 정통사서에 기록된 고구려 도읍지와 국가 경영을 주로 한 곳은 북경일대인 현재의 하북성과 산서성이 중심입니다. 확장기에는 산동성이남까지도 경영했고요.

  • @sungchunchoi4817
    @sungchunchoi4817 8 місяців тому

    현재의 요하가 고구려와 수, 당과의 경계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네요.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과 맞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런 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은 현혹시키는 유투버가 있네요. 고구려와 수, 당과의 경계는 현재의 북경인근 하북성, 산서성 지역입니다. 많은 사서가 증명해줍니다. 영상에 나오는 안시성은 가짜입니다. 안시성은 천연의 요새로 말머리처럼 생긴 마수산 또는 마두산에 있었습니다. 고구려 병사들이 성에서 나올때 밧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꼬리에 해당하는 산의 말미 즉, 마미산에는 환도성이 있었고요. 현재의 산서성에 있습니다.

  • @mooyook2
    @mooyook2 8 місяців тому

    와우 산정상까지 도로가 깔려 잇네요. 그런데 하산하시는 장면에서보니 왼쪽은 전부 펜스를 쳐 버렸네요. 철원과 멀리 화천의 화악산까지 아우르는 산이라 이름도 그래서 광덕산인듯 할텐데.. 그렇다면 저기는 야생 동물이 특히나 호랑이와 표범 스라소니가 이동하고 은거지이기도 하는 코스일텐데.. 낙석의 이유때문에 펜스를 친 것은 이해하지만. 동물들과 식물의 번식이동을 차단해버리는 펜스 설치가 좀 ...

  • @mooyook2
    @mooyook2 8 місяців тому

    산세가... 굽이굽이 많은 것이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에 이르는 것보다 더 많은 산을 지닌 것 같네요. 개성 시내는 저 테두리 같은 산 넘어 평지에 있겠지요?

  • @mooyook2
    @mooyook2 8 місяців тому

    와 저기를 실제 사진으로만 봐도 참 멋진 풍경일텐데... 2~300미터 높이의 고갯길만 봐도 멋진데 .. 하물며, 2천미터 넘는 고지평원에.. 중간 중간에 늪지와 물웅덩이들이 있고...

  • @jamespark4105
    @jamespark4105 8 місяців тому

    저희집이 일산인데 맑은 날에 저 봉우리들리 보입니다. 설마 했는데 확인했더니 봉우리 모양들이 똑같았습니다.

    • @mooyook2
      @mooyook2 8 місяців тому

      그러겠군요. 강화는 물론, 북한산에서도 보이던 것 같은데...

  • @김병갑-d6h
    @김병갑-d6h 8 місяців тому

    화산폭발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높았을까

    • @user-tw5wx9uw9b
      @user-tw5wx9uw9b 8 місяців тому

      3800m에서 4200m정도 되었다고 하네요~

  • @badapic
    @badapic 8 місяців тому

    양만춘 안시성 = 현 북경(베이징). 끝.

  • @리의정원
    @리의정원 9 місяців тому

    아~ 이런곳이 있네요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슬처럼-b6w
    @이슬처럼-b6w 10 місяців тому

    발해의 성은 어디에 있나요?

  • @김종길-g2k
    @김종길-g2k 10 місяців тому

    이런 엉터리 같은 영상을 왜 올리지??

