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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청교도주의 논쟁, 고경태 박사, 기독교사상연구원-리포르만다 제20회 학술회, BREADTV 동백 스튜디오, 2023.10.10.
Переглядів 1729 місяців тому
청교도와 율법주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한 논쟁 요점들을 소개하고 자신의 논점을 밝힌다.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흐름, 황현조 박사, 기독교사상연구원- 리포르만다 제20차 학술회, 2023.10. 10. BREADTV 동백 스튜디오
Переглядів 2299 місяців тому
현대 미국교회,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흐름과 세속주의주의적 특성을 소개한다. 개혁교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다원주의 사회의 이모저모를 신학자의 눈으로 조망한다.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정체성, 고신포럼 20200217 최덕성 박사, 서울
Переглядів 80410 місяців тому
고신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교단)의 정체성을 교의학 교회론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고신포럼 20200217. 사도성을 지닌 고신교회에 새 시대를 향한 돌파구를 제시한다.
Japanese Girls in Nepal
Переглядів 93Рік тому
Interview with Japanese Girls Kathmandu, Nepal in 2017. Blessed are those who pray for, support and encourage Nepalese.
하희라,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예수 피를 힘 입어, CGNTV, 20190210
Переглядів 978Рік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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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and Theological Education, Dr. Doug Choi, ChatGPT와 신학교육, 인공지능 시대에 신학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덕성 박사
Переглядів 269Рік тому
ChatGPT is a double-edged sword that is a valuable tool for those who have to build analytical, critical, comprehensive, creative, and problem-solving skills provided by theological education. 인공지능 챗지피티 시대의 신학교육
주기철 목사복권 릴레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최덕성 박사, 제3회 신사참배거부운동 재조명 학술 세미나(20230113, 국회회관)
Переглядів 256Рік тому
신사참배거부운동은 신앙운동인 동시에 항일투쟁 민족운동이었다. 우리 땅에 있었던 마지막 항일운동이었다. 왜 대한민국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하지 않는가? 주기철 목사복권 릴레이는 한국교회의 저변에 흐르는 친일파 전통, 교회교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역사날조, 총신대학교의 역사날조, 한신대학교의 역사날조, 예장 통합의 사실호도 등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세리 마태의 눈빛, 최덕성 목사, 천곡제일교회(예장 통합) 신년 예배 설교 (20230101)
Переглядів 150Рік тому
예수와 세리 마태 사이에 오간 것은 눈빛 뿐이었다. 거룩한 갈망의 눈빛 에서 진리와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읽은 듯 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브래드채플 설교, 예수님의 나이는? 최덕성 목사
Переглядів 109Рік тому
예수님은 기원 전(BC)과 기원 후(AD)의 분수령이다. 서력은 예수님의 성육신 해로부터 2022년이 지난 것으로 계산한다. 실제 탄생 연도는 언제인가? 성탄일은 기념과 축하의 날인가, 경배의 날인가? 동방 박사들처럼 권세, 경배, 영존을 상징하는 마음의 선물을 바침이 마땅하다.
최덕성 총장의 WCC 제11차 총회 참관 보고, WCC 바로알기 65, 리포르만다
Переглядів 5392 роки тому
WCC 제11차 총회는 "앙꼬 없는 찐빵"이었다. '미시오 데이'라고 하는 세상사 해결을 선교와 전도의 주제 로 삼았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복음을 기피했다.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일치-연합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도외시했다. WCC 따라가면 교회가 죽을 수 밖에 없다.
WCC 제11차 총회 참관 보고회, 2022.11.01
Переглядів 2852 роки тому
복음 없는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보고자 고병찬 목사 (운정참존교회 목사) 안승오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최덕성 교수 (브니엘신학교 총장)
브레드채플 설교, 여왕과 영국교회, 220918, 최덕성 목사, 여왕은 어떻게 영국교회의 수장(우두머리)이 되었는가?
Переглядів 2732 роки тому
영국 여왕은 어떻게 영국교회의 수장(우두머리)이 되었는가? 영국종교개혁사를 중심으로 유럽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말한다.
WCC 바로알기 64, WCC 제11차 총회에 바란다,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Переглядів 4022 роки тому
WCC 제11차 총회의 주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예수의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불일치한다. 복음은 내몰고 그 대신에 주변적인 세상사 해결을 '선교의 과제'로 삼는다. WCC가 상정한 93개의 논의 주제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 십자가, 영생의 진리가 없다. WCC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WCC 바로알기 63, 공식 문서가 말한다 ,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Переглядів 2302 роки тому
"이형기 박성원 교수께 묻는다"의 3번째 강의이다. WCC에 대한 한국인 신학자들의 사실 호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공식문서가 말하는 것과 비교한다.
WCC 바로알기 62, 거짓증거 말라,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Переглядів 1782 роки тому
WCC 바로알기 62, 거짓증거 말라,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WCC, 바로알기 61, 이형기 박성원 교수께 몯는다,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Переглядів 1572 роки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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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세례 요한의 질문, 최덕성 목사, 220724, 여러분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Переглядів 1282 роки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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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세리 마태의 눈빛, 최덕성 목사, 220717, 리포르만다
Переглядів 1312 роки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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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모바일신학교, BREAD UNIVERSITY, BREAD COLLEGE, 최덕성 박사, 서상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1552 роки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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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포도주 제조자, 서상록 목사, 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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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칼리지, 용접 1, 이윤곤 교수, 복음전도자들을 위한 기술교육, BREAD UNIVERSITY, BREAD COLLEGE-Welding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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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와 -약속의 땅이다, 최덕성 목사, 브레드칼리지, BREAD UNIVERSITY, BREAD COLLEGE, 리포르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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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바로알기 60, 왜 우리가 유대민족 신을 믿어야 하는가?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빵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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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목격자, 최덕성 목사, 229626, 리포르만다, 빵티비, 브레드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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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바로알기 59, 예수는 누구인가? 정답과 오답의 차이, 최덕성 박사, 리포르만다, 빵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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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반사경, 기독인은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최덕성 목사, 리포르만다, 빵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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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지금 전화 하세요, 거룩한 성도의 사귐, 최덕성 목사, 리포르만다, 빵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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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채플 설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성령강림기념주일 설교, 최덕성 목사, 리포르만다, 빵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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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D UNIVERSITY, ECCLESIOLOGY 12: CHURCH AND STATE, IN CHINESE, DR.DOUG CHOI
Переглядів 1452 роки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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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길선김-e4d
    @길선김-e4d 6 днів тому

    241703 김길선 강의 잘 들었습니다

  • @naim-rf2mo
    @naim-rf2mo 17 днів тому

    뇌의 문제입니다.[이 경우는 뭐 빵상아줌마급이지만]전통적으로 약물,최면등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여러가지 이유로 순간적으로 배선이 꼬이면 그럴수도 있고 순간이 아니라 고정되면 ,장애등급을 신청하게됩니다

  • @시원한오미자
    @시원한오미자 20 днів тому

    비판할려면 제대로 공부하던가 수준이 저것밖에 안되나?

  • @길선김-e4d
    @길선김-e4d 21 день тому

    241703 김길선입니다 강의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 @BattulgaEnkhdold
    @BattulgaEnkhdold Місяць тому

    엥흐벌드 출석했습니다.

  • @길선김-e4d
    @길선김-e4d Місяць тому

    교수님 24년 원부1김길선 강의 잘들었습니다

  • @길선김-e4d
    @길선김-e4d Місяць тому

    원부1 김길선강의잘들었습니다

  • @BattulgaEnkhdold
    @BattulgaEnkhdold Місяць тому

    엥흐벌드 출석했습니다.강의 감사 드립니다. 교수님

  • @zenithshim635
    @zenithshim635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 @최남호최남호
    @최남호최남호 Місяць тому