  • @JKJ0509
    @JKJ0509 10 місяців тому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장수를 보내어 후한의 북평(현재의 북경),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하였다. 이에 후한의 요동태수 ‘채융’이 은혜와 신의로써 화친을 청해와 화친하였다.>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요동 변방의 맥인(고구려)이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략하였다.> [후한서] [동이열전] <구려(고구려)와 선비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침략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요수 서쪽에 10개의 성을 쌓아 후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이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이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이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이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이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할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이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진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동해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변한•진한인데 마한은 고구려요,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병이 100만 명이어서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 등 지역을 흔들어서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으며 수나라 황제가 세력을 잃은 것은 저 요동 정벌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위나라(북위)에서 군사를 보내 침공했는데 우리에게 패했다.> [자치통감] 영명 6년(488) <위병(북위병)이 백제를 침략했으나 백제에게 패했다.> [남제서] <백제가 위나라(북위) 기병 수십만과 싸웠다.> 현재 한국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북위가 배를 타고 충청도 지역에 와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제서]에는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이끌고 백제와 전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군선 1척에 말 10마리를 싣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병 수십만이 배를 타려면 배를 수만척이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백제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었기 때문에 북위의 기병 수십만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백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하는데 그 지역이 다 중국 땅이다. 이것만 봐도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는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했다는 것은 백제 왕이 황제라는 것을 뜻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삭녕장군 면중왕 저근은 대대로 시무를 잘 도왔고, 무공도 뛰어났으므로 지금 가행관군장군•도장군 도한왕으로 삼았다.>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팔중후 여고를 아착왕, 건위장군 여력을 매로왕, 광무장군 여고를 불사후>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점거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점령하였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를 관중장군으로 삼고, 행정로장군 좌현왕 여곤과 행정로장군 여훈을 모두 정로장군으로 삼아달라>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백제에 22담로가 있었는데 모두 임금의 자제, 종족들이 나누어 다스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백제왕이 거주하는 곳은 동서 두 성이다.>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백제가 요서•진평 두 군에 거처했다.>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때 고구려는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소유하였고, 백제는 요서•진평 두 군의 땅을 점거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고구려에게 격파되어 쇠약해진지 여러해 되더니 남한으로 도읍을 옮겼다.>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송나라, 남제, 양나라 때까지 장강(양자강) 좌우에 있다.>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송나라, 남제, 양나라 때까지 장강(양자강) 왼쪽에 있다. 후위(북위) 때 중원에 터를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수서]에는 <백제에는 신라, 고구려, 왜인들이 나라 안에 섞여 있으며 중국인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백제촌, 백제향, 백제허>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백제향>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백제향> 안에는 <백제허>가 있다. <허>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백제향, 백제허>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백제허>를 <빠이쥐쉬>가 아니라 <대백제, 대박제>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 @Abc3-u9z
    @Abc3-u9z 10 місяців тому

    영상 잘봤습니다. 개인적인 망상을 해보자면 조선 초기 집안지역이 고구려의 옛 수도란걸 인식했더라면 세종께서 4군6진 개척할때 압록강 넘어 딱 집안일대까지만 영토화했을수도 있었을텐데 생각이듭니다. 진짜 압록강 바로넘어 코앞인데 아쉬운마음이 생기는건 어쩔수없나봅니다ㅋㅋ

  • @낙화유수-s4x
    @낙화유수-s4x 10 місяців тому

    이런영상을 볼때마다 통일을 기원하지만 김씨왕조가 망해야 가능한대

  • @푸르미르-g7c
    @푸르미르-g7c 11 місяців тому

    우리강토의 2500m 미지의 산 꼭 가보고 싶다 내생전에 가볼수 있으려나 , 통일은 될려나 불혹을 넘은 지금에 와서는 이것도 어렵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언젠가는 되겠지 했는데 그것도 이젠 아득해진다

  • @냥갱이네
    @냥갱이네 Рік тому

    하지만 갈 수 없는 곳 😅

  • @푸르미르-g7c
    @푸르미르-g7c Рік тому

    해발 2541m 관모봉, 가보고 싶다 자고로 산은 높고 깊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2천미터 이상 산이 없는게 한편으론 아쉽네요 우리나라 등산 애호가들에겐 북한의 고봉들이 선망의 대상이겠네요

  • @pae4451
    @pae4451 Рік тому

    유리왕의 묘지가 북경에 있어요. 국내성하고 졸본은 하북성에 있어요.

  • @노인좌
    @노인좌 Рік тому

    넌 어느나라 사람이냐?

  • @a7205-t1e
    @a7205-t1e Рік тому

    정신줄 놨구나.

  • @ssamgi21c-n3h
    @ssamgi21c-n3h Рік тому

    공부좀 더하세요. 안시성, 평양성,돈황성등은 항하가 꺾기는 고대 요하에 있었다고 속슥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