    원부2년 최남호입니다 교수님 교회의 4대속성 강의 잘 들었습니다

  • @매혹의중저음
    @매혹의중저음 Місяць тому

    <'이신칭의'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문제들> 첫째, 한국교회는 성경을 매우 중시하는데 실제적으로는 66권의 성경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로마서 1권만 달랑 보고 '은혜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는 로마서를 기준으로 66권의 성경 전체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로마서 중심의 성경 해석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 종교개혁자 루터가 "야고보서는 복음이 들어있지 않은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혹평한 것에 대해 한국교회 전체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게 아닌지, 다시 말해 공개적으로 목사들과 신자들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야고보서 같이 은혜가 안 되는 책이 왜 성경 안에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셋째, 종교개혁 당시에 가톨릭교회가 과연 '행위구원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를 확립한 것인지 아니면 '거룩한 행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타락하고 부패한 가톨릭의 위선적이고 열매 없는 신앙행태에 맞서서 '이신칭의'를 외친 것인가 하는 점을 보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넷째, 복음서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만 기록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산상수훈, 비유의 가르침, 치유, 기적 등의 공생애 사역도 기록되어 있는데 단지 대속적 죽음만이 의미가 있다면 복음서 저자들이 주님의 공생애를 도대체 왜 기록한 것인지, 단지 문서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기록한 것인지 또한 주님의 공생애가 중요해서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면 공생애와 십자가와 부활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고 묵상하며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주님의 공생애 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연장선상에 십자가와 부활이 있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데 실제로 산상수훈 같은 주님의 말씀을 사도 바울의 로마서 만큼 실제로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우리의 성찰은 필요하지 않은 걸까요? 다섯째, 소위 '영혼 구원'과 '죄 사함'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만물을 다스리도록 명령하셨으며(문화명령) 예수님이 영으로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라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 그리고 우주만물과 우리의 삶과 세계역사의 주권자와 통치자가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게 아닌가, 이교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 전통은 하나님의 전우주적 주권과 통치를 강조하지요. 장 칼뱅도 그렇고 네덜란드의 신칼뱅주의자이자 신학자, 설교자, 언론인, 교육자,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도 그렇죠. 카이퍼는 "그리스도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왕이 되시게 하라"라고 외친 것을 개혁교회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세계관•인생관•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세속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인생관•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주님이 되지 마시고 단지 내 영혼만 평안하게 해주시고 죽은 후에 천국이나 갈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여섯째, 과연 바울신학의 핵심이 '이신칭의'로 표현되는 구원론인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의 서신들 13권을 읽어보면 이신칭의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만 나오고 나머지 다른 서신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한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공동서신까지 포함하는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들은 당시의 여러 교회들을 향해 쓴 편지들입니다.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서신서는 구원론도 물론 다루지만 그보다는 교회론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닌지요? 서신서에는 "전도하라, 새신자 많이 만들어라, 교인 수 늘려라" 등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거룩하게 살아라, 하나 되어라, 서로 받아주어라, 용서해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등의 가르침들이 대부분입니다.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을 포괄하는 모든 서신서의 일관된 신학은 '세상 속의 교회' 또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을 자꾸 분리시켜서 볼 게 아니라 하나로 묶어서 '세상 속의 교회'라는 주제를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일곱번째는,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즉, 구원의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1장 33절에서는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죠. 신약에서도 이 말씀이 반복되는데요. 결국 굳어진 인류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여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새 백성을 만들고자 하심이 구원의 목적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선행을 기뻐하시는가, 악행을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나라는 어떤 세계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나라가 거룩한 세계인가 아니면 도덕적 시궁창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나라를 도덕적 시궁창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조폭 두목이 되는 것이겠죠. 저는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생각하고 하나님나라를 죄악이 없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런 비유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바다에 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열심히 배의 노를 저어서 가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우리가 노를 젓는 것은 바로 믿음의 행위, 거룩한 믿음이다"라고 말입니다.

  • @매혹의중저음
    @매혹의중저음 Місяць тому

    <'이신칭의'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문제들> 첫째, 한국교회는 성경을 매우 중시하는데 실제적으로는 66권의 성경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로마서 1권만 달랑 보고 '은혜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는 로마서를 기준으로 66권의 성경 전체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로마서 중심의 성경 해석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 종교개혁자 루터가 "야고보서는 복음이 들어있지 않은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혹평한 것에 대해 한국교회 전체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게 아닌지, 다시 말해 공개적으로 목사들과 신자들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야고보서 같이 은혜가 안 되는 책이 왜 성경 안에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셋째, 종교개혁 당시에 가톨릭교회가 과연 '행위구원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를 확립한 것인지 아니면 '거룩한 행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타락하고 부패한 가톨릭의 위선적이고 열매 없는 신앙행태에 맞서서 '이신칭의'를 외친 것인가 하는 점을 보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넷째, 복음서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만 기록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산상수훈, 비유의 가르침, 치유, 기적 등의 공생애 사역도 기록되어 있는데 단지 대속적 죽음만이 의미가 있다면 복음서 저자들이 주님의 공생애를 도대체 왜 기록한 것인지, 단지 문서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기록한 것인지 또한 주님의 공생애가 중요해서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면 공생애와 십자가와 부활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고 묵상하며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주님의 공생애 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연장선상에 십자가와 부활이 있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데 실제로 산상수훈 같은 주님의 말씀을 사도 바울의 로마서 만큼 실제로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우리의 성찰은 필요하지 않은 걸까요? 다섯째, 소위 '영혼 구원'과 '죄 사함'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만물을 다스리도록 명령하셨으며(문화명령) 예수님이 영으로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라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 그리고 우주만물과 우리의 삶과 세계역사의 주권자와 통치자가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게 아닌가, 이교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 전통은 하나님의 전우주적 주권과 통치를 강조하지요. 장 칼뱅도 그렇고 네덜란드의 신칼뱅주의자이자 신학자, 설교자, 언론인, 교육자,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도 그렇죠. 카이퍼는 "그리스도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왕이 되시게 하라"라고 외친 것을 개혁교회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세계관•인생관•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세속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인생관•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주님이 되지 마시고 단지 내 영혼만 평안하게 해주시고 죽은 후에 천국이나 갈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여섯째, 과연 바울신학의 핵심이 '이신칭의'로 표현되는 구원론인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의 서신들 13권을 읽어보면 이신칭의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만 나오고 나머지 다른 서신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한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공동서신까지 포함하는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들은 당시의 여러 교회들을 향해 쓴 편지들입니다.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서신서는 구원론도 물론 다루지만 그보다는 교회론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닌지요? 서신서에는 "전도하라, 새신자 많이 만들어라, 교인 수 늘려라" 등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거룩하게 살아라, 하나 되어라, 서로 받아주어라, 용서해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등의 가르침들이 대부분입니다.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을 포괄하는 모든 서신서의 일관된 신학은 '세상 속의 교회' 또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을 자꾸 분리시켜서 볼 게 아니라 하나로 묶어서 '세상 속의 교회'라는 주제를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일곱번째는,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즉, 구원의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1장 33절에서는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죠. 신약에서도 이 말씀이 반복되는데요. 결국 굳어진 인류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여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새 백성을 만들고자 하심이 구원의 목적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선행을 기뻐하시는가, 악행을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나라는 어떤 세계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나라가 거룩한 세계인가 아니면 도덕적 시궁창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나라를 도덕적 시궁창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조폭 두목이 되는 것이겠죠. 저는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생각하고 하나님나라를 죄악이 없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런 비유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바다에 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열심히 배의 노를 저어서 가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우리가 노를 젓는 것은 바로 믿음의 행위, 거룩한 믿음이다"라고 말입니다.

  • @morningforest0
    @morningforest0 Місяць тому

    원부2 이종희. 강의 감사드립니다.

  • @morningforest0
    @morningforest0 Місяць тому

    원부2 이종희. 강의 감사드립니다.

  • @morningforest0
    @morningforest0 Місяць тому

    원부2 이종희. 강의 감사드립니다.

  • @Purity8665
    @Purity8665 Місяць тому

    더럽고도 추악한 미혹의 영! 죽음의 영!

  • @BattulgaEnkhdold
    @BattulgaEnkhdold Місяць тому

    엥흐벌드입니다.

  • @최남호최남호
    @최남호최남호 Місяць тому

    원부2년 최남호 교회론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은혜로사는자-u8c
    @은혜로사는자-u8c Місяць тому

    교수님 원부2 박수연입니다. 짧은 시간 너무 방대하고 귀한 가르침에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요구하신 교회론을 잘 소화해서 교회사에 또 현실에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가지길 기대합니다.

  • @편의점알바-p8x
    @편의점알바-p8x Місяць тому

    사탄의 영이 충만한 조용기

  • @구름-p7v
    @구름-p7v Місяць тому

    예수님 마음이 아프고 상합니다

  • @구름-p7v
    @구름-p7v Місяць тому

    오직예수

  • @구름-p7v
    @구름-p7v Місяць тому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자 이십니다❤❤❤❤

  • @미공개-g8m
    @미공개-g8m Місяць тому

    요즘은 혼전순결 지키면 이상한 사람이라 한다지만 왜 이상한지 모르겠음 난 한 사람만을 위할 것임 상대도 응당 그래야 하고 전여자 전남자 나보다 높은 급이어서 사친으로 지낸 이성 한 번 스파크가 붙으면 활활 탈텐데 상대를 믿고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난 그래서 이성친구 없음 같은 반이랍시고 나름 인사치레하면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다가 고백하는 경우도 있더라 꼴에 친구랍시고 술 같이 먹었다가는 이제 스파크 붙는 사이되는거지 뭐 웩

  • @대천사미카엘-q8v
    @대천사미카엘-q8v Місяць тому

    ♥장로교(통합, 합동)에서 천주교회로 3대 개종한 이(고모네, 이모네 함께 개종)가 갈라진 형제,자매들에게 드리는 당부♥신앙은 강요로만 되지 않아요. 보수 장로교(합동)모태신앙으로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소중했던 신앙을 버릴 만큼 많이 찾아 보고 공부하고 왔습니다♥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교회를 이단시 하고 공격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많이 나빴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자신들을 이끄는 목자를 잘못 만나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우리 주님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 시대 만큼 '짖지 않는 개로 전락한 목자'들의 수가 많았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떼가 약탈자인 수많은 이리들(마태 7,15)에게 속아 넘어가 잡아 먹힐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킬줄 모른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이 토막토막 난도질 당하거나 찢기고 있다." ♥가톨릭에 대해 공격하고 이단시하는 신자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목자들에게서 들은대로 내뱉으며 가톨릭에 대해 편견을 갖고 비판하기 이전에, 부디 그리스도교의 근본이요 모태인 가톨릭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메꾸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가톨릭이라는 신앙으로 인도받은 것에 대한 그 크신 은종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갈라진 형제, 자매님 저는 가톨릭으로의 개종 같은 것에 대해서는 꼭 권하지는 않지만, 가톨릭에 대해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꼭 권해드립니다♥ 우선 미국에서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개종하게 한 유명한 책인 ♥1 '교부들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미국의 사제가 성경적 신학적으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을 향해 이단시하고 공격하는 교리 중점제인 주제를 설명하는 책으로, 장면 박사가 번역한 책인데 개신교와 가톨릭의 문제를 상세하게 서술했습니다. 미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 체서키프 신학교의 신학 교수로서 활동한 스콧 한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 천주교 신자들에게 "우상숭배자", "마리아의 신봉자", "교황의 추종자"등 독설을 퍼부으며 가톨릭을 이단시 했던 사람인데 그의 아내인 킴벌리 한의 저서 《Rome Sweet Home》는 바로 이들 부부가 가톨릭교회로 회심하기까지의 신앙여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현재 8개국어로 번역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2《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스콧 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ko.wikipedia.org/wiki/%EC%8A%A4%EC%BD%A7_%ED%95%9C ♥3 천주교회!와 개신교(서한규저자 교회의 역사적 진실과 진리) ♥4 천주교와 개신교(박도식 신부님의 가톨릭에 대한 오해) ♥5 개종실화(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18인 목사님들의 개종실기) ♥6 개신교가 저버린 보물(50년간 개신교 교인으로 산 저자가 가톨릭의 보물 설명) ♥7 사랑하는 친구 김장로에게 (가톨릭에 대한 오해, 신앙고백서) 개신교 신자들이 오해하는 그 부분에 대하여 분명 그 오해를 풀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이 책까지 깊이 읽었는데도 계속 가톨릭을 이단시하며 공격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은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어떤 개신교 신자가 교회당에서 목사님이 선교할 때 가끔 천주교를 치는 설교를 듣고는 '왜 그럴까? 무언가 천주교에 대해 열등 의식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 천주교가 더 좋은 점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하고는 천주교 교리를 연구한 끝에 개종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사실입니다. 예배당에서는 공식적으로 천주교를 치는 설교를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어떤 문제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특별히 교리 시간 이외에는 성당에서 설교 중에 남의 종파를 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어떤 사이비 종교가 나타나도 가톨릭은 태연 자약합니다. 왜냐하면 2천 년간 너무나 많은 이단과 싸워 온 베드로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교 문제를 놓고 서로 비난하고 분파 싸움을 결코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 앞에는 겸손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개신교 신자들을 '♥갈라져나간 형제'♥라고 합니다. 절대로 ♥이단시하든지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 21) 예수님이 하신 이렇게 진실한 기도를 바칠 뿐입니다. 샬롬~~

  • @소나무-m4i
    @소나무-m4i 2 місяці тому

    희수님의 말과 같이 성경으로 유감을 설명해 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상범-n2o
    @이상범-n2o 2 місяці тому

    김 박사라는 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2 місяці тому

    ( *헷소리는 아무 뜻이 없기에 방언(= 지방 언어) 이 아님.* ) ​■ 14:2 알아듣는 자가 없고 <기도하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14:28절 보세요.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알아듣습니다. "말:, 언어"를 말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를 수가 있나요? 언어는 두뇌에서 언어 규칙을 따라, 뜻이 정해진 발음의 단어들을 조합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언어를 할 수가 없어요. 기도는 내 마음을 말로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내가 모를 수가 있냐고요? 14:28 "말할 것이요"의 "말"인 λαλείτω (랄레이토) 와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등은 기본형이 λαλεω (랄레오)인데 말씀하다(마9:18. 눅1:70. 요3:34)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복음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헷소리를 뜻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어떤 지방에서 사람들이 쓰는 언어입니다. '뜻 없는 소리'가 아님. .......................................... 남이 모르는 외국어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만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아리송?"이 되는 겁니다. '비밀'로 번역된 것은 '미스테리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게 기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죠?